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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43:권달국僉樞(附예천방문458)
작성자장병창 @ 2009.06.30 07:15:28
  예천의 자랑(1943) : 호명면 담암리 출신 권달국 첨추(附 예천방문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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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權達國) : 1692(숙종 18)-?, 호명면 담암리 출신, 초명은 송로(松老), 자는 여직(汝直), 호는 손동(遜洞), 본관은 안동, 생원(生員) 연의 증손, 진철(震哲)의 손자, 만재(萬載)의 4자, 생원으로서 1738년(영조 14)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 30위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1745), 직장(直長, 1746),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1747), 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 병조 정랑(兵曹正郞), 춘추관 기주관(春秋館記注官), 첨추(僉樞), 동지(同知)를 역임하였다. 벼슬을 그만 두고 귀향하여 초가 3간뿐일 만큼 청렴하였다. 묘는 호명면 종산리 장원봉(壯元峰) 서록 간좌(艮坐)에 있고, 유고(遺稿)가 있다.(族譜, 醴泉郡邑誌 1770 1780 1841 1895, 醴泉郡誌 1939 2005, 朝鮮 輿勝覽 1929, 文科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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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1년 12월 2일 (기해) 원본995책/탈초본54책 (8/17) 1745년 乾隆(淸/高宗) 10년/ ○ 以朴致文爲獻納, 李齊華爲持平, 李章吾爲江界府使, 洪益海爲朔州府使, 權抗爲江原都事, 沈鳳徵爲長湍府使, 趙鳴逵爲司畜別提, 河重紀爲典籍, 尹東夏爲奉常僉正, □輯寧爲奉常判官, 沈?爲工曹佐郞, 金文行爲海州判官, 黃?爲鎭川縣監, 金漢楨爲谷城郡守, 任師夏爲吏曹佐郞, 權潗爲宗廟令, 魚史弼單付奉常參奉, 權達國單付承文正字, 尹學東單付接慰官。(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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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2년 2월 8일 (갑진) 원본997책/탈초본54책 (18/33) 1746년 乾隆(淸/高宗) 11년/ ○ 吏批, 以李宗城爲工曹判書, 閔應洙爲判尹, 趙明鼎·尹光紹竝爲修撰, 金?爲兵曹佐郞, 尹勉敎爲戶曹正郞, 姜鳳休爲正言, 韓師得爲大司諫, 金翰運爲奉常正, 李鼎燮爲敦寧判官, 黃在河爲宗廟令, 趙明?爲貞陵令, 李德觀爲直講, 朴垂裕爲典籍, 李漢謙爲敦寧都正, 李燮元爲吏曹正郞, 李世德爲尙衣直長, 申景閔爲司饔主簿, 金可慶爲公洪都事, 兪宇基爲司諫, 尹敬周爲獻納, 趙載敏爲副修撰, 崔震瞻·尹聖輿竝爲崇靈殿參奉, 承文著作權達國, 校書著作李再章, 副正字魚史弼, 喬桐府使趙東漸, 竝單付, 春川府使趙德中仍任事, 承傳。內官鄭相河·朴弼章, 今加嘉義, 李景聃, 今加嘉善, 金夢翼·吳允恒·孫世榮, 今加通政, 醫官玄起鵬, 今加崇祿, 金壽?, 今加崇政, 方泰輿·玄載鼎·金履亨, 今加嘉善, 鄭纘修·柳重臨·辛世翊·高挺參, 今加通政。已上加資事, 承傳。(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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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2년 9월 3일 (병신) 원본1008책/탈초본55책 (11/18) 1746년 乾隆(淸/高宗) 11년/ ○ 有政。吏批, 判書鄭羽良進, 參判沈聖希進, 參議任珽進, 右承旨沈星鎭進。啓曰, 玉堂闕員, 今當差出, 而曾徑之人, 方在違牌坐罷中, 無以推移備擬, 合有變通之道, 何以爲之? 敢稟。傳曰, 竝敍用。以李錫杓爲大司諫, 南泰赫爲獻納, 金?爲掌令, 尹東浚爲副應敎, 洪益三爲副修撰, 南泰耆爲輔德, 崔鳴玉爲監察, 趙處魯爲直講, 鄭錫長爲司評, 崔台衡爲黃山察訪, 李顯祚爲麒麟察訪, 高裕爲連源察訪, 吳達運爲葬樹察訪, 閔百男爲司僕僉正, 漢城參軍李明吾, 內贍直長林志浩相換, 順陵直長李德養, 平市直長桂德海相換, 申景閔爲工曹正郞, 刑曹佐郞尹光德仍任事承傳, 趙集命爲敦寧判官, 李?爲尙州牧使, 金天澤爲天安郡守, 李昌壽爲忠原縣監, 趙光遇爲兼引儀, 鄭克淳爲工曹佐郞, 李彦?爲繕工副正, 尹鵬擧爲成安郡守, 朴慶泰爲南海縣監, 權相一爲司成, 曺允濟爲司僕正, 嚴瑀爲校理, 尹鳳五爲弼善, 鄭壽崗爲司?主夫, 柳尙晉爲漢城主夫, 南重寬爲校書校理, 文鳳壽爲典籍, 黃景源爲兼司書, 南有容爲兼弼善, 沈?爲司書, 任瑋爲說書, 李禹錫爲引儀, 李崇爲典牲主夫, 林錫憲爲漆原縣監, 沈?爲禁府都事, 趙載選爲內侍敎官, 權擢爲章陵參奉, 沈國賢爲穆陵參奉, 趙漢喆爲明陵參奉, 李祥海爲惠陵參奉, 鄭頊爲長陵參奉, 李?祚爲昌陵參奉, 尹昌殷爲莊陵參奉, 宋儒爲慶基殿參奉, 李載顯爲禮曹正郞, 金樂祖爲漢城判官, 洪正度爲禁府都事, 高壽崗爲引儀, 權達國爲典籍, 安致宅爲兼春秋, 安取範爲順陵參奉, 金益謙爲尙衣別提, 金迪基爲軍資主夫, 高時雄爲氷庫別提, 李?·趙塋曾爲掌樂主夫, 李宗垣爲司饔主夫, 尹尙喜爲尙衣主夫, 尹潗爲司饔主夫, 元一揆爲西部都事, 任守寬爲東部都事, 李廷漸爲南部都事, 李周鎭爲京畿監司, 李命膺爲恭陵參奉, 李麒祥·洪禹欽爲禮賓參奉, 李萬華爲典獄參奉, 李華爲假引儀, 朴垂裕爲兼春秋, 養賢主夫盧賢鶴·李重彬, 盧賢鶴爲典籍, 吳洵爲校檢, 許坪爲中學訓導, 金鳳瑞爲南學訓導。(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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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2년 11월 21일 (임자) 원본1010책/탈초본55책 (20/26) 1746년 乾隆(淸/高宗) 11년/ ○ 又以日記廳言啓曰, 本廳郞廳十五員加啓下事, 命下矣。前輔德兪彦述, 前獻納沈益聖, 副司果金?, 兵曹佐郞權崇, 前都事李壽鳳, 前司果朴混源, 成均典籍權達國·李重彬, 前司果曺命胤, 副司正任瑋, 前說書朴盛源, 權知承文院副正字李明祚·蔡濟恭, 前別檢李星慶, 前正字南鶴老差下。而兪彦述·沈益聖·李壽鳳·朴混源·曺命胤·朴盛源·李星慶, 時無職名。令該曹, 卽爲口傳付軍職, 使之察任, 而南鶴老方在罷散中, 亦爲一體付軍職冠帶常仕,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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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5월 5일 (갑오) 원본1016책/탈초본55책 (17/24) 1747년 乾隆(淸/高宗) 12년/ ○ 鄭履儉, 以日記廳言啓曰, 本廳郞廳權達國·林箕彬, 一年日記畢書, 而俱有身病, 今姑減下。其代, 以前郡守朴?。前典籍洪敍箕差下, 而俱無職名。令該曹, 卽爲口傳付軍職, 使之察任,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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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5월 29일 (무오) 원본1016책/탈초본55책 (14/37) 1747년 乾隆(淸/高宗) 12년/ ○ 吏批, 以柳善養爲司饔主簿, 李明吾爲敦寧主簿, 李敬天爲義盈主簿, 曺命協爲宗簿直長, 元景輿爲繕工奉事, 洪欽輔爲司饔奉事, 金宇?爲監察, 李德顯爲載寧郡守, 尹翼東爲溫陽郡守, 趙漢弼爲狼川縣監, 李錫履爲咸悅監察, 李瑗爲槐山郡守, 趙世選爲藍浦縣監, 洪若水爲鳳山郡守, 金宗爀爲碧沙察訪, 李麟祥爲沙斤察訪, 李宜喆爲景陽察訪, 河重紀爲參禮察訪, 元一揆爲恭陵令, 工曹參判李重協今加嘉義, 副司直申思建今加嘉善, 竝加資事, 承傳。沈士希爲中部都事, 沈鏞爲尙衣主簿, 李世德爲司宰主簿, 金光泰爲司宰直長, 趙昌禧爲內贍直長, 李浚爲司?直長, 李蓍建爲司宰奉事, 朴弼正爲襄陽府使, 趙明?爲靑山縣監, 金漢老爲典籍, 金朝潤爲典籍, 朱炯質爲禮曹佐郞, 李廷重爲宗廟令, 李命祿爲繕工假監役, 李崇爲監察, 閔樂洙爲牙山縣監, 趙榮國爲平安監司, 李台重爲義州府尹, 金尙重爲東萊府使, 李光瀷爲吏曹正郞, 權基彦爲吏曹正郞, 任顯中爲漢城主簿, 李命興爲司饔直長, 王鼎元爲軍資直長, 李徽之爲尙衣直長, 鄭世儉爲掌苑奉事, 黃?爲義盈奉事, 沈?爲長興奉事, 朴瑞爲儀賓奉事, 李邦喆爲監察, 韓德孚爲禮曹正郞, 安休爲和順縣監, 鄭錫長爲慶山縣監, 李景說爲礪山府使, 柳恕爲工曹佐郞, 林養浩爲繕工監役, 申思建爲兵曹參判, 金尙迪爲參議, 南泰普爲司僕主簿, 鄭運維爲濟用主簿, 洪益彬爲禁府都事, 沈鏞爲司評, 洪益大爲敦寧判官, 尹泰淵爲寧遠郡守, 李珪輔爲工曹正郞, 李廷一爲顯陵令, 任遠爲社稷令, 金漢老爲禮曹佐郞, 朴致文爲開城經歷, 金慶衍爲成歡察訪, 徐信修爲咸從府使, 曺允迪爲南部奉事, 宋濟愚爲內贍奉事, 宋欽明爲西部奉事, 李秉升爲尙瑞直長, 金聖祐爲省峴察訪, 李弘德爲典籍, 朴師昌爲晉州牧使, 權烋爲內資主簿, 權琦爲引儀, 鄭德純爲典牲主簿, 李廷煜爲尙瑞副直長, 尹光纘爲平安都事, 李坰爲貞陵令, 權世隆爲宗廟令, 沈士希爲工曹佐郞, 宋文欽爲宗簿主簿, 金尙一爲典籍, 林德恒爲繕工副奉事,

  權達國爲監察, 任顯中爲監察, 李弘德爲禮曹佐郞, 曺命敎爲大司憲, 安?爲兼引儀, 李泰華爲兼引儀, 洪鐵漢爲兼引儀, 洪啓禧爲大司成, 李衡萬爲校理, 任瑋爲典籍, 鄭羲祥爲工曹佐郞, 李徵瑞爲會寧府使, 金尙迪爲承旨, 閔?爲承旨, 徐命九爲同義禁, 鄭羽良爲知春秋, 洪益三爲掌樂正, 金始?爲副修撰, 趙明鼎爲校理, 金尙喆爲副校理, 李益輔爲兼校書校理, 金時燦爲兼西學校授, 金尙喆爲兼南學校授, 洪益彬爲司評, 李益輔爲兼弼善, 鄭錫百爲大興郡守, 鄭履儉爲成川府使, 金仁大爲中部都事, 李廷煌爲西部都事, 呂川君增爲司饔提調, 張志恒爲竹山府使, 李敬天爲漢城主簿, 李世德爲禁府都事, 吳彦佐爲尙瑞副直長, 金尙翼爲大司諫, 李永祚爲持平, 李萬華爲繕工奉事, 金奎錫爲漢城庶尹, 柳尙晉爲?谷縣令, 韓光會爲司書, 兪漢蕭爲說書, 李益輔爲副應敎, 鄭運經爲禁府都事, 李聖基爲義盈主簿, 河大源爲司宰主簿, 李栢齡爲濟用主簿, 李世根爲典設別提, 申?爲禁府都事, 金相聖爲禁府都事, 洪應辰爲禁府都事, 李麟祥爲濟用副奉事, 鄭彦忠爲兵曹佐郞, 閔遇洙爲執義, 李象靖爲典籍, 鄭錫儒爲奉常主簿, 李鼎熙爲厚陵參奉, 徐有祐爲萬寧殿別檢, 沈潮爲敬陵參奉, 魚有任爲永禧殿參奉, 沈喆希爲尙衣主簿, 柳善養爲工曹佐郞, 兪彦民爲文學, 李德臣爲長寧殿參奉, 金元泰爲懿陵參奉, 閔覺洙爲敦寧參奉, 趙漢淑爲健元陵參奉, 徐琥爲長陵參奉, 金俊材爲康陵參奉, 鄭惟一爲禮曹正郞, 丁志復爲明陵別檢, 李星慶爲翼陵別檢, 李秀逸爲崇陵別檢, 朴相德爲兼說書, 朴春普爲兵曹參知, 趙榮晳爲繕工假監役, 趙九成爲典獄參奉, 宋堯哲爲典獄參奉, 尹儆爲禮賓參奉, 洪漢輔爲徽陵參奉, 李瑨爲穆陵參奉, 安允履爲泰陵參奉, 李宜錄爲厚陵參奉, 李仁默爲宣陵直長, 李亨遠爲假引儀, 金尙斗爲假引儀, 許溫爲假引儀, 林象鼎爲社稷令, 尙瑞直長李徵之, 濟用直長徐命宅相換, 東部奉事閔百奮, 內資奉事李聖源相換。(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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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9월 28일 (을묘) 원본1021책/탈초본56책 (16/34) 1747년 乾隆(淸/高宗) 12년/ ○ 都目政事, 吏批, 判書徐宗伋進, 參判金尙魯進, 參議洪鳳漢牌不進, 都承旨鄭彦燮進, 以睦宗夏爲禮曹佐郞, 任顯中爲工曹佐郞, 鄭懋先爲儀賓都事, 張碩徵爲泗川縣監, 林象老爲正言, 李世泰爲持平, 金相奭爲?基郡守, 吳彦儒爲副校理, 李奎采爲副修撰, 金尙喆爲輔德, 曺命敎爲左尹, 金廷潤爲工曹參議, 徐志修爲兼東學敎授, 李?爲兼南學敎授, 李益輔爲兼西學敎授, 沈潮爲童蒙敎官, 閔百祥爲兼校書, 校理徐志修爲兼校書, 校理申晦爲兼校書, 校理申大脩爲自如察訪, 趙台命爲濟源察訪, 朴孝參爲靑巖察訪, 洪吉輔爲明陵別檢, 金光礪爲惠陵別檢, 權穎爲崇陵別檢, 李普萬爲恩津縣監, 李周鎭爲知經筵, 金始炯爲知春秋, 李養中爲興德縣監, 朴師伯爲戶曹正郞, 李夏錫爲陽川縣監, 朴新源爲禮賓參奉, 高壽崗爲繕工主簿, 李慶濟·李日成·鄭彦弼典籍單付, 魚史弼奉常主簿單付, 李廷煌爲工曹佐郞, 李廷重爲兵曹佐郞, 李亨俊爲監察, 安慶運爲兵曹參知, 李益焌爲通川郡守, 宋羲相爲明陵參奉, 李祿海爲孝陵參奉, 李埈爲慶基殿參奉, 兪壽基爲敬陵參奉, 金必赫爲假引儀, 朴盛源爲說書, 趙守弘爲尙衣主簿, 李廷漸爲司?僉正, 任瑜爲宗廟令, 趙尙綱[趙尙絅]爲廣興守, 申思迪爲繕工副正, 權達國爲宗廟令, 金器大爲司饔主簿, 鄭觀賓爲南部都事, 尹在重爲思陵令, 金淳慶·任安世爲監察, 洪采輔爲西部都事, 尹東暹爲禁府都事, 張漢柱爲引儀, 李昌運爲祥原郡守, 金元謙爲監察, 林象元爲副修撰, 洪啓鉉爲軍資判官, 金元澤爲敦寧判官, 洪益彬爲司饔主簿, 趙相宅爲濟用主簿, 李敍五爲尙永別提, 金宇澤爲引儀, 徐文奎爲引儀, 張澍爲監察, 鄭羲相爲恩津縣監, 鄭羽良爲典醫監提調, 鄭益河爲歸厚提調, 柳儼爲造紙提調, 金尙魯爲同經筵。(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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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11월 26일 (임자) 원본1023책/탈초본56책 (28/30) 1747년 乾隆(淸/高宗) 12년/ ○ 有政。吏批, 判書徐宗伋進, 參判金尙魯服制, 參議李德重進, 左承旨韓師得進。兵批, 行判書鄭羽良入侍進, 參判申思建病, 參議兪最基, 在外未肅拜, 參知安慶運入直進, 同副承旨權相一進。吏批啓曰, 玉堂闕員,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相避外任, 竝擬, 何如? 傳曰, 允。以鄭益河爲大司憲, 以金宗台爲執義, 以李昌儒·南泰赫爲掌令, 以申晦·李應協爲持平, 以李鎭儀爲正言, 以金相福爲應敎, 以韓光會爲校理, 以朴相德爲兼說書, 以申?爲奉常正, 以南德老爲吏曹佐郞, 以李重澤爲巨濟府使, 以李弘稷爲靈光郡守, 以閔百昌爲洪川縣監, 以權達國爲江原都事, 以金昌祚爲典獄主簿, 兵曹佐郞李翼元仍任事, 承傳。兵批啓曰, 同知中樞府事洪載源·李蓂·張爾碩·柳致相·任錫章, 俱以篤老之人, 病難供職, 忠翊衛將李夏長, 忠壯衛將孫壽億, 近得輪疾, 萬無起動供仕之望云, 今姑改差, 何如? 傳曰, 允。副護軍尹光紹·李光瀷·李衡萬, 副司直曺命敎·李重祚·權抗。(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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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12월 10일 (병인) 원본1024책/탈초본56책 (19/40) 1747년 乾隆(淸/高宗) 12년/ ○ 吏批, 以鄭彦儒爲司諫, 李齊華·鄭權爲掌令, 尹勤爲持平, 洪樂性爲獻納, 李塤爲持平, 李宗迪爲大司成, 沈星鎭爲戶曹參議, 韓光會爲校理, 成範錫·金善行爲副校理, 吳彦儒爲校理, 鄭?爲通津府使, 金孝大爲高陽郡守, 金聖應爲軍器提調, 李厚遠爲厚陵參奉, 鄭?爲禮賓參奉, 金斗秋爲溫陵參奉。密恩君?, 坡春君穆, 茂春守堉, 全春副守?, 敍用事, 承傳, 兼春秋單權達國, 左參贊許?, 兵曹參議金承珪, 復官爵事, 承傳, 譯官洪聖龜, 今加通政, 信行陞資差送事, 承傳, 申晩·韓顯?·柳復明爲同義禁, 徐命彬爲刑曹判書, 鄭履儉·嚴瑀爲承旨。(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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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4년 11월 21일 (을사) 원본1286책/탈초본71책 (16/22) 1768년 乾隆(淸/高宗) 33년/ ○ 親政。吏批, 判書鄭?在外未肅拜, 參判金鍾正進, 參議權?進, 正郞李世孝進, 佐郞趙榮弼進, 行都承旨李潭進。以朴師崙·金文淳爲校理, 以申光緝爲副校理, 以李致中爲修撰, 以李普觀爲副修撰, 以金?爲弼善, 以閔弘烈爲文學, 以安聖彬爲司書, 以沈?之爲兼文學, 以洪龍漢爲兼司書, 以鄭彦忠爲刑曹參判, 以朱炯質爲軍資正, 以鄭東說爲戶曹正郞, 以權達國爲兵曹正郞, 以金宗洙爲直講, 以李濟萬爲宗簿主簿, 以李九成爲奉常主簿, 以李基任·桂德新爲典籍, 以韓光會爲知春秋, 以崔鳴玉爲奉常正, 以李仁默爲吏曹正郞, 以權鍾秀爲禮曹正郞, 以李致彦爲兵曹佐郞, 以崔一奎爲禮曹佐郞, 以鄭尙謙爲校書校理, 以許湜單付東學訓導, 以全佐天單付南學訓導, 以全光瑞單付奉常奉事, 以李翼相單付奉常副奉事。(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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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달국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44년 11월 21일 (을사) 원본1286책/탈초본71책 (21/22) 1768년 乾隆(淸/高宗) 33년/ ○ 戊子十一月二十一日辰時, 上御集慶堂。藥房入診, 親政同爲入侍時, 都提調金陽澤, 提調李昌壽, 副提調李潭, 記事官李翼運, 假注書姜碩龜, 記事官文命龜·柳德申, 醫官方泰輿·許?·李以楷·慶絢·金季良·金光國·鄭允說·李翊臣·許?, 吏曹參判金鍾正, 參議權?, 正郞李世孝, 佐郞趙榮弼, 兵曹參知趙台祥, 同副承旨李漢?, 佐郞趙亨謙, 以次進伏訖。陽澤曰, 夜間聖體, 若何? 上曰, 一樣矣。上進湯劑, 命醫官診候, 季良曰, 如前矣。上曰, 季良所奏, 誠小人矣, 君心若此, 何謂如前乎? 又命診候, ?曰, 如前矣。命書曰, 噫, 君心若此, 而金季良所奏, 活動有勝云, 無異於湖西伯狀聞, 予之活體, 其豈有勝? 金季良從重推考, 其果差勝, 方泰輿之奏脈, 亦何一樣? 亦爲從重推考。出傳敎 上曰, 予諭之矣, 提調書削爵人姓名非矣。尹鳳五亦嘗有言矣, 豈可直書其姓名乎? 昌壽曰, 誠惶恐而不書姓名, 而何爲之乎? 然而臣則無書姓名之事矣。上曰, 今日開心下敎之後, 提調猶不滌意, 從重推考。鍾正曰, 玉堂多?, 今當差出, 而曾經之人, 方在違牌坐罷中, 無以推移備擬, 合有變通之道, 何以爲之? 敢稟。上曰, 不敍之外, 一竝敍用。鍾正曰, 玉堂闕員,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外任竝擬, 何如? 上曰, 依啓, ?擇其人。上曰, 兵批啓辭中, 付軍職, 誤以送書陳達, 該堂從重推考。以上出擧條 命書曰, 其君氣衰, 宜仗此人, 徐命緯·李翊臣之爲國效勞, 予已知矣。許溫之爲父爲子, 予亦知矣。徐命緯旣已下敎, 今無可論, 而李翊臣·許溫, 其令銓曹, 今日政, 特加一資, 相當職除授。命書曰, 都承旨, 以監市御史, 旣已處分, 其代參判閔百興除授, 房依前, 三院副提調例兼, 牌招察任。已上出榻敎 藥房提調持湯劑, 更爲入侍。今日新除授儒臣, 盡爲應講事。已上出榻敎 上, 手書朝來開戶景如何, 萬樹千山一雪色, 御製句, 命摸寫國舅·都尉·編次人·承旨·玉堂·翰注, 印頒。上曰, 蔡濟恭爲編次人乎? 潭曰, 然矣。上曰, 雪變爲雨, 怪矣。潭曰, 今日晴, 昨日雨則無妨矣。命政官, 着意擧行。上曰, 鄭彦忠爲刑參乎? 潭曰, 其人廉白醇謹云矣。命讀望筒。上曰, 權達國誰也? 鍾正曰, 嶺南人矣。上曰, 其亦沈滯矣。上曰, 李世演讀書淳實之人也, 雖四面衝動, 而必不動矣。上曰, 兼史誰也? 潭曰, 文命龜矣。上曰, 以兼史之故, 免於昨日, 可謂數好矣。此人予畜之而爲科者, 今何官乎? 潭曰, 刑佐矣。上曰, 汝不可負予矣。命龜曰, 臣之踵頂毛髮, 莫非國恩, 雖粉磨, 難報萬一, 而聖敎至此, 不勝感泣矣。命書曰, 今日書下御製, 令藝閣摸印, 時原任大臣·國舅·都尉, 編次諸人, 諸承旨, 入侍翰注, 印頒。曾經諸儒臣, 一體印頒。頃者已諭, 前都承旨尹得雨, 一體印頒, 二件內入, 一件入于東宮。出傳敎 該房承旨與詣臺臺臣入侍事。出榻敎 諸臣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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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의 자랑(613) : 권달국(청렴 결백하게 공직 생활을....)(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4-09-23 照會 1008)

  →<예천의 자랑> 제5권(張炳昌 著 2005年) =8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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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58



  주마산(甘泉山岳會&동서山岳會 主管 甘泉面 所在 醴泉의 名山 走馬山 登山路 開設) [記事] :

   감천산악회(회장 김창일)와 동서산악회(회장 정태국)가 주관한 주마산 등산로(해발 508m)가 2009년 6월 29일 오전 9시 30분 감천면 한천사 경내에서 이인호 감천면장을 비롯해 기관 단체장, 산악인,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마산 산신제와 함께 주마산 등산로를 개설했다.

  이날 등산로 개설은 예천군과 감천면의 무궁한 발전과 주마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산신제 행사와 함께 거행됐으며 주마산 정상에 정상 표지석을 설치, 산신제와 함께 행사를 마쳤다.

  주마산 주등산로는 감천면 증거리 한천사에서 시작되며 한천사 입구 종합안내판에서 우측방향을 따라 시작되며 정상까지는 약 1.3km 1시간 30여분 정도가 소요된다.

  묘 1기 지점을 지나 산행 시작 3분 정도 거리에 갈림길이 나오고 정상은 좌측방향 오르막길로 묘 3기 지점에 이르면 정면으로 펼쳐지는 학가산 조망이 일품이다.

  특히, 예천온천과 예천천문우주과학공원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주마산(走馬山)은 말이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달려가는 주마형국(走馬形局)으로 의상 대사가 부석사를 지을 때 기둥이 자꾸 넘어져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 소백산맥 남쪽 주마산의 지세가 달리는 말머리(馬頭) 형국인지라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 말의 눈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웠다는 부석사의 비보사찰인 한천사(寒天寺)가 있으며 한천사를 기점으로 산행을 시작, 왕복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한편, 감천면은 이번 주마산 등산로 개설로 인해 여름 피서철을 맞아 예천온천과 석송령 등 감천면에 산재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감천 돌토마토, 복분자, 오디 등 우수한 농산물 판매에도 주력할 예정이다.

  (김상국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6-29 오후 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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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주막과 회룡포 [記事] : 하동카페이야기/ 예천 회룡포 삼강주막/ 글쓴이: 백월초당/ 2009.06.29 10:00/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막걸리/

  삼강주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아실 주막 부엌 황토 벽의 금.. 숫자도.. 글도 모르던 할머니께서는 외상 장부를 그을음 가득한 부엌의 황토 벽에다 기록하셨다.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몰랐지만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외상을 주면 부엌 흙벽에 칼로 금을 그었어요.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이고,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뜻이에요. 외상값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지요..." 삼강리 정재윤 이장님의 회고이다.

  부엌 흙벽에는 길고 짧은 금이 무수히 남아있다. 가로 긴 금이 없는 것도 많은 걸 보면, 주모의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 삼강 주막과 함께 한 회룡포 ** : 삼강 주막이 다시 문을 열고 길손을 맞이한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띄였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이 내성천, 금천과 만나는 곳이다. 2005년 90세로 사망한 ''''마지막 주모(酒母)'''' 유옥연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꼭 한번 들러 봐야지 했던 것이 결국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주막이 문을 다시 열고 새 주모를 맞이하고서야 때늦은 방문을 하게된 것이다. 유옥연 할머니가 삼강주막을 꾸리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70년 가까이 손님을 받았다. 예전의 허물어져 가던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짚으로 지붕을 이어 올리고 황토로 벽을 단장한 주막은 이전 그림으로 보아오던 삼강주막과는 달랐지만 단촐한 한 채의 초가만으로도 옛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돌아가신 분의 체취가 흠뻑 배인 가마 솥.. 유옥연 할머니께서 날마다 만지고 손보시고 닦으셨던 솥.. 할머니 살아실 제 많은 길손들이 저 무쇠가마 솥 덕분으로 머나먼 여정의 허기를 달랬을 테고, 길손 끊어진 이후 할머니 홀로 외로이 주막을 지키며 질기디 질긴 삶의 부분을 이어 가셨을 그 유물. 유옥연 할머니는 길손 끊어진 주막의 조그만 황토 부엌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장작을 지피고 계셨을지.. 홀로 외롭게 너무나 적적 하셨을 할머니의 살아 생전 말년을 생각하면 그 외로움이 내 가슴 속까지 전해져 오는 듯.. 코끝이 찡해져 옴을 주체할 수가 없다. 부엌 한 켠의 또 다른 유물.. 찬장. 할머니의 손길이 아마도 가장 많이 오갔을 것 같은 부분이다. 손이 많으면 많은 대로 늘 만져야 했을 것이고, 손이 없을 때면 언제 올지 모를 길손을 위해 늘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옛 아낙들이 부엌의 기물들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귀히 여겼다니 아마도 유옥연 할머님도 그리 하지 않으셨으려는지. 마음씨 고운 주모의 손길을 느껴 보고자 낡은 찬장을 한참동안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정체가 무엇일까?? 주막 뒷 켠에 요상한 건축물 한 채가 있다. 길다란 나뭇가지로 촘촘히 엮어 만든 둥근 구조물..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기대 잔뜩하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아하~!..."통시". 화장실이었다. 한 켠에 끈으로 고리를 만든 출입문이 있고 나무판으로 만든 발판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가운데가 사각으로 뻥 뚫린.. 분명한 우리나라 토종 화장실이다. 출입문 옆에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도 사용 중인 현존하는 전설이다. 주막의 뒷 켠 장독대. 주모가 날마다 행주질하였을... 할머니 살아 생전에는 장독도 좀 더 많았을 것이고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오백 년 묵었다는 회나무와 함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삼강 주막.. 방문한 날은 길손이 무척이나 많았다. 유옥연 할머니의 체취를 좀 더 느껴보려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먼저 온 길손들이 주막의 좁은 방을 가득 점령하고 있어 부득이 바깥에서 어두운 방안을 한번 일별하는 것으로 만족.. 바깥에는 찾아드는 겨울 길손들을 위해 비닐로 하우스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비닐 하우스 외에 짚으로 이엉을 얹은 평상이 두 개가 있지만 자리잡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닐 하우스는 아마도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면 없어 질 것 같고 그때쯤이면 주막의 정취가 한층 더할 것 같은.. 삼강 주막은 1,300리 낙동강 물길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주막이다. 영화 엄마의 촬영지로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2개의 평상은 영화 나왔던 소품이다.


  부산에서 예천의 주막까지 아침도 거르고 허위단심 달려간 주막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삼강 주막의 유명한 배추전.. 그리고 두부와 메밀 묵.. 무엇보다 목마른 이들이 맛있게 들이켤 막걸리.. 고소한 배추전과 담백한 두부.. 그리고 메밀묵은 예전에도 먹어 본적 없고 이후에도 같은 맛을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들 듯.. 아쉽게도 운전을 해야 하는 관계로 막걸리만은 맛보지 못했고 옆자리의 길손들의 입을 빌리자면... "끝내준단다.."^^* 막걸리 한 주전자(1되) 5000원, 배추전 3000원, 두부 2000원, 묵 2000원. 1만2000원짜리 "세트"로 시키면 막걸리부터 배추전, 두부, 묵, 김치가 한꺼번에 나온다. 막걸리는 새롭게 주모가 되신 권태순 할머니께서 직접 빚으신다고.. 물론 두부와 메밀묵도 마찬가지.. 삼강나루터에서 올려다 본 삼강주막의 풍경. 주막은 강둑에 가리워 보이지 않지만 주막과 함께 한 고목은 그 자리에 주막이 있음을 알려준다. 나루를 찾는 길손들의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었으리라.. 삼강 나루터.. 굽이 쳐 흐르는 낙동강을 외로이 지키는 이정표 하나.. 저물어 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낙동강과 주막의 초가 지붕, 그리고 삼강나루터 표지.. 이 모든 것들이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려니.. 물새 소리 한 자락 꿰뚫고 지나간 그 자리.. 오고가는 이 없는 빈 나루터에 홀로 남은 조각배... 예전 길손들의 발이 되어 주던 그 나룻배는 아닐지라도 홀로되어 찾는 이 없이 버려진 저 조각배의 외로움이 말년 홀로 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할머니는 세상에 계시지 아니 하시지만은 하늘 나라에서 다시금 길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삼강주막을 내려다보시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 한 자락 지으시고 계시리라.. 서녁으로 기울어간 초봄의 짧은 해를 바라보며 먼 길 달려 회포 푼 삼강주막을 이별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절경 회룡포로 발길을 옮겼다. 아직은 갈색으로 겨울옷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삼강주막.. 흐르는 강물소리 힘차게 울려 퍼지고 푸르름과 화사한 꽃들이 지나는 길손들의 피로를 덜어 줄 때쯤 다시 한번 삼강주막과 나루터를 찾아보리라..

  회룡대(回龍臺)의 위치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삼강 주막을 떠나서 약 15분간 달려간 회룡대.. 회룡포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와 향석리 일대에 자리한 마을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아돌며 흘러 나가는 물돌이동으로 하천의 물은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로 인해 "육지 속의 섬마을"로 불리우는데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회룡대는 비룡산에 자리하고 있고 회룡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이 백여 미터의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약간은 가파른 숨결을 느낄 때쯤 회룡대에 이르른다. 가파른 절벽 위에 매달린 듯 세워져 있는 정자 하나..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회룡포와 낙동강의 굽이 쳐 휘돌아간 풍경,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백사장의 멋진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천혜의 절경. 회룡대에서 내려다보는 회룡포는 신비.. 그 자체였다. 이곳은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 지면서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가을동화의 초기 장면을 찍은 곳으로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2005년에는 명승 16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명 "뿅뿅다리".. 다른 이름으로는 "아르방 다리" 라고도 불리운다. 다리 위를 지날 때 걸음을 내딪을 때마다 "뿅뿅"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재미있는 이름이다. 예전 나 어릴 때 시골 외가에 갔다가 도랑 위에 걸쳐진 저 구멍 숭숭 뚫린 임시 다리가 너무나 무서워 건너지 못하고 엄마께 겁 많다고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으니 함께 동행한 이가 묻는다... 왜 실없이 혼자 웃느냐고..^^;;

  아직 이른 봄의 고즈늑한 오후.. 먼 길 달려온 나그네의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게 하는 아담한 원두막.. 회룡포를 감아도는 강변에는 이런 원두막이 몇 개씩 있다. 좋은 날 평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기도 하고 골짜기를 지나는 바람의 속삭임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일까? 회룡포의 아름다운 정취는 회룡대에서의 바라봄이 일품이지만 물돌이동의 조용한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회룡포를 직접 찾음이 옳으리니.. 아홉 가구가 단촐하게 모여사는 회룡포 마을은 조용하고 평안하다.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마을의 내부는 별로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강둑을 따라 돌아가는 강둑 길을 걷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 다 던져 버리고 자연과의 호흡으로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너무 좋았었다. 저녁 노을에 빛나는 회룡포의 강물 위로 그림처럼 드리워진 아르방다리.. 또 하나의 추억을 흘러가는 강물에 빛나는 저녁노을로 가슴에 담고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좋은 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을 다짐하면서...(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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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방문(그곳에 가고 싶다/ 醴泉郡篇) [記事] :

  소백준령의 높은 줄기가 감싸고 낙동강, 내성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으로 은근과 끈기가 스며있는 충효의 고장 예천. 단술 ‘예’(醴), 샘 ‘천’(泉)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맑고 깨끗한 물로 유명하다. 태극문양으로 휘감아 도는 모습이 승천하는 용을 연상케 해 국가명승지로 지정된 육지 속의 섬 ‘회룡포’.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 이 세 강이 만난다 해서 삼강이라 했던 낙동강 1천300리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삼강주막’. 예천은 자연과 전통이 조화롭게 보존된 고장이다. 한 쌍의 용이 고려 태조의 방문을 인도했다는 법보대찰 ‘용문사’에는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와 목불좌상, 목각탱 등이 보관되어 있는 대장전이 있고, 소백산맥의 심신유곡에 위치한 천년고찰 ‘명봉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들은 1천300년 예천의 신비를 더해준다.



  △예천 곤충생태체험관 :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산업곤충연구소이다. 곤충을 산업에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설립된 이곳에는 살아있는 곤충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곤충생태체험관이 있다. 연면적 2천374㎡의 4층 건물에는 영상관, 전시실, 체험실, 연구실이 있고, 야외에는 대형 유리온실과 곤충정원, 곤충생태 탐방로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기다리고 있다. 1층 3D영상관에서는 체험관의 인기 캐릭터인 코니와 페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고, 2층 곤충역사관에서는 곤충의 진화과정과 곤충의 천적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곤충이 살아가는 다양한 환경을 알 수 있는 곤충생태관에서 산, 숲, 들, 물속, 땅속 등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곤충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체험학습실에서는 나무곤충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이 기다리고 있고, 수많은 종류의 화초와 동식물들이 반갑다고 손짓하는 대형 유리온실 곤충정원으로 나서면 대형 호박벌 분수와 밀원식물 꽃밭, 어린이놀이터가 아이들을 반긴다. 데크형 상설학습장에서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예천곤충생태체험관은 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체험 및 관람비는 어른 2천 원, 어린이 1천 원이다.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별을 만날 수 있는 곳, 예천별천문대와 예천우주환경체험관이 있는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별들의 고향이다. 이곳은 주변도시로 인한 공해가 적어 5~6등급까지의 별도 관측할 수 있는 천혜의 관측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주선을 닮은 건물외관에서부터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하는데 천문대뿐 아니라 천문학사 소공원과 우주환경체험관 등 주변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국내 최대의 천문ㆍ우주테마파크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지름 20인치의 반사 망원경과 6인치의 굴절 망원경이 하늘을 향해있는 주관측실, 원형천정 돔이 회전하며 컴퓨터에 입력된 별의 위치를 찾아 멈추면 바로 눈앞에서 눈부신 별세계가 펼쳐진다. 낮시간 대에도 하얀빛을 선명하게 뿌리는 별들을 만날 수 있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보조 관측실에서는 태양관측이 가능하다. 폭발적인 태양의 활동과 흑점을 찾아낼 때면 거대한 우주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고 디지털 천체투영기 겸 도양상투영기가 설치된 우주극장, 천체투영실, 천정 돔 스크린을 통해 별자리 및 우주관련 영화도 관람할 수 있다. 실제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이 전시된 전시실은 물론 200여 명의 인원이 숙박 가능한 관측자 숙소 등 천문과학문화센터는 주ㆍ야간 프로그램, 1박 2일 프로그램, 천문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관람만족도가 높은데 그 만큼 예약은 필수다. 국내 유일의 일반인을 위한 우주환경 체험시설인 ‘예천우주환경체험관(예천스페이스타워)은 미국과 유럽 2개국,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일본에만 있던 일반인을 위한 지상우주훈련시설을 벤치마킹해 국내최초로 설치된 곳으로 체험기기 또한 더욱 발전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체험관은 지상 70m의 전망타워와 지상 4층의 건물내부에 ‘가변 중력기’, ‘우주자세 제어체험기’, ‘달중력 체험기’, ‘4D영상관’과 70m 상공에서 체험자가 직접 조정하며 비행하는 ‘우주 유영체험기’를 비롯한 다양한 우주환경체험시설이 들어서 있다.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는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인근에 물 좋기로 소문난 예천온천, 세금내는 부자소나무 석송령이 있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 : 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의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인 국궁이 있다. 예천에는 국궁 제작기능 보유자의 60%가 살고 있다. 양궁ㆍ국궁의 맥과 얼을 지켜온 예천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궁장이 있다.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한 김진호 선수를 기념해 건립한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축구장 2개 크기로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연간 각종 국내외 대회가 열리는 이 곳에서는 대회가 없을 때 예약을 하면 누구든, 언제든 선수 출신의 전문강사로부터 양궁을 배울 수 있다. 화살을 걸고, 당기고, 숨을 고르고, 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이 금빛 과녁에 꽂힐 때면 활을 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 환호가 터지고, 스트레스는 시원하게 날아간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멋진 국제양궁장에서 가족이나 연인 또는 단체에서 예약하고 와서 체험한다면 멋진 추억꺼리가 될 것이다. 체험비용은 무료이다.


  △금당실 전통마을 : 금당실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던 곳으로, 정감록 십승지 가운데 하나로 용문면 금당, 현재의 지명으로 금곡리이다. 지리학의 대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백산과 소백산은 난세에 피난하기 으뜸인 곳이라고 하였고, 풍수지리학자였던 남사고는 금당과 맛질을 합치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하였다.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 이곳에는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는데, 금곡서원은 함양 박씨 3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함양 박씨 문중 기금으로 1984년 건립했다.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은 함양 박씨 입향조인 박종린을 모신 사당으로 1656년 건립했다.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은 조선 숙종 때 도승지를 지낸 갈빈 김빈이 살던 집으로 김빈의 후손들은 가세가 줄어들자 반송재를 타성에 넘겨 몇 차례나 소유자가 바뀐 뒤 구한말 양주대감 이유인이 매입했으며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은 원주변씨 검추공파 입향조인 사괴당 변응녕이 살던 터로 18세기 무렵에 세운 주택이다. 또한 구한말 세도가이며 법무대신을 지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대저택 흔적은 당시의 영화와 세월의 무상함을 엿볼 수 있다. 용문중학교 동편을 중심으로 500여m 가량 뻗어 있는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은 100여년 된 소나무로 시원한 그늘 밑에는 체육시설과 주민들의 휴식처가 있으며 겨울에는 방풍림 역할을 한다. 또한 면사무소 앞 300여 년된 성황당터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면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금당실마을의 문화유적을 정비ㆍ복원하고 기반시설을 구축해 인근의 용문사, 초간정, 예천권씨종택, 초정서예연구원 등 문화유적과 명승지를 연계한 관광벨트로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영어완전정복’과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를 촬영했던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 2006년 ‘그 해 여름’의 배경이 된 용문면 선리마을은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등 옛 명성을 든든히 이어가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KBS 수목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였던 병암정도 용문면 성현리에 위치해 있다.

  △회룡포 :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350도 휘감아 돌아간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물도리 마을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2009년도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옛 추억을 느낄 수 있는 뿅뽕다리를 건너면 2000년도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 물장구 치며 놀던 내성천과 은빛 백사장이 펼쳐져 있어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회룡포마을의 제방둑길에는 각종 유실수가 자라고 있어 내성천의 맑은 물과 은빛 백사장이 함께 어우려져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도 그만이다. 또한 마을에서는 황토민박체험과 고구마와 감자 캐는 신나는 농촌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비룡산에는 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인 장안사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사찰 뒷산에는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회룡포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깎아지르는 듯한 이 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된 토석혼축으로 된 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와 군창지가 남아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상당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했다고 한다. 그 당시 얼마나 격전지였던지 지금도 피끝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인 성저마을에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전략 요새인 이 성을 점령하려고 남하하다 아차성에서 전사했다고 하나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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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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