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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88:朝鮮때강씨들(祝문화원)
작성자장병창 @ 2009.08.25 06:51:22
  예천의 자랑(1988) : 예천의 조선시대 강씨들(附 예천문화원, <예천문화재대관> 출판...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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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희(姜景熙) : 1871-1909, 본관은 진주, 회백(淮伯)의 후손, 익형(益馨)의 아들, 1893년(고종 30)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비서랑(秘書郞)을 지냈다.(嶠南誌 1937, 國朝榜目, 醴泉郡誌 2005)

강광윤(康光胤) : 자는 명서(明瑞), 호는 만포(晩圃), 본관은 신천, 귀정(貴亭)의 후손, 군수 이청(以淸)의 아들, 인(璘)ㆍ헌(副護軍)의 아버지이다. 부호군을 지냈다. 묘는 감천면 관현리에 있는데, 선성 김회진(金晦鎭)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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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극형(姜克衡) :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진주,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찰방(察訪)이 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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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급(姜汲) : 1614(광해군 6)-?, 용궁현 출신, 자는 만용(萬用), 본관은 진주, 여성(汝성)의 손자, 생원 윤선(胤先)의 아들, 순(淳)ㆍ옥(沃)ㆍ성(城)의 형,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57년(효종 8) 식년 생원시에 3등 48위로 합격하였다. 올바른 행의(行誼)로 이름이 있었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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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긍 : 호명면 원곡리 안찔 출신, 자는 직경(直卿), 본관은 진주, 진사 준(進士濬)의 양손자(養孫子), 음사(蔭仕)로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를 지냈다.(襄陽誌 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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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내상(姜來相) : 자는 사선(士善), 호는 석운(石雲), 본관은 진주, 상선(象先)의 후손, 응해(鷹海)의 아들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894년(고종 31) 식년 진사시에 3등 1010위로 합격하였다. 1902년(광무 6) 5월 5일 89세로서 종2품으로 승품(陞品, 嘉善大夫)되었다. 글로 유명하였다.(司馬榜目, 嶠南誌 1937, 宮內府來文73 奎17757 議政府篇, 嶠南誌 1937,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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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담(姜담) : 1528(중종 23)-1594(선조 27), 용궁현(龍宮縣) 출신, 호는 한천(寒泉), 본관은 진주, 진(震)의 동생, 교수(敎授)를 하였고, 문행(文行)이 있었다.(嶠南誌 1937,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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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립(姜립) : 1534(중종 29)-1587(선조 20), 용궁현(龍宮縣) 출신, 자는 중흡(仲洽), 호는 영수(穎수), 본관은 진주, 진(震)의 동생, 음사로 교수(敎授)를 지냈고, 문학(文學)에 능했다.(醴泉郡誌 1988,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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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한(康相漢) : 조선의 문관, 호는 만경(晩耕), 본관은 신천(信川), 광윤(光胤)의 13세손,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지냈다. 유고(遺稿)가 있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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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姜瑞) : 용궁현(龍宮縣) 출신, 조선의 무관(武官), 본관은 진주, 영(霙)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사(僉使)를 지냈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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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세경(姜世卿) : 호는 운계(雲溪), 본관은 진주, 계굉(繼宏)의 아들, 조선 세종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嶠南誌 1937, 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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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술선(姜述先) : 1603(선조 36)-?, 용궁현 출신, 호는 구계(龜溪), 본관은 진주, 응청(應淸)의 증손자, 학생 여벌(汝벌)의 아들, 복선(復先)ㆍ상선(象先)의 형, 유학(幼學)으로서 1642년(인조 20) 식년 생원시에 3등 73위로 합격하였다. 우애(友愛)가 뛰어나고 문장에 능했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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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시룡(姜時龍) : 조선의 문관, 보문면 간방리 출신, 본관은 진주, 장령 종덕(掌令宗德)의 후손, 음사(蔭仕)로 승문원 인의(承文院引儀)에 올랐다.(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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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수(姜靈秀) : ?-1937, 보문면 간방리 간실(澗室) 출신, 자는 응삼(應三), 호는 인당(忍堂), 본관은 진주, 동추 순국(同樞順國)의 손자, 음사(蔭仕)로 사릉 참봉(思陵參奉)이 되었다. 경북도내 거유(巨儒)로서 명성이 높고, 학자로서 일생 동안 훈학(訓學)에 전념하였는데, 매일 100여 명이 수학하여 많은 선비를 배출시켰다. 현재도 학계(學契)가 지속되고 있다. 문집이 간행되었다. 그는 숭조 정신(崇祖精神)이 지극하여 일남재(逸南齋), 간오정(澗塢亭) 등의 건립에 수장을 맡아서 많은 비용을 써가면서 완공시켰고, 효행이 특출하였다. 그는 일본말을 배우는 학교에 후손을 보내지 않았고, 일생을 유학자로 지내었다. 묘는 보문면 작곡리 읍실(邑室)에 있고, 학계(學界)에서 비석을 세웠다.(醴泉郡誌 1939, 禮鄕醴泉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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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姜遇) : 조선 선조 때, 감천면 천향리 정전(井田) 출신, 본관은 진주, 종덕(宗德)의 손자, 성주 판관(星州判官)을 지냈다. 묘는 천향리 정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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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국(中宗 67卷 25年(1530) 2月 15日(乙亥) 002 / 헌부가 경상도 예천의 강윤국·이윤금의 전지 문제에 관한 송사를 아뢰다) [實錄] : 헌부가 전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경상도 예천(醴泉)에 사는 유학(幼學) 강윤국(姜潤國)이 이윤금(李尹今)과 서로 전지(田地) 문제 때문에 비안(比安) 관아에서 송사(訟事)를 하고 있는데 윤금의 아들 이정명(李精明)은 바로 사도시 부정(司?寺副正) 권오기(權五紀)의 얼녀서(孼女壻)15745)입니다. 그러므로 오기가 편지로 비안 현감(比安縣監) 김언상(金彦庠)에게 청탁(請託)을 했는데, 강윤국이 곧 언상의 답장 편지를 구득하여 그것을 점련(粘連)15746) 해서 헌부에 올렸으므로, 그 답장 편지를 보니‘마땅히 후하게 판결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하오니 사정(私情)을 썼는가의 여부(與否)는 문안(文案)을 취하여 고열(考閱)해서 마땅히 추고해야 합니다. 사송하는 사이의 일에 대하여 서로 통한 서간에 형적이 이미 나타났으니 권오기와 김언상은 먼저 파직시키소서.”하니, 전교하였다.“오기와 언상은 마땅히 먼저 파직시켜야 할 것이나 윤국은 이정명과 원척(元隻)15747) 간이고 보면 언상의 답장 편지를 얻을 만한 형세가 없다. 이러한 사세로 미루어 보면 위조(僞造)할 이치도 없지 않으니 먼저 오기의 득실을 추고한 다음에 파직시키는 것도 늦지 않다.”/【원전】17집 195면/【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농업-토지매매(土地賣買)/ [註 15745]얼녀서(孼女壻) : 첩이 낳은 딸의 사위. ☞ / [註 15746]점련(粘連) : 원안(原案) 끝에, 어느 일에 증거될 만한 물증의 기록을 붙여 참조자의 참고로 삼게 하는 것. ☞ / [註 15747]원척(元隻) : 원고(原告)와 피고(被告). ☞ / 정보제공기관 :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제공기관 : 국사편찬위원회(www.knowledge.go.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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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윤선(姜胤先) : 조선 선조 때, 용궁현(龍宮縣) 출신, 호는 구봉(龜峰), 본관은 진주, 여성(汝성)의 아들, 선조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고, 문명(文名)이 있었다.(嶠南誌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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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자검(姜子儉) : 1436(세종 18)-1513(중종 8), 본관은 진주, 장령 종덕(宗德)의 4자, 문찬(文贊)ㆍ문필(文弼)의 아버지이다. 충무위 부사직을 지냈다. 묘는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 산14번지에 부인과 합장으로 있다.(인터넷 야후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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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자보(姜子保) : 보문면 간방리 출신, 호는 우룡재(寓龍齋), 본관은 진주, 예천 입향조인 감찰(監察) 종덕(宗德)의 3자, 용양위부사용 계굉(繼肱)의 아버지이다. 자신(子愼)ㆍ자의(子儀)의 동생, 자검(子儉)의 형, 조선 세종 때 음사(蔭仕)로 벼슬이 부사직(副司直)이었고, 문행(文行)이 있었다. 묘는 풍양면 하풍리 산 갑좌(甲坐)에 있고, 경자년 가을에 갈석(喝石)을 세우고 1983년 3월 상석과 장군석을 새로 세웠다. 아들 계굉(繼肱)은 용양위 부사용이다.(嶠南誌 1937, 인터넷 야후 2001, 인터넷 gangssi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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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만(姜濟萬) : 1668(현종 9)-?, 자는 자중(子重), 호는 사익재(四益齋), 본관은 진주, 상선(象先)의 손자, 주경(周鏡)의 아들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11년(숙종 37) 식년 생원시에 3등 57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嶠南誌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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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姜濬) : 호명면 원곡리 사람, 자는 언시(彦施), 본관은 진주, 빙고별제(氷庫別提) 영숙(永叔)의 아들, 연복군 장말손(延福君張末孫)의 손녀 사위, 유학(幼學)으로서 1525년(중종 20) 식년 진사시에 2등 14위로 합격하였다. 1546년(명종 1) 6월 21일에 왕이 의금부 나장(義禁府羅將)을 성균관(成均館)으로 보내어 유학 강준(幼學姜濬) 등 12인을 붙잡아 의금부(義禁府)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이는 어젯밤 2경(二更)에 성균관(成均館)의 반수(泮水) 가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는 군사의 뺨을 유생(儒生)들이 사람을 시켜 때렸기 때문이었다.(明宗實錄, 襄陽誌 1661,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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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일(姜志一) : 보문면 간방리(澗芳里) 출신, 본관은 진주, 동추 순국(同樞順國)의 손자, 음사(蔭仕)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醴泉郡誌 193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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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일(姜志逸) : 보문면 간방리 출신, 자는 성언(成彦), 본관은 진주, 동추 순국(同樞順國)의 손자, 시도(時道)의 맏아들, 음사(蔭仕)로 도사(都事), 동추(同樞)를 지냈다.(醴泉郡誌 193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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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재(姜志載) : 자는 지언(志彦), 본관은 진주, 시도(時道)의 아들, 음사(蔭仕)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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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룡(姜振龍) : 본관은 진주, 서(瑞)의 아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판관(判官)을 지냈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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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선(姜昌先) : 용궁현(龍宮縣) 출신, 본관은 진주, 복선(復先)의 동생,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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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춘석(姜春碩) : 조선 전기, 감천면 천향리 정전(井田) 출신, 본관은 진주, 종덕(宗德)의 손자, 성균관 진사시(成均館進士試)에 합격하였다. 감천면 마촌리(馬村里) 자자골에 비석(碑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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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항(姜항) : 호명면 원곡리 출신, 자는 직경(直卿), 본관은 진주, 준(濬)의 양손자(養孫子), 음서(蔭敍)로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가 되었다.(襄陽誌 1661, 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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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헌(康헌) : 1677(숙종 3)-1737(영조 13), 자는 수옥(秀玉), 호는 석계(石溪), 본관은 신천, 부호군 광윤(光胤)의 2자, 만적(萬敵)ㆍ만걸(萬傑)의 아버지이다.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묘는 감천면 관현리 사향(巳向)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64년 3월에 선성 김회진(金晦鎭)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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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진(康顯晋) : 1806(순조 6)-1881(고종 18), 자는 사원(士元), 호는 유은(柳隱), 본관은 신천(信川), 고려 보승랑장 인석(保勝郞將仁碩)의 후손, 기범(箕範)의 장자, 용진(用晋)의 형이다. 학문을 즐겨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46년(헌종 12) 식년 진사시에 1등 5위로 합격하였다. 유집(遺集)이 있다.(醴泉郡誌 1988, 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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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홍제(姜弘濟) : 1602(선조 35)-1667(현종 8), 유천면 가리 가동(佳洞)의 입향조이다. 자는 붕래(朋來), 본관은 진주, 호명면 원곡리 입향조인 사필(士弼, 中宗 때의 吏曹判書, 號는 笑庵)의 손자, 군자감주부 긍의 3자, 숙(璹)ㆍ경(暻)의 아버지이다. 음사(蔭仕)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올랐다. 통정대부이다. 묘는 가동의 앞산인 개포면 금리 산43번지 원봉(圓峰)의 임좌(壬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93년에 동래 정양수(鄭亮秀)가 지었다.(醴泉郡誌 1939, 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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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홍주(康鴻周) : 자는 낙현(樂賢), 호는 우창(友滄), 본관은 신천, 일농 인환(一農璘煥)의 아들, 학행이 뛰어나고,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유집(遺集)이 있다.(醴泉郡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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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홍헌(姜弘憲) : 1602(선조 35)-?, 호명면 원곡리 출신, 자는 헌지(憲之), 본관은 진주, 부제학 사필(士弼)의 손자, 군자감주부 환의 아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1633년(인조 11) 식년 생원시에 3등 52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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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환(姜환) : 호명면 원곡리 출신, 본관은 진주, 감사 사필(監司士弼)의 아들, 조선 선조 때 음사(蔭仕)로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에 올랐다.(醴泉郡邑誌 1770, 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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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문화원, <예천문화재대관> 출판...축하합니다.

  예천문화재대관(慶北 醴泉文化財大觀 發刊) [記事] :

  예천문화원(원장 김종배)은 지역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각종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예천문화재 대관을 발간했다고 2009년 8월 24일 밝혔다.

  예천군으로부터 8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만든 이 책자에는 예천 지역에 산재한 국가지정 문화재, 경상북도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등 모두 83점의 문화재가 상세한 설명과 사진, 건물도면 등과 함께 소개돼 있다.

  특히 영문으로도 번역돼 있어 관심있는 외국인들도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예천문화원은 우선 1천500부를 발간해 경북지역 각 시군청을 비롯해 전국 문화원, 국공립 도서관, 박물관 등에 배부할 계획이다.

  예천문화원 관계자는 "작년 초에 예천 문화재대관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면밀한 검토와 보완을 거쳤으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홍상선 문화재위원, 향토사학자 김봉균 선생의 감수를 받아 신뢰성을 한층 높였다"라고 말했다.

  (김용민 記者 聯合뉴스 2009.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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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문화재대관(醴泉文化財大觀) [冊] : (주)눌와에서 제작한 책으로, 2009년 6월 15일에 예천군의 지원받아 예천문화원에서 발행하였다.

   311쪽, 사진, 도표, 29cm이다.

  목차는 <예천문화재대관>을 펴내며(예천문화원장 김종배) =4/ 예천의 정체성을 세우다(예천군수 김수남) =6/ 예천문화의 맥을 잇다(예천군의회 의장 정영광) =7 / 예천의 역사와 문화 =10/

  국가지정문화재(보물 17점, 명승 3점, 천연기념물 3점, 중요무형문화재 2점, 중요민속자료 3점) =34/

  경상북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9점, 무형문화재 2점, 기념물 2점, 민속자료 5점, 문화재자료 27점) =140/

  문화재 영문설명 =294/ 지역별 문화재목록 308/이다.

  (作成 張炳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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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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