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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079:김주僉樞(祝곤충연구소/예천방문554)
예천의 자랑(2079) : 용문면 구계리 출신 김주 첨지중추부사(附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약용곤충 특허 획득...축하합니다/예천방문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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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
1606(선조 39)-1681(숙종 7), 용문면 구계리 출신, 자는 여정(汝定), 호는 불구당(不求堂), 본관은 의성, 집현전학사 한계(集賢殿學士漢啓)의 5세손, 생원 만흠(生員萬欽)의 현손자,
성품이 강직하고 의로왔고,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다.
1633년(인조 11) 가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34년(인조 12) 성균관(成均館)에서 화포 홍익한(花蒲洪翼漢) 등 35명이 동도회(同道會)를 만들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2)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播遷)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대가(大駕)를 모시고자 남한산성의 아래에 이르니, 성문이 벌써 닫겨 들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씻으며 고향 예천으로 돌아와, 1637년(인조 15) 정월 주봉 이래(柱峯李崍)와 더불어 의병을 이끌고 서울 근처에 이르니 벌써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이 이루어진 뒤였다.
하릴 없이 돌아왔다가 1638년(인조 16) 성균관 장의(掌議)로서 홀로 척화 상소(斥和上疏)를 올렸다.
1639년(인조 17)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학유(學諭)가 되었다.
1640년(인조 18) 역관 정명수(譯官鄭命壽)가 오랑캐의 앞잡이로 와서 척화하는 사람을 찾아낼 때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과 함께 행장을 차려 두고 청 나라로 끌려 갈 왕명을 기다리더니, 조정 공론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스스로 오랑캐를 평정하는 글(平戎頌)을 짓고 물러나 벼슬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절의와 기개를 청음 김상헌과 백중(百中)하다고 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
1648년(인조 26) 무장 현감(茂長縣監)이 되어 임진왜란(1592) 때 허물어진 현청(縣廳)을 녹봉으로 고쳐지어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은 곳으로 1650년(효종 1) 왕이 가죽옷 한 벌을 하사했다.
특히 "부임한 2년 만에 가장 잘 다스리는 고을이 되었다."라고 칭찬하였다.
이듬해(1651) 사임하고 돌아올 때 고을 백성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워 기렸다.
1652년(효종 3) 연안 현감(延安縣監), 1655년(효종 6) 양산 군수(梁山郡守), 1670년(현종 11) 함평 군수(咸平郡守),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로도 선정했으므로 1672년(현종 143)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1673년(현종 14) 벼슬을 사직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벼슬을 그만 둔 후 70 고개를 넘은 몸으로도 학문에 침잠하고 후진 양성에 온 정성을 다 했다.
세인이 숭정처사(崇禎處士)라 했고, 예천 무학당중수기(武學堂重修記)가 있다. 유고(遺稿)가 있고,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襄陽誌 1661, 不求堂集, 慶北道義誌 336쪽, 醴泉郡邑誌 1770 1780 1841 1895, 醴泉郡誌 1939)
[王朝實錄] : 1660년(현종 1) 8월 28일 충홍우도 도사(忠洪右道都事)를 이임하였고, 1669년(현종 10) 2월 4일 사간 김징이 왕에게 청하기를, "신이 듣건대, 전 정랑 김주가 일찌기 충청 도사가 되었을 때 시관(試官)을 맡고서 사사로움을 행하여 형을 받고 멀리 귀양갔었는데, 지난 번 예조 낭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하기에 마음으로 매우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은 신이 다만 김주의 옛날의 좌과만 알았고, 지난 날 상소로 인한 상감 마마의 지중한 용서가 있었음을 진실로 생각지 못하였던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顯宗實錄)
[醴泉의 金石文] : 금부도사 극계(克繼)의 아들, 이연(爾연)ㆍ이해(爾楷)ㆍ이추(爾樞, 長湍防禦使)ㆍ이표(爾標)ㆍ이갑(爾甲, 生員)의 아버지이다. 1633년(인조 11)에 사마시에 합격, 1639년(인조 17)에 문과에 급제, 성균관 학유, 군자감 참봉, 전적을 지냈다. 내직으로는 사헌부 감찰, 병조와 형조의 좌랑, 정랑을 거치면서 춘추관을 겸직하여 <인조실록>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고, 예조 정랑으로 문직을 겸직한 것이 두 번이요, 직강이 두 번이었다. 밖으로 김천 승(金泉丞), 무장(茂長)ㆍ연안(延安)ㆍ양산의 수령과 충청 도사가 되었다. 다시 연서 승(延曙丞)을 제수받았고, 뒤에 함평 현감으로 치적이 높았고, 오위장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묘는 상리면 쌍악 북쪽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참봉 연안 이만부(李萬敷)가 지었다. 뒤에 아들 이추가 보사원종(保社原從)에 참여한 공으로 가선대부 예조 참판에 추증되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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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記事] : 한국문집총간(187_465a) 눌은집(訥隱集, 1808)에 실린 이광정(李光庭)의 기사로, 그 내용은, “贈嘉善大夫禮曹參判。行通政大夫咸平縣監。不求堂金公行狀。/ ...誦。弱冠。遊郡學。所肄時文。常爲?流首。丁卯。有奴寇。張旅軒先生爲嶺南號召使。張公汝翰爲醴泉郡將。召公掌書...”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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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記事] : 한국문집총간(178_447d) 식산집(息山集, 1813)에 실린 이만부(李萬敷)의 기사로, 그 내용은, “息山先生文集卷之二十一/ 丘墓文/ 贈嘉善大夫禮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府副?管,行通政大夫掌隷院判?事義城金公墓碣銘。幷序。/ 昔我族曾祖府尹若持憲公持論亢正。領袖黨僚。其朋酒也。故不求堂金公輒在。我王考致政公。每稱公寬厚長者。甚文。不?得公。?有所受。旣公季胤上舍爾甲甫以公狀。?銘石焉。不?敢辭諸。公諱迬。字汝定。不求其號也。係出新羅末王王子錫封義城。數世有諱龍庇。尙書左僕射太子詹事義城君。代有達官。入我朝有工曹典書諱居斗。知承文院事。諱漢啓。知院公。當世祖朝。以前集賢學士。休官卒。歷生員萬欽。判官?。僉樞亨胤。至禁府郞克繼。配平山申氏。萬曆三十四年丙午十一月二十二日。公生于醴泉郡九溪里第。辛酉。丁內艱。癸酉。中司馬。己卯。登文科。例補成均學諭。辛巳。丁外艱。服?。授軍資參奉及前職。陞典籍。內歷司憲監察,兵刑曹佐郞正郞,兼春秋館。預修仁廟實錄。禮曹正郞文兼者再。直講者再。外除金泉丞,茂長,延安,梁山?,忠淸都事。以試院事。編配海南。蒙宥。復除延曙丞。後以咸平縣監。治高第。陞通政階。解歸。再差五衛將。不復出。肅宗七年辛酉二月十三日。考終。壽七十有六。葬于?基郡殷?雙嶽子午之原。後以男爾樞參保社原從功。贈嘉善大夫禮曹參判。?公??夙成。十一。?曾史賦之甚傑。早孤。益自?。初入郡學及試郡。有司輒魁。稱爲巨擘。戊寅。奴酋逼皇朝。脅我助之。公唱泮生。疏請斥絶之。旣釋褐。甲午。應旨上萬言疏。陳生災之本。曰朋黨奢侈吏胥。?災之目。曰正心經學。綱紀節義。人心安民。納諫修武。皆切中時病。其治奉公。字民?下。以誠赤安輯。不徒務威著。金泉創置?。以恤卒。茂長修?宇。擧?無病民者。所至輒?去思碑。水使及繡衣。俱啓褒。特授表裏廐馬。以獎者三。公資具美。器局全。略可見。然公惟自勝於己。不巧爲外遇。故棲遲郞僚縣邑。數擬掌令而止。晩階下大夫亦以勞。而公益恬而自老矣。公少謁張旅軒先生。慕之。居前後喪。盡禮。日必斂飭衣服冠。喪餘日致哀慕。祭致嚴。二弟夭。撫諸孤若子。公所著詩文藏于家。文積厚而發博。贍如也。詩陶成中節可賞。先娶順天金氏。僉知之女。生一男。後娶完山李氏。郡守光輔之女。生四男二女。男爾?,爾楷。俱早歿。爾樞虎科通政。長湍防禦使。爾標,爾甲生員。女適權?,慶必會。爾?娶密陽贈參判朴承憲女。男大齡。女適韓勖明。爾楷娶海南尹氏。一女歸不?。不字夭。爾樞娶綾州贈參判具?曾孫女。男錫齡。女適吳尙欽進士。爾標娶商山金氏。男百齡。後爾楷。得齡,極齡。女適權悳,權鳳文,蔡游蓮。爾甲娶昌原黃氏。男奎齡,夢齡,井齡。女適李之鳳,李允馝,黃尙?。慶必會男春,簪,普,晉,著,?。女適權九經,李。側室男爾陸。女適李潤林,黃?。內外曾孫若干人。銘曰。/ 繼別之宗。貫移而昌。??嗣興。公胚其光。未試寬文。報之?黃。不?不求。何用不臧。於千萬?。衣履是藏。”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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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01) : 김주(잡혀가던 도중 풀려났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3-4 照會 163)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289~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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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약용곤충 특허 획득...축하합니다.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醴泉郡, 藥用昆蟲 흰점박이꽃무지 特許 獲得) [記事] :
경북 예천군은 역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약용곤충 산업화''''와 관련한 특허 2건을 획득했다고 2009년 12월 29일 밝혔다.
예천곤충연구소는 산업곤충인 화분매개곤충과 정서곤충에 이어 2008년부터 약용곤충 분야 연구에 몰두했다.
이 결과 약용곤충인 흰점박이 꽃무지를 대량 사육해 ''''흰점박이꽃무지 대량 계대증식 사육방법''''과 ''''뽕나무를 이용한 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및 성충의 사료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흰점박이꽃무지 대량 계대증식 사육방법''''은 흰점박이 꽃무지가 계대 사육을 거듭함에 따라 성충의 크기가 작아지고 산란율이 저하되며 환경 내성이 감소되는 등의 문제점을 해소해 제한된 공간에서 효율적이고 용이한 계대 증식 사육시설 및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및 성충의 사료 제조방법'''' 특허는 흰점박이꽃무지(일명 굼벵이)의 유충 및 성충의 대량 증식을 위한 먹이 사료에 관한 것으로 항암작용 등 약효가 뛰어난 뽕나무 톱밥을 이용해 굼벵이의 먹이를 공급함으로써 굼벵이의 생활사를 단축하여 짧은 기간에 다량의 굼벵이를 생산하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는 종봉육종사업과 곤충을 활용한 친환경 농업의 고장 예천군의 미래를 짊어질 효자산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특히 입법이 예상되는 ''''곤충자원의 개발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에도 곤충을 식품 및 약용의 이용 허가에 관한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어 흰점박이꽃무지에 관한 특허는 앞으로 축적된 관련 연구지식으로 인한 우월적 지위 선점 및 지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곤충연구소 관계자는 "약용곤충의 개발은 21세기형 농가사업으로서 지역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고 기존의 기반시설을 최대로 활용하면서도 경제성까지 높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밝혔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2.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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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54
금당꿀(最高品質 醴泉 金塘꿀, 日本에서 認定받아) [記事] :
경북 예천군은 세계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예천 금당꿀''''이 일본 신에이(神榮)㈜로부터 상품 공동 개발을 제의받았다고 2009년 12월 29일 밝혔다.
이번 제안은 세계최고인 금당꿀의 품질 관리와 우수성을 소개받고 생산 중인 프로폴리스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일본에서 판매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지난 24일 금당꿀 영농법인(대표 박우상)을 방문한 일본 신에이㈜ 미래창조실 팀장과 하나바이오택의 최승오 대표는 금당꿀의 생산과정과 품질인정 현황 등 상품전반과 시제품인 프로폴리스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상품개발과 판매전략 등을 논의했다.
금당꿀 영농법인과 신에이㈜는 상호협의를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프로폴리스 등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시제품을 생산 검토하는 과정을 거처 일본과 국내에 시판하기로 했다.
일본 신에이㈜는 연매출 6000억 원의 120년 전통 명문회사로 2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편 신에이㈜ 방문단 일행은 예천군청을 방문하여 금당꿀 등 예천 농특산품 현황을 설명받고 일본에서 인기인 식초을 생산하고 있는 초산정의 오곡미초 가공시설과 HAPP(햅섭)시설을 완비한 용문청결고추 가공시설을 둘러보고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금당실 한옥마을에서 한옥체험을 했다.
금당꿀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예천군 시장개척단으로 문의하면 된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2.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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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
1606(선조 39)-1681(숙종 7), 용문면 구계리 출신, 자는 여정(汝定), 호는 불구당(不求堂), 본관은 의성, 집현전학사 한계(集賢殿學士漢啓)의 5세손, 생원 만흠(生員萬欽)의 현손자,
성품이 강직하고 의로왔고,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다.
1633년(인조 11) 가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34년(인조 12) 성균관(成均館)에서 화포 홍익한(花蒲洪翼漢) 등 35명이 동도회(同道會)를 만들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2) 때 인조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播遷)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대가(大駕)를 모시고자 남한산성의 아래에 이르니, 성문이 벌써 닫겨 들어가지 못하고, 눈물을 씻으며 고향 예천으로 돌아와, 1637년(인조 15) 정월 주봉 이래(柱峯李崍)와 더불어 의병을 이끌고 서울 근처에 이르니 벌써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이 이루어진 뒤였다.
하릴 없이 돌아왔다가 1638년(인조 16) 성균관 장의(掌議)로서 홀로 척화 상소(斥和上疏)를 올렸다.
1639년(인조 17)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학유(學諭)가 되었다.
1640년(인조 18) 역관 정명수(譯官鄭命壽)가 오랑캐의 앞잡이로 와서 척화하는 사람을 찾아낼 때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과 함께 행장을 차려 두고 청 나라로 끌려 갈 왕명을 기다리더니, 조정 공론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스스로 오랑캐를 평정하는 글(平戎頌)을 짓고 물러나 벼슬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절의와 기개를 청음 김상헌과 백중(百中)하다고 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
1648년(인조 26) 무장 현감(茂長縣監)이 되어 임진왜란(1592) 때 허물어진 현청(縣廳)을 녹봉으로 고쳐지어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은 곳으로 1650년(효종 1) 왕이 가죽옷 한 벌을 하사했다.
특히 "부임한 2년 만에 가장 잘 다스리는 고을이 되었다."라고 칭찬하였다.
이듬해(1651) 사임하고 돌아올 때 고을 백성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워 기렸다.
1652년(효종 3) 연안 현감(延安縣監), 1655년(효종 6) 양산 군수(梁山郡守), 1670년(현종 11) 함평 군수(咸平郡守), 충청도 도사(忠淸道都事)로도 선정했으므로 1672년(현종 143)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고, 1673년(현종 14) 벼슬을 사직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벼슬을 그만 둔 후 70 고개를 넘은 몸으로도 학문에 침잠하고 후진 양성에 온 정성을 다 했다.
세인이 숭정처사(崇禎處士)라 했고, 예천 무학당중수기(武學堂重修記)가 있다. 유고(遺稿)가 있고, 예조 참판(禮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襄陽誌 1661, 不求堂集, 慶北道義誌 336쪽, 醴泉郡邑誌 1770 1780 1841 1895, 醴泉郡誌 1939)
[王朝實錄] : 1660년(현종 1) 8월 28일 충홍우도 도사(忠洪右道都事)를 이임하였고, 1669년(현종 10) 2월 4일 사간 김징이 왕에게 청하기를, "신이 듣건대, 전 정랑 김주가 일찌기 충청 도사가 되었을 때 시관(試官)을 맡고서 사사로움을 행하여 형을 받고 멀리 귀양갔었는데, 지난 번 예조 낭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하기에 마음으로 매우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것은 신이 다만 김주의 옛날의 좌과만 알았고, 지난 날 상소로 인한 상감 마마의 지중한 용서가 있었음을 진실로 생각지 못하였던 까닭입니다."라고 하였다.(顯宗實錄)
[醴泉의 金石文] : 금부도사 극계(克繼)의 아들, 이연(爾연)ㆍ이해(爾楷)ㆍ이추(爾樞, 長湍防禦使)ㆍ이표(爾標)ㆍ이갑(爾甲, 生員)의 아버지이다. 1633년(인조 11)에 사마시에 합격, 1639년(인조 17)에 문과에 급제, 성균관 학유, 군자감 참봉, 전적을 지냈다. 내직으로는 사헌부 감찰, 병조와 형조의 좌랑, 정랑을 거치면서 춘추관을 겸직하여 <인조실록>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고, 예조 정랑으로 문직을 겸직한 것이 두 번이요, 직강이 두 번이었다. 밖으로 김천 승(金泉丞), 무장(茂長)ㆍ연안(延安)ㆍ양산의 수령과 충청 도사가 되었다. 다시 연서 승(延曙丞)을 제수받았고, 뒤에 함평 현감으로 치적이 높았고, 오위장이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묘는 상리면 쌍악 북쪽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참봉 연안 이만부(李萬敷)가 지었다. 뒤에 아들 이추가 보사원종(保社原從)에 참여한 공으로 가선대부 예조 참판에 추증되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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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記事] : 한국문집총간(187_465a) 눌은집(訥隱集, 1808)에 실린 이광정(李光庭)의 기사로, 그 내용은, “贈嘉善大夫禮曹參判。行通政大夫咸平縣監。不求堂金公行狀。/ ...誦。弱冠。遊郡學。所肄時文。常爲?流首。丁卯。有奴寇。張旅軒先生爲嶺南號召使。張公汝翰爲醴泉郡將。召公掌書...”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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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金迬) [記事] : 한국문집총간(178_447d) 식산집(息山集, 1813)에 실린 이만부(李萬敷)의 기사로, 그 내용은, “息山先生文集卷之二十一/ 丘墓文/ 贈嘉善大夫禮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府副?管,行通政大夫掌隷院判?事義城金公墓碣銘。幷序。/ 昔我族曾祖府尹若持憲公持論亢正。領袖黨僚。其朋酒也。故不求堂金公輒在。我王考致政公。每稱公寬厚長者。甚文。不?得公。?有所受。旣公季胤上舍爾甲甫以公狀。?銘石焉。不?敢辭諸。公諱迬。字汝定。不求其號也。係出新羅末王王子錫封義城。數世有諱龍庇。尙書左僕射太子詹事義城君。代有達官。入我朝有工曹典書諱居斗。知承文院事。諱漢啓。知院公。當世祖朝。以前集賢學士。休官卒。歷生員萬欽。判官?。僉樞亨胤。至禁府郞克繼。配平山申氏。萬曆三十四年丙午十一月二十二日。公生于醴泉郡九溪里第。辛酉。丁內艱。癸酉。中司馬。己卯。登文科。例補成均學諭。辛巳。丁外艱。服?。授軍資參奉及前職。陞典籍。內歷司憲監察,兵刑曹佐郞正郞,兼春秋館。預修仁廟實錄。禮曹正郞文兼者再。直講者再。外除金泉丞,茂長,延安,梁山?,忠淸都事。以試院事。編配海南。蒙宥。復除延曙丞。後以咸平縣監。治高第。陞通政階。解歸。再差五衛將。不復出。肅宗七年辛酉二月十三日。考終。壽七十有六。葬于?基郡殷?雙嶽子午之原。後以男爾樞參保社原從功。贈嘉善大夫禮曹參判。?公??夙成。十一。?曾史賦之甚傑。早孤。益自?。初入郡學及試郡。有司輒魁。稱爲巨擘。戊寅。奴酋逼皇朝。脅我助之。公唱泮生。疏請斥絶之。旣釋褐。甲午。應旨上萬言疏。陳生災之本。曰朋黨奢侈吏胥。?災之目。曰正心經學。綱紀節義。人心安民。納諫修武。皆切中時病。其治奉公。字民?下。以誠赤安輯。不徒務威著。金泉創置?。以恤卒。茂長修?宇。擧?無病民者。所至輒?去思碑。水使及繡衣。俱啓褒。特授表裏廐馬。以獎者三。公資具美。器局全。略可見。然公惟自勝於己。不巧爲外遇。故棲遲郞僚縣邑。數擬掌令而止。晩階下大夫亦以勞。而公益恬而自老矣。公少謁張旅軒先生。慕之。居前後喪。盡禮。日必斂飭衣服冠。喪餘日致哀慕。祭致嚴。二弟夭。撫諸孤若子。公所著詩文藏于家。文積厚而發博。贍如也。詩陶成中節可賞。先娶順天金氏。僉知之女。生一男。後娶完山李氏。郡守光輔之女。生四男二女。男爾?,爾楷。俱早歿。爾樞虎科通政。長湍防禦使。爾標,爾甲生員。女適權?,慶必會。爾?娶密陽贈參判朴承憲女。男大齡。女適韓勖明。爾楷娶海南尹氏。一女歸不?。不字夭。爾樞娶綾州贈參判具?曾孫女。男錫齡。女適吳尙欽進士。爾標娶商山金氏。男百齡。後爾楷。得齡,極齡。女適權悳,權鳳文,蔡游蓮。爾甲娶昌原黃氏。男奎齡,夢齡,井齡。女適李之鳳,李允馝,黃尙?。慶必會男春,簪,普,晉,著,?。女適權九經,李。側室男爾陸。女適李潤林,黃?。內外曾孫若干人。銘曰。/ 繼別之宗。貫移而昌。??嗣興。公胚其光。未試寬文。報之?黃。不?不求。何用不臧。於千萬?。衣履是藏。”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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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01) : 김주(잡혀가던 도중 풀려났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3-4 照會 163)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289~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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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 약용곤충 특허 획득...축하합니다.
예천군산업곤충연구소(醴泉郡, 藥用昆蟲 흰점박이꽃무지 特許 獲得) [記事] :
경북 예천군은 역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약용곤충 산업화''''와 관련한 특허 2건을 획득했다고 2009년 12월 29일 밝혔다.
예천곤충연구소는 산업곤충인 화분매개곤충과 정서곤충에 이어 2008년부터 약용곤충 분야 연구에 몰두했다.
이 결과 약용곤충인 흰점박이 꽃무지를 대량 사육해 ''''흰점박이꽃무지 대량 계대증식 사육방법''''과 ''''뽕나무를 이용한 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및 성충의 사료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흰점박이꽃무지 대량 계대증식 사육방법''''은 흰점박이 꽃무지가 계대 사육을 거듭함에 따라 성충의 크기가 작아지고 산란율이 저하되며 환경 내성이 감소되는 등의 문제점을 해소해 제한된 공간에서 효율적이고 용이한 계대 증식 사육시설 및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및 성충의 사료 제조방법'''' 특허는 흰점박이꽃무지(일명 굼벵이)의 유충 및 성충의 대량 증식을 위한 먹이 사료에 관한 것으로 항암작용 등 약효가 뛰어난 뽕나무 톱밥을 이용해 굼벵이의 먹이를 공급함으로써 굼벵이의 생활사를 단축하여 짧은 기간에 다량의 굼벵이를 생산하는 것이다.
전국 지자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는 종봉육종사업과 곤충을 활용한 친환경 농업의 고장 예천군의 미래를 짊어질 효자산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특히 입법이 예상되는 ''''곤충자원의 개발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에도 곤충을 식품 및 약용의 이용 허가에 관한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어 흰점박이꽃무지에 관한 특허는 앞으로 축적된 관련 연구지식으로 인한 우월적 지위 선점 및 지역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곤충연구소 관계자는 "약용곤충의 개발은 21세기형 농가사업으로서 지역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고 기존의 기반시설을 최대로 활용하면서도 경제성까지 높은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밝혔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2.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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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54
금당꿀(最高品質 醴泉 金塘꿀, 日本에서 認定받아) [記事] :
경북 예천군은 세계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예천 금당꿀''''이 일본 신에이(神榮)㈜로부터 상품 공동 개발을 제의받았다고 2009년 12월 29일 밝혔다.
이번 제안은 세계최고인 금당꿀의 품질 관리와 우수성을 소개받고 생산 중인 프로폴리스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일본에서 판매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지난 24일 금당꿀 영농법인(대표 박우상)을 방문한 일본 신에이㈜ 미래창조실 팀장과 하나바이오택의 최승오 대표는 금당꿀의 생산과정과 품질인정 현황 등 상품전반과 시제품인 프로폴리스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상품개발과 판매전략 등을 논의했다.
금당꿀 영농법인과 신에이㈜는 상호협의를 통해 내년 상반기부터 프로폴리스 등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시제품을 생산 검토하는 과정을 거처 일본과 국내에 시판하기로 했다.
일본 신에이㈜는 연매출 6000억 원의 120년 전통 명문회사로 2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편 신에이㈜ 방문단 일행은 예천군청을 방문하여 금당꿀 등 예천 농특산품 현황을 설명받고 일본에서 인기인 식초을 생산하고 있는 초산정의 오곡미초 가공시설과 HAPP(햅섭)시설을 완비한 용문청결고추 가공시설을 둘러보고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금당실 한옥마을에서 한옥체험을 했다.
금당꿀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예천군 시장개척단으로 문의하면 된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09.12.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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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