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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61:김영진同樞(祝홍승민等4건/예천방문543)
작성자장병창 @ 2009.12.04 07:28:30
  예천의 자랑(2061) : 보문면 미호리 출신 김영진 동지중추부사(附 유천면 광전리 출신 홍승민, 사법시험 합격...축하합니다/예천군노인복지회관, 전국평가에서 최우수기관 선정...축하합니다/ *예천청결고추영농조합, 경북 상표 사용가능 업체로 선정...축하합니다/호명면 출신 이상연 경한코리아 대표이사, 경남 메세나상 대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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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金英震) :


  1629(인조 7)-1723(경종 3), 보문면 미호리 미흘(美屹) 서쪽마 출신, 자는 용백(龍伯), 호는 매죽헌(梅竹軒), 본관은 김해, 장사랑(將仕郞) 이도(以道)의 장자, 영철(英哲)의 형이다.

  부모 슬하(具慶下)에서 교생(校生)으로서 1648년(인조 26) 식년 생원시에 3등 65위로 합격하였다.

  소명(召命)을 받고 임금을 알현해 임금의 자문에 응하여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고, 1708년(숙종 34)에 회방(回榜), 회혼回婚), 수작(壽爵)을 맞아 미흘(美屹)에 삼경당(三慶堂)을 짓고 한때 여러 명현들과 시를 읊으며 즐겼다.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 부총관(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副摠官)에 증직(贈職)되었다.

  묘는 보문면 수계리 수양촌 안산(首陽村案山)인 송지산 경좌(松枝山庚坐)에 있고, 광호사(光湖祠)에 배향(配享)되었고, 문집 2권이 있다.

  (族譜,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895 1841,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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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金英震) : 1629-1723, 보문면 미호리 출신, 자는 용백(龍伯), 호는 매죽헌(梅竹軒), 본관은 김해, 이도(以道)의 아들이다. 1648년(인조 26)에 생원(生員)으로 임금의 소명(召命)을 받고 자문에 응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 80세의 나이로 회방(回榜), 회혼(回婚), 수작(授爵 : 壽職 通政大夫)의 세 가지 경사를 함께 맞아 삼경당(三慶堂) 가문으로 알려져 고을에서 모두 부러워하였다. 그 후 첨추(僉樞)를 거쳐서 90세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고 이어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죽은 후에는 참판으로 증직되었다. 그는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집의 서편에 매화나무, 대나무, 소나무를 심어놓고 세한이 되어도 시들지 않는 의미를 취하였다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매죽헌 주인이라고 불렀고, 매죽헌 자신도 사양하지 않았다고 한다. 판서 홍만조(洪萬朝)와는 어린 시절부터 교분이 두터워 늘 서로 지인이 되었고, 거처하는 좌우에는 좌우명(座右銘)이 붙여져 있었는데, ‘만사종관 기복자후(萬事從寬 其福自厚 : 만 가지 일이 너그러움을 따르면 그 복이 자연히 두터워진다)는 여덟 자를 써놓았었다. 당시에 천서(川西) 이 승지(李承旨)가 보고는 사람이 복을 누리는 것이 그 연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자손들에게 늘 경계하기를, ‘사람이 부귀빈천(富貴貧賤)한 것은 각각 정해진 분수가 있는 법이니, 너희들은 부귀가 나보다 나은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빈천한 나만 못한 이가 있으면 그를 위로하여 준다면 내 마을이 편안하고 욕심이 줄여져 거의 자신에 해됨이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함쓰라’고 당부하였다. 이상은 김영진의 아들 김화중(金華重)이 쓴 행장에서 간추린 것이다. 미호리의 미산 자손들이 번성한 연유에는 이러한 조상의 음덕이 쌓여 온 것이었다. 저서로 <매죽헌문집>이 있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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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42.0x93.0cm, 백패(白牌, 生員)이다. 내용은, “敎旨 校生金英震生員三等第三十五人入格者 順治五年九月初三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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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92.4x65.2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通政大夫者 康熙四十七年九月十二日/ 年八十陞堂上事 上言/判下”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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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8.0x55.0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者 康熙四十七年十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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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4.0x56.3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者 康熙四十九年八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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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9.0x54.4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者 康熙四十九年十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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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3.0x53.4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者 康熙五十七年二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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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92.7x67.6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善大夫者 康熙五十七年二月初四日/年九十加資事 上言 達下”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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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0.5x55.0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者 康熙五十七年十二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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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4.0x54.8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者 康熙五十八年二月 日”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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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85.0x60.9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義大夫者 康熙五十八年二月二十三日/年九十一/ 大殿入耆老 推恩加資事 達下”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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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76.0x50.2cm, 임면(任免)이다. 내용은, “敎旨 金英震爲嘉善大夫者 康熙五十九年八月初五日/年九十二/ 大行大王入耆老ㅁ後推恩加資事 判下”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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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교지(金英震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95.0x69.5cm, 추증(追贈)이다. 내용은, “敎旨 嘉義大夫行龍驤衛副護軍金英震贈嘉義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者 乾隆二十二年五月初四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金最重考依法典追贈”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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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의 비 변씨 교지(金英震의 妣 邊氏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90.3x64.6cm, 추증(追贈)이다. 내용은, “敎旨 孺人邊氏贈貞夫人者 康熙五十八年正月初一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金英震妣依法典追贈”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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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의 증조비 윤씨 교지(金英震의 曾祖妣 尹氏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89.5x64.6cm, 추증(追贈)이다. 내용은, “敎旨 宣人尹氏贈淑人者 康熙五十八年正月初一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金英震曾祖妣依法典追贈”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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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의 처 이씨 교지(金英震의 妻 李氏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85.7x62.3cm, 증직(贈職)이다. 내용은, “敎旨 淑人李氏爲淑夫人者 康熙四十九年十一月十八日/折衝將軍前僉知中樞府事金英震妻依法典從夫職”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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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의 처 이씨 교지(金英震의 妻 李氏 敎旨) [文化財] : 예천군 김해김씨 미산학파 소장의 교지로, 89.4x65.0cm, 증직(贈職)이다. 내용은, “敎旨 淑人李氏爲貞夫人者 康熙五十八年正月初一日/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金英震妻依法典從夫職”이다.(一般動産文化財 多量 所藏處 實態調査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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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의 자랑(1267) : 김영진(생원시에 합격한 미흘의 매죽헌 이야기)(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7-01-22 照會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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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면 광전리 출신 홍승민, 사법시험 합격...축하합니다.

  홍승민(홍승민(柳川面 出生) 氏 司法試驗 合格) [記事] :

  유천면 광전리 태생의 홍승민(28) 씨가 제51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홍씨는 영주 남부초등, 대영중고, 건국대 법대 출신으로 한국철도공사에 근무하고 있는 홍재선(56·영주) 정경숙(51) 씨의 장남.

  홍씨는 “열심히 노력해 초심을 잃지 않는 훌륭한 검사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밝혔다. 부인 이은경(초등 교사) 씨와의 사이에 수성, 수빈 자매를 두었다.

  (醴泉新聞 2009년 12월 03일 11:24:56)

  *筆者 註 : 예천읍 출신 장윤희(張允僖, 서울대 법학과 졸업)도 최종(3차) 합격하여 내년 3월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2년간 교육을 받게 된다.

   ->예천의 자랑(2053) : 김시인 刺繡匠(祝 장윤희/예천방문 538)(作成者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作成日 2009-11-24 (06:42), 照會 231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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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노인복지회관, 전국평가에서 최우수기관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노인복지회관(醴泉郡老人福祉會館 保健家族福祉部 選定 全國福祉館 評價 最優秀機關 選定!) [記事] :

  지난 1999년 "성공적인 노후.행복한 노년" 이라는 슬러건 아래 설립되어 2009년으로 10주년을 맞은 예천군노인복지회관(관장 김정표)이 보건복지가족부가 시행하는 전국노인복지관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어 지역 주민과 어르신들로부터 칭송을 듣고 있다.

  예천군노인복지관(관장 김정표)은 이번 평가에서 효율적인 자원이용과 욕구측정에 따른 서비스계획과 만족도 여부에 따른 사업계획 등 체계적 시스템관리로 심사위원들로부터 전국 최고의 노인복지회관으로 평가받았다.

  보건복지가족부가 3년마다 전국 139개 노인복지관을 대상으로 시설 및 환경, 재정, 조직운영, 인적자원관리, 프로그램 및 서비스, 이용자의 권리 지역사회 관계 등 노인복지관 운영 전반에 걸쳐 종합적인 평가로 수상기관을 선정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예천군노인복지회관은 개관 이래 지역 어르신들의 밝은 노년을 위한 건강증진프로그램과, 서예교실, 가요교실 등 24개 사회교육프로그램, 여가선용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 경로식당을 운영하여 일일평균 150명의 이용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신체가 불편하여 복지관 이용이 어려운 25명의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점심도시락 배달과 재가어르신 밑반찬 제공 등 독거노인 100명의 일상생활지원 등 함께 나누는 정성으로 지역 어르신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전 직원들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찾아가는 복지서비스의 일환으로 농촌지역 경로당을 방문하여 여가문화프로그램 제공으로 복지향상을 위한 노인여가프로그램의 다양한 접근과 질 높은 서비스로 타기관으로부터 벤치마킹사업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지역 주민 및 어르신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김정표 관장은 "지역사회의 변화를 관심 있게 바라보며, 어르신들의 욕구에 귀 기울이는 한편, 어르신들의 문제를 발로 뛰어 해결하는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한편, 이번 평가를 계기로 예천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더욱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운영과 정성을 다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2-03 오전 10: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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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청결고추영농조합, 경북 상표 사용가능 업체로 선정...축하합니다.

  예천청결고추영농조합(慶北, 優秀農産物 商標 使用可能 業體로 選定) [記事] :

  ...‘경상북도 우수농산물’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업체로 △옥종합식품(경주·김치) △한국라이스텍(안동·쌀) △풍기농협(영주·사과) △모서꿀봉포도사과영농조합(상주·포도) △천상의 곳간(경산·포도) △영양군사과연합사업단 △영덕농협(사과) △성주참외포크영농조합(돼지고기) △가교버섯영농조합(칠곡·느타리버섯) △한솔영농조합(칠곡·새송이버섯)

  △예천청결고추영농조합(고춧가루) △청량쌀유통영농조합(봉화·고춧가루) 등 12곳이 선정됐다.

  (이권효 記者 東亞日報 200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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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명면 출신 이상연 경한코리아 대표이사, 경남 메세나상 대상 수상...축하합니다.

  이상연(2009 慶南 메세나賞 大賞 受賞者) [記事] :

  ◈ 대상: (주)경한코리아 이상연 대표이사/

  문예 불모지 창원공단에 문화의 횃불 밝혀 (주)경한코리아는 1980년대 중반 창원공단 형성기부터 공단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통해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20여 년 동안 지역 전통예술단체를 지원하여 전국 규모의 실력 있는 단체로 육성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지역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해 온 공로가 인정되어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주)경한코리아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은 지난 1987년 ‘근로종합예술제’를 만들고 지원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문화예술 불모지와 다름없던 창원공단에 근로자들의 문화 공간을 만들어주고자 경한정밀(경한코리아 전신)은 당시의 어려운 지역 여건 속에서도 단독 후원으로 공단 근로자들의 문화 행사인 ‘87근로종합예술제’를 개최했다.

  이는 공단노동자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숨어 있던 열정을 발견해내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얻어 성실히 땀을 흘리며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근로종합예술제’는 그 후 ‘공단예술제’로 명칭을 바꾸고 9회까지 지속되었으며 IMF경제위기로 중단된 10회 행사를 내년에 다시 부활할 예정이다.

  (주)경한코리아는 ‘솟대패 사물놀이 예술단’에 대한 지원 또한 한결같이 실천해 오고 있다.

  1986년에 연습실까지 마련해주었던 ‘소리마당’ 사물놀이패가 내부 문제로 해체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공단 내에서 새로 사물놀이패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솟대패사물놀이예술단’이다.

  솟대패사물놀이예술단 육성을 위해 20여 년을 한결같이 사무실 및 연습실 지원과 공연비용 지원 등의 노력은 ‘솟대패사물놀이예술단’이 전국적인 사물놀이 예술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 왔다.

  또한 열악한 지역예술단체의 활성화에 대한 노력은 지역 근로자와 시민들의 전통문화 체험과 문화의식 향상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경남의 문화예술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경남오페라단 후원회장을 맡는 등 각종 문화예술단체 및 행사를 지원하고,

  고향 사랑 행사를 통해 문화예술단체와 함께 문화소외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나눔을 실천하며,

  예천중학교 양궁부와 대창고등학교에 대한 장학금 지원과 경남안전실천연합기금 등의 사회안전기금 지원을 하며 산재근로자 자녀 장학재단 설립의 꿈을 가지고 있다.

  문화예술 후원활동이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20여 년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주)경한코리아는 지역 문화예술의 횃불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양영석 記者 慶南新聞 200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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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543

  예천군 방문(“醴泉의 모든 것을 보여드립니다” : 郡, 旅行作家 招請 觀光賞品 팸투어 實施) [記事] :

  예천군은 2009년 12월 3일부터 4일까지 1박2일간 여행작가들을 초청해 예천 관광상품 팸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예천군이 주최하고 여행사 핵교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수도권 지역의 여행작가 25명을 초청해 개최되며, 작가들은 지역의 체험시설을 방문해 각종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된다.

  팸투어는 첫날 ‘21세기 천문과학의 도시 예천’이라는 주제로 예천곤충생태체험관을 찾아 시설 관람과 호박벌 체험 등을 즐기고,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찾아 양궁체험을 하게 되며, 예천천문우주센터를 방문해 달중력 체험, 가변중력 체험, 자세제어 체험을 하고 회룡포 여울마을에서 여장을 푼다.

  이어 둘째 날은 ‘예천의 문화유적 탐방’이라는 주제로 회룡포 여울마을에서 전통매듭 만들기 체험을 하고 회룡포 전망대에 올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명승 회룡포를 조망한 후 장안사와 삼강주막 답사를 끝으로 팸투어 일정을 마치게 된다.

  이들은 답사기간 중 예천이 자랑하는 전통먹거리인 예천지역 1급 한우와 용궁순대, 삼강주막의 전통음식 등도 맛보게 된다.

  예천군은 “이번 팸투어 행사를 계기로 여행작가들이 전국의 독자와 네티즌들에게 지역의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다양하게 소개해 앞으로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점차 늘어나 지역이미지 제고와 경기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인철 記者 新亞日報 2009년 12월 03일 (목) 15: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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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방문([洛東·白頭를 가다] 醴泉, 그 곳엔 스토리가 있다) [記事] :

  감천면 천향1리 석평마을에 가면 집채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꽤 유명하다.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다.

  바로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이다. ''''부자나무'''', ''''땅을 소유한 나무'''', ''''세금을 내는 나무'''' 등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석송령은 ''''참 잘생겼다''''. 석송령은 ''''반송(盤松)''''이다. 위로보다는 옆으로 펑퍼짐하게 자라는 소나무이다. 그래서 꼭 거대한 우산처럼 생겼고, 정원수 같았다.

  키는 10m이지만 몸집은 동서로 32m, 남북으로 22m나 된다. 나이는 웬만한 가문의 ''''중시조''''다.

  문헌상에는 600살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대부터 600살이라 했으니 지금은 족히 700살은 된다고 했다.

  실제로 석송령은 돌기둥과 철제 파이프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가지를 떠받치고 있었다.

  이 노거수는 사람이 가지고 있을 법한 땅 5천259㎡를 소유하고 있다. 등기일은 1927년 8월 10일이다. 거의 백년 전이다.

  재산세는 1년에 4만~5만원 정도. 백년 동안 꼬박 세금을 냈다면 모범납세자로 상을 여러 번 받았을 법하다.

  석송령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5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500만원의 하사금을 내리면서부터이다. 당시 권정달 민정당 사무총장과 김성배 건설부장관이 직접 석송령을 방문해 전달했다.

  석평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석송계를 운영하며 석송령에서 발생한 소작료와 하사금 이자 등으로 세금을 내고 있고, ''''석송령 장학금''''도 지역의 학생들에게 주고 있다고 한다.

  나무가 세금도 내고, 마을의 안녕은 물론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니 웬만한 사람보다도 낫지 않겠는가. 석송령은 요즘 명성을 하나 더 얻었다. ''''영험있는 나무''''로도 통하고 있다.

  일행도 참 신령스럽게 생겼다는 인상부터 받았으니 말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 되면 군수가 직접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신제를 지내고 있고, 어느 때부턴가 외지인들이 남몰래 석송령을 찾아 제사상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고 있다.

  사업 운이 트이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이해가 됐다. 유명한 석속령에게 2세가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2세가 있다는 감천면사무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솔직히 첫 인상은 ''''웃음''''이었다. 안내판에는 옛날 한 면장이 석송령 인근의 산에서 옮겨와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석송령과 한 집안이고, 그래서 2세로 지역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하튼 ''''2세''''는 면사무소 정원을 턱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높이는 3m, 폭은 5, 6m 정도. 석송령의 후계목답게 수령은 100살을 훌쩍 넘겼다.

  이제 예천을 가면 석송령도 찾고, 그 후계자도 만난다면 일석이조가 아닐까.

  예천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역사와 세월 속에 꼭꼭 숨은 얘깃거리가 어느 고을을 가도 있지만 예천은 그 재미가 더 했다.

  김수남 군수는 "예천은 예나 지금이나 스토리가 흘러넘치고 있다"며 "그만큼 예천은 인물이 나고, 문학과 자연 자원이라는 탄탄한 자산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행은 ''''석송령 집안''''을 뒤로 하고 용문면 금곡리의 금당실마을로 향했다. 닭울음고개를 넘어 있는 마을 입구는 그 분위기가 남달랐다.

  ''''예향의 고을''''이라는 표지석이 방문객들의 마음가짐부터 다잡게 했다. 금당실은 명신과 학자를 배출한 영남의 명가이다.

  300여 호가 촌락을 이루고 있어 경북도내 면 단위에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명가에는 풍수적으로 그 이유가 있었다. 정감록에서 말하는 조선팔도 열 곳의 길지(십승지) 중 한 곳이 바로 금당실이다.

  마을 앞은 넓은 들이 자리해 주민들에게 농경의 풍요로움을 주고, 마을 서편에는 금계천이 흐른다. 마을의 진산인 오미봉은 외부와 차단된 산간지대로 난리 때에는 마을은 피난처로 제격이다.

  금당실은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型)의 명당이기도 하다. 마을이 자리한 터가 바로 연못이고, 오미봉은 연못에 떠 있는 봉우리이다.

  연화부수형은 열려 있는 전면을 막아 줘야하는 형국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서편을 소나무 숲으로 비보했다고 한다.

  일행은 금당실 인근의 ''''맛질(대제리의 큰 맛질과 제곡리의 작은 맛질)''''로 향했다. 맛질이라는 마을 이름은 음식의 맛에서 유래된 것 같아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숨은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다.

  일행은 얼마 전 영양의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정부인 장씨(장계향 선생)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음식디미방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한국 전통음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음식디미방의 146가지 음식 중 16가지 음식에는 ''''맛질방문''''이라고 쓰여 있다.

  이 맛질방문이 바로 예천의 작은 맛질이다. 작은 맛질은 정부인 장씨의 외가이다. 정부인은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와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으니 예천의 작은 맛질이 음식디미방이라는 명저의 큰 토대로 여겨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금당실과 맛질은 ''''금당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는 말이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금당과 맛질을 합하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는 풍수지리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금당실과 맛질은 큰 마을을 이뤄 인물이 나고, 풍요로움이 수백년을 이어가고 있으니 바로 한 나라의 수도인 서울과 비견된다는 뜻이 아닐까.

   예천은 그 옛날 불법도 흥했다. 용문면에는 용문사라는 절이 있다. 용문사라는 이름의 절은 전국에 3개가 있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경남 남해의 용문사와 바로 예천의 용문사이다.

  조동윤 ''''예천기행''''의 저자는 "사문(沙門)에서는 북쪽으로부터 용의 머리, 허리, 꼬리로 구분되는데 양평은 용의 머리요, 에천은 허리이며, 남해는 꼬리"라고 설명했다.

  각기 이름난 절이지만 용이 가장 힘을 쓰는 곳이 허리라 예천의 용문사이며 불법이 널리 떨쳤다고 유추하는 것이다.

  조동윤 저자는 "용문사는 지장도량이다. 양산 통도사의 불보도량, 합천 해인사의 법보도량, 전남 송광사의 승보도량, 양양 낙산사의 관음도량과 함께 5대 도량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예천 용문사는 한때 고려의 대표 사찰이었다. 용문사라는 절 이름은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작품''''이다. 왕이 쌀을 하사하고, 칙명으로 절을 중수했을 뿐 아니라 태자의 태(胎)도 보관했다고 한다.

  예천은 수많은 인재와 문학의 향기가 내성천을 따라 흐르고, 삼강이라는 낙동강의 명소도 있다. 여기에 21세기 ''''문화컨텐츠''''인 스토리도 가졌다.

  이제 예천은 이러한 역사·문화·자연자산을 잘 보존하고, 활용해 널리 알리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이종규 기자 엄재진 기자 자문단 조동윤 예천군 시책사업과장 함명수 예천군 내성천 리버로드 조성 담당)

  (每日新聞 200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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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골프연습장(醴泉郡, 42타석 골프演習場 35億餘원 投入 開場) [記事] :

  경북 예천군이 골프인구 증가와 스포츠 인프라 구축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건립한 예천골프연습장이 2009년 12월 3일 오후 2시 개장식을 갖고 운영에 들어간다.

  예천골프연습장은 군에서 35억여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비거리 180m, 42타석 규모로 건립한 대규모 골프연습장이다.

  예천읍 청복리 464-1번지 일원에 부지 1만6267㎡, 연면적 1365㎡,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지하 1층에 소방기계실, 전기기계실, 공수거 기계실이 있으며 지상 1층에는 락커룸, 골프샵, 샤워실, 안내실, 로비가 설치되어 있다.

  2층은 실내 퍼팅장, 관리사무실, 락커룸, 휴게실 및 지도자실이, 3층에는 야외 퍼팅장, 매점 및 휴게실로 구성돼 있다.

  예천골프장은 2012년 11월까지 예천군골프협회에서 위탁 운영하게 된다.

  예천군골프협회는 골프연습장 운영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20%는 협회 운영기금으로 적립해 지역 골프 꿈나무 선수 육성에 사용하고 수익금의 80%는 예천군민장학기금으로 적립한다.

  군 관계자는 "대중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골프를 최신식 시설에서 군민 모두가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하고 인근지역 골프 동호인들도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돼 지역경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창길 記者 뉴시스 2009.12.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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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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