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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47:권수붕博士(附예천방문462)
예천의 자랑(1947) : 용문면 제곡리 출신 권수붕 성균관박사(附 예천방문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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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權壽朋) : 1634(인조 12)-?, 용문면 제곡리 작은 맛질(小渚谷) 출신, 자는 미서(眉瑞), 본관은 안동, 현감 심언(縣監審言)의 현손, 생원 상달(尙達)의 손자, 학생(學生) 향의 양자, 학생 유의 아들, 수구(壽龜)의 동생, 수기(壽祺)의 형, 사계(沙溪)의 제자이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60년(현종 1) 가을에 증광 진사시에 3등 42위로 합격, 1679년(숙종 5) 식년 문과에 을과 5위로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에 이르렀고, 풍채가 준정(峻整)하고 태도가 고요하였는데, 불행히도 서울에서 천연두(天然痘)로 수를 누리지 못하여 세인이 아까워했다.(司馬榜目, 文科榜目, 醴泉郡誌 1939,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6 1841, 朝鮮 輿勝覽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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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원년 2월 15일 (계묘) 원본245책/탈초본12책 (9/14) 1675년 康熙(淸/聖祖) 14년/ 居首한 權壽朋에게 二分을 주고 權宇亨 등에게는 각각 一分을 주라는 비망기/ ○ 備忘記, 居首進士權壽朋給二分, 生員權宇亨, 幼學具仁熙, 生員柳世賓, 各給一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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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2일 (신미) 원본286책/탈초본15책 (3/26)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權壽朋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權壽朋爲假注書。(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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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2일 (신미) 원본286책/탈초본15책 (5/26)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權壽朋을 改差하고 다른 假注書를 差出할 것을 청하는 李世翊의 계/ ○ 李世翊啓曰, 假注書權壽朋, 卽刻入來, 而方患黃疸, 症勢危篤, 出入之際, 使人扶腋, 觀其病狀, 萬無察任之路。權壽朋改差, 他假注書差出, 使之察任,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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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5일 (갑술) 원본286책/탈초본15책 (11/23)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李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判書李端夏進, 參判李敏敍呈辭受由, 參議任相元病, 左副承旨李東溟進。以李翊爲大司諫, 洪萬容爲禮曹參判, 黃儁耉爲禮曹參議, 安汝器爲禮曹佐郞, 鄭翊周爲繕工奉事, 尹?爲氷庫別檢, 李益泰爲奉常副正, 沈枰爲司錄, 李?爲長興奉事, 趙棋錫爲內贍奉事, 朴載時爲成均博士, 權壽朋爲成均兼學錄, 李以泰爲司饔主簿, 宋文炳爲敬陵參奉, 趙性乾爲璿源殿參奉。(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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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619) : 권수붕(애석하게 여겼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4-10-05 照會 1021)
→<예천의 자랑> 제5권(張炳昌 著 2005年) =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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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62
학가산 [記事] : 예천 보문산→당재→학가산→안동 백현→천등산→봉정사 산행(''''09.7.4,토))/ 사진산행기 2009.07.05 19:07 청계산 /
1. 산행일시 : 2009.7.4(토) 09:20 → 19:20 (총 10:00) /
2. 산행코스 : 예천군 수계2리/보문사 입구(09:20)→민가→삼거리 못미친 지점에서 우측능선으로→큰무덤→헬기장(11:03)→보문산(11:16,△643.1m)→#1폐헬기장(11:28)→#2헬기장(11:39)→#3폐헬기장(11:48,약630m지점)→산성리마을 쉼터/식사 후 출발(12:45)→당재(13:15)→상사바위 갈림길(13:26,무덤)→#1남영사지 갈림길(13:26)→#2남영사지갈림길(13:48)→학가산(12:54,▲870m)→능인굴/애련암갈림길→국사봉(14:38)→삼모봉에서 우측등로로(14:50)→신선바위갈림길(15:01)→콘크리트도로→한국통신학가산중계석 표지석/삼거리(15:16)→삼거리에서 좌측으로→단가대(정자/학가산문화연구소)→back해 헬기장으로→우측 능선 진입위해 잠시 사면→능선길 희미→콘코리트도로→도로변주차장(1,2)→메밀단지갈림길→좌측 한우목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능선으로→논→잡목지대→능선→사거리에서 우측으로→도로로 내려섬→혜미네농장(17:53)→백현마을 앞에서 휴식(17:57)→실개천건너 능선으로 오름→능선삼거리(넓은 공터) 좌측으로→천등산(18:33,△575.5m)→천등굴/봉정사 방향으로 하산→개목사갈림길 우측으로(18:45)→봉정사관람(18:57)→버스주차장(19:20,막차)→안동시내(종점 시외버스터미널) /
♠ 갈 때: 동서울터미널(06:40)→예천터미널/택시→예천IC직전 들머리로 이동(15,000원)/ 나올 때: 안동시외버스터미널(20:30)→동서울터미널 / 3. 날씨/ 준비물 : 흐리고 더움/ 지도(1/50,000), 나침반, 디카, 식수 2리터, 햇반(1), 런치팩(2봉), 우유(200㎖x2), 스틱, 비상구급약, 랜턴, 비옷상.하, 배낭커버, 여벌옷, 비닐봉투 등/
4. 산행자: 자룡님,막걸리님,김세권님,강승철님,블랙아트님,용주님,청계산(7명) /
5. 산행결과 ▲. 예천IC 직전 수계리/보문사 입구에서 블랙아트님의 단체기념사진 촬영 후 민가를 지나 삼거리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우측사면으로 올라 능선으로 조금 진행하다 안부로 내려서니 임도. 바로 임도롤 벗어나 좌측 사면을 올라 능선으로 진행.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하고 풀들이 한껏 물을 머금고 있고, 산 정상부엔 안개가 낌→잡초가 무성한 큰 무덤(1기)→헬기장에 도착, 잠시 휴식→보문산(헬기장/산불감시초소)→마지막 헬기장(#3)에서 길 없는 우측능선으로 내려섬→산성리마을 쉼터로 가 점심식사. 쉼터 바로 윗집에서 식수 보충. 정성들여 식수를 담아주신 분께 감사드림. /
▲. 넓은 농로(콘크리트)→논길→콘크리트도로에 올라 당재 마을로→넓은 공터에 설치된 수도에서 식수(차고 풍부)보충→제실(祭室) 우측 콘크리트 도로 따라→능선길→안부에 배낭을 두고 통신시설 다음지점에 있는 학가산 다녀와 로프가 설치된 바위사면을 오르니 조망이 확 트이고 등로가 좋음→능인굴(지저분함), 다시 철계단을 올라 국사봉에 오르니 거침없는 조망에 가슴이 확 트임^^* /
▲. 삼모봉 우측으로 내려서니 한국통신을 우회하는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음→상사바위 갈림길에서 난가대/학서대로 가는 콘크리트도로 따라 진행→삼거리(한국통신학가산중계소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올라 단가대(큰바위)에서 능선길을 확인코자 했으나 학가산문화연구소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한껏 자란 잡풀로 찾지 못하고 삼거리로 back→헬기장을 지나 길 없는 우측사면 조금진행. 희미한 등로따라 내려서니 콘크리트 도로→도로 가장자리 주차장(1,2)→메밀단지(좌측으로 내려서는 길)→도로 좌측아래 한우농가가 있는 지점에서 휴식 후 넓은 농로로 잠시 오르니→논→벌목지대→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사거리에서 우측 백현마을 방향 임도(잡풀무성)따라 내려서니 중간에서 끊어지고 잡목지대와 간간이 보였다 말았다 하는 등로 따라 도로로 내려서서 조금 진행하니 포장도로가 끝남. /
▲.비포장도로→혜미네농장(그림 같은 주택)을 디카에 담고 다리공사 현장을 지나 좌측 백현마을 느티나무를 조금지나 콘크리트 도로에서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실개천을 건너 능선 사면을 따라 오름→넓은 공터에 도착. 좌측 등로로 진행해 일행이 기다리는 천등산에 도착. 봉정사에서 출발하는 막차(19:20)를 타기 위해 약간의 속도를 내다 우측에 천등굴. 궁금해 굴내부를 재빨리 디카에 담고 다시 일행을 뒤따름→개목사 갈림길 우측으로→도로로 내려서니 15분 정도 시간이 남아 봉정사 타종(19:00), 대웅전, 삼층석탑을 구경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 화장실 뒤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출발 직전 막차를 타고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몇 분전에 버스가 출발해 20:30분(무정차) 승차권을 구입하고, 터미널 바로 옆 순대국밥집에서 재빨리 민생고를 해결하고 버스에 올라 잠을 청함.(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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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방문(中國의 道學, 儒學과 韓國의 이학, 홍학 照明 : 3日 4日 總高政疆土會 安東 醴泉 聞慶 探訪) [記事]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총교우회 주관/ 동 강토회 주최/ 경상북도 안동 예천 문경지역 문화탐방 연수단 70명, 민족문화의 발상지인 경북중점지역 순례를 통한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 목적이 있다.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총교우회(총회장 하정효)는 강토회(疆土會. 회장 박용일)를 결성하고 경상북도 안동 문경 예천지역 탐방 연수회를 통해 많은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문화재에 있음을 자각했다./
1. 동서문화의 충돌은 지구도처에서 발생하나 평화로운 세계문화는 한반도에서 태동한다. 대륙과 해양의 통로에서 세계적인 평화의 역사를 지켜온 우리민족은 오대양 육대주가 만나는 한반도에서 미래세계의 새로운 인류문화를 창조한다./
2. 한반도 어디를 가도 선조들이 살아왔던 고장마다 각국과 인류 및 지구촌에 통하지 않는 문화가 없다. 수많은 국호를 갖고서 하나의 조국을 지켜온 이 겨레는 세계적인 문화 문리 문명 그리고 문화사를 창조, 세계적인 특수성과 보편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3. 오늘 조상이 물려주신 조국강산을 민족의 가슴에 새기고자 신라 고려 근세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북지역을 탐방하면서 이 나라의 평화문화가 세계평화의 새 시대를 열게 하고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다음 몇 가지를 제언한다./
제언1. 중앙정부는 무형문화재와 유형문화재의 발굴 보존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대하라./
제언2. 지방 지정문화재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상향 승격시키는데 인색하지 말라./
제언3. 지방 인간문화재들의 안정된 전승활동을 위한 재정을 확대하고 이를 중앙정부가 지원하라./
제언4. 지방 문화행사의 전국등급제를 폐지하고, 지방정부가 인정하는 향토문화제는 국가차원에서 이를 지정하여 보존 육성 전승하라...
(박경노 記者 大韓放送 200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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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記事] : 이보세상 카페/ 회룡포 기행/ 글쓴이: 이보/ 2006.11.13 13:56/ http:// ♡ 회룡포(回龍浦) 기행(紀行) ♡ /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대은리 회룡포(回龍浦)... //
그것은 분명 한 마리 푸른 용(龍)의 승천(昇天)을 향한 힘찬 용틀임이었습니다.../
굽이굽이 내성천(乃城川) 흘러흘러 반만년(半萬年)을 두고 깎아내린 작품이라 해도 그렇지 저렇게도 아름다운 곡선(曲線)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단 말이던가!/
회룡대(回龍臺)에서 내려다 본 ‘회룡포 마을’의 풍경은 참으로 감동(感動) 그 자체였습니다...
춘 사월의 둘쨋날 신 새벽 중부-영동-중앙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며 다다른 나의 제2의 고향(故鄕)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醴泉) 땅... /
오늘은 얘기로만 들어오던‘회룡포’를 찾았습니다... /
예천(醴泉) 땅은, 내성천(乃城川) 그 오랜 흐름을 젖줄로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자랑하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눈에 뛰는 변화 없이 양반(兩班)의 법도(法度)를 묵수(墨守)하며 그렇게 고색창연(古色蒼然)의 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
예천읍(醴泉邑)에서 유천면(柳川面)과 개포면(開浦面) 일대에 걸쳐 넓게 자리 잡은‘예천공항’을 지나면서 ‘회룡포’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타나면..., 용궁면(龍宮面)에 들어선 게지요...
한대 차도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 시냇가의 금모래가 손에 잡힐 듯 - 큰물이라도 지면 금새 잠겨 버릴 것만 같은 - 좁고도 낮은 성저교(城底橋) 건너, 농로(農路)길을 한참을 따라 달리 다가보면 이번엔 가파른 경사길이 또 일어설 듯 막아섭니다...
기어를 일단에 고정하고 심한 굉음(轟音) 토하며 팔부능선 쯤에 이르렀을까? 주차장이 있어요. 더 이상은 차량이 올라갈 수가 없군요... 주차장 위로 ‘장안사’라는 절이 있어요...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 :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운명조사께서 창건(創建)한 천년고찰(千年古刹)이지요... 정계(淨界)에 들었음을 알리는 향기로운 목탁소리가 요적(寥寂)한 산중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삼계(三界)는 고해(苦海)요, 사생(四生)은 화택(火宅)이라‘...로 시작하여, 신라통일 이후 줄곧 국운이 융성하던 시기에 전국에 3개의 ‘장안사’를 창건했는데, 북쪽에 ‘금강산(金剛山) 장안사(長安寺)’ 남쪽에 ‘양산(梁山) 장안사(長安寺)’ 가운데가 바로 이곳의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라고 안내판이 절의 이력을 잘 말해주고 있네요...
침목(枕木)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계단(階段)을 종종걸음으로 올랐어요... 하늘엔 먹장구름 떠가고 땅엔 ‘는개비’ ‘보슬비’ 오락가락, 계단길 양쪽으로 진달래 흐드러져 봄 분위기 한껏 부풀리고요...
휴일을 기해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어요... 서둘러 올랐음인지 숨이 차네요.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청솔가지 사이로 아득히 푸르른 물줄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고 돌아 다시 물줄기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나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살아 꿈틀대는 한 마리 용(龍)의 형국(形局)이었습니다...
어찌나 물색이 맑은지 오랜 세월 더딘 물살에 실려 온 금모래가 은행잎 모양으로 차례로 포개져 쌓인 것이 아득히 먼 곳에서도 선명(鮮明)하게 확인(確認)이 되고 있었어요...
저 물 속엔 얼마나 많은 은어(銀魚)들이 평화(平和)를 오물거리며 무자맥질을 하고 있을까! 몇몇 가구(家口) 옹기종기 의초롭게 추녀를 맞대고 살아가는 - 옛 신선(神仙)들이나 살았음직한 - 동화(童話)속에나 그려질 만큼 소곤소곤 옛날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마을, 육지 속의 섬‘회룡포’ ...,
그래서 인기드라마 ‘가을동화’도, 드라마시티 ‘홍시’도 이곳에서 찍었다지요... 마을 앞으로 모래사장이 넓은 부채꼴 모양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위로 쇠기둥을 박고 구멍 뚫린 철판을 매달아 다리를 놓았어요... 일명 ‘뿅뿅다리’... 내를 건너 마을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다리지요... 그리고 마을 뒤로 솔숲이 군데군데 그림처럼 형성되어 있고요...
금세 학(鶴)떼라도 날아들 듯 갑자기 솔숲에 선기(仙氣)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솔숲 곁으로 유일하게 차량을 이용하여 읍내(邑內)로 나갈 수 있는 포장 길 하나 있었군요...
‘회룡대’라고 쓰여진 편액(扁額)을 우러르며 ‘회룡포전망대’엘 오르니, 고려가 자랑하는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의 대문장가(大文章家)이신 ‘백운 이규보’선생께서 지으신 ‘장안사에서’라는 시액(詩額)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생의 대표저서인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글이라 적혀있네요... 구구절절 명구(名句)들이로군요...
가을엔 회룡포 동그란 물줄기 따라 안개가 자욱히 끼어 정말 멋있다는데..., 가을에 왔으면 안개위도 한번 걸어보고 그렇게 신선(神仙)도 되어 보았을 일을...,
두 눈 가득 아름다운 한 폭 ‘회룡포’의 장관(壯觀)을 한 개의 카메라에 다 담아가긴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애오라지 내 작은 두 눈과 겨우 몇 컷의 사진(寫眞)과 하나의 가슴으로 담아가서는 어디에다가 훌륭히 재현(再現)해 놓고 자랑할꼬?
아쉬운 발걸음일지라도 돌이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갈 길은 멀고... 수십 번 굽어보고 또 굽어보고 수백 번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두 발짝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접히지 않는 아쉬운 마음일랑 얼른 승용차에 싣고서 예천읍내를 향하여 달리는데, 어디선가 용(龍)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뒤를 돌아 다 보았습니다...
푸른 용(龍) 한 마리가 막 비룡산(飛龍山) 정상(頂上)에서 용틀임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회룡포(廻龍浦) 용궁(龍宮)에서 막 뭍으로 나와 비룡산 정상에서 그렇게 승천(昇天)에의 용틀임을 시작하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
내성천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서 발원하여 봉화, 영주, 안동, 예천 등지를 지나 용궁면에서 낙동강(洛東江) 상류로 흘러드는 내.
(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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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權壽朋) : 1634(인조 12)-?, 용문면 제곡리 작은 맛질(小渚谷) 출신, 자는 미서(眉瑞), 본관은 안동, 현감 심언(縣監審言)의 현손, 생원 상달(尙達)의 손자, 학생(學生) 향의 양자, 학생 유의 아들, 수구(壽龜)의 동생, 수기(壽祺)의 형, 사계(沙溪)의 제자이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60년(현종 1) 가을에 증광 진사시에 3등 42위로 합격, 1679년(숙종 5) 식년 문과에 을과 5위로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에 이르렀고, 풍채가 준정(峻整)하고 태도가 고요하였는데, 불행히도 서울에서 천연두(天然痘)로 수를 누리지 못하여 세인이 아까워했다.(司馬榜目, 文科榜目, 醴泉郡誌 1939,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6 1841, 朝鮮 輿勝覽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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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원년 2월 15일 (계묘) 원본245책/탈초본12책 (9/14) 1675년 康熙(淸/聖祖) 14년/ 居首한 權壽朋에게 二分을 주고 權宇亨 등에게는 각각 一分을 주라는 비망기/ ○ 備忘記, 居首進士權壽朋給二分, 生員權宇亨, 幼學具仁熙, 生員柳世賓, 各給一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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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2일 (신미) 원본286책/탈초본15책 (3/26)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權壽朋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權壽朋爲假注書。(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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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2일 (신미) 원본286책/탈초본15책 (5/26)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權壽朋을 改差하고 다른 假注書를 差出할 것을 청하는 李世翊의 계/ ○ 李世翊啓曰, 假注書權壽朋, 卽刻入來, 而方患黃疸, 症勢危篤, 出入之際, 使人扶腋, 觀其病狀, 萬無察任之路。權壽朋改差, 他假注書差出, 使之察任,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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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7년 11월 25일 (갑술) 원본286책/탈초본15책 (11/23) 1681년 康熙(淸/聖祖) 20년/ 李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判書李端夏進, 參判李敏敍呈辭受由, 參議任相元病, 左副承旨李東溟進。以李翊爲大司諫, 洪萬容爲禮曹參判, 黃儁耉爲禮曹參議, 安汝器爲禮曹佐郞, 鄭翊周爲繕工奉事, 尹?爲氷庫別檢, 李益泰爲奉常副正, 沈枰爲司錄, 李?爲長興奉事, 趙棋錫爲內贍奉事, 朴載時爲成均博士, 權壽朋爲成均兼學錄, 李以泰爲司饔主簿, 宋文炳爲敬陵參奉, 趙性乾爲璿源殿參奉。(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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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619) : 권수붕(애석하게 여겼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4-10-05 照會 1021)
→<예천의 자랑> 제5권(張炳昌 著 2005年) =8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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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62
학가산 [記事] : 예천 보문산→당재→학가산→안동 백현→천등산→봉정사 산행(''''09.7.4,토))/ 사진산행기 2009.07.05 19:07 청계산 /
1. 산행일시 : 2009.7.4(토) 09:20 → 19:20 (총 10:00) /
2. 산행코스 : 예천군 수계2리/보문사 입구(09:20)→민가→삼거리 못미친 지점에서 우측능선으로→큰무덤→헬기장(11:03)→보문산(11:16,△643.1m)→#1폐헬기장(11:28)→#2헬기장(11:39)→#3폐헬기장(11:48,약630m지점)→산성리마을 쉼터/식사 후 출발(12:45)→당재(13:15)→상사바위 갈림길(13:26,무덤)→#1남영사지 갈림길(13:26)→#2남영사지갈림길(13:48)→학가산(12:54,▲870m)→능인굴/애련암갈림길→국사봉(14:38)→삼모봉에서 우측등로로(14:50)→신선바위갈림길(15:01)→콘크리트도로→한국통신학가산중계석 표지석/삼거리(15:16)→삼거리에서 좌측으로→단가대(정자/학가산문화연구소)→back해 헬기장으로→우측 능선 진입위해 잠시 사면→능선길 희미→콘코리트도로→도로변주차장(1,2)→메밀단지갈림길→좌측 한우목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능선으로→논→잡목지대→능선→사거리에서 우측으로→도로로 내려섬→혜미네농장(17:53)→백현마을 앞에서 휴식(17:57)→실개천건너 능선으로 오름→능선삼거리(넓은 공터) 좌측으로→천등산(18:33,△575.5m)→천등굴/봉정사 방향으로 하산→개목사갈림길 우측으로(18:45)→봉정사관람(18:57)→버스주차장(19:20,막차)→안동시내(종점 시외버스터미널) /
♠ 갈 때: 동서울터미널(06:40)→예천터미널/택시→예천IC직전 들머리로 이동(15,000원)/ 나올 때: 안동시외버스터미널(20:30)→동서울터미널 / 3. 날씨/ 준비물 : 흐리고 더움/ 지도(1/50,000), 나침반, 디카, 식수 2리터, 햇반(1), 런치팩(2봉), 우유(200㎖x2), 스틱, 비상구급약, 랜턴, 비옷상.하, 배낭커버, 여벌옷, 비닐봉투 등/
4. 산행자: 자룡님,막걸리님,김세권님,강승철님,블랙아트님,용주님,청계산(7명) /
5. 산행결과 ▲. 예천IC 직전 수계리/보문사 입구에서 블랙아트님의 단체기념사진 촬영 후 민가를 지나 삼거리 조금 못미친 지점에서 우측사면으로 올라 능선으로 조금 진행하다 안부로 내려서니 임도. 바로 임도롤 벗어나 좌측 사면을 올라 능선으로 진행. 새벽에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하고 풀들이 한껏 물을 머금고 있고, 산 정상부엔 안개가 낌→잡초가 무성한 큰 무덤(1기)→헬기장에 도착, 잠시 휴식→보문산(헬기장/산불감시초소)→마지막 헬기장(#3)에서 길 없는 우측능선으로 내려섬→산성리마을 쉼터로 가 점심식사. 쉼터 바로 윗집에서 식수 보충. 정성들여 식수를 담아주신 분께 감사드림. /
▲. 넓은 농로(콘크리트)→논길→콘크리트도로에 올라 당재 마을로→넓은 공터에 설치된 수도에서 식수(차고 풍부)보충→제실(祭室) 우측 콘크리트 도로 따라→능선길→안부에 배낭을 두고 통신시설 다음지점에 있는 학가산 다녀와 로프가 설치된 바위사면을 오르니 조망이 확 트이고 등로가 좋음→능인굴(지저분함), 다시 철계단을 올라 국사봉에 오르니 거침없는 조망에 가슴이 확 트임^^* /
▲. 삼모봉 우측으로 내려서니 한국통신을 우회하는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음→상사바위 갈림길에서 난가대/학서대로 가는 콘크리트도로 따라 진행→삼거리(한국통신학가산중계소 표지석)에서 좌측으로 올라 단가대(큰바위)에서 능선길을 확인코자 했으나 학가산문화연구소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한껏 자란 잡풀로 찾지 못하고 삼거리로 back→헬기장을 지나 길 없는 우측사면 조금진행. 희미한 등로따라 내려서니 콘크리트 도로→도로 가장자리 주차장(1,2)→메밀단지(좌측으로 내려서는 길)→도로 좌측아래 한우농가가 있는 지점에서 휴식 후 넓은 농로로 잠시 오르니→논→벌목지대→능선을 따라 진행하다 사거리에서 우측 백현마을 방향 임도(잡풀무성)따라 내려서니 중간에서 끊어지고 잡목지대와 간간이 보였다 말았다 하는 등로 따라 도로로 내려서서 조금 진행하니 포장도로가 끝남. /
▲.비포장도로→혜미네농장(그림 같은 주택)을 디카에 담고 다리공사 현장을 지나 좌측 백현마을 느티나무를 조금지나 콘크리트 도로에서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실개천을 건너 능선 사면을 따라 오름→넓은 공터에 도착. 좌측 등로로 진행해 일행이 기다리는 천등산에 도착. 봉정사에서 출발하는 막차(19:20)를 타기 위해 약간의 속도를 내다 우측에 천등굴. 궁금해 굴내부를 재빨리 디카에 담고 다시 일행을 뒤따름→개목사 갈림길 우측으로→도로로 내려서니 15분 정도 시간이 남아 봉정사 타종(19:00), 대웅전, 삼층석탑을 구경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 화장실 뒤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출발 직전 막차를 타고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몇 분전에 버스가 출발해 20:30분(무정차) 승차권을 구입하고, 터미널 바로 옆 순대국밥집에서 재빨리 민생고를 해결하고 버스에 올라 잠을 청함.(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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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방문(中國의 道學, 儒學과 韓國의 이학, 홍학 照明 : 3日 4日 總高政疆土會 安東 醴泉 聞慶 探訪) [記事]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총교우회 주관/ 동 강토회 주최/ 경상북도 안동 예천 문경지역 문화탐방 연수단 70명, 민족문화의 발상지인 경북중점지역 순례를 통한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 목적이 있다.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총교우회(총회장 하정효)는 강토회(疆土會. 회장 박용일)를 결성하고 경상북도 안동 문경 예천지역 탐방 연수회를 통해 많은 문화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문화재에 있음을 자각했다./
1. 동서문화의 충돌은 지구도처에서 발생하나 평화로운 세계문화는 한반도에서 태동한다. 대륙과 해양의 통로에서 세계적인 평화의 역사를 지켜온 우리민족은 오대양 육대주가 만나는 한반도에서 미래세계의 새로운 인류문화를 창조한다./
2. 한반도 어디를 가도 선조들이 살아왔던 고장마다 각국과 인류 및 지구촌에 통하지 않는 문화가 없다. 수많은 국호를 갖고서 하나의 조국을 지켜온 이 겨레는 세계적인 문화 문리 문명 그리고 문화사를 창조, 세계적인 특수성과 보편성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3. 오늘 조상이 물려주신 조국강산을 민족의 가슴에 새기고자 신라 고려 근세조선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경북지역을 탐방하면서 이 나라의 평화문화가 세계평화의 새 시대를 열게 하고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다음 몇 가지를 제언한다./
제언1. 중앙정부는 무형문화재와 유형문화재의 발굴 보존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대하라./
제언2. 지방 지정문화재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상향 승격시키는데 인색하지 말라./
제언3. 지방 인간문화재들의 안정된 전승활동을 위한 재정을 확대하고 이를 중앙정부가 지원하라./
제언4. 지방 문화행사의 전국등급제를 폐지하고, 지방정부가 인정하는 향토문화제는 국가차원에서 이를 지정하여 보존 육성 전승하라...
(박경노 記者 大韓放送 200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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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記事] : 이보세상 카페/ 회룡포 기행/ 글쓴이: 이보/ 2006.11.13 13:56/ http:// ♡ 회룡포(回龍浦) 기행(紀行) ♡ /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대은리 회룡포(回龍浦)... //
그것은 분명 한 마리 푸른 용(龍)의 승천(昇天)을 향한 힘찬 용틀임이었습니다.../
굽이굽이 내성천(乃城川) 흘러흘러 반만년(半萬年)을 두고 깎아내린 작품이라 해도 그렇지 저렇게도 아름다운 곡선(曲線)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단 말이던가!/
회룡대(回龍臺)에서 내려다 본 ‘회룡포 마을’의 풍경은 참으로 감동(感動) 그 자체였습니다...
춘 사월의 둘쨋날 신 새벽 중부-영동-중앙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며 다다른 나의 제2의 고향(故鄕)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醴泉) 땅... /
오늘은 얘기로만 들어오던‘회룡포’를 찾았습니다... /
예천(醴泉) 땅은, 내성천(乃城川) 그 오랜 흐름을 젖줄로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자랑하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눈에 뛰는 변화 없이 양반(兩班)의 법도(法度)를 묵수(墨守)하며 그렇게 고색창연(古色蒼然)의 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
예천읍(醴泉邑)에서 유천면(柳川面)과 개포면(開浦面) 일대에 걸쳐 넓게 자리 잡은‘예천공항’을 지나면서 ‘회룡포’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타나면..., 용궁면(龍宮面)에 들어선 게지요...
한대 차도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 시냇가의 금모래가 손에 잡힐 듯 - 큰물이라도 지면 금새 잠겨 버릴 것만 같은 - 좁고도 낮은 성저교(城底橋) 건너, 농로(農路)길을 한참을 따라 달리 다가보면 이번엔 가파른 경사길이 또 일어설 듯 막아섭니다...
기어를 일단에 고정하고 심한 굉음(轟音) 토하며 팔부능선 쯤에 이르렀을까? 주차장이 있어요. 더 이상은 차량이 올라갈 수가 없군요... 주차장 위로 ‘장안사’라는 절이 있어요...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 :
비록 규모는 작지만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운명조사께서 창건(創建)한 천년고찰(千年古刹)이지요... 정계(淨界)에 들었음을 알리는 향기로운 목탁소리가 요적(寥寂)한 산중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삼계(三界)는 고해(苦海)요, 사생(四生)은 화택(火宅)이라‘...로 시작하여, 신라통일 이후 줄곧 국운이 융성하던 시기에 전국에 3개의 ‘장안사’를 창건했는데, 북쪽에 ‘금강산(金剛山) 장안사(長安寺)’ 남쪽에 ‘양산(梁山) 장안사(長安寺)’ 가운데가 바로 이곳의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라고 안내판이 절의 이력을 잘 말해주고 있네요...
침목(枕木)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계단(階段)을 종종걸음으로 올랐어요... 하늘엔 먹장구름 떠가고 땅엔 ‘는개비’ ‘보슬비’ 오락가락, 계단길 양쪽으로 진달래 흐드러져 봄 분위기 한껏 부풀리고요...
휴일을 기해 많은 등산객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어요... 서둘러 올랐음인지 숨이 차네요.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청솔가지 사이로 아득히 푸르른 물줄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물줄기가 마을을 휘감고 돌아 다시 물줄기가 시작된 곳으로 돌아나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살아 꿈틀대는 한 마리 용(龍)의 형국(形局)이었습니다...
어찌나 물색이 맑은지 오랜 세월 더딘 물살에 실려 온 금모래가 은행잎 모양으로 차례로 포개져 쌓인 것이 아득히 먼 곳에서도 선명(鮮明)하게 확인(確認)이 되고 있었어요...
저 물 속엔 얼마나 많은 은어(銀魚)들이 평화(平和)를 오물거리며 무자맥질을 하고 있을까! 몇몇 가구(家口) 옹기종기 의초롭게 추녀를 맞대고 살아가는 - 옛 신선(神仙)들이나 살았음직한 - 동화(童話)속에나 그려질 만큼 소곤소곤 옛날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마을, 육지 속의 섬‘회룡포’ ...,
그래서 인기드라마 ‘가을동화’도, 드라마시티 ‘홍시’도 이곳에서 찍었다지요... 마을 앞으로 모래사장이 넓은 부채꼴 모양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위로 쇠기둥을 박고 구멍 뚫린 철판을 매달아 다리를 놓았어요... 일명 ‘뿅뿅다리’... 내를 건너 마을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다리지요... 그리고 마을 뒤로 솔숲이 군데군데 그림처럼 형성되어 있고요...
금세 학(鶴)떼라도 날아들 듯 갑자기 솔숲에 선기(仙氣)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솔숲 곁으로 유일하게 차량을 이용하여 읍내(邑內)로 나갈 수 있는 포장 길 하나 있었군요...
‘회룡대’라고 쓰여진 편액(扁額)을 우러르며 ‘회룡포전망대’엘 오르니, 고려가 자랑하는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의 대문장가(大文章家)이신 ‘백운 이규보’선생께서 지으신 ‘장안사에서’라는 시액(詩額)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생의 대표저서인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글이라 적혀있네요... 구구절절 명구(名句)들이로군요...
가을엔 회룡포 동그란 물줄기 따라 안개가 자욱히 끼어 정말 멋있다는데..., 가을에 왔으면 안개위도 한번 걸어보고 그렇게 신선(神仙)도 되어 보았을 일을...,
두 눈 가득 아름다운 한 폭 ‘회룡포’의 장관(壯觀)을 한 개의 카메라에 다 담아가긴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애오라지 내 작은 두 눈과 겨우 몇 컷의 사진(寫眞)과 하나의 가슴으로 담아가서는 어디에다가 훌륭히 재현(再現)해 놓고 자랑할꼬?
아쉬운 발걸음일지라도 돌이키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갈 길은 멀고... 수십 번 굽어보고 또 굽어보고 수백 번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두 발짝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접히지 않는 아쉬운 마음일랑 얼른 승용차에 싣고서 예천읍내를 향하여 달리는데, 어디선가 용(龍)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뒤를 돌아 다 보았습니다...
푸른 용(龍) 한 마리가 막 비룡산(飛龍山) 정상(頂上)에서 용틀임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회룡포(廻龍浦) 용궁(龍宮)에서 막 뭍으로 나와 비룡산 정상에서 그렇게 승천(昇天)에의 용틀임을 시작하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
내성천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에서 발원하여 봉화, 영주, 안동, 예천 등지를 지나 용궁면에서 낙동강(洛東江) 상류로 흘러드는 내.
(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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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