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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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17:예천의구씨들(附예천방문511)
예천의 자랑(2017) : 예천의 구씨들(附 예천방문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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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범모(具範謨) : 1932- , 유천면 매산리 출신, 본관은 능성, 예천초등(34回), 예천농업중(醴泉農業中) 2년 수료, 대전중, 52년 대전고(大田高), 56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59년 동 대학원 정치학 석사, 63년 미국 코넬대 대학원 수학, 73년 서울대 정치학 박사(政治學博士)이다. 59년 서울대 문리대 강사, 동 전강(專講), 62년 동 정치학회 이사, 65년 동 조교수(助敎授), 68년 동 부교수(副敎授), 68년 신문 주간(主幹) 겸 편집국장, 70년 시정 평가교수(市政評價敎授), 71년 정경연구소 이사(政經硏究所理事), 72년 남북적십자회담(제1,2,3,4차) 자문위원, 73년 제9대 국회의원, 국회 재무위원회 및 예결위원회 간사, 75년 30차 유엔총회 한국대표, 76년 유정회(惟政會) 총회 대책위원장, 79년 제10대 국회의원(共和, 聞慶 醴泉), 79년 공화당(共和黨) 당무조정실장, 정책위 부의장(政策委副議長), 82년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강사, 84년 동 교수(敎授), 85년 동 기초연구부장, 89년 한국학대학원장(韓國學大學院長), 89년 서울대 대학원 강사, 93년 동 교수, 99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총동창회장이다. 그 외 고등고시 위원, 정부시책 평가교수, 민주공화당 정책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및 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저서는 <한국정치론(韓國政治論)>, <비교정치론(比較政治論, 譯)>, <아시아 정치론>(Robert E. Wores 著, Roy C. Macridis 共編, 譯, 서울大出版部), <2000년 대와 한국의 선택>(編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2),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의 정치적 엘리트 충원 연구>, <정치적 정통성 연구(譯)>, <자유민주주의의 한국적 모형 연구(自由民主主義의 韓國的 模型 硏究)>(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0), <맥아더회고록>(맥아더 著, 飜譯, 翰林出版社, 1971), <제2차세계대전>(Winston Churchill 著, 共譯, 博文社, 1970), <민주화 과정의 국제적 비교와 한국>(韓國精神文化硏究院 社會科學硏究室 編輯 發行, 1988), <연방제 통일안과 그 대비책>(國土統一院 編輯 發行, 1970), <제2차 세계대전 1-8>(Robert E. Wored 編著, 飜譯, 서울大出版部), <한국 정치사회개혁의 이론과 실제>(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9), <맥아더>(Douglas MacArthur 著, 譯, 翰林出版社, 1985), <정치적 정통성 연구>(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0), <세계화와 민족 문화의 발전>(編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發行, 1996), <한국 민주화의 이념적 지향>(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敎育倫理硏究室 編輯 發行, 1990)이 있다. 이상의 저서들이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 사회과학실, 정부간행물실에 소장되어 있다.(東亞年鑑 1973, 慶北年鑑 1977 1978 1980, 醴泉文學 3輯 1991 5輯 1992 6輯 1992, 每日年鑑 1984 1986, 醴泉新聞 1992.4.30, 每日名鑑 1996 1997 200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예천의 자랑(299) : 구범모(매산 출신 서울대 교수의 저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7-11 照會 117)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382~383쪽
->예천의 자랑(1621) : 구범모 議員(附 예천방문 147)(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04-09 照會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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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용 [記事] : 안동의 무속/ 간행년 : 2005/ 저자 : 안동민속박물관/ 발행처 : 민속박물관/ 1) 구본용 : 주소:안동시 태화동 216번지/ □ 조사내용/ 1. 무의 환경 : 구법사(남, 63세)는 안동시 태화동 서악사(西嶽寺) 올라가는 길의 초입에 신당을 차리고 있다. 신당의 입구에는 사천황대를 세우고 흰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卍자를 표기한 깃발을 세워 두었다. 신당 입구에는 간판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그 이름을 ꡐ구도사ꡑ라고 부른다. 구도사라는 이름은 구법사의 성이 구씨이고 또 도술, 제방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구법사는 43살 때부터 무업의 길로 들어섰으며, 여기서 신당을 차린 지는 10년 정도 되었다. 구법사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며 성격은 상냥하고 인정이 많아 보인다. 구법사는 현재 이곳에서 주물공장에 다니는 부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인과는 금술이 좋은 편이며, 성격이 원만하여 이웃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 가까이에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으나 마음은 있어도 물질적으로 도와줄 형편이 못돼 자주 내왕을 하지 못한다. 구법사의 안태고향은 경상북도 예천군 동본2동으로 10남매 가운데 6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구법사의 모친은 중년에 신기(神氣)가 있어 자연통신을 하여 신을 받았으며, 남편 몰래 사람들에게 치성을 빌어주고 점사 등을 행해주곤 하였다. 집안에 법당을 꾸미고 부처님 3분을 모셔놓았는데, 구법사가 법단을 짜주었다. 옛날에는 ꡐ보살이 나면 집안이 망 한다ꡑ고 믿는 사람이 많아 모친의 무업에 대해 자식들의 반대가 심하였다. 모친 또한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해서 고향이 안동이라고 하였으며, 사람들은 안동 박보살이라 불렀다. 구법사의 기억으로는 그 모친이 산신 공(功)을 많이 드렸으며, 초파일이 되면 법당이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2. 성무과정/ 1) 강신체험 : 평온하던 구법사의 집안에 풍파가 닥친 것은 그 모친이 죽은 이후라고 한다. 당시에 구법사의 백씨는 예천에서 정학당이란 시계방을 운영하였으며, 자신은 안동에서 고물상을 하였는데 장사가 잘 되었다. 그 모친이 6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살아생전에 ꡒ내가 죽으면 집안이 큰일이다ꡓ라고 자주 말하곤 하였다. 모친이 타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 불운이 돌아 백씨의 시계방이 망하고, 형제자매들은 병이 들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자신에게도 불행이 미쳐 사업이 망하고 부부에게 차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가 찾아 왔다. 구법사의 부인이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가서 물어보니 ꡐ자기(부인)가 보살이 되어야만 집안이 평안해 진다ꡑ고하더라 라고 말해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야단을 쳤다. 부부가 빈번히 아프다보니 부인이 신굿을 받았는데 신 내림이 없어 신굿을 14번이나 하였다. 집안 살림은 어려워지고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 빚을 내어 부인이 신굿을 받았다. 신굿을 할 때마다 부인에게는 나름이 없어서 구법사는 속으로 ꡐ저 여자(보살)들이 내게 한번 해 보면…ꡑ 하고 늘 생각했다. 살림살이가 거덜나고 집이 빛 더미에 올라앉아 ꡐ이제 내가 죽어야지ꡑ 하고 시장에서 구입한 이 잡는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8일 만에 깨어보니 안동 성소병원 이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삼˜사일 쯤 병상에 누워 있다가 무의식 속에서 염불을 낭독하였다. 무의식 상태에서 꿈을 꾸었는데 저승에서 부모를 만났다.
부모님이 ꡒ니는 나가면 많은 중생을 만나는 사장이다ꡓ하면서 부친은 팔을 당기고 어머니는 등을 미는 꿈이었다. 입원 8일째 되는 날 아침에 의식이 돌아 왔는데 예천의 큰집에서는 구법사가 깨어난 걸 모르고 보살들을 불러 천도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법사가 이 소식을 듣곤 곧바로 부인과 함께 예천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보살들이 천도굿을 행하고 있었는데 구법사는 화를 내며 ꡒ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천도굿을 한다ꡓ고 야단을 쳤다. 그해 동짓달에 부인이 마지막으로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황산사에서 내림굿을 받았다. 그러나 신이 내리지 않아 보살들이 얼음물을 부인의 몸에 끼어 얹곤 하였다. 구법사가 속으로 ꡐ저 여자들이 저러다가 사람 죽이는 것 아닌가? 나한데 한번 해보았으면..ꡑ 하고 생각했다한다. ꡐ마누라는 안 되는데 왜 굿을 해서 집안을 망하게 하나?ꡑ 라는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스님에게 절에서 쓰고 남은 술 한 잔을 달라 해서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난 후 구법사의 몸이 희한하게 변하면서 귀에서 ꡒ땅!ꡓ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말문이 터졌는데, 보살들이 저 사람에게 잡귀가 쓰여 큰일났다고 했다. 그 길로 울며 집으로 돌아와 동네 미장원에서 귀를 뚫고 장난감점에서 커다란 방울을 사서 귀에 달고 ꡐ짤랑짤랑ꡑ거리면서 온 시장을 돌아 다녔다./ 2) 무의 특징 : 자연통신을 하고 곧바로 무업을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에 장사가 되다가 안 되다가 하였다. 그래서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신당을 엎어버리기도 하였는데 그리하고 나면 몸이 아프고 해서 다시 모시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러한 일이 몇 번 반복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혼자서 무업을 행했는데 무업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신시장 배전골목의 조 보살에게 배웠으며 그 후에 독립하였다. ꡒ스승이 없이 혼자서 해보니 맨 날 국민학생이라!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굿을 할라면 얼마에 맡아야 하는지! 장을 얼마를 보아야 하는지..ꡓ 구법사는 조 보살에게 무업을 배울 때 주로 해원굿이나 신굿을 많이 하였으며 특히 초성이 좋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 보살과 사년 간 같이 일하다가 독립하였는데 올해로 십칠 년이 되었다. 독립한 계기는 산신의 계시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낮에 기도를 하는 데 이곳 태화산의 산신이 말하길 ꡒ너는 남자다. 여자 치마폭 밑에 얼쩡거리지 마라! 너는 이런 재방, 법술을 가지고 환자를 고쳐주고 해라!ꡓ 고 하였다. 신의 계시를 받은 후 현 위치에 신당을 차렸다. 이곳에서 아들 딸 오남매를 공부시켜 시집장가 다 보냈으며, 부부 사이의 금술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구법사가 제일 위하는 신이 이곳 산신이다. 대주와 부인의 사주를 맞추어 보고 잘 되도록 해준다. 무업은 주로 제방을 위주로 점사를 행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굿을 많이 하였다. 구법사는 주로 병점을 잘 친다고 한다. 특히 가정불화 등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재방을 써서 잘 다스린다고 한다. 제방은 한지로 만드는데 사람이 죽으면 일곱 매듭으로 묶듯이 한지 실로 일곱 번 접어 만든다고 한다.
점을 볼 때는 나무관세음보살, 수리수리마수리 등과 같은 주문을 외우고 천지신명, 옥황상제, 팔도명산 산신 등을 찾는다. 신령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ꡐ배고픈 사람 밥 사주고, 추운 사람 옷 사주고, 병든 사람 고쳐주고, 안 되는 가정 바라주고.. 할아버지요 이런 능력 주이소!ꡑ 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기도 전에는 목욕재계를 한다. 겨울철에는 옥상에 물을 얼게 해놓고 그 물을 덮어쓴다. 예전에는 삼년 동안 냉수를 덮어썼다. 산기도를 갈 때는 소백산이나 태백산에 맨 몸으로 가서 삼일 기도를 올린다. 특히 구법사는 태백산과 학가산 국사봉 등에서의 산신기도를 올리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3. 신단 : 집에서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아늑한 분위기의 신단을 꾸몄다. 신단을 꾸민 방은 다른 공간에 비해 높아 마치 누상고에 신단을 꾸민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이 집을 지을 때 대지로 돌출한 암벽을 깨뜨리지 않고 건축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신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하단에는 향로, 촛대, 옥수그릇 2개씩 놓았다. 상단에는 산신상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 대감할배를 봉안하고 우측에는 동자? 선녀상과 칠성 꽃, 팔보살을 상징하는 고깔모자, 용신단지를 모셨다. 전면 벽면은 무신도로 장식하였는데 이 무신도들은 구법사의 모친이 무업을 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무신도는 좌로부터 관운장, 글문선생, 산신불, 칠성불, 팔보살(대신할매), 용신할배(옥황상제), 오방신장 등의 그림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신단의 좌측 벽면에는 박보살의 영정사진을 걸고 그 아래에는 삼지창, 청룡언월도와 태극기 등을 배치하였다. 신단 우측에는 인등을 배치하고 벽에는 동자, 선녀, 용신장군님의 옷과 산신, 동자, 칠성님의 옷을 걸어 두었다. 무구는 신장도, 요령, 징, 북, 칠성부채 등을 갖추고 있으나 점을 볼 때에는 상 위에 쌀, 옥수그릇 등을 놓는다. 점사에 임할 때의 복식은 특별히 갖추어 입지 않으나 ꡐ도사답게 남자답게 젊잖게 해라ꡑ는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목에는 백팔염주를 두르고 양손에는 12염주를 잡는다. 무복은 굿을 행할 때만 입으며, 평소 점을 칠 때는 생활 한복 등 편한 차림으로 임한다. 구법사가 모시는 신명은 천신과 조상신을 함께 모신다. 가장 위하는 신은 태화산의 산신과 관운장이며 조상신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태화산 산신은 구법사의 무업에 방향을 제시해준 신이다. 이 신령님의 계시로 구법사는 독립된 무업을 하게 되고 무업도 굿보다는 재방과 도술을 이용한 점복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여러 신들 가운데 관운장을 주요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은 이곳과 조금 떨어진 산록에 관왕묘가 있기 때문이다. 관왕묘는 중국의 명장 관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서악사(西嶽寺) 동쪽에 있으며, 내부에는 돌로 무안왕상(武安王像)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구법사는 신당 밖의 석등 앞에서 매일 새벽 5시와 밤 12시에 신장기도를 올리며, 오전 9시와 저녁 6시에는 법당 안에서 산신기도를 드린다. 조상신은 천상에서 도를 닦아서 오셨으며 대감할배와 할아버지, 팔보살, 용신장군, 동자ㆍ선녀를 모신다. 대감할배는 구법사의 5대 조부이며, 할아버지는 3대 조부이다. 팔보살은 조상신 가운데 가장 위하는 신으로 구법사의 모친이다. 이 분은 살아생전에 팔보살도를 닦아 천상에서 팔보살이 된 분으로 대신할매라고도 한다. 용신장군은 구법사의 부친으로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어머니와 함께 모시게 되었으며 용신할배라고도 부른다. 동자와 선녀는 형제일신으로 돌전에 죽은 친동생이나 6촌 이내의 친척이다.(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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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택(具本澤, 韓國近現代人物資料) : 예천 출신, 거창세무서장으로, <민국인사> 7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41세(1949년 현재), 예천 출신, 본관은 금산(錦山), 학력은 日本大學 專門部 法科 卒業, 경력 및 활동은 大邱稅務監督局, 大邱稅務署, 馬山稅務署, 居昌稅務署 등 勤務, 居昌稅務署長 就任”(대한민국인사록)(history.go.kr 2005)
구본택(具本澤) : 1909- , 본관은 錦山, 출신지는 慶尙北道 醴泉, 주소는 慶尙南道 居昌邑 上洞 80, 학력은 日本大學 專門部 法科 卒業, 경력 및 활동은 大邱稅務監督局, 大邱稅務署, 馬山稅務署, 居昌稅務署 등 勤務, 居昌稅務署長 就任이다.(대한민국인사록 7, www.history.go.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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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具鳳書) : 1919- , 지보면 지보리 출신, 본관은 능성, 지보공립보통학교(知保公立普通學校) 졸업, 낙봉서숙(洛鳳書塾)에서 한문 수학(修學), 일본 항상사(港商事) 대표 취체역, 항(港)빌딩유한회사 대표, (株)항송촌(港松村) 대표, 재일대한민국 거류민단 동경지방 본부 단장(在日大韓民國居留民團東京地方本部團長)이다.(知保面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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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민 : 예천읍 동본리 출신, 자철의 2자, 예천초등, 경북체고 졸업, 1999년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이탈리아 살르스테르메에서 열린 제16회 세계주니어실버에로우양궁대회에서 개인종합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였다.(醴泉新聞 199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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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모(具秀謨) : 1947- , 예천 출신, 본관은 능성, 서울대 화학과 졸업, 현대종합상사(現代綜合商社, 株) EGYPT지점장, 한국타이어제조(株) CAIRO, JEDDAH, FRANKFURT지점장, 수출부장, OEM 영업부장, 한국석유공업(株) 상무이사, 고려아연(高麗亞鉛, 株) 이사를 지냈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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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모(具英謨) : 1943- , 유천면 출신, 본관은 능성, 본식의 아들, 예천중, 한양대 자원공학과 졸업, 75년 한국토지공사(韓國土地公社) 창립 때 입사, 충남지사장(忠南支社長), 기술본부장을 지냈다. 96년 한국토지신탁회사 부사장, 97년 한국토지공사 종합감리공단 사장을 지냈다.(醴泉新聞 1996.7.11 1997.12.25,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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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빈(具滋彬) ; 1930- , 예천읍 통명리 206번지 출신, 41년 대창학원(大昌學院) 졸업, 79년 예천통명농요(醴泉通明農謠) 창설 단원이고, 예천통명농요보존회장(現)이다. 예천통명농요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大統領賞)을 받았고, 무형문화재 제84호(1979)로 지정되었다. 97년 도덕회복국민운동 예천읍지부장(현), 국민윤리도덕선양회 계몽위원이다. 6.25참전용사회 예천지회 부회장(현)이다. 예천군수 표창, 도덕성회복국민운동총재 표창(2회)가 있다.(每日名鑑 1997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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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모 : 예천 출생, 공대 졸업, 품질기사 1급 엔지니어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3개월 간 해외 출장이 계기가 되어 선진 농업을 보고 준비를 하였고, 면 년 전 귀향하였다. 안동상황마을 농민으로 사이버 1호 직거래 농장을 경영하여 신지식인(新知識人)이 되었다.(인터넷 taegu-hc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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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칸이 만난 스타 : SBS 史劇 ''''薯童謠'''' 구혜선) [記事] : 탤런트 구혜선이 ''''물 만난 고기'''' 마냥 화려한 비상을 꿈꾼다. 구혜선이 만난 물은 바로 2005년 9월 5일부터 방송하는 SBS 사극 ''''서동요''''(극본 김영현. 연출 이병훈). 언뜻 보기에 ''''얼짱 스타'''' 구혜선과 사극은 왠지 어색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연예인 생활 10년 동안 이렇게 눈빛이 빛난 구혜선을 본 적이 없다. [# 은진이가 곧 구혜선] : "그 동안에는 제 모습을 버리지 않고 연기를 했는데 이 번에는 달라요. 제 자신을 버릴래요. 100% 은진이가 될 거에요. 발걸음, 말투, 손짓까지 모두 다에요." 보통 각오가 아니다. 마치 ''''얼짱'''' 구혜선이 아닌 ''''서동요''''의 ''''은진''''을 인터뷰하는 듯 했다. 구혜선이 맡은 은진 역은 백제시대 기술공방의 딸로 무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는 예술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저하고 은진은 너무 닮았어요. 호기심 많은 것, 예술적인 모습, 산만하기까지한 모습까지 딱 제 캐릭터에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제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아요." 심지어 ''''해바라기 사랑''''까지 비슷하다. 극중 은진은 아름다움 외모에 예술적인 재능까지 탁월해 뭇 사내들의 구애를 받는다. 하지만 오직 서동만을 바라보는 일편단심이다. 구혜선도, "저도 한 번 마음 속에 들어온 사람을 쉽게 지워내지 못해요"라며 찡긋 웃어보였다. [# 얼짱 아닌 연기자로] : ''''서동요''''는 구혜선에게 출연작 그 이상이다. 본격적인 정극 연기자로서 도약하는 무대다. 사실 구혜선이 연예계 데뷔한 지는 거의 10년째다. 처음 잡지 모델로 시작해, 케이블 방송 비디오 자키(VJ)로 활동했다. 지상파에 명함을 내민 것은 최근의 일. ''''얼짱''''으로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케이스다. 이후 구혜선은 MBC ''''논스톱5'''', KBS ''''드라마시티'''' 등 시트콤과 단막극에서 출연했다. "처음에는 얼짱이라는 수식어가 싫었어요. 제 본모습보다는 외모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은 얽매이지 않아요. 솔직히 얼짱이라는 표현으로 도움받은 게 사실이잖아요. 거부할수록 저만 피해 의식을 가질 것 같아요. 오히려 무명시절이 길었던 만큼 감사하고 있어요." 그만큼 ''''서동요''''에 대한 기대도 크다. 구혜선은 "처음 ''''은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듣고 바로 느낌이 왔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그림 그리는 은진이의 감성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요. 소품 하나하나마나 저도 모르게 참견 할 것같은 예감도 들어요. 곧 촬영 들어가는데 벌써부터 설레요." [■구혜선 ''''사극 토크''''] : ▲나이가 어찌 되오? =84년 쥐띠 옵니다. ▲그대가 정말 얼짱이오? =창피하옵니다. 연예계에는 저보다 예쁜 분들이 너무 많사옵니다. 송혜교, 김태희 낭자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입은 옷이 제법 야하오? =여름인지라 시원하게 입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천이 적게 든 옷을 입은 게 처음이라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별명이 어쩌다가 그리되었소? =어려서부터 ''''구데기''''로 통했습니다. 다 이름 때문이지요. 시골 냄새나고 친숙하지 않사옵니까? ▲성격이 털털하다 들었소? =제 외가인 경상북도 예천 고을에서 한동안 지냈사옵니다. 말도 못할 개구장이였지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개구리만 보면 예뻐서 손으로 잡고 그러하옵니다.(이석우 記者 京鄕新聞 200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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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11
예천군민제전 2009(醴泉文化祭 12日부터 17日까지 열려) [記事] :
경북 예천군은 2009년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 청소년수련관과 한천체육공원 일원에서 ''''제33회 예천문화제''''가 열린다고 2009년 10월 6일 밝혔다.
한천체육공원에서 1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읍.면을 대표한 12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2009 예천군수배 풍물경연대회를 시작으로 13일에는 청소년수련관에서 제4회 예천 전국한시대회, 공설운동장에서 예천단샘 다례축제가 열리게 된다.
14일 오후 2시부터 청소년수련관에서 주부 수채화 전시회와 사진전시회가 열리며 오후 7시 30분부터는 예천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예천아리랑 유래를 소재로 한 창극인 예천아리랑 창극 공연이 펼쳐진다.
15일은 청소년수련관 극장에서 삼강뱃사공노래 시연이 펼쳐지며 오전 10시부터 개막식에 이어 청소년수련관 광장에서 흑응농악단 공연, 경북도립대 권정찬 교수의 기 발현 글씨.그림 시연, 전통 도예체험, 곤충모형과 솟대 제작.시연, 풍선아트 체험이 이어진다.
초.중.고생들이 참가해 글짓기.서예.그림 솜씨를 뽐내는 학생백일장이 청소년수련관 및 산책로에서 열리게 되며 한내시화전이 공설운동장 광장에서 열린다.
또한 16일부터 17일까지 청소년수련관 광장에서는 대구예술대 주관으로 페이스페인팅, 캐리커쳐, 사진 찍어주기, 뱃지 제작, 핸드폰 고리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준비돼 있다.
군 관계자는 "2009년 문화제는 군민들의 화합의 한마당 장을 마련하고 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발전하는 예천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0.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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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범모(具範謨) : 1932- , 유천면 매산리 출신, 본관은 능성, 예천초등(34回), 예천농업중(醴泉農業中) 2년 수료, 대전중, 52년 대전고(大田高), 56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59년 동 대학원 정치학 석사, 63년 미국 코넬대 대학원 수학, 73년 서울대 정치학 박사(政治學博士)이다. 59년 서울대 문리대 강사, 동 전강(專講), 62년 동 정치학회 이사, 65년 동 조교수(助敎授), 68년 동 부교수(副敎授), 68년 신문 주간(主幹) 겸 편집국장, 70년 시정 평가교수(市政評價敎授), 71년 정경연구소 이사(政經硏究所理事), 72년 남북적십자회담(제1,2,3,4차) 자문위원, 73년 제9대 국회의원, 국회 재무위원회 및 예결위원회 간사, 75년 30차 유엔총회 한국대표, 76년 유정회(惟政會) 총회 대책위원장, 79년 제10대 국회의원(共和, 聞慶 醴泉), 79년 공화당(共和黨) 당무조정실장, 정책위 부의장(政策委副議長), 82년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강사, 84년 동 교수(敎授), 85년 동 기초연구부장, 89년 한국학대학원장(韓國學大學院長), 89년 서울대 대학원 강사, 93년 동 교수, 99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총동창회장이다. 그 외 고등고시 위원, 정부시책 평가교수, 민주공화당 정책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및 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저서는 <한국정치론(韓國政治論)>, <비교정치론(比較政治論, 譯)>, <아시아 정치론>(Robert E. Wores 著, Roy C. Macridis 共編, 譯, 서울大出版部), <2000년 대와 한국의 선택>(編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2),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의 정치적 엘리트 충원 연구>, <정치적 정통성 연구(譯)>, <자유민주주의의 한국적 모형 연구(自由民主主義의 韓國的 模型 硏究)>(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0), <맥아더회고록>(맥아더 著, 飜譯, 翰林出版社, 1971), <제2차세계대전>(Winston Churchill 著, 共譯, 博文社, 1970), <민주화 과정의 국제적 비교와 한국>(韓國精神文化硏究院 社會科學硏究室 編輯 發行, 1988), <연방제 통일안과 그 대비책>(國土統一院 編輯 發行, 1970), <제2차 세계대전 1-8>(Robert E. Wored 編著, 飜譯, 서울大出版部), <한국 정치사회개혁의 이론과 실제>(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9), <맥아더>(Douglas MacArthur 著, 譯, 翰林出版社, 1985), <정치적 정통성 연구>(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政治經濟硏究室 編輯 發行, 1990), <세계화와 민족 문화의 발전>(編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發行, 1996), <한국 민주화의 이념적 지향>(著,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敎育倫理硏究室 編輯 發行, 1990)이 있다. 이상의 저서들이 국립중앙도서관 서고자료신청대, 사회과학실, 정부간행물실에 소장되어 있다.(東亞年鑑 1973, 慶北年鑑 1977 1978 1980, 醴泉文學 3輯 1991 5輯 1992 6輯 1992, 每日年鑑 1984 1986, 醴泉新聞 1992.4.30, 每日名鑑 1996 1997 200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예천의 자랑(299) : 구범모(매산 출신 서울대 교수의 저서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7-11 照會 117)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382~383쪽
->예천의 자랑(1621) : 구범모 議員(附 예천방문 147)(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8-04-09 照會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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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용 [記事] : 안동의 무속/ 간행년 : 2005/ 저자 : 안동민속박물관/ 발행처 : 민속박물관/ 1) 구본용 : 주소:안동시 태화동 216번지/ □ 조사내용/ 1. 무의 환경 : 구법사(남, 63세)는 안동시 태화동 서악사(西嶽寺) 올라가는 길의 초입에 신당을 차리고 있다. 신당의 입구에는 사천황대를 세우고 흰색 바탕에 붉은 색으로 卍자를 표기한 깃발을 세워 두었다. 신당 입구에는 간판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그 이름을 ꡐ구도사ꡑ라고 부른다. 구도사라는 이름은 구법사의 성이 구씨이고 또 도술, 제방으로 사람들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구법사는 43살 때부터 무업의 길로 들어섰으며, 여기서 신당을 차린 지는 10년 정도 되었다. 구법사는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며 성격은 상냥하고 인정이 많아 보인다. 구법사는 현재 이곳에서 주물공장에 다니는 부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인과는 금술이 좋은 편이며, 성격이 원만하여 이웃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 가까이에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으나 마음은 있어도 물질적으로 도와줄 형편이 못돼 자주 내왕을 하지 못한다. 구법사의 안태고향은 경상북도 예천군 동본2동으로 10남매 가운데 6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구법사의 모친은 중년에 신기(神氣)가 있어 자연통신을 하여 신을 받았으며, 남편 몰래 사람들에게 치성을 빌어주고 점사 등을 행해주곤 하였다. 집안에 법당을 꾸미고 부처님 3분을 모셔놓았는데, 구법사가 법단을 짜주었다. 옛날에는 ꡐ보살이 나면 집안이 망 한다ꡑ고 믿는 사람이 많아 모친의 무업에 대해 자식들의 반대가 심하였다. 모친 또한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해서 고향이 안동이라고 하였으며, 사람들은 안동 박보살이라 불렀다. 구법사의 기억으로는 그 모친이 산신 공(功)을 많이 드렸으며, 초파일이 되면 법당이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2. 성무과정/ 1) 강신체험 : 평온하던 구법사의 집안에 풍파가 닥친 것은 그 모친이 죽은 이후라고 한다. 당시에 구법사의 백씨는 예천에서 정학당이란 시계방을 운영하였으며, 자신은 안동에서 고물상을 하였는데 장사가 잘 되었다. 그 모친이 6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살아생전에 ꡒ내가 죽으면 집안이 큰일이다ꡓ라고 자주 말하곤 하였다. 모친이 타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 불운이 돌아 백씨의 시계방이 망하고, 형제자매들은 병이 들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자신에게도 불행이 미쳐 사업이 망하고 부부에게 차례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마가 찾아 왔다. 구법사의 부인이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가서 물어보니 ꡐ자기(부인)가 보살이 되어야만 집안이 평안해 진다ꡑ고하더라 라고 말해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야단을 쳤다. 부부가 빈번히 아프다보니 부인이 신굿을 받았는데 신 내림이 없어 신굿을 14번이나 하였다. 집안 살림은 어려워지고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 그런 와중에 빚을 내어 부인이 신굿을 받았다. 신굿을 할 때마다 부인에게는 나름이 없어서 구법사는 속으로 ꡐ저 여자(보살)들이 내게 한번 해 보면…ꡑ 하고 늘 생각했다. 살림살이가 거덜나고 집이 빛 더미에 올라앉아 ꡐ이제 내가 죽어야지ꡑ 하고 시장에서 구입한 이 잡는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8일 만에 깨어보니 안동 성소병원 이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삼˜사일 쯤 병상에 누워 있다가 무의식 속에서 염불을 낭독하였다. 무의식 상태에서 꿈을 꾸었는데 저승에서 부모를 만났다.
부모님이 ꡒ니는 나가면 많은 중생을 만나는 사장이다ꡓ하면서 부친은 팔을 당기고 어머니는 등을 미는 꿈이었다. 입원 8일째 되는 날 아침에 의식이 돌아 왔는데 예천의 큰집에서는 구법사가 깨어난 걸 모르고 보살들을 불러 천도굿을 준비하고 있었다. 구법사가 이 소식을 듣곤 곧바로 부인과 함께 예천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보살들이 천도굿을 행하고 있었는데 구법사는 화를 내며 ꡒ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천도굿을 한다ꡓ고 야단을 쳤다. 그해 동짓달에 부인이 마지막으로 안동시 임동면에 있는 황산사에서 내림굿을 받았다. 그러나 신이 내리지 않아 보살들이 얼음물을 부인의 몸에 끼어 얹곤 하였다. 구법사가 속으로 ꡐ저 여자들이 저러다가 사람 죽이는 것 아닌가? 나한데 한번 해보았으면..ꡑ 하고 생각했다한다. ꡐ마누라는 안 되는데 왜 굿을 해서 집안을 망하게 하나?ꡑ 라는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어 스님에게 절에서 쓰고 남은 술 한 잔을 달라 해서 마셨다. 술을 마시고 난 후 구법사의 몸이 희한하게 변하면서 귀에서 ꡒ땅!ꡓ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말문이 터졌는데, 보살들이 저 사람에게 잡귀가 쓰여 큰일났다고 했다. 그 길로 울며 집으로 돌아와 동네 미장원에서 귀를 뚫고 장난감점에서 커다란 방울을 사서 귀에 달고 ꡐ짤랑짤랑ꡑ거리면서 온 시장을 돌아 다녔다./ 2) 무의 특징 : 자연통신을 하고 곧바로 무업을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에 장사가 되다가 안 되다가 하였다. 그래서 신이 없다고 생각하고 신당을 엎어버리기도 하였는데 그리하고 나면 몸이 아프고 해서 다시 모시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였다. 이러한 일이 몇 번 반복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신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혼자서 무업을 행했는데 무업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신시장 배전골목의 조 보살에게 배웠으며 그 후에 독립하였다. ꡒ스승이 없이 혼자서 해보니 맨 날 국민학생이라!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굿을 할라면 얼마에 맡아야 하는지! 장을 얼마를 보아야 하는지..ꡓ 구법사는 조 보살에게 무업을 배울 때 주로 해원굿이나 신굿을 많이 하였으며 특히 초성이 좋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 보살과 사년 간 같이 일하다가 독립하였는데 올해로 십칠 년이 되었다. 독립한 계기는 산신의 계시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낮에 기도를 하는 데 이곳 태화산의 산신이 말하길 ꡒ너는 남자다. 여자 치마폭 밑에 얼쩡거리지 마라! 너는 이런 재방, 법술을 가지고 환자를 고쳐주고 해라!ꡓ 고 하였다. 신의 계시를 받은 후 현 위치에 신당을 차렸다. 이곳에서 아들 딸 오남매를 공부시켜 시집장가 다 보냈으며, 부부 사이의 금술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구법사가 제일 위하는 신이 이곳 산신이다. 대주와 부인의 사주를 맞추어 보고 잘 되도록 해준다. 무업은 주로 제방을 위주로 점사를 행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굿을 많이 하였다. 구법사는 주로 병점을 잘 친다고 한다. 특히 가정불화 등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재방을 써서 잘 다스린다고 한다. 제방은 한지로 만드는데 사람이 죽으면 일곱 매듭으로 묶듯이 한지 실로 일곱 번 접어 만든다고 한다.
점을 볼 때는 나무관세음보살, 수리수리마수리 등과 같은 주문을 외우고 천지신명, 옥황상제, 팔도명산 산신 등을 찾는다. 신령님께 기도를 드릴 때는 ꡐ배고픈 사람 밥 사주고, 추운 사람 옷 사주고, 병든 사람 고쳐주고, 안 되는 가정 바라주고.. 할아버지요 이런 능력 주이소!ꡑ 라고 기도한다고 한다. 기도 전에는 목욕재계를 한다. 겨울철에는 옥상에 물을 얼게 해놓고 그 물을 덮어쓴다. 예전에는 삼년 동안 냉수를 덮어썼다. 산기도를 갈 때는 소백산이나 태백산에 맨 몸으로 가서 삼일 기도를 올린다. 특히 구법사는 태백산과 학가산 국사봉 등에서의 산신기도를 올리면 효과가 있다고 한다./ 3. 신단 : 집에서 안쪽, 가장 높은 곳에 아늑한 분위기의 신단을 꾸몄다. 신단을 꾸민 방은 다른 공간에 비해 높아 마치 누상고에 신단을 꾸민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이 집을 지을 때 대지로 돌출한 암벽을 깨뜨리지 않고 건축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신단은 2단으로 구성되어 하단에는 향로, 촛대, 옥수그릇 2개씩 놓았다. 상단에는 산신상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 대감할배를 봉안하고 우측에는 동자? 선녀상과 칠성 꽃, 팔보살을 상징하는 고깔모자, 용신단지를 모셨다. 전면 벽면은 무신도로 장식하였는데 이 무신도들은 구법사의 모친이 무업을 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무신도는 좌로부터 관운장, 글문선생, 산신불, 칠성불, 팔보살(대신할매), 용신할배(옥황상제), 오방신장 등의 그림을 차례로 배치하였다. 신단의 좌측 벽면에는 박보살의 영정사진을 걸고 그 아래에는 삼지창, 청룡언월도와 태극기 등을 배치하였다. 신단 우측에는 인등을 배치하고 벽에는 동자, 선녀, 용신장군님의 옷과 산신, 동자, 칠성님의 옷을 걸어 두었다. 무구는 신장도, 요령, 징, 북, 칠성부채 등을 갖추고 있으나 점을 볼 때에는 상 위에 쌀, 옥수그릇 등을 놓는다. 점사에 임할 때의 복식은 특별히 갖추어 입지 않으나 ꡐ도사답게 남자답게 젊잖게 해라ꡑ는 할아버지의 말에 따라 목에는 백팔염주를 두르고 양손에는 12염주를 잡는다. 무복은 굿을 행할 때만 입으며, 평소 점을 칠 때는 생활 한복 등 편한 차림으로 임한다. 구법사가 모시는 신명은 천신과 조상신을 함께 모신다. 가장 위하는 신은 태화산의 산신과 관운장이며 조상신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태화산 산신은 구법사의 무업에 방향을 제시해준 신이다. 이 신령님의 계시로 구법사는 독립된 무업을 하게 되고 무업도 굿보다는 재방과 도술을 이용한 점복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여러 신들 가운데 관운장을 주요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은 이곳과 조금 떨어진 산록에 관왕묘가 있기 때문이다. 관왕묘는 중국의 명장 관우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서악사(西嶽寺) 동쪽에 있으며, 내부에는 돌로 무안왕상(武安王像)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구법사는 신당 밖의 석등 앞에서 매일 새벽 5시와 밤 12시에 신장기도를 올리며, 오전 9시와 저녁 6시에는 법당 안에서 산신기도를 드린다. 조상신은 천상에서 도를 닦아서 오셨으며 대감할배와 할아버지, 팔보살, 용신장군, 동자ㆍ선녀를 모신다. 대감할배는 구법사의 5대 조부이며, 할아버지는 3대 조부이다. 팔보살은 조상신 가운데 가장 위하는 신으로 구법사의 모친이다. 이 분은 살아생전에 팔보살도를 닦아 천상에서 팔보살이 된 분으로 대신할매라고도 한다. 용신장군은 구법사의 부친으로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어머니와 함께 모시게 되었으며 용신할배라고도 부른다. 동자와 선녀는 형제일신으로 돌전에 죽은 친동생이나 6촌 이내의 친척이다.(www.koreastudy.or.kr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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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택(具本澤, 韓國近現代人物資料) : 예천 출신, 거창세무서장으로, <민국인사> 7에 수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41세(1949년 현재), 예천 출신, 본관은 금산(錦山), 학력은 日本大學 專門部 法科 卒業, 경력 및 활동은 大邱稅務監督局, 大邱稅務署, 馬山稅務署, 居昌稅務署 등 勤務, 居昌稅務署長 就任”(대한민국인사록)(history.go.kr 2005)
구본택(具本澤) : 1909- , 본관은 錦山, 출신지는 慶尙北道 醴泉, 주소는 慶尙南道 居昌邑 上洞 80, 학력은 日本大學 專門部 法科 卒業, 경력 및 활동은 大邱稅務監督局, 大邱稅務署, 馬山稅務署, 居昌稅務署 등 勤務, 居昌稅務署長 就任이다.(대한민국인사록 7, www.history.go.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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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서(具鳳書) : 1919- , 지보면 지보리 출신, 본관은 능성, 지보공립보통학교(知保公立普通學校) 졸업, 낙봉서숙(洛鳳書塾)에서 한문 수학(修學), 일본 항상사(港商事) 대표 취체역, 항(港)빌딩유한회사 대표, (株)항송촌(港松村) 대표, 재일대한민국 거류민단 동경지방 본부 단장(在日大韓民國居留民團東京地方本部團長)이다.(知保面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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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민 : 예천읍 동본리 출신, 자철의 2자, 예천초등, 경북체고 졸업, 1999년 8월 27일부터 30일까지 이탈리아 살르스테르메에서 열린 제16회 세계주니어실버에로우양궁대회에서 개인종합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였다.(醴泉新聞 199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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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모(具秀謨) : 1947- , 예천 출신, 본관은 능성, 서울대 화학과 졸업, 현대종합상사(現代綜合商社, 株) EGYPT지점장, 한국타이어제조(株) CAIRO, JEDDAH, FRANKFURT지점장, 수출부장, OEM 영업부장, 한국석유공업(株) 상무이사, 고려아연(高麗亞鉛, 株) 이사를 지냈다.(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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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모(具英謨) : 1943- , 유천면 출신, 본관은 능성, 본식의 아들, 예천중, 한양대 자원공학과 졸업, 75년 한국토지공사(韓國土地公社) 창립 때 입사, 충남지사장(忠南支社長), 기술본부장을 지냈다. 96년 한국토지신탁회사 부사장, 97년 한국토지공사 종합감리공단 사장을 지냈다.(醴泉新聞 1996.7.11 1997.12.25,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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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빈(具滋彬) ; 1930- , 예천읍 통명리 206번지 출신, 41년 대창학원(大昌學院) 졸업, 79년 예천통명농요(醴泉通明農謠) 창설 단원이고, 예천통명농요보존회장(現)이다. 예천통명농요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大統領賞)을 받았고, 무형문화재 제84호(1979)로 지정되었다. 97년 도덕회복국민운동 예천읍지부장(현), 국민윤리도덕선양회 계몽위원이다. 6.25참전용사회 예천지회 부회장(현)이다. 예천군수 표창, 도덕성회복국민운동총재 표창(2회)가 있다.(每日名鑑 1997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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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모 : 예천 출생, 공대 졸업, 품질기사 1급 엔지니어로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3개월 간 해외 출장이 계기가 되어 선진 농업을 보고 준비를 하였고, 면 년 전 귀향하였다. 안동상황마을 농민으로 사이버 1호 직거래 농장을 경영하여 신지식인(新知識人)이 되었다.(인터넷 taegu-hc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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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칸이 만난 스타 : SBS 史劇 ''''薯童謠'''' 구혜선) [記事] : 탤런트 구혜선이 ''''물 만난 고기'''' 마냥 화려한 비상을 꿈꾼다. 구혜선이 만난 물은 바로 2005년 9월 5일부터 방송하는 SBS 사극 ''''서동요''''(극본 김영현. 연출 이병훈). 언뜻 보기에 ''''얼짱 스타'''' 구혜선과 사극은 왠지 어색할 수 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연예인 생활 10년 동안 이렇게 눈빛이 빛난 구혜선을 본 적이 없다. [# 은진이가 곧 구혜선] : "그 동안에는 제 모습을 버리지 않고 연기를 했는데 이 번에는 달라요. 제 자신을 버릴래요. 100% 은진이가 될 거에요. 발걸음, 말투, 손짓까지 모두 다에요." 보통 각오가 아니다. 마치 ''''얼짱'''' 구혜선이 아닌 ''''서동요''''의 ''''은진''''을 인터뷰하는 듯 했다. 구혜선이 맡은 은진 역은 백제시대 기술공방의 딸로 무기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는 예술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저하고 은진은 너무 닮았어요. 호기심 많은 것, 예술적인 모습, 산만하기까지한 모습까지 딱 제 캐릭터에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제 자신을 보고 있을 것 같아요." 심지어 ''''해바라기 사랑''''까지 비슷하다. 극중 은진은 아름다움 외모에 예술적인 재능까지 탁월해 뭇 사내들의 구애를 받는다. 하지만 오직 서동만을 바라보는 일편단심이다. 구혜선도, "저도 한 번 마음 속에 들어온 사람을 쉽게 지워내지 못해요"라며 찡긋 웃어보였다. [# 얼짱 아닌 연기자로] : ''''서동요''''는 구혜선에게 출연작 그 이상이다. 본격적인 정극 연기자로서 도약하는 무대다. 사실 구혜선이 연예계 데뷔한 지는 거의 10년째다. 처음 잡지 모델로 시작해, 케이블 방송 비디오 자키(VJ)로 활동했다. 지상파에 명함을 내민 것은 최근의 일. ''''얼짱''''으로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케이스다. 이후 구혜선은 MBC ''''논스톱5'''', KBS ''''드라마시티'''' 등 시트콤과 단막극에서 출연했다. "처음에는 얼짱이라는 수식어가 싫었어요. 제 본모습보다는 외모에만 집착하는 것 같아서요. 지금은 얽매이지 않아요. 솔직히 얼짱이라는 표현으로 도움받은 게 사실이잖아요. 거부할수록 저만 피해 의식을 가질 것 같아요. 오히려 무명시절이 길었던 만큼 감사하고 있어요." 그만큼 ''''서동요''''에 대한 기대도 크다. 구혜선은 "처음 ''''은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듣고 바로 느낌이 왔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그림 그리는 은진이의 감성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요. 소품 하나하나마나 저도 모르게 참견 할 것같은 예감도 들어요. 곧 촬영 들어가는데 벌써부터 설레요." [■구혜선 ''''사극 토크''''] : ▲나이가 어찌 되오? =84년 쥐띠 옵니다. ▲그대가 정말 얼짱이오? =창피하옵니다. 연예계에는 저보다 예쁜 분들이 너무 많사옵니다. 송혜교, 김태희 낭자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입은 옷이 제법 야하오? =여름인지라 시원하게 입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천이 적게 든 옷을 입은 게 처음이라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별명이 어쩌다가 그리되었소? =어려서부터 ''''구데기''''로 통했습니다. 다 이름 때문이지요. 시골 냄새나고 친숙하지 않사옵니까? ▲성격이 털털하다 들었소? =제 외가인 경상북도 예천 고을에서 한동안 지냈사옵니다. 말도 못할 개구장이였지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개구리만 보면 예뻐서 손으로 잡고 그러하옵니다.(이석우 記者 京鄕新聞 200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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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11
예천군민제전 2009(醴泉文化祭 12日부터 17日까지 열려) [記事] :
경북 예천군은 2009년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 청소년수련관과 한천체육공원 일원에서 ''''제33회 예천문화제''''가 열린다고 2009년 10월 6일 밝혔다.
한천체육공원에서 1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읍.면을 대표한 12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2009 예천군수배 풍물경연대회를 시작으로 13일에는 청소년수련관에서 제4회 예천 전국한시대회, 공설운동장에서 예천단샘 다례축제가 열리게 된다.
14일 오후 2시부터 청소년수련관에서 주부 수채화 전시회와 사진전시회가 열리며 오후 7시 30분부터는 예천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예천아리랑 유래를 소재로 한 창극인 예천아리랑 창극 공연이 펼쳐진다.
15일은 청소년수련관 극장에서 삼강뱃사공노래 시연이 펼쳐지며 오전 10시부터 개막식에 이어 청소년수련관 광장에서 흑응농악단 공연, 경북도립대 권정찬 교수의 기 발현 글씨.그림 시연, 전통 도예체험, 곤충모형과 솟대 제작.시연, 풍선아트 체험이 이어진다.
초.중.고생들이 참가해 글짓기.서예.그림 솜씨를 뽐내는 학생백일장이 청소년수련관 및 산책로에서 열리게 되며 한내시화전이 공설운동장 광장에서 열린다.
또한 16일부터 17일까지 청소년수련관 광장에서는 대구예술대 주관으로 페이스페인팅, 캐리커쳐, 사진 찍어주기, 뱃지 제작, 핸드폰 고리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준비돼 있다.
군 관계자는 "2009년 문화제는 군민들의 화합의 한마당 장을 마련하고 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발전하는 예천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0.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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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