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1979:김곤僉樞
작성자장병창 @ 2009.08.13 06:52:58
예천의 자랑(1979) : 개포면 경진리 출신 김곤 첨지중추부사

---



  김곤(金곤) :


  1596(선조 29)-1678(숙종 4), 개포면 경진리 검암(劒岩) 출신, 자는 자진(子珍), 호는 검암(劒岩), 본관은 예안,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손, 시조 상(尙)의 16세손, 윤안(胤安)의 손자, 좌승지 득선(得先)의 3자, 원의 동생, 오ㆍ자ㆍ단의 형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40세 때인 1635년(인조 13) 증광 생원시에 2등 20위로 합격, 성균관 원생들과 같이 수업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중에 성균관 유생(成均館儒生)들이 모두 당황하여 피난하기에 정신이 없었으나, 그는 태연히 매음 나이준(梅陰羅以俊), 재종제 김강(再從弟金鋼)과 더불어 5성 위판(五聖位板 : 大成殿에 모셨던 孔子, 顔子, 贈子, 子思, 孟子의 神主로 當時 社會에서는 가장 所重히 여기는 精神的 기둥)을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왕을 따라가 그 곳 개원사(開元寺)에 모셔 봉안(奉安)하였다.

  현감을 거쳐 1648년(인조 26) 식년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하여 제용감이 되고, 현감, 성균관 전적을 거쳐 사헌부 감찰일 때 80세가 넘은 노모(老母)를 모시고자 사직하여 낙향하였다.

  비록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정성을 다하여 모셨고, 어머니를 모심에 따뜻하고 추운 것이 지나칠까 걱정하여 침소(寢所) 곁을 떠나지 않고, 매일 저녁 불을 지핌에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몸소 행하였어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고 항상 부모 앞에서는 즐거운 모습으로 대했고,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기에 힘썼다.

  그 후 1656년(효종 7)에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제수되었으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나아가지 않다가, 어머니가 굳이 권하므로 상경하여 뒤미쳐 병조 좌랑(兵曹佐郞)이 되었다.

  얼마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경진리(京津里) 검바우에 돌아와 어머니를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니, 향당(鄕黨)이 그의 효도와 우애에 모두 감복했다.

  1675년(숙종 1)에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고, 이어 1677년(숙종 3)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묘는 유천면 손기리 손동 사향(蓀洞己向)에 있다. 향현사(鄕賢祠)인 개포면 경진리 검바우의 옥동리사(玉洞里社)에 옥계 신달정(玉溪辛達廷), 서계 정언굉(西溪鄭彦宏)과 함께 배향(配享)되었으나, 대원군(1868) 때 훼철되고 그 위패(位牌)와 이름을 쓴 사발을 묻고 봉분(封墳)한 것이 현재 남아 있다.

  문집(文集)이 있었으나 산실(散失)로 미간(未刊)되었다. 그는 외유내강(外柔內剛)하고 부지런했고, 조금도 오만하지 않았고, 비루한 말씨를 입에 담지 않았고, 평생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남을 도움에 힘쓰고 사치를 몰랐다.

  성품이 대쪽같아서 의리의 구분과 시비의 판단이 일검양단(一劍兩斷)하 듯 하니, "검암(劍岩)"이란 아호(雅號)는 비록 그 살던 마을 이름에서 유래했으나 성격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평소에 자손을 훈계하되, "부지런히 배우고 착한 것을 좋아하라. 늘 성현(聖賢)을 스승으로 삼아 교만하지 말며, 삼가고 몸을 닦으라."라고 하더니, 임종에 앞서 시를 읊어 이르기를, "사십이 넘어 과거(科擧)하여 공이 없는데 충효를 다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노니, 자손들은 내 뜻을 따라 허물없이 살아가라"라고 하니, 선비 기질이 이와 같았다.

  그의 후손들이 분적하여 본관을 옥천(玉川)으로, 그를 시조로 하고 있으나, 분관된 연유는 알 수 없다.

  (司馬榜目, 文科榜目, Naver 2001,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1841, 醴泉郡誌 1939, 朝鮮 輿勝覽 1929, 墓碣銘, 禮鄕醴泉 1994)

  [醴泉의 金石文] : 증 좌승지 득선(得善)의 아들, 태일(兌一, 文科, 司憲府執義)의 양아버지이다. 1648년(인조 26)에 생원시에 합격, 제용감 참봉, 종묘서 봉사(宗廟署奉事),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을 지내고 귀향하여 모친을 봉양하였다. 그 후 전적, 공조 좌랑, 1677년(숙종 3)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묘는 유천면 손기리 손동(蓀洞) 말향(末向)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후손 사간원정언 이만(履萬)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즉위년 11월 22일 (정축) 원본110책/탈초본6책 (14/16) 1649년 順治(淸/世祖) 6년/ 申?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申?爲延安縣監, 韓震琦爲司贍直長, 金以載爲奉常奉事, 金곤爲宗廟奉事, 李時?爲刑曹參判, 鄭惟燾爲顯陵參奉, 李弘淵爲司藝, 吳挺緯爲正言, 柳俊昌爲掌令, 申濡爲承旨, 李惟明爲典籍, 韓振溟爲平山府使, 沈光洙爲進善, 李墩爲禧陵參奉, 徐元履爲白川郡守, 李弘淵爲輔德, 鄭維城爲刑曹參議, 李基祚兼同知經筵, 李時?兼知義禁, 黃?爲司僕主簿, 宋根爲濟用奉事, 李培元爲工曹參議, 徐挺然爲富平府使, 李哲英爲通津縣監, 呂爾載兼知義禁, 柳後聖爲金浦郡守, 申濡爲左副承旨, 沈之源爲右副承旨, 金益熙爲同副承旨。吏批政事(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원년 7월 13일 (갑자) 원본114책/탈초본6책 (9/24) 1650년 順治(淸/世祖) 7년/ 李?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判書韓興一進, 參判尹順之進, 參議尹絳呈辭受由, 左副承旨李之恒進。以李?爲左承旨, 李梓爲執義, 申冕爲兵曹參議, 金壽仁爲新昌縣監, 李以存爲晉州牧使, 金益禧爲高山察訪, 曺時亮爲校書著作, 李碩基爲典簿, 兪?爲刑曹佐郞, 河東縣監崔濟, 河陽縣監兪亨吉相換, 鄭昌詩爲活人別提, 姜允亨爲直講, 金孝建爲定平府使, 金志顔爲歸厚別提, 金곤爲典籍, 權?爲副修撰, 姜?爲宗簿主簿。(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7년 윤5월 6일 (계축) 원본139책/탈초본7책 (8/8)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羅以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羅以俊爲兵曹佐郞, 尹鏶爲承旨, 金振爲承旨, 金곤爲典籍, 李弘淵爲兵曹參議, 李慶億爲直講, 李厚源爲左參贊, 李時白爲延陽君, 閔洛爲瓦署別提, 金振爲左承旨, 尹鏶爲同副承旨, 沈世鼎爲司諫。政軸(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7년 7월 3일 (기유) 원본140책/탈초본7책 (10/10) 1656년 順治(淸/世祖) 13년/ 李端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李端相爲副校理, 南海宇爲郭山郡守, 李時楷爲大司諫, 金萬均爲注書, 元相爲竹山府使, 朴世城爲兵曹正郞, 黃道宏爲承文正字, 權大載爲承文正字, 金곤爲學錄, 全洽爲典籍, 成後益爲司饔主簿, 李?爲工曹正郞, 曺致中爲監察, 姜復先爲典籍, 吳挺垣爲司?正, 睦嗜善爲工曹正郞, 白後淸爲樂安郡守, 李泰淵爲弼善, 沈儒行爲輔德, 許積爲右參贊, 郭?爲禮曹佐郞, 李德恒爲松禾縣監, 閔?爲監察, 安汝?爲軍器判官, 朴世模爲文學, 許坵爲奉常判官, 金三樂爲大丘府使, 南龍翼爲副校理, 李時郁爲軍器僉正, 金 爲工曹佐郞, 李延年爲獻納, 金卨爲禮賓正, 睦兼善爲直講, 李慶徽爲修撰。政事(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효종 8년 1월 29일 (임신) 원본144책/탈초본8책 (12/14) 1657년 順治(淸/世祖) 14년/ 閔熙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判書洪命夏進, 參判吳挺一, 副摠管未肅拜, 參議南老星病, 右承旨洪處亮進, 以閔熙爲弼善, 安後說爲司書, 金南重爲知敦寧府事, 李元禎爲典籍, 朴世基爲龍仁縣監, 睦兼善爲副修撰, 宋奎禎爲社稷參奉, 許?爲童蒙敎官, 沈世鼎爲兼中學敎授, 柳時禎爲中和府使, 李元禎爲兵曹佐郞, 鄭樸爲典籍, 閔維重爲兵曹正郞, 睦兼善爲持平, 李起?爲兼春秋。沈世鼎·閔熙·金益廉·黃催耉·鄭始成·安後稷·洪柱三·權格·權尙規·李象震·金곤爲兼春秋。洪南立爲司藝, 金澄爲兵曹正郞。傳于吏批曰, 正言·京試官加望。以鄭昌燾爲正言, 閔熙爲全南道, 及寒食祭典祀官, 依前例蔭官中生進人員, 通融交差之意, 敢啓。傳曰, 知道。(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3월 4일 (병술) 원본252책/탈초본13책 (21/27)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金곤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政事, 副護軍金곤, 副司果金奐。(www.history.go.kr 2009)

---

  김곤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8월 9일 (기미) 원본255책/탈초본13책 (17/21)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元振洙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元振洙爲尙州營將, 李以當爲武兼, 申?爲加里浦僉使, 成遇夏爲濟物萬戶, 南龍翼爲知事, 李?·權曦爲五衛將, 呂聖齊單付同知, 李孝孟·金곤爲訓鍊習讀, 李萬徹爲武兼, 權說爲五衛將, 黃?爲訓鍊院正, 吳斗寅爲副摠管, 鄭樸·權大載·李守恒·權愈爲副護軍, 閔蓍重·李之翼·金海一·金奐·柳命堅爲副司直, 吳始大·黃?·韓時翊爲副司果, 睦林奇爲內禁將, 金益勳爲忠淸兵使, 文尙彪爲訓鍊僉正, 申鍵爲宣沙浦僉使, 朴新胄·元振洙爲副護軍。點馬別監, 忠淸道河重圖, 黃海道 朴進益, 慶尙道魚壽一, 平安道李東泌, 咸鏡道洪萬濟。李?爲曹司衛將, 睦林奇爲副護軍。(www.history.go.kr 2009)

---

  →예천의 자랑(188) : 김곤(허물 없이 살아가라)(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2-12 照會 154)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278~279쪽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