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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168:예천체육50(祝성락어린이집)
작성자장병창 @ 2010.04.19 06:45:42
  예천의 자랑(2168) : 醴泉體育史資料集(50)(附 예천성락다문화어린이합창단, 영남대에서 공연...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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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29.5.19) [冊] : 예천 궁술대회 금지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弓術大會禁止(醴泉)/ 발행년월일 1929-05-19/ 면수 03/ 단수 07/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0.4.7) [冊] : 예천에서 3군연합 궁술대회 성황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三郡聯合弓術 醴泉에서 성황, 尙州 醴泉 金泉/ 발행년월일 1930-04-07/ 면수 03/ 단수 11/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2.6.5) [冊] : 예천에서 4군 궁술대회를 개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四府郡弓術 醴泉에서 開催/ 발행년월일 1932-06-05/ 면수 04/ 단수 07/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6.5.10 5.13) [冊] : 전국궁술대회 예천에서 개최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全朝鮮 弓道大會 醴泉서 開催 主催 醴泉武學亭 後援 中央 朝鮮 東亞支局/ 발행년월일 1936-05-10/ 면수 04/ 단수 11/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6.5.13) [冊] : 조선중앙일보 예천지국 후원 궁술대회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조선중앙일보/ 기사제목 예천지국 후원 궁술대회/ 발행년월일 1936-05-13/ 면수 05/ 단수 01/ 주제분류 문화,학술 > 체육 > 기타스포츠 > 궁술”(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6.5.24) [冊] : 전국궁도대회 예천에서 성황리에 끝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醴泉弓道大會 盛況裏에 終了/ 발행년월일 1936-05-24/ 면수 04/ 단수 04/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36.5.28) [冊] : 예천궁술대회 성황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조선중앙일보/ 기사제목 예천 弓術大會 성황/ 발행년월일 1936-05-28/ 면수 05/ 단수 03/ 주제분류 문화,학술 > 체육 > 기타스포츠 > 궁술”(history.go.k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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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궁술대회 : 弓術大會 禁止(醴泉)/ 신문명: 동아일보 1929년/ 날짜: 1929-05-19/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弓術大會禁止(醴泉)/ 발행년월일 1929-05-19/ 발행구분 무/ 면수 03/ 단수 07/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예천군 궁술대회 : 三郡 聯合 弓術 醴泉에서 성황, 尙州 醴泉 金泉/ 신문명: 동아일보 1930년/ 날짜: 1930-04-07/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三郡聯合弓術 醴泉에서 성황, 尙州 醴泉 金泉/ 발행년월일 1930-04-07/ 발행구분 무/ 면수 03/ 단수 11/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예천군 궁술대회 : 四府郡 弓術 醴泉에서 開催/ 신문명: 동아일보 1932년/ 날짜: 1932-06-05/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四府郡弓術 醴泉에서 開催/ 발행년월일 1932-06-05/ 발행구분 무/ 면수 04/ 단수 07/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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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정 : 全朝鮮 弓道大會 醴泉서 開催/ 신문명: 동아일보 1936년/ 날짜: 1936-05-10/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全朝鮮 弓道大會 醴泉서 開催/ 발행년월일 1936-05-10/ 발행구분 조간/ 면수 04/ 단수 11/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무학정 : 全朝鮮弓道大會, 主催 醴泉 武學亭 後援 中央 朝鮮 東亞支局/ 신문명: 동아일보 1936년/ 날짜: 1936-05-13/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全朝鮮弓道大會, 主催 醴泉武學亭 後援 中央 朝鮮 東亞支局/ 발행년월일 1936-05-13/ 발행구분 조간/ 면수 04/ 단수 12/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무학정 : 醴泉弓道大會 盛況裏에 終了/ 신문명: 동아일보 1936년/ 날짜: 1936-05-24/ 분류: 연속간행물 > 신문 > 동아일보/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醴泉弓道大會 盛況裏에 終了/ 발행년월일 1936-05-24/ 발행구분 조간/ 면수 04/ 단수 04/ 표제어 궁술대회(弓術大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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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궁(無形文化財 角弓) [인터넷] : 이 곳 예천여고 출신의 김진호(金珍浩) 선수가 세계양궁을 4관왕으로 제패하면서 우리나라 활의 고장으로 떠오른 예천, 그러나 그것은 김진호가 그러한 예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오랜 전통을 끈질기게 지켜온 예천이 김진호를 배출해 낸 것이다. 예천에는 4대 120년 간 가업을 이어온 궁장(弓匠) 권영학(權寧鶴) 씨가 있다. 궁장기능보유자로서 경북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받은 이 분은 양궁의 상대 개념인 국궁(國弓) 중에서도 무소뿔, 대나무, 소심줄을 접합하여 만드는 각궁(角弓) 제조의 제1인자이다. 나는 어느 책에서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활을 잘 만들어서 대궁(大弓)이라는 뜻의 동이(東夷)족으로 불리었고, 중국이나 일본 등 인접 국가들이 나무만으로 만드는데 비하여 우리는 무소뿔을 나무에 덧대어 만들므로써 그 성능이 우월했었다는 기록을 보고 그 제조술이 자못 궁금했었는데 이 번에 그 제조 공정을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마디가 긴 왕대나무를 얇게 깎고, 그 밑에 역시 얇게 깎은 무소뿔을 대고, 그 위에 가늘게 찢어 말린 소심줄 여러 겹을 민어 부레풀로 접합한 것이 기본 재료이고 가벼우면서 질긴 산뽕나무, 굴참나무 등의 부재가 일부 쓰인다. 문제는 이 재료들을 적당한 크기와 적당한 굵기로 깎아 말리는 공정이 중요하고, 접합을 잘해서 심하게 탄력을 주는 신축 작용을 계속 반복해도 떨어지거나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현대 과학으로 접합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바짝 휘었다가 강한 탄력을 받으며 활짝 펴지는 작용을 계속하는 활대를 접착해 내는 방법은 재래식 부레풀 이외엔 없다고 한다. 이러한 각궁은 무소뿔은 물론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고, 기타 재료는 국내에서 구하더라도 제조 공정이 하도 어렵고 특수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어서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으므로 장수에게나 주어지고, 상류 사회의 무예 수련용으로 사용되었을 뿐, 병사에게까지 일반화되지는 못했었다고 한다. 돈벌이와는 무관한 이렇게 어려운 가업을 대대로 계승해오는 이러한 분들이 있어서 예천은 활 만들기와 활쏘기를 숭상하는 고을이 됐고, 그래서 김진호 선수도 나왔고, 경북양궁협회는 물론, 전국 양궁협회도 이 벽지 예천에 있는 것이다. 예천읍에는 진호궁도장 자리에 국제 규격의 예천양궁장 시설을 마련하여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다. ꡐ동이ꡑ라는 이름으로 국제 사회에 이름을 떨쳤던 우리의 국궁이 이제는 양궁의 왕국이 되어 그 중심에 예천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pwj32.com.ne.kr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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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왕신리 각궁관(활의 故庄에 角弓館 建立된다) [記事] : 활의 고장 예천에 각궁 제작의 전승과 후계자를 육성하여 우리 고유 문화유산을 발전시키고 각궁 체험을 통한 지역 관광 인프라를 구축키 위한 각궁관이 건립된다. 2005년 6월 15일 오전 개최된 예천군의회(의장 조경섭) 의원 간담회에서 장예기 과장(문화관광과)은 우리 나라 전통활 제작 현장인 예천읍 왕신리 174-1번지에 각궁장을 건립한다고 의원들에게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각궁장 건립 규모는 812평의 부지 위에 각궁 제작 과정 및 주요 물품 전시실(15평). 관리실. 완성품 및 자재 보관을 위한 물품 보관 창고. 관람 및 체험객들을 위한 제작 체험실 등으로 건설된다는 것. 총 사업비 6억 원(국비 3억 원. 도비 9천만 원. 군비 2억1천만 원)이 소요되는 이 사업은 건립 부지에 대한 기공승락서 징구. 편입 부지 감정 및 실시 설계 용역(6월) 등을 거쳐 2005년 10월에 발주, 2007년 10월 완공할 계획이다.(정차모 記者 예천인터넷뉴스 2005-06-15 오후 5:13:19)

  예천군 각궁관(ꡐ활의 故庄ꡑ面貌 갖춘다 : 醴泉郡, 角弓 製作村․展示體驗館 建立, 世界的 洋弓場 이어 새 名所 育成 計劃) [記事] : 옛부터 국궁(각궁)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쳐온 예천군이 새해 벽두부터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인 각궁 제작 기법을 보존, 전수해 나가기 위한 각궁 제작촌 및 전시관 건립사업에 본격 착수, 활의 고장의 명맥을 유지해 나가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천군은 예천읍 왕신리 왕산골 주변 일대 600여 평의 부지에 1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각궁 제작촌 및 전시관 건립을 위한 공사 입찰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갔다. 군은 점차 사라져가는 각궁 제작 기법을 후손들에게 전수해 각궁의 제작 체험을 통한 전통문화 학습 및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곳에 각궁 제작동 2동 및 전시관, 제작 체험관을 건립하게 된다. 또 활쏘기 체험장과 편의 시설을 갖추고 관광객들에게 국궁을 직접 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 자원화로 발전시켜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 도모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토록 할 방침이다. 군은 각궁 제작촌 건립 사업이 마무리되는 2006년 하반기에는 현재 세계적인 양궁장으로 이미 인정을 받고있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과 더불어 전세계인들에게 명실상부한 활의 고장으로 이미지를 각인시켜 관광객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6/01/12)

  회룡포와 각궁제작체험관(道, 儒敎文化圈開發 拍車 : 宿泊休養據點事業 等 1兆8千億 投入) [記事] : 경북도는 도내 산재한 유교문화자원을 문화관광 명소로 육성하기로 했다고 2007년 4월 3일 밝혔다. 도에 따르면 북부지역 11개 시ㆍ군을 5개 권역으로 구분, 오는 2010년까지 총사업비 1조 8천681억 원을 투입해 숙박휴양거점사업, 문화관광루트개발, 잠재력과 파급효과 사업 등 권역별 나눠 관광 및 문화자원과 연계개발해 관광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권역별 숙박휴양거점 조성을 위해 7천44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안동과 영주, 문경, 청송, 울진지역에 호텔과 콘도, 골프장, 공예촌, 놀이공원, 유교문화체험센터 건립 등 관광객이 머물며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키로 했다. 또 304억 원의 예산을 투입, 북부지역 11개 시ㆍ군의 핵심자원을 선정해 주변 문화관광자원을 여행시나리오에 따라 연계ㆍ개발할 수 있는 관광루트기반을 조성키로 했다. 이와 함께 총 6천418억 원을 들여 △안동 야외민속촌확장, 안동포민속마을 △영주 무섬마을정비, 순흥역사문화체험장 조성 △상주 민속박물관건립, 남장사 정비 △문경 가은, 진남교반종합휴양단지 조성 △의성 금성ㆍ비봉산 관광개발, 빙계계곡 공원조성 △청송 도예촌, 민예촌 건립 △영양 선바위지구, 일월산 권역개발 △영덕 죽도산 유원지, 고래불관광지개발 △예천 회룡포지구, 각궁제작체험관 건립 △봉화 전통문화체험마을, 청량산도립공원정비 △울진 해월헌, 망양정, 월송정 공원 정비 등 지역별 관광자원을 체계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도는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각 사업현황을 면밀히 분석, 사업 내용과 투자계획을 조정해 효율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기로 했다. 경북도 이재동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ꡒ유교문화권개발사업 중 4대 핵심사업은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사업인 만큼 모든 기반시설을 완료하는 한편 민자유치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ꡓ고 말했다.(김종엽 記者 大邱日報 2007-04-03 19: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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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활(韓國의 활, 慶北 醴泉) [記事] : 공보실 김종두(金鍾斗) 씨에게는 특별히 감사를 드려야겠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 일요일에도 새벽 일찍부터 필자를 안내해주는 일에 심신을 아끼지 않았다. 포장마차 집에서 맛있게 소주 마셨던 일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활에는 세 가지 형이 있다. 한국형(몽골리안형), 지중해형, 핀형, 이렇게 셋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활이 바로 한국형인데, 이 것이 몽고족의 활 모양과 비슷하다. 몽고족은 우리의 고려시대에 유럽을 정복했던 민족, 그러니까 그들은 고구려 활을 배워갔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최신예 무기는 활이었고, 우수한 활을 가진 자가 세계를 정복했다. 가장 우수했던 그 활을 한국형이라고도 하고 몽골리안형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볼 때 고구려족은 신라의 불완전한 삼국통일 후 몽고족에 융화됐을 듯한 추측이 가능한데, 그 건 사학자나 인류학자가 할 일이고, 필자가 주제넘는 소리할 수가 없겠다. 하여간, 우리의 활이 세계를 휘어잡았던 최우수 무기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 활을 일컬어 국궁이라 한다. 지중해형은 고지(활의 양측 끝 부분)만 조금 휘였다. 핀형은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일본활처럼 반달형 곡선이 하나 뿐이다. 국궁을 만곡형이라고도 하는데, 굴곡이 많을수록 탄력이 더 나온다. 일본형은 굴곡이 하나 뿐이고, 지중해형은 줄 거는 곳에(고지) 굴곡이 있으나 둘이고, 한국형은 중간 손잡는 곳에 굴곡이 또 있으니 모두 셋이다. 사람의 윗입술같이 생긴 국궁은 그래서 탄력이 가장 좋다. 일본의 국궁이 30m 겨우 나가는데 비해, 국궁은 300m를 날아간다. 철궁은 2km를 날았다고 한다. 국궁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지금은 이순신 장군이 즐겨쓰던 각궁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국궁은 모양이 대단히 예쁘다. 풍만한 여체같다. ‘소첩을 버려놓고 활을 끼고 잔다’고 하는 말은 예쁜 탓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궁은 따뜻하고 선선한 봄가을같은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 이불 밑에 넣고 잤던 데서 나온 말인 듯 하다. 국궁은 일견하여, 작고 가볍다. 길이가 1.5m 밖에 안되고 쇠붙이 같은 것이 전혀 붙어있지 않다. 그런데도 여기에 화살을 먹여 쏘면 가공할 탄력을 낸다. 여체는 곡선이 많고, 아름답고 유약해 보이지만 여자가 한 번 독기를 내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서린다던가. 다 만들어 놓은 활의 모양은 소의 코뚜레같은 원형이다. 허리띠처럼 허리에 두르고 다닐 수 있다. 이 활을 뒤로 젖혀서 줄(시위)을 겉면 절묘한 곡선을 드러낸다. 다섯 군데의 굴곡에서 힘을 내니 서릿발이 치는데, 모양은 지극히 유연하고 아름답다. 국궁의 구조는 인체와 비슷하다. 배 부문에는 산뽕나무와 대나무, 등 부분에는 물소뿔, 속에는 소의 힘줄, 붙이는 접착제로는 민어 부레풀 녹인 풀인데, 이 풀은 혈액의 구실을 한다. 산뽕나무와 대나무는 잘 부러지지 않고, 탄력이 좋다. 소의 등뼈밑에 있는 힘줄을 쓰는데, 황소 힘줄은 강하고, 암소 힘줄은 탄력이 좋다. 물소의 뿔은 온도에 민감한데, 찬 기온에서는 부러지나 따뜻하면 막강한 탄력을 낸다. 세상에 있는 모든 접착제는 마르면 짝짝 부서지는 법인데, 민어 부레풀은 결코 쪼개지는 일이 없다. 10년이 지나도 끈기를 그냥 지니고 있다. 이 민어풀의 발견이야말로 활의 혁명이다. 우리 조상의 슬기가 이 혁명을 이룩해 냈다. 놀라운 일이다. 줄 거는 끝 부분은 산뽕나무를 쓰고, 다른 부분은 대나무를 쓰는데, 손잡이 부분에는 참나무를 덧붙인다. 소힘줄을 넣어 풀을 바르고 물소뿔을 붙이면 일단 활이 완성되는데, 풀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보통 석 달 이상 말려야 한다. 말리는 것도 불에 말리면 안된다. 방안에 걸어두고 자연 온도 속에서 말려야 한다. 더럽게 까다롭다. 미인이란 까다로운 것이 매력이고 힘이다. 활은 솜씨로 만든다기보다 인격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 만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많은 과정 중 한 과정이라도 소홀하거나 실수하면, 그 활은 다 버리게 된다. 그래서 일이 시작되면 주위를 조용하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 손길을 경건하게 움직인다. 넉 달이 지나 풀이 다 마르면 마지막 다듬질을 해서 윤을 내고 벚나무(樺皮木)껍질을 입혀서 완성한다. 벚나무껍질은 신축성이 강하고 방수제의 역할을 한다. 민어풀은 습기에 약하므로 방습이 잘 돼야 한다. 제작의 예술성과 성능의 우수성이 높은 활일수록 다루는 정성이 더 필요하다.(徐東燻 新風土記 230 韓國日報 198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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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활(安東과 醴泉) [記事] : ...▶안동은 조선시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렸다. 추(鄒)는 맹자, 노(魯)는 공자의 고향으로 ''''예절을 알고 학문이 왕성한 고장''''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전국 서원(書院)의 32%가 안동과 그 주변에 몰려 있고, 문중과 종가를 중심으로 한 유교 질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안동시는 2004년 시 청사와 읍․면․동 사무소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首都) 안동''''이라는 표지석을 놓았다. ▶안동 바로 옆 예천은 ''''활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아들을 낳으면 대문에 활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사내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면 활을 잡게 하고, 천자문을 깨치면 활에 첫 시위를 당겨준다. 지금도 전국 국궁(國弓)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그 명성이 양궁으로 이어졌다. 1979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한 김진호와 그 뒤를 이은 김수녕을 배출했다. 예천 국제양궁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상북도 도청 이전 예정지로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가 선정됐다. 북쪽은 검무산이 둘러싸고 남쪽은 낙동강과 하회마을이 자리잡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에 2027년까지 인구 10만 신도시가 들어서게 된다. 경상북도는 2013년까지 도청 이전을 완료하고 2017년까지 경찰청․교육청 등 관련 기관들도 옮길 예정이다. 1896년 13도(道)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구에 자리잡은 경북도청이 옮겨가는 것이다. ▶안동과 예천을 비롯한 경북 북부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안동을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선비가 살 만한 길지(吉地)''''라고 평했다. 농경시대 번성했던 이 지역은 근대 들어 산업화에 뒤지고 교통도 불편해 점차 쇠락했다. 1960년대 23만이던 안동 인구는 이제 16만, 16만 넘던 예천 인구는 5만 아래로 줄어들었다. 안동과 예천은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에 이은 경북도청 이전으로 옛 명성을 회복할 기회를 맞았다. 이례적으로 두 도시가 손 잡고 유치해낸 화합의 슬기가 돋보인다.(이선민 論說委員 朝鮮日報 2008.06.0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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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醴泉郡) [名弓] : 1) 권영학(權寧鶴, 1943.2.26生) : 예천 무학정, 취득 1985.10.15, 2) 김장용(金章鏞, 1928.2.14生) : 예천 무학정, 취득 1988.5.11(Lycos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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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궁도협회(''''各種 全國大會 휩쓸어'''' : 醴泉弓道協會) [記事] : 예천궁도협회(회장 장재복)의 전신은 예천 무학정이라고 할 수 있다. 궁도협회의 모태인 무학정은 1934년 대심리 봉덕산 중턱에 사정을 최초 건립, 궁도를 연마하는 등 일찌기 체계적인 전통 무예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격변기로 휴정되었으며 광복과 한국전쟁 등의 혼란으로 한 동안 휴면기를 맞았다. 1953년 일부 뜻 있는 유지와 더불어 궁사들은 한천교 하부천변에서 궁도를 재현하며 연마 중 1961년 대심리의 사정을 지금의 남산공원으로 이건하여 본격적인 활동기에 접어든다. 이 건물도 2001년 철거하고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현존하고 있다. 초대 회장(사장)에는 황병택(1934년), 1대 회장 한태섭(1961년) 씨를 비롯 현재 19대 장재복 사두(회장)에 이르고 있다. 궁도의 산 증인으로 11대, 12대, 13대 회장을 역임한 권영학(경북도무형문화재 제6호) 씨는 각궁의 궁장으로 가업을 전수받아 제작은 물론 각궁 보급과 궁도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예천궁도는 경북궁도의 산파역으로 도내 전지역에 미친 파급은 궁도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활의 고장답게 예천궁도는 각종 전국대회는 물론 도민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각종 대회에서 48회의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권영학 씨의 기록과 더불어 14대 사두를 역임한 김장용 씨가 기록의 쌍두마차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20명으로 지금도 각종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등 전통 무예로 예천궁도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醴泉新聞 2004-06-18 14:20:13)

  예천궁도협회(洋弓의 故庄에서 國弓大會가? 第3回 醴泉郡守盃 嶺南圈 親善弓道大會 開催) [記事] : 한국양궁의 요람이자 전통적인 활의 고장 예천이 곤충엑스포의 열기로 가득한 가운데 제3회 예천군수배 경상북도 친선 남ㆍ여 궁도대회가 2007년 8월 18일 오후 1시 남산 무학정에서 개회식을 갖고 2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예천궁도협회(대회장 강규원)이 주최하고 예천군, 경북 궁도협회, 예천군체육회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날 개막식에는 명예대회장인 김수남 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국궁 관계자, 임원 선수단, 주민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2007년 세 번째를 맞은 이번 대회는 도내 궁도 동호인 45개 팀 500여 명이 출전한 가운데 토너먼트방식에 의해 실력을 겨루게 되며, 경기종목은 남ㆍ여 개인전과 단체전, 노년부전으로 치루게 된다. 김수남 군수는 환영사에서 "활의 고장 예천을 방문해 주신 궁도 동호인들에게 환영의 뜻을 전하고,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데 최고인 궁도를 사랑하는 모든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쳐 좋은 성적을 거두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남시우 군의장은 격려사를 통해 "이번 대회가 우리 조상님들이 군자지도로 여기고 심신수련과 정신수양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을 상기하며 참가자 모두가 한마당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강규원 대회장은 "이번 대회가 개최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김수남 군수께 궁도인을 대신, 깊은 감사를 드리고 도내 여러 사우님들의 예천 방문을 환영하고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장에 들러 수많은 곤충을 체험하며 아련한 옛 추억도 되살려 볼 것"을 권했다. 이번 대회는 2007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개최를 기념한 행사로 상주 상무정 이승준 선수의 대표 선수 선서를 시작으로 대회 첫날 경기에 들어갔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08-18 오후 12: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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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궁장(醴泉弓匠) [人間文化財] : 1) 예천 지방은 예로부터 서울과 더불어 대표적인 활의 산지로서 유명한 곳이었다. 한국의 활(國弓, 角弓)은 단순한 운동 기구로서 뿐 아니라, 탁월한 공예품으로서의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다. 최근 양궁의 보급으로 인하여 전통적 국궁이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서 그 흔적을 감출 우려마저 없지 않으며, 기계화의 기운에 밀려 수공예로서의 그 기능 보유자도 현격히 감소되고 있어, 자칫하면 그 명맥이 단절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예천 지방에는 여러 사람의 궁장이 있으나, 권우갑은 도구와 수법이 전통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의지와 사고 방식이 명장으로서의 기질과 성실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궁(造弓) 때에는 계절과 시간을 엄별하여 득의(得意)치 않으면 출품치 않는 자세는 인간문화재로서 손색이 없는 장인(匠人) 기질로 생각된다. 아울러 전국 국궁 공급의 70%를 예천에서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과 가격도 다른 제품의 2-3배로 출품하고 있다는 것은 조궁술의 우수성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각궁 진흥과 그 보존을 위해 궁장 기능 보유자 권우갑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하였다. 2) 예천읍 왕신동(旺山洞)은 예로부터 명궁의 산지로서, 여기서 전습한 궁장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조궁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왕산골(旺山洞)에서 활을 만드는 집은 10여 년 전만 해도 20여 호나 되던 것이, 현재는 예천 읍내에서 조궁업을 계속하고 있는 4가구와 타지로 이주하여 사정(射亭)의 사범을 겸하여 틈틈이 여가를 이용하여 활을 만드는 5가구로 그 수가 거의 반으로 줄어 들었고, 앞으로 더 줄어들 염려마져 없지 않다. 이는 과거 왕산곡 주민이라면 조궁을 하여 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나 제품의 수준에 차이가 있어, 판로가 막혀 경제적인 타격을 받아 조궁업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가진 활에 대한 향수는 이들로 하여금 다시 조궁에 종사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궁장들은 거의가 안동 권씨 일족들이고, 이들에게 전수받은 타성 8가구가 있으나, 현재까지 조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3인에 불과하다. 여기서 예천 궁장의 계보를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예천의 활은 누구에게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예천군이 현재 하도(下道)를 대표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이미 작고한 권선복(權先福)의 숨은 노력 때문이라고 권선출은 말하고 있다. 일제 시대에 일인들에 의해 조궁이 중단되어 각궁(國弓)의 제작은 휴면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일인들에 의해 각궁 제작을 허용받았을 때는 유능한 궁장들은 모두 작고하고 권선복만 남게 되었다. 따라서 권선복은 예천군의 중흥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우갑은 권선복에게서 배웠다. 1935년(16세)부터 조궁을 시작하여 아들 영학(寧鶴)과 더불어 제작한 활은 약 25,000여 장(1982)에 이른다 한다. 특히 영학은 궁술에도 능하여(5段), 제작한 활을 일일히 직접 시사(試射)하여 그 성능을 점검한 뒤에 출품하고 있다. 권우갑은 국궁 인구의 증가와 각궁 제작의 사명감을 가지고 1958년부터 과거의 소규모 생산의 궁방(弓房)을 확장시켜 본격적인 궁시(弓矢) 제조업을 시작하였다 한다. 그는 조궁술을 배울 때는 생각(生角, 한우뿔)으로 만든 단궁(短弓)과 수우각(水牛角)으로 만드는 장궁(長弓)을 모두 제작하였으나, 1958년부터는 장궁만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활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그 성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을 피하여 봄에는 재료 처리 공정만을 하고, 나머지 모든 공정은 가을에 하고 있다 한다. 특히 부각(付角)과 우근판(牛筋板) 처리는 새벽 1시부터 6시 사이에만 하였다.

  예천의 궁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본적, 주소, 비고 순이다. 1) 권우갑(權又甲) : 왕신리, 남본리, 권선복(權先福)의 제자, 일제시대부터 종사, 1988년 3월 사망, 2) 석계수(石桂水) : 청복리, 권선복의 제자, 일제시대부터 종사, 사망, 3) 권선출(權先出) : 왕신리, 왕신리, 권선복의 제자, 9세 일제시대에 시작하여 70여 년 간 조궁함, 4) 권영록(權寧錄) : 왕신리, 서본리, 인간문화재 궁시장(弓矢匠) 47호, 일제시대부터 종사, 사망, 5) 권영호(權寧浩 : 왕신리, 왕신리, 권영록의 4촌, 한국전쟁 후에 종사, 중단했다가 1981년부터 다시 종사, 6) 권태흥(權泰興) : 왕신리, 전남 광주, 3대째 가업으로 전수, 권태기와 형제 간임. 7) 권태기(權泰基) : 왕신리, 경남 울산, 3대째 가업으로 전수, 권태흥과 형제 간임. 8) 김대진(金大振) : 왕신리, 왕신리, 권우갑에게 배우다가 중단, 9) 최성옥(崔成玉) : 왕신리, 왕신리, 권영호에게 배우다가 중단, 10) 권영출(權寧出) : 왕신리, 충남 강경, 권영호에게 배우다가 강경으로 이주하여 종사, 11) 권인수(權仁秀) : 왕신리, 경남 울산, 권영호의 제자, 울산으로 이주하여 시장(矢匠) 조명제와 합작하여 조궁 종사, 사망, 12) 권오수(權五洙) : 왕신리, 경남 마산, 권영호의 제자, 13) 배재현(裵在賢) : 왕신리, 왕신리, 권영호의 제자, 사망, 14) 권종익(權鍾益) : 왕신리, 경기 수원, 권영호의 제자, 15) 이치우(李治雨) : 왕신리, 왕신리, 권영식 아버지의 사위로 권영식의 제자, 16) 권영식(權寧植) : 왕신리, 왕신리, 17) 김봉원(金奉元) : 왕신리, 경남 진해, 아버지의 제자, 일제시대부터 종사, 18) 정태수(鄭泰洙) : 지보면, 지보면, 왕산골 김씨의 제자, 일제시대부터 종사, 사망, 19) 권영덕(權寧德) : 왕신리, 전남 정읍, 20) 박찬석(朴贊錫) : 왕신리, 강원 원주, 권우갑의 제자, 자립하여 나감(金宅圭 : 無形文化財指定調査報告書 慶尙北道 1981. 每日原色精版社). [文化財廳] : 예천읍 남본리 69-3번지에 있는 공예기술자 권영학으로, 경상북도무형문화재 제6호(1980.12.30 指定)이다. 궁장이란 활을 만드는 기술 또는 사람을 말한다, 활은 삼국시대 훨씬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옛날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이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 해서 동이(東夷)라고 부를 만큼 활 제작에 있어서 탁월한 기술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1592) 이후 조총(鳥銃)이 수입되기 전까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운동용으로 국궁인 각궁(角弓)이 보편화하였다. 오늘날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洋弓)과 구별하기 위해 국궁(國弓)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작 과정으로는 우선 대나무 조각, 뽕나무 조각, 물소뿔 등을 다듬는다. 대나무와 뽕나무는 불에 쬐어 구부린 다음 연결시킨다. 대나무 끝을 V 자형으로 도려내고, 뽕나무 끝은 V 자형 반대 모양으로 엇물리게 하여 풀칠해서 끼운다. 물소뿔을 표면에 붙이고, 소힘줄을 활에 올리는 ‘심놓이’ 작업을 한다. 이와 같은 과정 후에 건조 과정(點火管理)을 약 1개월 간 거친다. 건조 과정이 끝나면 고자깎기를 한다. 고자깎기가 끝나면 활 사용자에 맞추어 활의 강약을 조절한다. 제작 도구로는 톱, 대패, 나무망치, 줄, 칼, 송곳, 집게, 나무빗, 쉬빗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활은 소뿔과 쇠심줄을 사용한 각궁이란 점이 특징이며, 예천은 우리나라 활의 대표적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예천궁장은 전통 공예 기술로서 미적 감각이 뛰어나며 기술이 정교하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예천에 살고 있는 권영학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文化財廳 홈페이지 2002, www.ocp.go.k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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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정(弓道 郡部 3位) [記事] : 제44회 경북도민체육대회가 2006년 4월 26일 대회 이틀째에 접어들며 6개 종목이 종료된 가운데 칠곡 호국정에서 열린 궁도 군부에서는 칠곡군(68중)이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울릉군(60중)과 예천군(58중)이 뒤를 이었다.(최만수 記者 慶北日報 2006/04/27)

  무학정(武學亭) : 예천읍 남본2리 산176번지 소재, 국궁술을 연마하는 사정(射亭)이다. 원래는 현 교육청 입구 좌측인 남본1리 한천 변에 무학당(武學堂)으로 세워졌으나, 19세기 말에 무너진 후 1934년에 현 예천읍 대심3리에 재건하여 무학정이라 하였고, 1961년에 현 위치인 남산유원지에 4칸 규모의 콘크리트조의 건물을 건립하였다.(醴泉郡誌 2005)

  무학정(''''활 시위 당기며 心身修練'''' : 醴泉武學亭, 弓道 無料 體驗敎室 運營, 男女 會員도 募集) [記事] :ꡐ쐐-액ꡑ. 정신을 집중하여 쏜 화살이 경쾌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과녁에 명중했을 때의 쾌감. 그리고 ꡐ텅ꡑ 하는 충격음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궁도(국궁) 체험 교실이 마련됐다. 예천무학정(사두 강규원)에서는 전통문화 지키기와 지역 궁도 발전, 궁도 인구 저변 확대 등 한꺼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연중 무료 체험 교실을 운영한다. 예천읍 남본리(남산공원) 무학정에 오르면 군민 누구나 궁도를 배울 수 있다.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두 차례. 장재범(4단) 사범 등이 이론에서 실기까지 꼼꼼하게 가르친다. 처음 활을 잡는 초보자도 하루 1시간씩 일주일쯤 꾸준히 수련하면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자세와 호흡법, 활터에서의 예의범절 등을 배우려면 2~3개월의 교육이 필요하다. 예천이 양궁의 메카로 자리잡기까지는 국궁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지금도 예천 활(각궁)이 전국 수요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전통궁도장 무학정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 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무학정은 예천군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난 2005년 신축을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는 곧 예천 궁사들의 우수한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규원 사두는 ꡒ1백45m 과녁까지 화살을 날려 보내기 위해서는 근력과 꼿꼿한 자세, 정신집중이 필요한 만큼 운동 효과는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도 아주 좋다ꡓ며 ꡒ가정주부와 신세대들에게도 궁도를 적극 권하고 싶다ꡓ고 말했다. 무학정에서는 궁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현재 신규 회원 모집도 함께 하고 있다.(권오근 記者 醴泉新聞 2007년 02월 08일 10:47:29)

  무학정(武學亭) [團體] : 예천군 내에 거주하는 국궁(國弓)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회장 윤영근, 회원 20명)으로, 매일 남산 무학정에 올라 궁술 연마와 함께 체력 증진에 힘쓰고 있으며, 도민체전을 비롯한 각종 국궁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醴泉新聞 2003.4.24)

  무학정(武學亭) [亭子] : 예천읍 남본리 남산공원(南山公園) 관풍루(觀豊樓) 남쪽에 있는 정자로, 궁술을 연마하는 곳이다. 원래 이 정자의 전신인 무학당(武學堂)이 남본1리 지금의 예천교육청 입구 좌측에 있어서 동호인들이 한천사장(漢川沙場)에서 궁도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는 19세기 말에 도괴되었다. 1934년에 대심리(大心里)에 무학정(武學亭)을 건립하여 사장 황병택(射長黃秉澤), 총무 이정백(總務李正伯), 동(同) 배태후(裵泰厚) 등이 맡아보다가 김육복(金六福) 등의 노력으로 1961년 6월 현 남산(南山)으로 이건, 회장 한태섭(韓泰燮), 부회장 황주용(黃周龍), 총무 박승훈(朴勝勳), 고문 김육복(金六福) 등이 계승, 현재에 이르렀고, 김기수(金基洙) 회장 외 궁사(弓師) 30명(1982)이 관할하였다. 옛부터 국궁의 고장으로 이름난 예천은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자, 1981년 8월 9일 그 곳에 있던 경상북도 궁도협회(慶尙北道弓道協會)을 예천으로 유치하여 회장 반형식(潘亨植), 부회장 5명, 이사 11명, 사무이사 권영학(權寧鶴), 사무장 황병인(黃炳寅), 서무 1명, 감사 2명으로 예천의 인사들이 주관하고, 도내 13개 시군 궁도협회와 12개 각급학교 궁도부를 산하에 가맹시키고 있을 뿐더러 이미 여러 차례의 전국궁도대회를 개최하여 한국의 궁도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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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성락다문화어린이합창단, 영남대에서 공연... 축하합니다.

  성락어린이집(多文化家庭 아이들 "인터넷에서 빨리 만나요" : 慶北道內 100名, 大學生 100名과 온라인 멘토링) [記事] :

  "앞으로 매일 컴퓨터로 누나를 만나 공부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

  구미 해평초등학교 5학년인 이도균(11) 군은 2010년 4월 16일 온라인 멘토인 김동주(23ㆍ여ㆍ영남대 경제금융학3) 씨를 만나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동주 누나로부터 인터넷 화상을 통해 공부와 생활 전반에 대한 교육과 조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 출신의 어머니를 둔 이군은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께요"라고 다짐했다.

  경북의 다문화가정 자녀 100명과 대학생 100명 등 200명이 16일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챔버홀에서 ''''다문화가정 자녀와 대학생 온라인 멘토링 교육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 멘토와 멘티들은 발대식에서 화상학습 시스템에 대한 교육을 같이 받고 국내 다문화어린이집 1호인 예천 성락다문화어린이합창단의 공연도 보며 기념촬영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에 따라 멘토인 대학생들은 다음달부터 내년 2월까지 교육환경이 좋지 않은 농어촌과 산간벽지에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해 온라인을 통해 기초학습과 생활상담 등을 하게 된다.

  도는 이를 위해 23개 시군을 통해 초등학교 3∼6학년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1일 대상자를 확정한 후 이들 가정에 온라인 학습을 위한 PC와 화상캠, 헤드셋, 학습지를 무료로 전달하는 등 모든 준비를 마쳤다.

  7월에는 법문화 캠프 등 오프라인 체험학습도 병행할 계획이다. 도에 따르면 도내 다문화가정 자녀는 모두 6,318명으로 2006년에 비해 4배나 늘어났다. 하지만 우리말과 글이 서툴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도는 2008년부터 가정방문을 통해 기초학습지도를 하는 한편 이날 발대식을 가지면서 전국 처음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교육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도는 또 올해부터 다문화가정 영유아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고 미취학자녀에 대해서는 한글방문 학습지 교육 및 언어발달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내 6세 미만 다문화가정 자녀 4,176명 중 58%인 2,450명의 영유아가 무상보육 혜택을 받게 될 전망이다. 도는 또 장기적으로는 대학 입학 때 학비와 엄마나라 유학비 지원에 쓰일 다문화가족지원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김장주 경북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은 "온라인 멘토링 교육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다문화가정의 교육 부담을 덜어주고,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길을 닦겠다"고 말했다.

  (전준호 記者 韓國日報 2010-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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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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