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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53:권의縣監(附예천방문468)
예천의 자랑(1953) : 용문면 제곡리 입향조 권의 현감(附 예천방문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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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權의) : 1475(성종 6)-1558(명종 13), 용문면 제곡리 작은맛질 안동 권씨 입향조(安東權氏入鄕祖),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安東市北後面道村里)에서 용문면 제곡리손씨(孫氏, 持平)에게로 장가들어 옮겨 살았다. 자는 백구(伯懼), 호는 야옹(野翁), 성균생원 사빈(士彬)의 장자, 벌ㆍ장(檣)의 형, 정암 조광조(靜菴趙光祖)의 제자,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 12위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장수도 찰방(察訪), 두 고을의 현감(縣監)에 올랐다. 의흥 현감(義興縣監)에 있을 때는 정암 조광조와 상의하여 향약(鄕約)을 시행하였다. 만년(晩年)에 벼슬을 그만 둔 후 작은맛질에서 야옹정(野翁亭)의 현판(懸板)을 걸고 은거(隱居)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야옹정(野翁亭)의 현 건물은 둘째아들 심언(審言)이 그를 위해 야옹정(1566, 경북도유형문화재 230호)를 짓고, 형제 간에 우애가 남달라, 동생 충재(沖齋) 벌과 더불어 세인이 금곤옥계(金昆玉季)라고 일컬었다. 벼슬길에도 부모의 병보(病報)가 있으면 벼슬을 그만 두고 집에 돌아왔다. 묘는 하리면 부초리 함포산 자좌(咸浦山子坐)에 있다.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 1570-1652)이 묘갈명(墓碣銘)에서 이르기를, "하늘이 위대한 명성은 중씨(仲氏, 권벌)에게 주셨고, 완복(完福)은 맏분(權 )에게 내리셨네"라고 하였다. 시고(詩稿)가 있다.(醴泉郡邑誌 1770 1786 1895, 朝鮮 輿勝覽 1929, 醴泉文化 7輯 1994)
[醴泉의 金石文] : 심기(審己)ㆍ심언(審言, 居昌縣監)ㆍ심문(審問, 察訪)ㆍ심사(審思)ㆍ심변(審辨)ㆍ심행(審行, 生員)ㆍ심지(審止)ㆍ심례(審禮)의 아버지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시에 합격, 장수도 찰방, 돈령부 직장, 사복시 주부, 의흥 현감(義興縣監)을 지냈다. 묘는 하리면 부초리 남쪽 부용산(芙蓉山) 자좌(子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연안도호부사 김상헌(金尙憲)이 찬하였다.(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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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옥봉선생문집[玉峯先生文集, 1847]>에 실린 권위[權暐]의 기사로, 그 내용은, "祖考縣監府君碣陰記/ 我皇祖諱、 、字、伯懼、安東人、高麗太師/ 幸之後/ 也。太師而十世、有諱守洪、尙書左僕射、僕射而/ 五世、有諱靷、禮儀判書、判書有孫、諱、啓經、橫城縣監、贈吏曹參判、是於府君、爲曾祖也。祖諱、/ 琨、贈吏曹判書、考諱、士彬、成均生員、贈領/ 議政、公、娶坡平尹氏司宰監主簿諱塘之女、於/ 貞顯王后、爲從?妹也。以成化乙未六月四/ 日、生府君、幼岐?、異凡兒、稍長、與諸弟、學、文理/ 特達、筆力?勁、世稱聯璧、尤長於詩、淸淡雅麗、/ ▶ Page 063/ 與弟忠定公、有唱和詩軸、中正德丁卯進士、不/ 復留意於擧子業、中歲、居醴泉之渚谷里、時趙/ 靜庵先生鄕約、行郡中、推府君爲約正、擧行得/ 體、襄陽人、至今稱道之、以年德俱尊、嘉靖庚子、/ 特拜長木道察訪、秩滿、陞敦寧直長、乙巳、由司/ 僕主簿、出爲義興縣監、吏畏民懷、三年而遞、安/ 養十餘年、戊午七月二十六日、終于道村本第、/ 享年、八十四、十二月某日、葬于?基/ 殷豊/ 縣南/ 箭項山子坐之原、夫人密陽孫氏、高祖諱、孝丁、/ 三司左尹、曾祖諱、璟、禮賓寺尹、祖諱、次綱、成均/ ▶ Page 064/ 進士、考諱、蕃、進士、登文科、官至承文院判校、夫/ 人、生長名家、婦道甚修、胤?配德、母有多子、嘉靖癸未四月二十三日、卒于渚谷第、葬其地、至/ 戊午、與皇祖、合葬焉。生七男一女、長審已、次審/ 言、居昌縣監、次審問、自如察訪、次審思、忠順衛、/ 次審辨、有文才筆法、累擧不中、次審行、成均生/ 員、次審止、忠順衛、女適月城/ 李瑜、從仕郞、側室/ 子曰、審禮內外曾玄孫男女、無慮三百餘人。"이다.(www.koreastudy.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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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權의) [記事] : 한국문집총간(077_417a) 청음집(淸陰集, 1654)에 실린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의흥현감 권의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義興縣監權侯墓碣銘/ ...在豊基郡殷豊縣南箭項山子坐午向之原。夫人之卒。在嘉靖癸未。葬于醴泉郡渚谷里。至侯葬移?焉。侯始生。??然有..."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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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 【安東 權氏】/ 권의(權 ):1475(성종 6, 을미)~1558(명종 13, 무오). 본관 安東. 자는 伯懼. 호는 野翁. 士彬의 子. 1507년(중종 2) 進士가 된 이래 과거를 단념하고 醴泉 渚谷에 살면서 靜庵 趙光祖의 鄕約이 郡中에 실시될 때 約正에 추대되었으며, 1540년(중종 35) 長水察訪을 거쳐 義興縣監을 지냄. ▣참고:「碣陰記」(權暐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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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의 문화유산/ 간행년 : 2001/ 저자 : 서수용/ 발행처 : 안동문화원/ 7) 오선정(五先亭) :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소재, 안동 북후면 천등산 아래 도계촌(道溪村)은 의정공(議政公) 권사빈(權士彬)이 세상을 피해 산 곳이며, 야옹공(野翁公) 4형제분이 탄생한 땅이다. 이곳은 원래 높고 험한 산과 기절한 수석은 없으나 산세가 밝으면서도 순하며 토질이 비옥하며 아름다운 기운이 모인 곳이다. 중년에 의흥공(野翁 權 )과 제촌공(權檣)은 예천의 제곡(楮谷)으로 이거했다. 야옹공은 아들 일곱 분을 두었는데 여섯째 아들인 심행(審行)이 옛터에 그대로 살면서 대대로 유학의 규범을 지켰다. 이어 백공(伯公) 역시 저곡으로 이거하여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였다. 중공(仲公)인 충재 선생은 삼척부사 재임 중 난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환향 도중 봉화 유곡(酉谷)의 풍광을 아껴 장수의 터전을 삼았다. 기미년(1979) 봄에 동파(同派)의 후손들이 모여서 옛 터에 비석이라도 세워 기념하고자 하였으나, 정자를 세워 선덕(先德)을 기리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고 결의하고 일년이 못되어 정자가 완성되었다. ‘오선정’으로 이름지은 것은 이곳에서 다섯 분의 선조께서 계셨다는 데서 따온 것이다. 「오선정기문」은 17세손 관재 권숙과 1979년에 순천인 용전 김철희가 썼다.(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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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安東 權氏】/ 권의(權 ):1475(성종 6, 을미)~1558(명종 13, 무오). 본관 安東. 자는 伯懼. 호는 野翁. 士彬의 子. 1507년(중종 2) 進士가 된 이래 과거를 단념하고 醴泉 渚谷에 살면서 靜庵 趙光祖의 鄕約이 郡中에 실시될 때 約正에 추대되었으며, 1540년(중종 35) 長水察訪을 거쳐 義興縣監을 지냄. ▣참고:「碣陰記」(權暐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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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535) : 권의(다스린 업적을 남겼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4-06-10 照會 111)
→<예천의 자랑> 제4권(張炳昌 著 2004年) =716~7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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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68
쌀아지매농장(醴泉郡, 都市消費者 親環境農業 體驗行事 : 머물고 가는 ‘觀光 醴泉’ 만들기) [記事] :
쌀아지매 체험마을(개포면 가곡리) 친환경 체험행사가 2009년 7월 11일~12일, 1박2일 일정으로 개포면 가곡리 마을회관 및 쌀아지매농장과 예천군 주요 관광지에서 가족단위 체험 행사로 100여 명의 도시소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첫날인 11일에는 가곡리 마을회관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2009년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소비자와 함께 하는 e-농장’에서 고객간 인사나누기, 참붕어ㆍ미꾸라지 입식 체험을 하고 회룡포에서 수영하기와 쑥떡 만들어 새참 먹기를 했으며, 이후 쌀아지매 친환경체험학교로 옮겨 숯불구이와 별보기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둘째날인 12일에는 고향냄새가 솔솔 풍기는 시래기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팀별로 흩어져 곤충연구소와 삼강주막, 천문대, 온천 등의 관람과 체험으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는 2008년까지는 무료로 실시했으나 2009년부터 도시소비자들이 직접 신청하고 가족당 5만 원의 체험비를 부담하는 유료체험행사로 열렸으며, 예천군 친환경 농산물의 우수성과 예천군의 주요 체험관광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쌀아지매농장 정옥례 씨는 “향후에도 계속 친환경체험행사로 도시소비자들에게 예천농산물의 우수성 홍보와 주변 체험광광지를 알려서 ‘머물고 가는 관광예천’을 이루는데 일조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예천군은 “FTA 등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인해 앞으로는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 생산만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으로,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우수농산물을 생산하는데 행정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영동 記者 環境日報 2009년 07월 11일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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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記事]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카페/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에 적혀있는 법구경/ 글쓴이: 나그네/ 2007.10.04 22:45/
인생(人生) : 초대(招待)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 왔고, / 허락(許諾)하지 않았어도 /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
그는 /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 떠나는 것이다. / 거기에 어떠한 탄식(歎息)이 있을 수 없다. //
언제나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아 /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 보다 / 더 큰 선(善)은 없고, 이 보시가 / 극락(極樂)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악(惡)하게 백년(百年)을 사는 것 보다 / 바르게 하루를 사는 것이 / 더 보람 있는 삶이 아닌가. //
- 예천군 용궁면 비룡산 장안사 쉼터에 적혀있는 법구경 -//
장안사(長安寺)는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향석리(鄕石里) 비룡산(飛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전통사찰총서에 따르면, 장안사는 759년(신라 경덕왕 8년)에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雲明)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에 대한 자세한 문헌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다.
예천군지(醴泉郡誌)에는 고려시대에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 명종대에 지도림(支道林) 스님이 장안사를 중창한 것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인(文人)으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서문(序文)을 찬술(撰述)한 이규보(李奎報)가 1197년(고려 명종 27년)에 이곳 용궁현의 원님이 베푸는 잔치가 끝난 뒤 시한 편을 남겼는데 제목은 ‘십구일에 장안사에서 묵으며 짓다’로 그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장안사는 지도림(支道林) 스님이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규보가 장안사에서 머물면서 지은 시는 "19일 장안사(長安寺)에서 자면서-이규보 //
圖山聊得滌鹿襟 況遇高僧支道林(도산료득척록금 황우고승지도림)/
長劍遠遊孤客思 一杯相笑故人心(장검원유고객사 일배상소고인심)/
天晴舍北溪雲散 月落城西竹霧深(천청사북계운산 월락성서죽무심)/
病度流年空嗜睡 古園松菊夢中尋(병도유년공기수 고원송국몽중심)//
[번역] : 산(山)에 이르니 번뇌(煩惱)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支道林)을 만났음이랴. /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 한잔 차(茶)로 서로 웃으니 고인(古人)의 마음일세. /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 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 병(病)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菊花)는 꿈속에서 작아드네." /
지둔(支遁, 314~366)은 동진(東晉)사람으로 지도림(支道林)이라고 한다. 지둔은 중국사상의 중요한 개념인 이(理)의 의미를 <반야경>사상으로 변화시켰다.
이(理)는 본래 우주적 질서 또는 자연적인 계절의 의미였으나, 반야사상의 영향으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로 해석해 중국인들에 소개했다.
"詠忘(영망 망각을 읊다)-李奎報(이규보) // 世人皆忘我 四海一身孤(세인개망아 사해일신고)/ 豈唯世忘我 兄弟亦忘予(기유세망아 형제역망여)/ 今日婦忘我 明日吾忘吾(금일부망아 명일오망오)/ 却後天地內 了無親與疏(각후천지내 요무친여소)/
[번역] :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려 / 온 세상에 오직 내 한 몸 외롭기만 하다. / 어찌 오직 남들이 나만을 잊었겠는가. / 형제도 모두 나를 잊을 것이오. /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고 / 내일엔 내가 나를 잊을 것이네. / 이런 뒤에 온 천지 안에서 / 친한 이도 소원한 이도 없음을 알게 될 걸세. /
용궁면 팔경 시비 : 龍州(龍宮)八景(용주(용궁)팔경)/
용궁면(龍宮面)은 1914년 예천군(醴泉郡)에 통합되기 전까지 용궁군(龍宮郡)이였으며 고려 때는 용주(龍州)로 불렸던 지역이다. 1997년. 8월에 회룡포(回龍浦)에 면민들이 시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抱琴明月(포금명월) 포금산의 밝은 달. 용궁상고 뒷산//
抱琴山上月團團, 丹桂初香白露寒,(포금산상월단단, 단계초향백로한,)/
此夜正堪彈一曲, 戱招仙鶴下雲端(차야정감탄일곡, 희초선학하운단)/
[번역] : 포금산에 뜬 달은 둥글기도 둥근데, / 계수나무 가을 향기 힌 이슬 차갑고나. / 이 밤사 퉁겨 내는 열두 줄 맑은 소리, / 선학은 너울너울 구름 끝에 춤을 추네./
武夷淸風(무이청풍) 무이의 맑은 바람. 무이리 뒷산 //
武夷山下問村翁, 何事漁樵老此中,(무이산하문촌옹, 하사어초노차중,)/
鷄犬不驚桑?好, 萬邦塵雨一淸風(계견불경상자호, 만방진우일청풍)/
[번역] : 무이촌에 묻혀 사는 할아범께 묻노니,/ 고기 잡고 나무하며 이렇듯 늙어 가오./ 뽕나무 그늘 아래 개와 닭이 함께 놀고,/ 온갖 세상 풍진 맑은 바람씻지 않소./
錦江漁火(금강어화) 금강의 고기 잡는 불빛. 금강은 錦川 //
日落風恬秋水淸, ?燈處處滅還明,(일락풍념추수청, 연등처처멸환명,)/
五更移艇西岩去, 宿鷺驚飛時一聲(오경이정서암거, 숙로경비시일성)/
[번역] : 해는 지고 바람 자니 가을 금강 옥같은데,/ 고기잡이 초롱불빛 여기저기 번득인다/ 오경에 배를 돌려 서암으로 돌아오니,/ 잠자던 적백로 끼욱 끼욱 놀라 나네/
臥牛落照(와우낙조) 와우산의 낙조. 용궁초교 뒷산//
紫翠橫空夕鳥飛, 牛山千古又斜暉,(자취횡공석조비, 우산천고우사휘,)/
扶桑若木皆常理, 笑殺齊人淚滿衣(부상약목개상리, 소살제인루만의.)/
[번역] : 저녁 노을 붉게 타고 새들 바삐 나니,/ 와우산엔 변함 없이 석양이 지는구나/ 해 뜨고 지는 것은 변함 없는 진리 거늘, / 가소롭다 사람들아 슬퍼 한들 어이하리//
飛龍歸雲(비룡귀운) 비룡산 걸친 구름. 향석리 앞산 //
山似飛龍雲似烟, 相從日夕在南天,(산사비룡운사연, 상종일석재남천,)/
降詳下雨多陰德, ?我?鄕百千年(강상하우다음덕, 풍아재향백천년.)/
[번역] : 뫼 굽이는 용이요 구름은 연기인데,/ 서로 좋아 어우러져 남천에 머물더니/ 하느님 음덕으로 복된 비 내려주네,/ 우리 고장 천년만년 풍년을 누리리라./
天竺疎鐘 (천축소종) 천축산 저녁 종소리. 향석리 뒷산 //
數峰天竺揷蒼空, 往往疎鐘落晩風,(수봉천축삽창공, 왕왕소종낙만풍,)/
認是慈悲諸佛意, 一聲警世到吾東(인시자비제불의, 일성경세도오동.) /
[번역] : 천축산 봉우리들 창공에 솟았는데,/ 이따금 범종소리 저녁바람 타고 오니/ 필시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리라,/ 우리동방 깨우치는 은은한 울림이여./
?雲樵歌(알운초가) 알원산의 나뭇꾼 노래. 알운산(막을알) 우망리 뒷산 //
白雲갈處有樵人, 一曲長歌萬壑春,(白雲갈처유초인, 일곡장가만학춘,)/
O俗但言靑截彼, 不知肉吹妙傳神(O속단언청절피, 부지육취묘전신.)/
[번역] : 흰구름 깊은 골에 나무하는 저 초동들, / 한가락 긴 노래에 산골에 봄은 온다. / 소박한 민속 가락 입으로만 이어 오니, / 창법 없이 전해오는 신묘한 그 노래여. /
喧坪稻畵(훤평도화) 훤이 들의 벼꽃. 읍부리 큰들(살미 앞들)//
大野茫茫接遠天, 稻花點綴正堪憐,(대야망망접원천, 도화점철정감련,)/
遺黎不識傷時恨, 猶向西風樂有年(유여불식상시한, 유향서풍낙유년.)/
[번역] : 넓디 넓은 훤이 들판 먼 하늘 닿았는데,/ 벼꽃 핀 비단물결 정말로 아름답다 / 검은 머리 저 백성들 피땀 고생 다 잊고서, / 서풍에 땀 씻으며 풍년을 구가하네. /
龜溪 金榮洛(구계 김영락, 1831-1906) 본관은 김해 만년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직함을 받은 은거 文人이었다. 龍州八景(용주팔경)의 출처는 post0008@yah00.co.kr 이승희 / 출처 :나그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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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權의) : 1475(성종 6)-1558(명종 13), 용문면 제곡리 작은맛질 안동 권씨 입향조(安東權氏入鄕祖),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安東市北後面道村里)에서 용문면 제곡리손씨(孫氏, 持平)에게로 장가들어 옮겨 살았다. 자는 백구(伯懼), 호는 야옹(野翁), 성균생원 사빈(士彬)의 장자, 벌ㆍ장(檣)의 형, 정암 조광조(靜菴趙光祖)의 제자, 1507년(중종 2)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 12위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을 거쳐, 장수도 찰방(察訪), 두 고을의 현감(縣監)에 올랐다. 의흥 현감(義興縣監)에 있을 때는 정암 조광조와 상의하여 향약(鄕約)을 시행하였다. 만년(晩年)에 벼슬을 그만 둔 후 작은맛질에서 야옹정(野翁亭)의 현판(懸板)을 걸고 은거(隱居)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야옹정(野翁亭)의 현 건물은 둘째아들 심언(審言)이 그를 위해 야옹정(1566, 경북도유형문화재 230호)를 짓고, 형제 간에 우애가 남달라, 동생 충재(沖齋) 벌과 더불어 세인이 금곤옥계(金昆玉季)라고 일컬었다. 벼슬길에도 부모의 병보(病報)가 있으면 벼슬을 그만 두고 집에 돌아왔다. 묘는 하리면 부초리 함포산 자좌(咸浦山子坐)에 있다.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 1570-1652)이 묘갈명(墓碣銘)에서 이르기를, "하늘이 위대한 명성은 중씨(仲氏, 권벌)에게 주셨고, 완복(完福)은 맏분(權 )에게 내리셨네"라고 하였다. 시고(詩稿)가 있다.(醴泉郡邑誌 1770 1786 1895, 朝鮮 輿勝覽 1929, 醴泉文化 7輯 1994)
[醴泉의 金石文] : 심기(審己)ㆍ심언(審言, 居昌縣監)ㆍ심문(審問, 察訪)ㆍ심사(審思)ㆍ심변(審辨)ㆍ심행(審行, 生員)ㆍ심지(審止)ㆍ심례(審禮)의 아버지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시에 합격, 장수도 찰방, 돈령부 직장, 사복시 주부, 의흥 현감(義興縣監)을 지냈다. 묘는 하리면 부초리 남쪽 부용산(芙蓉山) 자좌(子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연안도호부사 김상헌(金尙憲)이 찬하였다.(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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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옥봉선생문집[玉峯先生文集, 1847]>에 실린 권위[權暐]의 기사로, 그 내용은, "祖考縣監府君碣陰記/ 我皇祖諱、 、字、伯懼、安東人、高麗太師/ 幸之後/ 也。太師而十世、有諱守洪、尙書左僕射、僕射而/ 五世、有諱靷、禮儀判書、判書有孫、諱、啓經、橫城縣監、贈吏曹參判、是於府君、爲曾祖也。祖諱、/ 琨、贈吏曹判書、考諱、士彬、成均生員、贈領/ 議政、公、娶坡平尹氏司宰監主簿諱塘之女、於/ 貞顯王后、爲從?妹也。以成化乙未六月四/ 日、生府君、幼岐?、異凡兒、稍長、與諸弟、學、文理/ 特達、筆力?勁、世稱聯璧、尤長於詩、淸淡雅麗、/ ▶ Page 063/ 與弟忠定公、有唱和詩軸、中正德丁卯進士、不/ 復留意於擧子業、中歲、居醴泉之渚谷里、時趙/ 靜庵先生鄕約、行郡中、推府君爲約正、擧行得/ 體、襄陽人、至今稱道之、以年德俱尊、嘉靖庚子、/ 特拜長木道察訪、秩滿、陞敦寧直長、乙巳、由司/ 僕主簿、出爲義興縣監、吏畏民懷、三年而遞、安/ 養十餘年、戊午七月二十六日、終于道村本第、/ 享年、八十四、十二月某日、葬于?基/ 殷豊/ 縣南/ 箭項山子坐之原、夫人密陽孫氏、高祖諱、孝丁、/ 三司左尹、曾祖諱、璟、禮賓寺尹、祖諱、次綱、成均/ ▶ Page 064/ 進士、考諱、蕃、進士、登文科、官至承文院判校、夫/ 人、生長名家、婦道甚修、胤?配德、母有多子、嘉靖癸未四月二十三日、卒于渚谷第、葬其地、至/ 戊午、與皇祖、合葬焉。生七男一女、長審已、次審/ 言、居昌縣監、次審問、自如察訪、次審思、忠順衛、/ 次審辨、有文才筆法、累擧不中、次審行、成均生/ 員、次審止、忠順衛、女適月城/ 李瑜、從仕郞、側室/ 子曰、審禮內外曾玄孫男女、無慮三百餘人。"이다.(www.koreastudy.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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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權의) [記事] : 한국문집총간(077_417a) 청음집(淸陰集, 1654)에 실린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의흥현감 권의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義興縣監權侯墓碣銘/ ...在豊基郡殷豊縣南箭項山子坐午向之原。夫人之卒。在嘉靖癸未。葬于醴泉郡渚谷里。至侯葬移?焉。侯始生。??然有..."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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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 【安東 權氏】/ 권의(權 ):1475(성종 6, 을미)~1558(명종 13, 무오). 본관 安東. 자는 伯懼. 호는 野翁. 士彬의 子. 1507년(중종 2) 進士가 된 이래 과거를 단념하고 醴泉 渚谷에 살면서 靜庵 趙光祖의 鄕約이 郡中에 실시될 때 約正에 추대되었으며, 1540년(중종 35) 長水察訪을 거쳐 義興縣監을 지냄. ▣참고:「碣陰記」(權暐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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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의 문화유산/ 간행년 : 2001/ 저자 : 서수용/ 발행처 : 안동문화원/ 7) 오선정(五先亭) :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소재, 안동 북후면 천등산 아래 도계촌(道溪村)은 의정공(議政公) 권사빈(權士彬)이 세상을 피해 산 곳이며, 야옹공(野翁公) 4형제분이 탄생한 땅이다. 이곳은 원래 높고 험한 산과 기절한 수석은 없으나 산세가 밝으면서도 순하며 토질이 비옥하며 아름다운 기운이 모인 곳이다. 중년에 의흥공(野翁 權 )과 제촌공(權檣)은 예천의 제곡(楮谷)으로 이거했다. 야옹공은 아들 일곱 분을 두었는데 여섯째 아들인 심행(審行)이 옛터에 그대로 살면서 대대로 유학의 규범을 지켰다. 이어 백공(伯公) 역시 저곡으로 이거하여 자손이 대대로 번창하였다. 중공(仲公)인 충재 선생은 삼척부사 재임 중 난정을 만나 벼슬을 버리고 환향 도중 봉화 유곡(酉谷)의 풍광을 아껴 장수의 터전을 삼았다. 기미년(1979) 봄에 동파(同派)의 후손들이 모여서 옛 터에 비석이라도 세워 기념하고자 하였으나, 정자를 세워 선덕(先德)을 기리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고 결의하고 일년이 못되어 정자가 완성되었다. ‘오선정’으로 이름지은 것은 이곳에서 다섯 분의 선조께서 계셨다는 데서 따온 것이다. 「오선정기문」은 17세손 관재 권숙과 1979년에 순천인 용전 김철희가 썼다.(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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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安東 權氏】/ 권의(權 ):1475(성종 6, 을미)~1558(명종 13, 무오). 본관 安東. 자는 伯懼. 호는 野翁. 士彬의 子. 1507년(중종 2) 進士가 된 이래 과거를 단념하고 醴泉 渚谷에 살면서 靜庵 趙光祖의 鄕約이 郡中에 실시될 때 約正에 추대되었으며, 1540년(중종 35) 長水察訪을 거쳐 義興縣監을 지냄. ▣참고:「碣陰記」(權暐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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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535) : 권의(다스린 업적을 남겼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4-06-10 照會 111)
→<예천의 자랑> 제4권(張炳昌 著 2004年) =716~7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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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68
쌀아지매농장(醴泉郡, 都市消費者 親環境農業 體驗行事 : 머물고 가는 ‘觀光 醴泉’ 만들기) [記事] :
쌀아지매 체험마을(개포면 가곡리) 친환경 체험행사가 2009년 7월 11일~12일, 1박2일 일정으로 개포면 가곡리 마을회관 및 쌀아지매농장과 예천군 주요 관광지에서 가족단위 체험 행사로 100여 명의 도시소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첫날인 11일에는 가곡리 마을회관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2009년 시범사업으로 추진한 ‘소비자와 함께 하는 e-농장’에서 고객간 인사나누기, 참붕어ㆍ미꾸라지 입식 체험을 하고 회룡포에서 수영하기와 쑥떡 만들어 새참 먹기를 했으며, 이후 쌀아지매 친환경체험학교로 옮겨 숯불구이와 별보기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둘째날인 12일에는 고향냄새가 솔솔 풍기는 시래기 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팀별로 흩어져 곤충연구소와 삼강주막, 천문대, 온천 등의 관람과 체험으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는 2008년까지는 무료로 실시했으나 2009년부터 도시소비자들이 직접 신청하고 가족당 5만 원의 체험비를 부담하는 유료체험행사로 열렸으며, 예천군 친환경 농산물의 우수성과 예천군의 주요 체험관광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쌀아지매농장 정옥례 씨는 “향후에도 계속 친환경체험행사로 도시소비자들에게 예천농산물의 우수성 홍보와 주변 체험광광지를 알려서 ‘머물고 가는 관광예천’을 이루는데 일조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예천군은 “FTA 등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인해 앞으로는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 생산만이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으로,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우수농산물을 생산하는데 행정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영동 記者 環境日報 2009년 07월 11일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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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記事]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카페/ 비룡산(飛龍山) 장안사(長安寺)에 적혀있는 법구경/ 글쓴이: 나그네/ 2007.10.04 22:45/
인생(人生) : 초대(招待)하지 않았어도/ 인생은 / 저 세상으로부터 찾아 왔고, / 허락(許諾)하지 않았어도 /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간다. //
그는 /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 떠나는 것이다. / 거기에 어떠한 탄식(歎息)이 있을 수 없다. //
언제나 남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아 / 남에게 베푸는 보시(布施) 보다 / 더 큰 선(善)은 없고, 이 보시가 / 극락(極樂)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악(惡)하게 백년(百年)을 사는 것 보다 / 바르게 하루를 사는 것이 / 더 보람 있는 삶이 아닌가. //
- 예천군 용궁면 비룡산 장안사 쉼터에 적혀있는 법구경 -//
장안사(長安寺)는 경상북도(慶尙北道)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향석리(鄕石里) 비룡산(飛龍山) 정상 부근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전통사찰총서에 따르면, 장안사는 759년(신라 경덕왕 8년)에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雲明)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에 대한 자세한 문헌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다.
예천군지(醴泉郡誌)에는 고려시대에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 명종대에 지도림(支道林) 스님이 장안사를 중창한 것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인(文人)으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서문(序文)을 찬술(撰述)한 이규보(李奎報)가 1197년(고려 명종 27년)에 이곳 용궁현의 원님이 베푸는 잔치가 끝난 뒤 시한 편을 남겼는데 제목은 ‘십구일에 장안사에서 묵으며 짓다’로 그가 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장안사는 지도림(支道林) 스님이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규보가 장안사에서 머물면서 지은 시는 "19일 장안사(長安寺)에서 자면서-이규보 //
圖山聊得滌鹿襟 況遇高僧支道林(도산료득척록금 황우고승지도림)/
長劍遠遊孤客思 一杯相笑故人心(장검원유고객사 일배상소고인심)/
天晴舍北溪雲散 月落城西竹霧深(천청사북계운산 월락성서죽무심)/
病度流年空嗜睡 古園松菊夢中尋(병도유년공기수 고원송국몽중심)//
[번역] : 산(山)에 이르니 번뇌(煩惱)가 쉬어지는구나./ 하물며 고승 지도림(支道林)을 만났음이랴. /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 한잔 차(茶)로 서로 웃으니 고인(古人)의 마음일세. /
맑게 갠 절 북쪽에는 시내의 구름이 흩어지고 / 달이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 병(病)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菊花)는 꿈속에서 작아드네." /
지둔(支遁, 314~366)은 동진(東晉)사람으로 지도림(支道林)이라고 한다. 지둔은 중국사상의 중요한 개념인 이(理)의 의미를 <반야경>사상으로 변화시켰다.
이(理)는 본래 우주적 질서 또는 자연적인 계절의 의미였으나, 반야사상의 영향으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로 해석해 중국인들에 소개했다.
"詠忘(영망 망각을 읊다)-李奎報(이규보) // 世人皆忘我 四海一身孤(세인개망아 사해일신고)/ 豈唯世忘我 兄弟亦忘予(기유세망아 형제역망여)/ 今日婦忘我 明日吾忘吾(금일부망아 명일오망오)/ 却後天地內 了無親與疏(각후천지내 요무친여소)/
[번역] : 세상 사람 모두 나를 잊어버려 / 온 세상에 오직 내 한 몸 외롭기만 하다. / 어찌 오직 남들이 나만을 잊었겠는가. / 형제도 모두 나를 잊을 것이오. / 오늘은 아내가 나를 잊고 / 내일엔 내가 나를 잊을 것이네. / 이런 뒤에 온 천지 안에서 / 친한 이도 소원한 이도 없음을 알게 될 걸세. /
용궁면 팔경 시비 : 龍州(龍宮)八景(용주(용궁)팔경)/
용궁면(龍宮面)은 1914년 예천군(醴泉郡)에 통합되기 전까지 용궁군(龍宮郡)이였으며 고려 때는 용주(龍州)로 불렸던 지역이다. 1997년. 8월에 회룡포(回龍浦)에 면민들이 시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抱琴明月(포금명월) 포금산의 밝은 달. 용궁상고 뒷산//
抱琴山上月團團, 丹桂初香白露寒,(포금산상월단단, 단계초향백로한,)/
此夜正堪彈一曲, 戱招仙鶴下雲端(차야정감탄일곡, 희초선학하운단)/
[번역] : 포금산에 뜬 달은 둥글기도 둥근데, / 계수나무 가을 향기 힌 이슬 차갑고나. / 이 밤사 퉁겨 내는 열두 줄 맑은 소리, / 선학은 너울너울 구름 끝에 춤을 추네./
武夷淸風(무이청풍) 무이의 맑은 바람. 무이리 뒷산 //
武夷山下問村翁, 何事漁樵老此中,(무이산하문촌옹, 하사어초노차중,)/
鷄犬不驚桑?好, 萬邦塵雨一淸風(계견불경상자호, 만방진우일청풍)/
[번역] : 무이촌에 묻혀 사는 할아범께 묻노니,/ 고기 잡고 나무하며 이렇듯 늙어 가오./ 뽕나무 그늘 아래 개와 닭이 함께 놀고,/ 온갖 세상 풍진 맑은 바람씻지 않소./
錦江漁火(금강어화) 금강의 고기 잡는 불빛. 금강은 錦川 //
日落風恬秋水淸, ?燈處處滅還明,(일락풍념추수청, 연등처처멸환명,)/
五更移艇西岩去, 宿鷺驚飛時一聲(오경이정서암거, 숙로경비시일성)/
[번역] : 해는 지고 바람 자니 가을 금강 옥같은데,/ 고기잡이 초롱불빛 여기저기 번득인다/ 오경에 배를 돌려 서암으로 돌아오니,/ 잠자던 적백로 끼욱 끼욱 놀라 나네/
臥牛落照(와우낙조) 와우산의 낙조. 용궁초교 뒷산//
紫翠橫空夕鳥飛, 牛山千古又斜暉,(자취횡공석조비, 우산천고우사휘,)/
扶桑若木皆常理, 笑殺齊人淚滿衣(부상약목개상리, 소살제인루만의.)/
[번역] : 저녁 노을 붉게 타고 새들 바삐 나니,/ 와우산엔 변함 없이 석양이 지는구나/ 해 뜨고 지는 것은 변함 없는 진리 거늘, / 가소롭다 사람들아 슬퍼 한들 어이하리//
飛龍歸雲(비룡귀운) 비룡산 걸친 구름. 향석리 앞산 //
山似飛龍雲似烟, 相從日夕在南天,(산사비룡운사연, 상종일석재남천,)/
降詳下雨多陰德, ?我?鄕百千年(강상하우다음덕, 풍아재향백천년.)/
[번역] : 뫼 굽이는 용이요 구름은 연기인데,/ 서로 좋아 어우러져 남천에 머물더니/ 하느님 음덕으로 복된 비 내려주네,/ 우리 고장 천년만년 풍년을 누리리라./
天竺疎鐘 (천축소종) 천축산 저녁 종소리. 향석리 뒷산 //
數峰天竺揷蒼空, 往往疎鐘落晩風,(수봉천축삽창공, 왕왕소종낙만풍,)/
認是慈悲諸佛意, 一聲警世到吾東(인시자비제불의, 일성경세도오동.) /
[번역] : 천축산 봉우리들 창공에 솟았는데,/ 이따금 범종소리 저녁바람 타고 오니/ 필시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이리라,/ 우리동방 깨우치는 은은한 울림이여./
?雲樵歌(알운초가) 알원산의 나뭇꾼 노래. 알운산(막을알) 우망리 뒷산 //
白雲갈處有樵人, 一曲長歌萬壑春,(白雲갈처유초인, 일곡장가만학춘,)/
O俗但言靑截彼, 不知肉吹妙傳神(O속단언청절피, 부지육취묘전신.)/
[번역] : 흰구름 깊은 골에 나무하는 저 초동들, / 한가락 긴 노래에 산골에 봄은 온다. / 소박한 민속 가락 입으로만 이어 오니, / 창법 없이 전해오는 신묘한 그 노래여. /
喧坪稻畵(훤평도화) 훤이 들의 벼꽃. 읍부리 큰들(살미 앞들)//
大野茫茫接遠天, 稻花點綴正堪憐,(대야망망접원천, 도화점철정감련,)/
遺黎不識傷時恨, 猶向西風樂有年(유여불식상시한, 유향서풍낙유년.)/
[번역] : 넓디 넓은 훤이 들판 먼 하늘 닿았는데,/ 벼꽃 핀 비단물결 정말로 아름답다 / 검은 머리 저 백성들 피땀 고생 다 잊고서, / 서풍에 땀 씻으며 풍년을 구가하네. /
龜溪 金榮洛(구계 김영락, 1831-1906) 본관은 김해 만년에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의 직함을 받은 은거 文人이었다. 龍州八景(용주팔경)의 출처는 post0008@yah00.co.kr 이승희 / 출처 :나그네(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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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