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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117:예천체육1
작성자장병창 @ 2010.02.21 06:47:00
  예천의 자랑(2117) : 예천체육사자료집(醴泉體育史資料集)(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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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에서 예천사상 최초로 <예천체육사자료집>을 발간한다고 하니 기쁩니다.


  제가 <예천군지>(1988년)의 체육분야 집필자로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예천 역사 이래 예천체육에 관한 내용의 발간이 전혀 없어서 예천군체육회, 경북체육회, 예천교육청 등을 동분서주 방문하여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예천체육사자료집>을 발간한다니까 도움을 드리려고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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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체육의 역사 자료집(醴泉郡, 醴泉體育의 歷史 資料集 發刊 推進) [記事] :

  경북 예천군은 예천 체육의 역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집을 발간하기로 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2010년 2월 5일 밝혔다.

  체육웅군으로 군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대외적으로 체육웅군으로서의 브랜드를 홍보하고자 예천 체육의 역사 자료집 발간을 추진한다.

  군에서는 일제시대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의 체육과 관련된 사진 등 희귀자료를 수집 중에 있으며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단체 및 군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라고 있다.

  수집 자료는 도민체전, 군민체전, 각종 체육대회 등에서 선수들이 활동했던 사진 자료 등 체육과 관련된 자료이며, 소장 자료를 군청 시책사업과나 읍·면사무소를 통해 기증 또는 대여해 주면 스캔 후 반환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예천 체육의 역사와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추진하는 예천 체육 역사 자료집에 소중한 자료가 빠지는 일이 없도록 군민 여러분께서 자료를 많이 기증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예천군은 1979년 세계 양궁선수권대회 5관왕을 이룩했던 김진호 선수를 비롯해 베이징올림픽을 제패한 윤옥희 선수를 배출하고 전국최고의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등이 활동하고 있는 양궁의 고장이다.

  기타 체육역사자료집 발간과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군청 시책사업과로 문의하면 된다.

  (노창길 記者 뉴시스 2010.02.0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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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천 체육사



  체육(體育) [記事] :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大昌高 學生課長)의 예천군 체육에 대한 기사로, 예천군(郡守 孫鍾秀)에서 1988년에 발행한 <예천군지(醴泉郡誌)> 535-575쪽(41쪽 분량)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한국의 체육, 2) 광복 전의 예천 체육, 3) 광복 후의 예천 체육, 4) 도 대회에서의 예천군 전적, 5) 경기 종목별 전적, 6) 예천군의 체육 시설이다.


  예천 체육(醴泉體育) [體育] : 【光復 前】 : 예천군에서는 격구(擊毬)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하키와 비슷한 경기로서 공은 가느다란 새끼를 똘똘 말아서 만들고, 스틱은 나무로 각자가 다듬어서 사용하였으니, 각양각색이었다. 더욱이 산에 땔나무를 하러가서, 휴식 시간에 편을 갈라 새끼공과 지게작대기로 경기를 하였다.

  1921년에 현대식 스포츠인 축구와 정구가 예천읍에 최초로 유입되었다. 당시는 정구의 라켓을 구하지 못아여 송판으로 라켓 모양을 다듬어 썼다고 한다.

  더욱이 육상에 있어서는 인근 군에서는 예천읍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였고, 씨름에 있어서도 장사들이 많아 그야 말로 체육의 군으로 발전하여 갔다.

  예천읍에서도 전국 자전거경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도 대회(道大會) 수준의 축구, 정구, 씨름, 육상 등의 경기 대회를 열었다.

  특히 예천군의 축구인들은 자전거로 안동은 물론 충북 단양에까지 원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즈음부터 야구가 예천읍에서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일본인들만이 하였다. 그러나 점차 예천읍 출신 청소년들도 이 야구에 열중하여 순전히 예천읍 출신 팀만도 2개 팀으로 발전되었다. 더욱이 1940년에는 예천군내 직장 단체의 야구 팀이 15개 팀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인들은 야구가 미국에서 들어온 적성 종목(敵性種目)이라 하여 금지시키고, 그 대신 전시 체육(戰時體育)이라 하여 군인이나 경찰관만이 하던 총검술을 강행시켰다.

  【光復 後】: 광복(1945)이 되자, 이의 축하로 예천군에서도 축구, 연식 정구, 씨름 등의 종목으로 전국 대회를 수 년 동안 개최하였다.

  이 때 배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운동 종목이 예천읍에 들어왔다. 그러나 체육회 등의 조직이 이루어지지 않고 각 기관이나 친목 단체 또는 사회 단체에서 운동 경기를 주최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천읍에서 경기 대회를 개최할 때나 다른 지방의 초청이 와서 원정을 갈 때마다 예천군민들의 모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였다.

  근년에 준공된 공설운동장은 온군민들의 오락장이며, 지방 체육 향상의 기틀이 되고 있다.

  또한 남산의 활쏘기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수련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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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체육 [記事] : 제1절 연혁과 현황/ 1. 연혁 : 예천의 체육활동은 우리나라 근대체육의 발전과 과정과 그 흐름을 같이 하였으리라 보여진다. 다만 산성이 많은 지리적 여건으로 병사들의 무예로 궁술(弓術), 검술(劍術), 격구(擊毬) 등이 일찍이 예천에 전승되어 왔을 것이다. 격구는 오늘날 하키와 비슷한 경기로서 공은 가느다란 새끼를 똘똘 말아서 만들고, 스틱은 나무로 각자가 다듬어서 사용하여 각양각색이었다. 산에 땔나무하러 가서 휴식시간에 편을 갈라 새끼공과 지게작대기로 경기를 하기도 하였다. 1922년 경 현대식 스포츠인 축구와 정구가 예천군에 최초로 유입되었다. 정구의 라켓을 구하지 못하여 송판으로 라켓 모양을 다듬어 썼다고 전해진다. 당시 예천군의 육상 실력은 매우 뛰어나 인근 지역에서 예천군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였고, 씨름에 있어서도 장사들이 많아 그야말로 체육의 고장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예천에서는 전국자전거경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도대회 수준의 축구, 정구, 씨름, 육상 등의 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야구 역시 이 시기 예천군에 유입되었다. 초기 야구는 일본인들만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차츰 예천의 청소년들이 야구를 하면서 예천 출신만으로 이루어진 야구팀이 2개로까지 발전하였다. 더욱이 1940년에는 예천군내 직장단체의 야구팀이 15개 팀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일본인들이 야구를 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금지시키고, 대신 전시체육이라 하여 군인이나 경찰관들이 하던 총검술을 강행시켰다.

  1945년 해방을 축하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체육대회가 열렸고, 예천군에서도 축구, 씨름 등의 종목으로 전국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때 배구를 비롯한 다양한 종목들이 예천군에 들어왔다. 당시 체육회 등의 조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각 기관이나 친목단체, 사회단체 등에서 배구 등을 주최할 뿐이었다. 1953년 예천지역의 체육 발전을 위하여 뜻있는 체육인들이 단합하여 예천군체육회를 발족하게 된다. 1956년 예천초등학교에서 제1회 예천군민체육대회를 성대히 개최하여 예천지역의 체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축구, 정구를 제외한 배구, 농구, 럭비와 탁구, 복싱 등은 모두 1950년대 이후에 예천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시작하여 각종 대회에 우승하면서 예천에 정착한 것을, 이 중 배구는 1960년대 남자 일반부가 경상도 대표팀이 되기도 하는 실력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수영, 필드하키 등은 1970년대 들어서 예천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예천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종목은 양궁이다. 양궁은 예천에 다른 종목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1973년에 들어왔다. 예천여자중학교에서 양궁부를 창단하였는데, 이는 당시 장기오 교장이 국궁의 고장인 예천에서 양궁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1973년 양궁부 창단 이후 예천의 양궁부는 올림픽과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석권하면서 예천은 명실공히 양궁의 메카로 자리잡았다.

  2. 현황 : 초기 체육시설은 학교운동장, 공터, 마을 뒷동산이 주된 공간이었으나, 1968년 5천여 평의 공설운동장 완공으로 예천군민도 경기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학생들의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학생체육관이 1976년에 586평 건물로 완공되었다. 이곳에서 실내경기인 농구, 배구, 헨드볼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1979년에는 국내 최초로 예천진호국제양궁경기장을 세우고, 양궁 발전과 보급에 앞장서게 된다. 1980년대 이후 예천문화체육센터가 설립되어 군민들의 체육활동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사설 체육시설로는 볼링장, 테니스장, 에어로빅장, 골프장 등이 예천읍을 비롯한 군내에 설립되어 있다. 사설 체육시설은 그 목적상 예천읍에 밀집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도에 따라서 체육시설이 없어지거나 새로 신설되는 등 변동이 심한 것으로 보인다. 볼링장의 경우 2002년까지 예천읍에 두 군데 있어 여러 차례 볼링대회를 개회하였지만, 현재는 예천군내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2003년도 체육시설 현황은 체육도장 9곳, 테니스장 2곳, 골프연습장 2곳, 체력단련장 3곳, 에어로빅장 3곳, 당구장 22곳이다.

   제2절 양궁의 고장 예천/ 1. 한국양궁의 역사 : ...예천에 양궁이 들어온 시기는 1973년 비교적 늦은 시기에 유입되었다. 예천에서는 조선 초기에 예천읍 서본리에서 향사당(鄕射堂)이 세워져 활쏘는 기술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활인 국궁은 예천지역이 그 명산지일 뿐 아니라 일찍이 이곳에서는 활쏘는 기술을 가르쳤고, 1934년경에 예천읍 대심동에 무학정(武學亭)이라는 사정(射亭)을 세우고, 사장 황병택(黃秉澤), 총무 이정백(李正伯) 등이 맡아오다가 1961년 6월 예천읍 납본리 남산공원으로 이건하여 회장 한태섭(韓泰燮), 부회장 황주용(黃周龍), 총무 박승훈(朴勝勳) 등이 예천국궁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국궁의 영향은 비료적 늦게 받아들인 예천의 양궁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최초 세계대회를 석권한 김진호 선수를 비롯해 김수녕, 장용호 선수 등 굵직한 양궁선수들이 바로 예천여중고나 예천군청 출신이다.

  2. 예천의 양궁 : 이는 1973년 예천여자중학교에 양궁부를 창단하면서 시작되었다. 국궁의 고장인 이곳이 양궁으로서 발전 가능성을 파악한 당시 교장 장기오는 양궁부를 창단하였는데, 이후 1975년 1월에는 예천여자중학교의 병설교인 예천여자고등학교에서도 양궁부가 창단되었다. 1979년 3월에 예천중학교, 1980년 3월에 예천동부초등학교, 1981년 12월에 예천국민학교에 각각 양궁부가 창단되었다. 1983년 3월 17일에 경북 국궁과 양궁 분리사업의 일환으로 국궁과 양궁은 분리되고, 경북양궁협회가 발족한다. 동년 3월 21일에는 협회 산하 예천군청 소속 8명으로 구성된 남녀 실업팀이 창단되었다. 1983년 12월 초순 경북도와 경북체육회의 협조로 예천군청 남녀 실업팀을 재구성하고, 안동대학교 여자팀 창단을 완료하였다. 예천 출신 선수로는 먼저 1979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던 신궁(神宮) 김진호가 있다. 그동안 100여 명의 선수가 활약한 예천양궁선수단은 양승현, 김성남, 한희정 등 10여 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하였으며 각종 국제 및 국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300여 회의 입상과 각종 훈포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히 2000년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제27회 하계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팀 소속 장용호, 김수녕 선수가 남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김수녕 선수는 개인 동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우리 지역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양궁경기를 세계적인 대회로 훌륭히 처내냄으로써 예천이 세계양궁의 메카로서 위상을 높이고 아울러 역량과 성장 잠재력을 재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예천 양궁팀 수상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83.4 남ㆍ여 양궁선수단 창단, 1983.4 제17회 전국 종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 2위, 1984.10 제65회 전국체전 남자단체 2위, 개인종합 1위(양승현), 1985.4 제19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2위, 개인 1위(양승현), 1985.8 전국대학실업대회 남자단체 1위, 1985.10 제66회 전국체전 남자단체 1위, 개인종합 1위(호진수), 1987.10 제68회 전국체전 여자단체 1위, 개인종합 2위(양경순), 1989.10 제6회 아시안컵양궁대회 남자단체 2위(양승현, 김성남), 1991.3 제25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2위, 개인종합 1위(최재동), 1994.3 제28회 종별선수권대회 여자단체 1위, 개인종합 1위(한희정), 1999.4 제33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2위, 개인종합 1위(장용호), 1999.6 유럽그랑프리국제대회 개인, 단체2관왕(장용호), 2000.3 제34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1위, 개인종합 1위(김수녕), 2000.8 유럽그랑프리국제대회 남ㆍ여단체 1위(장용호, 김수녕), 개인종합 1위(김수녕), 2000.9 제27회 시드니올림픽 남ㆍ여단체 1위(장용호, 김수녕), 2001.2 대한양궁협회 선정 최우수단체상 수상, 경북체육회선정 우수단체상 수상, 2001.3 제38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1위, 개인종합 1위(장용호), 2001.8 제18회 회장기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개인종합 1위(김성남), 2002.7 제19회 회장기 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남자단체 1위, 개인종합(김석관)(단체4강 경기에서 261점으로 세계신기록 수립), 2002.8 제13회 실업연맹회장기 전국양궁대회 단체 1위, 2002.11 제34회종합선수권대회 남자단체 1위, 2003.2 2003동경실내양궁대회 개인종합 1위(장용호) 2위(최남옥), 2003.3 제37회 종별선수권대회 남자단체 1위, 2004.1 2004서울국제실내양궁대회 개인종합 1위(장용호), 2004.8 제28회 아테네올림픽 남자단체 1위(장용호), 2004.9 제21회 회장기 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남자단체 1위,

  제3절 체육단체 및 체육시설/ 1. 체육단체/ 1) 예천군체육회 : 이는 1950년대초 창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1년 3월 석용길 회장이 초대 최장으로 체육회를 1년여 이끈 후 지금까지 31대 회장단이 예천군체육회를 이끌어 왔다. 체육회 설립 이후 석용길, 현동범, 이남기, 남문희, 손정목, 김익진, 강복련, 박돈양, 박준무, 김한엽, 권태용, 김창곤, 박성하, 하만정, 김종록, 이병희 회장이 75년 9월까지 체육회를 이끌었고, 이후에는 상임부회장과 사무국장도 두는 등 본젹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1975년 이후 회장단은 한정석, 조영찬, 이문환, 김석종, 조용수, 박응규, 손종수, 김대호, 이상화, 유원모, 이경락, 권상국, 김수남 회장으로 이어져 왔고, 상임부회장은 김기수, 박상만, 권광남, 정휘락, 황병진, 사무국장은 이병탁, 권광남, 조재훈, 김주석 씨 등으로 이어져 왔다. 예천군체육회는 1956년 제1회 군민체육대회를 연 이후 매년 군민체육대회를 열어 군민의 화합을 이뤄왔고, 도민체육대회에도 빠짐없이 참가, 군부에서 종합 1위 9차례, 2위 12차례, 3위 5차례 입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뒀다.

  2) 경북양궁협회 : 경북 양궁은 대구직할시와 경북이 분리되기 이전인 1972년부터 1981년까지는 경북궁도협회서 운영 관리애 왔다. 그 후 1983년 2월 25일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국궁과 양궁을 분리키로 했고, 1983년 3월 17일 대의원총회에서 정식 분리 결정됐다.

  경북은 당시 예천군수였던 조용수가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임원진을 구성하고 경북체육회의 인준을 받았다. 그 후 2대 박응규(1985), 3대 손종수(1986-1988) 등 예천군수가 쭉 회장을 맡아오다 1989년 관선회장이 민간인 회장선출내규에 따라 현 회장인 이병탁(고려산업 대표)이 맡아 지금까지 경북 양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경북양궁협회는 1996년 광주양궁협회와 영호남 정기 양궁교류전을 갖기로 협의, 격년제로 번갈아 대회를 하고 있다. 또한 예천군청에 실업팀을 창단, 김수녕 선수, 장용호 선수 등 우수선수를 영입했다. 1996년부터 한국중고양궁명맹을 예천으로 유치, 초중등부 양궁 저변 확대에 적극 노력했다. 경북양궁협회는 현재 정만택 등 공인심판 15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경기지도자 연수원에도 김해지 등 10명이 수료해 후진들을 지도하고 있다.

  3) 생활체육협의회 : 88올림픽 이후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단체가 바로 경북생활체육협의회이다. 생활체육협의회는 엘리트체육을 담당하는 경북체육회와는 달리 도민들의 사회체육 활성화를 이끄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1990년 7월 경북에는 시군생활체육협의회가 결성되었고, 9월에는 경북생활체육협의회와 종목별 연합회가 만들어졌다. 예천군의 생활체육협의회 역시 이 시기 창단되었다. 예천군의 생활체육 참여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를 실시하고 노인ㆍ주부들을 위한 게이트볼 보급 지원사업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생활체육지도자 강습회, 생활체육 자원봉사단 운영 등이 있다. 이외 배드민턴, 족구, 탁구, 보디빌딩, 볼링 등 전군민들이 생활체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 체육시설/ 1) 공설운동장 : 예천읍 동본리 87번지 소재, 연혁 및 현황은 1968년 12월에 착공하여 1971년 10월 5일 준공하였다. 부지면적 44,588㎡ 건축면적 4,094㎡의 지상 2층 건물이다. 경기장 면적은 26,122㎡로 최대 만 명까지 수용 가능하며 주차 수용 능력은 승용차 기준 150대가 가능하다. 부대시설로는 관리사무실, 창고, 대기실(2), 탈의실(2), 화장실(4), 샤워실(2), 방송실, 기록실, 기자실, 기계실, 임원실 등 17개이다. 예천군의 각종 체육행사 및 육상 전지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4년도 공설운동장 이용 현황은 다음과 같다. 체육행사(1회/1일 10,000명, 전지훈련(7회/144일, 1,435명, 일반행사(14회/35일 2,150명, 계(22회/180일 13,585명)이다.

  2) 학생체육관 : 동본리 428-2번지 소재, 연혁 및 시설현황은 학교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의 밑뿌리가 된다는 생각 아래 학생체육의 기반을 조성하여 체육의 저변을 확대하고, 체력과 경기력을 향상시켜 향토와 국가를 빛낼 우수 선수 육성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당시 경상북도 체육위원회에서 초중고 폐품을 수집하고 이삭줍기를 하여 얻은 성금을 기금으로 하여 1976년 8월 28일 본관 386평을 착공하여 12월 31일 완공하였다. 부속건물 42평은 1977년 6월 19일에 완공하였다. 부지 14,442평, 건평 322평, 수용인원 1,900명이다. 농구, 배구, 탁구, 핸드볼의 실내경기가 가능하다.

  3) 예천진호국제양궁장 : 예천읍 청복리 150번지 일원 소재, 연혁 및 시설 현황은 1979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석권한 예천여고 출신 짐진호 선수를 기념하고, 양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세운 곳이다. 전용 양궁장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곳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1980년 2월 국비 6천만 원으로 예천읍 동본리 484번지에 진호궁도장을 건설하였다. 이후 진호궁도장을 폐쇄하고 청복2리 현재 경기장을 사업비 41억 5천만 원을 들여 1996년 8월에 준공하였다. 부지면적 79,969㎡, 양궁경기장 49,850㎡(주경기장 39,950㎡, 결선경기장 9,900㎡), 본부석 312㎡, 관람석 890㎡, 선수숙소 274㎡, 화장실 115㎡이다. 수용 인원은 3,000명이며, 주차 수용 능력은 승용차 136대, 버스 8대, 장애인 6대가 가능하다. 방송실 등을 포함한 7개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각종 양궁대회, 양궁체험학습, 양궁전지훈련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기념물이나 군민의 양궁장으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양궁대회 개최 및 국제양궁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그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뛰어난 곳임을 자랑하고 있다. 경기장 준공 직후 제76회 전국체전을 이곳에서 치렀고, 그 후 연간 전국대회 7-8회, 도내 대회 5회를 열어 연 5천여 명이 경기장을 사용했다. 2003년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제22회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양궁경기를 개최하였다. 북한을 비롯한 28개국 152명의 선수와 150여 명의 임원과 수많은 세계 각국의 응원단과 관람객이 참석하여 성공적인 대회로 예천 양궁의 이미지를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2004년 양궁장 이용 현황은 다음과 같다. 체육행사(10회/36일, 22,337명), 전지훈련(46회/147일, 3,187명), 일반행사(50회/52일, 4,576명), 계(106회/235일, 30,100명)이다.

  4) 예천군문화체육센터 : 예천읍 청복리 150번지 예천진호국제양궁장 내에 소재, 연혁 및 시설 현황은 부지 8,100㎡(2,450평), 건축면적 1,698㎡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다. 사업비 38억 5천만 원을 들여 2001년 11월 30일에 준공하였다. 1층에는 다목적 경기장 외 10개의 다양한 체육실이 있으며, 2층에는 관중석, 상담실, 방송실 등이 있다. 수용 인원 1,500명(실내 700명, 실외 800명)이며, 주차장은 양궁장과 공용으로 사용한다. 부대시설로는 현수막, 모형막, 스크린보호막, 무대장치판낼 등이 있으며, 방송시설이 갖춰져 있다. 헬스장에는 27종 35점의 다양한 운동기구가 있다.

   5) 한천체육공원 : 1992년 2월 조성된 이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체육 저변화 및 휴식공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예천교를 따라 주차장과 산책로(散策路)를 마련하여 강변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건강 증진과 휴식공간으로 활용되던 한천체육공원은 현재 야외공영장을 비롯 다양한 시설물을 추가로 설치, 산책로를 연장하는 등의 2차 조성작업을 하고 있다. 2007년말까지 총사업비 43억 7천6백만 원을 들여 예천교 하류에서부터 대왕보까지 1,147m 구간에 대하여 40-60m의 폭으로 체육공원을 조성한다. 이곳이 마무리되면 공원내에 야외광장과 청소년놀이마당, 어린이놀이터, 게이트볼장, 산책로, 지압도보, 주차장, 놀이시설, 수대, 파고라 등의 시설 외에 생태단지와 잔디공원도 조성해 군민들의 문화, 휴식, 체육 등 종합적인 공간으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 소림사 무승문무학교 한국본원 : 중국 정통무예의 도장으로 명성이 나있는 소림무예의 저변 확산을 위한 소림사 무승문무학교 한국본원이 예천군 호명면 구 한알중고등학교 폐교 부지에 들어설 전망이다. 서울에서 동양문화신문과 동양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설립자 연규정(57세) 씨 외 1명은 폐교가 된 한알중고등학교를 5년간 임차 계약한 후 중국 소림무승문무학교 교장인 석영제(41세) 씨와 협의해 소림학교의 한국본원을 개교키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석영제 중국 소림학교 교장이 지난 달 8일부터 15일까지 예천을 방문해 폐교 부지와 주변 입지 여건을 검토한 뒤 김수남 예천군수를 방문해 지역에 들어서는 무술학교에 대해 많은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소림사 무술문무학교는 오는 4월 개교 예정으로 건물 주변 정지와 훼손 부분 보수와 도색 등을 완료하였으며, 3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숙직 시설과 목욕 시설을 설치 준비 중에 있다. 설립자측에 따르면 앞으로 인터넷과 방송 매체를 활용하여 전국을 대상으로 소림무술에 관심이 있는 희만자를 300명 정도 모집해 4월에 문을 열 계획으로 있으며, 운영 중인 신문사와 여행사 일부 시설도 이전 예정이며, 개교 후에는 지리산 청학동의 김봉곤 예절학교 훈장을 초청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절교육을 실시하고 건물 공간을 활용해 그림과 서예, 도자기 등의 체험학습장으로 운영할 계획으로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술학교가 개교되면 외지 인구 유입은 물론 전통무술을 배우는 지역 명소로서도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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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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