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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156:예천체육38(附예천방문597)
예천의 자랑(2156) : 醴泉體育史資料集(38)(附 예천방문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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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중학교(慶北少年體典 洋弓 南中部 席捲) [記事] :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2009년 경북소년체육대회 양궁 남중부 경기에서 예천중 양궁부가 단체전 및 개인전을 석권했다. 200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동안 열린 이번 대회에서 예천중 양궁부는 단체전 1위를 차지했다. 개인전에서도 김락원(2년), 이승규(2년),장정민(3년) 선수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하며 예천양궁의 위상을 높였다. 예천중 양궁부는 그동안 야간훈련 때 식사비 마련이 어려울 만큼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전지훈련조차 엄두를 못낼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 기쁨도 남다르다. 이같은 성과는 오로지 김대현 교장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피나는 훈련으로 거둔 쾌거로 알려지고 있다. 야간훈련 때 어린 제자들을 위해 석미영(41) 코치는 저녁밥을 직접 짓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는 제자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믿음직하다는 곽달용 감독은 한편으로 먹거리조차 마음껏 대줄 수 없는 현실에 제자들보기가 늘 미안하단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사선에 서면 늘 호랑이 선생님이 되는 곽 감독과 석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는 어린 제자들에게 양궁 최강자의 꿈을 키워주기에 충분하며,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대현 교장은 ꡒ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꿋꿋이 이겨나가는 양궁부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 뿐ꡓ이라며 ꡒ학부모회와 동문 선배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다면 어린 선수들이 나라를 빛내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ꡓ고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醴泉新聞 2009년 04월 02일 16:21:17)
예천중학교("後輩들아, 맘놓고 꿈을 向해 활시위를 당겨라" : 醴泉中 洋弓 發展을 爲한 約定 締結, 世界的 洋弓選手 成長 밑거름될 듯) [記事] :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후배들의 꿈을 향한 도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선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화제다. 2009년 7월 13일 예천중학교에 예천중양궁후원회 박영서 회장, (주)경한코리아 이상연 회장, 송재철 재경예천중총동창회장, 우석구 봉화교육장 및 후원회 관계자가 방문했다. 예천중 양궁 발전을 위한 약정체결식을 가지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최명환 예천교육장, 김대현 예천중교장, 학부모 및 양궁선수 등이 함께 했다. 이날 예천중양궁후원회 박영서 회장은 예천중 출신 동문들을 대상으로 1인 1구좌(10만원) 운동을 펼쳐 6천만 원의 예산을 확보할 계획을 밝혔으며, 매년 1천2백만 원 정도를 양궁부 후배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정했다. 또한 (주)경한코리아 이상연 회장도 매년 1천2백만 원을 5년 동안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박영서 후원회장은 인사말에서 ꡒ김대현 교장으로부터 양궁부가 예산부족으로 훈련에 애를 먹는다는 설명을 들었다ꡓ며 ꡒ후배들이 세계적인 양궁선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ꡓ고 말했다. 이상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ꡒ자랑스런 후배들이 우리들의 고향 예천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궁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겠다ꡓ며 ꡒ양궁의 고장인 예천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자신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찾고 동시에 예천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기 바란다ꡓ고 당부했다. 송재철 재경예천중총동창회장은 축사에서 ꡒ먼저 어려운 시기에 거금을 선뜻 후배들의 양궁발전을 위해 기탁한 이상연 회장의 선행에 깊이 감사드린다ꡓ며 ꡒ선배들의 이 같은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해 세계적인 양궁선수로 성장하길 희망한다ꡓ고 말했다. 이어 선수, 학부모와 후원회 선배들과 상견례가 있었으며, 새로운 결의와 함께 기념촬영을 마쳤다. 이날 매년 1천2백만 원씩, 5년 간 총 6천만 원의 후원금을 예천중학교 양궁부에 기탁하기로 약속한 이상연 회장은 호명면 금릉리 태생으로 예천중(14회), 대창고(13회)를 졸업했다. 현재 경남 창원시에서 (주)경한코리아․(주)경한타일랜드․(주)경한 인더스트리 등 3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또한 재경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과 재경남 예천향우회 고문, 전국2․5․8총동기회장을 맡아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한국중소기업이업종교류연합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6년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6년 세계적 마케팅 학술대회에서 ꡐ글로벌마케팅 파이오니아상ꡑ을 수상, 2007년 모범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돼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8년 납세자의 날에는 기획재정부장관으로부터 모범 납세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예천중양궁부후원회는 2009년 6월 29일 발족했으며, 다년간 양궁부 훈련비, 대회출전비, 장비구입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예천중양궁부후원회 ▲회장 박영서(13회) △부회장 송재철(14회) △감사 박찬중(15회) △간사 김오현 ▲자문위원 변우량 이순일 장두섭 장명석 김두호 △운영위원 김광옥 고규환 김학길 이원교 윤우상 김선도 권택종 최상덕 박영서 송재철 이상연 박찬중(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7월 16일 14: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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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學校 洋弓部 全國 團體戰 1位! 結果는 努力한 만큼 이뤄진다는 自信感 갖게 됐다) [記事] : 예천초등학교 양궁부는 제5회 경상북도 도지사기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남자초등학교부 단체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2008년 5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 개최된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 남자초등학교부 단체전에 출전한 예천초등학교 6학년 김창근, 임성호 선수와 5학년 송창협, 김상영 선수 4명 1개조가 단체전 1위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김창영 선수는 30m부분 2위와 20m부분 3위를 차지해 남자초등학교 부분 개인 종합 2위에 올랐다. 이날 예천초등학교 양궁부 양은영 코치는 어린 선수들을 우수하게 지도한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양궁협회로부터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지도교사인 윤종구 감독은 최우수 감독상을 함께 수상했다. 양은영 코치는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훈련에 몰두한 것(본지 보도 5월 5일, ''''양궁수도 예천의 미래는 밝다!'''' 참조)이 내심 마음에 걸리기도 했는데, 결국 좋은 성적을 거두게 돼, 어린 선수들이 결과는 노력한 만큼 이뤄진다는 교훈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오는 31일에 개최돼는 전국 소년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김창근 어린이는 14일부터 현지적응 전지훈련을 떠난다."고 했다. 김창근 선수는 현재 양궁부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차분한 성격을 소유하고, 일반 선수 못지않은 높은 집중력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평소 훈련과 경기에 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산과 경주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4인 1조로 엔트리를 구성하고 경상북도를 대표해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하게 된다. 양 코치는 또한 "학생들의 기량은 대동소이하다."고 밝히고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라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주변 영향에 기량과 점수가 많이 좌우된다."면서 "무엇보다도 기본자세에 충실하는 교육훈련에 중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도교사인 윤종구 감독은 지난 5일 어린이날 예천초등학교 양궁부에 대한 보도에 감사하다며, "이에 대한 자신감으로 어린 선수들이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서 "다시 한번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본지에 전해왔다.(김용호 記者 UGN 慶北뉴스 2008-05-13 오후 5:09:23)
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 洋弓部 第20回 會長旗 全國初等學校 男女洋弓大會 男子團體 2位..) [記事] : 예천초등학교 양궁부는 제20회 회장기 전국초등학교 남녀양궁대회(2008년8월24~26일, 강원도 원주양궁장)에 참가하여 남자단체 은메달을 획득하여 양궁의 고장 예천을 전국에 알리고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 예천초등학교 양궁팀(감독 윤종구, 코치 양은영) 소속 임성호(6학년), 김창근(6학년), 송창협(5학년), 김동일(4학년) 군 등 4명이 단체 2위로 입상하여 제1회 스포츠토토배(9월27일~29일, 예천국제진호양궁장)에서 우승을 목표로 훈련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8-09-03 오전 9:40:04)
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 洋弓部 좋은 成績 올려) [記事] : 2008년 11월 2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끝난 제45회 경상북도 학생체육대회 양궁 남초부 경기에서 예천초등 양궁부가 단체전 및 개인전을 석권했다. 예천초등 양궁부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개인전에서는 송창협(5) 선수가 30m, 20m, 개인종합 등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송 선수는 남초부 30m, 개인종합에서 경북신기록을 달성해 활의 고장 예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예천초등 양궁부는 황찬호 교장, 학부모, 총동창회의 적극적인 지원들 아래 윤홍구 감독과 양은영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가 더해져 전국 초등부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醴泉新聞 2008.11.13)
예천초등학교 [記事] :▲예천초, 회장기초등양궁 단체 銀...축하합니다./ 예천초등학교 [記事] : 예천초등학교가 제21회 회장기 전국초등학교양궁대회에서 남자부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예천초등학교는 2009년 8월 17일 강원도 원주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남자부 단체전에서 종합집계 결과, 4천79점)으로 2위를 차지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9.8.18)
예천초등학교 총동창회(醴泉初等 總同門會의 아름다운 後輩 사랑!) [記事] : 예천초등학교 총동문회(회장 권광남)는 2008년 9월 30일 오후 4시 황찬호 교장, 예천초등 양궁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궁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권광남 회장은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 주기 위해 선배들이 노력하고 있다" 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우수한 선수가 되어 지역의 큰 일꾼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醴泉인터넷放送 2008-09-30 오후 4: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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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협회 예천군지회(醴泉郡, 障碍人 洋弓選手團 組織 : 이달 中 基礎訓鍊 實施 後 選手 4名 選拔) [記事] : 양궁의 고장 예천군이 2007년 김천 장애인체전에 대비해 장애인 양궁선수단을 조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장애인들의 재활 의욕 고취는 물론 전국에 양궁의 고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천군은 휠체어와 스텐딩 각 2명씩 4명의 장애인 선수를 선발해 올림픽종목인 리커브 부분의 선수를 육성키로 하고 양궁장비구입 및 훈련비로 8천여만 원의 예산을 확보키로 했다. 이달 중에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양궁에 소질이나 관심이 있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양궁 체험을 실시한 뒤 1, 2차에 걸쳐 기초훈련을 하고 선수를 선발할 예정이다. 예천군의 경우 현재 군청 소속 남녀 양궁팀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데다, 현역 국가대표 선수도 3명이나 보유하고 있어, 장애인 양궁선수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 가능하다. 군은 훈련은 장애인협회 예천군지회에 위탁 관리토록 할 계획이다. 한편 예천군은 이번에 조직될 장애인 양궁선수 운영단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경우 스포츠를 통한 장애 극복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자신감과 재활 의욕 고취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장애인들의 재활프로그램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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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자 :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양궁을 시작하였다. 예천군청 양궁선수이다. 96년 종별선수권대회 개인 3위, 96년 중고연맹 개인 1위를 하였다.(야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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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인 : 예천읍 출신, 본관은 안동, 인간문화재 영록의 아들, 예천초(63회), 예천중 (27회), 대창고(26회),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동 대학원 졸업, 서울 창일중 체육부장 교사, 제80회 전국소년체전 양궁부 서울대표 총감독이다.(醴泉新聞 20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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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記事] : ...2008 베이징올림픽 남녀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2008년 12월 화촉을 올린 박경모와 박성현은2009년 2월 5일 한국양궁지도자협회 주최로 충북 괴산에서 열린 제23회 전국 실내양궁대회에 참석, `성(性) 대결''''을 벌였다. 비록 18m 짧은 거리에다 이벤트성 행사로 열린 경기였지만 국내 양궁 대회에서 남녀가 혼성팀을 이뤄 경기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흥미를 자아냈다. 박경모는 여자초등부 1위를 차지한 권현정(예천동부초) 양과, 박성현은 남자초등부에서 우승한 한재엽(병천초) 군과 각각 한 팀이 돼 시위를 당겼다. 박성현조는 박경모조와 대결에서 222-218로 승리했다. 이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과 경기를 치른 한재엽.권현정 선수는 "처음엔 긴장도 됐지만 재미가 있었다"며 "꼭 국가대표 선수가 돼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김남권 記者 聯合뉴스 2009.2.5, 강신욱 記者 뉴시스 2009.2.5)(張炳昌 註 : 권현정은 여초부 개인전에서 송정희를 109:106으로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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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길(金經佶) : 1983- , 1998년 7월 중고연맹 개인종합 3위ㆍ90m 1위ㆍ30m 3위ㆍ70m 3위, 2001년 2월 예천군청 양궁부 입단이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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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찬(김규찬, 洋弓 3冠王 올라) [記事] : 김규찬(예천중)이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부문에서 3관왕에 올랐다. 예천진호양궁장에서 열린 양궁경기에서 부별신기록 3개를 비롯해 대회신기록 17개, 대회타이기록 1개 등 무려 21개의 새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예천중 김규찬은 남중부 30m(706점)와 50m(654점), 개인종합(1360점) 등 3개 부문에서 모두 경북 부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 대회 3관왕에 올랐다.(이상환 記者 大邱新聞 2004-11-04 20:42:31)
김규찬(김규찬 洋弓 男中部 個人綜合 等 3冠王, 慶北學生體育大會) [記事] :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에서 신기록 21개가 쏟아졌다. 김규찬(예천중)은 2004년 11월 2~4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양궁 남중부 50m(654점)와 30m(706점), 개인종합 등 3개 부문에서 경북신기록 겸 부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남중부 단체전에서 예천중과 경북체중은 3천966점과 3천937점을 기록, 대회신기록(종전 3천874점)을 경신하며 1, 2위를 차지했다.(每日新聞 2004년 11월 05일)
김규찬(亦是 醴泉 洋弓 最高) [記事] : 예천중학교 양궁부 소속 선수가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경기에서 3개 부문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올려 양궁의 메카인 예천군의 자존심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예천중학교 2학년 김규찬 군, 김군은 2004년 11월 2일~4일까지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된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경기에서 남중부 50m(654점)와 30m(706점), 개인종합 등 3개 부문에서 경북신기록 겸 부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김군은 예천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양궁을 시작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만교 코치(예천중 양궁부)는, "평소 규찬이는 연습이나 동료 선수들과의 합숙 훈련 등에서 항상 모범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 이대로 실력을 유지하면 앞으로 대성할 선수"라고 김군을 극찬했다. 한편 김군은 양궁을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며 오늘날 예천 양궁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도록 이끌어 온 장본인인 이병탁 회장(경북양궁협회)의 손자로 알려져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정차모 醴泉인터넷뉴스 2004-11-05 오후 5:22:43)
김규찬(김규찬 君 大統領旗 全國市道對抗 洋弓大會 金메달) [記事] : 경북체고 2년 김규찬(부: 김윤희) 군이 2007년 6월 19일부터 원주에서 열린 제25회 대통령기 전국 시도대항 양궁대회에서 개인종합 금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군은 예천초등 4학년 때 외할아버지인 이병탁 경북양궁협회장의 권유로 양궁에 입문, 장래 국가대표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군은 예천초등, 예천중학교를 졸업했다.(醴泉新聞 2007년 06월 28일 14: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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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일(초딩 弓師에 밀린 첫 발… ‘어라? 장난 아닌데!’) [記事] : 1엔드에서 초등부 챔피언에게 밀린 주현정(28·현대모비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첫 발에서 초등학생에게 8-9로 뒤진 이창환(28·두산중공업)도 멋쩍게 웃었다. 이창환과 주현정은 2009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세계 최고 궁사. 하지만 세계챔피언이라고 해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과 맞붙은 낯선 실내 양궁경기. 게다가 TV로 생중계까지 된 상황이었다. 2010년 2월 4일 충북 괴산 문화체육센터에서는 흥미로운 양궁 대결이 벌어졌다. 국가대표와 초등부 챔피언이 혼성팀을 이뤄 맞붙는 이벤트 대회. 주현정은 김동일(예천초 5년), 이창환은 이보영(홍주초 5년)과 같은 편이 됐다. 세계챔피언은 이겨야 본전이고, 초등학생은 져도 잃을 게 없었다. 결국 처음엔 국가대표가 흔들렸다. 주현정은 1엔드 세 발을 모두 9점에 쏴 27점. 반면 이보영은 세 발을 모두 10점으로 30점을 기록했다. 순간 주현정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흘렀다. 이보영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한 모습에서 대견함과 쑥쓰러움이 묻어났다. 이창환도 초반에 주춤했다. 1엔드 첫 발로 김동일이 9점에 꽂았지만 이창환은 8점. 이창환도 웃고 말았다. 이후 이창환은 김동일이 9점 2발을 쏠 때 2연속 10점을 쏘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실내 양궁은 실외(70m)보다 짧은 거리(18m)에서 이뤄지고 표적지도 작아 변수가 많다. 결과는 173점을 합작한 이창환(87점)-이보영(86점)조의 승리. 주현정(86점)-김동일(83점)조는 169점에 그쳤다. 이보영은 주현정과 같은 점수를 쏴 양궁 관계자들을 놀래켰다. 주현정과 이창환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초등생 후배들을 번갈아 안아줬다. 잔뜩 긴장했던 이보영, 김동일도 그제서야 살포시 웃었다. 주현정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고, 이창환은 “끌려다니지 말고 즐기면서 해야 한다”며 격려했다.(김세훈 記者 京鄕新聞 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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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洋弓 김석관, 男子 一般部 優勝) [TV放送] : 예천군청의 김석관이 회장기 대학실업양궁대회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석관은 부산 강서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일반부 개인전 결승에서 부산서구청의 전병영을 113대 109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남자대학부 결승에서는 한일장신대학의 백병규가 우승했습니다.([스포츠] 송재혁 記者 입력 시간 : 2002.07.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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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金成男) : 1970- , 예천군청 양궁팀 남자선수단원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양궁을 시작하였다. 1988년 4월 제22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 1위ㆍ단체 3위, 1988년 8월 제5회 회장기 대학실업대회 단체 1위, 1989년 10월 제6회 아시안컵양궁대회 단체 2위ㆍ50m 1위, 1990년 12월 체육포장 수상, 1994년 12월 국민훈장 백마장 수상, 동년 12월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입단, 1995년 3월 제29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1위, 1997년 3월 제29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1위, 1997년 3월 제31회 전국선수권대회 개인종합 2위, 1998년 9월 제79회 전국체전 70m 1위, 1999년 6월 제17회 대통령기 단체 1위ㆍ70m 3위, 2000년 6월 제18회 대통령기 단체 1위ㆍ90m 1위, 2001년 6월 유럽 그랑프리국제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 터어키 세계대회 단체 2위, 실버에로우대회 개인 1위, 단체 1위를 하였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야후 2002)
김성남(實業洋弓- 김성남, 30m 非公認 世界新) [記事] : 김성남(35.예천군청)이 제16회 한국실업양궁연맹회장기대회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실업 17년차인 김성남은 2005년 7월 10일 대전의 한국토지공사 토지연구원에서 열린 남자부 개인전 예선 30m 경기에서 36발을 모두 10점 과녁에 맞쳐 360점 만점으로 세계기록을 세웠다. 종전 30m 기록도 360점이었으나 10점 과녁 안에 다시 원을 만든 엑스텐(X-10)이 17개로, 김성남은 이날 X-10을 22개나 기록해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최태용 記者 聯合뉴스 2005.7.10 (일) 18:44)
김성남(김성남․최남옥, 男女部 1位) [뉴스 9] : ◉ 성세정 앵커 : 원주에서 끝난 시드니 올림픽 양궁대표 2차 선발전에서 예천군청의 김성남과 경주여고의 최남옥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종합 1위에 올랐습니다. 여자부의 김수녕은 2위, 김경옥은 7위를 차지해 3차전 진출 자격을 얻었으나 방콕 아시안 게임 2관왕 김조순은 탈락했습니다.([스포츠] 입력 시간 : 2000.04.12 (21:00))
김성남 [記事] : 김성남(예천군청), 2006년 11월 7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38회 전국남여 양궁종합선수권대회 거리별 70M(남자)에서 334점으로 3위를 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11-7)
김성남 [記事] : * 예천군청 김성남, 21일 전국체전 양궁 은메달...축하합니다./ 김성남 [記事] : 예천군청 김성남, 2009년 10월 21일 대전체고에서 열린 전국체전 남일반부 70m 경기에서 342점으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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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金聖勳) : 1968- , 1984년 2월 신라섬유양궁선수단 입단, 1989년 1월 국군체육부대 전역, 1991년 1월 예천여중 양궁코치 부임, 1993년 5월 예천여고 양궁코치 부임, 1998년 1월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코치 부임이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김성훈(國軍體育部隊 監督 김성훈 氏, 洋弓國家代表 男子部 監督 選任) [記事] : 예천읍 서본리 태생의 김성훈(45) 씨가 2010년 양궁 국가대표 남자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예천초등, 예천중(30회), 경북체고를 졸업한 김 감독은 예천여고 코치, 예천군청 여자코치, 국가대표 남자코치를 거쳐 현재 국군체육부대 양궁감독을 맡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방은경(41) 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 예천읍 동본리에 어머니 백유자(70) 씨가 살고 계신다.(아버지 김동화·작고)(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10년 01월 20일 02: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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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洋弓 有望株 김소미 來年 ''''화이팅'''') [記事] : 예천군청 양궁실업팀의 김소미 선수입니다. 엄동설한에도 2006년 시합을 위한 연습에 여념이 없습니다. 2001년 대통령기 전국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 2003년 전국체전 70m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둔 유망주입니다. 특히 2005년 11월 초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된 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국가대표 2차선발전 출전 자격을 획득해 더욱 열심입니다. 개의 해인 병술년이 김소미 선수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식(예천군 예천읍 대심리)(嶺南日報 2005-12-29 07: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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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나란바타르 몽골 體育會長 金秀男 郡守 禮訪하여 協助要請, 洋弓場 訪問) [記事] : 중앙아시아 스포츠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몽골의 나란바타르 체육장관 일행 7명이 2006년 10월 19일 오후 2시 군수실로 김수남 군수를 예방하고 몽골의 양궁 발전을 위해 예천군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환담을 나눴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수남 군수에게 "몽골 양궁선수들의 전지훈련장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진호국제양궁장에서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과 김 군수의 몽골방문"을 요청했다.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에게 "미국, 스페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양궁장을 가 보았지만 진호국제양궁장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었다"며 진호국제양궁장을 세계 최고라고 소개했다. 또 "몽골은 최근 방영된 TV드라마 징기스칸을 보고 광활한 토지, 풍부한 천연자원 등 청정 지역으로 알고 있다"며 "몽골 체육장관이 요청한 전지훈련 문제는 대환영하고 추후에 협의하자"고 약속했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 군수에게 징기스칸 탄생 기념 메달과 몽골 술을,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 일행에게 인삼을 선물한 뒤 진호국제양궁장으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계속했다. 나란바타르 몽골 체육장관은 모든 스포츠를 관장하는 요직으로 공무원 신분이며 일행들도 몽골 각 지역의 체육 관계자들이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10-19 오후 3:28:54)
김수남(第15回 아시아 洋弓選手權大會 參加 監督 및 選手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7년 9월 15일 중국으로 출국,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예천군청 소속 여자대표팀 문형철 감독과 윤옥희 선수를 격려하고 동년 9월 19일 귀국했다. 이번 출국에는 예천군청 엄종호 문화관광과장과 경북도양궁협회 부회장 5명, 예천군체육회 부회장 1명이 동행했으며, 공무원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자비를 들여 다녀왔다. 한편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는 동년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시안에서 아시아 19개국 2백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됐다.(醴泉新聞 2007년 09월 20일 14:18:25)
김수남(郡廳 實業洋弓팀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9년 7월 14일 오전 9시 군수실에서 제3회 아시아양궁그랑프리대회에서 전종목 우승을 달성하고 귀국한 예천군청 실업양궁팀의 예방을 받고 선수들을 축하ㆍ격려하고,오전 11시 상주시청에서 열린 경북도 시장ㆍ군수협의회에 참석하여 당면 현안사항에 대해 협의했다.(新亞日報 2009년 07월 14일 (화) 15: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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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녕(金水寧) : 1971- , 예천군청 양궁팀 여자선수단원이다. 세례명 막달레나,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1년 체육 교사의 권유로 활을 잡은 뒤 천부적 능력을 과시, 일찌감치 한국 양궁의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2관왕), 국내 최초로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명실공히 세계 ''''양궁 여왕'''' 의 입지를 다졌다. 1988년 10월 국민훈장 청룡장 수상, 1989년 1월 백상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수상, 동년 7월 제35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종합 2관왕, 동년 10월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부문 수상, 1990년 10월 제11회 아시아경기대회 개인 3위단체 1위, 1991년 8월 제36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단체 2관왕, 1992년 7월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개인 2위ㆍ단체 1위이다. 1993년 은퇴 후 고교 체육교사 이기영의 아내로 평범한 주부로 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1999년 10월 돌연 복귀를 선언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팀이 예선 탈락의 충격에 빠지자 협회로부터 긴급 복귀 요청을 받아 2000년 1월 예천군청팀에 소속되면서 3개월의 비밀 훈련 끝에 1차 대표선발전부터 꾸준한 훈련을 해왔다. 2000년 9월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인전에서는 금과 은을 양보하고 자신은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이다.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역시 하늘이 내린 신궁이었다. 은퇴와 복귀, 그리고 시드니의 영광을 안은 김수녕 그녀가 자랑스럽다.(醴泉郡民新聞 2000.9.25, 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김수녕(돌아온 神弓) [記事] : 세계 양궁계를 평정하고 7년 전 은퇴했던 김수녕(29․예천군청)이 선수로 복귀, 2000년 3월 29일 예천에서 열린 전국 남녀 종별 양궁선수권 여자일반부에서 우승했다. 김수녕은 세계신기록만 21회 경신하는 화려한 선수의 길을 걷다가 93년 10월 은퇴했다. 청주여고 1학년 시절인 87년 첫 출전한 국제대회 프랑스오픈서 세계신기록(싱글 30m)을 세우며 데뷔한 뒤 88 서울올림픽 2관왕, 89, 91년 세계선수권 2연패, 92바르셀로나올림픽 단체전 금, 개인전 은메달 등 한국 양궁의 금자탑을 우뚝 세웠다. 그러다 고려대 동문 선배(이기영․체육교사)와 결혼, 1남 1녀의 어머니가 된 김수녕은 1999년 10월 대표선발 1차전을 통해 컴백했다. 한국 여자양궁이 1999년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탈락, 위기 의식을 느낀 협회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김수녕이 다시 태극 마크를 달고ꡐ올림픽 히로인ꡑ이 될 수 있을지….ꡒ아줌마 파이팅!ꡓ(조용준 記者 週刊東亞 第230號 2000.04.20)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1位로 選拔戰 通過) [TV放送] :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시드니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5차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습니다. 김수녕은 원주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 종합 점수 34점으로 청원군청의 최은정을 4점차로 제치고 1위로 6차 선발전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세계랭킹 1위인 한국토지공사의 이은경은 10위에 그쳐 탈락했습니다. 남자부에서는 울산남구청의 김청태가 1위,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2위로 6차 선발전에 진출했습니다.([스포츠] 정충희 記者 입력 시간 : 2000.05.24 (18:48))
김수녕(洋弓最終選拔戰 김수녕 첫 날 先頭) [TV放送] : 시드니 올림픽 양궁 대표최종 선발전 첫 날 경기에서 김수녕이 여자부 선두에 나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7점으로 인천시청의 김남순과 경기체고의 윤미진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남자부에선 울산 남구청의 김청태가 종합배점 7점으로, 공동 2위에 오른 인천제철의 오교문과 예천군청의 장용호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남녀 각 6명씩 출전한 최종선발전은 사흘 간의 토너먼트와 이틀 간의 기록경기 등 닷새 간의 종합점수를 합산해 남녀 최종 3명씩의 대표선수를 선발합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5 (18:34))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代表復歸 눈앞) [TV放送] : 돌아온 신궁 김수녕이 양궁 시드니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이틀 연속 선두를 달리며 7년만의 국가대표 복귀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대회 이틀째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13점으로 2위 김남순을 2.5점차로 제치고 이틀 연속 선두를 지켰습니다. 김수녕이 앞으로 남은 사흘 간의 경기에서 최하위권으로 쳐지는 이변이 없는 한, 종합 3위까지 주어지는 대표 복귀는 확정적입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점 11.5점으로 김청태와 장용호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습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6 (18:52))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3日째 先頭) [TV放送] : 시드니올림픽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종합배점 14점을 기록해 3일 연속 여자부 단독 선두를 지켰습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전 17.5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스포츠] 홍유표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7 (20:15))
김수녕(ꡒ洋弓은 集中力의 勝負… 또 한번 再起한 뒤 隱退ꡓ:ꡐ神弓ꡑ 김수녕) [記事] :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건국 후 첫 금메달을 땄을 때,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이후 출생한 세대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은 감격 그 자체였고 이제야 ꡐ국가ꡑ로서 인정받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유치 후 엘리트스포츠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올림픽 금메달은 ꡐ레몬ꡑ처럼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숱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에서 하계올림픽에서 혼자 4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여자양궁의 김수녕(35)뿐이다. 88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이 된 김수녕은 4년 뒤 바르셀로나에서 개인 결승에선 선배 조윤정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단체전 금메달을 보탠 후 사대(射臺)을 떠났다. 하지만 김수녕은 99년 복귀,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국내 대표선발전을 거뜬히 통과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다시 단체전 금메달을 추가, 한국의 하계올림픽사상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ꡐ독사ꡑ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종목 세계기록을 모조리 휩쓸었던 그녀를 2006년 7월 14일 경기 안양시 평촌 집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장마가 쏟아지기 직전, 무척이나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그녀는 정성껏 한 화장 위로 흐르는 얼굴의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콕콕 찍어댔다. 결혼예물로 보이는 다이아 목걸이와 반지가 아니더라도 제법 굵어진 팔뚝에서 두 자녀를 둔 35세 주부의 관록이 묻어났다. 그녀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였다. 13년 전 막 은퇴한 그녀를 고향집이 있는 청주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ꡐ신궁ꡑ 김수녕을 있게 한 것은 초등학교 때 ꡐ우리 수녕이가 제일 잘 한다ꡑ는 체육 선생의 칭찬 때문이라고 했다. 우선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을 실천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ꡒ아이고, 애 둘이랑 만날 ꡐ전쟁ꡑ해보세요. 어떻게 칭찬이 나오겠어요. 주로 구박하고 싸우고 하는 것이 ꡐ엄마ꡑ들 일이지.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하려고 하지만 아님 하루종일 게임이나 하려고 하는데.ꡓ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김수녕이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였다.ꡒ그때의 눈물에는 아주 복잡한 의미가 있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조윤정 선배와 벌인 결승전에서 져 은메달에 그친 속상함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물론 나도 사람인 이상 ꡐ12발만 잘 쏘았다면 금메달인데…ꡑ 하는 후회나 섭섭함이 조금은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시 올림픽에서 제 컨디션은 최악이었어요. 결승까지 오른 것조차가 ꡐ독사ꡑ가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또 그 대회가 사실상의 은퇴무대였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울음이 나왔던 것이 정확해요. 그런데 윤정 언니도 내가 금메달을 못 따 울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나 봐요. 나중에 윤정 언니가 은퇴한 후 나를 만나자 ꡐ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ꡑ고 하더군요. 그러면 됐지요.ꡓ태극마크를 처음 단 청주여고 1년 때 30m에서 첫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후 김수녕은 국제양궁연맹(FIFA) 세계기록집을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양궁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그래서 ꡑ독사ꡐ였다.ꡒ여자한테 좋은 별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활을 쏠 때만큼은 적합했던 별명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ꡓ하지만 그런 김수녕도 과녁을 맞히지 못해 0점을 기록한 적이 가끔 있다. 89년 세계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는 1엔드 3발의 화살이 모두 0점 처리된 결정적인 실수도 했다.ꡒ당시는 30, 50, 60, 70m를 차례로 쏠 때인데 과녁을 옮기면서 조준기를 거기에 맞춰 조절하는 것을 나는 물론 코치님도 잊고 넘어갔어요. 한발씩 쏠 때마다 선수와 코치가 표적지를 망원경으로 확인하는데 그때는 뭐가 끼었는지, 옆 사대의 다른 선수 과녁을 둘 다 보고 있었는지 10점짜리에 3발이 모두 들어간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과녁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한 발은 아예 없어졌고 두 발은 표적지에 있긴 한데 원 밖에 있더군요. 30점을 모두 날리면 사실 대표선발전에서는 치명적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선발전에서 이를 벌충해 간신히 4위로 태극마크를 단 적이 있어요.ꡓ그녀는 현역 때 최고 라이벌이 누구였는지 묻자 ꡐ없다ꡑ고 답한다.ꡒ연습 때는 다른 선수들보다 내가 못 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ꡐ대회 때 잘 쏘면 되지ꡑ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대회에 나가면 내가 항상 이겼죠. 양궁은 집중력의 승부인데 선천적인지 몰라도 내가 집중력 하나는 끝내줬어요.ꡓ김수녕은 대학(고려대 체육학과)을 졸업하고 실업팀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 은퇴한 유일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왜 실업팀을 가지 않고 은퇴했을까?ꡒ현역 때 각종 대회 포상금으로 1억 원 넘게 받았고 매달 연금도 100만 원이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양궁이 지겹더라고요.ꡓ하지만 그녀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에 출전하며 다시 활을 잡았다.ꡒ결혼 후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몇 년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30대 이후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98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시 하자는 생각에 주위에 부탁을 넣고 다녔어요. 그런데 마침 둘째를 임신했고 이듬해 2월 출산하면서 다시 제자리걸음이 됐죠. 근데 제가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치 양궁협회 부회장이 국산 활 메이커인 삼익의 제품 테스트와 홍보를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활을 잡게 됐고 남편의 적극적인 배려로 올림픽선발전까지 나가는 등 선수로 완전 복귀하게 됐지요.ꡓ아무리 신궁이었다 해도 준비과정 없이 6년 만에 복귀해 태극마크를 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국내 대표선발전 통과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ꡒ99년 여름 올림픽 선발전을 치르는데 그냥 활을 탁 놓고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우선 주위의 격려였고 다음은 눈앞에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죠. 당시 윤미진과 김남순을 제외하면 그리 힘든 상대가 없어서 적어도 3위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상대로 3위로 대표에 다시 선발돼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죠. 국제양궁연맹에서는 ꡐ신궁의 복귀ꡑ라며 국제연맹 차원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ꡓ 김수녕은 올림픽 후 예천군청팀에 입단, 주부와 선수, 그리고 강사(2001년 한 학기동안 실기강사)로 1인3역의 힘든 생활을 했고 신궁의 위엄을 지키려 무리하게 연습한 끝에 몸에 이상이 왔다.ꡒ저는 지금도 예천군청 소속이에요. 회복이 늦어져 활도 안 쏘면서 월급을 오래 받았더니 미안해서 2년 전부터는 월급을 받지 않고 있어요. 그 돈이면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고요. ꡓ김수녕은 얼마 전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인터뷰 전날 집들이가 있어 아침까지 설거지를 했다며 수다를 떠는 품이 다시 평범한 주부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 다. 하지만 김수녕의 마음속에는 아직 독기가 남아 있었다.ꡒ현역시절 다른 선수들이 잘 못 쏘는 것을 보면 왜 그리 못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프고 보니 처음으로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힘들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ꡐ김수녕도 이젠 가치가 없다ꡑ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아픈 몸으로 무리하게 훈련을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반드시 다시 재기해 활을 제대로 쏜 다음에 은퇴해야죠.ꡓ ◆김수녕은… 1971년 4월 15일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청주 대미초등학교 4년 때 김홍교 체육교사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했다. 청주 중앙여중-청주여고를 거쳐 고려대 체육학과(90학번)를 졸업했다. 164㎝에 58㎏의 체격. 본인은 키가 한 5㎝만 더 컸으면 더욱 좋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대학 같은 과 2년 선배인 이기영(안양시 평촌 백영고 체육교사) 씨와의 사이에 지원(12), 정훈(9) 남매를 두었다. 1987년 7월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프랑스COQ대회에서 30m 세계신기록(356점)을 세우며 개인 및 단체우승을 한 것을 시작으로 여자 8개 전부문 세계신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이동윤 體育部長 文化日報 2006년 7월 29일 (토)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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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97
예천진호국제양궁장(하남 천현초 全國洋弓 3冠王) [記事] :
2010년 4월 1일 경북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막을 내린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하남 천현초등학교 양궁부가 개인과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 3관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이승준(5학년) 선수는 개인종합에서 4개 거리별 모두 고른 성적을 거둬 합계 1천38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또 하남 천현초등학교는 단체전에서 이승준, 임하겸, 문현, 한형준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합계 4천73점으로 서울 개봉초(4천 7점)와 대구 황금초(3천986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 초등학교 양궁부 정상에 우뚝섰다.
(조영상 記者 京仁日報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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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중학교(慶北少年體典 洋弓 南中部 席捲) [記事] :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2009년 경북소년체육대회 양궁 남중부 경기에서 예천중 양궁부가 단체전 및 개인전을 석권했다. 200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 동안 열린 이번 대회에서 예천중 양궁부는 단체전 1위를 차지했다. 개인전에서도 김락원(2년), 이승규(2년),장정민(3년) 선수가 나란히 1, 2, 3위를 차지하며 예천양궁의 위상을 높였다. 예천중 양궁부는 그동안 야간훈련 때 식사비 마련이 어려울 만큼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전지훈련조차 엄두를 못낼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 기쁨도 남다르다. 이같은 성과는 오로지 김대현 교장의 적극적인 뒷받침과 피나는 훈련으로 거둔 쾌거로 알려지고 있다. 야간훈련 때 어린 제자들을 위해 석미영(41) 코치는 저녁밥을 직접 짓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는 제자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믿음직하다는 곽달용 감독은 한편으로 먹거리조차 마음껏 대줄 수 없는 현실에 제자들보기가 늘 미안하단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사선에 서면 늘 호랑이 선생님이 되는 곽 감독과 석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는 어린 제자들에게 양궁 최강자의 꿈을 키워주기에 충분하며,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대현 교장은 ꡒ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꿋꿋이 이겨나가는 양궁부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 뿐ꡓ이라며 ꡒ학부모회와 동문 선배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다면 어린 선수들이 나라를 빛내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한다ꡓ고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醴泉新聞 2009년 04월 02일 16:21:17)
예천중학교("後輩들아, 맘놓고 꿈을 向해 활시위를 당겨라" : 醴泉中 洋弓 發展을 爲한 約定 締結, 世界的 洋弓選手 成長 밑거름될 듯) [記事] :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후배들의 꿈을 향한 도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선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화제다. 2009년 7월 13일 예천중학교에 예천중양궁후원회 박영서 회장, (주)경한코리아 이상연 회장, 송재철 재경예천중총동창회장, 우석구 봉화교육장 및 후원회 관계자가 방문했다. 예천중 양궁 발전을 위한 약정체결식을 가지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최명환 예천교육장, 김대현 예천중교장, 학부모 및 양궁선수 등이 함께 했다. 이날 예천중양궁후원회 박영서 회장은 예천중 출신 동문들을 대상으로 1인 1구좌(10만원) 운동을 펼쳐 6천만 원의 예산을 확보할 계획을 밝혔으며, 매년 1천2백만 원 정도를 양궁부 후배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약정했다. 또한 (주)경한코리아 이상연 회장도 매년 1천2백만 원을 5년 동안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박영서 후원회장은 인사말에서 ꡒ김대현 교장으로부터 양궁부가 예산부족으로 훈련에 애를 먹는다는 설명을 들었다ꡓ며 ꡒ후배들이 세계적인 양궁선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ꡓ고 말했다. 이상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ꡒ자랑스런 후배들이 우리들의 고향 예천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궁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돕겠다ꡓ며 ꡒ양궁의 고장인 예천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로 성장해 자신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찾고 동시에 예천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기 바란다ꡓ고 당부했다. 송재철 재경예천중총동창회장은 축사에서 ꡒ먼저 어려운 시기에 거금을 선뜻 후배들의 양궁발전을 위해 기탁한 이상연 회장의 선행에 깊이 감사드린다ꡓ며 ꡒ선배들의 이 같은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해 세계적인 양궁선수로 성장하길 희망한다ꡓ고 말했다. 이어 선수, 학부모와 후원회 선배들과 상견례가 있었으며, 새로운 결의와 함께 기념촬영을 마쳤다. 이날 매년 1천2백만 원씩, 5년 간 총 6천만 원의 후원금을 예천중학교 양궁부에 기탁하기로 약속한 이상연 회장은 호명면 금릉리 태생으로 예천중(14회), 대창고(13회)를 졸업했다. 현재 경남 창원시에서 (주)경한코리아․(주)경한타일랜드․(주)경한 인더스트리 등 3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또한 재경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장과 재경남 예천향우회 고문, 전국2․5․8총동기회장을 맡아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한국중소기업이업종교류연합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6년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6년 세계적 마케팅 학술대회에서 ꡐ글로벌마케팅 파이오니아상ꡑ을 수상, 2007년 모범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돼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8년 납세자의 날에는 기획재정부장관으로부터 모범 납세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예천중양궁부후원회는 2009년 6월 29일 발족했으며, 다년간 양궁부 훈련비, 대회출전비, 장비구입비 등을 지원하게 된다. ■예천중양궁부후원회 ▲회장 박영서(13회) △부회장 송재철(14회) △감사 박찬중(15회) △간사 김오현 ▲자문위원 변우량 이순일 장두섭 장명석 김두호 △운영위원 김광옥 고규환 김학길 이원교 윤우상 김선도 권택종 최상덕 박영서 송재철 이상연 박찬중(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09년 07월 16일 14: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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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學校 洋弓部 全國 團體戰 1位! 結果는 努力한 만큼 이뤄진다는 自信感 갖게 됐다) [記事] : 예천초등학교 양궁부는 제5회 경상북도 도지사기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남자초등학교부 단체 1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2008년 5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 개최된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 남자초등학교부 단체전에 출전한 예천초등학교 6학년 김창근, 임성호 선수와 5학년 송창협, 김상영 선수 4명 1개조가 단체전 1위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김창영 선수는 30m부분 2위와 20m부분 3위를 차지해 남자초등학교 부분 개인 종합 2위에 올랐다. 이날 예천초등학교 양궁부 양은영 코치는 어린 선수들을 우수하게 지도한 탁월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양궁협회로부터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했고, 지도교사인 윤종구 감독은 최우수 감독상을 함께 수상했다. 양은영 코치는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훈련에 몰두한 것(본지 보도 5월 5일, ''''양궁수도 예천의 미래는 밝다!'''' 참조)이 내심 마음에 걸리기도 했는데, 결국 좋은 성적을 거두게 돼, 어린 선수들이 결과는 노력한 만큼 이뤄진다는 교훈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오는 31일에 개최돼는 전국 소년체전에 참가하기 위해 김창근 어린이는 14일부터 현지적응 전지훈련을 떠난다."고 했다. 김창근 선수는 현재 양궁부의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차분한 성격을 소유하고, 일반 선수 못지않은 높은 집중력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평소 훈련과 경기에 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산과 경주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4인 1조로 엔트리를 구성하고 경상북도를 대표해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하게 된다. 양 코치는 또한 "학생들의 기량은 대동소이하다."고 밝히고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라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주변 영향에 기량과 점수가 많이 좌우된다."면서 "무엇보다도 기본자세에 충실하는 교육훈련에 중점을 두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도교사인 윤종구 감독은 지난 5일 어린이날 예천초등학교 양궁부에 대한 보도에 감사하다며, "이에 대한 자신감으로 어린 선수들이 좋은 소식을 전한다."면서 "다시 한번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본지에 전해왔다.(김용호 記者 UGN 慶北뉴스 2008-05-13 오후 5:09:23)
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 洋弓部 第20回 會長旗 全國初等學校 男女洋弓大會 男子團體 2位..) [記事] : 예천초등학교 양궁부는 제20회 회장기 전국초등학교 남녀양궁대회(2008년8월24~26일, 강원도 원주양궁장)에 참가하여 남자단체 은메달을 획득하여 양궁의 고장 예천을 전국에 알리고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 예천초등학교 양궁팀(감독 윤종구, 코치 양은영) 소속 임성호(6학년), 김창근(6학년), 송창협(5학년), 김동일(4학년) 군 등 4명이 단체 2위로 입상하여 제1회 스포츠토토배(9월27일~29일, 예천국제진호양궁장)에서 우승을 목표로 훈련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8-09-03 오전 9:40:04)
예천초등학교(醴泉初等 洋弓部 좋은 成績 올려) [記事] : 2008년 11월 2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끝난 제45회 경상북도 학생체육대회 양궁 남초부 경기에서 예천초등 양궁부가 단체전 및 개인전을 석권했다. 예천초등 양궁부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개인전에서는 송창협(5) 선수가 30m, 20m, 개인종합 등 3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송 선수는 남초부 30m, 개인종합에서 경북신기록을 달성해 활의 고장 예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예천초등 양궁부는 황찬호 교장, 학부모, 총동창회의 적극적인 지원들 아래 윤홍구 감독과 양은영 코치의 열정적인 지도가 더해져 전국 초등부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醴泉新聞 2008.11.13)
예천초등학교 [記事] :▲예천초, 회장기초등양궁 단체 銀...축하합니다./ 예천초등학교 [記事] : 예천초등학교가 제21회 회장기 전국초등학교양궁대회에서 남자부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예천초등학교는 2009년 8월 17일 강원도 원주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남자부 단체전에서 종합집계 결과, 4천79점)으로 2위를 차지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9.8.18)
예천초등학교 총동창회(醴泉初等 總同門會의 아름다운 後輩 사랑!) [記事] : 예천초등학교 총동문회(회장 권광남)는 2008년 9월 30일 오후 4시 황찬호 교장, 예천초등 양궁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양궁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권광남 회장은 "열심히 공부하고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 주기 위해 선배들이 노력하고 있다" 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우수한 선수가 되어 지역의 큰 일꾼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醴泉인터넷放送 2008-09-30 오후 4: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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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협회 예천군지회(醴泉郡, 障碍人 洋弓選手團 組織 : 이달 中 基礎訓鍊 實施 後 選手 4名 選拔) [記事] : 양궁의 고장 예천군이 2007년 김천 장애인체전에 대비해 장애인 양궁선수단을 조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장애인들의 재활 의욕 고취는 물론 전국에 양궁의 고장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천군은 휠체어와 스텐딩 각 2명씩 4명의 장애인 선수를 선발해 올림픽종목인 리커브 부분의 선수를 육성키로 하고 양궁장비구입 및 훈련비로 8천여만 원의 예산을 확보키로 했다. 이달 중에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양궁에 소질이나 관심이 있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양궁 체험을 실시한 뒤 1, 2차에 걸쳐 기초훈련을 하고 선수를 선발할 예정이다. 예천군의 경우 현재 군청 소속 남녀 양궁팀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데다, 현역 국가대표 선수도 3명이나 보유하고 있어, 장애인 양궁선수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 가능하다. 군은 훈련은 장애인협회 예천군지회에 위탁 관리토록 할 계획이다. 한편 예천군은 이번에 조직될 장애인 양궁선수 운영단이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경우 스포츠를 통한 장애 극복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자신감과 재활 의욕 고취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장애인들의 재활프로그램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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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자 :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양궁을 시작하였다. 예천군청 양궁선수이다. 96년 종별선수권대회 개인 3위, 96년 중고연맹 개인 1위를 하였다.(야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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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인 : 예천읍 출신, 본관은 안동, 인간문화재 영록의 아들, 예천초(63회), 예천중 (27회), 대창고(26회),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동 대학원 졸업, 서울 창일중 체육부장 교사, 제80회 전국소년체전 양궁부 서울대표 총감독이다.(醴泉新聞 200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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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정 [記事] : ...2008 베이징올림픽 남녀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2008년 12월 화촉을 올린 박경모와 박성현은2009년 2월 5일 한국양궁지도자협회 주최로 충북 괴산에서 열린 제23회 전국 실내양궁대회에 참석, `성(性) 대결''''을 벌였다. 비록 18m 짧은 거리에다 이벤트성 행사로 열린 경기였지만 국내 양궁 대회에서 남녀가 혼성팀을 이뤄 경기를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흥미를 자아냈다. 박경모는 여자초등부 1위를 차지한 권현정(예천동부초) 양과, 박성현은 남자초등부에서 우승한 한재엽(병천초) 군과 각각 한 팀이 돼 시위를 당겼다. 박성현조는 박경모조와 대결에서 222-218로 승리했다. 이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과 경기를 치른 한재엽.권현정 선수는 "처음엔 긴장도 됐지만 재미가 있었다"며 "꼭 국가대표 선수가 돼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김남권 記者 聯合뉴스 2009.2.5, 강신욱 記者 뉴시스 2009.2.5)(張炳昌 註 : 권현정은 여초부 개인전에서 송정희를 109:106으로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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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길(金經佶) : 1983- , 1998년 7월 중고연맹 개인종합 3위ㆍ90m 1위ㆍ30m 3위ㆍ70m 3위, 2001년 2월 예천군청 양궁부 입단이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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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찬(김규찬, 洋弓 3冠王 올라) [記事] : 김규찬(예천중)이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부문에서 3관왕에 올랐다. 예천진호양궁장에서 열린 양궁경기에서 부별신기록 3개를 비롯해 대회신기록 17개, 대회타이기록 1개 등 무려 21개의 새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예천중 김규찬은 남중부 30m(706점)와 50m(654점), 개인종합(1360점) 등 3개 부문에서 모두 경북 부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 대회 3관왕에 올랐다.(이상환 記者 大邱新聞 2004-11-04 20:42:31)
김규찬(김규찬 洋弓 男中部 個人綜合 等 3冠王, 慶北學生體育大會) [記事] :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에서 신기록 21개가 쏟아졌다. 김규찬(예천중)은 2004년 11월 2~4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양궁 남중부 50m(654점)와 30m(706점), 개인종합 등 3개 부문에서 경북신기록 겸 부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남중부 단체전에서 예천중과 경북체중은 3천966점과 3천937점을 기록, 대회신기록(종전 3천874점)을 경신하며 1, 2위를 차지했다.(每日新聞 2004년 11월 05일)
김규찬(亦是 醴泉 洋弓 最高) [記事] : 예천중학교 양궁부 소속 선수가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경기에서 3개 부문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올려 양궁의 메카인 예천군의 자존심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예천중학교 2학년 김규찬 군, 김군은 2004년 11월 2일~4일까지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된 제41회 경북학생체육대회 양궁경기에서 남중부 50m(654점)와 30m(706점), 개인종합 등 3개 부문에서 경북신기록 겸 부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김군은 예천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양궁을 시작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만교 코치(예천중 양궁부)는, "평소 규찬이는 연습이나 동료 선수들과의 합숙 훈련 등에서 항상 모범을 보이고 있다"며, "지금 이대로 실력을 유지하면 앞으로 대성할 선수"라고 김군을 극찬했다. 한편 김군은 양궁을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며 오늘날 예천 양궁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도록 이끌어 온 장본인인 이병탁 회장(경북양궁협회)의 손자로 알려져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정차모 醴泉인터넷뉴스 2004-11-05 오후 5:22:43)
김규찬(김규찬 君 大統領旗 全國市道對抗 洋弓大會 金메달) [記事] : 경북체고 2년 김규찬(부: 김윤희) 군이 2007년 6월 19일부터 원주에서 열린 제25회 대통령기 전국 시도대항 양궁대회에서 개인종합 금메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김군은 예천초등 4학년 때 외할아버지인 이병탁 경북양궁협회장의 권유로 양궁에 입문, 장래 국가대표 재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군은 예천초등, 예천중학교를 졸업했다.(醴泉新聞 2007년 06월 28일 14: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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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일(초딩 弓師에 밀린 첫 발… ‘어라? 장난 아닌데!’) [記事] : 1엔드에서 초등부 챔피언에게 밀린 주현정(28·현대모비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첫 발에서 초등학생에게 8-9로 뒤진 이창환(28·두산중공업)도 멋쩍게 웃었다. 이창환과 주현정은 2009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세계 최고 궁사. 하지만 세계챔피언이라고 해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과 맞붙은 낯선 실내 양궁경기. 게다가 TV로 생중계까지 된 상황이었다. 2010년 2월 4일 충북 괴산 문화체육센터에서는 흥미로운 양궁 대결이 벌어졌다. 국가대표와 초등부 챔피언이 혼성팀을 이뤄 맞붙는 이벤트 대회. 주현정은 김동일(예천초 5년), 이창환은 이보영(홍주초 5년)과 같은 편이 됐다. 세계챔피언은 이겨야 본전이고, 초등학생은 져도 잃을 게 없었다. 결국 처음엔 국가대표가 흔들렸다. 주현정은 1엔드 세 발을 모두 9점에 쏴 27점. 반면 이보영은 세 발을 모두 10점으로 30점을 기록했다. 순간 주현정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흘렀다. 이보영에게 하이파이브를 요청한 모습에서 대견함과 쑥쓰러움이 묻어났다. 이창환도 초반에 주춤했다. 1엔드 첫 발로 김동일이 9점에 꽂았지만 이창환은 8점. 이창환도 웃고 말았다. 이후 이창환은 김동일이 9점 2발을 쏠 때 2연속 10점을 쏘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실내 양궁은 실외(70m)보다 짧은 거리(18m)에서 이뤄지고 표적지도 작아 변수가 많다. 결과는 173점을 합작한 이창환(87점)-이보영(86점)조의 승리. 주현정(86점)-김동일(83점)조는 169점에 그쳤다. 이보영은 주현정과 같은 점수를 쏴 양궁 관계자들을 놀래켰다. 주현정과 이창환은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초등생 후배들을 번갈아 안아줬다. 잔뜩 긴장했던 이보영, 김동일도 그제서야 살포시 웃었다. 주현정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고, 이창환은 “끌려다니지 말고 즐기면서 해야 한다”며 격려했다.(김세훈 記者 京鄕新聞 20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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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洋弓 김석관, 男子 一般部 優勝) [TV放送] : 예천군청의 김석관이 회장기 대학실업양궁대회 개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석관은 부산 강서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일반부 개인전 결승에서 부산서구청의 전병영을 113대 109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남자대학부 결승에서는 한일장신대학의 백병규가 우승했습니다.([스포츠] 송재혁 記者 입력 시간 : 2002.07.2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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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남(金成男) : 1970- , 예천군청 양궁팀 남자선수단원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양궁을 시작하였다. 1988년 4월 제22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 1위ㆍ단체 3위, 1988년 8월 제5회 회장기 대학실업대회 단체 1위, 1989년 10월 제6회 아시안컵양궁대회 단체 2위ㆍ50m 1위, 1990년 12월 체육포장 수상, 1994년 12월 국민훈장 백마장 수상, 동년 12월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입단, 1995년 3월 제29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1위, 1997년 3월 제29회 종별선수권대회 개인종합 1위, 1997년 3월 제31회 전국선수권대회 개인종합 2위, 1998년 9월 제79회 전국체전 70m 1위, 1999년 6월 제17회 대통령기 단체 1위ㆍ70m 3위, 2000년 6월 제18회 대통령기 단체 1위ㆍ90m 1위, 2001년 6월 유럽 그랑프리국제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 터어키 세계대회 단체 2위, 실버에로우대회 개인 1위, 단체 1위를 하였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야후 2002)
김성남(實業洋弓- 김성남, 30m 非公認 世界新) [記事] : 김성남(35.예천군청)이 제16회 한국실업양궁연맹회장기대회에서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실업 17년차인 김성남은 2005년 7월 10일 대전의 한국토지공사 토지연구원에서 열린 남자부 개인전 예선 30m 경기에서 36발을 모두 10점 과녁에 맞쳐 360점 만점으로 세계기록을 세웠다. 종전 30m 기록도 360점이었으나 10점 과녁 안에 다시 원을 만든 엑스텐(X-10)이 17개로, 김성남은 이날 X-10을 22개나 기록해 새로운 기록을 작성했다.(최태용 記者 聯合뉴스 2005.7.10 (일) 18:44)
김성남(김성남․최남옥, 男女部 1位) [뉴스 9] : ◉ 성세정 앵커 : 원주에서 끝난 시드니 올림픽 양궁대표 2차 선발전에서 예천군청의 김성남과 경주여고의 최남옥이 국가대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종합 1위에 올랐습니다. 여자부의 김수녕은 2위, 김경옥은 7위를 차지해 3차전 진출 자격을 얻었으나 방콕 아시안 게임 2관왕 김조순은 탈락했습니다.([스포츠] 입력 시간 : 2000.04.12 (21:00))
김성남 [記事] : 김성남(예천군청), 2006년 11월 7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38회 전국남여 양궁종합선수권대회 거리별 70M(남자)에서 334점으로 3위를 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11-7)
김성남 [記事] : * 예천군청 김성남, 21일 전국체전 양궁 은메달...축하합니다./ 김성남 [記事] : 예천군청 김성남, 2009년 10월 21일 대전체고에서 열린 전국체전 남일반부 70m 경기에서 342점으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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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金聖勳) : 1968- , 1984년 2월 신라섬유양궁선수단 입단, 1989년 1월 국군체육부대 전역, 1991년 1월 예천여중 양궁코치 부임, 1993년 5월 예천여고 양궁코치 부임, 1998년 1월 예천군청 양궁선수단 코치 부임이다.(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김성훈(國軍體育部隊 監督 김성훈 氏, 洋弓國家代表 男子部 監督 選任) [記事] : 예천읍 서본리 태생의 김성훈(45) 씨가 2010년 양궁 국가대표 남자부 감독으로 선임됐다. 예천초등, 예천중(30회), 경북체고를 졸업한 김 감독은 예천여고 코치, 예천군청 여자코치, 국가대표 남자코치를 거쳐 현재 국군체육부대 양궁감독을 맡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 방은경(41) 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 예천읍 동본리에 어머니 백유자(70) 씨가 살고 계신다.(아버지 김동화·작고)(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10년 01월 20일 02: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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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洋弓 有望株 김소미 來年 ''''화이팅'''') [記事] : 예천군청 양궁실업팀의 김소미 선수입니다. 엄동설한에도 2006년 시합을 위한 연습에 여념이 없습니다. 2001년 대통령기 전국양궁대회 개인종합 2위, 2003년 전국체전 70m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둔 유망주입니다. 특히 2005년 11월 초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최된 양궁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국가대표 2차선발전 출전 자격을 획득해 더욱 열심입니다. 개의 해인 병술년이 김소미 선수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식(예천군 예천읍 대심리)(嶺南日報 2005-12-29 07: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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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나란바타르 몽골 體育會長 金秀男 郡守 禮訪하여 協助要請, 洋弓場 訪問) [記事] : 중앙아시아 스포츠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몽골의 나란바타르 체육장관 일행 7명이 2006년 10월 19일 오후 2시 군수실로 김수남 군수를 예방하고 몽골의 양궁 발전을 위해 예천군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환담을 나눴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수남 군수에게 "몽골 양궁선수들의 전지훈련장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진호국제양궁장에서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과 김 군수의 몽골방문"을 요청했다.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에게 "미국, 스페인, 호주 등 세계 곳곳의 양궁장을 가 보았지만 진호국제양궁장만큼 훌륭한 시설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없었다"며 진호국제양궁장을 세계 최고라고 소개했다. 또 "몽골은 최근 방영된 TV드라마 징기스칸을 보고 광활한 토지, 풍부한 천연자원 등 청정 지역으로 알고 있다"며 "몽골 체육장관이 요청한 전지훈련 문제는 대환영하고 추후에 협의하자"고 약속했다. 나란바타르 장관은 김 군수에게 징기스칸 탄생 기념 메달과 몽골 술을, 김 군수는 나란바타르 장관 일행에게 인삼을 선물한 뒤 진호국제양궁장으로 장소를 옮겨 대화를 계속했다. 나란바타르 몽골 체육장관은 모든 스포츠를 관장하는 요직으로 공무원 신분이며 일행들도 몽골 각 지역의 체육 관계자들이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10-19 오후 3:28:54)
김수남(第15回 아시아 洋弓選手權大會 參加 監督 및 選手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7년 9월 15일 중국으로 출국,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예천군청 소속 여자대표팀 문형철 감독과 윤옥희 선수를 격려하고 동년 9월 19일 귀국했다. 이번 출국에는 예천군청 엄종호 문화관광과장과 경북도양궁협회 부회장 5명, 예천군체육회 부회장 1명이 동행했으며, 공무원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자비를 들여 다녀왔다. 한편 제15회 아시아양궁선수권대회는 동년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시안에서 아시아 19개국 2백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됐다.(醴泉新聞 2007년 09월 20일 14:18:25)
김수남(郡廳 實業洋弓팀 激勵) [記事] : 김수남 예천군수는 2009년 7월 14일 오전 9시 군수실에서 제3회 아시아양궁그랑프리대회에서 전종목 우승을 달성하고 귀국한 예천군청 실업양궁팀의 예방을 받고 선수들을 축하ㆍ격려하고,오전 11시 상주시청에서 열린 경북도 시장ㆍ군수협의회에 참석하여 당면 현안사항에 대해 협의했다.(新亞日報 2009년 07월 14일 (화) 15: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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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녕(金水寧) : 1971- , 예천군청 양궁팀 여자선수단원이다. 세례명 막달레나,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1년 체육 교사의 권유로 활을 잡은 뒤 천부적 능력을 과시, 일찌감치 한국 양궁의 차세대 주역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2관왕), 국내 최초로 올림픽 2관왕에 오르며 명실공히 세계 ''''양궁 여왕'''' 의 입지를 다졌다. 1988년 10월 국민훈장 청룡장 수상, 1989년 1월 백상체육대상 최우수선수상 수상, 동년 7월 제35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종합 2관왕, 동년 10월 대한민국체육상 경기부문 수상, 1990년 10월 제11회 아시아경기대회 개인 3위단체 1위, 1991년 8월 제36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ㆍ단체 2관왕, 1992년 7월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 개인 2위ㆍ단체 1위이다. 1993년 은퇴 후 고교 체육교사 이기영의 아내로 평범한 주부로 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1999년 10월 돌연 복귀를 선언 8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팀이 예선 탈락의 충격에 빠지자 협회로부터 긴급 복귀 요청을 받아 2000년 1월 예천군청팀에 소속되면서 3개월의 비밀 훈련 끝에 1차 대표선발전부터 꾸준한 훈련을 해왔다. 2000년 9월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인전에서는 금과 은을 양보하고 자신은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이다. 두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역시 하늘이 내린 신궁이었다. 은퇴와 복귀, 그리고 시드니의 영광을 안은 김수녕 그녀가 자랑스럽다.(醴泉郡民新聞 2000.9.25, 인터넷 洋弓의 메카 醴泉 2001)
김수녕(돌아온 神弓) [記事] : 세계 양궁계를 평정하고 7년 전 은퇴했던 김수녕(29․예천군청)이 선수로 복귀, 2000년 3월 29일 예천에서 열린 전국 남녀 종별 양궁선수권 여자일반부에서 우승했다. 김수녕은 세계신기록만 21회 경신하는 화려한 선수의 길을 걷다가 93년 10월 은퇴했다. 청주여고 1학년 시절인 87년 첫 출전한 국제대회 프랑스오픈서 세계신기록(싱글 30m)을 세우며 데뷔한 뒤 88 서울올림픽 2관왕, 89, 91년 세계선수권 2연패, 92바르셀로나올림픽 단체전 금, 개인전 은메달 등 한국 양궁의 금자탑을 우뚝 세웠다. 그러다 고려대 동문 선배(이기영․체육교사)와 결혼, 1남 1녀의 어머니가 된 김수녕은 1999년 10월 대표선발 1차전을 통해 컴백했다. 한국 여자양궁이 1999년 세계대회 단체전에서 탈락, 위기 의식을 느낀 협회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김수녕이 다시 태극 마크를 달고ꡐ올림픽 히로인ꡑ이 될 수 있을지….ꡒ아줌마 파이팅!ꡓ(조용준 記者 週刊東亞 第230號 2000.04.20)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1位로 選拔戰 通過) [TV放送] :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시드니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5차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습니다. 김수녕은 원주 양궁장에서 열린 여자부 경기에서 종합 점수 34점으로 청원군청의 최은정을 4점차로 제치고 1위로 6차 선발전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세계랭킹 1위인 한국토지공사의 이은경은 10위에 그쳐 탈락했습니다. 남자부에서는 울산남구청의 김청태가 1위,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2위로 6차 선발전에 진출했습니다.([스포츠] 정충희 記者 입력 시간 : 2000.05.24 (18:48))
김수녕(洋弓最終選拔戰 김수녕 첫 날 先頭) [TV放送] : 시드니 올림픽 양궁 대표최종 선발전 첫 날 경기에서 김수녕이 여자부 선두에 나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7점으로 인천시청의 김남순과 경기체고의 윤미진을 제치고 1위에 올랐습니다. 남자부에선 울산 남구청의 김청태가 종합배점 7점으로, 공동 2위에 오른 인천제철의 오교문과 예천군청의 장용호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남녀 각 6명씩 출전한 최종선발전은 사흘 간의 토너먼트와 이틀 간의 기록경기 등 닷새 간의 종합점수를 합산해 남녀 최종 3명씩의 대표선수를 선발합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5 (18:34))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代表復歸 눈앞) [TV放送] : 돌아온 신궁 김수녕이 양궁 시드니 올림픽 최종선발전에서 이틀 연속 선두를 달리며 7년만의 국가대표 복귀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예천군청의 김수녕은 태릉에서 열린 대회 이틀째 6강 토너먼트에서 종합배점 13점으로 2위 김남순을 2.5점차로 제치고 이틀 연속 선두를 지켰습니다. 김수녕이 앞으로 남은 사흘 간의 경기에서 최하위권으로 쳐지는 이변이 없는 한, 종합 3위까지 주어지는 대표 복귀는 확정적입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점 11.5점으로 김청태와 장용호를 제치고 선두에 나섰습니다.([스포츠] 정재용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6 (18:52))
김수녕(洋弓代表選拔戰- 김수녕, 3日째 先頭) [TV放送] : 시드니올림픽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예천군청의 김수녕이 종합배점 14점을 기록해 3일 연속 여자부 단독 선두를 지켰습니다. 남자부에선 인천제철의 오교문이 종합배전 17.5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스포츠] 홍유표 記者 입력 시간 : 2000.06.17 (20:15))
김수녕(ꡒ洋弓은 集中力의 勝負… 또 한번 再起한 뒤 隱退ꡓ:ꡐ神弓ꡑ 김수녕) [記事] :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건국 후 첫 금메달을 땄을 때, 우리에게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이후 출생한 세대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은 감격 그 자체였고 이제야 ꡐ국가ꡑ로서 인정받는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유치 후 엘리트스포츠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올림픽 금메달은 ꡐ레몬ꡑ처럼 흔하디흔한 것이 되어 버렸다. 숱한 한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중에서 하계올림픽에서 혼자 4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는 여자양궁의 김수녕(35)뿐이다. 88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이 된 김수녕은 4년 뒤 바르셀로나에서 개인 결승에선 선배 조윤정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단체전 금메달을 보탠 후 사대(射臺)을 떠났다. 하지만 김수녕은 99년 복귀,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는 국내 대표선발전을 거뜬히 통과했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다시 단체전 금메달을 추가, 한국의 하계올림픽사상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ꡐ독사ꡑ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종목 세계기록을 모조리 휩쓸었던 그녀를 2006년 7월 14일 경기 안양시 평촌 집 부근의 커피숍에서 만났다. 장마가 쏟아지기 직전, 무척이나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그녀는 정성껏 한 화장 위로 흐르는 얼굴의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콕콕 찍어댔다. 결혼예물로 보이는 다이아 목걸이와 반지가 아니더라도 제법 굵어진 팔뚝에서 두 자녀를 둔 35세 주부의 관록이 묻어났다. 그녀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두 가지였다. 13년 전 막 은퇴한 그녀를 고향집이 있는 청주까지 찾아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ꡐ신궁ꡑ 김수녕을 있게 한 것은 초등학교 때 ꡐ우리 수녕이가 제일 잘 한다ꡑ는 체육 선생의 칭찬 때문이라고 했다. 우선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의 경험을 실천하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ꡒ아이고, 애 둘이랑 만날 ꡐ전쟁ꡑ해보세요. 어떻게 칭찬이 나오겠어요. 주로 구박하고 싸우고 하는 것이 ꡐ엄마ꡑ들 일이지. 웬만하면 잔소리 안 하려고 하지만 아님 하루종일 게임이나 하려고 하는데.ꡓ다음으로 궁금했던 것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김수녕이 흘렸던 눈물의 진정한 의미였다.ꡒ그때의 눈물에는 아주 복잡한 의미가 있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조윤정 선배와 벌인 결승전에서 져 은메달에 그친 속상함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그게 아니에요. 물론 나도 사람인 이상 ꡐ12발만 잘 쏘았다면 금메달인데…ꡑ 하는 후회나 섭섭함이 조금은 있었겠지요. 하지만 당시 올림픽에서 제 컨디션은 최악이었어요. 결승까지 오른 것조차가 ꡐ독사ꡑ가 아니었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또 그 대회가 사실상의 은퇴무대였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울음이 나왔던 것이 정확해요. 그런데 윤정 언니도 내가 금메달을 못 따 울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나 봐요. 나중에 윤정 언니가 은퇴한 후 나를 만나자 ꡐ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ꡑ고 하더군요. 그러면 됐지요.ꡓ태극마크를 처음 단 청주여고 1년 때 30m에서 첫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후 김수녕은 국제양궁연맹(FIFA) 세계기록집을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했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 양궁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그래서 ꡑ독사ꡐ였다.ꡒ여자한테 좋은 별명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활을 쏠 때만큼은 적합했던 별명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해요.ꡓ하지만 그런 김수녕도 과녁을 맞히지 못해 0점을 기록한 적이 가끔 있다. 89년 세계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는 1엔드 3발의 화살이 모두 0점 처리된 결정적인 실수도 했다.ꡒ당시는 30, 50, 60, 70m를 차례로 쏠 때인데 과녁을 옮기면서 조준기를 거기에 맞춰 조절하는 것을 나는 물론 코치님도 잊고 넘어갔어요. 한발씩 쏠 때마다 선수와 코치가 표적지를 망원경으로 확인하는데 그때는 뭐가 끼었는지, 옆 사대의 다른 선수 과녁을 둘 다 보고 있었는지 10점짜리에 3발이 모두 들어간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과녁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한 발은 아예 없어졌고 두 발은 표적지에 있긴 한데 원 밖에 있더군요. 30점을 모두 날리면 사실 대표선발전에서는 치명적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선발전에서 이를 벌충해 간신히 4위로 태극마크를 단 적이 있어요.ꡓ그녀는 현역 때 최고 라이벌이 누구였는지 묻자 ꡐ없다ꡑ고 답한다.ꡒ연습 때는 다른 선수들보다 내가 못 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어요. ꡐ대회 때 잘 쏘면 되지ꡑ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했고 실제로 대회에 나가면 내가 항상 이겼죠. 양궁은 집중력의 승부인데 선천적인지 몰라도 내가 집중력 하나는 끝내줬어요.ꡓ김수녕은 대학(고려대 체육학과)을 졸업하고 실업팀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 은퇴한 유일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왜 실업팀을 가지 않고 은퇴했을까?ꡒ현역 때 각종 대회 포상금으로 1억 원 넘게 받았고 매달 연금도 100만 원이 나오기 때문에 특별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양궁이 지겹더라고요.ꡓ하지만 그녀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선발전에 출전하며 다시 활을 잡았다.ꡒ결혼 후 살림하고 아이 키우며 몇 년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30대 이후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98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시 하자는 생각에 주위에 부탁을 넣고 다녔어요. 그런데 마침 둘째를 임신했고 이듬해 2월 출산하면서 다시 제자리걸음이 됐죠. 근데 제가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들은 김일치 양궁협회 부회장이 국산 활 메이커인 삼익의 제품 테스트와 홍보를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활을 잡게 됐고 남편의 적극적인 배려로 올림픽선발전까지 나가는 등 선수로 완전 복귀하게 됐지요.ꡓ아무리 신궁이었다 해도 준비과정 없이 6년 만에 복귀해 태극마크를 달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국내 대표선발전 통과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힘들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ꡒ99년 여름 올림픽 선발전을 치르는데 그냥 활을 탁 놓고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우선 주위의 격려였고 다음은 눈앞에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었죠. 당시 윤미진과 김남순을 제외하면 그리 힘든 상대가 없어서 적어도 3위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상대로 3위로 대표에 다시 선발돼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땄죠. 국제양궁연맹에서는 ꡐ신궁의 복귀ꡑ라며 국제연맹 차원에서 특별상을 준다고 하더니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ꡓ 김수녕은 올림픽 후 예천군청팀에 입단, 주부와 선수, 그리고 강사(2001년 한 학기동안 실기강사)로 1인3역의 힘든 생활을 했고 신궁의 위엄을 지키려 무리하게 연습한 끝에 몸에 이상이 왔다.ꡒ저는 지금도 예천군청 소속이에요. 회복이 늦어져 활도 안 쏘면서 월급을 오래 받았더니 미안해서 2년 전부터는 월급을 받지 않고 있어요. 그 돈이면 다른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고요. ꡓ김수녕은 얼마 전 아파트 평수를 늘려 이사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인터뷰 전날 집들이가 있어 아침까지 설거지를 했다며 수다를 떠는 품이 다시 평범한 주부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 다. 하지만 김수녕의 마음속에는 아직 독기가 남아 있었다.ꡒ현역시절 다른 선수들이 잘 못 쏘는 것을 보면 왜 그리 못할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프고 보니 처음으로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힘들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ꡐ김수녕도 이젠 가치가 없다ꡑ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아픈 몸으로 무리하게 훈련을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열심히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반드시 다시 재기해 활을 제대로 쏜 다음에 은퇴해야죠.ꡓ ◆김수녕은… 1971년 4월 15일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청주 대미초등학교 4년 때 김홍교 체육교사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했다. 청주 중앙여중-청주여고를 거쳐 고려대 체육학과(90학번)를 졸업했다. 164㎝에 58㎏의 체격. 본인은 키가 한 5㎝만 더 컸으면 더욱 좋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대학 같은 과 2년 선배인 이기영(안양시 평촌 백영고 체육교사) 씨와의 사이에 지원(12), 정훈(9) 남매를 두었다. 1987년 7월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프랑스COQ대회에서 30m 세계신기록(356점)을 세우며 개인 및 단체우승을 한 것을 시작으로 여자 8개 전부문 세계신기록을 보유하는 등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이동윤 體育部長 文化日報 2006년 7월 29일 (토)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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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597
예천진호국제양궁장(하남 천현초 全國洋弓 3冠王) [記事] :
2010년 4월 1일 경북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막을 내린 전국남녀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하남 천현초등학교 양궁부가 개인과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 3관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이승준(5학년) 선수는 개인종합에서 4개 거리별 모두 고른 성적을 거둬 합계 1천385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또 하남 천현초등학교는 단체전에서 이승준, 임하겸, 문현, 한형준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 합계 4천73점으로 서울 개봉초(4천 7점)와 대구 황금초(3천986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 초등학교 양궁부 정상에 우뚝섰다.
(조영상 記者 京仁日報 20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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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