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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49:권영록弓矢匠(附예천방문464)
작성자장병창 @ 2009.07.08 06:20:27
  예천의 자랑(1949) : 예천읍 왕신리 출신 권영록 弓矢匠(附 예천방문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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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록(權寧錄) : 1916-1986, 예천읍 왕신리 139번지에서 태어나 예천읍 남본1리 245번지로 옮겨 살았다. 본관은 안동, 태선(泰善)의 아들, 대창학원(大昌學院) 졸업, 궁시장(弓矢匠)으로 16세 때 아버지로부터 배워서 활을 만들기 시작하여 20여만 장의 활을 만들기까지 평생을 활과 함께 생활하였다. 자신이 만든 활로 전국관광민예품경진대회(全國觀光民藝品競進大會)에서 특선을 한 후 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으로 지정(1971.9.13)되었고, 한국전통보존협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활의 원료인 민어풀, 물소뿔은 타이페이, 베트남, 태국 등 외국에서 구입하여 오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애로가 많고, 산뽕나무와 참나무도 주로 지리산과 태백산 등지에서 구입하여 오나, 이도 산림령 등으로 순조로운 운반을 하지 못하여 원료 공급이 되지 않아 활을 만드는데 애로가 많았다. 그의 집안은 400년 동안 11대째 계속되는 활의 명문가(名門家)였다. 조선 숙종 때 그의 10대조인 계황(繼黃)이 개성에서 예천으로 이사와 활을 만들기 시작한 후 대대로 내려왔다. 그 중 그의 6대조인 희직(熙直)은 순조 임금의 명령으로 당시 남해안 깊숙이 들어와 노략질이 잦았던 왜구를 무찌를 활 10만 장을 만들어 바침으로서 교위용장(校尉勇將)이란 벼슬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의 장남 오규(五奎, 1941-?)와 차남 오영(五榮, 1944- ), 3남 오덕(五德, 1944- )도 활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시위 소리만 들어도 내가 만든 활은 언제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훤히 알아요. 시위를 떠난 화살이 창공을 가르며 날아 과녁에 꽂힐 때의 쾌감은 활을 만드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지요"라고 말한 그는 연평균 150개의 활을 만들었다. 그는 수렵 도구에서 병기(兵器)로, 병기에서 스포츠 기구로 변한 활과 더불어 평생을 살고 활에 가문(家門)의 명예를 걸었다.(每日年鑑 1985 1986, 醴泉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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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록(權寧錄) [弓矢匠] : 1916-?, 본적은 예천읍 왕신리 169번지, 주소는 예천읍 남본리 245번지이다. 무형문화재 제47호(1971.9.13 指定)로서, 슬하에 3형제(長男 五奎, 2男 五榮, 3男 五德)에게 전수하였다. 학력은 한학이다. 부속품으로 톱(길이 55cm) 1개, 활밀이(길이 75cm) 1개, 줄(길이 45cm) 1개, 나무찝개(길이 40cm) 1개, 짜귀(길이 27cm) 1개, 두루자(길이 29cm) 1개, 사련(길이 28cm) 1개, 심빗(길이 18cm) 1개, 도가니(직경 13cm, 높이 12cm) 1개, 디짐지(직경 23cm) 1개, 대칼(길이 26cm) 1개, 대빗(길이 25cm) 1개, 심노이빗(길이 21cm) 1개, 도지계(길이 35cm) 1개이다. 활 만드는 기술자인 그는 본관이 안동, 시조 태사공 권행(權幸)의 34세손이다. 그의 조궁술(造宮術)은 조선 영조 때 그의 7대조인 권희직(權熙直, 활 製作의 功으로 當時 校尉, 勇將의 벼슬까지 지냈다)으로부터 대대가업으로 전승되어 왔다. 특히 11대조인 권계황(權繼黃)이 활의 본고장인 개성에서 조궁술을 익혀 예천읍 왕신동으로 옮겨 대대로 살다가 권영록이 남본동 245번지로 이거 궁방(弓房)을 설치히고 활을 제작하였다. 그가 조궁에 종사케 된 것은 16세 때부터 연마하여 활의 인현력(引眩力)을 마음대로 조절해서 여러 가지 활을 만들어 관혁(貫革)에 맞히면 반동으로 되튀기게 할 수도 있고, 한(漢) 나라 유총(劉聰)의 활처럼 철판을 뚫을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전국에 산재해 있는 자신의 활을 쏘는 소리만 듣고도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전국 활 생산량의 70%를 권영록이 제작하고 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물소뿔을 구할 수 없어 6년 간 활 제작을 중단하다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 배려로 조궁업을 계속하였다. 신장 173cm, 체중 72kg, 건강한 편이었다. 아들 권오규(權五奎, 1938-?)에게까지 전수시켜 후계자로 양성하고 있다. 예천군내 활 제작자는 권영록, 권영호(權寧鎬), 권우갑(權又甲), 권선출(權宣出), 이치우(李致雨) 등 5명이고, 타지의 활 제작자는 권태은(광주), 권영덕(구래), 권인수(울산), 권태기(울산), 김봉원(진해), 기타(안동, 영주)이다. 예천읍에 궁도협회가 조직(會長 崔元漢, 會員 50名)되고, 남산공원에 무학정(武學亭, 弓道場)이 설치되어 무사도를 닦는다. 그리하여 도대회, 전국대회에서 석권하였다. 김장용(4단), 권영학(3단), 권오규(2단)를 사범으로 위촉하여 계속 궁술을 익히고 있다. 궁도을 군기로 삼고 예산을 지원(국궁 50%, 양궁 50%)을 군청에서 하고 있다. 양궁은 국궁에 힘입어 1970년대에 예천여중고(교장 장기오)에서 양궁부를 창단하여 선수를 많이 양성했다. 그리하여 소년체전, 아시안게임, 세계궁도대회에서 석권하였다. 국궁의 제작 기간은 활 1개에 4개월이 소요되고, 국궁의 값은 6만-30만 원, 전통궁의 값은 5만-30만 원(포항, 광주), 화살은 10개에 1만 원(개당 1천 원)이고, 권영록의 생계 보조금은 문공부에서 국고로 매월 8만 원(연간 96만 원)을 지급한다. 본래 활은 어느 민족이나 다 공유(共有)하던 무기요 수렵 도구이다. 아득한 옛날의 돌화살촉의 발견은 인류가 신석기시대 이래 활을 얼마나 중요한 이기(利器)로 사용했던가를 입증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총이 수입된 이조 말기까지 2,000여년 동안 활은 먼 거리의 표적을 겨누는 대표적 무기였음에 틀림이 없다. 고조선 혹은 삼국시대에 관한 기록을 보면, 한민족이 활을 잘 쏜다는 칭찬이 자자할 뿐더러 그 활의 우수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또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 보내는 선물 가운데도 활이 중요 품목의 하나로 되어 있었다. 세계의 허다한 활 가운데 우리나라의 활은 활장(弓幹)이 짧은 편이어서 단궁(短弓)이라 한다. 단궁은 중동의 ''''터키''''에서부터 몽고, 중국, 한국에 분포하는 즉 기마민족계(騎馬民族系)의 것이고, 일본이나 서양의 것은 해양계(海洋系)의 한 길이 넘는 활이다. 활장이 긴 것은 연궁(軟弓)이어서 화살의 미치는 거리가 짧기 마련이고, 멀리 미치는 것은 강궁(剛弓)일 수밖에 없다. 현재 국궁의 관혁 거리는 145m지만 옛날엔 190m였다 한다.(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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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록(權寧錄) [記事] : 조궁술을 가업으로 이어온 지 400년, 무형문화재 47호, 권영록 옹은 조상들의 얼을 재현시키기 위해 50여년 간을 활과 더불어 살아왔다. 옛부터 활의 고장으로 이름난 경북 예천, 소백산의 정기 속에 맑은 시냇물은 옥류와 같은 활의 고장으로 더한층 돋보이게 한다. 권옹이 활만들기를 시작한 것은 16세 때부터인데, 조궁장으로 명성이 높았던 부친 권태선(權泰善) 씨의 옆에서 일손을 거들면서 전수자의 기초를 닥았다. 그로부터 48년의 긴 세월을 오직 활과 함께 살아왔다. 그 동안 20여만 장의 활을 만들어 국내 뿐 아니라, 일본, 홍콩 등에 수출도 많이 했다. 권옹의 가업은 400년 전 조선 숙종 때 11대 조상인 권계황(權繼黃)이 활의 본고장인 개성에서 기술을 익혀 지금의 예천읍 왕신동에서 조궁업을 시작했다. 계황-광필(光弼)-성은(聖殷)-희직(熙直)-무겸(舞兼)-만영(萬榮)-병위(丙褘)-동락(童洛)-태선-영록 옹으로 이어졌다. 조궁 가업은 7대조 때 명궁으로서 그 이름을 떠치기 시작했다. 희직은 10만 장의 활을 만들었다. 이 활은 외적을 무찌르는데 큰공을 세웠다. 이 때의 공으로 희직은 교위 용장(校尉勇將, 現 軍人敎官)의 벼슬까지 하사받았다. 이로 인해 권씨 가문은 활의 명궁으로써 전국 방방곡곡에 소문이 퍼졌다. 고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시직공원 뒤, 황학정에서 쏘던 활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아산 현충사에서 시사하던 활이 모두 권옹의 작품이었다. 해방 3년 전부터 물소뿔 수입이 금지되면서 권옹의 가업도 중단되었다. 1948년 이 소식을 들은 이 대통령은 권옹을 경무대로 불러 위로한 뒤, 그 자리에서 물소뿔 수입을 명령할만큼 우리 활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국궁의 종가 권영록 옹은 예천읍 남본동 245번지, 나직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 목조 3칸 짜리가 그의 집이자 작업장으로, 현재까지 활 만드는 가업은 한 번도 끊기지 않고 계속 내려왔다. 경북 예천은 옛부터 활을 사랑하고, 활쏘기를 즐긴 궁술의 고장, 군내 1읍 11면 중에서 예천읍 남본동은 사내아이 걸음마 배울 때 활을 잡히고, 천자문 깨우칠 때 첫 시위를 당겨준다는 활 마을이다. 고추를 낳으면 새끼줄에 빨간 고추를 달아놓는 대신 이 마을에서는 활을 걸어주기도 한다. 이 마을에 궁도가 번성한 데는 대대로 명궁을 만들어 후학을 키워온 조궁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기(郡技)가 궁도이고, 예천여고, 예천중의 교기가 궁도이며, 읍민 2만5천 명 중 반이 활을 쏜다는 자랑이다. 세계궁도대회에서도 이름 날린 김진호, 황숙주 등이 금메달, 동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마음이 어지럽고 정신이 흔들려서는 활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 뜻과 몸을 바르게 하는 본체가 궁도이기 때문이다. 권옹은 장남 오규(五奎, 42) 씨와 3남 오덕(五德, 35) 씨, 동생 영호(寧浩, 57) 씨, 영덕(寧悳, 42) 씨, 영강(寧康, 36) 씨를 비롯 친척동생 영익(寧翊, 36) 씨 등 6명에게 기술을 전수해줬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활은 한 해 2만 장 가량되나 권옹 집에서 70%를 생산하고 있어 명실공히 조궁계의 종가를 이루고 있다. 권옹은 78kg의 체구에 봄가을 전국 230개 사장(활 쏘는 장소)에서 고문으로 초청 받아 시범으로 쏘기도 하고, 심판으로 활약하면서 자신이 만든 활이 창공을 날아 표적에 명중하는 쾌감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물맛이 차고 달아 이름 붙여진 예천읍 궁술에서 활달한 기품을 키우고 궁도에서 예절을 배우는 주민들은 국궁의 후예답게 활터에서 산다. 권옹은 전통을 잇는 보람에 더욱 좋은 활을 만들기에 더욱 정성을 쏟고, 우리의 문화재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활을 아는 사람이 찾아줄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조상의 얼이 담긴 국궁을 사랑하는 예천군민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醴泉女子中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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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의 자랑(213) : 권영록(과녁에 꽂힐 때의 쾌감)(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3-19 照會 143)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299~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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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64

  예천읍상설시장(大邱市 및 慶北道 體驗團 80餘 名 醴泉常設市場 場보기 투어行事 가져) [記事] :

  도시민들에게 재래시장에 대한 관심과 이용증대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예천상설시장 장보기 투어 행사가 2009년 7월 7일 실시됐다.

  경상북도에서 주관하여 열린 이번 장보기투어는 차량지원과 함께 지역의 농특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명소 탐방 및 체험행사를 할 수 있어 도시권 전업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이번 예천상설시장 장보기 투어에는 대구시와 경북도에 거주하는 체험단 8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참가한 주부들은 예천읍 상설시장에서 지역의 우수한 청정 농ㆍ특산물을 구입하는 장보기를 한 뒤 개포면으로 이동하여 개포 풋고추 직판장에서 풋고추 농장체험과 개포면 도자기 체험관에서 도자기 체험을 한 후 삼강주막 등 주변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돌아갔다.

  예천읍 상설시장은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 등 교통망의 발달과 대형 유통점의 등장으로 점차 시장의 기능이 점차 쇠퇴됨에 따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군이 2004년 14억 5천만 원을 들여 상하수도, 아케이드, 간판 등을 현대식으로 완전히 정비하고 무료음료 봉사, 명절 제수용품 재래시장 이용하기 운동전개 등 재래시장 활성화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경식 새마을과장은 "이번 장보기 투어행사를 계기로 지역주민들도 재래시장을 많이 이용하여 재래시장이 활성화됨으로써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말했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07-07 오후 12: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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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주막(“旅行을 떠나요~” 올 여름 꼭 가볼 만한 4大江別 旅行地) [記事] :

  올 여름에는 4대강 강변을 따라 가족여행을 떠나보자. 물줄기마다 흐르는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맑아지고 몸은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찰 것이다.

  월간 <여행스케치>가 최근 펴낸 4대강 문화관광 안내 책자에서 소개한 ‘꼭 가볼 만한 4대강별 여행지’들을 강물을 따라 훑었다...

  [낙동강] 고즈넉한 전통의 향기를 좇아서 :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 너덜샘에서 발원해 경상북도와 남도를 두루 돌아 부산 다대포로 흐르는 1천3백 리의 강이다.

  한반도에서는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중상류는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 같은 감입곡류(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 지형이 많고, 하류로 오면서 사구와 습지를 형성해 철새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낙동강 상류 지역은 때묻지 않은 자연과 유구한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은 봉화,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육지이면서 섬을 품은 영주와 예천 등 저마다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강은 봉화에서 제법 면모를 갖추기 시작해 안동에 이르러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영주와 예천을 지나면서 여러 지류를 받아들여 몸집을 키운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하나로 모이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조선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뱃사공과 보부상들이 피로를 풀던 곳으로 지금도 영업을 한다. 주막 건물 뒤에 있는 수령 약 5백년 된 회화나무가 옛 정취를 더한다...

  (韓國푸른쉼터新聞 2009·07·0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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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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