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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62:권도判書2(祝농업기술센터等/예천방문544)
작성자장병창 @ 2009.12.07 06:59:49
  예천의 자랑(2062) : 용문면 출신 권도 판서(2)(附 예천군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미생물 보급사업, 장관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읍 박종열, 경북환경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여자고등학교, 도서기증 우수학교 선정...축하합니다/예천방문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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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領議政 申晩 등이 입시하여 通信使를 差出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함 . / 왕 재위년도 영조 38년 / 월일 壬午八月二十九日 / 今八月二十六日, 大臣․備局堂上引見入侍時, 領議政申所啓, 此禮曹粘目也, 枚擧東萊府使權導狀啓, 以爲通信使, ?明年六月上旬, 自釜山乘船, 九十月間入往江戶爲言, 通信使差出事, 請令廟堂稟處矣, 通信使旣已差出, 此狀啓置之, 何如, 上曰, 依爲之。(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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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倭를 접대하는데 僉使로써 대행하도록 한 前東萊府使 權導를 拿問處之하라는 傳敎 . / 왕 재위년도 영조 38년 / 월일 壬午九月二十日 / 傳曰, 接倭交隣, 事面重矣, 今觀東萊府使狀聞, 每以僉使代行, 事體寒心, 雖有前例, 謂以已遞, 若是任便, 事之駭然, 莫此爲甚, 前東萊府使權導令該府, 卽爲拿問處之。(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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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李?에게 江華留守를 제수함 . / 왕 재위년도 영조 41년 / 월일 乙酉十二月十八日 / 江華留守議薦領敦寧府事 金 不薦行議政府左參贊 李 不薦判敦寧府事 洪 不薦行知中樞府事 尹 不薦行司直 金 不薦行議政府右參贊 李 不薦行司直 李 不薦行知中樞府事 徐 不薦禮曹判書 南 不薦綾恩君 具 不薦兵曹判書 金 徐命臣 韓光肇 李吉輔戶曹判書 沈 不薦刑曹判書 鄭 不薦吏曹判書 朴 不薦吏曹參判 趙 李最中 鄭存謙 權導 行副護軍 鄭 不薦行副護軍 具 不薦行副司直 金行副護軍 李 不薦行副司直 徐 不薦行副司直 鄭行成均館大司成 李 不薦行承政院都承旨 徐 不薦行副司直 趙 鄭存謙 權導 趙重晦漢城府右尹 李 不薦備望 ○李? 徐命膺 韓光肇(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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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90권/ 영조 33년(1757 정축 / 청 건륭(乾隆) 22년) 11월 1일(기축) 3번째 기사/ 김선행․조중회․송덕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선행(金善行)을 대사헌으로, 조중회(趙重晦)를 대사간으로, 송덕중(宋德中)을 사간으로, 민숙(閔塾)․이만육(李萬育)을 장령으로, 이세연(李世演)을 지평으로, 권도(權導)․이미(李?)를 정언으로, 윤동승(尹東昇)을 부교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3책 90권 25장 A면/ 【영인본】 43책 66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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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92권/ 영조 34년(1758 무인 / 청 건륭(乾隆) 23년) 7월 11일(을미) 2번째 기사/ 숭문당에 나가 명패를 받고 나오지 않은 권도를 이성 현감으로 제수하다/ 임금이 숭문당(崇文堂) 에 나아가 승지에게 이르기를, ꡒ옥당(玉堂)에서 명패(命牌)를 두번씩이나 받고도 나오지 아니하는 자는 권도(權導)인가?ꡓ 하니, 조중회(趙重晦)가 말하기를, ꡒ그렇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일흔살을 바라보는 늙은 나이로 다시 강연(講筵)을 10년 만에 한 뒤에 명패를 다시 내리는데, 인신(人臣)의 분수와 의리로서 어찌 특별히 어가(御駕)를 기다리지 아니하겠는가? 염우(廉隅) 를 비록 크게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그 처리를 곡진(曲盡)하게 한다면 용서할 만한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법강(法講)을 장차 열 터인데, 명패를 어기는 짓을 일삼는다면, 일의 한심한 것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권도 는 비록 같은 또래의 친구들끼리라고 하더라도 직접 거만하게 행동할 수가 없을 터인데, 하물며 군부(君父)이겠는가? 어제 이미 한 차례 염우하다는 것을 보였으니 감히 시애(??)하는 뜻을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가 이미 직접 아뢰었고, 지금 또 명패를 어기었으니, 권도 를 이성 현감(利城縣監)으로 제수하도록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4장 B면/ 【영인본】 43책 693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 /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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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92권/ 영조 34년(1758 무인 / 청 건륭(乾隆) 23년) 7월 25일(기유) 1번째 기사/ 대신들의 건의로 권도를 외방에 임명하는 것을 정지하고, 신응현을 석방하다/ 임금이 공묵합(恭黙閤) 에 나아가 대신들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권도(權導)를 외방에 임명하라는 명령을 특별히 정지시켰으며, 또 신응현(申應顯)을 석방시켰는데, 대신들이 아뢰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64책 92권 7장 A면/ 【영인본】 43책 695면/ 【분류】 *사법(司法)(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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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97권/ 영조 37년(1761 신사 / 청 건륭(乾隆) 26년) 1월 4일(갑진) 2번째 기사/ 권도를 대사간으로, 김양행을 지평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대사간으로, 김양행(金亮行)을 지평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1장 B면/ 【영인본】 44책 5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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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97권/ 영조 37년(1761 신사 / 청 건륭(乾隆) 26년) 5월 21일(기미) 1번째 기사/ 윤동섬․송형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동섬(尹東暹)․송형중(宋瑩中)․권도(權導)를 승지로, 홍양한(洪良漢)을 대사간으로, 원인손(元仁孫)을 부제학으로, 서지수(徐志修)를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7책 97권 23장 B면/ 【영인본】 44책 6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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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2권/ 영조 39년(1763 계미 / 청 건륭(乾隆) 28년) 6월 18일(갑진) 2번째 기사/ 권도․이최중․김종정을 승지로 삼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이최중(李最中)를 부교리로, 김종정(金鍾正)을 특별히 발탁하여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9책 102권 2장 B면/ 【영인본】 44책 13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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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2권/ 영조 39년(1763 계미 / 청 건륭(乾隆) 28년) 7월 2일(정사) 4번째 기사/ 패소를 어긴 이조 참판 권도를 해남 현감으로 내려보내다/ 이조 참의 권도(權導)를 해남 현감(海南縣監)으로 내보냈는데, 패소(牌召)를 어기고 명을 받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69책 102권 6장 A면/ 【영인본】 44책 140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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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1월 4일(병진) 9번째 기사/ 홍계희를 면직시키고 김상철로 대신하다. 권도․박규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조 판서 홍계희(洪啓禧)를 면직시키고 김상철(金尙喆)로 대신하였다. 특별히 권도(權導)에게 대사간을, 박규수(朴奎壽)에게 정언을, 엄인(嚴璘)에게 승지를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1장 B면/ 【영인본】 44책 15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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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2월 28일(경술) 1번째 기사/ 정광한․권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광한(鄭光漢)을 도승지로, 권도(權導)를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11장 A면/ 【영인본】 44책 16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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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5월 17일(무진) 2번째 기사/ 권도를 승지로 삼다/ 권도(權導)를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24장 B면/ 【영인본】 44책 16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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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6월 15일(을미) 2번째 기사/ 권도와 조영순을 승지로 삼다/ 권도(權導)와 조영순(趙榮順)을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3권 30장 B면/ 【영인본】 44책 17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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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7월 3일(계축) 2번째 기사/ 권도․채제공․정실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채제공(蔡濟恭)을 개성 유수로, 정실(鄭?)을 사은 겸 동지 부사로, 안표(安杓)를 장령으로, 송재경(宋載經)․윤사국(尹師國)을 정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1장 A면/ 【영인본】 44책 17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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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4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8월 22일(신축) 1번째 기사/ 향관을 가려 뽑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조 참의 권도를 파직하다/ 임금이 정현 왕후(貞顯王后)의 기신에 쓸 향을 인정전 뜰에서 지영하였다. 향관(享官)을 가려 뽑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조 참의 권도(權導)를 파직한 다음 옥리(獄吏)에 내려보냈다. 옥당 이석재(李碩載)․김귀주(金龜柱) 등을 과천․양천에 나누어 보내 환곡(還穀)을 살펴보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0책 104권 13장 A면/ 【영인본】 44책 177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구휼(救恤)(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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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6권/ 영조 41년(1765 을유 / 청 건륭(乾隆) 30년) 8월 23일(병인) 2번째 기사/ 이은․권도․유한소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은(李?)을 이조 참판으로,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유한소(兪漢蕭)를 대사간으로, 이헌묵(李憲黙)을 사간으로, 홍수보(洪秀輔)를 헌납으로, 임성(任珹)을 장령으로, 윤사국(尹師國)을 지평으로, 이계(李?)를 정언으로, 이상지(李商芝)를 응교로, 홍억(洪檍)을 부수찬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1책 106권 5장 A면/ 【영인본】 44책 20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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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7권/ 영조 42년(1766 병술 / 청 건륭(乾隆) 31년) 1월 9일(기묘) 2번째 기사/ 권도․안표․임희효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안표(安杓)를 집의(執義)로, 임희효(任希孝)를 지평(持平)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2책 107권 1장 B면/ 【영인본】 44책 21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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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7권/ 영조 42년(1766 병술 / 청 건륭(乾隆) 31년) 7월 21일(기축) 1번째 기사/ 황경원․권도․안윤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황경원(黃景源)을 이조 참판으로,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안윤행(安允行)을 대사헌으로, 이해중(李海重)을 대사간으로, 정창성(鄭昌聖)을 부응교로, 임성(任珹)을 보덕으로, 한익모(韓翼謨)를 공조 판서로, 김원택(金元澤)을 판윤으로, 이창수(李昌壽)를 판의금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2책 107권 24장 A면/ 【영인본】 44책 22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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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7권/ 영조 42년(1766 병술 / 청 건륭(乾隆) 31년) 12월 9일(을사) 2번째 기사/ 이육․조명정․홍중효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육(李堉)을 집의로, 정언섬(鄭彦暹)을 장령으로, 조명정(趙明鼎)을 예조 판서로, 홍중효(洪重孝)를 좌윤(左尹)으로, 이경호(李景祜)․권도(權導)․홍낙임(洪樂任)․윤면동(尹冕東)을 승지로 삼고 특별히 박상덕(朴相德)을 평안 감사로, 이사관(李思觀)을 병조 판서로, 최익남(崔益男)을 수찬으로, 심욱지(沈?之)를 동부승지로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2책 107권 42장 A면/ 【영인본】 44책 23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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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9월 4일(을미) 2번째 기사/ 윤득양․윤학동․홍재 등을 승지로 삼다/ 윤득양(尹得養)․윤학동(尹學東)․홍재(洪梓)․윤면동(尹冕東)․권도(權導)․신대현(申大顯)을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3책 109권 19장 B면/ 【영인본】 44책 26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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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1767 정해 / 청 건륭(乾隆) 32년) 12월 16일(병자) 3번째 기사/ 오현주․이치중․남현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오현주(吳鉉冑)를 정언으로, 이치중(李致中)․남현로(南玄老)를 교리로, 송지연(宋志淵)․홍경안(洪景顔)을 수찬으로, 정후겸(鄭厚謙)을 문학으로, 서명응(徐命膺)을 동춘추로,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3책 109권 33장 A면/ 【영인본】 44책 27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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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0권/ 영조 44년(1768 무자 / 청 건륭(乾隆) 33년) 2월 24일(임오) 2번째 기사/ 권도․김상묵․이치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임금이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밖에 나가 있는 양사(兩司)의 체차를 허락하였다. 특별히 권도(權導)를 대사간으로, 김상묵(金尙黙)을 헌납으로, 이치중(李致中)․이득복(李得福)을 지평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4책 110권 12장 A면/ 【영인본】 44책 27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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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1권/ 영조 44년(1768 무자 / 청 건륭(乾隆) 33년) 12월 21일(을해) 4번째 기사/ 이조 참의 권도의 체차를 허락하다/ 명하여 이조 참의 권도(權導)의 체차(遞差)를 허락하고, 전교(傳敎)를 쓰도록 명하여 이르기를, ꡒ통청(通淸)17300) 한 자를 대신(大臣)에게 물어서 하라는 명령은 대개 관방(官方)을 중하게 함이다. 오늘 친정(親政) 때에 좌막(佐幕)17301) 의 수망(首望)․부망(副望)을 모두 통청하였으니, 이와 같이하여 그치지 아니하면, 사호(四皓)17302) 가 장차 여섯이 되고, 엄광(嚴光) 17303) 이 장차 둘이 될 것이다. 이 망(望)을 시행하지 말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5책 111권 44장 A면/ 【영인본】 44책 313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註 17300]통청(通淸) : 청관(淸官)의 후보자로 추천되어 통과되는 것. ☞ / [註 17301]좌막(佐幕) : 비장(裨將). ☞ / [註 17302]사호(四皓) : 진․한(秦漢) 사이에 세상의 혼란함을 피하여 상산(商山)에 숨어 살던 네 노인, 즉 동원공(東園公)․기리계(綺里季)․하황공(夏黃公)․녹리선생(?里先生)으로, 이들은 지조를 지켜 황제의 소명에 응하지 아니하였음. ☞ / [註 17303] 엄광(嚴光) : 후한(後漢) 때의 사람으로 젊었을 때 광무제(光武帝)의 친구로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 그를 간의 대부(諫議大夫)로 초청하였으나 불응하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서 살았음.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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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1월 20일(갑진) 2번째 기사/ 엄인․권도․이성원․홍지해 등을 승지로 삼다/ 엄인(嚴璘)․권도(權導)․이성원(李性源)․홍지해(洪趾海)․이재간(李在簡)․홍윤(洪?)을 승지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6장 A면/ 【영인본】 44책 31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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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1월 21일(을사) 2번째 기사/ 권도를 대사성에 임명하고, 사학의 재임은 서울의 유생으로 하지 말게 하다/ 권도(權導)에게 대사성(大司成)을 제수하고, 유생들을 거느리고 입시하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유생에게 이르기를, ꡒ문묘(文廟)에 종향(從享)한 사람이 뜻밖에 무함을 당하였는데, 너희들의 뜻은 어떠한가?ꡓ하자, 남궁철(南宮徹)이란 자가 대답하기를, ꡒ연소한 유생의 과격한 말입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백성을 유생이라고 일컫는 것이 옳은가?ꡓ하고, 방축 향리(放逐鄕里)17338) 하도록 명하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구잠(九箴)을 외도록 명하고, 지필(紙筆)을 내리며 말하기를, ꡒ《유곤록(裕昆錄)》을 삭제하도록 청한 자가 난신(亂臣)이 아니란 말인가? 이후로 사학(四學)의 재임(齋任)은 서울의 유생으로 삼지 말아서 어지러운 근본을 제거하도록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6장 B면/ 【영인본】 44책 317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註 17338]방축 향리(放逐鄕里) : 형벌의 한 가지로서 벼슬을 삭탈하고 제 시골로 내쫓음. 유배(流配)보다 한 등 가벼운 형벌임. 방귀 전리(放歸田里).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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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2월 5일(무오) 1번째 기사/ 엄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취타가 해연하다 하여 홍인한 등을 치죄하다/ 임금이 육상궁(毓祥宮)에 나아갔다. 약원에 문후(問候)하지 말도록 명하고, 탕제(湯劑)를 들여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정원에서 환수(還收)하기를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여러 승지들이 합문(閤門)을 지키며 청대(請對)하니, 체차(遞差)하도록 명하였다. 엄인(嚴璘)․이재간(李在簡)․이성원(李性源)․이성규(李聖圭)․홍자(洪梓)․권도(權導)에게 승지를 제수하고, 정광충(鄭光忠)에게 병조 참판을 제수하였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시종(侍從)은 모두 관안(官案)에 부첨(付籤)하게 하였다. 또 취타(吹打)하도록 명하고, 또 취타가 해연(駭然)하다 하여 병조 판서 홍인한(洪麟漢)과 두 군문(軍門)의 대장 이장오(李章吾)․구선복(具善復)을 잡아들여 여섯 번 조리돌림을 하였다. 왕세손이 따라 나아가 궁문(宮門)에 들어가 여(輿) 아래에서 시립(侍立)하였다가, 홀기(笏記)를 써서 바치고 말하기를, ꡒ지금 해괴한 일로 인하여 성심(聖心)이 이미 견고하시니, 원컨대 신의 청을 들어 옛 것은 씻어 없애고 새 것에 따르소서.ꡓ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ꡒ어질다. 네가 비록 이와 같이 하나, 이미 맹세하여 하교하였으니 어찌 하겠는가?ꡓ하자, 대답하기를, ꡒ맹세하여 하교하신 것은 신이 마땅히 대신 받겠습니다. 오늘은 신이 새로 청하는 것입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나의 손자가 어질다. 오늘은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다. 옛날에 강주 사마(江州司馬)17344) 는 청삼(靑衫)이 젖었는데, 오늘 80세를 바라보는 그 임금은 홍포(紅袍)가 모두 젖는구나. 이러한 말을 듣고도 감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에게 의지하는 뜻이겠는가?ꡓ하고, 또 하교하기를, ꡒ오늘의 이 일은 우리나라 만년(萬年)의 근본이라 할 만하니, 특별히 그 청을 허락한다. 오늘의 이 일은 나도 아니고 또한 나의 손자도 아니며, 지금 이 예(禮)를 받는 것은 곧 오르내리시는 영령(英靈)께서 내리신 것이고, 나의 손자가 숙성(夙成)한 것도 또한 오르내리시는 영령께서 내리신 것이다. 즉일에 하례(賀禮)를 받아 오르내리시는 영령께 우러러 답함으로써 세손(世孫)의 효성을 빛낼 것이니, 그것을 의조(儀曹)로 하여금 거행하게 하라. 오늘 백관과 시종에게 한 하교는 일체 아울러 그만둘 것이니 모두 나와서 참여하도록 하라. 그리고 금오(金吾)와 형조의 시수(時囚)들을 아울러 석방하도록 하라.ꡓ하고, 마침내 의열궁(義烈宮) 에 두루 임어하였다가, 파루(罷漏) 후에 환궁(還宮)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8장 B면/ 【영인본】 44책 318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註 17344]강주 사마(江州司馬) : 백거이(白居易)를 말함.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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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2월 22일(을해) 1번째 기사/ 권도․이성규․이경옥․박대유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이성규(李聖圭)를 대사간으로, 이경옥(李敬玉)을 집의로, 박대유(朴大有)를 장령으로, 이혜조(李惠祚)를 정언으로, 서호수(徐浩修)를 부응교로, 박지원(朴志源)을 보덕으로, 이복원(李福源)을 병조 참판으로, 남태회(南泰會)를 대사헌으로, 이진항(李鎭恒)을 사간으로, 홍낙임(洪樂任)을 정언으로, 이규휘(李奎徽)를 장령으로, 윤면승(尹勉升)․윤장렬(尹長烈)을 지평으로, 기언관(奇彦觀)을 헌납으로, 정창순(鄭昌順)을 교리로, 김관주(金觀柱)를 수찬으로, 김기대(金基大)를 부교리로, 이창수(李昌壽)를 판의금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11장 A면/ 【영인본】 44책 32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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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2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6월 19일(기사) 1번째 기사/ 도목정을 행하다. 정창순․홍지해․이심원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도목정(都目政)을 행하였는데, 친정(親政)이었다. 이조 판서 이창수(李昌壽), 참판 이담(李潭), 참의 권도(權導), 도승지 정상순(鄭尙淳), 병조 판서 김시묵(金時黙), 참판 신위(申暐), 참의 김귀주(金龜柱), 참지 박지원(朴志源), 좌부승지 심욱지(沈?之)가 진참(進參)하였다. 정창순(鄭昌順)을 필선으로, 홍지해(洪趾海)를 형조 참판으로, 이심원(李心源)을 대사헌으로, 이항조(李恒祚)를 헌납으로, 이최중(李最中)을 부제학으로, 김치구(金致九)를 정언으로, 이동욱(李東郁)을 지평으로, 이보온(李普溫)을 사간으로, 조준(趙?)을 응교로, 이숭호(李崇祜)를 문학으로, 서유대(徐有大)를 전라 병사로, 한광회(韓光會)를 동지사(冬至使)로, 박도원(朴道源)을 부사(副使)로, 홍낙신(洪樂信)을 서장관으로 삼았다. 한광회․박도원은 후에 대신의 주달로 인해 체차하도록 허락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2권 25장 B면/ 【영인본】 44책 327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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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3권/ 영조 45년(1769 기축 / 청 건륭(乾隆) 34년) 11월 2일(경진) 4번째 기사/ 권도․심이지․여선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심이지(沈?之)를 교리로, 여선형(呂善亨)을 정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6책 113권 17장 A면/ 【영인본】 44책 33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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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1770 경인 / 청 건륭(乾隆) 35년) 1월 27일(을사) 4번째 기사/ 권도․김시묵․정존겸․조운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의로, 김시묵(金時黙)을 판윤으로, 정존겸(鄭存謙)을 공조 참판으로, 조운규(趙雲逵)를 판의금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8장 A면/ 【영인본】 44책 34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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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1770 경인 / 청 건륭(乾隆) 35년) 2월 26일(계유) 4번째 기사/ 조중희․윤득양․안표․강윤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조중회(趙重晦)를 개성 유수(開城留守)로, 윤득양(尹得養)을 대사헌으로, 안표(安杓)를 대사간으로, 강윤(姜潤)을 집의로, 홍응보(洪應輔)를 헌납으로, 홍상간(洪相簡)을 수찬으로, 이최중(李最中)을 형조 판서로, 조영진(趙榮進)을 경기 관찰사로, 홍양한(洪良漢)을 황해도 관찰사로 삼고, 특별히 권도(權導)를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승진시켰다./ 【태백산사고본】 77책 114권 11장 B면/ 【영인본】 44책 34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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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8권/ 영조 48년(1772 임진 / 청 건륭(乾隆) 37년) 1월 27일(계해) 1번째 기사/ 권도를 대사헌으로 홍양한을 대사간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대사헌으로, 홍양한(洪良漢)을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18권 12장 B면/ 【영인본】 44책 41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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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9권/ 영조 48년(1772 임진 / 청 건륭(乾隆) 37년) 7월 5일(무술) 1번째 기사/ 권도를 대사헌으로, 한익모를 우의정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대사헌으로, 한익모(韓翼謨)를 우의정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2장 B면/ 【영인본】 44책 42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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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19권/ 영조 48년(1772 임진 / 청 건륭(乾隆) 37년) 8월 17일(기묘) 1번째 기사/ 권도․정상인․유환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대사헌으로, 정상인(鄭象仁)을 대사간으로, 유환덕(柳煥德)을 지평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9책 119권 19장 A면/ 【영인본】 44책 43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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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3월 2일(계유) 2번째 기사/ 정이환․박천형․오대익․권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이환(鄭履煥)을 부응교(副應敎)로, 박천형(朴天衡)을 부교리(副校理)로, 오대익(吳大益)을 수찬(修撰)으로, 권도(權導)를 이조 참판(吏曹參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4장 A면/ 【영인본】 44책 5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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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6월 2일(신축) 2번째 기사/ 권도․조준․이상악․유언호․윤홍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판으로, 조준(趙?)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이상악(李商岳)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유언호(兪彦鎬)와 윤홍열(尹弘烈)을 이조 좌랑으로, 유언호(兪彦鎬)를 겸교서(謙校書)․교리(校理)로 삼았다. 겸교리는 오래 차임(差任)하지 못했는데, 이조 판서가 아뢴 때문에 새로 주의(注擬)하게 된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53장 A면/ 【영인본】 44책 58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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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2권/ 정조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乾隆) 41년) 10월 13일(신해) 1번째 기사/ 서명선을 공조 판서로, 예문관 제학 권도를 이조 참판으로 삼다/ 서명선(徐命善)을 공조 판서로, 예문관 제학 권도(權導)를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2권 44장 B면/ 【영인본】 44책 63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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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3권/ 정조 1년(1777 정유 / 청 건륭(乾隆) 42년) 5월 28일(임진) 2번째 기사/ 권도를 이조 참판으로, 유언호를 이조 참의로 삼다/ 권도(權導)를 이조 참판으로, 유언호(兪彦鎬)를 이조 참의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52장 B면/ 【영인본】 44책 67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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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4권/ 정조 1년(1777 정유 / 청 건륭(乾隆) 42년) 7월 11일(갑술) 7번째 기사/ 권도 정광한을 정경으로 발탁하다/ 이조 참판 권도(權導)와 행 부사과(行副司果) 정광한(鄭光漢)을 정경(正卿)으로 발탁(拔擢)하였다. 오랫동안 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4장 A면/ 【영인본】 44책 678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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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4권/ 정조 1년(1777 정유 / 청 건륭(乾隆) 42년) 7월 11일(갑술) 8번째 기사/ 이갑을 동지 겸 사은 부사로, 권도를 한성부 판윤으로 삼다/ 이갑(李?)을 동지 겸 사은 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4장 A면/ 【영인본】 44책 67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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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4권/ 정조 1년(1777 정유 / 청 건륭(乾隆) 42년) 8월 16일(기유) 6번째 기사/ 이휘지 이재간․권도에게 관직을 내리다/ 이조 판서 이중호(李重祜)와 참판 서호수(徐浩修)를 체직하고, 이휘지(李徽之)와 이재간(李在簡)으로 대신하고, 권도(權導)를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0장 A면/ 【영인본】 44책 69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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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6권/ 정조 2년(1778 무술 / 청 건륭(乾隆) 43년) 7월 15일(임인) 3번째 기사/ 권도를 공조 판서로, 홍낙성을 판의금부사로 삼다/ 권도(權導)를 공조 판서로, 홍낙성(洪樂性)을 판의금부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4장 B면/ 【영인본】 45책 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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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7권/ 정조 3년(1779 기해 / 청 건륭(乾隆) 44년) 3월 11일(을미) 3번째 기사/ 김문순․권도․정일상 등에게 관직 제수/ 김문순(金文淳)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권도(權導)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정일상(鄭一祥)을 전라도 관찰사로, 채제공(蔡濟恭)을 예조 판서로, 정창성(鄭昌聖)을 경기 관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36장 B면/ 【영인본】 45책 10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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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7권/ 정조 3년(1779 기해 / 청 건륭(乾隆) 44년) 6월 1일(계축) 2번째 기사/ 권도․임득호․이중호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병조 판서로, 임득호(林得浩)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중호(李重祜)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구명겸(具明謙)을 좌포도 대장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5장 A면/ 【영인본】 45책 10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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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1779 기해 / 청 건륭(乾隆) 44년) 7월 8일(경인) 4번째 기사/ 정상순․김양행․권도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상순(鄭尙淳)을 병조 판서로, 김양행(金亮行)을 이조 참의로, 권도(權導)를 의정부 좌참찬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1장 B면/ 【영인본】 45책 11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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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1779 기해 / 청 건륭(乾隆) 44년) 8월 14일(을축) 1번째 기사/ 이휘지․정삼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이휘지(李徽之)와 병조 판서(兵曹判書) 정상순(鄭尙淳)이 사정과 신병 때문에 인퇴(引退)하여 갈렸다. 조중회(趙重晦)를 이조 판서로, 이병모(李秉模)를 이조 참의로, 권도(權導)를 병조 판서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16장 A면/ 【영인본】 45책 11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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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9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1월 3일(임오) 1번째 기사/ 권도를 한성부 판윤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장 A면/ 【영인본】 45책 14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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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9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2월 13일(임술) 4번째 기사/ 권도․김하재․김노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으로, 김하재(金夏材)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김노순(金魯淳)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2장 A면/ 【영인본】 45책 15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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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9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2월 15일(갑자) 2번째 기사/ 홍낙성․권도․김하재․정민시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홍낙명(洪樂命)을 한성부 판윤으로, 권도(權導)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김하재(金夏材)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정민시(鄭民始)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2장 B면/ 【영인본】 45책 15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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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9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3월 17일(병신) 4번째 기사/ 권도를 한성부 판윤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 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26장 A면/ 【영인본】 45책 15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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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9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5월 2일(경진) 3번째 기사/ 정호인을 개성부 유수로 권도를 우참찬으로 삼다/ 정호인(鄭好仁)을 개성부 유수로, 권도(權導)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8장 A면/ 【영인본】 45책 16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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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10권/ 정조 4년(1780 경자 / 청 건륭(乾隆) 45년) 11월 14일(무자) 3번째 기사/ 권도를 한성부 판윤으로 삼다/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47장 A면/ 【영인본】 45책 19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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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2월 19일(임술) 2번째 기사/ 권도․김익․유언호․서유린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도(權導)를 한성부 판윤으로, 김익(金?)을 지경연사로, 유언호(兪彦鎬)․서유린(徐有隣)을 동지 경연사로, 박우원(朴祐源)을 전라도 관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24장 A면/ 【영인본】 45책 21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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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5월 5일(정축) 4번째 기사/ 권도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신대겸을 평안도 병마 절도사로 삼다/ 권도(權導)를 의정부 우참찬으로, 신대겸(申大謙)을 평안도 병마 절도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71장 A면/ 【영인본】 45책 23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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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도 [記事] : 정조실록 14권/ 정조 6년(1782 임인 / 청 건륭(乾隆) 47년) 10월 7일(경오) 3번째 기사/ 김희․권도․채홍리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희(金憙)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권도(權導)를 지경연사로, 채홍리(蔡弘履)를 원춘도(原春道) 3257) 관찰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1장 B면/ 【영인본】 45책 32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註 3257] 원춘도(原春道) : 강원도.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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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미생물 보급사업, 장관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농업기술센터(農·畜産에 孝子 노릇 톡톡히 해… : 醴泉郡, 親環境微生物 普及…行安部 長官賞) [記事] :

  경북 예천군에서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친환경미생물 보급 사업이 제39회 중앙우수제안으로 채택, 2009년 11월 30일 정부중앙청사 별관 2층 강당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번 제안은 예천군 농업기술센터의 친환경미생물 보급 사업 담당 홍승국·조봉래 지도사가 공동으로 ''''친환경미생물 활용 녹색농업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했다.

  예천군 농업기술센타는 지난 2002년부터 한우사육농가에 농업용 미생물을 보급해 이미 효과를 입증 받았으며, 2006년부터 원예작물 분야로 확대 보급해 시설원예작물의 연작장해 개선과 고추역 병 발생 감소, 작물 병해충의 친환경적인 방제 등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또한, 2009년 4월에는 연간 38톤의 친환경미생물 생산이 가능한 친환경농업 바이오센터를 농업기술센터 실증시험포장 내에 완공하여, 군의 농업 전분야에 농업용 미생물을 확대 보급하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친환경미생물을 사용한 농가의 농산물 생산성이 30~70% 정도 늘어나는 반면 농약 사용률은 67~80%로 줄어 토양물리성 보호 및 환경보존에도 도움을 주고 있으며, 축산분야에서는 축산분뇨로 인한 민원과 환경오염, 가축질병 발생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예천참우 브랜드 육성 및 고품질 고급육 생산 등 농가소득 증대에도 큰 몫을 했다고 밝혔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이번 우수제안 채택으로 친환경미생물 보급 사업이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했다.

  (최혜정 記者 UGN 慶北뉴스 2009-12-04 13: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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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박종열, 경북환경상 수상...축하합니다.

  박종열 [記事] : 예천읍 박종열 씨가 ‘2009 경북환경상’ 수상자로 2009년 12월 4일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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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여자고등학교, 도서기증 우수학교 선정...축하합니다.

  예천여자고등학교(道敎育廳, 圖書寄贈 優秀學校 圖書購入費 支援) [記事] :

  경북도교육청은 2009년 한 해 동안 ''''우리 학교에 책 한 권 보내기 운동''''을 실시해 실적이 우수한 20개교에 4천만 원을 지원한다.

  올해 도내 학교도서관이 기증받은 도서 수는 17만7천51권으로 지난해보다 4만 8천여 권이 늘었다.

  이번에 우수학교로 도서구입비를 지원받는 학교는 초등학교 10개(도봉초, 상영초, 금장초, 천부초, 단포초, 저동초, 문경초, 공검초, 각남초, 이전초), 중학교 5개(형남중, 청송여중, 무산중, 석포중, 도개중),

  고등학교 5개(청송고, 풍산고, 진보고, 현일고, 예천여고) 학교다.

  (류상현 記者 慶北日報 20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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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544

  용문사([旅行]小白山 龍門寺 : 이 世上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 [記事] :

  소백산 기슭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전국 3대 지장도량인 용문사 가는 ''''깨달음의 길''''로 역사여행을 떠난다. (한국지역인터넷언론협회 김윤탁 회장 용문사 탐방기).

  이제 제법 추워진 날씨에 초겨울의 예천군 용문면 소백산 용문사 가는 긴 길의 풍경은 오래된 역사 기운을 머금은 나무와 바위들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 ‘깨달음의 길’ 끝에 처음 만나는 일주문은 小白山龍門寺(소백산용문사)라는 글씨와 함께 눈앞에는 장엄한 사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주문을 지나자 경사가 완만한 좌측 언덕 위에는 최근 세워진 김수남 예천군수의 업적을 기리는 공덕비(郡守 海觀 金秀男 居士 功德碑)가 세워져 있다.

  공적비에는 ‘창공이 내려 앉아 청산 곁에 기대서고, 청산은 길을 비켜 하늘을 담아내다, 흩날리는 눈보라를 빈손으로 껴안더니, 오늘은 복사꽃비 하늘 덮어 청산이라’고 아주 멋진 글이 쓰여 있다.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대사가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큰 바위에서 용이 그를 영접했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고려 태조가 신라를 정벌하러 남쪽으로 내려올 때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할 때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했다고 해서 용문사라고 한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든 아주 그럴듯한 창건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문사는 고창 도솔암, 연천 심원사와 함께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 3대 지장도량의 첫 관문이 회전문(廻轉門)이다.

  회전(廻轉)은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로 일반사찰의 사천왕문(四天王門)에 해당된다. 회전문 안에는 국내 최대크기의 사천왕상이 무섭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길을 사천왕상 밑으로 돌리자 그 사천왕이 죄를 많이 지은 탐관오리를 오래도록 짓밟고 있어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이곳을 지나 불국토로 들어가는 해운루(海雲樓)가 보이고 현판에는 소백산용문사란 편액이 쓰여 있다. 용문사는 회전문에서 용문사의 주전(主殿)인 보광명전(普光明殿)까지 위로해서 터널처럼 일직선으로 되어 있어 아마 이곳에 들어오면 모두가 깨달음을 얻을 듯싶다.

  그 깨달음의 터널을 지나면 보광명전(普光明殿)이 또 언덕위에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보광명전에서 바라본 예천자락은 끝없는 산 능선이 겹쳐 한 폭의 그림으로 아름답게 눈에 서린다.

  그리고 그 좌측 앞에는 자운루(慈雲樓)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들의 회담장으로 지금으로 생각하면 지휘부에 해당하는 호국(護國)의 얼이 서린 곳이다.

  용문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대장전(보물 제145호)이다. 대장전은 고려시대 명종 3년(1173)에 건축된 맞배지붕 건축물로 팔만대장경 경판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대장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그것은 삼존불과 목각탱불(보물 제989호)로 아주 특이하게도 대추나무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또 대장전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불교예술의 진수를 아직도 보라는 듯 용문사 대장전 안에는 두 개의 윤장대가 있다. 이 윤장대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윤장대는 불경을 보관한 일종의 목 공예품으로 회전식으로 되어있어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은 만큼 불심을 닦을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원래 윤장대는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과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현대인은 혜택을 보지 못한다. 왜? ‘손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어서 이 글을 읽고는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용문사에는 명부전, 응진전, 진영당, 원통전과 산신각, 용문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극락보전(極樂寶殿) 천불상(千佛象)이 있어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일일이 소개하기 어렵다.

  그리고 최근 2006년에 지어진 성보박물관은 모형 윤장대, 탱화, 영정, 불상, 존자, 불교 제례도구 등 23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있어 산사(山寺)의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깨달음의 길> 이 세상에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것이 있을 뿐이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만 판단이 다를 뿐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사람일 뿐이다. 부디 나하고 같지 않다고 분별하지 말라.

  분별하는 마음은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불가(佛家)에서는 망심(妄心) 즉, 분별심(分別心)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것들을 분별(分別)하여 열고 닫는 것은 오직 자신만의 일이다.

  예천 용문사 찾아가는 길 : 중부내륙고속도로 ▶ 북상주IC ▶ 안동방면 ▶ 예천읍 ▶ 동로방면(928번지방도) ▶ 용문면 ▶ 원류삼거리 ▶용문사로 김천에서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9-12-06 오전 11: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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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교육청(醴泉敎育廳 英語科 TEE 敎授.學習 戰略 컨설팅 硏修 實施) [記事] :

  예천교육청(조찬영 교육장)은 2009년 12월 2일 오후 2시에 지보초등학교(김수락 교장)에서 즐겁고 재미있는 TEE로 명품 영어 교육 실현을 목적으로 한 ''''영어과 TEE 교수.학습 전략 컨설팅 연수''''를 실시하였다.

  이 연수회는 도내 6개 교육청(안동, 문경, 상주, 봉화, 영주, 영양)의 초등영어전담교사와 관내 영어전담교사 등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2009년 경북영어수업개선연구대회에서 1등급으로 입상한 지보초등학교 교사 김혜진의 수업발표(동영상)와 점촌초등학교 교사 장명중의 ‘TEE수업전략’이라는 주제 발표, 수업협의, 지도조언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연수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김 교사의 수업동영상을 보면서 교사와 학생들이 영어로 활발하게 상호 작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며 평소 자신이 하는 수업과 비교하여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앞으로도 자주 이런 연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연수회는 초등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협력수업 및 수업 발표 기회 제공을 통해 교사들의 수업기술을 향상시키며, 수업 협의회를 통한 정보 공유로 영어교육에 대한 자신감과 전문성을 신장시켰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한편, 예천교육청은 영어교육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기존에 진행해오던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시범수업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어과 컨설팅 팀의 조직 및 지원활동을 통해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시범수업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방과 후 수업에 투입되는 Talk 장학생을 포함한 관내 모든 원어민보조교사의 수업 발표를 확대하여 영어지도능력 향상과 함께 영어교육 방법이나 기술에 대한 공유의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醴泉인터넷放送 2009-12-03 오후 2: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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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궁순대("삶아서 나쁜 性分은 除去"…한귀정 農業硏究官) [記事] :

  "구수한 순대는 재래시장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우리 서민들의 대표적인 장터음식이지요."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한귀정 박사는 "순대는 맛도 맛이지만 돼지 내장에다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각종 야채, 두부 등을 버무려 넣어 상대적으로 고기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영양이 골고루 갖춰져 아주 균형잡힌 전통음식"이라고 평가했다.

  한 박사는 삶는 과정에서 나쁜 지방성분이 완전히 제거되고 익혀진 고기도 전형적인 ''''칭기즈칸'''' 요리 방식. 무엇보다 돼지피와 내장은 비교적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에 속하지만 식이섬유가 많은 다양한 채소가 풍부하게 들어가면서 소화도 잘되고 서로 몸에 좋은 영양가만 발현되는 효과를 나타낸다고.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맘놓고 먹어도 되는 우리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서민들의 애환이 김처럼 피어나는 순대는 전국 재래시장 곳곳에서 장꾼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고 고기맛을 선사하던 추억의 음식이라며 애정어린 관심을 쏟기도 한 한 박사는 "순대는 예천 용궁순대와 병천순대처럼 저마다 맛을 자랑하며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산업화 방향은 음식 프랜차이즈나 포장유통 방식 보다는 ''''그 곳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그 곳에서만 꼭 먹을 수 있는'''' 향토성 짙은 전통음식촌으로 특화해 가는 방식이 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권동순 記者 每日新聞 200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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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嶺南의 母胎 洛東江 直接 걸으며…장용호 氏) [記事] :

  ''''내 발로 뛰고 돌아다니며 직접 체험하는 교육이 역시 최고입니다.''''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신규임용자과정의 하이라이트, 낙동강도보 탐방일. 집결지에서 2박 3일간의 일정에 대해 설명했는데 생각보다 꽤 힘들 것 같았다.

  더구나 날씨까지 추워 걱정이다. 첫 도착지는 병산서원. 팀별 교육 후 ''''희망, 도전 2박 3일! 출발!'''' 발대식 선포를 시작으로 첫 목적지 병산서원 만대루로 향했다.

  만대루에 오르니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병산서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다음 행선지 하회마을은 병산서원에서 낙동강 지류를 따라 산을 넘어 4㎞ 정도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날씨가 추워 한기가 들었는데 걷다보니 몸에 열이 났다. 중식으로 안동의 대표 먹을거리 간고등어와 찜닭이 나왔는데 오래 걸어서인지 입안에 착착 감겼다.

  걷는 도중에도 조금씩 내리던 비가 밥을 먹는 중간에는 꽤 거세졌다. 하회마을을 자유관광한 후 부용대로 이동하는데 나룻배를 이용한다고 했다. 나룻배는 우리나라에 한사람 남은 마지막 사공에 의해 부려진다고 한다.

  2개조씩 나눠서 타고 강을 건너는데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부용대를 내려와서 다음 행선지인 구담습지로 약 5.8km 걸어 이동했다. 다리도 아프고 피곤했지만 걸으면서 교육동기들과 그동안 느낀 점, 직장에서 힘들었던 점 등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째날 숙소인 예천군 여울마을은 폐교를 개조한 곳. 저녁식사 후 모두 강당에 모여 낮에 찍은 사진과 UCC 동영상을 보고 팀별 게임을 했는데 무척 진지한 시간이었다.

  2일차. 첫 행선지 예천군 회룡포로 이동했다. 회룡포에서 문화재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전망대에 올랐는데 짙은 안개로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조별로 사진을 찍고 삼강주막으로 이동했다. 삼강주막에서는 중식으로 칼국수를 먹었는데 별미였다.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의 역사를 듣고 회나무와 들돌 등 주막을 둘러보니 경북 곳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날 숙소인 성주봉 휴양림에 도착했다. 숙소배정 후 조그만 운동장에서 조별로 게임을 했었다.

  마지막 날 아침. 첫 번째 도착지인 경천대로 향하기 위하여 차량으로 상풍교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경천대 전망대로 향하기 위해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행히 한명의 낙오자 없이 경천대로 향했다. 경천대를 힘겹게 도착해서 해단식 후 공무원교육원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 2박 3일 일정이 이제 끝났구나 싶으면서도 지난 시간이 새삼스러워진다. 낙동강 도보탐방은 경상북도 지방공무원으로서 영남문화의 모태, 낙동강을 직접 걷고 체험하며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우는데 있다고 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본 만큼 느꼈던 시간인 것 같다. 안동시청 지방행정서기보(9급) 장용호

  (每日新聞 200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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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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