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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1989:권만判書(祝예천/예천방문491)
예천의 자랑(1989) : 유천면 성평리 출신 권만 예의판서(附 예천군의 국립테라피단지와 산양삼, 정부 사업으로 확정...축하합니다/예천방문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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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權蔓) :
?-1423년(세종 6), 유천면 성평리 덕달리 뒷들(後坪) 출신, 본관은 안동, 예천군 한공(醴泉君漢功)의 증손자,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 판서에까지 이르렀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경주 부윤 겸 병마절도사(慶州府尹兼兵馬節度使)로 벼슬이 낮아져서 후세 사람들이 절도사(節度使)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86 1895, 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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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實錄] : 1409년(태종 9) 7월 24일 영해부사를 이임하였고, 1413년(태종 13) 7월 16일에 말 사육 문제로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권만을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차관으로 파견하였다. 1414년(태종 14) 10월 18일 왕이 권만과 더불어 진도(珍島)가 목장으로서 적당한가를 조사 의논하였다. 1416년(태종 16) 4월 17일 경주 안동병마도절제도사(慶州安東兵馬都節制使) 권만을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로 삼았고, 이듬해 8월 20일에는 경상도 병마도절제사로 삼았다. [世宗實錄] : 1419년(세종 1) 5월 12일 도체찰사가 되었는데, 이 때에 권만이 어머니의 상(喪)으로 예천군에 돌아가 있더니, 상을 마치기 전에 다시 벼슬을 받아 역마(驛馬)로 불리어갔다. 동년 6월 25일에 대마도로 들어가는 왜적을 방비하기 위해 권만 등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삼았다. 그 이튿날 왕이 길을 떠나는 권만을 환관을 보내 전송하였다. 동년 7월 7일 권만을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로 삼아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였다. 1419년(세종 1) 7월 17일 권만을 경상도 수군도절제사로 삼았다. 1420년(세종 2) 2월 6일에는 경상좌도 수군도절제사 권만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1421년(세종 3) 5월 14일에는 병조(兵曹)에서 대열(隊列)할 때의 편제에 대해 왕에게 아뢰었는데, 별시위절제사(別侍衛節制使) 권만이 우소(右所)에 속하에 되었다. 그 후 전라도 병마도절제사(1421.6.2), 중군 총제(中軍摠制, 1421.9.25)에 임명되었으나 1422년(세종 5) 2월 5일에 죽으니 왕이 부의(賻儀)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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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7월 24일(갑오) 2번째 기사/ 경차관 보고로 평민을 관둔전에 역사시킨 성주 목사 이백지 등을 자원 부처시키다/ 성주 목사(星州牧事) 이백지(李伯持)·영해 부사(寧海府使) 권만(權蔓)·지울주사(知蔚州事) 양오복(楊五福)·지영주사(知永州事) 이백함(李伯含)·울진 만호(蔚珍萬戶) 권소(權紹)·횡천 감무(橫川監務) 구익령(具益齡)·가평 감무(加平監務) 김욱(金郁) 등을 자원(自願)에 따라 부처(付處)하였으니, 경차관(敬差官)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평민(平民)을 역사시켜 관둔전(官屯田)을 경작하였습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5장 B면/ 【영인본】 1책 499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농업-전제(田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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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7월 16일(계사) 1번째 기사/ 말 사육 문제로 전흥·권만·김정준 등을 경차관으로 파견하다/ 경차관(敬差官)을 나누어 보냈다. 순금사 대호군 전흥(田興)을 경기·충청도에 보내고,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권만(權蔓)을 경상도·전라도에 보내어 말을 기를 만한 땅을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호조 참의 김정준(金廷雋)을 제주(濟州)에 보내어 먼저 양마(良馬) 1백여 필을 추쇄(推刷)하여 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4장 B면/ 【영인본】 1책 677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육운(陸運)(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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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10월 18일(무자) 2번째 기사/ 진도가 목장으로써 적당한가를 조사·의논하다/ 대호군(大護軍) 전흥(田興)과 중관(中官) 노희봉(盧希鳳)에게 명하여 가서 진도(珍島) 목장(牧場)을 보게 하였다. 처음에 전 총제(摠制) 홍유룡(洪有龍)·병조 참의 권만(權蔓) 등이 아뢰기를, “ 진도(珍島)는 목장(牧場)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하여, 전년(前年)에 목책(木柵)을 설치하도록 명하고 백성들을 옮겨서 거주하게 하고, 이어서 군수(郡守)가 우도 수군 도만호(右道水軍都萬戶)를 겸하게 하였다. 임금이 전라 감사(全羅監司)의 보고에 인하여 내섬 소윤(內贍少尹) 이위(李衛)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이위가 지군사(知郡事) 이각(李恪)과 함께 와서, “섬의 풀이 모두 띠[茅]이므로 말이 먹지 못하여 파리하였습니다.”하니, 김승주(金承?)가 아뢰었다. “ 진도(珍島)의 풍토(風土)는 비록 제주(濟州) 와 같지 않으나, 반드시 각처 목장에 못지 않을 것이니, 가볍게 버릴 수 없습니다.” 임금이, “ 김정준(金廷雋) · 이각(李恪) · 이위(李衛) 등이 모두 말하기를, ‘수초(水草)가 부족하여 목장(牧場)의 땅으로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이를 버리고자 한다.”하였으나, 김승주가 굳이 청하니 임금이 뜻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전흥과 노희봉 등을 보내었다. 전흥 등이 복명(復命)한 것도 또한 이위 등의 말과 같았다./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34장 A면/ 【영인본】 2책 42면/ 【분류】 *교통-마정(馬政) / *호구-이동(移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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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4월 17일(기묘) 3번째 기사/ 권만·신열의 관직을 다시 임명하다. 하윤의 청으로 변계량 등의 관직을 추가하다/ 경상도(慶尙道)의 경주 안동도 병마 도절제사(慶州安東道兵馬都節制使) 권만(權蔓)을 고쳐서 좌도 병마 도절제사(左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상주 진주도 병마 도절제사(尙州晉州道兵馬都節制使) 신열(辛悅)을 고쳐서 우도 병마 도절제사(右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경승부 윤(敬承府尹) 변계량(卞季良)에게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을, 직예문관(直藝文館) 박희중(朴熙中)에게 지제교 겸 춘추관 기주관(知製敎兼春秋館記注官)을 가했다. 처음에 좌의정 하윤(河崙)이 변계량에게 위촉하여 그의 선묘(先墓)의 신도비(神道碑)의 명문(銘文)을 짓게 하고, 박희중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고, 임금에게 아뢰기를, “이것은 신(臣) 일가(一家)의 대사(大事)입니다. 계달(啓達)한 뒤에 진양(晉陽) 3718) 으로 보내어 입석(立石)하고자 합니다.”하니, 임금이, “내가 경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알고 있다.”하였다. 하윤이 이어서 아뢰기를, “이 비석은 영구히 남을 것이니, 비문을 지은 자와 비문을 쓴 자가 훌륭한 직함이 없습니다. 빌건대, 변계량 에게는 관각(館閣)3719) 을 가하고, 박희중 에게는 자급(資級)을 가하소서. 만약 관직의 궐원(闕員)이 없다면 지제교 겸 관각(知製敎兼館閣)의 직함을 띠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두 사람은 모두 하윤 의 문생(門生)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30장 A면/ 【영인본】 2책 112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註 3718] 진양(晉陽) : 진주(晉州). ☞ / [註 3719]관각(館閣) : 수문(修文)의 관직을 말하는데, 예문관(藝文館)·집현전(集賢殿)·수문전(修文殿)·보문각(寶文閣), 또는 뒤의 홍문관(弘文館)의 벼슬. 여기서는 관각 당상(館閣堂上)을 이름.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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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8월 20일(계묘) 1번째 기사 유사눌을 함길도 도순문사로 권만을 경상도 도절제사로 삼다/ 유사눌(柳思訥)을 함길도 도순문사(咸吉道都巡問使)로 삼고, 권만(權蔓)을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로 삼았다. 사헌 집의(司憲執義) 성엄(成?)이 아뢰기를, “ 유사눌(柳思訥)이 일찍이 경상도 감사(慶尙道監司)의 직책을 받았으므로 이미 청하여 파면하였는데, 지금 또 순문(巡問)의 직임(職任)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미편(未便)하다고 생각합니다.”하니, 임금이 한참 말이 없다가 육조가 나가기를 기다려서 대언(代言) 등에게 하교(下敎)하였다. “집의(執義)가 일을 아뢸 때에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경 등은 아는가? 내가 성질이 급하여 육조가 있을 때에 발언을 극단으로 말할 폐단이 있기 때문에 감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헌사(憲司)에서 어째서 이런 일을 아뢰는가? 유사눌(柳思訥)이 감사가 되었을 때에 파면하기를 청하고, 총제(摠制)의 직을 제수하매 말하지 않다가 순문사(巡問使)를 제수하매 또 파면하기를 청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것도 역시 언관(言官)이 마땅히 할 일이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러한 일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내가 반드시 내치고 대답하지 않겠다. 경 등은 그리 알라. 유사눌 이 지신사(知申事)로서 장죄(杖罪)를 속(贖)받고 귀양보내었으니, 죄가 또한 족하다. 죄가 있으면 죄를 주고 허물을 고치면 쓰는 것이 어찌 사심(私心)인가? 대언(代言)으로 있을 때에 내가 혹 연거(燕居)에서 접견하여 대접하기를 친하고 믿었으니, 친하고 믿는 사람을 쓰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일찍이 지신사를 지낸 사람은 모두 불차 탁용(不次擢用)4655) 하여 다른 사람은 모두 육조에 들어갔으니, 만일 유사눌 을 판서(判書)에 탁용하면 헌사(憲司)에서 또한 어찌하겠는가? 내가 공신을 쓰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이지마는, 비록 공신이 아니라도 쓰임이 있는 재주는 내가 반드시 쓴다. 이러한 사람을 버리고 또 어떠한 사람을 쓰겠는가? 나의 말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경 등이 사사로이 말하여 집의(執義)로 하여금 알게 하라.”조말생(趙末生) 등이 말하기를, “주상의 교지가 크게 옳습니다. 신 등도 또한 집의를 그르게 여깁니다. 죄가 있으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면 쓰는 것이니, 어찌 감히 일호(一毫)의 사의(私意)가 있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사실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12장 A면/ 【영인본】 2책 18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註 4655]불차 탁용(不次擢用) : 관계(官階)의 차례를 밟지 아니하고 벼슬에 올려서 씀.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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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5월 12일(병진) 3번째 기사/ 권만·박초·이지실을 삼도의 도체찰사로 삼다/ 권만(權蔓)을 경상도 도체찰사에, 박초를 전라도 도체찰사에, 이지실(李之實)을 충청도 도체찰사로 삼았다. 그 때에 만이 모상(母喪)으로 경상도 예천군에 돌아가 있더니, 기복(起復)161) 하고 역마로 불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장 B면/ 【영인본】 2책 31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註 161]기복(起復) : 상을 마치기 전에 다시 벼슬을 시키는 일.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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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5일(무술) 3번째 기사/ 본도로 돌아가는 대마도 왜적을 방비키 위해 권만 등을 조전 절제사로 삼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이제 대마도 왜적 이 본도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땔나무와 식수를 준비해 갈 것이니, 경상·충청·전라 해도(海道) 각처의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로 하여금 각각 병선을 거느리고 나누어 요해지(要害地)에 머무르면서, 오는 자를 맞아서 치게 하소서.”하니, 상왕이 이를 좇아 전번에 도절제사로 있던 권만(權蔓)과 동지총제 이천(李?)을 모두 경상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동지총제 박초(朴礎)를 전라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공조 판서 이지실(李之實)을 충청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인사-임면(任免)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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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6일(기해) 2번째 기사/ 길 떠나는 권만을 환관을 보내 전송하다/ 권만이 길을 떠나니, 임금이 환관 박성우(朴成祐)에게 명하여 전송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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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7일(경술) 2번째 기사/ 정역·권홍·이종무 등을 승진시키고,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정역(鄭易)에게 한성 부사를 맡기고, 권홍(權弘)으로 영가군(永嘉君)을 삼고, 이종무로 의정부 찬성사, 이순몽으로 좌군 총제, 박성양(朴成陽)으로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를 삼아, 동정(東征)한 여러 절제사는 모두 좌목(座目)을 올리고, 싸움에 죽은 병마부사 이상은 쌀과 콩 각각 8석, 군관(軍官) 은 사람마다 각각 5석, 군정(軍丁)은 사람마다 3석을 주었다. 상왕이 동지총제 이춘생(李春生)을 보내어 동정군중(東征軍中)에 나가 하사한 술로 제장들을 위로하고, 유정현에게 일러 말하기를, “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적선 30여 척이 이 달 초3일에는 황해도 소청도에 이르고, 초4일에는 안흥량(安興梁)에 와서 우리 배 9척을 노략하고 도로 대마도로 향하니, 우박과 권만(權蔓)으로 중군 절제사를 삼고, 박실과 박초로 좌군 절제사, 이순몽과 이천으로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0척을 거느리게 할 것이니, 도체찰사가 다 거느리고 다시 대마도로 가되, 육지에 내려 싸우지는 말고,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서 변을 기다릴 것이며, 또 박성양으로는 중군 절제사를, 유습으로는 좌군 절제사를, 황상으로는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5척을 거느리고 나누어 등산(登山)·굴두(窟頭)와 같은 요해처(要害處)에 머무르게 하고, 적의 돌아오는 길을 맞아 쫓으며, 협공으로 반드시 대마도까지 이르게 하라.”하고, 곧 종무 이하 10 장수에게 갑옷과 옷 한 벌을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1장 A면/ 【영인본】 2책 32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휼병(恤兵)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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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17일(경신) 2번째 기사/ 김만수를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 권만을 수군 도절제사로 삼다/ 상왕이 전 도총제 김만수(金萬壽)를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로, 권만(權蔓)을 경상도 수군 도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A면/ 【영인본】 2책 3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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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1420 경자 / 명 영락(永樂) 18년) 2월 6일(갑진) 3번째 기사/ 경상좌도 수군 도절제사 권만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다/ 경상좌도 수군 도절제사 권만(權蔓)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니, 수행하는 대소 제신과 군사들에게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6장 A면/ 【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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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5월 14일(을해) 2번째 기사/ 병조에서 대열할 때의 편제에 대해 아뢰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대열(大閱)할 때에 모든 군사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병기(兵器)를 가지게 하며, 별군(別軍)은 각기 화통(火桶)을 가지게 하고, 또 2품 이상의 관원으로서 군직(軍職)을 가진 자는 오위(五衛)에 나누어 소속하게 하고, 육조(六曹)와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는 아래와 같이 중외(中外) 오소(五所)에 나누어 소속하게 할 것이니, 중위(中衛)는 의정부·돈녕부(敦寧府)·이조·병조·대언사(代言司)·사헌부· 사간원·삼군 진무소(三軍鎭撫所)에서 각기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를 거느리고, 도진무(都鎭撫) 최윤덕(崔閏德)·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연(趙涓)·충의위 절제사(忠義衛節制使) 석근(石根)에 속하게 하고, 좌소(左所)는 예조(禮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담(李湛)·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박구(朴矩)에 속하게 하고, 우소(右所)는 형조(刑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 곽승우(郭承祐)·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권만(權蔓)에 속하게 하고, 전소(前所)는 호조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 이흥제(李興濟)·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한 장수(韓長壽)에 속하게 하고, 후소(後所)는 공조(工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와 한성부(漢城府)를 거느리고, 중군 동지총제 전흥(田興)·충의위 절제사 조대림(趙大臨)에 속하게 할 것이니, 이상은 중위(中衛)와 각소(各所)에 군직(軍職) 2품 이상을 나누어 소속케 한 것이고, 이 외의 여러 관사는 대열(大閱)과 보통 때의 연습에도 모두 참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좌위(左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이화영(李和英)·중군 총제 이춘생(李春生)·내시위 절제사 송거신(宋居信)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좌군 도총제 이징(李澄)·충의위 절제사 남휘(南暉)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 신호(申浩)·충의위 절제사 조서(趙敍)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총제 이흥발(李興發)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좌군 동지총제 이종선(李種善)이 이에 속하며, 우위(右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박자청(朴子靑)·우군 동지총제 윤하(尹夏)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도총제 홍부(洪敷)·중군 첨총제(中軍僉摠制) 심보(沈寶)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右軍摠制) 유은지(柳殷之)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별시위 절제사 왕인(王麟)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동지총제 윤득홍(尹得洪)이 이에 속하고, 전위(前衛)의 중소(中所)는 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비형(曺備衡)·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문귀(文貴)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총제(中軍摠制) 김월하(金月下)·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홍해(洪海)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동지총제 원민생(元閔生)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동지총제 지백안(池伯顔)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지(朴芷)가 이에 속하고, 후위(後衛)의 중소(中所)는 우군 도총제 권희달(權希達)·중군 동지총제 이숙묘(李叔畝)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동지총제 허권(許權)이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성양(朴成陽)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중군 총제 박광연(朴光衍)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우군 동지총제 홍섭(洪涉)이 이에 속하게 하며, 이상의 군직(軍職) 2품 이상은 진도(陣圖)를 예습(?習)하게 하소서.”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4장 B면/ 【영인본】 2책 432면/ 【분류】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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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6월 2일(계사) 2번째 기사/ 박성양·박광연·권만을 각각 경상·충청·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로 삼다/ 박성양(朴成陽)으로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고, 박광연(朴光衍)으로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고, 권만(權蔓)으로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7장 B면/ 【영인본】 2책 4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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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9월 25일(기묘) 1번째 기사/ 조씨로 의정 궁주를 삼다/ 조씨(趙氏)로 의정 궁주(義貞宮主)를 삼으니, 조뇌(趙賚)의 딸이요, 이씨(李氏)로 혜순 궁주(惠順宮主)를 삼으니, 이운로(李云老)의 딸이다. 처음에 임금이 김익정(金益精)을 시켜 이원(李原)에게 의논하기를, “ 조씨는 가례색(嘉禮色)이 뽑았으므로 빈을 봉하고자 하니, 어떠하냐.”하니, 원이 말하기를, “ 조씨가 예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빈(嬪)을 봉(封)할 수는 없는 것이라.”하였는데, 임금이 그러하게 여겼다. 조대림(趙大臨)으로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을 삼고, 허조(許稠)로 이조 판서, 이지강(李之剛)으로 호조 판서, 김여지(金汝知)로 예조 판서, 탁신(卓愼)으로 의정부 참찬, 박광연(朴光衍)· 권만(權蔓)으로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수(李隨)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삼고, 조치(趙?)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삼아 그대로 전라도 수군 도안무 처치사(全羅道水軍都安撫處置使)로 유임시키고, 조뇌(趙賚)는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서미성(徐彌性)으로 사헌 집의(司憲執義), 배윤(裵閏)으로 사헌 장령(司憲掌令), 정갑손(鄭甲孫)으로 사간원 좌정언(司諫院左正言), 이흥발(李興發)로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忠淸道兵馬都節制使), 현귀명(玄貴命)으로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 박구(朴矩)로 경상좌도 수군 도안무 처치사, 문귀(文貴)로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 노원식(盧原湜)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자지(金自知)로 판원주목사(判原州牧事), 최순(崔詢)으로 판춘천도호부사(判春川都護府事), 최견(崔?)으로 판안변도호부사(判安邊都護府使), 이상흥(李尙興)으로 판경원도호부사(判慶源都護府使)를 삼았다. 신(愼)은 가선(嘉善)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뛰어올라 자헌(資憲)을 받게 되니,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신이 재주도 없이 여러 번 주상의 은덕을 입사와, 직위가 2품에 이르게 되나, 조금도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제 또 뛰어서 재보(宰輔)의 임명을 받게 되니, 반드시 벼슬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기롱만 들을 것입니다.”하매,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신(愼)은 겸손하고 고요하여, 주장한 것이 분명하고 정성스러워서, 외화(外華)는 없으나, 학문은 정밀하였고, 동지(動止)가 법도가 있었다. 임금이 그의 어짊을 알고 가려서 달리 대접한 것이다. 뇌(賚)는 의정 궁주(義貞宮主)의 부친으로 상호군(上護軍)에서 가선(嘉善) 을 받게 되고, 치(?)는 왜(倭)를 잡았다는 공로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휘하(麾下)로 옮기게 된 것이요, 전(前) 동정(同正) 정숭립(鄭崇立)은 사직(司直)이 되고, 전(前) 천호(千戶) 박현우(朴賢祐)·김득명(金得明)은 위용 장군(威勇將軍)이 되고, 또 군공(軍功)으로 일등 선군(一等船軍)은 하번 갑사(下番甲士)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장(海領隊長)을 시키고, 이등 선군(二等船軍)은 해령(海領)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게 하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부(海領隊副)를 시키고, 공패(功牌)가 없는 자에게는 공패를 주게 하고, 삼등(三等)에는 각기 쌀[米] 넉 섬, 면포(綿布) 세 필을 내리고, 또 윤득민(尹得民)에게는 상(賞)으로 상호군(上護軍) 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29장 B면/ 【영인본】 2책 503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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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世宗實錄 19卷/ 세종 5年(1423 癸卯 / 명 영락(永樂) 21年) 2月 5日(丙辰) 7번째 기사/ 총제 권만의 졸기/ ○摠制 權蔓 卒, 致賻。/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12장 B면/ 【영인본】 2책 524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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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의 국립테라피단지와 산양삼, 정부 사업으로 확정...축하합니다.
국립테라피단지와 산양삼 [記事] :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으로 2013년까지 3천250억여 원이 투입되는 국립테라피단지 조성사업에 봉현면 두산리 옥녀봉 일대(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와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가 최종 선정돼 사업 추진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 2009년 4월 경북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청정약용작물인 풍기인삼, 산약(안동), 오미자(문경), 산양삼(예천)을 재료로 제품화하는 광역클러스터사업에 선정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시비 부담 없이 국·도비 60억 원의 공동사업비를 지원받아 청정약용작물의 생산과 유통, 건강 강화식품과 브랜드 개발 등 가공, 유통, 수출 등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김세동 記者 慶北每日新聞 200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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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91
경북도청(慶北道廳 移轉을 爲한 建設委員會 서의택 委員長 等 委員 20餘 名 現地確認訪問) [記事] :
도청이전신도시 건설위원회(김관용, 서의택 공동위원장) 위원 13명이 2009년 8월 25일 오전 11시부터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 일원인 도청 이전 신도시 예정지를 방문하여 여자지 못을 비롯한 현지를 답사하고 오후에는 검무산에 올라 현지를 확인했다.
김수남 군수는 25일 정오 예천궁 식당에서 13명의 위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며 "신도청 이전이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계획되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도청이전 기대에 부풀어 있는 예천군민들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서의택 위원장은 "도청이전을 총괄 관장하기 위해 출범한 건설위원회 위원들이 예천.안동에 건설될 300만 도민들의 숙원사업인 도청이전지 현장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천년을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미래지향적인 도읍지를 만들어 예천군민들의 만족한 웃음을 짓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8월 5일 1차 건설위원회 회의시 민간위원 중 서의택 부산대학교 석좌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토의 과정에서 현지를 방문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날 현장방문이 성사됐으며 위원들은 신도청 이전지 곳곳을 둘러보며 앞으로 위원활동에 대한 지식을 높였다.
도청이전신도시 건설위원회는 지난 6월 18일 김관용 도지사를 비롯한 중앙부처 차관들로 구성된 정부위원 7명과 예천 윤영식 도의원을 비롯한 안동시 출신 도의원, 대학 관련학과 교수와 지자체장의 추천으로 구성된 민간위원 13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검무산 정상에서 도청이전 예정지를 내려보면서 추진현황 설명을 청취하고 신도시에 관한 기본정책과 개발예정지구 지정, 신도시의 기본구상 및 개발 계획, 신도시에 관련한 정부 지원에 관한 중요사항 등을 심의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8-25 오후 2: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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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權蔓) :
?-1423년(세종 6), 유천면 성평리 덕달리 뒷들(後坪) 출신, 본관은 안동, 예천군 한공(醴泉君漢功)의 증손자,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 판서에까지 이르렀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경주 부윤 겸 병마절도사(慶州府尹兼兵馬節度使)로 벼슬이 낮아져서 후세 사람들이 절도사(節度使)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86 1895, 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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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實錄] : 1409년(태종 9) 7월 24일 영해부사를 이임하였고, 1413년(태종 13) 7월 16일에 말 사육 문제로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권만을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차관으로 파견하였다. 1414년(태종 14) 10월 18일 왕이 권만과 더불어 진도(珍島)가 목장으로서 적당한가를 조사 의논하였다. 1416년(태종 16) 4월 17일 경주 안동병마도절제도사(慶州安東兵馬都節制使) 권만을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로 삼았고, 이듬해 8월 20일에는 경상도 병마도절제사로 삼았다. [世宗實錄] : 1419년(세종 1) 5월 12일 도체찰사가 되었는데, 이 때에 권만이 어머니의 상(喪)으로 예천군에 돌아가 있더니, 상을 마치기 전에 다시 벼슬을 받아 역마(驛馬)로 불리어갔다. 동년 6월 25일에 대마도로 들어가는 왜적을 방비하기 위해 권만 등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로 삼았다. 그 이튿날 왕이 길을 떠나는 권만을 환관을 보내 전송하였다. 동년 7월 7일 권만을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로 삼아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였다. 1419년(세종 1) 7월 17일 권만을 경상도 수군도절제사로 삼았다. 1420년(세종 2) 2월 6일에는 경상좌도 수군도절제사 권만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1421년(세종 3) 5월 14일에는 병조(兵曹)에서 대열(隊列)할 때의 편제에 대해 왕에게 아뢰었는데, 별시위절제사(別侍衛節制使) 권만이 우소(右所)에 속하에 되었다. 그 후 전라도 병마도절제사(1421.6.2), 중군 총제(中軍摠制, 1421.9.25)에 임명되었으나 1422년(세종 5) 2월 5일에 죽으니 왕이 부의(賻儀)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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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7월 24일(갑오) 2번째 기사/ 경차관 보고로 평민을 관둔전에 역사시킨 성주 목사 이백지 등을 자원 부처시키다/ 성주 목사(星州牧事) 이백지(李伯持)·영해 부사(寧海府使) 권만(權蔓)·지울주사(知蔚州事) 양오복(楊五福)·지영주사(知永州事) 이백함(李伯含)·울진 만호(蔚珍萬戶) 권소(權紹)·횡천 감무(橫川監務) 구익령(具益齡)·가평 감무(加平監務) 김욱(金郁) 등을 자원(自願)에 따라 부처(付處)하였으니, 경차관(敬差官)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평민(平民)을 역사시켜 관둔전(官屯田)을 경작하였습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5장 B면/ 【영인본】 1책 499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농업-전제(田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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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7월 16일(계사) 1번째 기사/ 말 사육 문제로 전흥·권만·김정준 등을 경차관으로 파견하다/ 경차관(敬差官)을 나누어 보냈다. 순금사 대호군 전흥(田興)을 경기·충청도에 보내고,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권만(權蔓)을 경상도·전라도에 보내어 말을 기를 만한 땅을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호조 참의 김정준(金廷雋)을 제주(濟州)에 보내어 먼저 양마(良馬) 1백여 필을 추쇄(推刷)하여 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4장 B면/ 【영인본】 1책 677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육운(陸運)(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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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10월 18일(무자) 2번째 기사/ 진도가 목장으로써 적당한가를 조사·의논하다/ 대호군(大護軍) 전흥(田興)과 중관(中官) 노희봉(盧希鳳)에게 명하여 가서 진도(珍島) 목장(牧場)을 보게 하였다. 처음에 전 총제(摠制) 홍유룡(洪有龍)·병조 참의 권만(權蔓) 등이 아뢰기를, “ 진도(珍島)는 목장(牧場)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하여, 전년(前年)에 목책(木柵)을 설치하도록 명하고 백성들을 옮겨서 거주하게 하고, 이어서 군수(郡守)가 우도 수군 도만호(右道水軍都萬戶)를 겸하게 하였다. 임금이 전라 감사(全羅監司)의 보고에 인하여 내섬 소윤(內贍少尹) 이위(李衛)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이위가 지군사(知郡事) 이각(李恪)과 함께 와서, “섬의 풀이 모두 띠[茅]이므로 말이 먹지 못하여 파리하였습니다.”하니, 김승주(金承?)가 아뢰었다. “ 진도(珍島)의 풍토(風土)는 비록 제주(濟州) 와 같지 않으나, 반드시 각처 목장에 못지 않을 것이니, 가볍게 버릴 수 없습니다.” 임금이, “ 김정준(金廷雋) · 이각(李恪) · 이위(李衛) 등이 모두 말하기를, ‘수초(水草)가 부족하여 목장(牧場)의 땅으로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이를 버리고자 한다.”하였으나, 김승주가 굳이 청하니 임금이 뜻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전흥과 노희봉 등을 보내었다. 전흥 등이 복명(復命)한 것도 또한 이위 등의 말과 같았다./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34장 A면/ 【영인본】 2책 42면/ 【분류】 *교통-마정(馬政) / *호구-이동(移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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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4월 17일(기묘) 3번째 기사/ 권만·신열의 관직을 다시 임명하다. 하윤의 청으로 변계량 등의 관직을 추가하다/ 경상도(慶尙道)의 경주 안동도 병마 도절제사(慶州安東道兵馬都節制使) 권만(權蔓)을 고쳐서 좌도 병마 도절제사(左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상주 진주도 병마 도절제사(尙州晉州道兵馬都節制使) 신열(辛悅)을 고쳐서 우도 병마 도절제사(右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경승부 윤(敬承府尹) 변계량(卞季良)에게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을, 직예문관(直藝文館) 박희중(朴熙中)에게 지제교 겸 춘추관 기주관(知製敎兼春秋館記注官)을 가했다. 처음에 좌의정 하윤(河崙)이 변계량에게 위촉하여 그의 선묘(先墓)의 신도비(神道碑)의 명문(銘文)을 짓게 하고, 박희중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고, 임금에게 아뢰기를, “이것은 신(臣) 일가(一家)의 대사(大事)입니다. 계달(啓達)한 뒤에 진양(晉陽) 3718) 으로 보내어 입석(立石)하고자 합니다.”하니, 임금이, “내가 경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알고 있다.”하였다. 하윤이 이어서 아뢰기를, “이 비석은 영구히 남을 것이니, 비문을 지은 자와 비문을 쓴 자가 훌륭한 직함이 없습니다. 빌건대, 변계량 에게는 관각(館閣)3719) 을 가하고, 박희중 에게는 자급(資級)을 가하소서. 만약 관직의 궐원(闕員)이 없다면 지제교 겸 관각(知製敎兼館閣)의 직함을 띠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두 사람은 모두 하윤 의 문생(門生)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30장 A면/ 【영인본】 2책 112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註 3718] 진양(晉陽) : 진주(晉州). ☞ / [註 3719]관각(館閣) : 수문(修文)의 관직을 말하는데, 예문관(藝文館)·집현전(集賢殿)·수문전(修文殿)·보문각(寶文閣), 또는 뒤의 홍문관(弘文館)의 벼슬. 여기서는 관각 당상(館閣堂上)을 이름.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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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8월 20일(계묘) 1번째 기사 유사눌을 함길도 도순문사로 권만을 경상도 도절제사로 삼다/ 유사눌(柳思訥)을 함길도 도순문사(咸吉道都巡問使)로 삼고, 권만(權蔓)을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로 삼았다. 사헌 집의(司憲執義) 성엄(成?)이 아뢰기를, “ 유사눌(柳思訥)이 일찍이 경상도 감사(慶尙道監司)의 직책을 받았으므로 이미 청하여 파면하였는데, 지금 또 순문(巡問)의 직임(職任)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미편(未便)하다고 생각합니다.”하니, 임금이 한참 말이 없다가 육조가 나가기를 기다려서 대언(代言) 등에게 하교(下敎)하였다. “집의(執義)가 일을 아뢸 때에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경 등은 아는가? 내가 성질이 급하여 육조가 있을 때에 발언을 극단으로 말할 폐단이 있기 때문에 감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헌사(憲司)에서 어째서 이런 일을 아뢰는가? 유사눌(柳思訥)이 감사가 되었을 때에 파면하기를 청하고, 총제(摠制)의 직을 제수하매 말하지 않다가 순문사(巡問使)를 제수하매 또 파면하기를 청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것도 역시 언관(言官)이 마땅히 할 일이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러한 일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내가 반드시 내치고 대답하지 않겠다. 경 등은 그리 알라. 유사눌 이 지신사(知申事)로서 장죄(杖罪)를 속(贖)받고 귀양보내었으니, 죄가 또한 족하다. 죄가 있으면 죄를 주고 허물을 고치면 쓰는 것이 어찌 사심(私心)인가? 대언(代言)으로 있을 때에 내가 혹 연거(燕居)에서 접견하여 대접하기를 친하고 믿었으니, 친하고 믿는 사람을 쓰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일찍이 지신사를 지낸 사람은 모두 불차 탁용(不次擢用)4655) 하여 다른 사람은 모두 육조에 들어갔으니, 만일 유사눌 을 판서(判書)에 탁용하면 헌사(憲司)에서 또한 어찌하겠는가? 내가 공신을 쓰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이지마는, 비록 공신이 아니라도 쓰임이 있는 재주는 내가 반드시 쓴다. 이러한 사람을 버리고 또 어떠한 사람을 쓰겠는가? 나의 말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경 등이 사사로이 말하여 집의(執義)로 하여금 알게 하라.”조말생(趙末生) 등이 말하기를, “주상의 교지가 크게 옳습니다. 신 등도 또한 집의를 그르게 여깁니다. 죄가 있으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면 쓰는 것이니, 어찌 감히 일호(一毫)의 사의(私意)가 있겠습니까?”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사실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12장 A면/ 【영인본】 2책 18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註 4655]불차 탁용(不次擢用) : 관계(官階)의 차례를 밟지 아니하고 벼슬에 올려서 씀.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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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5월 12일(병진) 3번째 기사/ 권만·박초·이지실을 삼도의 도체찰사로 삼다/ 권만(權蔓)을 경상도 도체찰사에, 박초를 전라도 도체찰사에, 이지실(李之實)을 충청도 도체찰사로 삼았다. 그 때에 만이 모상(母喪)으로 경상도 예천군에 돌아가 있더니, 기복(起復)161) 하고 역마로 불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장 B면/ 【영인본】 2책 31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註 161]기복(起復) : 상을 마치기 전에 다시 벼슬을 시키는 일.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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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5일(무술) 3번째 기사/ 본도로 돌아가는 대마도 왜적을 방비키 위해 권만 등을 조전 절제사로 삼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이제 대마도 왜적 이 본도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땔나무와 식수를 준비해 갈 것이니, 경상·충청·전라 해도(海道) 각처의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로 하여금 각각 병선을 거느리고 나누어 요해지(要害地)에 머무르면서, 오는 자를 맞아서 치게 하소서.”하니, 상왕이 이를 좇아 전번에 도절제사로 있던 권만(權蔓)과 동지총제 이천(李?)을 모두 경상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동지총제 박초(朴礎)를 전라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공조 판서 이지실(李之實)을 충청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인사-임면(任免)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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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6일(기해) 2번째 기사/ 길 떠나는 권만을 환관을 보내 전송하다/ 권만이 길을 떠나니, 임금이 환관 박성우(朴成祐)에게 명하여 전송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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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7일(경술) 2번째 기사/ 정역·권홍·이종무 등을 승진시키고,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정역(鄭易)에게 한성 부사를 맡기고, 권홍(權弘)으로 영가군(永嘉君)을 삼고, 이종무로 의정부 찬성사, 이순몽으로 좌군 총제, 박성양(朴成陽)으로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를 삼아, 동정(東征)한 여러 절제사는 모두 좌목(座目)을 올리고, 싸움에 죽은 병마부사 이상은 쌀과 콩 각각 8석, 군관(軍官) 은 사람마다 각각 5석, 군정(軍丁)은 사람마다 3석을 주었다. 상왕이 동지총제 이춘생(李春生)을 보내어 동정군중(東征軍中)에 나가 하사한 술로 제장들을 위로하고, 유정현에게 일러 말하기를, “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적선 30여 척이 이 달 초3일에는 황해도 소청도에 이르고, 초4일에는 안흥량(安興梁)에 와서 우리 배 9척을 노략하고 도로 대마도로 향하니, 우박과 권만(權蔓)으로 중군 절제사를 삼고, 박실과 박초로 좌군 절제사, 이순몽과 이천으로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0척을 거느리게 할 것이니, 도체찰사가 다 거느리고 다시 대마도로 가되, 육지에 내려 싸우지는 말고,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서 변을 기다릴 것이며, 또 박성양으로는 중군 절제사를, 유습으로는 좌군 절제사를, 황상으로는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5척을 거느리고 나누어 등산(登山)·굴두(窟頭)와 같은 요해처(要害處)에 머무르게 하고, 적의 돌아오는 길을 맞아 쫓으며, 협공으로 반드시 대마도까지 이르게 하라.”하고, 곧 종무 이하 10 장수에게 갑옷과 옷 한 벌을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1장 A면/ 【영인본】 2책 32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휼병(恤兵)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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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17일(경신) 2번째 기사/ 김만수를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 권만을 수군 도절제사로 삼다/ 상왕이 전 도총제 김만수(金萬壽)를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로, 권만(權蔓)을 경상도 수군 도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A면/ 【영인본】 2책 3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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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1420 경자 / 명 영락(永樂) 18년) 2월 6일(갑진) 3번째 기사/ 경상좌도 수군 도절제사 권만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다/ 경상좌도 수군 도절제사 권만(權蔓)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니, 수행하는 대소 제신과 군사들에게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6장 A면/ 【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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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5월 14일(을해) 2번째 기사/ 병조에서 대열할 때의 편제에 대해 아뢰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대열(大閱)할 때에 모든 군사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병기(兵器)를 가지게 하며, 별군(別軍)은 각기 화통(火桶)을 가지게 하고, 또 2품 이상의 관원으로서 군직(軍職)을 가진 자는 오위(五衛)에 나누어 소속하게 하고, 육조(六曹)와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는 아래와 같이 중외(中外) 오소(五所)에 나누어 소속하게 할 것이니, 중위(中衛)는 의정부·돈녕부(敦寧府)·이조·병조·대언사(代言司)·사헌부· 사간원·삼군 진무소(三軍鎭撫所)에서 각기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를 거느리고, 도진무(都鎭撫) 최윤덕(崔閏德)·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연(趙涓)·충의위 절제사(忠義衛節制使) 석근(石根)에 속하게 하고, 좌소(左所)는 예조(禮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담(李湛)·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박구(朴矩)에 속하게 하고, 우소(右所)는 형조(刑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 곽승우(郭承祐)·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권만(權蔓)에 속하게 하고, 전소(前所)는 호조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 이흥제(李興濟)·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한 장수(韓長壽)에 속하게 하고, 후소(後所)는 공조(工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와 한성부(漢城府)를 거느리고, 중군 동지총제 전흥(田興)·충의위 절제사 조대림(趙大臨)에 속하게 할 것이니, 이상은 중위(中衛)와 각소(各所)에 군직(軍職) 2품 이상을 나누어 소속케 한 것이고, 이 외의 여러 관사는 대열(大閱)과 보통 때의 연습에도 모두 참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좌위(左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이화영(李和英)·중군 총제 이춘생(李春生)·내시위 절제사 송거신(宋居信)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좌군 도총제 이징(李澄)·충의위 절제사 남휘(南暉)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 신호(申浩)·충의위 절제사 조서(趙敍)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총제 이흥발(李興發)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좌군 동지총제 이종선(李種善)이 이에 속하며, 우위(右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박자청(朴子靑)·우군 동지총제 윤하(尹夏)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도총제 홍부(洪敷)·중군 첨총제(中軍僉摠制) 심보(沈寶)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右軍摠制) 유은지(柳殷之)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별시위 절제사 왕인(王麟)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동지총제 윤득홍(尹得洪)이 이에 속하고, 전위(前衛)의 중소(中所)는 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비형(曺備衡)·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문귀(文貴)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총제(中軍摠制) 김월하(金月下)·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홍해(洪海)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동지총제 원민생(元閔生)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동지총제 지백안(池伯顔)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지(朴芷)가 이에 속하고, 후위(後衛)의 중소(中所)는 우군 도총제 권희달(權希達)·중군 동지총제 이숙묘(李叔畝)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동지총제 허권(許權)이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성양(朴成陽)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중군 총제 박광연(朴光衍)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우군 동지총제 홍섭(洪涉)이 이에 속하게 하며, 이상의 군직(軍職) 2품 이상은 진도(陣圖)를 예습(?習)하게 하소서.”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4장 B면/ 【영인본】 2책 432면/ 【분류】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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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6월 2일(계사) 2번째 기사/ 박성양·박광연·권만을 각각 경상·충청·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로 삼다/ 박성양(朴成陽)으로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고, 박광연(朴光衍)으로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고, 권만(權蔓)으로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7장 B면/ 【영인본】 2책 4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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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9월 25일(기묘) 1번째 기사/ 조씨로 의정 궁주를 삼다/ 조씨(趙氏)로 의정 궁주(義貞宮主)를 삼으니, 조뇌(趙賚)의 딸이요, 이씨(李氏)로 혜순 궁주(惠順宮主)를 삼으니, 이운로(李云老)의 딸이다. 처음에 임금이 김익정(金益精)을 시켜 이원(李原)에게 의논하기를, “ 조씨는 가례색(嘉禮色)이 뽑았으므로 빈을 봉하고자 하니, 어떠하냐.”하니, 원이 말하기를, “ 조씨가 예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빈(嬪)을 봉(封)할 수는 없는 것이라.”하였는데, 임금이 그러하게 여겼다. 조대림(趙大臨)으로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을 삼고, 허조(許稠)로 이조 판서, 이지강(李之剛)으로 호조 판서, 김여지(金汝知)로 예조 판서, 탁신(卓愼)으로 의정부 참찬, 박광연(朴光衍)· 권만(權蔓)으로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수(李隨)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삼고, 조치(趙?)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삼아 그대로 전라도 수군 도안무 처치사(全羅道水軍都安撫處置使)로 유임시키고, 조뇌(趙賚)는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서미성(徐彌性)으로 사헌 집의(司憲執義), 배윤(裵閏)으로 사헌 장령(司憲掌令), 정갑손(鄭甲孫)으로 사간원 좌정언(司諫院左正言), 이흥발(李興發)로 충청도 병마 도절제사(忠淸道兵馬都節制使), 현귀명(玄貴命)으로 경상도 병마 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 박구(朴矩)로 경상좌도 수군 도안무 처치사, 문귀(文貴)로 전라도 병마 도절제사, 노원식(盧原湜)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자지(金自知)로 판원주목사(判原州牧事), 최순(崔詢)으로 판춘천도호부사(判春川都護府事), 최견(崔?)으로 판안변도호부사(判安邊都護府使), 이상흥(李尙興)으로 판경원도호부사(判慶源都護府使)를 삼았다. 신(愼)은 가선(嘉善)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뛰어올라 자헌(資憲)을 받게 되니,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신이 재주도 없이 여러 번 주상의 은덕을 입사와, 직위가 2품에 이르게 되나, 조금도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제 또 뛰어서 재보(宰輔)의 임명을 받게 되니, 반드시 벼슬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기롱만 들을 것입니다.”하매,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신(愼)은 겸손하고 고요하여, 주장한 것이 분명하고 정성스러워서, 외화(外華)는 없으나, 학문은 정밀하였고, 동지(動止)가 법도가 있었다. 임금이 그의 어짊을 알고 가려서 달리 대접한 것이다. 뇌(賚)는 의정 궁주(義貞宮主)의 부친으로 상호군(上護軍)에서 가선(嘉善) 을 받게 되고, 치(?)는 왜(倭)를 잡았다는 공로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휘하(麾下)로 옮기게 된 것이요, 전(前) 동정(同正) 정숭립(鄭崇立)은 사직(司直)이 되고, 전(前) 천호(千戶) 박현우(朴賢祐)·김득명(金得明)은 위용 장군(威勇將軍)이 되고, 또 군공(軍功)으로 일등 선군(一等船軍)은 하번 갑사(下番甲士)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장(海領隊長)을 시키고, 이등 선군(二等船軍)은 해령(海領)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게 하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부(海領隊副)를 시키고, 공패(功牌)가 없는 자에게는 공패를 주게 하고, 삼등(三等)에는 각기 쌀[米] 넉 섬, 면포(綿布) 세 필을 내리고, 또 윤득민(尹得民)에게는 상(賞)으로 상호군(上護軍) 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29장 B면/ 【영인본】 2책 503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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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만 [記事] : 世宗實錄 19卷/ 세종 5年(1423 癸卯 / 명 영락(永樂) 21年) 2月 5日(丙辰) 7번째 기사/ 총제 권만의 졸기/ ○摠制 權蔓 卒, 致賻。/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12장 B면/ 【영인본】 2책 524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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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의 국립테라피단지와 산양삼, 정부 사업으로 확정...축하합니다.
국립테라피단지와 산양삼 [記事] :
...정부의 광역경제권 선도사업으로 2013년까지 3천250억여 원이 투입되는 국립테라피단지 조성사업에 봉현면 두산리 옥녀봉 일대(예천군 상리면 고항리와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가 최종 선정돼 사업 추진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 2009년 4월 경북북부지역의 대표적인 청정약용작물인 풍기인삼, 산약(안동), 오미자(문경), 산양삼(예천)을 재료로 제품화하는 광역클러스터사업에 선정돼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시비 부담 없이 국·도비 60억 원의 공동사업비를 지원받아 청정약용작물의 생산과 유통, 건강 강화식품과 브랜드 개발 등 가공, 유통, 수출 등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
(김세동 記者 慶北每日新聞 200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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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491
경북도청(慶北道廳 移轉을 爲한 建設委員會 서의택 委員長 等 委員 20餘 名 現地確認訪問) [記事] :
도청이전신도시 건설위원회(김관용, 서의택 공동위원장) 위원 13명이 2009년 8월 25일 오전 11시부터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 일원인 도청 이전 신도시 예정지를 방문하여 여자지 못을 비롯한 현지를 답사하고 오후에는 검무산에 올라 현지를 확인했다.
김수남 군수는 25일 정오 예천궁 식당에서 13명의 위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며 "신도청 이전이 빠르고 신속하게 그리고 계획되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도청이전 기대에 부풀어 있는 예천군민들의 소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서의택 위원장은 "도청이전을 총괄 관장하기 위해 출범한 건설위원회 위원들이 예천.안동에 건설될 300만 도민들의 숙원사업인 도청이전지 현장을 확인하고 어떻게 하면 천년을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미래지향적인 도읍지를 만들어 예천군민들의 만족한 웃음을 짓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8월 5일 1차 건설위원회 회의시 민간위원 중 서의택 부산대학교 석좌교수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하고 토의 과정에서 현지를 방문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이날 현장방문이 성사됐으며 위원들은 신도청 이전지 곳곳을 둘러보며 앞으로 위원활동에 대한 지식을 높였다.
도청이전신도시 건설위원회는 지난 6월 18일 김관용 도지사를 비롯한 중앙부처 차관들로 구성된 정부위원 7명과 예천 윤영식 도의원을 비롯한 안동시 출신 도의원, 대학 관련학과 교수와 지자체장의 추천으로 구성된 민간위원 13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검무산 정상에서 도청이전 예정지를 내려보면서 추진현황 설명을 청취하고 신도시에 관한 기본정책과 개발예정지구 지정, 신도시의 기본구상 및 개발 계획, 신도시에 관련한 정부 지원에 관한 중요사항 등을 심의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다졌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08-25 오후 2: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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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