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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52:황씨엘리트4(附예천방문467)
작성자장병창 @ 2009.07.11 07:22:58
  예천의 자랑(1952) : 예천의 황씨 엘리트(4)(附 예천방문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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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열(黃種烈) : 1950- , 예천 출신, 세림제지 대표이사 전무 환경기술사업본부 담당을 지냈다.(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paran 人物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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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중창(地域 첫 마라톤 풀코스 100回 完走‘話題’: 포스콘 勤務 황중창 氏) [記事] : 2005년 9월 11일 안동 전국환경마라톤 도전, 보통 사람은 평생 단 한 번도 뛰기 어려운 마라톤 풀코스를 무려 100회 완주를 눈앞에 둔 포항지역 한 직장인이 화제다. 포스코의 공장자동화 전문 출자사인 포스콘에 근무하는 황중창(46) 씨가 바로‘철의 다리’를 가진 주인공이다. 공사설계업무를 담당하는 엔지니어인 그는 현재 포항그린넷마, 100회 마라톤클럽, 런너스클럽, 광화문마라톤모림에 속해 있다. 전국 마라톤 매니아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 인사다. 황씨는 1998년 처음 뛴 하프마라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마라톤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첫 풀코스를 뛴 것은 2년 뒤인 2000년 3월 19일 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서다. 그 당시 기록이 3시간 19분 32초라는 좋은 기록으로 완주했다. 물론 중간중간에 하프마라톤코스와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거의 매주 달리기에 참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현재 풀코스 개인최고기록은 2시간 52분이다. 서브3(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도 20회나 된다. 100km 울트라마라톤 개인 최고기록도 8시간 30분대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닉네임이‘야생마’다. 이같은 불굴의 정신으로 달려온 그는 6년만에 아마추어 마라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풀코스 100회라는 금자탑을 오는 11일 전국환경마라톤이 열리는 안동에서 이루게 된다. 아마추어 마라톤의 전성시대를 맞은 우리나라에서도 풀코스 100회 완주자가 줄을 잇고 있다. 2004년 9월 5일 박용각 씨가 국내 최초로 1백 회 완주를 달성한 데 이어, 10월에 전명환·소병선 씨가 그리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장영신 씨가‘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2005년에도 1백 회 완주자가 줄줄이 탄생하는 그 대열에 황중창 씨도 당당히 동참하게 된 것이다. 예천이 고향인 황씨는,“이왕이면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100회 완주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해에 결심했다. 달림이라면 누구나 자기 기록을 경신하고 싶어하기에 저도 천천히 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서브-3(3시간내)으로 완주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라며 각오를 밝혔다. 그는 또,“이 번에 1백 회를 완주하면 당분간은 쉬면서 그 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할 겁니다. 틈나는 대로 페이스 메이커 같은 봉사 활동에 열중하려고 합니다”라며 말을 맺는 황중창 씨의 앞길에는 그의 말처럼 이제부터 시작인 봉사의 마라톤 코스가 벌써 펼쳐지고 있다.(이한웅 記者 慶北日報 2005/09/08)

  황중창(게시물 제목 : 황중창님의 풀 코스 100회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123 - 조회/ 작성자 이름 : 이원락/ 2005/09/14 - 登錄) [記事] : / 야생마 황중창님의 마라톤 풀 코스 100회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말이 쉬워 마라톤 풀코스 100회 완주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입니다. 많은 시간과 땀을 바치지 않고는 감히 이룰 수 없는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들 지방에 사는 달림이들은 전국방방곡곡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마침내 100회 완주의 위업을 이루셨군요. 단순히 풀 코스 100회 완주가 아니라 제가 같이 참가한 어느 대회에서든지 보면 늘 선두 그룹에 서서 야생마라는 닉네임처럼 힘차고 당당하게 달리시더군요. 멀잖아서 200회, 300회 완주 소식을 듣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대회장에서 만나면 반갑게 대해주시는 그린넷마의 여러 회원님들께도 클럽의 경사에 대한 축하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도 아울러 올립니다. 호미곶에서 뵙겠습니다.(hittp://www.greenmarathon.com 2005)

  →<예천대사전> 제49권 오늘 출판, 9,800쪽(附 황중창, 11일 전국마라톤 대회 풀코스 완주 100회/ 학생들, 9일 전국육상대회 6개 메달)(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9-16 照會 1097)

  →<예천대사전> 제8권(張炳昌 著 2006年) =1527~15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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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중하 : 1976- , 유천면 출신, 충환의 아들, 유천중(柳川中), 문창고(聞昌高), 영남대 졸업, 주종목(主種目)인 400m 허들로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를 비롯한 추계 전국육상대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 등에 상위 입상(上位入賞)하였고, 97년 제35회 경북도민체전에서는 육상 4관왕(冠王)으로 최우수선수상(最優秀選手賞)을 차지하였다.(醴泉新聞 1997.5.29)

황중호(黃重昊) : 유천면 가리 출신, 본관은 창원, 한태(漢泰)의 아들, 해병간부 제54기, 2002년 해병 준장이다.(醴泉鄕校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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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중호(海兵隊 황중호 大領 准將으로 進級) [記事] : 예천읍 우계리 태생의 황중호(49·해병대) 대령이 이 번(2002년) 군장성 진급 심사에서 별을 달았다. 이 번에 장성으로 진급한 황중호 준장은, “해병대의 군인 정신에 매료되어 해병대를 지원하게 됐다”며, “선배 해병의 전통을 이어받아 세계 최강의 해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준장은 대창중(20회)·예천농고(23회)·성균관대·단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75년 해병 소위로 임관되어 지금까지 줄곧 해병대의 작전관으로 명성을 쌓았다. 태권도 공인 4단인 황 준장은 모든 운동을 좋아하여 전형적인 해병 장교라는 평을 그 동안 받아 왔다. 이로 인해 그 동안 대통령 표창과 보국훈장을 받았다. 황한태(79) 이순금(74) 씨의 6남매 중 셋째인 황 준장은 부인 권윤희(44)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醴泉郡廳 홈페이지 2002.10.18, 醴泉新聞 2002-10-24 17: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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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차성(黃且成) : 1906-2002, 예천읍 서본리 출신, 1963년 4월 예천읍 대심리 17번지의 부지 3,220평을 매입하여 신성고등공민학교(神聖高等公民學校)를 설립 이사장(理事長)으로 봉사하였고, 1965년 4월 기독교장로회 예천교회 부설 유치원 36평을 비용 전담하고 신축하여 교회에 헌납하였고, 유치원 이사장으로 봉직하였다. 무덤은 감천면 관현리 예천교회 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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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택연(黃澤淵) : 호명면 내신2리 출신, 본관은 장수, 희의 19세손, 의배의 장남, 법무사이다. 대창중, 대창고(20회),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업, 김천전매지청 사무과 근무, 1985년 검찰사무직 시험에 합격, 서울지검 북부지청, 89년 대구검찰청 수사과, 91년 김천지청, 92년 대구지검 검사실 및 수사과, 99년 의성지청 사건계장, 법무사 사무소를 개업하였다.(醴泉新聞 2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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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학엽(黃學燁) : 1936- , 예천 출신, 64년 영남대 건축공학과 졸업, 영덕군교육청 근무, 대구시 건축과장, 대구직할시 건설사업소장, 90년 대구시 건설주택국장, 96년 대구도시개발공사 건설이사(현)이다. 대통령공로표창을 받았다.(每日年鑑 1987 1988, 每日名鑑 1997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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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한용 : 1938- , 예천읍 대심리 출신, 한양대 의대 부속병원 회계과장, 동 총무부장, 동 사무국장이다. 생활체육전국사격연합회(生活體育全國射擊聯合會) 회장이다.(醴泉新聞1995.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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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한웅(黃漢雄) : 1949- , 예천읍 출신, 본관은 평해, 74년 명지대 법학과, 90년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 91년 동경 외국어대 졸업, 74년 일본 동양경제 서울지국 기자, 79년 매일경제신문 기자, 85년 동 조사부 차장, 86년 동 전산자료부 차장, 88년 동 자료부장 겸 텔레콤부장, 89년 동 기사정보부장 겸 국제정보부장 겸 MIS부장, 90년 일본경제신문 장기 연수, 매일경제신문 국제정보 부장 겸 DB개발 부장, 동국제금융부장, 동 부국장대우, 94년 동 데이터뱅크국(DB) 국장, 서울 노원구의회 의원(議員), 매일경제신문사 뉴미디어국 국장을 지냈다. 민주평통자문회의 자문위원, 재향군인회(在鄕軍人會) 노원구지부 자문위원, 서울 상계9동 행정위원회 회장이다. 저서로 <정보용어사전>, <21세기와 컴퓨터 활용>, <정보 통신 용어 해설집>, <데이타베이스 활용 기법>, <인터넷 7일간의 여행>, <현장 일본어 회화 입문편> 등 8종(種)이 있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東亞닷컴 人物情報 2004,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예천의 자랑(804) : 황한웅(예천읍 출신 서울 노원구의회 의원의 저술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6-22 照會 1095)

  →<예천대사전> 제7권(張炳昌 著 2006年) =1283~1284쪽

  →예천의 자랑(1776) : 황한웅 議員(祝 배구 전국 1위/예천방문 302)(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11-12 照會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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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윤(黃海潤) : 1934- , 예천 출신, 안동농림고(安東農林高) 졸업, 안동시 산업과장, 동 회계과장, 경북도지사 비서실장, 청송군 부군수(靑松郡副郡守)를 지냈다.(每日年鑑 1987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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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진 : 1978- , 예천읍 노상리 출신, 병호(丙鎬)의 아들, 스위스에서 열린 제42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國際映畵祭)에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로 최우수작품상(最優秀作品賞)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70년 사상(史上)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렸는데, 그 영화에서 황해진(醴泉國民學校 5學年)은 동자승 역(童子僧役)을 맡았다.(嶺南日報 198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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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석 : 1962- , 예천 출생, 87년 경북대 화학과, 94년 한신대 대학원 졸업, 86-88년 대웅제약 중앙연구소 근무, 92-95년 대구 성락교회 목사, 95-99년 서귀포 한마음교회 목사, 2000 대구 수석교회 목사이다.(인터넷 my.netia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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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467

  예천군 방문(江原道 주문진 김영욱 氏 管內 福祉施設 연꽃·極樂·사랑마을 호떡 自願奉仕 펼쳐) [記事] :

  김영욱(58, 강원도 주문진) 씨는 예천군 관내 복지시설인 연꽃·극락·사랑마을을 방문해 입소자들에게 호떡을 구워서 제공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김씨는 상주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엄태건(개포면) 씨의 소개로 예천군 관내 복지시설 입소자에게도 봉사활동을 펼치게 되었으며, 호떡 재료를 본인이 직접 준비해서 3개 시설을 방문해 입소자 250명에게 호떡을 제공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7-10 오전 8: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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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궁역(汽車가 서지 않~는 簡易驛에 ♬ : 느림과 浪漫이 남아 있는 시골의 작은 汽車驛 旅行…) [記事] :

  간이역엔 느림과 낭만이 있다. 소박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난다. 이런 간이역이 열차가 서지 않아서, 이용객이 적어서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간이역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운 이들은 기차를 탄다.

  카메라와 수첩으로 간이역사를 기록하고, 무궁화호의 거북이 속도를 즐긴다. 기차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간이역에서 삶의 쉼표를 찍고 쉬어간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에 위치한 용궁역은 철도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간이역이다. 경북선인 용궁역은 사람 나이로 치면 82살이다.

  1970년대만 해도 동대구행 비둘기호를 타려는 이들로 북적였던 이곳은 이제 역무원도 없는 무인역으로 남아 드문드문 서는 열차를 맞는다.

  영주와 강릉행 상행선과 부산행 하행선을 합쳐 하루 6번 정차하는 무궁화호가 이곳에 머무르는 시각은 불과 2~3분.

  지난 6월29일 낮에도 부산행 열차에 오른 사람은 3명뿐,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시댁이 있는 부산에 간다는 마을 아주머니는 “이용객이 줄어든 것, 무인역이라 역사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지저분해진 것만 빼면 역사는 어릴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안녕, 용궁역. 여전히 멋진 모습이구나”이런 용궁역에 최근 변화가 생겼다.

  2009년 6월 5일 코레일이 전국 32개 무인역에 명예역장을 두면서 용궁역도 사람 손을 타기 시작했다. 용궁면 마을 주민으로 용궁역의 첫 명예역장이 된 임정녀 씨 덕분이다.

  임씨는 “기차가 좋아 무보수 명예직이라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궁역은 조용하고 소박한 전형적인 간이역사 모습을 띠고 있어, 찾아오는 철도 마니아들이 많다.

  역사 한쪽 벽엔 얼마 전 이곳을 찾아온 이가 종이로 접은 물고기와 쪽지를 남겨두고 갔다. ‘용궁’이란 역명에 맞춘 선물이다. “안녕, 용궁역. 오랜만에 왔는데 여전히 멋진 모습이구나. 널 지켜줄 역장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오늘은 물고기랑 왔지만 다음엔 토끼랑 자라를 데리고 올게. 다음에 다시 올 때까지 안녕. 2009. 6.23.” 아담하고 소박한 용궁역 구경을 끝내고 차로 10분 거리인 비룡산 회룡대에 올랐다.

  이곳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육지 속 섬마을’인 회룡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다. 회룡포는 산과 연결된 끝자락을 끊으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물도리 마을로, 백사장이 넓어 캠핑도 가능하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엔 드라마 <가을동화>에도 나왔던 ‘뿅뿅다리’를 건너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회룡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회룡대에 오르느라 흘린 땀이 아깝지 않은 비경이다.

  #. 여행 팁 : 회룡대와 회룡포는 용궁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가면 빠르다. 용궁역 앞에서 ‘향석/개포면’이라고 적힌 예천여객 시내버스를 타고 향석1리에서 내려 걸어가는 방법도 있다.

  마을 입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회룡포와 뿅뿅다리를, 오른쪽으로 가면 회룡대와 장안사로 빠진다. 뿅뿅다리는 회룡포에 들어가기 전에 놓인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 뚫린 강판 다리다.

  걸을 때 ‘뿅뿅’ 소리가 나고 흔들린다. 드라마로 알려졌지만 막상 보면 좀 싱겁다... 철도는 시대 따라 변화가 많았다. ‘통일호-비둘기호-무궁화호-새마을호-KTX’까지 열차가 빨라질수록 철도노선표도 달라졌다.

  경의선 통근열차가 다니던 지역은 현재 고속전철이 다닌다. 석탄산업의 요충지였던 문경선과 경북선은 철도 위에 자전거를 올린 레일바이크 사업으로 관광수입을 거두는 중이다.

  역 활성화 정책에 따라 간이역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철도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해지고 빨라졌지만 사람 냄새 물씬 나던 시절의 푸근한 풍경은 계속 지워지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간이역은 아직 남아 있다. 기차에서 만나는 사람, 기차 하면 떠올리는 추억, 철길이 주는 낭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춘선을 타고 떠나던 MT의 추억, 바다를 보겠다며 무작정 밤기차를 타던 그 열정을 되살려 올여름엔 느리지만 여유 있고, 불편하지만 낭만 있는 간이역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간이역의 사전적 정의는 ‘역무원 없이 열차가 정차하는 역’이다. 코레일에 따르면 이런 간이역은 오히려 ‘늘고 있다’. 사전적 정의의 간이역이 2005년 191개에서 매년 10여 개씩 늘더니 현재 228개가 됐다.

  대신 일반역 수가 줄었다. 450개 안팎이던 게 2007년 이후 급격히 줄어 현재는 411개뿐이다. 코레일 홍보팀 김중학 과장은 “철도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일반역이 간이역으로 변해 일반역 수는 줄고 간이역 수는 늘어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간이역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틀린 것일까? 아니 맞다. 간이역과 일반역을 합친 역 수가 매년 줄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간이역은 수치에서 빠지고 있다”는 게 코레일 쪽 설명이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진짜 간이역은 영락없이 ‘퇴출’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 철도동호회를 운영하는 철도마니아 임병국 씨는 “2000년 이후로 간이역 50여 개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등록문화재로 기록돼 보존되지 않는 간이역은 쓰임이 끝나면 외양간으로, 낡은 창고로, 아무도 찾지 않는 폐허로 변해 쓰러져간다. 북적거리는 일반역도 어느 해에 찾아가면 간이역이 돼 있고, 그 뒤 또 몇 년이 지나면 기차로 찾아갈 수 없는 역이 돼 있다.

  간이역이 사라지는 속도는 열차가 빨라지는 속도와 비슷하다...

  (김미영 記者 한겨레21 2009.07.13 제7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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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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