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016:권주判書(祝오윤섭等3名/예천방문510)
예천의 자랑(2016) : 전가족이 예천으로 이주한 권주 판서(附 예천읍 오윤섭, 5일 소방방재청장상...축하합니다/경북도립대 권정찬 교수, 대구에서 개인전...축하합니다/박시옥 : 경북농정대상 농축산물가공유통부문 수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510)
---
권주(權柱) :
1457(세조 8)-1505(연산군 11), 자는 지경(支卿) 또는 부경(夫卿), 호는 화산(花山), 본관은 안동, 종묘서령 이(宗廟署令邇)의 아들, 전(生員, 文科)의 아버지이다.
1474년 진사시에 합격, 1481년(성종 12)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갑과 아원(甲科亞元)으로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로 보직되어 사신으로 일본에 왕래하였고, 1497년(연산군 3)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거쳐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明) 나라에 왕래한 뒤에 예조 참판(禮曹參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거쳐 예조 판서(禮曹判書)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때 성종이 윤씨를 폐할 때 사약(賜藥)을 가지고 갔다고 평해로 귀양갔다가 1505년(연산군 11)에 교살(絞殺)되었다.
그의 일가족이 모두 예천으로 이주하여 안동시 풍천면 가곡동에 있던 그의 집이 빈집으로 방치되어 오다가 18세기 중엽에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재건립하여 ''''시습재(時習齋)''''라고 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경북문화재자료 제370호(1999.7.1 지정)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우참찬(右參贊)에 증직되었고, 퇴계 이황(退溪李滉)의 추도시(追悼詩)가 유명하다.
(孤山集, 韓國史大辭典, 醴泉郡誌 1939, 韓國古事大典 書畵考 702쪽, 두산世界大百科事典, Lycos 2001)
[성종실록] : 1481년(성종 12) 친시 문과에 갑과 2위로 아원(亞元) 급제하였다. 1482년(성종 13) 8월 16일 주서(注書)에 재임하였고, 사간원 정언(1487.3.12)일 때 왕에게 아뢰기를, "1485년(성종 16)에 한찬은 성절사가 되고 신은 서장관이 되어 함께 북경에 갔습니다."라고 하였다(1487.3.12). 1487년(성종 18) 12월 6일 선정전(宣政殿)에서 전경 문신(專經文臣)으로서 5명과 함께 시험을 보았다. 검토관(檢討官)으로서 군적(軍籍)을 착오한 수령의 파출로 농사일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된다고 왕에게 아뢰었고(1488.5.7), 임금의 간언(諫言) 받아들임에 대해 의논하였고(1488.10.26), 공조 정랑으로서 질정(質正)의 절목(節目)을 청하기를, "신이 한어 질정관(漢語質正官)으로 요동(遼東)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이 들으니, 요동에 가서 질정하는 일은 신숙주(申叔舟)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신숙주가 처음 황찬(黃餐)을 만났는데, 황찬은 중국 조정에서 급제한 죄를 입어 요동에 유배된 사람이었습니다."하였다(1489.5.27). 사헌부 지평(1489.11.21)으로서 방어에 소홀한 만호(萬戶)들을 검찰하기를 청하였고(1490.1.9), 월산대군의 묘 옆에 절을 창건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아뢰었고(1490.1.17), 이봉(李封)의 처벌이 가벼움을 아뢰었으나 윤허받지 못하였다(1490.1.18, 1490.1.19). 헌납(1490.6.26)일 때 요동(遼東)에 회자하는 일에 관해 왕과 의논하였고(1492.7.13, 1492.7.17), 박원종의 일을 의논하였고(1492.8.30), 백성들의 장례 방법 등에 관해 논하였고(1492.9.27), 우리 말과 중국 말의 교합(交合)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1493.4.13). 시강관(侍講官)으로서 도총관의 파직을 청하나, 윤허받지 못하였고(1493.윤5.16), 세자의 보양에 대해 의논하였고(1493.10.14), 문소전(文昭殿)의 지붕 고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였고(1493. 10.16), 재변 구원과 병폐를 없애도록 하였다(1493.10.20). 시독관으로서 백관의 예도(禮度)에 대해 아뢰니, 승정원에 전교하였다(1493.11.8). 홍문관 부응교로서 대마도 경차관(對馬島敬差官)으로 정해졌고(1493.12.5), 허잠 등을 자기 군관(軍官)으로 삼았고(1494.2.14), 대마도로 보내는 서계(書啓)가 너무 엄하고 예물도 너무 적다고 아뢰니, 이를 다시 거둬들였고(1494.3.6), 대마도에 가서 도주를 만나 논할 사항에 대해 왕과 논의하였고(1494.3.8), 왕을 하직하였다(1494.3.26). 1494년(성종 25) 6월 11일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치계(馳啓)하기를, "경차관 권주는 6월 초 1일에 배로 출발하여 그 날 저녁에 대마도 북면도 우노포(對馬島北面道于老浦)에 정박하였습니다."하였다. 동년 7월 5일 대마도 경차관 권주가 통사(通事)를 보내어 치계하기를, "신이 이 달 24일에 대마도 구다포(仇多浦)에서 배로 출발하여 26일에 완우라포(完于羅浦)에 돌아와 정박하고, 27일 묘시(卯時, 상오 5-7시)에 길을 떠나 바다를 건너서 이 날 밤 8경(八更)에 동래의 부평포(富平浦)에 도착하여 듣고본 사건을 동봉하여 돌려 보냅니다."하였다. 동년 7월 7일에 권주가 보낸 사목을 왕과 신하들이 의논하였고, 동년 7월 27일에 권주가 와서 복명하며 바친 대마도주 종정국(宗貞國)의 치서에서 전라도와 제주에 침범한 왜적을 수색하여 잡아낼 것임을 아뢰었다. 그러나 김주가 대마도에서 사신 체통을 잃었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499년(연산군 5) 2월 22일에 편찬한 <성종실록> 편수관 명단 중에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시강관 권주의 이름이 있다. 그 후 예조 판서였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평해(平海)로 귀양을 갔다가 그 이듬해 처형되었다. 중종반정 (1506)으로 우참찬에 증직되었고, 퇴계 이황의 추도시가 유명하다.
[연산군일기] : 홍문관 응교로서 1494년(연산 즉위년) 12월 27일 성종을 위한 불재(佛齋)는 지내지 말 것을 서계(書啓)하였고, 성종의 시호(諡號)에 대하여 왕과 의논하였고(1495.1.15), 상중에는 길복(吉服)을 씀이 예의라고 아뢰었고(1495.3.11), 묘호(廟號)를 칭함에 전례를 상고하기를 의논드렸고(1495.3.23), 성종의 시책사(諡冊辭)를 지었다(1495.3.24). 사헌부 집의(1495.8.9)로서 노사신을 탄핵한 대간을 그르다 함은 언로를 막는 일이라고 아뢰었으나 윤허받지 못하였고(1495.8.15, 1495.8.27), 노사신의 변명 서계에 대해 사특한 말을 빨리 제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고(1495.8.28), 노사신의 죄와 성종의 존호(尊號)를 올리는 문제를 왕과 의논하였고(1495.9.5), 노사신을 공론으로 처리하기를 아뢰었고(1495.9.10), 이의무(李宜茂)를 피혐하지 말도록 왕에게 청하니, 윤허하였고(1495.11.30), 대간의 일을 아뢰었고(1495.12.9), 원자의 탄생으로 아마(兒馬) 1필과 향표리(鄕表裏) 한 벌을 하사받았다(1497.12.21). 그 후 홍문관 직제학(1498.7.2), 홍문관 부제학(1498.7.25)을 거쳐 승정원 우부승지(1498.7.28)로서 분당(分黨)하지 말라는 왕의 전교를 받았다(1498.7.29). 좌부승지(1498.11.9)를 거쳐 우승지(1498.윤11.8)로서 이방(李芳)의 아내를 살해한 자를 심문하였고(1499.4.6), 독약을 사용하여 그 상전을 살해한 죄인을 심문하고 각 노비에게 경계가 되게 사형하였고(1499.4.17), 참찬관으로서 경연에 참석하여 천둥, 번개, 비, 우박에 대해 왕과 논의하였고(1499.4.22), 우승지로서 천문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성현(成俔)으로 하여금 천문에 대하여 왕에게 아뢰도록 하였고(1499.5.7), 왕비가 신승선의 집에 갈 때 술을 가지고 갔다(1499.9.21). 좌승지로서 평안도 야인의 왕래를 위해 서쪽의 길을 여는 것은 불가하다고 아뢰었고(1500.1.9), 전라도절도사 한충인이 왜군을 놓쳤다고 치계(馳啓)할 때,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왕에게 아뢰어 윤허를 받았고(1500.2.29), 이계창(李繼昌)의 일과 경양부수(慶陽副守) 아내 옥금(玉今)의 일 등의 처벌에 대해 왕과 의논하였다(1500.6.12). 승정원 도승지(1501.2.10)로서 안태사(安胎使) 신수근(愼守勤)을 제천정(濟川亭)에서 전송하였다(1501.6.10). 충청도 관찰사(1501.윤7.20)로서 사족(士族)의 딸들이 제 때에 시집을 갈 수 있도록 하라는 전교를 받았고(1502.5.11), 수재의 현황을 자세히 치계하고 구휼하라는 왕의 하서(下書)를 받았다(1502.8.28). 그 후 동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1503.4.3), 경상도 관찰사(1503.10.25)를 지냈다. 그러나 왕이 옛날 연산군 어머니 윤씨(懷陵) 사사 때 관여하였다 하여 옥에 가두었고(1504.윤4.26), 교형(絞刑)되었다(1505.11.6). 1505년(연산군 11) 6월 19일 왕이 전교하기를, "권주가 죽을 때에 무슨 말이 있더냐?"하매, 도사 김총(金聰)이 아뢰기를, "병이 심하여 인사를 모르므로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중종실록] : 1506년(중종 1) 10월 2일 폐왕 때 죄를 입은 권주에게 예조 참판이라는 관작을 증직하였고, 동년 11월 11일에는 왕이, "죽은 예조참판 권주에게 제사를 지내주라."라고 하였다.(司馬榜目, 文科榜目,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醴泉郡誌 1939)
---
권주 [記事] : 1457-1505, 가족이 예천으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415번지에 소재한 ‘안동시습재’(文化財資料 370號, 1999.12.30 指定)는 그가 생전에 살던 집인데, 현재 권종만이 소유하고 있다. 권주는 성종 11년(1480)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 주서를 거쳐 성종 20년(1489) 공조 정랑으로 요동을 오갔으며 도승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11년(1504) 갑자사화 때, 그가 성종 13년(1482)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이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 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다.ꡐ시습제(時習齊)ꡑ란 이름을 가진 이 집은 6칸 규모의 건물로 ᄆ 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
권주(安東權氏 屛谷宗宅) [嶺南儒敎文化遺蹟] : 안동시 풍천면 가곡(가일)마을에 있는 이 집은 조선 초기의 문신 권주의 옛집이다. 권주는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다가 1482년(성종 13)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1504년(연산군 11) 갑자사화 때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이 집은 시습재란 당호를 쓰는 6칸의 큰 집으로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간소한 구조를 하고 있는 포집이 많이 간략화 된 익공집으로서, 대청의 대량을 받친 주두에는 초각한 양봉을 끼워서 의장적 효과를 나타내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韓國國學振興院 2006)
---
권주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安東 權氏】/ 권주(權柱):1457(세조 3, 정축)~1505(연산군 11, 을축). 본관 安東. 자는 支卿. 호는 花山. 邇의 子. 1480년(성종 11) 문과 급제. 同知中樞府事․경상도관찰사 역임. 1504년(연산군 10) 앞서 成宗이 尹妃를 폐위시키고 賜死할 때, 賜藥을 가지고 갔다하여 平海로 유배당하였다가 이듬해 絞殺당함. 저서:『花山遺稿』. ▣참고:「神道碑銘」(李玄逸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權柱) : 1457(세조 3, 정축) ~ 1505(연산군 11, 을축),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풍천(豊川) 가곡(佳谷) 출생. 종묘서령(宗廟署令) 이(邇)의 자. 10세 때 이미 경사(經史)에 통하였다. 1474년(성종 5)에 진사(進士)가 되고, 1480년 친시문과(親試文科)의 급제하였다. 중국어에 능하여 1489년(성종 20) 공조정랑(工曹正郞)으로 있으면서 요동(遼東)에 질정관(質正官)으로 다녀오고, 1493년에는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로 대마도(對馬島)에 경차관(敬差官)으로 다녀와 응교(應敎)가 되었다. 1497년(연산군 3)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냈고, 이어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가 되어 1502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앞서 성종이 윤비(尹妃)를 폐위시키고, 이어 사사(賜死)할 때 사약(賜藥)을 가지고 갔다 하여 그 죄로 평해(平海)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교살되었다. 중종 때 신원되어 우참찬(右參贊)이 추증(追贈)되었다. 문집에 『화산유고(花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永嘉誌?安東鄕土誌(宋志香)(www.koreastudy.or.kr 2007)
권주 [記事] : 고산집(孤山集) 卷8/ 墓碣銘/ 贈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行嘉善大夫禮曺 參判永嘉權公碣陰銘 1 : 花山 權柱의 묘갈명이다. 본관은 安東, 자는 支卿으로 시조 權幸의 19대손이다. 아버지는 종묘서령 邇이고 어머니는 덕산송씨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도승지, 충청․경상감사 등을 지냈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 총묘(塚墓)/ 참판(參判) 권주(權柱)의 묘 풍산현 서쪽 선원산(仙園山)에 있다. 부인은 고성(固城) 이씨로 정숙공(貞肅公) 칙지(則之)의 딸이다. 같은 언덕에 묘가 있다. 퇴도선생이 공의 묘소를 배알하시고. 인하여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어두운 시대에 화난을 입었으니 이 또한 운명이 아니더냐/ 울창한 송백(松柏) 우거진 골에 푸른 안개 차 있도다./ 절개있는 행실은 장래에 응당 역사에 기록될 것이나/ 천고토록 문장이 전하지 않음이 한스럽기만 하도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 【安東 權氏】/ 권주(權柱):1457(세조 3, 정축)~1505(연산군 11, 을축). 본관 安東. 자는 支卿. 호는 花山. 邇의 子. 1480년(성종 11) 문과 급제. 同知中樞府事․경상도관찰사 역임. 1504년(연산군 10) 앞서 成宗이 尹妃를 폐위시키고 賜死할 때, 賜藥을 가지고 갔다하여 平海로 유배당하였다가 이듬해 絞殺당함. 저서:『花山遺稿』. ▣참고:「神道碑銘」(李玄逸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2) 인물(人物)/ .../ 권주(權柱) 자(字)는 지경(支卿)이다.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다. 곧고 절조가 있었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공묘(工妙)하였다. 일찍이 사신으로 대마도(對馬島)에 갔다. 연산조(燕山朝)에 죄없이 사사(賜死)되었다. 뒤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추증되었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권씨 병곡종택/ 관련인물유물/ 병곡선생문집(屛谷先生文集)|병곡종택 매매문기(屛谷宗宅 賣買文記)|남향자첩(南鄕子帖)|권주의 가계 : ...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갑자사화 이후, 이들 화산 권주의 후손들은 가일을 떠나 예천으...(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권씨 병곡종택 / 안동시 풍천면 가곡(가일)마을에 있는 이 집은 조선 초기의 문신 권주의 옛집이다. 권주는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다가 1482년(성종 13)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1504년(연산군 11) 갑자사화 때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이 집은 시습재란 당호를 쓰는 6칸의 큰집으로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간소한 구조를 하고 있는 포집이 많이 간략화 된 익공집으로서, 대청의 대량을 받친 주두에는 초각한 양봉을 끼워서 의장적 효과를 나타내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 권주(權柱, 1457~1505)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출생지는 안동(安東) 가일(佳日), 분묘지는 안동(安東) 가곡(佳谷), 입사경로는 1474년(성종 5) 진사시(進士試) 합격, 1481년(성종 12) 친시문과(親試文科) 갑과로 급제, 외관직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증직 및 기타는 1506년(중종 1)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되었다. 단아한 성품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1482년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 문신(講經文臣)으로 활약하였다. 1489년 공조정랑 재직 중에 질정관(質正官)이 되어 요동을 내왕했고, 같은 해 12월부터 다음 해 8월에 걸쳐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대마도(對馬島)를 내왕하였다. 귀환 뒤 사헌부로부터 사행(使行) 때 체통을 잃었다고 탄핵되었으나 용서받았고, 곧 응교에 승진하였다. 1494년 12월 직제학(直提學) 표연말(表沿沫), 전한(典翰) 양희지(楊熙止)와 함께 대행왕행장(大行王行狀:成宗行狀)을 찬진하고, 1495년 3월 다시 대행왕시책(大行王諡冊)을 지어 올렸다. 같은 해 8월에 집의(執義), 1498년 7월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직제학지제교 겸 경연시강관을 역임하였다. 1499년 2월에 찬진된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그 달에 홍문관 부제학으로 올랐다. 승정원 우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1501년 1월에는 도승지에 승진되고, 같은 해 윤7월 충청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에 걸쳐 동지중추부사로서 하정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503년 4월 동지중추부사로서 동지성균관사를 겸임했고, 같은 해 10월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4년 윤4월 정축일에 갑자사화가 발발하면서 1482년(성종 13)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 때에 승정원 주서로서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달 경진일에 사사시켜야 한다는 전지가 있었으나, 유순(柳洵)․김수동(金壽童) 등이 ꡒ권주는 당시에 주서로 단지 승지의 지휘에 따랐을 뿐이다.ꡓ는 계(啓)를 올려서, 사형만을 면하고 장형(杖刑)을 받은 뒤 평해(平海)로 귀양갔다. 그러나 1505년 6월 폐비 윤씨의 사사 때에 사약을 받들고 간 일이 거듭 논죄되면서 결국 사사되었고, 형제자매도 아울러 외방에 부처(付處)되었다. 1506년(중종 1) 9월 좌참찬에 추증되면서 신원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다시 장례를 치르도록 허용되었다. 젊은 나이로 등제했을 만큼 문학에 뛰어나 명성이 있었고, 중국어에 능통해 대명 외교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성품이 검소하고 단아하면서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http://www.koreastudy.or.kr 2007)
---
*예천읍 오윤섭, 5일 소방방재청장상...축하합니다.
예천군 군정(醴泉郡 10月 定例會 消息! 東本里 윤태근 里長 民防衛, 建設課 양차영 氏 表彰) [記事] :
예천군 10월 정례조회가 2009년 10월 5일 오전 9시 군청 3층 회의실에서 김수남 군수, 김상준 부군수를 비롯한 간부 및 일반 공직자, 윤태근 동본리 동장(민방위 유공), 양차영(건설과.경북도지사표창) 씨 및 유공 표창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호명면 신태호 씨가 경북도지사상, 예천읍 오윤섭(소방방재청장상), 예천읍 윤태근, 용문면 남대호, 상리면 이근섭, 하리면 임상인, 감천면 조승원, 보문면 임춘회, 유천면 엄봉흠, 용궁면 장현필, 개포면 정석일, 지보면 강세진, 풍양면 정해보, 한전 예천지점 오수관 팀장, 3260부대 2대대 이동훈 중위 등이 군수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양차영(건설과.경북도지사), 모범공무원상에 안미향(재난관리과), 김상식(예천읍). 권기화(보건소), 반문기(농업기술센터), 박두희(용문면), 김재현(종합민원과) 등이 친절봉사공무원상, 서재영(문화관광과). 권정화(풍양면) 씨가 4/3분기 친절봉사공무원, 박래익(환경관리과) 씨가 을지연습유공 군수표창을 수상했다.
김수남 군수는 훈시를 통해 연초 많은 계획들을 바탕으로 살기좋은 예천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공직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농산물축제 및 군민체전 등 행사가 원만히 추진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동안 준비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김수남 군수의 훈시 내용입니다].
동료 공직자 여러분! 추석연휴 즐겁게들 보냈습니까? 금년도 벌써 쉼없이 달려 마지막 분기인 수확의 계절인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자연의 순리란 참으로 오묘하고 어김이 없구나하고 생각합니다.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수확하고, 그 수확의 기쁨은 그동안의 힘든 모든 여정을 모두 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군정추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초 많은 계획들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예천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결과가 이달부터 하나 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며, 한해의 결실을 수확하는 지금부터가 참으로 중요한 시기인 것입니다.
군정을 추진하다 보면 계획된 일정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 된 사업이 있는 반면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일들로 난관에 봉착한 사업들도 있었지만 600여 공직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큰 어려움 없이 10월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지역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우리 600여 공직자들이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또한 그 능력이 탁월하다고 군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직자들의 능력이 모두 발휘되면 우리군의 성장이 많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직원들한테서 그러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부 직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군정 발전을 위한 고민이나 더 나은 방안을 찾기보다는 선례에 따라 막연히 일을 추진하는 사례 등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또한 공직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이 선배들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답습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신입 직원보다는 선배 공직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으며, 요즈음 공직에 입문한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교육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어렵게 공직에 들어 온 만큼 그 능력과 전문지식을 군민 복지증진과 우리군 발전을 위해 쓴다면 본인들의 성장 뿐만 아니라 공직자로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보며, 모든 공직자들이 보다 더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군정이 추진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줄 것을 당부합니다.
특히, 이달은 군민들의 축제의 장이며, 화합의 장인 군민제전과 우리농산물 축제가 개최됩니다. 그동안 개최여부에 대해 외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지난달 체육회 이사회에서 도청이전에 따라 우리 군민들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인정이 넘치면서 살기 좋은 지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뜻에서 개최키로 결정하였는 만큼 모든 공직자들은 솔선수범하여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금년 초부터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종플루에 대한 예방대책을 철저히 수립하고 행사장 요소요소에 소독기 설치와 예방 기자재를 비치하고 감염이 우려되는 참여자는 신속히 격리하는 등 단 한건도 발병하지 않도록 예방활동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많은 군민들이 참여하여 우리 군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성심 성의껏 준비한 농민 관계자를 격려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기 바랍니다.
아울러 자매단체 축하 사절단과 도시민들도 많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알찬 행사로 우리군 대외 이미지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추수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년은 큰 기상재해가 없어 풍년농사가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막바지 영농지도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농업인들이 피땀 흘러 지은 농작물이 풍성한 결실을 거둬 농가소득증대는 물론 우리지역 경기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고, 최근 들어 쌀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쌀값 하락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아침 먹기와 밀가루 음식 섭취를 줄여 쌀 소비도 촉진하고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공직자들이 앞장서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또한 앞서 언급이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신종플루에 대한 감염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예방에 철저를 기하여 주고,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인해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예방수칙 홍보 활동에도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이외에도 전염병 예방을 비롯한 각종 군정 추진으로 10월도 대단히 바쁜 한달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군수 이하 실과소장과 읍·면장을 중심으로 모든 직원들이 일치단결하여 군정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동료 공직자 여러분! 우리 공직자는 숲속의 나무만 보는 안목보다는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과실보다는 미래 우리군의 발전상을 가늠해 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내가 공직자로서 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편협된 생각과 자신만이 최고라는 오만은 결국 자신과 군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일인 만큼 600여 공직자들이 서로 화합하면서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도청이전과 백두대간 테라피 단지 조성,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현재 우리들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나도 많고, 이 모든 과제는 결국 우리 군이 살기 좋은 지역으로 나아가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맡은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직원은 언제 어디서든 환영을 받을 것이며, 군수 또한 이러한 직원들을 적극 발굴하여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나갈 것입니다.
항상 열심히 일해 주고 있는 직원 여러분들이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군수는 여러분들을 독려하고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비는 만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예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갑시다.
직원 여러분들의 분발을 당부하면서, 가정마다 좋은 일들이 언제나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전 10:20:19)
---
*경북도립대 권정찬 교수, 대구에서 개인전...축하합니다.
권정찬(慶北道立大學 스타일코디科 권정찬 敎授 ''''우리의 民畵, 그 숨결''''展 作品 展示) [記事] :
대구남구문화원이 기획한 "우리의 민화, 그 숨결"전에 경북도립대학(총장 김용대) 스타일코디과 권정찬 교수의 작품이 옛날 민화와 함께 개인전으로 초대 받아 대덕문화전당 아트홀에서 2009년 10월 7일부터 12일(6일간)까지 전시된다.
민화라면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양반과 서민 사회에서 장식과 염원을 목적으로 한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로 누구의 작품이라는 작가 우선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난 장식과 해학미의 우수성으로 독창성을 갖춘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책가도, 산수화, 화조화 등 조선시대의 민화의 진수를 눈여겨 볼 기회, 또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한국미술의 독특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는 권정찬 교수의 작품세계의 원류인 민화가 정신과 표현에 있어 어떻게 그의 작품으로 승화되었는지'''' 와 ''''민화라는 장르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진정한 민화의 교육과 창작정신인가''''를 잘 보여주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한국화가로서 수묵화와 채색화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탈피, 캔버스에 서양화 재료를 과감하게 사용한 오방색 위주의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화조도, 정자도, 출세도, 호랑이, 문자도, 산수도 등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는 평소 터득한 나열과 대칭의 구도법에 의해 서양화의 구도와는 다른 감정을 가져다주고 있다.
권정찬 교수는 "민화는 그저 보고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부적이나 풍수를 깊이 알아야 한다. 즉, 자연과 기운의 흐름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다면 구도나 배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래야만 염원이 담긴 그림으로 승화시킬 수가 있다"면서 자연과 본성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권 교수는 40여 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개최했으며, 브라질에서는 "신비로운 채색", 일본에서는 "탁월한 구도", "신이조민화"로, 중국에서는 "매우 독특한 회화"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남구문화원이 기획하고 초대하면서 우리의 전통 민화와 권 교수의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자리로서 작품을 일절 판매하지 않고 관람만 할 수가 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후 8:14:01)
---
*박시옥 : 경북농정대상 농축산물가공유통부문 수상...축하합니다.
박시옥 [記事] : 예천농업협동조합 박시옥 조합장이 2009년 10월 5일 경북농정대상 농축산물가공유통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경북도는 올해 지역농업 발전에 공헌이 많은 우수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경북농정대상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박시옥은 지역 농업·농촌 발전에 헌신적으로 공헌한 농업인으로서 시군 및 농어업인단체의 추천을 받아 1차 실무부서 현지심사, 2차 경북농정대상 실무심사위원회 심의, 3차 도 공적심사위원회 심의 등 엄격한 심의를 거쳐 선정됐다.
시상식은 다음달 11일 개최되는 ''''농업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있을 예정이다.
---
@예천방문 510
보문면청년회(普門面 靑年會 創立 10周年 記念 第5回 普門面民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 開催) [記事] :
보문면 청년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고 주민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5회 보문면민 노래자랑대회 및 한마당잔치가 추석 전날인 2009년 10월 2일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찾은 출향인 및 면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식전행사로 풍물놀이 시연, 색소폰 동호회의 색소폰 연주, 보문을 주제로 한 OX 게임, 훌라후프 돌리기 등 운동경기를 하였으며 오후 5시 개회식, 이어서 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가 보문면 복지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보문면청년회(회장 박찬윤) 주최로 개최된 청년회 창립 10주년 기념 주민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자랑대회 및 한마당 잔치는 여규대 보문면장, 이한성 국회의원, 윤영식·이현준 도의원, 장대복·이철우·남시우 군의원을 비롯해 면내 각 기관단체장, 출향인, 주민 등 6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박찬윤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청년회 창립 10주년을 자축하고 명절을 맞이한 면민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를 통해 그동안 각종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모두 다 잊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웃으면서 이웃과 선·후배. 고향을 지키는 면민과 고향을 찾은 출향인 간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즐거운 자리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한성 국회의원의 축사와 여규대 보문면장님의 격려사를 통해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푸짐한 경품과 상품이 행운권 추첨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어 민족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면민들에게 훈훈한 인정과 주민 화합의 장이 연출됐다.
특히, 추석명절을 맟아 고향을 찾아온 출향인과 주민들은 면민화합을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한 청년회는 체육회와 격년제로 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를 개최하며 보문면 젊은이들의 자생조직으로 현재 회원수가 45명이며 지역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불우이웃돕기 및 봉사활동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지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전 9:11:28)
---
권주(權柱) :
1457(세조 8)-1505(연산군 11), 자는 지경(支卿) 또는 부경(夫卿), 호는 화산(花山), 본관은 안동, 종묘서령 이(宗廟署令邇)의 아들, 전(生員, 文科)의 아버지이다.
1474년 진사시에 합격, 1481년(성종 12) 친시 문과(親試文科)에 갑과 아원(甲科亞元)으로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로 보직되어 사신으로 일본에 왕래하였고, 1497년(연산군 3)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를 거쳐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거쳐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明) 나라에 왕래한 뒤에 예조 참판(禮曹參判),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거쳐 예조 판서(禮曹判書)였으나,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때 성종이 윤씨를 폐할 때 사약(賜藥)을 가지고 갔다고 평해로 귀양갔다가 1505년(연산군 11)에 교살(絞殺)되었다.
그의 일가족이 모두 예천으로 이주하여 안동시 풍천면 가곡동에 있던 그의 집이 빈집으로 방치되어 오다가 18세기 중엽에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재건립하여 ''''시습재(時習齋)''''라고 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경북문화재자료 제370호(1999.7.1 지정)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우참찬(右參贊)에 증직되었고, 퇴계 이황(退溪李滉)의 추도시(追悼詩)가 유명하다.
(孤山集, 韓國史大辭典, 醴泉郡誌 1939, 韓國古事大典 書畵考 702쪽, 두산世界大百科事典, Lycos 2001)
[성종실록] : 1481년(성종 12) 친시 문과에 갑과 2위로 아원(亞元) 급제하였다. 1482년(성종 13) 8월 16일 주서(注書)에 재임하였고, 사간원 정언(1487.3.12)일 때 왕에게 아뢰기를, "1485년(성종 16)에 한찬은 성절사가 되고 신은 서장관이 되어 함께 북경에 갔습니다."라고 하였다(1487.3.12). 1487년(성종 18) 12월 6일 선정전(宣政殿)에서 전경 문신(專經文臣)으로서 5명과 함께 시험을 보았다. 검토관(檢討官)으로서 군적(軍籍)을 착오한 수령의 파출로 농사일에 방해가 있을까 염려된다고 왕에게 아뢰었고(1488.5.7), 임금의 간언(諫言) 받아들임에 대해 의논하였고(1488.10.26), 공조 정랑으로서 질정(質正)의 절목(節目)을 청하기를, "신이 한어 질정관(漢語質正官)으로 요동(遼東)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이 들으니, 요동에 가서 질정하는 일은 신숙주(申叔舟)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신숙주가 처음 황찬(黃餐)을 만났는데, 황찬은 중국 조정에서 급제한 죄를 입어 요동에 유배된 사람이었습니다."하였다(1489.5.27). 사헌부 지평(1489.11.21)으로서 방어에 소홀한 만호(萬戶)들을 검찰하기를 청하였고(1490.1.9), 월산대군의 묘 옆에 절을 창건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아뢰었고(1490.1.17), 이봉(李封)의 처벌이 가벼움을 아뢰었으나 윤허받지 못하였다(1490.1.18, 1490.1.19). 헌납(1490.6.26)일 때 요동(遼東)에 회자하는 일에 관해 왕과 의논하였고(1492.7.13, 1492.7.17), 박원종의 일을 의논하였고(1492.8.30), 백성들의 장례 방법 등에 관해 논하였고(1492.9.27), 우리 말과 중국 말의 교합(交合)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1493.4.13). 시강관(侍講官)으로서 도총관의 파직을 청하나, 윤허받지 못하였고(1493.윤5.16), 세자의 보양에 대해 의논하였고(1493.10.14), 문소전(文昭殿)의 지붕 고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였고(1493. 10.16), 재변 구원과 병폐를 없애도록 하였다(1493.10.20). 시독관으로서 백관의 예도(禮度)에 대해 아뢰니, 승정원에 전교하였다(1493.11.8). 홍문관 부응교로서 대마도 경차관(對馬島敬差官)으로 정해졌고(1493.12.5), 허잠 등을 자기 군관(軍官)으로 삼았고(1494.2.14), 대마도로 보내는 서계(書啓)가 너무 엄하고 예물도 너무 적다고 아뢰니, 이를 다시 거둬들였고(1494.3.6), 대마도에 가서 도주를 만나 논할 사항에 대해 왕과 논의하였고(1494.3.8), 왕을 하직하였다(1494.3.26). 1494년(성종 25) 6월 11일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李克均)이 치계(馳啓)하기를, "경차관 권주는 6월 초 1일에 배로 출발하여 그 날 저녁에 대마도 북면도 우노포(對馬島北面道于老浦)에 정박하였습니다."하였다. 동년 7월 5일 대마도 경차관 권주가 통사(通事)를 보내어 치계하기를, "신이 이 달 24일에 대마도 구다포(仇多浦)에서 배로 출발하여 26일에 완우라포(完于羅浦)에 돌아와 정박하고, 27일 묘시(卯時, 상오 5-7시)에 길을 떠나 바다를 건너서 이 날 밤 8경(八更)에 동래의 부평포(富平浦)에 도착하여 듣고본 사건을 동봉하여 돌려 보냅니다."하였다. 동년 7월 7일에 권주가 보낸 사목을 왕과 신하들이 의논하였고, 동년 7월 27일에 권주가 와서 복명하며 바친 대마도주 종정국(宗貞國)의 치서에서 전라도와 제주에 침범한 왜적을 수색하여 잡아낼 것임을 아뢰었다. 그러나 김주가 대마도에서 사신 체통을 잃었다 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1499년(연산군 5) 2월 22일에 편찬한 <성종실록> 편수관 명단 중에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시강관 권주의 이름이 있다. 그 후 예조 판서였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에 평해(平海)로 귀양을 갔다가 그 이듬해 처형되었다. 중종반정 (1506)으로 우참찬에 증직되었고, 퇴계 이황의 추도시가 유명하다.
[연산군일기] : 홍문관 응교로서 1494년(연산 즉위년) 12월 27일 성종을 위한 불재(佛齋)는 지내지 말 것을 서계(書啓)하였고, 성종의 시호(諡號)에 대하여 왕과 의논하였고(1495.1.15), 상중에는 길복(吉服)을 씀이 예의라고 아뢰었고(1495.3.11), 묘호(廟號)를 칭함에 전례를 상고하기를 의논드렸고(1495.3.23), 성종의 시책사(諡冊辭)를 지었다(1495.3.24). 사헌부 집의(1495.8.9)로서 노사신을 탄핵한 대간을 그르다 함은 언로를 막는 일이라고 아뢰었으나 윤허받지 못하였고(1495.8.15, 1495.8.27), 노사신의 변명 서계에 대해 사특한 말을 빨리 제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고(1495.8.28), 노사신의 죄와 성종의 존호(尊號)를 올리는 문제를 왕과 의논하였고(1495.9.5), 노사신을 공론으로 처리하기를 아뢰었고(1495.9.10), 이의무(李宜茂)를 피혐하지 말도록 왕에게 청하니, 윤허하였고(1495.11.30), 대간의 일을 아뢰었고(1495.12.9), 원자의 탄생으로 아마(兒馬) 1필과 향표리(鄕表裏) 한 벌을 하사받았다(1497.12.21). 그 후 홍문관 직제학(1498.7.2), 홍문관 부제학(1498.7.25)을 거쳐 승정원 우부승지(1498.7.28)로서 분당(分黨)하지 말라는 왕의 전교를 받았다(1498.7.29). 좌부승지(1498.11.9)를 거쳐 우승지(1498.윤11.8)로서 이방(李芳)의 아내를 살해한 자를 심문하였고(1499.4.6), 독약을 사용하여 그 상전을 살해한 죄인을 심문하고 각 노비에게 경계가 되게 사형하였고(1499.4.17), 참찬관으로서 경연에 참석하여 천둥, 번개, 비, 우박에 대해 왕과 논의하였고(1499.4.22), 우승지로서 천문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성현(成俔)으로 하여금 천문에 대하여 왕에게 아뢰도록 하였고(1499.5.7), 왕비가 신승선의 집에 갈 때 술을 가지고 갔다(1499.9.21). 좌승지로서 평안도 야인의 왕래를 위해 서쪽의 길을 여는 것은 불가하다고 아뢰었고(1500.1.9), 전라도절도사 한충인이 왜군을 놓쳤다고 치계(馳啓)할 때, 그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왕에게 아뢰어 윤허를 받았고(1500.2.29), 이계창(李繼昌)의 일과 경양부수(慶陽副守) 아내 옥금(玉今)의 일 등의 처벌에 대해 왕과 의논하였다(1500.6.12). 승정원 도승지(1501.2.10)로서 안태사(安胎使) 신수근(愼守勤)을 제천정(濟川亭)에서 전송하였다(1501.6.10). 충청도 관찰사(1501.윤7.20)로서 사족(士族)의 딸들이 제 때에 시집을 갈 수 있도록 하라는 전교를 받았고(1502.5.11), 수재의 현황을 자세히 치계하고 구휼하라는 왕의 하서(下書)를 받았다(1502.8.28). 그 후 동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1503.4.3), 경상도 관찰사(1503.10.25)를 지냈다. 그러나 왕이 옛날 연산군 어머니 윤씨(懷陵) 사사 때 관여하였다 하여 옥에 가두었고(1504.윤4.26), 교형(絞刑)되었다(1505.11.6). 1505년(연산군 11) 6월 19일 왕이 전교하기를, "권주가 죽을 때에 무슨 말이 있더냐?"하매, 도사 김총(金聰)이 아뢰기를, "병이 심하여 인사를 모르므로 한 마디 말도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중종실록] : 1506년(중종 1) 10월 2일 폐왕 때 죄를 입은 권주에게 예조 참판이라는 관작을 증직하였고, 동년 11월 11일에는 왕이, "죽은 예조참판 권주에게 제사를 지내주라."라고 하였다.(司馬榜目, 文科榜目,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醴泉郡誌 1939)
---
권주 [記事] : 1457-1505, 가족이 예천으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415번지에 소재한 ‘안동시습재’(文化財資料 370號, 1999.12.30 指定)는 그가 생전에 살던 집인데, 현재 권종만이 소유하고 있다. 권주는 성종 11년(1480) 문과에 급제하고 승정원 주서를 거쳐 성종 20년(1489) 공조 정랑으로 요동을 오갔으며 도승지,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11년(1504) 갑자사화 때, 그가 성종 13년(1482)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이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 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다.ꡐ시습제(時習齊)ꡑ란 이름을 가진 이 집은 6칸 규모의 건물로 ᄆ 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
권주(安東權氏 屛谷宗宅) [嶺南儒敎文化遺蹟] : 안동시 풍천면 가곡(가일)마을에 있는 이 집은 조선 초기의 문신 권주의 옛집이다. 권주는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다가 1482년(성종 13)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1504년(연산군 11) 갑자사화 때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이 집은 시습재란 당호를 쓰는 6칸의 큰 집으로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간소한 구조를 하고 있는 포집이 많이 간략화 된 익공집으로서, 대청의 대량을 받친 주두에는 초각한 양봉을 끼워서 의장적 효과를 나타내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韓國國學振興院 2006)
---
권주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安東 權氏】/ 권주(權柱):1457(세조 3, 정축)~1505(연산군 11, 을축). 본관 安東. 자는 支卿. 호는 花山. 邇의 子. 1480년(성종 11) 문과 급제. 同知中樞府事․경상도관찰사 역임. 1504년(연산군 10) 앞서 成宗이 尹妃를 폐위시키고 賜死할 때, 賜藥을 가지고 갔다하여 平海로 유배당하였다가 이듬해 絞殺당함. 저서:『花山遺稿』. ▣참고:「神道碑銘」(李玄逸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權柱) : 1457(세조 3, 정축) ~ 1505(연산군 11, 을축),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호는 화산(花山). 풍천(豊川) 가곡(佳谷) 출생. 종묘서령(宗廟署令) 이(邇)의 자. 10세 때 이미 경사(經史)에 통하였다. 1474년(성종 5)에 진사(進士)가 되고, 1480년 친시문과(親試文科)의 급제하였다. 중국어에 능하여 1489년(성종 20) 공조정랑(工曹正郞)으로 있으면서 요동(遼東)에 질정관(質正官)으로 다녀오고, 1493년에는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로 대마도(對馬島)에 경차관(敬差官)으로 다녀와 응교(應敎)가 되었다. 1497년(연산군 3)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를 지냈고, 이어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가 되어 1502년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가 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앞서 성종이 윤비(尹妃)를 폐위시키고, 이어 사사(賜死)할 때 사약(賜藥)을 가지고 갔다 하여 그 죄로 평해(平海)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교살되었다. 중종 때 신원되어 우참찬(右參贊)이 추증(追贈)되었다. 문집에 『화산유고(花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永嘉誌?安東鄕土誌(宋志香)(www.koreastudy.or.kr 2007)
권주 [記事] : 고산집(孤山集) 卷8/ 墓碣銘/ 贈資憲大夫議政府右參贊行嘉善大夫禮曺 參判永嘉權公碣陰銘 1 : 花山 權柱의 묘갈명이다. 본관은 安東, 자는 支卿으로 시조 權幸의 19대손이다. 아버지는 종묘서령 邇이고 어머니는 덕산송씨이다. 문과에 급제하고 도승지, 충청․경상감사 등을 지냈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 총묘(塚墓)/ 참판(參判) 권주(權柱)의 묘 풍산현 서쪽 선원산(仙園山)에 있다. 부인은 고성(固城) 이씨로 정숙공(貞肅公) 칙지(則之)의 딸이다. 같은 언덕에 묘가 있다. 퇴도선생이 공의 묘소를 배알하시고. 인하여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어두운 시대에 화난을 입었으니 이 또한 운명이 아니더냐/ 울창한 송백(松柏) 우거진 골에 푸른 안개 차 있도다./ 절개있는 행실은 장래에 응당 역사에 기록될 것이나/ 천고토록 문장이 전하지 않음이 한스럽기만 하도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시사 5/ 간행년 : 1999/ 저자 : 안동시/ 발행처 : 안동시청/ 【安東 權氏】/ 권주(權柱):1457(세조 3, 정축)~1505(연산군 11, 을축). 본관 安東. 자는 支卿. 호는 花山. 邇의 子. 1480년(성종 11) 문과 급제. 同知中樞府事․경상도관찰사 역임. 1504년(연산군 10) 앞서 成宗이 尹妃를 폐위시키고 賜死할 때, 賜藥을 가지고 갔다하여 平海로 유배당하였다가 이듬해 絞殺당함. 저서:『花山遺稿』. ▣참고:「神道碑銘」(李玄逸 撰) □집필:김태안(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2) 인물(人物)/ .../ 권주(權柱) 자(字)는 지경(支卿)이다.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다. 곧고 절조가 있었으며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공묘(工妙)하였다. 일찍이 사신으로 대마도(對馬島)에 갔다. 연산조(燕山朝)에 죄없이 사사(賜死)되었다. 뒤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추증되었다.(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권씨 병곡종택/ 관련인물유물/ 병곡선생문집(屛谷先生文集)|병곡종택 매매문기(屛谷宗宅 賣買文記)|남향자첩(南鄕子帖)|권주의 가계 : ...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갑자사화 이후, 이들 화산 권주의 후손들은 가일을 떠나 예천으...(www.koreastudy.or.kr 2007)
---
권주 [記事] : 안동권씨 병곡종택 / 안동시 풍천면 가곡(가일)마을에 있는 이 집은 조선 초기의 문신 권주의 옛집이다. 권주는 경상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다가 1482년(성종 13) 승정원 주서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갔다는 이유로 1504년(연산군 11) 갑자사화 때 파직당하고 살해되었다. 그가 죽자 가족들은 예천으로 이주하여 이곳은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그 뒤 18세기 중엽부터 후손들이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50여 년 전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이 집은 시습재란 당호를 쓰는 6칸의 큰집으로 口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간소한 구조를 하고 있는 포집이 많이 간략화 된 익공집으로서, 대청의 대량을 받친 주두에는 초각한 양봉을 끼워서 의장적 효과를 나타내었다. 안채 북동쪽에는 사당이 있다. 권주(權柱, 1457~1505)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지경(支卿), 출생지는 안동(安東) 가일(佳日), 분묘지는 안동(安東) 가곡(佳谷), 입사경로는 1474년(성종 5) 진사시(進士試) 합격, 1481년(성종 12) 친시문과(親試文科) 갑과로 급제, 외관직은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 증직 및 기타는 1506년(중종 1)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되었다. 단아한 성품으로 직무에 충실하였다. 1482년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했고, 이후 강경 문신(講經文臣)으로 활약하였다. 1489년 공조정랑 재직 중에 질정관(質正官)이 되어 요동을 내왕했고, 같은 해 12월부터 다음 해 8월에 걸쳐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대마도(對馬島)를 내왕하였다. 귀환 뒤 사헌부로부터 사행(使行) 때 체통을 잃었다고 탄핵되었으나 용서받았고, 곧 응교에 승진하였다. 1494년 12월 직제학(直提學) 표연말(表沿沫), 전한(典翰) 양희지(楊熙止)와 함께 대행왕행장(大行王行狀:成宗行狀)을 찬진하고, 1495년 3월 다시 대행왕시책(大行王諡冊)을 지어 올렸다. 같은 해 8월에 집의(執義), 1498년 7월 통훈대부에 오르면서 직제학지제교 겸 경연시강관을 역임하였다. 1499년 2월에 찬진된 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그 달에 홍문관 부제학으로 올랐다. 승정원 우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1501년 1월에는 도승지에 승진되고, 같은 해 윤7월 충청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2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에 걸쳐 동지중추부사로서 하정사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1503년 4월 동지중추부사로서 동지성균관사를 겸임했고, 같은 해 10월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504년 윤4월 정축일에 갑자사화가 발발하면서 1482년(성종 13)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의 사사(賜死) 때에 승정원 주서로서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그 달 경진일에 사사시켜야 한다는 전지가 있었으나, 유순(柳洵)․김수동(金壽童) 등이 ꡒ권주는 당시에 주서로 단지 승지의 지휘에 따랐을 뿐이다.ꡓ는 계(啓)를 올려서, 사형만을 면하고 장형(杖刑)을 받은 뒤 평해(平海)로 귀양갔다. 그러나 1505년 6월 폐비 윤씨의 사사 때에 사약을 받들고 간 일이 거듭 논죄되면서 결국 사사되었고, 형제자매도 아울러 외방에 부처(付處)되었다. 1506년(중종 1) 9월 좌참찬에 추증되면서 신원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다시 장례를 치르도록 허용되었다. 젊은 나이로 등제했을 만큼 문학에 뛰어나 명성이 있었고, 중국어에 능통해 대명 외교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성품이 검소하고 단아하면서 직무에 최선을 다하였다.(http://www.koreastudy.or.kr 2007)
---
*예천읍 오윤섭, 5일 소방방재청장상...축하합니다.
예천군 군정(醴泉郡 10月 定例會 消息! 東本里 윤태근 里長 民防衛, 建設課 양차영 氏 表彰) [記事] :
예천군 10월 정례조회가 2009년 10월 5일 오전 9시 군청 3층 회의실에서 김수남 군수, 김상준 부군수를 비롯한 간부 및 일반 공직자, 윤태근 동본리 동장(민방위 유공), 양차영(건설과.경북도지사표창) 씨 및 유공 표창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날 호명면 신태호 씨가 경북도지사상, 예천읍 오윤섭(소방방재청장상), 예천읍 윤태근, 용문면 남대호, 상리면 이근섭, 하리면 임상인, 감천면 조승원, 보문면 임춘회, 유천면 엄봉흠, 용궁면 장현필, 개포면 정석일, 지보면 강세진, 풍양면 정해보, 한전 예천지점 오수관 팀장, 3260부대 2대대 이동훈 중위 등이 군수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양차영(건설과.경북도지사), 모범공무원상에 안미향(재난관리과), 김상식(예천읍). 권기화(보건소), 반문기(농업기술센터), 박두희(용문면), 김재현(종합민원과) 등이 친절봉사공무원상, 서재영(문화관광과). 권정화(풍양면) 씨가 4/3분기 친절봉사공무원, 박래익(환경관리과) 씨가 을지연습유공 군수표창을 수상했다.
김수남 군수는 훈시를 통해 연초 많은 계획들을 바탕으로 살기좋은 예천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공직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농산물축제 및 군민체전 등 행사가 원만히 추진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동안 준비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김수남 군수의 훈시 내용입니다].
동료 공직자 여러분! 추석연휴 즐겁게들 보냈습니까? 금년도 벌써 쉼없이 달려 마지막 분기인 수확의 계절인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자연의 순리란 참으로 오묘하고 어김이 없구나하고 생각합니다.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수확하고, 그 수확의 기쁨은 그동안의 힘든 모든 여정을 모두 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군정추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초 많은 계획들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예천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결과가 이달부터 하나 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며, 한해의 결실을 수확하는 지금부터가 참으로 중요한 시기인 것입니다.
군정을 추진하다 보면 계획된 일정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 된 사업이 있는 반면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일들로 난관에 봉착한 사업들도 있었지만 600여 공직자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큰 어려움 없이 10월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지역의 그 어느 조직보다도 우리 600여 공직자들이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또한 그 능력이 탁월하다고 군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직자들의 능력이 모두 발휘되면 우리군의 성장이 많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 직원들한테서 그러한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부 직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군정 발전을 위한 고민이나 더 나은 방안을 찾기보다는 선례에 따라 막연히 일을 추진하는 사례 등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또한 공직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이 선배들의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답습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신입 직원보다는 선배 공직자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느끼고 있으며, 요즈음 공직에 입문한 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교육과 다양한 전문지식을 습득하여 어렵게 공직에 들어 온 만큼 그 능력과 전문지식을 군민 복지증진과 우리군 발전을 위해 쓴다면 본인들의 성장 뿐만 아니라 공직자로서 무한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보며, 모든 공직자들이 보다 더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군정이 추진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줄 것을 당부합니다.
특히, 이달은 군민들의 축제의 장이며, 화합의 장인 군민제전과 우리농산물 축제가 개최됩니다. 그동안 개최여부에 대해 외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지난달 체육회 이사회에서 도청이전에 따라 우리 군민들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인정이 넘치면서 살기 좋은 지역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는 뜻에서 개최키로 결정하였는 만큼 모든 공직자들은 솔선수범하여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금년 초부터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종플루에 대한 예방대책을 철저히 수립하고 행사장 요소요소에 소독기 설치와 예방 기자재를 비치하고 감염이 우려되는 참여자는 신속히 격리하는 등 단 한건도 발병하지 않도록 예방활동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또한 많은 군민들이 참여하여 우리 군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성심 성의껏 준비한 농민 관계자를 격려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하여 주기 바랍니다.
아울러 자매단체 축하 사절단과 도시민들도 많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알찬 행사로 우리군 대외 이미지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추수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금년은 큰 기상재해가 없어 풍년농사가 달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막바지 영농지도에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농업인들이 피땀 흘러 지은 농작물이 풍성한 결실을 거둬 농가소득증대는 물론 우리지역 경기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하고, 최근 들어 쌀 소비가 감소함에 따라 쌀값 하락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아침 먹기와 밀가루 음식 섭취를 줄여 쌀 소비도 촉진하고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공직자들이 앞장서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또한 앞서 언급이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신종플루에 대한 감염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예방에 철저를 기하여 주고, 신종플루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인해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예방수칙 홍보 활동에도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이외에도 전염병 예방을 비롯한 각종 군정 추진으로 10월도 대단히 바쁜 한달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군수 이하 실과소장과 읍·면장을 중심으로 모든 직원들이 일치단결하여 군정발전을 위해 노력하여 주기 바랍니다.
동료 공직자 여러분! 우리 공직자는 숲속의 나무만 보는 안목보다는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과실보다는 미래 우리군의 발전상을 가늠해 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내가 공직자로서 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편협된 생각과 자신만이 최고라는 오만은 결국 자신과 군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일인 만큼 600여 공직자들이 서로 화합하면서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도청이전과 백두대간 테라피 단지 조성, 4대강 살리기 사업 등 현재 우리들 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나도 많고, 이 모든 과제는 결국 우리 군이 살기 좋은 지역으로 나아가는데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맡은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직원은 언제 어디서든 환영을 받을 것이며, 군수 또한 이러한 직원들을 적극 발굴하여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나갈 것입니다.
항상 열심히 일해 주고 있는 직원 여러분들이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군수는 여러분들을 독려하고 더 열심히 현장을 누비는 만큼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예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갑시다.
직원 여러분들의 분발을 당부하면서, 가정마다 좋은 일들이 언제나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전 10:20:19)
---
*경북도립대 권정찬 교수, 대구에서 개인전...축하합니다.
권정찬(慶北道立大學 스타일코디科 권정찬 敎授 ''''우리의 民畵, 그 숨결''''展 作品 展示) [記事] :
대구남구문화원이 기획한 "우리의 민화, 그 숨결"전에 경북도립대학(총장 김용대) 스타일코디과 권정찬 교수의 작품이 옛날 민화와 함께 개인전으로 초대 받아 대덕문화전당 아트홀에서 2009년 10월 7일부터 12일(6일간)까지 전시된다.
민화라면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양반과 서민 사회에서 장식과 염원을 목적으로 한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로 누구의 작품이라는 작가 우선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난 장식과 해학미의 우수성으로 독창성을 갖춘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책가도, 산수화, 화조화 등 조선시대의 민화의 진수를 눈여겨 볼 기회, 또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한국미술의 독특한 장르로 평가받고 있는 권정찬 교수의 작품세계의 원류인 민화가 정신과 표현에 있어 어떻게 그의 작품으로 승화되었는지'''' 와 ''''민화라는 장르가 옛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진정한 민화의 교육과 창작정신인가''''를 잘 보여주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한국화가로서 수묵화와 채색화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탈피, 캔버스에 서양화 재료를 과감하게 사용한 오방색 위주의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화조도, 정자도, 출세도, 호랑이, 문자도, 산수도 등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는 평소 터득한 나열과 대칭의 구도법에 의해 서양화의 구도와는 다른 감정을 가져다주고 있다.
권정찬 교수는 "민화는 그저 보고만 그리는 것이 아니다. 부적이나 풍수를 깊이 알아야 한다. 즉, 자연과 기운의 흐름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다면 구도나 배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 그래야만 염원이 담긴 그림으로 승화시킬 수가 있다"면서 자연과 본성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권 교수는 40여 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개최했으며, 브라질에서는 "신비로운 채색", 일본에서는 "탁월한 구도", "신이조민화"로, 중국에서는 "매우 독특한 회화"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남구문화원이 기획하고 초대하면서 우리의 전통 민화와 권 교수의 작품을 비교 전시하는 자리로서 작품을 일절 판매하지 않고 관람만 할 수가 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후 8:14:01)
---
*박시옥 : 경북농정대상 농축산물가공유통부문 수상...축하합니다.
박시옥 [記事] : 예천농업협동조합 박시옥 조합장이 2009년 10월 5일 경북농정대상 농축산물가공유통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경북도는 올해 지역농업 발전에 공헌이 많은 우수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경북농정대상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박시옥은 지역 농업·농촌 발전에 헌신적으로 공헌한 농업인으로서 시군 및 농어업인단체의 추천을 받아 1차 실무부서 현지심사, 2차 경북농정대상 실무심사위원회 심의, 3차 도 공적심사위원회 심의 등 엄격한 심의를 거쳐 선정됐다.
시상식은 다음달 11일 개최되는 ''''농업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있을 예정이다.
---
@예천방문 510
보문면청년회(普門面 靑年會 創立 10周年 記念 第5回 普門面民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 開催) [記事] :
보문면 청년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고 주민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5회 보문면민 노래자랑대회 및 한마당잔치가 추석 전날인 2009년 10월 2일 한가위를 맞아 고향을 찾은 출향인 및 면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식전행사로 풍물놀이 시연, 색소폰 동호회의 색소폰 연주, 보문을 주제로 한 OX 게임, 훌라후프 돌리기 등 운동경기를 하였으며 오후 5시 개회식, 이어서 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가 보문면 복지회관에서 성대하게 개최됐다.
보문면청년회(회장 박찬윤) 주최로 개최된 청년회 창립 10주년 기념 주민화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노래자랑대회 및 한마당 잔치는 여규대 보문면장, 이한성 국회의원, 윤영식·이현준 도의원, 장대복·이철우·남시우 군의원을 비롯해 면내 각 기관단체장, 출향인, 주민 등 6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박찬윤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청년회 창립 10주년을 자축하고 명절을 맞이한 면민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를 통해 그동안 각종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모두 다 잊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웃으면서 이웃과 선·후배. 고향을 지키는 면민과 고향을 찾은 출향인 간 친목과 우의를 다지는 즐거운 자리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한성 국회의원의 축사와 여규대 보문면장님의 격려사를 통해 "풍요롭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간절히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푸짐한 경품과 상품이 행운권 추첨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어 민족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면민들에게 훈훈한 인정과 주민 화합의 장이 연출됐다.
특히, 추석명절을 맟아 고향을 찾아온 출향인과 주민들은 면민화합을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한 청년회는 체육회와 격년제로 노래자랑 및 한마당잔치를 개최하며 보문면 젊은이들의 자생조직으로 현재 회원수가 45명이며 지역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불우이웃돕기 및 봉사활동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지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0-05 오전 9:11:28)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