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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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200911.15)"유유자적여행자클럽"에서 "예천여행"을 다녀온후 홈페이지(http://cafe.daum.net/yyjj-travel)산행후기에 여행대장 임재식(길라잡이)씨의
글을 군민 누구나 한번 읽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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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여행을 다녀와서
"이전 저 다리 안 놓이고 제방 안 됐을 땐 시원하고 참 좋았는디, 배렀어. 이기 무슨 경치고 .... " 평생 삼강주막을 지켜 왔던 ''''뱃가 할매(유옥연 주모)''''가 말했던 것처럼 주막 주변의 풍경은 예전만 못했습니다. 2004년 4월, 59번 국도상에 삼강교가 놓이면서 한 동네처럼 훤히 보이던 삼강마을과 주막이 단절되어버리자 할매는 주막 봉당마루에 나앉아
사흘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삼강주막을 찾은 유유자적 나그네님들은 새 주모님이 담근 막걸리를 마시며 주막 벽에 적힌 옛 주모의 외상장부를 이야기했고 그 푸근한 정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옛 주막의 정취를 떠올리며 즐거워들 하였습니다.
회룡대로 가는 길에 장안사에 들렀습니다. 예천 회룡포에 갈 때면 젊은 날 스스로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칭하며 흰구름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려 했던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1168-1241)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흔네 해를 사는 동안 8천여 수의 시를 썼던 그가 이 절에 머물 때 ''''19일 장안사에 자면서 짓다''''라는 시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회룡대 정자에 그 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장안사에 머무는 동안 상주에 갔다가 낙동강의 흐름을 보고는 ''''낙동강을 지나며(行過洛東江)''''란 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청산 속 돌고 돌아서 /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노라 / 풀이 깊어도 길은 나 있고 / 솔밭 고요하더니 바람 한 점 없어라 / 가을 물은 청둥오리 머리같이 푸르고 / 아침 안개는 핏빛처럼 붉어라 / 누가 알까? 이 나그네가 / 온 세상 떠도는 시 쓰는 늙은이인 줄을"
어느 가을날, 낙동강 옆에 자리한 푸른 산에 올라 새벽 강의 평화로운 정경을 노래한 이 시를 읽을 때면 회룡포가 생각나고, 회룡대에 오르면 이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고 시를 지었던 그가 회룡포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시 한 수쯤 읊지 않았을 리 만무한데,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인기 드라마 ''''가을 동화''''의 주인공 은서와 준서가 어린 시절 물놀이를 하며 놀았던 회룡포 마을 들머리에 놓인 뿅뿅다리를 건너는 체험도 즐거웠고 강둑 위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강변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비룡이 꿈틀거리 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는 비룡산 산줄기를 보며 옛 시인이 읊은 ''''飛龍歸雲''''이란 시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산줄기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이요 구름은 피어오르는 연기와도 같은데 서로 어우러져 남쪽 하늘에 머물러 있네"
이곳 회룡포 말고도 이규보의 시심을 자극할 만한 아름다운 풍경은 예천 땅 곳곳에 늘려 있기에, 우리는 또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뱃속부터 먼저 채우기로 했습니다. 예천 용궁면의 명물인 막창순대와 오징어숯불구이를 먹으러 ''''흥부네순대집''''으로 갔습니다. 이 집은 ''''단골식당''''과 함께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천의
먹거리 명소인데, 안내를 한 나의 입맛에는 맞았지만 다른 유유자적 나그네님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5월이면 누른 꽃을 피운다 하여 ''''황(黃)''''씨 성을, 근본이 있는 나무라 하여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은 얻은 나이 500살의 팽나무인 황목근(黃木根, 천연기념물 제400호)과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풍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예천 권씨 종택(보물 제457호)은 버스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는 관계로 들르지 못했습니다. 그 점 퍽
아쉬웠고 유유자적 나그네님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예천군 문화관광과 박희식 문화유설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용문면의 여러 명소들을 탐방하였습니다. 금당실 전통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 후보 중 하나로 탐냈던 명당이라고 하였지만 아직은 옛 모습을 온전히 갖추지 못해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금당실 ''''쑤''''라고 부르는 금당실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 걷기는 기분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쑤''''는
숲을 뜻하는 이 지방의 옛말이라 합니다.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때 이 고장 출신의 두운선사가 바위 위에서 용의 영접을 받고 세웠다는 흥미로운 유래가 있는 천년고찰이라고 합니다. 대장전(보물 제145호)이라는 고풍스런 전각 내부에 있는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국내 유일의 불경 보관대라 합니다. 보물급 문화재만도 6점을 소장하고 있기에 성보박물관이 건립돼 있었습니다.
각자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박물관의 모형 윤장대를 정성스럽게 돌리던 유유자적 나그네님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바르게 사는 삶''''에 대한 단상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더 큰 관심은 절집 주변의 풍경이었습니다. 명산(名山)의 명찰(名刹)에 갈 때마다 왜 그 산이 명산이고, 왜 그 절이 명찰인지를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흥미롭고 즐거운 일입니다.
조선시대의 사람인 사가(四佳) 서거정도 용문사를 즐겨 찾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용문사에 다시 오니/ 산 깊어 세속의 시끄러움 끊겼어라./ 절에는 승탑(僧榻)이 고요하고/ 묵은 벽엔 불등(佛燈)이 타오르네/ 외줄기 샘물 소리 가녀리고/ 첩첩한 산봉우리 달빛을 막고 있네/ 우두커니 앉아 깊이 돌이켜보니/ 내 여기 있음조차 잊게 되누나."
푸근함을 느끼게 하는 산세에 둘러싸인 용문사 절집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동감하는 나그네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계곡가에 자리 잡고 있는 초간정에 와서도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기암괴석과 소나무, 계곡과 정자가 어우러진 경관은 그대로 한 폭의 수묵화였습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높고 큰 바위 위에 세워진 병암정도 참으로 아름다운 정자였습니다. 정자에서 넓은 들판(정자들)을 굽어보도록 지은 본래의 건축 목적과는 달리 담을 너무 높이 쌓은 바람에 마당에서는 아래쪽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정자 아래 연못에서 촬영된 드라마 ''''황진이''''의 명장면들을 떠올리며 모두들 즐거워했습니다.
나그네님들은 석송령(石松靈) 노거송을 보고서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삼강주막부터 석송령까지 전체 여정이 시종 흥미롭고 즐거웠으며 유익한 여행이었다고 만족해하시는 걸 보고 나 또한 여행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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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