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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57:김엄典籍(祝군청/예천방문540)
작성자장병창 @ 2009.11.30 06:46:49
  예천의 자랑(2057) : 예천 출신 김엄 사헌부 전적(附 예천군, 의료급여사업 전국평가 우수기관 선정...축하합니다/예천방문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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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金淹) :


  조선 연산군 때, 본관은 안동, 경조(敬祖)의 아들, 음사(蔭仕)로 십독(習讀)을 지냈고, 1504년(연산군 10) 2차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정과(丁科) 9위로 급제하여 십독(習讀), 사헌부 전적(司憲府典籍)을 지냈다.

  (朝鮮寰輿勝覽 1929, 國朝榜目, 醴泉郡誌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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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王朝實錄] : 1508년(중종 3) 3월 29일 대간(臺諫)이 왕에게 아뢰기를, "1504년(연산군 10) 이후로 홍문관 관리 임명 대상자 명단록인 홍문록(弘文錄)이 매우 난잡하게 되었고, 김엄 등 14인은 모두 홍문록에 적합하지 않으니, 개정하기를 청합니다."하였으나, 왕이 윤허하지 않았다. 동년 4월 1일 성희안(成希顔)이 왕에게 아뢰기를, "홍문록을 삭제하는 일에 관해 김엄 등은 필시 시로써 급제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전일에 ''''당분간 현직에 서용하지 말라''''라고 하신 전교는 역시 온편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中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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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金淹) : 예천 출신, 자는 희문(希文), 본관은 안동, 통례원찬의(通禮院贊儀) 맹성(孟誠)의 아들이다. 유학(幼學)으로서 1501년(연산군 7) 식년 진사시에 3등 52위로 합격, 150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司馬榜目)

김엄 [記事] : 고대일록(孤臺日錄)에 실린 예천 사는 김엄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孤臺日錄卷之四/ 甲辰 / 冬十月/ 丁未朔巡察使李時彦過郡向安陰鄕人陳弊于巡相 / 二日戊申與醴泉居金淹打話于小孤臺金君年近七十康健無比/ ...(경상대학교 文泉閣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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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 [記事] : 한국사료 총서/ 매원일기 / 梅園日記 十三 / 庚午 / 十月 / 十二日 / 溫習, 朝鄕人金淹來見, 日暮時將往南?, 到廣峴, 遇?甥及閔仲生同行, 至南?, 與朴兄同宿夜話. ○日出辰.(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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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 [記事] : 중종실록 5권/ 중종 3년(1508 무진 / 명 정덕(正德) 3년) 3월 29일(병인) 1번째 기사/ 대간이 홍문록에 적합치 않은 14인과 감찰을 체직할 것을 청하다/ 대간이 합사해서 전일의 일을 가지고 다섯 차례나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어 아뢰기를, ꡒ홍문관은 직책이 경연을 맡고 있으니 잘 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갑자년1488) 이후에 홍문록(弘文錄)1489) 이 매우 난잡하게 되었고, 노종(盧種)․문계창(文繼昌)․유의신(柳義臣)․김석필(金錫弼)․최세절(崔世節)․정백붕(鄭百朋)․김엄(金淹)․김형(金泂)․조언형(曹彦亨)․안한영(安漢英)․정충량․이번(李蕃)․윤탁(尹倬)․장적(張籍) 등 14인은 모두 홍문록(弘文錄)에 적합하지 않으니 개정하기를 청합니다. 감찰(監察)1490) 도 또한 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직책이 모든 관사를 규찰(糾察)하는 데 있는지라, 혹은 분대(分臺)1491) 에 가기도 하고, 혹은 행대(行臺)1492) 에 가기도 하여, 그 임무가 작지 않습니다. 지금 홍의손(洪義孫)․박감(朴?)․윤중연(尹仲涓)․윤파동(尹坡童)․정석필(丁碩弼)․김맹균(金孟均) 등 6인은 혹은 허물이 있기도 하고, 혹은 사무를 잘 처리하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모두 체직시키기를 청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감찰들은 체직시키고, 그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는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4책 241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註 1488]갑자년 : 1504 연산군 10년. ☞ / [註 1489]홍문록(弘文錄) :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을 선거 임명할 때의 제1차 기록. 부제학(副提學) 이하 여러 관원이 모여 마음에 둔 사람의 이름 위에 권점(圈點)을 찍어 그 찬반(贊反)을 표시하며, 이것은 다시 2차 선거인 도당록(都堂錄)에 올려짐. ☞ / [註 1490]감찰(監察) : 사헌부의 종6품직. ☞ / [註 1491]분대(分臺) : 각 관청의 감독 검열을 위하여 파견하는 것. ☞ / [註 1492]행대(行臺) : 지방의 주군(州郡)에 파견하는 것.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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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 [記事] : 중종실록 5권/ 중종 3년(1508 무진 / 명 정덕(正德) 3년) 3월 29일(병인) 2번째 기사/ 노종 14인의 일을 정승들에게 하문하다/ 정승들에게 묻기를, ꡒ대간이, 노종(盧種) 등 14인은 홍문록(弘文錄)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니 과연 전부 적합하지 않은가?ꡓ하니, 회계(回啓)하기를, ꡒ후진의 젊은 사람들이 일일이 어떠한가를 알 수는 없으나, 노종은 임사홍(任士洪)의 사위이고, 김석필(金碩弼)은 도사(都事)이었을 때 논박을 받은 일이 있으며, 최세절(崔世節)․정백붕(鄭百朋)․김엄(金淹)․김형(金泂)은 사운(四韻)으로 급제한 사람들로서, 당분간 현요(顯要)한 직에 서용하지 못할 사람들이고, 안한영(安漢英)은 근일에 잘못된 일을 저질렀으니, 대간이 동배(同輩)의 일에 대하여 논박할 때에 반드시 자세히 알고 난 후에 했을 것입니다. 만약 적합하지 않다면 개정하는 것이 옳습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이 사람들을 어찌 한때 논박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개정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정승뿐만 아니라 모든 재상들이 또한 많이 왔으니 각각 그 듣고 본 바로써 말하라.ꡓ하였다. 이에 회계하기를, ꡒ후진들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마는, 홍문관이 추천을 해서 기록한 것이므로 당연히 그 사람됨을 알고 있을 것이니 물어 보기를 청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그것을 홍문관에 물어 보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4책 241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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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엄 [記事] : 중종실록 5권/ 중종 3년(1508 무진 / 명 정덕(正德) 3년) 4월 1일(무진) 1번째 기사/ 홍문록을 삭제하는 일은 윤허하지 않다/ 조강에 나아갔다. 지평 김안국(金安國)과 정언 김정(金淨)이 전일의 일에 대하여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성희안(成希顔)이 아뢰기를, ꡒ채윤문(蔡允文)은 무재가 탁월한 사람이지마는, 그러나 대간의 말이 옳다면 또한 따라야 하겠습니다. 허집(許輯)은 사람됨이 대범해서 실수한 것이 없는데, 대간이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가 북경(北京)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제 홍문록을 많이 삭제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비록 삭제하지 않더라도 공도(公道)가 환하게 밝으면 자연히 조의(朝議)에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최세절(崔世節)․정백붕(鄭百朋)․김엄(金淹)․김형(金泂) 같은 사람들은 필시 시(詩)로써 급제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니, 전일에 ꡐ당분간 현직(顯職)에 서용하지 말라.ꡑ고 하신 전교는 역시 온편하지 못합니다. 지금 영의정 이하의 관원은 모두 폐조(廢朝) 때 승순(承順)한 사람들로서 정성근(鄭誠謹)을 참형(斬刑)에 처할 때에, 신 등은 마음 속으로 그 충성을 알았는데도, 그들은 곧 말하기를, ꡐ간사한 사람입니다.ꡑ 하면서, 서명(署名)하여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곧 인군의 나쁜 점을 조장한 것인데도 지금 오히려 대신의 반열에 끼어 있으니, 폐조 때의 일로써 이런 등류의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옛날, 성종 조에 임사홍이 도승지(都承旨)가 되었을 때에, 홍문관 교리(校理) 최한정(崔漢禎)은 말이 적고 덕행이 있었는데도 임사홍이 그 적합하지 못함을 끝까지 논박하므로, 성종께서 이르시기를, ꡐ너는 그 재주를 취하는가? 나는 그 덕행을 취한다.ꡑ 하시고, 얼마 안 가서 발탁하여 대사간(大司諫)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임사홍이 경솔하고 날쌘 사람을 좋아하는 생각을 억압한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년1494) 의 급제를 논박 핵실[論?]하는 것은 더욱 온편치 못한 점이 있습니다. 대체로 대간의 소임은 다만 언책(言責)뿐이었는데, 녹수(綠水) 1495) 의 집 짓는 것을 감독하도록 명하니, 핑계할 말이 없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생(儒生)을 시(詩)로써 시험하여 급제시키는 일이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ꡓ하고, 김안국은 아뢰기를, ꡒ대간은 명령이 내리면 회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생은 비록 핍박 독촉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심지어 옛일을 인용하여 아첨하는 말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지금 만일 뒤섞여 임용한다면 후일에 누구를 징계함이 있겠습니까?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홍문록(弘文錄)을 삭제한 일은 과연 온편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정승들에게 물어 보니 말하기를, ꡐ대간이 어찌 상세히 생각해서 아뢴 것이 아니겠습니까?ꡑ하기에 그 때 반복해 물어서 개정한 것이지마는,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그 수효가 너무 많으므로 지금은 삭제할 수 없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4책 241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註 1494]갑자년 : 1504 연산군 10년. ☞ / [註 1495] 녹수(綠水) : 연산군의 후궁.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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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의료급여사업 전국평가 우수기관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慶北道, 醫療給與事業 全國 最優秀) [記事] :

  경북도가 보건복지가족부 주관 2009년 의료급여사업 추진평가에서 전국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

  의료급여제도 이해를 위한 신규 책정자 집단교육 실시, 진료비 절감 실적 우수자 전기찜질기 지원 사업, 저소득주민 건강보험료 및 노인장기요양보험료 지원 시책 등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평가에서 영양군, 고령군, 예천군 등 3개 시군은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의료급여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 국민의 의료문제를 국가가 보장하는 공공부조 성격의 제도다. 근로능력이 없는 1종 의료급여수급권자에게는 진료비 전액, 근로능력이 있는 2종 수급권자에게는 진료비의 90%를 지원하고 있다.

  (양승복 記者 慶北日報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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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540

  한천사(醴泉 寒天寺 : 榮州 浮石寺 기둥을 세우지 못한 理由?) [記事] :

  한천사 앞 겹친 능선으로 저녁 어둠이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경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장 편안하게 품고 있었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컨퍼런스’를 하고 내려오면서 예천온천이 좋다기에 온천을 할까 하면서 가다가 아직 해가 저물지 않고 눈앞에 한천사 안내판이 있어 숙제도 하고 할까 해서 조금은 늦은 시간 한천사를 방문했다.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 한천사 입구에 다다르자 스님 두 분께서 걸어 나오고 계셔 차를 멈추고 늦은 시간이지만 사찰을 한번 방문하고자 왔다고 말씀드리니 모처럼 산책을 할까 했더니 하면서 그리 하라고 한다.

  입구에 도착하자 크지도 않은 개가 엄청나게 짖어댄다. 아마 늦은 시간에 온 우리를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다. 날씨도 흐리고 해가 저물어가고 있어 사진 찍기에 바빠 앵글을 이리저리 맞추었다.

  그 카메라 앵글 속 한천사 앞뜰은 아늑하게 펼쳐진 수많은 산 능선과 구름 그리고 하늘과 맞다은 풍경속의 달은 한 폭의 수채화에 점을 찍는 ‘화룡점정’ 그것이었다.

  한천사(寒天寺) 본전인 유리광전에는 저녁햇살을 받아 어두움이 길게 드리워진 사찰의 고즈넉함이 깊은 산중이 아님에도 참으로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런 중 주지스님이 오셔서 한천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천사 연기설화’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한천사와 영주 부석사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부석사를 짓던 의상이 부석사 기둥을 세우려 하는데 자꾸 넘어지고 해서 짓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지금의 부석사가 있는 영주에서 보면 남동쪽에 있는 예천군 감천면 증거리의 주마산이 주마형국(走馬形局)의 형국이라 기둥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서 부석사를 짓다 말고 한천사를 먼저 짓고 그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철조여래좌상(鐵佛)을 모시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천사는 매우 오래된 사찰로 신라 문무왕 16년(676)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했다. 또 현재 한천사에 있는 철불(鐵佛- 鐵造如來坐像)은 보물 제667호로 지정되어 있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불로 유명하다.

  또 이 철불도 큰 위기가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이 전쟁 물자에 쓰기 위해서 당시 중국과 한국에 있는 사찰의 종과 철불상을 많이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한천사에 계시는 스님의 꿈에 자꾸 춥다고 황토 흙을 입혀 돌라는 현몽이 있어 황토로 철 불을 덧칠하고 입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한천사에 와서 철불(鐵佛)을 보고 흙으로 되어 있어 갖고 가지 않았는데 당시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보통의 경우 철불은 파란색의 녹이 끼지만 한천사의 철불은 곡선마다 흙이 묻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천사에 봉안된 철조여래좌상은 발굴 당시에는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로 알려졌으나 보수과정에서 면밀히 검토한 결과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로 판명되어 영남지역에서는 유일한 철불이라고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철불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은 우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얼굴, 건장한 자세와 힘이 넘치는 기운과 함께 세밀한 곡선은 통일신라 후기 불상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철불상이라고 한다.

  또 한천사에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후기(後期)에 건립(建立)된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워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양각(陽刻)되었고, 옥개석(屋蓋石)의 추녀 끝은 약간 치켜들었으며,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이 조성된 시기는 유리광전 안에 모셔진 철불과 같은 시대인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하고 있어 한천사의 오래된 역사와 통일신라시대의 위엄을 이곳에서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한천사의 연기설화가 실제로 모든 사실을 증명하고 있어 연기설화가 아닌 역사로 생각이 되어 지고 주지스님께서는 한천사는 저녁때 보다는 오전 해가 뜰 때가 가장 보기 좋다면서 다음에는 새벽에 오기를 당부했다.

  우리 일행은 태백에서의 고단한 여정을 한천사에서 기록하고 유명하다는 예천온천을 찾았으나 주말이라 그런지 입장하기 위해서 늘어선 줄을 보고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예천의 대표 맛 집인 백수식당에서 예천인터넷뉴스 정차모 대표가 추천한 육회와 비빔밥을 먹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기분으로 왔다.

  한천사 가는 길 : 상주에서 문경을 지나 예천IC 방향으로 가다가 예천온천 안내판을 따라 좌회전하여 풍기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면 현내리 마을과 감천지(甘泉池)를 지나 500m쯤 가면 그리 높지 않은 주마산 기슭에 한천사가 있다.

  (최현영 慶北인터넷뉴스 2009-11-29 오후 7: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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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룡포(回龍浦, 여울마을에선 무슨 일이? : 醴泉郡, 大邱 YMCA會員 ''''김장 팸 투어'''') [記事] :

  경북 예천군에서는 대구 YMCA 회원들을 초청해 회룡포 여울마을에서 2009년 11월 28일, 29일 이틀 동안 ''''김장 팸 투어''''를 한다.

  예천군과 한국농어촌공사 예천지사가 주최하고 회룡포권역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회룡포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 권역의 자생력 확보와 권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의 홍보와 판로개척 및 권역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열린다.

  이번 ''''김장 팸 투어''''는 500포기의 배추를 준비해 참가 회원이 직접 김장을 해 귀가할 때 가져갈 수 있도록 진행하며, 팸 투어 기간에 부녀회가 담은 김장은 권역 내 홀로 사는 어르신에게 전달된다.

  첫날인 28일에는 회룡포 권역 현황과 마을개발사례에 대한 소개와 함께 천연 염색을 체험하며, 회룡포 전망대, 뿅뿅다리, 용궁향교, 삼강주막 등의 견학과 자연물 공예체험을 하고, 둘째 날인 29일에는 마을에서 미리 준비한 500포기의 절인 배추와 양념으로 김장을 해 직접 담근 김치로 점심을 하게 된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번 팸 투어 행사로 회룡포 권역과 권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과 체험행사를 홍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했다.

  (최혜정 記者 UGN 慶北뉴스 2009-11-28 12: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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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주막과 회룡포(洛東江 줄기가 휘감은 ''''물돌이 마을'''' 回龍浦''''물의 故庄'''' 醴泉, 洛東江·乃城川·금천 세 물머리 만나는 곳) [記事] :

  나그네 허기 채웠던 ‘삼강주막’ 100년 넘게 명맥 : 내륙인 경북 예천은 물의 고장이기도 하다. 풍양면 삼강리는 낙동강·내성천·금천이 만나는 세 물머리다. 낙동강 1300리 중 발원지인 황지에서 이곳까지 600리, 부산까지는 700리 길이다.

  이곳은 1900년대 중반에도 부산에서 소금을 실은 나룻배가 드나들었다. 일제 때는 부산 소금과 경북 북부지역의 미곡, 산채 등을 맞바꾸던 장이 섰다.

  그보다 앞서 조선시대에는 영남지역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던 영남대로의 길목이기도 했다. 혹자는 이곳을 3강3맥의 지세라고 한다. 삼강에다가 안동 학가산맥과 대구 팔공산맥, 문경 주흘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는 곳이어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삼강 나루터를 찾았다. 영남대로의 길목다웠다.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은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막 뒤로 삼강이 보이고, 그 사이에 500년 수령의 회나무가 비에 젖은 주막을 위로하고 있었다.

  인근 경북 지역은 물론 멀리 충북에서 온 차량도 눈에 띈다. 삼강주막이 터를 잡은 때는 1900년쯤. 보부상과 장돌뱅이들이 삼강에서 이슬을 피해 허기와 갈증을 풀었을 것이다.

  근처를 오갔던 나그네와 주민들도 삼강주막에서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자 했을 터다. 한 사발 막걸리가 주는 힘이다. 삼강주막은 그 후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2005년 삼강주막의 2대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90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길손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곡진하게 보여줬던 주모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남았다.

  삼강주막 복원에 3년 가까이 의견을 모은 주민들은 군청의 도움으로 주막을 다시 열었다. 그때가 지난해 1월. 마을 부녀회가 할머니의 뜻을 이었다.

  질펀한 시골 분위기는 많이 줄었지만, 이곳을 찾아 옛 정취에 취하는 묵객과 문인도 많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두부와 파전, 누런 주전자의 막걸리가 되살려주는 추억을 담아가고 싶어서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유 할머니의 삶의 지혜가 전해진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주객들은 외상을 많이 했다. 할머니는 글을 못 읽어 외상 장부를 빗금으로 대체했다.

  집에서 오는 방향별로 손님을 구별하고, 외상 횟수까지 파악했다고 한다. 한 되는 긴 빗금으로, 작은 되는 반금으로 그었다. 다 갚으면 가로로 줄을 그었다고 하는데, 아직 몇 군데에는 가로줄이 보이지 않는다.

  유 할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 제일 슬퍼했을 사람은 빗금으로 표시된 주객이 아니었을까.

  예천에서 더 볼 곳은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 회룡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비룡산 장안사에 올라야 한다. 장안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세운 사찰의 하나다.

  이곳에서 보면 물돌이 마을 회룡포가 은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강원과 경북 북부를 숨차게 달려온 낙동강 줄기가 한 차례 쉬었다가는 마을이다.

  낙동강 줄기가 물동이동을 형성해 절경을 만들어낸다. 긴 세월이 깎고 다듬어 이런 물돌이를 만들어 낸 자연의 힘이 경외롭다. 이미 많이 알려져 찾는 이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적막감마저 흐른다.

  이 빗물은 낙동강이 회룡포를 좀 더 두툼하게 감싸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곳 물돌이동 회룡포는 안동 하회마을, 영주 수도리 무섬마을, 영월 선암마을과 같은 지형이다. 그중에 제일로 친다.

  물길은 높이 190m의 비룡산을 350도 되돌았다. 낙동강 지류가 마을을 휘감으면서 주위에 고운 모래밭을 일구었다. 높은 곳에서 보면 회룡포는 육지 속의 섬마을처럼 보인다. 그러나 섬은 아니다.

  “학의 목처럼 가느다란 목줄기를 삽으로 한 번만 뜨면 섬이 된다”며 이곳 사람들은 웃으면서 회룡포의 지형을 설명한다.

  (박종현 記者 世界日報 200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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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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