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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34:권일議員(附예천방문523)
예천의 자랑(2034) : 예천읍 상동리 출신 권일 국회의원(附 예천방문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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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
1910-2001, 예천읍 상동리 안골 출신, 본관은 안동, 일호(一晧, 원남주식회사 대표이사), 세륜(世倫, 事業), 세령(世寧, 辯護士), 세윤(世潤, 公認會計士)의 아버지이다. 예천초등, 경기제2고보(高普, 慶福高), 38년 일본 명치대(明治大) 법학부 졸업, 62년 동 법학박사(法學博士)이다. 국제 변호사이다.
38년 명치대(明治大) 재학 중에 고등문관시험(高等文官試驗) 사법과(司法科)에 합격하고 만주에서 판사(判事), 해방 후인 46년 일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여 재일 동포의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조총련(朝總聯)의 침투 공작도 제거하는 등 민단(民團) 운동에도 크게 헌신했다.
그리하여 46년 재일거류민단(在日居留民團) 중앙총본부 외무부장, 동 부단장, 50년 주일대표부(駐日代表部, 후 주일대사관) 법률 고문(法律顧問) 변호사로서 재일 동포의 인권 옹호와 법적 지위 향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가 높이 평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동포들의 생계 유지와 복지 향상에 기여한 업적은 대단하다.
도쿄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재일거류민단 부단장, 51년부터 재일거류민단 중앙총본부 단장으로서 5.16군사혁명 때에는 정부와 보조를 같이 하였고, 65년 한일회담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숨은 공로자로 68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國民勳章冬柏章)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업적을 뒷받침하면서 도약하는 조국의 발전상에 일익을 담당하여 정치에 몸을 담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피임됨을 발판으로 71년 8대 국회의원(共和黨, 全國區) 때부터 그의 대외적인 활약은 크게 부각되었다.
9대 국회의원 때에는 재외국민 취적 호적 정정(就籍戶籍訂正) 및 호적 정리에 관한 임시 특례법안(特例法案)을 통과시켜 재외 국민의 호적 정리를 위해 획기적인 역사의 장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일본 정계(政界) 중진들과 친면(親面)이 두터워서 대일관계 개선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고, 또한 72년 사회법인 일본문제연구소를 개설하여 그 이사로서 ''''일본 문제''''라는 격월간지(隔月刊誌)를 발행해 한일문화 교류에도 앞장섰다.
74년 역도연맹(力道聯盟) 회장, 79년 변호사 개업, 79년 해외교포문제연(海外僑胞問題硏) 이사장, 고문, 81년 평통 자문위원(平統諮問委員), 82년 신한은행(新韓銀行) 법률고문, 83년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 상임고문, 84년 신한은행 법률고문이다.
국민훈장 무궁화장(無窮花章), 일본훈2등(日本勳2等) 서보장을 받았다.
분수에 맞는 생활 철학으로 강직한 성품에 인정 많은 인물로 정평을 받았다.
저서는 <조국의 염원>, <친족상속법(親族相續法, 日文)>, <현해탄(玄海灘)을 사이에 두고>, <권일회고록(權逸回顧錄, 日文)>이 있다.
묘지는 문경시 동로면 원기리 선영에 있다.
(東亞年鑑 1969 1973, 慶北年鑑 1975 1978, 嶺友俱樂部 第99號 1982, 每日年鑑 1984 1986, 國家賞勳人士總覽 1989, 每日名鑑 1996 1997, 韓國日報 2001.4.4, 文化日報 20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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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前 國會議員 權逸 氏 別世) [記事] :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일(90)씨가 2001년 4월 3일 오전 0시 2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권씨는 1937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왔으며 1950년대 재일거류민단 단장, 67년 공화당 대통령선거대책위 고문, 공화당(전국구)과 유정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장남 일호((주)원남대표이사) 등 4남. 발인은 7일 오전 7시 강북삼성병원.(朝鮮日報 20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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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翁 別世) [記事] : 8, 9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일(權逸) 옹이 2001년 4월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권옹은 1937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재일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67년 공화당 대통령선거대책위 고문을 거쳐 공화당(전국구)과 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일호(一皓. ㈜원남 대표이사) 씨 등 4남. 발인 7일 오전 7시 강북삼성병원(每日經濟 20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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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記事] : 권일(일본식 이름: 權藤嘉郞, 1911년 8월 22일 ~ 2001년 4월 3일)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국 법조인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권혁주(權赫周)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생애] : 경상북도 예천군 출신이다.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다. 이후 만주국의 심판관으로 임용되어, 옌지에서 심판관을 지내는 등 만주국 사법 관료로 활동했다. [1] 만주에서 대동학원을 졸업하였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일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도쿄에 머물면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을 역임하는 등 우익 계열의 재일 한국인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 민단 단장으로 선출된 뒤 박정희 정권에 부름을 받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8대와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상속법에 대한 일본어 저서를 포함하여 회고록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2]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를 발표하면서 해외 부문에 선정했다. [학력] :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 졸업, 대동학원 졸업, 메이지 대학 법학박사, [약력] :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합격, 만주국 심판관, 변호사, 대한민국 주일대사관 법률고문,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사단법인 일본문제연구소 이사장, 1971년 ~ 1972년 : 제8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1973년 ~ 1979년 : 제9대 국회의원 (유신정우회), [참고자료] : 권일 - 대한민국헌정회, 권일(權逸) - 국사편찬위원회(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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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851) : 권일(안골 출신 국회의원의 저술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8-24 照會 1088)
-><예천의 자랑> 제8권(張炳昌 著 2006年) =1497~14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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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23
예천온천(溫泉의 活性化 戰略 - 國內 溫泉地域의 成功事例) [記事] :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만족시키며 떠날 수 있는 ''''오감을 즐기는 가을 여행 5선''''을 추천했다.
이번 추천 여행상품은 가을여행의 대표 코스 단풍만이 아닌 맛있는 음식과 온천욕, 구수한 사투리 등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먼저 충주 앙성온천과 영월 다하누촌 한우, 적멸보궁 법흥사 단풍 등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 상품은 붉게 물든 단풍구경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탄산온천을 자랑하는 충주의 앙성온천 온천에 피로도 풀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눈, 몸, 입이 동시에 즐거운 이 상품은 전국 여느 단풍명소들처럼 사람에 차량에 치이지 않고 호젓하게 산사의 여유로운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 더 좋다.
◇ 예천온천 이용객 30만명 확보 :
경북 예천군은 예천온천 이용객 30만 명을 목표로 ''''예천온천 사랑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예천온천 이용객을 확보하기 위해 소속직원 축하선물이나 각종 시상품을 온천입욕 예매권으로 활용하고 각종 단체의 온천욕 효사랑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온천장이 위치해 있는 감천면 관현리에 3천㎡의 농장을 조성해 온천입욕권 50매(20만원 상당)를 구매한 40세대에 각 75㎡정도를 분양하기도 했다.
또 연료절감을 위해 하절기에 기존 열탕을 냉탕으로 변경 운영해 1천만 원 가량의 예산을 절감했다.
직원들이 인근 지역의 여행사를 방문해 예천온천을 홍보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홍보물을 비치하고 전지역의 여행사를 방문해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천온천은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각종 질병예방과 피로회복은 물론 수질이 매우 부드러워 무좀 예방과 피부 미용에 매우 좋아 전국에서 많은 온천 마니아들이 찾는다.
예천온천은 예천군에서 직영하는 온천으로 2000년 3월 개장 이래 2009년 6월말 현재까지 317만 명이 이용해 118억 5천만 원의 수입으로 군 재정확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忠北日報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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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慶北大 洛東江硏究院, 安東~醴泉 探査) [記事] :
경북대 낙동강연구원은 낙동강탐사단원 등 400여 명이 2009년 10월 31일 안동에서 예천에 이르는 삼강주막 일원에서 ''''경북여성지도자와 함께하는 문화가 흐르는 낙동강 탐사''''를 벌인다고 28일 밝혔다.
4대강 살리기 국정 과제에 폭넓은 인식 확산을 위한 취지의 이번 행사는 대구지방환경청과 경북대 낙동강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경상북도 여성단체협의회 등이 후원하며 경북도지사와 시군 구청장 부인, 지역구 국회의원 부인 등이 참여한다.
행사에서는 대구지방환경청장의 ''''4대강 개발사업의 추진과 미래'''' 주제 강의를 시작으로 예천군 삼강주막 일원에서 사진촬영대회와 시낭송, 대구 미술작가 10여 명의 참가자 캐리커처 그리기 등으로 진행된다.
이밖에 특설무대를 설치해 ''''삼강주막에서 낙동강을 만나다''''란 주제로 남성중창단과 퓨전국악단, 대금 연주, 낙동강 민요, 낙동강 찬가 합창 등의 특별 공연과 윷놀이 등 민속 행사도 벌어진다.
탐사 일정 중 버스로 이동 중에는 홍경혜(식물분류학) 박사, 배정득(동물 곤충 분류학) 박사, 최정우(물관리) 박사 등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해설과 생태 문화 설명도 이뤄진다.
(한용수 記者 韓國大學新聞 2009-10-28 오후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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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
1910-2001, 예천읍 상동리 안골 출신, 본관은 안동, 일호(一晧, 원남주식회사 대표이사), 세륜(世倫, 事業), 세령(世寧, 辯護士), 세윤(世潤, 公認會計士)의 아버지이다. 예천초등, 경기제2고보(高普, 慶福高), 38년 일본 명치대(明治大) 법학부 졸업, 62년 동 법학박사(法學博士)이다. 국제 변호사이다.
38년 명치대(明治大) 재학 중에 고등문관시험(高等文官試驗) 사법과(司法科)에 합격하고 만주에서 판사(判事), 해방 후인 46년 일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여 재일 동포의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조총련(朝總聯)의 침투 공작도 제거하는 등 민단(民團) 운동에도 크게 헌신했다.
그리하여 46년 재일거류민단(在日居留民團) 중앙총본부 외무부장, 동 부단장, 50년 주일대표부(駐日代表部, 후 주일대사관) 법률 고문(法律顧問) 변호사로서 재일 동포의 인권 옹호와 법적 지위 향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가 높이 평가되고 있을 뿐 아니라, 동포들의 생계 유지와 복지 향상에 기여한 업적은 대단하다.
도쿄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재일거류민단 부단장, 51년부터 재일거류민단 중앙총본부 단장으로서 5.16군사혁명 때에는 정부와 보조를 같이 하였고, 65년 한일회담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숨은 공로자로 68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國民勳章冬柏章)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업적을 뒷받침하면서 도약하는 조국의 발전상에 일익을 담당하여 정치에 몸을 담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피임됨을 발판으로 71년 8대 국회의원(共和黨, 全國區) 때부터 그의 대외적인 활약은 크게 부각되었다.
9대 국회의원 때에는 재외국민 취적 호적 정정(就籍戶籍訂正) 및 호적 정리에 관한 임시 특례법안(特例法案)을 통과시켜 재외 국민의 호적 정리를 위해 획기적인 역사의 장을 남기게 되었다.
특히 일본 정계(政界) 중진들과 친면(親面)이 두터워서 대일관계 개선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고, 또한 72년 사회법인 일본문제연구소를 개설하여 그 이사로서 ''''일본 문제''''라는 격월간지(隔月刊誌)를 발행해 한일문화 교류에도 앞장섰다.
74년 역도연맹(力道聯盟) 회장, 79년 변호사 개업, 79년 해외교포문제연(海外僑胞問題硏) 이사장, 고문, 81년 평통 자문위원(平統諮問委員), 82년 신한은행(新韓銀行) 법률고문, 83년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 상임고문, 84년 신한은행 법률고문이다.
국민훈장 무궁화장(無窮花章), 일본훈2등(日本勳2等) 서보장을 받았다.
분수에 맞는 생활 철학으로 강직한 성품에 인정 많은 인물로 정평을 받았다.
저서는 <조국의 염원>, <친족상속법(親族相續法, 日文)>, <현해탄(玄海灘)을 사이에 두고>, <권일회고록(權逸回顧錄, 日文)>이 있다.
묘지는 문경시 동로면 원기리 선영에 있다.
(東亞年鑑 1969 1973, 慶北年鑑 1975 1978, 嶺友俱樂部 第99號 1982, 每日年鑑 1984 1986, 國家賞勳人士總覽 1989, 每日名鑑 1996 1997, 韓國日報 2001.4.4, 文化日報 20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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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前 國會議員 權逸 氏 別世) [記事] : 8,9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일(90)씨가 2001년 4월 3일 오전 0시 20분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권씨는 1937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왔으며 1950년대 재일거류민단 단장, 67년 공화당 대통령선거대책위 고문, 공화당(전국구)과 유정회 의원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장남 일호((주)원남대표이사) 등 4남. 발인은 7일 오전 7시 강북삼성병원.(朝鮮日報 20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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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翁 別世) [記事] : 8, 9대 국회의원을 지낸 권일(權逸) 옹이 2001년 4월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권옹은 1937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재일변호사로 활동해 왔다. 67년 공화당 대통령선거대책위 고문을 거쳐 공화당(전국구)과 유정회 의원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일호(一皓. ㈜원남 대표이사) 씨 등 4남. 발인 7일 오전 7시 강북삼성병원(每日經濟 2001-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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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權逸) [記事] : 권일(일본식 이름: 權藤嘉郞, 1911년 8월 22일 ~ 2001년 4월 3일)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국 법조인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권혁주(權赫周)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생애] : 경상북도 예천군 출신이다. 일본에 유학하여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다. 이후 만주국의 심판관으로 임용되어, 옌지에서 심판관을 지내는 등 만주국 사법 관료로 활동했다. [1] 만주에서 대동학원을 졸업하였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일본에서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도쿄에 머물면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을 역임하는 등 우익 계열의 재일 한국인으로 활동하였다. 1964년 민단 단장으로 선출된 뒤 박정희 정권에 부름을 받아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8대와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무궁화장을 수여받았으며, 상속법에 대한 일본어 저서를 포함하여 회고록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2]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를 발표하면서 해외 부문에 선정했다. [학력] :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 졸업, 대동학원 졸업, 메이지 대학 법학박사, [약력] :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합격, 만주국 심판관, 변호사, 대한민국 주일대사관 법률고문,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 민주공화당 중앙위원, 사단법인 일본문제연구소 이사장, 1971년 ~ 1972년 : 제8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1973년 ~ 1979년 : 제9대 국회의원 (유신정우회), [참고자료] : 권일 - 대한민국헌정회, 권일(權逸) - 국사편찬위원회(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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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851) : 권일(안골 출신 국회의원의 저술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5-08-24 照會 1088)
-><예천의 자랑> 제8권(張炳昌 著 2006年) =1497~14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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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23
예천온천(溫泉의 活性化 戰略 - 國內 溫泉地域의 成功事例) [記事] :
한국관광공사(사장 오지철)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만족시키며 떠날 수 있는 ''''오감을 즐기는 가을 여행 5선''''을 추천했다.
이번 추천 여행상품은 가을여행의 대표 코스 단풍만이 아닌 맛있는 음식과 온천욕, 구수한 사투리 등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먼저 충주 앙성온천과 영월 다하누촌 한우, 적멸보궁 법흥사 단풍 등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 상품은 붉게 물든 단풍구경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탄산온천을 자랑하는 충주의 앙성온천 온천에 피로도 풀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눈, 몸, 입이 동시에 즐거운 이 상품은 전국 여느 단풍명소들처럼 사람에 차량에 치이지 않고 호젓하게 산사의 여유로운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 더 좋다.
◇ 예천온천 이용객 30만명 확보 :
경북 예천군은 예천온천 이용객 30만 명을 목표로 ''''예천온천 사랑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에서는 예천온천 이용객을 확보하기 위해 소속직원 축하선물이나 각종 시상품을 온천입욕 예매권으로 활용하고 각종 단체의 온천욕 효사랑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2009년에는 온천장이 위치해 있는 감천면 관현리에 3천㎡의 농장을 조성해 온천입욕권 50매(20만원 상당)를 구매한 40세대에 각 75㎡정도를 분양하기도 했다.
또 연료절감을 위해 하절기에 기존 열탕을 냉탕으로 변경 운영해 1천만 원 가량의 예산을 절감했다.
직원들이 인근 지역의 여행사를 방문해 예천온천을 홍보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홍보물을 비치하고 전지역의 여행사를 방문해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예천온천은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각종 질병예방과 피로회복은 물론 수질이 매우 부드러워 무좀 예방과 피부 미용에 매우 좋아 전국에서 많은 온천 마니아들이 찾는다.
예천온천은 예천군에서 직영하는 온천으로 2000년 3월 개장 이래 2009년 6월말 현재까지 317만 명이 이용해 118억 5천만 원의 수입으로 군 재정확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忠北日報 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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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慶北大 洛東江硏究院, 安東~醴泉 探査) [記事] :
경북대 낙동강연구원은 낙동강탐사단원 등 400여 명이 2009년 10월 31일 안동에서 예천에 이르는 삼강주막 일원에서 ''''경북여성지도자와 함께하는 문화가 흐르는 낙동강 탐사''''를 벌인다고 28일 밝혔다.
4대강 살리기 국정 과제에 폭넓은 인식 확산을 위한 취지의 이번 행사는 대구지방환경청과 경북대 낙동강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경상북도 여성단체협의회 등이 후원하며 경북도지사와 시군 구청장 부인, 지역구 국회의원 부인 등이 참여한다.
행사에서는 대구지방환경청장의 ''''4대강 개발사업의 추진과 미래'''' 주제 강의를 시작으로 예천군 삼강주막 일원에서 사진촬영대회와 시낭송, 대구 미술작가 10여 명의 참가자 캐리커처 그리기 등으로 진행된다.
이밖에 특설무대를 설치해 ''''삼강주막에서 낙동강을 만나다''''란 주제로 남성중창단과 퓨전국악단, 대금 연주, 낙동강 민요, 낙동강 찬가 합창 등의 특별 공연과 윷놀이 등 민속 행사도 벌어진다.
탐사 일정 중 버스로 이동 중에는 홍경혜(식물분류학) 박사, 배정득(동물 곤충 분류학) 박사, 최정우(물관리) 박사 등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해설과 생태 문화 설명도 이뤄진다.
(한용수 記者 韓國大學新聞 2009-10-28 오후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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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