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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30:권영학弓匠(祝장용호/예천방문520)
작성자장병창 @ 2009.10.24 06:58:39
  예천의 자랑(2030) : 예천읍 왕신리 출신 권영학 궁장(附 예천군청 장용호, 어제 전국체전 양궁 금메달...축하합니다/예천방문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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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학(權寧鶴) :


  1943- , 예천읍 왕신리 출신, 본관은 안동, 태진(泰震, 又甲)의 아들, 68년 동국대 농학과 졸업,

  무형문화재 경북6호 예천궁장, 한국무형문화재 기능보존협회 부이사장이다.

  64년 총무처고시(總務處考試) 4급 공채(公採)에 합격, 56년 조궁술(造弓術)을 아버지(무형문화재 6호)로부터 전수(傳授), 68년 경북 관광민속품 경진대회 특선,

  68년 대한궁도협회의 공인 6단(公認六段)으로 명궁(名弓)의 칭호를 받았고, 70년 예천중(醴泉中) 양궁팀 창설 육성, 71년 사재(私財)로 예천여중고(醴泉女中高)에 양궁부(洋弓部)을 만들었고,

  78년 경북민예전(慶北民藝展) 은상, 전국민예전 입선, 79년 제2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壯元, 문화공보부장관상)을 하였다.

  81년 국풍(國風)81 작품 전시, 미국 LA박물관 전시, 81-90년 전승공예대전(傳承工藝大展) 대의원, 83년 스위스 국립박물관 전시, 87-89년 한국궁우회(韓國弓友會) 상임부회장,

  대한궁도협회 중앙대의원, 89년 인간문화재 작품전, 문화행사 초청 전시, 한국궁시기능보존협회장(韓國弓矢技能保存協會長), 경북궁도협회 상임고문, 대한궁도협회 공인심판, 예천궁도회장,

  예천문화원 자문위원(醴泉文化院諮問委員), 전국민속제전 궁도부문 자문위원, 이충무공탄신기념제전(李忠武公 誕辰記念祭展) 경북 수석위원이다.

  상으로는 대한민국 명궁(大韓民國明弓, 68), 경북도지사 표창(68-89, 20회), 대한궁도협회장상(68-89, 11회), 대한체육회장상(71- 89, 13회), 대한민국 명무(名武, 79), KBS사장상(81),

  각종 궁도대회 100회 이상 입상(48회 우승), 예천문화상 (醴泉文化賞, 92), MBC향토문화상(문화부문, 95)이다.

  무형문화재 경북 6호 궁장(弓匠)으로서 그가 만든 활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품이 되었다.

  (醴泉新聞 1995.9.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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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학(嶺南 文化․文化人-國內 最高 弓匠 醴泉 권영학 氏, 3代째 家業 ''''타고난 弓匠'''') [記事] : 국궁(國弓), 활(弓)을 얘기하자면 예천을 빼놓을 수 없다. 활 쏘는 민족의 기(氣)와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그 구심에는 국내 최고의 궁장(弓匠)이자 명무(名武)인 권영학(權寧鶴․ 62․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6호 예천궁장) 씨와 그가 만들어내는 활이 있다. [신궁 명장] : 활과 함께한 40년 외길 인생. 그 길을 걷게 된 것은 운명처럼 이끌렸고 수양의 도(道)를 깨우치게 했던 우리 활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었다. 권씨의 고향은 예천읍 왕신리 ''''왕산골''''. 소년 시절 그는 활 제작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듣던 아버지로부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약조를 강요받았다. 당시만 해도 빛을 보지 못하던 장인의 길 대신 관직으로 입신할 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통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활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거역할 수 없는 ''''핏줄''''이었다. 아버지가 활 만드는 일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던 터라 대신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활이라도 원없이 쏘아 볼 요량으로 궁도부에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대물림은 궁사의 자질로 나타났다. 한눈에 명궁의 재목임을 알아 본 지도교사가 부친을 설득해 손수 만든 활을 건네게 했고, 권씨는 그 활로 신기의 활솜씨를 보였다. 38세 되던 해 전주대사습놀이 국궁대회에서 장원에 올라 가장 젊은 나이에 ''''명무(名武)'''' 라는 칭호를 얻은 것을 비롯해 전국대회 100여 회 입상에 우승만 48회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궁장의 길은 여전히 가로막혀 있었다. 아버지의 채근으로 상경해 대학 재학 중 총무처 4급 공채에 합격, 뜻하지 않은 외도를 했으나 1964년 6․3학생운동에 참가한 대가로 학교와 직장을 모두 잃었다. 전화위복이었다. 어쩔 수 없었던 낙향이 비로소 궁장의 길을 터준 것이다. 아버지가 바라는 길을 거스른 데 백배 사죄한 다음에야 활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기법을 기본으로 했지만 감히 변형을 시도했다. 활폭을 줄이고 탄력성과 미려함을 더하는 작업이었다. 아버지의 호통이 따랐으나 활을 직접 쏘면서 개선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까? 1967년 선보인 첫 작품 13장은 내로라 하는 궁사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그 순간부터 이미 권씨는 최고의 궁장이었다. 권씨의 활 제작 솜씨는 예술의 경지에 비했다.

  궁사들은 소장하려 애썼고 국내는 물론 외국 유명 박물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우리 활의 위상을 높였다. 1980년 경북무형문화재 지정은 오히려 때늦은 것이었다. [예천 활] : 우리 활은 목궁, 철궁 등 약 10종류가 있었는데, 지금은 소뿔로 만드는 각궁만 남았다. 권씨의 예천활도 각궁이며, 길이로는 단궁(短弓), 구조상으로는 목편과 죽편, 각편 등을 모두 사용해 만드는 복합궁이다. 주재료는 대나무, 산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민어부레 등 모두 천연 소재다. 습하지 않은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만들며 활 한 장 만드는데 300번 이상 손이 가야하는 정성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1920년쯤 안동 권씨 집성촌인 예천 ''''왕상골'''' 에 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외지 사람이 들어와 권씨의 조부대에 제작술을 전했고, 다수의 마을사람들도 따라 배웠다. 예천 활이 전국 수요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타지의 활 제작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산, 경주, 광주 등지에도 궁장이 있지만 이 역시 ''''왕상골'''' 출신이다.

  [궁장의 소임] : "인정받는 궁장의 지위에 올랐지만 오히려 짐스럽습니다." 권씨는, "고급 스포츠레저와 양궁에 의한 국궁의 급속한 퇴조 현상이 자신의 힘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을 작정이다. 무엇보다도 궁장의 맥을 확산시키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권씨는 정부의 궁장 후보들에 대한 육성 지원과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저변 확대는 고사하고 우리 활의 명맥도 단절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요즘은 우리 활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을 출간하는데 몰두한다. 꼬박 10년이 걸린 작업이다. 또 맏아들에게는 국궁 제작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게 했다. 궁장으로서의 소임이라는 것이다.(정경구 記者 每日新聞 2004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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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학(名弓 權寧鶴 氏 : "활쏘기는 道의 世界로 가는 길" 全國大會 48番 優勝 ''''最多 記錄'''' 활 쏠 땐 ''''自身''''조차 잊어버려야) [記事] : "활은 마음으로 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맞추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지요. 활쏘기의 궁극적 지향점은 바로 도(道)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명궁 권영학 씨는 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마자 ''''활은 기술로 맞추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수양을 통해 어떤 경지를 터득하는 것''''이라는 것부터 강조한다. 맞추기라면 권씨만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도 없다. 전국대회 150번 이상 입상에 우승만도 무려 48번을 차지한 전국 최다 기록보유자(1997년까지의 공식 기록). 이런 그가 ''''맞추기''''를 하지말고 마음으로 활을 쏘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그냥 일반론적 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 국궁계가 언제부턴가 맞추기 위주로 흘러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다. 경북도 궁도대표선수 겸 코치를 25년 간이나 연속해 온 이력이 있는 권씨는 활쏘기를 통해 얻어지는 경지에 대해,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지고, 텅 비어지고, 고요해지고, 또 모든 세상사를 잊는 것은 물론 나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가 저절로 온다. 이런 다음에는 꼭 신이 들린 것처럼 화살은 쏘는대로 그대로 과녁에 명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발백중의 경지는 결코 활쏘기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수양을 통해 어떤 경지에 도달했을 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 어떠한 걸림도 없이 활을 쏘는 무애(無碍)의 경지를 맛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명도 나오기 어렵다고 궁도인들은 말한다. 권씨는 이러한 경지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자신만이 안다. 앉아서 쏘아도 명중, 서서 쏘아도 명중, 걸어가면서 쏘아도 명중, 이 맛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랴"라는 말로 표현했다. 고향이 예천인 권씨는 국궁 뿐 아니라 양궁계에서도 국보급 존재다. 예천여중․고 양궁부를 창설하고 육성한 인물. 오늘날 올림픽에서 한국양궁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그 뒤에는 바로 권영학이란 인물이 있었다. 권씨는 ''''그 때 선친께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을 선뜻 궁도부 창설 자금으로 지원해 주신 것''''을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선친인 권태진 씨는 우리 전통 국궁을 만든 분으로 무형문화재 6호였으며 지금은 권씨가 전수를 해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궁도 9계훈이 바로 국궁 정신의 핵심입니다. 이 정신은 비록 국궁계 뿐 아니라 우리 전통 사상의 모든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궁도 9계훈의 실천을 통해 국궁인은 바로 이 시대 한국 정신의 맥을 잇고, 그 것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수양과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에 이바지하는 것이지요"라며 많은 운동 중에서도 우리의 전통 사상을 그대로 담으면서 그 정신적 맥을 오늘에 살리고 있는 것이 바로 국궁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궁도 9계훈은 정심정기(正心正己), 불원승자(不怨勝者), 자중절조(自重節操) 등 궁도인의 9개 실천 요강으로 각종 대회 때는 반드시 단체로 낭독하고 있다. 권씨는 장전(長田)이라는 호를 쓰고 있다. 활(弓)과 더불어 길게(長) 마음밭(田)을 가꾼다는 의미의 이 호는 자신이 스스로 지어 사용하는 것. 국궁과 더불어 살고있는 모습이 이 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권씨는 우리의 전통활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외무부 주선으로 1981년 미국 LA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한 것을 비롯해 83년 스위스 국립박물관 작품 전시, 85년 독일(서독) 국립박물관 작품 전시, 95년 중국정부 초청 작품 전시 및 제작 시연, 97년 일본 세계공예품 전시 및 제작 시연을 했다. 그는 요즘 국궁에 대한 각종 자료 정리에 바쁘다.(김동윤 記者 嶺南日報200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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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학(權寧鶴 : 醴泉弓匠) [文化財] : 무형문화재 제6호로, 소재지는 예천읍 남본리 69-3번지(권영학), 예천(醴泉)은 예로부터 국궁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명맥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궁을 제작하고 심신을 수련하는 이들이 많다. 국궁은 각궁이라 하여 우리 군의 특산물으로 예천궁장 기능 보유자인 권영학(道 지정무형문화재 제6호) 씨가 수작업으로 완성하며, 전국 수요 60%를 예천 출신의 명장들이 제작ㆍ공급하고 있다. 활의 주요 재료로는 대나무, 산뽕나무, 굴참나무, 소심줄, 물소뿔, 민어풀 및 장식에 필요한 화피 등을 사용하며, 특별히 도지래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외에 몇 가지의 공정을 거쳐 각궁을 생산한다. 생산 기간은 보통 100일에서 120일 정도 소요되며, 제작 시기도 따뜻하고 서늘한 봄ㆍ가을에 주로 생산한다. 국궁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후진 양성을 위한 활쏘기 장소로 예천읍 남산(남본리 소재)에 무학정(武學亭)이 있으며, 1960년까지만 하여도 예천읍 대심리에 있던 것을 활쏘기에 불편하고 건물이 낙후되어 남산으로 이전하였으며,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인 이곳에서는 선비의 정신 수양으로 활쏘기를 많이 하였다. 남산(南山)은 산책 코스와 체육시설이 있으며 읍(邑)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팔각정과 화재를 예방해 준다는 돌자라, 호국선열의 혼이 깃들여 있는 충혼탑이 있는 곳으로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1996년 국제 규모의 양궁경기장이 예천읍 청복리에 들어서 매년 전국 규모의 양궁대회가 4~5차례 개최되고 있으며, 실내양궁경기장인 문화체육센타가 1,164평의 규모로 2000년도에 준공되었다. 예천이 활의 고장으로 크게 알려진 것은 지난 79년 예천여고(醴泉女高)의 김진호 선수가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으로 제패하면서부터이다. 이 때부터 활(國弓ㆍ洋弓)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어느 지역보다 높고 적극적이다.(醴泉郡廳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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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의 자랑(48) : 예천궁장 권영학(전주 대사습놀이에서 장원)(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2-07-30 照會 40)

  -><예천의 자랑> 제1권(張炳昌 著 2004年) =8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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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청 장용호, 어제 전국체전 양궁 금메달...축하합니다.

  장용호(장용호, 洋弓 男子 個人展 優勝) [記事] :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며 전국체전 양궁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경북 대표로 출전한 장용호는 결승에서 12살의 화살 가운데 8발을 10점에 명중시키며 116점을 쏴 서울 대표 홍성칠을 2점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지난 2004 아테네올림픽과 2006 도하아시안게임 양궁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장용호는 "전국체전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런던올림픽에 다시 한번 출전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국가대표 3인방 가운데, 박경모는 아슬아슬한 1점차 승부로 동메달을 추가했지만 임동현과 이창현은 각각 32강과 8강에서 탈락했습니다.

  (홍석근 YTN 2009-10-2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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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520

  예천군문화회관(道立交響樂團 22日 午後 7時 30分 醴泉文化會館에서 醴泉 郡民을 爲한 希望의 콘서트 開催) [記事] :

  경상북도립교향악단은 2009년 10월 22일 저녁 7시 30분 예천문화회관에서 제106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현세 상임지휘자의 지휘 아래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서곡, 스트라빈스키 모음곡 “불새”, 테너 이병삼의 무대로 “그리운 금강산”과 푸치티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못 이루고”,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등이 연주되었다.

  19C 전반에 작곡된 로시니의 오페라 10번째 작품인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총 2막8장 구성으로 초연당시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음악 중 최초의 작품인 모음곡 “불새”는 오케스트레이션에 의한 풍부하고 힘이 넘치는 원색적인 음향의 울림이 강한 작품이다.

  또한 대구가톨릭대학교 성악과 교수인 이병삼이 특별 출연하여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칼라프 왕자가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아리아인 “공주는 잠못이루고”를 들려주었다.

  끝으로 브람스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곡으로 총 21개의 소곡으로 구성된 “헝가리안 댄스”중 제3번, 10번, 5번을 연주했다.

  이번 연주회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지역주민들에게 수준높은 클래식 음악을 선사함으로써 지역민의 정서함양에도 도움이 되고, 건전문화 정착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10-23 오전 9: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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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정(제5회 醴泉郡守盃 太西地區 弓道大會) [記事] :

  우리농산물 축제 및 군민의 날 기념식을 겸한 제5회 예천군수배 태서지구(경북,강원,충북) 남녀 궁도대회가 2009년 10월 15일 예천읍 예천무학정(남산)에서 열렸다.

  예천무학정(사두 강규원)이 주최한 이날 대회에는 태서지구내 26개 정에서 4백여 명의 임원 및 선수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으며, 관내 각급 기관단체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참가 선수들은 각 팀과 지역의 명예를 걸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펼쳤으며, 예천 무학정에서는 시상품을 예천우수농산물로 전달해 예천농산물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대회결과

  ◆단체전 △우승: 오대정(평창) △준우승: 노송정(평창) △3위: 충무정(영주) 대관정(평창)

  ◆남자개인 △1위: 최교창(영주 충무정) △2위: 윤종훈(영주 충무정) 원광식(평창 노송정) △3위: 임병진(평창 대관정) 소재규(평창 대관정) 김치영(학봉정)

  ◆여자개인 △1위: 조영숙(학봉정) △2위: 최명숙(학봉정) 고영선(성주 가야정) △3위: 손미희(충북 의림정)

  ▲노년부 △1위: 정동식(영주 충무정) △2위: 최선종(평창 노송정) △3위: 김주형(삼구정)

  (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10월 22일 16: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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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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