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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110:권오복史官2(祝공군제16전비)
작성자장병창 @ 2010.02.10 09:22:44



  예천의 자랑(2110) :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 권오복 사관(2)(附 공군 제16전투비행단, 9일 안전 최우수부대 표창...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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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문집총간(017_167d) 목계일고(木溪逸稿, 1910)에 실린 강혼(姜渾)의 기사로, 그 내용은, “木溪先生逸稿卷之一/ 序跋/ 睡軒集跋/ 右詩稿一帙。吾友嚮之氏所著也。余與嚮之。同丙午科。余在史局二載。在?坡六載。無不與之同焉。嚮之少余二歲。其文章之淸古。識見之超邁。志節之勁正。行義之淸修。大爲一時聞人。金季雲所推服。而竟坐事。與季雲同死。余與嚮之,季雲爲莫逆交。今見是稿讀數過。掩卷隕_! ⑥ㅭ猥運e拔벙^恭屹聯─M唐淋중衍㎔∵吸熺쇱샥a鋪賃●立j唱驢音鷹벙P靭달톈익쵸礪腹屢伴─v九욺希黑j坮攣__f⑭멨쏀__立c쟈膺ㅺ幾욺希痕靂밸阪P蘿醴屆視佈雀揖又벙z욺希犧會ⅰx뷩익췬ァt音陜뱀虞濡e蛤ㅯ坼__ㅟ希爻lㅹ粱屹e琅偵즐凞侄贅o騷謚函袋隅톺d½嫩立i嫩鸞楗똥₁窈_拖哭橄뾰汎曦巽및㎕!굼甄_.(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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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문집총간(052_340a) 서애집(西厓集, 1894)에 실린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기사로, 그 내용은, “睡軒集跋/ 西厓先生文集卷之十七/ 跋/ 成廟臨御歲久。愛養人才。激勵風節。於是士之英偉卓?者。蔚然?出。可謂盛矣。而遭罹厄會。一敗塗地。譬如春氣方至。草木敷榮。猝遇?霜之慘。風雨之?。離披?折。索然而無餘。亦可哀也。嗚呼。善人何負於國哉。達城府伯權侯灝元。乃睡軒先生之從孫也。家藏睡軒遺稿。! 而散失殆盡。灝元?更極意?集。僅百餘篇。以?于梓。又取當時罪籍附于後。又令其友?山柳成龍略記師友之同禍者。如子厚先友記。幷附之。百年之後。使睡軒文章事蹟。不至於泯滅而無傳者。灝元之力也。噫。後必有三復斯編。廢書而流涕者矣。/ 附 戊午黨籍/ ...朴漢柱字天支。密陽人。自號迂拙子。遊學?畢齋門下。成廟乙巳登第。歷正言獻納。言事直截。出爲醴泉郡守。戊午杖流碧潼。甲子被殺。中廟初命贈都承旨。”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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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문집총간(181_438a) 도곡집(陶谷集, 1766)에 실린 이의현(李宜顯)의 기사로, 그 내용은, “陶峽叢說/ ...川紹。永 川則郭司諫珣。咸安則魚議政世謙。金山則曹梅溪偉。榮川則洪花浦先生。醴泉則權睡軒五福,鄭議政 ...”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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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고전국역총서(1966 刊)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실린 연려실 이긍익(李肯翊)의 기사로, 그 내용은, “무오당적(戊午黨籍)/ ... 권오복은 자는 향지(嚮之)이며, 호는 수헌(睡軒)이요, 본관은 예천(醴泉 예천 권씨이며, 본성은 ...”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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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고전국역총서(1996 刊) 점필재집(?畢齋集)에 실린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기사로, 그 내용은, “점필재집 문집 부록/ [문인록(門人錄)] / 문인록을 첨부함[附門人錄] / 권오복(權五福)의 자는 향지(嚮之)이고 호는 수헌(睡軒)인데, 예천인(醴泉人)이다. 성종(成宗) 병오년에 과거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선보(選補)되었다가 옥당(玉堂)에 전임되어 김탁영 등 제공(諸公)과 막역(莫逆)의 친교를 맺_! 駭_. 그러다 무오년의 사화가 일어남에 미쳐 선생의 문도(門徒)라는 이유로 탁영과 함께 극화(極禍)를 당하였다.”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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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고전국역총서(1971 刊)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실린 권별(權鼈)의 기사로, 그 내용은, “...권오복(權五福) 본관은 예천이며 자는 향지(嚮之)이며, 호는 수헌(睡軒)이다. 문장이 맑고 건실...”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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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문집총간총목차 011집 사가집(四佳集 Ⅱ)에 실린 서거정(徐居正)의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 권오복에 대한 기사로, 그 내용은, “... 135 寄專上人 135 送權翰林五福榮親之醴川 二首 136 送成上人還白巖寺七首 ...”이다.(www.minchu.or.k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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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과 그의 작품들(權五福과 그의 作品들) [記事] : 용문면 죽림리 167번지 대수 출신인 권중섭(權重燮, 1953- 大昌中 敎師)의 용문면 하금곡리 출신인 수헌 권오복(1467-1498, 玉堂 史官)에 대한 기사로, 예천문화원에서 1988년에 발행한 <예천문화(醴泉文化)> 3호 186-202쪽(17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권오복의 생애와 무오사화, 2)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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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醴泉 / 壇廟  / 社稷壇 在郡西五里 文廟 在鄕校 城隍祠 在德峯山郡西二里 ?壇 在郡北五里 新增鼎山書院 在郡北十里萬曆壬子創建主享退溪 李滉從享月川 趙穆崇禎丁巳 宣額 鄕賢祠 在郡西一里崇禎庚辰?享文貞 趙庸 提學 尹祥 校理 權五福 左議政 鄭琢 鳳山書院 在郡南五十里多仁縣 肅廟戊子享校理 權五福 / <하권0394-2>/ 道正書院 在郡東十五里 肅廟甲午享左議政 鄭琢 林將軍廟 在客館東將軍名支漢見人物(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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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醴泉 / 樓亭  / 決賓樓 在客館東 徐居正詩襄陽樓上晩風寒簾捲靑山獨倚?竹嶺天低瞻北斗花山路出接東關豪?轉覺江湖窄大醉從敎宇寅寬可笑功名思爛熟不知身世是槐安舊增李宜茂記歲辛酉予與李鐵城 深源李星山 子固黃南原實之奉使徒民分道于嶺南將抵安東路由醴泉經宿于客館東軒軒之東北隅有樓舊基方欲創新鳩材孱功而未就也問其名則快賓也問其未就則曰太守閔侯以事見送! 未就也徘徊周覽愴然者久之以爲斯樓之未就亦吾輦斯行之一不快也自此歷抵列郡見列郡之雄樓傑閣則每以斯樓爲恨也旣而聞尹侯來?于玆首謀所以成就之私自喜幸又以爲果一登覽以快吾行典否耶未殷月深源自慶子固自晉實之自尙各/ <하권0395-2>/ 竣事俱會于斯則所謂快賓者?然煥然若不日而成也吾輩相賀曰尹侯之此擧如此其神且速也不賢而能之乎古人於一事之修擧而遠且大者從可策也可不謂賢乎遂相與登樓四望則高山聳後大川經前閭閻四布平崗斷龍擁衛周遭彷彿若別一洞天亦斯樓之勝槪也俄而開宴置酒共飮以落之左右獻酬盃盤交錯絲竹間作迭起爲舞怡怡愉愉情景陶然不知誰主誰賓?然若登釣天聞廣樂而不覺蹈舞之不足也嘗聞樓臺之設非直爲景物役也將以道宣?鬱時出而遊觀之以節勞佚則亦爲政者之所不可廢也況侯之此擧卽其舊而張大之無墜前功無侈後觀不規規於事爲之末而人自快於登覽觴詠之餘則吾輩之落成於樓者非徒吾輩之幸抑亦斯邑之大幸也侯嘗累佩銅章咸著聲績?黃蓋易之也今之來豈徒然哉?能由此而推之凡所以修擧廢墜者無一不出於遠且大者使斯民自得於仰事俯育之間鼓舞於仁風和氣之中則人之快足於心者獨賓?主?抑斯民?吾不知所輕重矣?預宴席重侯之請姑書始末以歸之候諱/ <하권0395-3! >/ 壽泉字永灝 坡平望族也 金宗直詩開盡玟現滯甫州綠池靑?況高樓點行衛_ 穀삠筵삐信탱㏘__囚__닯瓊Ω庾裸i閏__詞ε陝__⑸痕⑿흉整筍葬駟冕χ頌朕_?萬戶留 桑麻楡柳?平川臥看襄陽半璧天男是碧油幢下客登樓懷抱更悠然 舊增燕賓樓 在客館東今無

  鄕射堂 在郡西二里 權五福記嶺之南六十餘州自高麗氏統三置爲一道國家仍之大爲人材物産之府庫而吾醴泉其一也然醴泉本新羅之水酒縣自羅代?今上下數千載間不知邑宰凡幾人鄕大夫凡幾人志古道而復古禮能導民禮俗者有幾人哉邑宰以簿領爲急而未遑於施設鄕大夫雖或有化俗之方於一邑無所管所謂雖善不尊不尊人不信識者病馬我 殿下卽位之戊申令所在復立留鄕所有座首別監焉推年德高者謂之座首其次稱別監?管一鄕風俗所員府四人郡_! 끓腎g戰죕繁λ퉈Μ哈譜醬φ圈垈__暴사著ハ瓏圖ⓥ驅哈俸ヱ欌퇴__諫嶝凞碣Κメ┽__烱爐詹텅__兜z쥐慘難訖띕__쭤Τ湳揄㏝對_?廚凡二十間鄕父老共/ <하권0395-4>/ 出力陶瓦鳩材太守 李公箴亦助以材始攻於壬子斷手於癸丑?其役者鄕人某與某也執其事者郡吏某與某也去年秋五福謁告省親金塘谷鄕父老拉余於鄕射堂酒半尹侯執盞言曰吾鄕之欲關此堂久矣未卜其地或欲撤北亭而堂之悠悠郡議蓋亦有年一日?及于郡治西二里許丘荒??之間登高而望得異處焉凡其與目接與心謀者無非勝境群山擁翠一溪瀉玉林茂而竹脩宅幽而勢阻若夭公地?秘以待人遂決意經營堂旣成而子適來可無一言以記余曰凡題記之作必得大手今文章鉅公磊落相望而求之無有不可如我■綿顧何能爲侯固命之余辭不獲則曰堂之設豈徒然哉古昔聖帝明王躬行仁義以導民厚矣猶以爲未也又設鄕官以敎之有若閭胥族師比長黨正之屬各掌其戒令政事屬民讀法春秋以禮會而飮射于州序書其德行道藝?其過惡而勸戒之風淳俗美?一世於仁義之城今之留鄕所卽古黨正之遺意也鄕有頑?自恣不孝悌不睦不姻不任恤者此堂得以議之吏有包藏姦慝憑假城社侵漁百姓者此堂得以/ <하권0396-1>/ 議之推周官三物之敎行汝南月朝之評以勵一鄕之風俗者亦莫不於_! 亂臺藤傀難訖랍冀부펴뿔순룹ㅮ尼쇔θ綿줏肋匈__펭閉佺__屢博뷔圖熹來블뷴鷸帙璽톡_?而語曰?壯孝悌耆?好禮不從流俗修身以侯死者不在此位也蓋去者半處者半又揚?而語曰好學不倦好禮不亂?期稱道不變者不在此位也蓋僅有存者一揚?之間擧其善者而留之則非其人者自退此詩人所謂序賓以賢以不侮者也夫子所謂觀於鄕而知玉道之??者也今國家率舊章崇禮敎設鄕射之禮夫射一藝也序賓揚?之禮擧而一鄕之淑慝可以旌別此鄕父老之獨擧此爲扁而勸戒之意實寓於其間也然射當於壇而今於堂何也曰射則於壇而鄕賓之宿計則在堂也古者鄕先生生而會於社歿而登於社鳴呼斯堂其社矣夫五福他日謝事結社於此堂春秋吉日以鷄豚燕隨父老更請飮射之禮焉 新增西亭 在郡西五里號觀稼亭 仙夢臺 在郡南二十里退溪 李滉詩松老高臺抑翠虛白沙靑壁?難如吾今夜夜勞仙夢莫恨前詩?賞疏/ <하권0396-2>/ 淸陰 金尙憲詩沙白川朗淡若虛玉山瓊圃較何如仙區萬里應難到來往斯亭且莫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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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醴泉 / 人物  / 高麗 林民庇 毅宗朝擢第官至同中書門下平章事爲相挺然有古風好善周急確實無華故武夫悍卒亦知景仰年七十三致仕謚文靖 林宗庇 工於四六 林椿 宗庇從子毅宗時人以文章鳴世屢擧不第鄭仲夫之亂闔門遭禍椿脫身僅免卒窮夭而死號西河先生有集行於世 高麗史云西河人未知何據 林支 漢元宗時以本郡吏從征東都叛將崔宗 崔積 崔思等有功欲賞以職支漢辭_! 膺ㅯ폈뙈롬__喜泥腎밞粱首筏ゐ采___ 林惟正 登第官至祭酒工於集句有百家衣集 本朝權孟孫 登第官至藝文館大提學謚/ <하권0396-4>/ 齊平 尹祥 以縣吏登第學問精深誨人不倦長成均凡十有六年官至藝文館提學年七十八退老于鄕學者集雲八十三卒近代師儒之最 流寓本朝趙庸 洪武壬申謫居詳眞寶縣 孝子本朝林? 仕至監察爲父居廬三年末嘗見齒事聞旌閭 金? 其父早死以?得行喪及壯?歿廬墓年爲父仍居三年事聞拜架閤庫錄事 潘濡 爲父居廬三年事間旌閭 權節山 爲母居廬三年事聞旌閭 尹奕 郡吏也養父母家雖貧未嘗闕酒肉及歿哀毁踰禮事聞旌閭 盧珣 進士也少失父鞠於其祖珍珍年六十居母廬罹疾幾死珣奉藥先嘗禱於北辰求以身代嘗糞味苦疾果愈 烈女權氏 安東權啓生女年二十其夫宋孝從死親自負土葬於家北率五?先兒朝夕不離墓側終三年一曰有虎攬子而去權氏左手扶子右手拒虎呼曰皇天有知乞賜照臨虎乃棄去 新增 人物權五紀 文科以承文副正字選拜藝文館?閱止執義號拙齋 權五福 五紀之弟/ <하권0397-1>/ 文科官至校理早受業於??齋 金宗直門下戊午之禍興金馹孫等同被極刑號睡軒有文集行于世鄕人立祠享之 太斗南 文科官至執義以文章鳴于世 張孟羽 延福君末孫之子文科官至校理 權文海 文科官至左承旨有所撰大東韻玉二十卷號草澗 鄭琢 文科 宣廟朝官至左議政謚貞簡號藥圃鄕人立祠享之 當?丙子 命進?像 御製其銘銘曰筵中偶聞取覽厥像遺像偉然 穆廟名相百年之後入于 楓宸特題其銘以聳嶺人 曹友仁 萬曆乙巳文科昏朝坐詩案??三載酷被?掠癸亥 改玉官至承旨 朴廷薛 孝宗朝登第官至參判 金賓 孝宗朝登第官至參判 李東標 肅廟癸亥擢魁科歷銓卽舍人止參議號懶隱有學行風節 當?辛酉筵臣以力主淸議樹立卓爾建白 特贈吏曹判書 流寓本朝張末孫 天順己卯文科以 世祖朝敵愾功臣封延福君謚安襄 李光胤 益齋 齊賢之後文科官至校理號?西 權檣 忠定 ?之弟正德己卯登/ <하권0397-2>/ 賢良科以南床選入翰苑官至正郞以己卯賢 當?丙寅 贈副提學號霽村 朴從鱗 嘉靖丙辰文科選翰苑歷三司止銓郞 丁允祐 貳相 應斗之子文科官至監司 新增孝子李介立 隆慶丁卯進士以孝行擢授縣監 肅宗朝褒贈參判號省吾 魯瑞麟 郡! 吏也父病斷指垂口得甦 肅宗朝事 聞旌閭 新增烈女洪氏 習讀 文經濟之妻事在三綱行錄事 聞旌閭 呂氏 文應周之妻卽洪氏之歸事在三綱行錄事 聞旌閭 文氏 命周之女未?遭壬辰亂賊先刃其父?水女呼哭從溺事 聞旌閭 申氏 李宓之妻宓隨父大憲瀣朝京歿于燕訃至忽有白鳩來止于肩貌甚??馴擾異常每申氏號哭鳩輒承淚飮之常不離於側人以爲幽感申氏號哭平生無異袒括白衣疏食以終其身事 聞旌閭 李氏 權尙?之妻年二十八夫歿哀毁過禮冬月不著絮袍年過七?而食素終身 肅宗朝事 聞旌閭 朴氏 權國柱之妻六十偏寡淚盡繼血遂至喪明素食以終八耆事 聞/ <하권0397-3>/ 旌閭(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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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盈德 / 名宦  / 本朝權五福新增鄭磁 周?(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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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寧海 / 山川  / 龍頭山 在府西二十里自江原道平海白?山來爲邑基來龍其頂有?水旱無增減俗傳初山頂有一葦長至天乃鑿井其地水甚淸澈邪人照之則爲泥色 東海山 在府東四里自望日峯來爲東海鎭山 半浦山 在府南七里自南眠峴來 仍良大山/ <하권0555-3>/ 在府西九里自騰雲山來 加西音山 在府西卞三里自騰雲山來 加乙面山 在府西二十三里自騰雲山來 山城山 在府西十! 三里自騰雲山來 騰雲山 在府北十里自白巖山來爲本府鎭山 目月山 在英陽縣 望日峯 在府東五里自半浦山來 西泣嶺 在府西四十里自白巖山來爲一邑送迎之地奮增俗傳大小使星若初踰此嶺必有凶事人皆避之孫舜孝爲監司直到嶺土削古樹白而書之曰汝揖華山呼萬?我將綸命慰群泯箇中輕重誰能會白日照然照兩情因改爲破怪峴○權五福詩未必貪泉誤隱之休將名字駭無知區區破怪還堪怪泣嶺???淚碑 烏峴 自英陽縣界五十里自白巖山來 南眼峴 在府南十五里自龍頭山來諺傳高麗太祖南征至此峴馬上困睡有一吏姓黃者進酒太祖睡覺乃飮名具吏曰愁歇其山曰眠峴 松峴 在府南五里自龍頭山來○我 世宗朝峴南地火晝夜有烟氣而不見火光投以木石皆燃雖大雨不滅幾半月而滅 成宗甲辰亦然人...(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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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복 [記事] : 성종실록 234권/ 성종 20년(1489 기유 / 명 홍치(弘治) 2년) 11월 12일(병인) 3번째 기사/ 시독관 조지서가 가배량?미조항 두 곳에 진을 설치할 것을 아뢰고 기사관 권오복이 고을 수령의 탐오를 고하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시독관(侍讀官) 조지서(趙之瑞)가 아뢰기를, ?가배량(加背梁)?미조항(彌助項) 두 곳에 진(鎭)을 두는 것이 편리한지를 널리 대신들에게 의논했지만, 모두 직접 가서 눈으로 보지는 못하고 한갓 사람들이 하는 말만 가지고 거개 억측으로 결단한 것이기 때문에 의논이 한결같지 않았습니다. 신이 일찍이 일로 미조항 에 갔다가 대략 지형을 살펴보았는데, 그 곳 지형이 바다 가운데로 수십리쯤 쑥 들어갔기 때문에 동남(東南)쪽의 왜선(倭船)들이 여기서 땔감도 채취(採取)하고 먹을 물도 길으며 틈을 타 넘겨다보다가 멋대로 좀도둑질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 1여(旅)로 방수(防戍)하게 되면서부터는 왜인(倭人)들이 소굴(巢窟)을 잃게 되고 변방 백성들의 근심이 적어졌던 것입니다. 지난날에 왜인들이 방비하는 수졸(戍卒)이 없는 것을 틈타 마구 들어와 사람들을 작살(?殺)하게 되자, 이를 빙자하여 고단하게 동떨어져 있으므로 구원하는 군사가 미처 구원하지 못하게 된다고 ! 했었는데,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그 곳의 도로를 살펴보니, 그다지 _ ___ 멀지 않아 만에 하나도 미처 구원하지 못하게 될 리가 없었습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이 또 말하기를, ?지금 비록 진을 두더라도 방수할 만한 군사가 없고, 만일 다른 진의 군사를 나누어 한다면 힘이 분산되고 기세가 약해지므로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마는, 신의 생각에는 조종(祖宗) 이래로 백여 년 동안을 휴양(休養)하고 생식(生息)하게 하여 인구가 매우 번성해졌다고 여깁니다. 진주(晉州) 한 고을로만 보더라도 비록 국가에서 숨은 장정(壯丁)을 검거하여 찾아내어 모두 군적(軍籍)에 올려 군사로 삼기는 했었습니다. 그러나 숨은 장부의 빠진 장정이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비록 진주 의 병정만 찾아낸다 하더라도 수백 명의 군사는 하루아침에 군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예로 본다면 다른 고을들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다른 진의 군사를 나누어 오지 않더라도 6백이나 7백이나 8백의 군사는 쉽게 조발(調發)할 수 있어 한 진의 방수가 넉넉하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안전과 위태는 서로 따라다니고 다스려짐과 어지러워짐은 서로 뒤집히게 되는 법이어서, 태평에만 익숙하여 변방의 방비를 허술하게 하다가 뒷날의 염려를 가져!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 두 지역에 시급히 진을 두고 군사로 방수하여 든든한 형세를 보여준다면 섬오랑캐들이 스스로 넘겨다보는 마음을 끊게 되어 변방이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참으로 그와 같다면 진을 두는 것이 가하겠다. 그러나 이미 대신으로 하여금 직접 편리 여부를 살펴보도록 했으니,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차차 의논하겠다.?하였다.

  조지서가 또 아뢰기를, ?법령(法令)이 한결같이 나온다면 관원들도 번거롭지 않고 백성들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이 형조 정랑(刑曹正郞)이었을 적에 일찍이 겪어보았는데, 무릇 형옥(刑獄)의 결안(決案)을 이미 《대명률(大明律)》로 결단해놓고 또한 전례를 고찰했었습니다. 무릇 《대명률》은 지극히 자세하고 지극히 정밀하여 실정이나 법이 모두 극진하게 되어 있으므로 대소간의 형벌을 각각 맞추어 쓸 수 있는데, 하필 또 전례를 고찰할 것이 있겠습니까??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전례를 고찰하는 것은 아마도 죄는 같은데 벌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것이 있을 듯하기 때문이니, 비록 전례를 고찰해서 하더라도 어찌 율(律)에 방해롭게 되겠는가??하였다. 기사관(記事官) 권오복(權五福) 이 아뢰기를, ?옛사람의 말이 ?당(堂) 아래가 천 리나 되게 멀고 대궐 문이 만 리나 멀다.?고 했듯이, 먼 외방(外方)의 서민들이 탐오(貪汚)하고 잔학(殘虐)한 행정에 시달리면서도 주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신이 요사이 사책(史冊)을 거풍(擧風)하는 일로 성주(星州) 에 갔다가 듣건대, 밀양 부사(密陽府使) 허혼(許混)이 창고(倉庫) 수리를 핑계하고 무릇 목재와 기와를 모두 민간의 가호(家戶)에서 거두며 독촉하여 받기를 몹시 엄하게 하므로 온 고을이 소란하여 주구(誅求)를 견디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관미(官米)를 도둑질하여 배 3척에 싣고 강을 따라 운항하여 만호(萬戶)의 방수(防戍)하는 곳에 이르렀다가 만호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힐문(詰問)하게 되자, 한 척의 배는 모면하려는 계책으로 뱃머리를 파버리매 물 속에 잠겨버렸고, 두 척의 배는 간 곳_! _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관원이 되어 이처럼 탐오하고 잔학한 짓 을 한 것을 신이 듣고보니 스스로 잠잠히 있을 수 없습니다.?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민생들의 고락은 오로지 수령(守令)들에게 달린 것인데, 조정에서 이미 어사(御史)를 보내어 적발하지도 않고 또한 부민 고소(部民告訴)도 못하게 하므로, 수령들의 탐오를 알아낼 길이 없다. 앞서 군신(群臣)들에게 널리 의논해 보았더니, 모두들 하는 말이, ?감사(監司)가 가리어 핵실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고을들이 허다하므로 감사의 견문(見聞)이 사세가 두루 미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대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듣게 되었겠는가? 마땅히 조관(朝官)을 보내어 추문(推問)하여 조사해야 한다.?하였다. 조지서가 진언(進言)하기를, ?봉공(奉公)21636) 하고 법을 지키며 무자(撫字)21637) 하느라 마음이 수고로운 사람을 보고는 오활(迂闊)21638) 하고 둔하다 하여 훼방하는 말이 날마다 들어오고, 많이 거두어 모으느라 백성의 힘을 긁어내고 공(公)을 핑계하여 사사일을 도모하는 자들을 보고는 민첩하고 유능하다 하여 칭찬하는 말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 버릇이 쌓이고 풍속이 되었는데도 그대로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6책 234권 12장 A면/ 【영인본】 11책 538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정론(政論) / *군사-관방(關防) / *군사-지방군(地方軍) / *사법-탄핵(彈劾)/ [註 21636]봉공(奉公) : 국가 일에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 ☞ / [註 21637]무자(撫字) : 백성을 돌보고 아끼는 것. ☞ / [註 21638]오활(迂闊) : 현실과 맞지 않음.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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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제16전투비행단, 9일 안전 최우수부대 표창...축하합니다.

  공군 제16전투비행단(空軍 第16戰鬪飛行團 "09年度 飛行事故防止 寄與한 飛行安全 最優秀部隊 選定) [記事] :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은 2010년 2월 9일 오전 2009년 공군 안전 최우수부대로 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예하 제216비행대대도 안전 우수대대표창을 받아 공군 최고의 안전 비행단 면모를 과시했다.

  안전 우수부대는 전국의 공군 부대를 대상으로 한 해 동안 안전사고 방지에 기여한 정도를 비행안전·지상! 안전·안전업무 세 분야로 평가해 선발한다.

  16전비는 비행안전과 지상안전 분야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등 전평가 분야에서 높은 득점을 기록해 안전 최우수부대의 영예를 안게 됐다.

  또한 16전비 216비행대대도 조종사·정비사·무장사 등 전후방 요원들의 체계적인 비행안전관리로 크고 작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안전 우수대대로 선정됐다.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조종사 길로 들어선 학생조종사들을 교육하는 16전비는 1976년 창단하여, 2009년에는 115비행대대가 7만 시간 무사고, 202비행대대가 2만 시간 무사고 비행시간을 기록하는 등 "무결점" 안전 비행단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이날 11시 16전비 기지대강당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이 외에도 제10전투비행단이 안전 우수부대로, 제6탐색구조비행단이 안전 우수 비행전대로, 17전비 152전투비행대대와 5전비 258전술공수비행대대가 안전 우수비행대대로 선정되어 각각 작전사령관 표창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16전비 202대대 전용희 소령(33·공사47기), 16전비 군수전대 석용호 소령(33·공사47기), 16전비 시설대대 박대상 대위(29·공사51기), 8전비 207대대 신병근 소령(37·공사4! 6기), 8전비 207대대 박찬영 대위(29·공사49기), 8전비 군수전대 배희원 _ 育_(31·사후110기) 등 6명이 참모총장 개인 표창 영예를 안았다.

  이계훈 공군참모총장(57·공사23기)은 이날 시상식에서 "안전은 성공적인 임무완수를 위한 선행조건이며, 편안할 때 위험을 미리 생각한다는 말이 있듯이 성과를 이룬 지금 한순간의 방심과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오늘 이룩한 성과에 자부심을 갖고,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16전비 216비행교육대대장 김용희 중령(40·공사39기)은 수상소감을 통해 "이번 안전 최우수부대 수상은 전장병이 나부터 실천하는 자세로 안전의식과 안전관리를 생활화하고 항상 진취적인 업무자세로 열심히 일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기본과 원칙을 준수하며 공군의 무사고 행진과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선진 정예 공군을 선도하는 초석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2-09 오후 3: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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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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