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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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173:예천체육55(祝강아현等15名/예천방문603)
예천의 자랑(2173) : 醴泉體育史資料集(55)(附 강아현 등 15명, 22일 과기부총리 표창...축하합니다/예천방문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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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 : 예천은 신궁의 나라 <김영진 시인>| 예천신문 1010.03.31 17:26/ http://cafe.daum.net/ycnews365/9A53/3/ 예천은 신궁의 나라 -명무 권영학/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권우갑 옹의 궁방(弓房)에서 자란/ 소년 권영학을 아시나요./ 자신이 만든 활로 신궁(神弓)이 된/ 명무 권영학 선생을 아시나요.// 최고의 궁장은 최고의 궁사/ 아비의 활 만들기 이어받은 명궁장/ 궁장(弓匠)* 되고 명무(名武)* 되어/ 군자지도(君子之道)의 전설이 된 가문// 천년 세월 활과 살 만드는 동안/ 궁사의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아가는 족족 표적에 명중했다지요//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 소백산맥 정기 받아/ 국궁(國弓)의 성지가 된 예천이랍니다.// *궁장:활을 만드는 장인/ *명무:활을 잘 쏘는 자에게 주는 칭호/ *제침문(祭針文) 1절/ 시작 노트 : 예천이 낳은 권영학 선생은 활을 만들고, 직접 활을 쏘았다. 대한민국 공인 6단 명궁(名弓)이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한 명무이시다. 그의 궁사로서의 내력은 부친 권우갑 씨로부터 시작되었다. 권옹은 활만들기에 평생을 바쳐 온 사람이다. 부친의 솜씨를 이어받은 권영학 선생은 활 만들기에서 활 쏘는 궁인으로 명성을 얻은 한국의 명궁이다. 이 고을에서는 김진호, 윤옥희 같은 신궁이 대를 잇고 있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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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權寧호) : 1924- , 예천읍 왕신2리 170번지 출신, 궁장(弓匠)이다. 1992년 11월 24일 MBC ''''우리 시대의 명인(名人)''''이라는 프로를 통해 방영(放映)되었다.(醴泉新聞 19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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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덕 : 14대 400년 동안 외고집으로 예천궁(醴泉弓)을 만들어온 사람이다.(國民日報 1998.4.8 임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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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수 : 예천 출신, 경남 마산 공설운동장 용마정의 국궁제작소(國弓製作所) 대표, 조상의 전통 문화를 살리기 위해 국궁 제작에 몸바쳐 왔다. 경남의 유일한 국궁 제작 기술 소지자로 국궁 제작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새嶺南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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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정(韓國工藝 ‘내공’ 쌓아 새 길 찾는다) [記事] : 활공예 전수자 권오정(33) 씨는 2009년 10월부터 매달 넷째주 주말에 1박2일 동안 진행되는 한국벤처공예대학 강의를 듣고 있다. 경북 예천에서 1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전통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의 아버지 권무석(68) 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서 30년 동안 활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최고 기술을 지녔음에도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우리 전통활은 나무와 물소뿔 등 10가지 이상의 재료를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여서 만드는 ‘복합궁’으로, 습도가 높으면 풀이 붙지 않아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에 4개월만 작업할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장인 한 명이 만들 수 있는 활의 수는 1년에 50개밖에 안된다. 활 가격을 평균 60만원으로 잡을 때 전부 팔린다고 해도 1년 수입은 3000만원. 여기서 재료비와 경비를 빼면 남는 돈은 2000만원 남짓이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사태 이후 가공되지 않은 소의 부위를 들여올 수 없도록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물소뿔을 들여오려면 직접 중국에 가 어느 정도 가공해서 수입해야 한다. 권씨는 “우리는 동이족이라고 불릴 만큼 활 문화가 발달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업을 잇기 어렵다”면서 “활의 역사, 활 쏘는 법, 활쏘기 정신 등 활 문화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벤처공예대학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활 페스티벌을 열고 교육사업을 하는 것이다...(京鄕新聞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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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갑(權又甲) : 1918-1989, 예천읍 왕신리 171번지에서 태어나 예천읍 남본리 69번지로 옮겨 살았다. 본관은 안동, 한규(漢奎)의 아들이다. 조부 오련(祖父五蓮) 때부터 가업(家業)으로 내려온 활을 만드는 조궁술(造弓術)을 1935년부터 익혀 경상북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6호인 궁시장(弓矢匠)에 등록(1980.12.30 指定)되었다. 권우갑이 만든 활은 일일이 시험적으로 직접 쏘아 그 성능을 점검한 다음에 상품으로 내어놓았기에 전국 활 보급률(普及率)의 80%가 넘었다고 한다. 활을 만드는 일은 여름과 겨울에는 피하고 봄과 가을에만 만드는데, 이에 따라 춘궁(春弓)과 추궁(秋弓)으로 나누어진다. 춘궁보다 추궁이 더 좋으며 더욱이 추석 뒤에 활을 만들기에 제일 좋은 시기이다. 물소의 뿔을 붙이는 것과 소의 심줄 처리는 새벽에만 하였다. 특히 장심(長心)입히는 일은 전국에서 권우갑(權又甲)만이 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만든 활과의 성능 차이는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권우갑이 만든 활은 다른 활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예천에서 생산되는 활은 복합 단궁(複合短弓)으로서 일본이나 서양의 활에 비해 그 모양에나 실용면에서 훨씬 앞섰는데, 궁도(弓道)의 용구로서 뿐 아니라 순수 수공예품으로서 탁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권우갑의 아들 영학(寧鶴, 1943-)도 활 만드는 기술을 1955년부터 이어받아 전형적인 기법을 지니고 있어 전국 조궁계(造弓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에 있던 경상북도 궁도협회가 예천읍으로 유치(1981)되어 권영학(權寧鶴)은 그 전무 이사(專務理事)가 되어 도내 13개 시군 궁도협회(弓道協會)를 관리하였고, 제1회 전국 국궁대회 때 1위를 하는 등 수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여 궁도 예천(弓道醴泉)을 빛내고 있다. [工程 期間] : 활 1개 만드는데 100번 이상 손이 가야하고, 재료 구입부터 제품이 되어 나오는 기간은 1년이 넘게 걸린다. 좋은 활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붙임이 가장 중요하고 심을 잘 놓아야 하고, 해궁(解弓)도 잘 해야 된다. [材料] : 이는 대나무, 물소뿔, 소심줄, 민어풀, 뽕나무, 참나무, 화피, 가죽, 밀실 등이다. 대나무는 활의 몸통 부분에 사용되는데, 주로 진주(晋州), 밀양(密陽)의 산죽(山竹)을 이용한다. 뽕나무는 활의 목소와 고자부분의 재료로 야생 산뽕나무를 이용한다. 물소뿔과 소심줄은 활의 앞뒷면에 붙여져 탄력성과 신축성을 강하게 해주는 데 쓰인다. 물소뿔의 규격은 70cm, 두께 1cm 짜리 두 개를 사용한다. 색깔에 따라 흑각(黑角), 백각(白角), 홍각(紅角)으로 나눠지고, 흑각인 경우엔 사람 인자(人字) 무늬가 선명한 것을 상품으로 친다. 소심줄은 쇠망치로 쳐서 기름과 살점을 완전히 제거시켜 손으로 실날같이 째서 사용한다. 조궁(造弓) 때에 가장 중요한 재료인 민어풀은 민어를 삶아 만든 접착제(接着劑)로 활에 강도를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뽕나무 껍질로 만든 화피는 습기를 방지하고 활의 고장을 줄이면서 모양을 내주는 재료이다. [道具] : 활 한 개 만드는데 여러 가지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지만 공정(工程) 자체가 복잡하고 정교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일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활 한 장 만드는데 필요한 용구는 톱, 손칼, 줄, 화덕, 모탕 등 20여 가지가 필요하다. 활 모형을 잡는 디지미, 짜고, 뿔을 대나무에 조우는 두루자, 힘줄로 만든 밧줄, 뿔과 활이 돌아간 것을 바로 잡는 궁틀, 민어풀을 끓이는 도가니, 민어풀을 다려서 소힘줄과 반죽해서 빚어내는 심빗, 박달나무로 된 심판, 활 제작을 끝내고 해궁(解弓)할 때 쓰는 도지게, 쇠망치, 대칼, 페이퍼 등도 중요한 용구들이다. 그러나 재료와 용구가 좋다고 해서 좋은 활이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활이 제작될 수 없다. 활은 계절과 만드는 시간에 따라 성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름, 겨울을 피해 봄에는 재료 처리 공정(工程) 만을 하고 나머지 모든 공정은 가을에 한다. 특히 수우뿔 붙이는 작업 만은 새벽 1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 한다.(每日生活情報 1984.1.29, 醴泉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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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영 : 1929- , 예천읍 왕신리 356번지 태생, 호는 우연(又連), 본관은 경주, 홍경의 장남, 예천읍 대창학원 졸업, 궁시장 무형문화재 김장환(1985년 작고)의 제자, 각궁 궁시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1966.12.10 지정)로 지정되었다. 1년에 70장쯤 활을 만드는데, 한 장 만드는데 3,500번 정도 손길이 간다고 한다. 풀칠만 해도 같은 자리에 15번쯤 하는데, 워낙 풀칠하는 곳도 많고, 깎고 다듬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한 장만 집중해서 만든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옛날 방법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그는 "붓으로 물 10되를 발라 마를 정도가 되어야 활 하나가 완성된다."라고 했다(조선일보). 부천시 심곡본1동 579- 25번지에서 30여 년 간 활을 만들어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했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아버지가 특별히 차고앉아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대창학원 졸업 무렵에는 왠만큼 기초적인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 1950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메리야스공장 등 수공으로 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활 만드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 년 간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33세 때(1964) 고향 사람의 추천으로 경기궁의 명인 김장환 선생(1985년 작고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國民日報 1995.6.19, Yahoo 2001)
김박영(角弓 製作 33年 김박영 氏 : 우리 時代의 匠人 : 11) [記事] : ◎동이의 혼실어 활맥잇기 외길/ 궁장인 선친의 영향 듬뿍받아/ 명인 김장환 문하 혹독한 수련/ 한정 3500번 손질ꡒ혼신의 작업ꡓ// [전국 통틀어 4명 불과] : 활은 무기 가운데 가장 그 연원이 깊다. 인간의 무기 발달사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설이 있어 왔으나 고대 원시인들이 돌도끼 다음으로 일찍 만들어 썼던 것이 활과 화살이라는 사실만은 대체로 일치하는 것 같다. 궁시(활과 화살)는 시대에 따라, 혹은 부족 지방 나라에 따라 각각 그 형태가 다르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궁시는 좀 독특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것도 그렇지만 크기에 비해 탄력이나 사거리가 탁월하다는 점도 그러하다. 서울시에 인접한 경기도 부천에서 33년째 활을 만들어온 궁장 김박영 씨(66․부천시 심곡본1동 597의 25). 전국을 통틀어 4명에 불과한 궁장기능 보유자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자 가장 충실한 현업 장인으로 꼽히는 김씨는,『적어도 활에 관한 한 세계에서 우리 민족이 최고』라고 단언한다.『옛 중국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이족이라고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이란 옥편에 나오는 대로 그저 동쪽 오랑캐란 뜻이 아니라 큰 활(대궁)을 쏘는 무서운 사람들이란 뜻이지요』김씨가 궁장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했던 부친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부친이 특별히 차고앉아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엔 웬만큼 기초적인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 50년 부친이 별세하자 메리야스공장 등 수공을 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엔 늘 활 만드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수 년 간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서른세 살 나던 해 고향 사람의 추천으로 경기궁의 명인 김장환 선생(85년 작고․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그로부터 33년, 지금 생각하면 아마 정해진 숙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났고 그 밑에서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쳤던 것이 오늘의 제가 있게 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같이 배웠던 김기원 씨(김장환선생의 아들)가 중도에 유명을 달리해 서운하기 짝이 없다는 김씨는 자신이 스승의 기예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에도 불구,『나는 아직 완성이 덜 됐다』며 겸손해 한다. 김씨에 따르면, 본래 우리 나라 활에는 12가지 종류가 있었다. 정량궁, 예궁, 각궁, 목궁, 단궁, 죽궁 등이 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각궁만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맥궁 또는 국궁이라고 불리는 이 활은 쏘는 사람의 힘에 따라 강하고 약함을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매우 우수한 활이다. 활은 또 크기에 따라 장궁과 단궁이 있고, 구조상으로는 환목궁과 복합궁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활은 복합단궁으로 다른 나라 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미려하다. 역사 속의 영웅들, 예컨대 고구려 동명성왕이나 양만춘, 조선 태조 이성계나 이 충무공 등이 하나같이 신궁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섯 평 남짓한 궁방의 한 편에는 김씨의 제자 두 사람(김기원,김동진)이 조궁작업에 여념이 없다. 활틀에 부레풀을 먹이고 쇠심줄을 감는 일이 보기에도 수월치 않은 일임을 짐작케 한다. 김씨는,『정교한 국궁 한 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적어도 3,500번 정도의 손질이 가야 한다』며,『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수공으로 만들어내는 활의 본질은 마찬가지』라고 귀띔한다. 활 제작에 필요한 재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물소뿔, 쇠심줄, 민어 부레 등 줄잡아 10여 가지가 필요하다. 어렵사리 재료가 준비되고 나면 우선 대나무를 물에 푹 삶거나 불에 달궈서 휘기 알맞게 만든다. 다음 대나무를 적당히 말린 후 필요한 크기로 재단한다. 줄을 거는 부분(상고)에는 뽕나무를 끼우고 손잡이 부분(줌통)에는 참나무를 댄다. 궁체(활몸통) 바깥쪽에 물소뿔을 붙인 후 대나무 뒷면의 외피를 파내고 심을 놓는다. 민어 부레풀로 쇠심줄을 붙이는데 8~9번 정도는 덧칠을 해야 들뜨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대략 모양을 갖춘 궁체를 잘 다듬어 바깥쪽에 벚나무로 합피를 만들어 씌우면 날렵한 모양의 궁체가 된다. 이 것이 제1단계인 조궁이다. 그러나 활 제작에 가장 어려운 작업은 2단계인 해궁. 말하자면「균형잡기」에 해당하는 해궁은 활의 균형과 쏠 때의 감을 판별해내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마지막 과정은 시위걸기로 기궁이라고도 한다. 김씨는 여름 한철 손을 놓아가며 1년에 줄잡아 300정 안팎의 활을 만들어내고 있다.『완성까지 수 천 번의 손길이 가야 하는 국궁 제작을 위해서는 정신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최근들어 지역 단위의「궁시전시회」를 비롯,「보유자 작품전」「공예협회 35인전」등 크고 작은 전시회가 잇달아 마련되고 있어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경제사회적 성장과 함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는 외국에서까지 찾아와 활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는 흐뭇해했다. 두세 명의 제자 중에 스승의 손자인 김기흥 씨(44)에게 특히 기대를 걸고 있다는 그는 활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다가 제자에게 자신의 기술을 오롯이 전수하는 것이 남은 할 일이라고 말했다.(김종구 國民日報 1995-06-19)
김박영(韓國의 匠人들(2)/ 弓矢匠 김박영 氏 ; 활-先祖 숨결 깃든 3500番의 손질 ; 다듬고 붙이고 풀어주고…ꡒ野生馬 길들이 듯 精誠 들여야 名弓 誕生ꡓ) [記事] : 대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하지만, 어떤 물건은 진보가 필요없을 만큼 애초 완벽하다. 우리 활이 그렇다.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梁萬春)이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을 패퇴시킨 그 활, 맹렬히 날아가 적장(敵將) 왼쪽 눈을 관통한 화살을 잉태한 모체(母體)가 어찌 더 정확하고 빠를 수 있으랴. 그토록 완벽한 모양새와 쓰임새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는 그 활을 오늘날까지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이다. 그 스승 김장환(85년 작고) 선생, 증조부 때부터 5대째 내리 물려받은 기술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에서 보 듯 우리 민족은 활 잘 쏘는 민족이다. 올림픽 때마다ꡐ전 종목 석권ꡑ하는 양궁 금메달 소식은 괜한 게 아니다. 그러나 활은 이제 무기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서울 사직공원 뒤편 황학정에서ꡐ건강 레포츠ꡑ로 쏘는 활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요일 낮마다ꡒ준비하시고… 쏘세요!ꡓ하는 되바라진 구령에 동원되는 것도 활이다. 옛날 불덩이를 달고 날던 화살이 이젠 일확천금을 달고 색색깔로 빙글빙글 도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궁시장 김씨에게 처음 연락한 건 화요일이었다. 그런데 그는,ꡒ토요일에야 만날 수 있다ꡓ고 했다.ꡒ어딜 다녀오실 계획이냐ꡓ했더니, ꡒ주중에는 너무 바빠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ꡓ고 했다.ꡒ찬바람 불 때 활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무척 바쁘다ꡓ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게 토요일이었다.
[각궁은 사정거리 300m나] : 공방은 경기 부천 심곡동 산자락에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비탈길을 오르니ꡐ성무정(聖武亭)ꡑ이란 활터가 나왔다. 활터 한 켠에 세 평 남짓한 그의ꡐ부천 공방ꡑ이 있었다. 공방 안에 들어섰을 때 그는 다 만든 것 같은 활을 무릎으로 누른 채 두 손으로 구부렸다 폈다 씨름하고 있었다.ꡒ모양을 다 갖춘 활에다가 숨을 불어넣는 겁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같은 작업이지요. 균형도 맞춰야 하고, 모양도 잡아야 하고….ꡓ그는 이 작업을ꡐ해궁(解弓)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활(弓) 모양을 갖췄다고 다 된 게 아니라, 풀어줘야(解) 비로소 활이 된다는 설명이다.ꡐ활을 어른다ꡑ고도 한다.ꡒ왜 우리 활이 세계 최고인데 수출이 안되는 줄 아세요? 보관했다가 쏘려고 꺼낼 때마다 해궁을 해줘야 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그 걸 할 수 없는 기라. 대만 사람들도 사가더만은 얼러서 쓰질 못하더라구요.ꡓ김씨가 만드는 우리 활 이름은ꡐ각궁(角弓)ꡑ이다.ꡐ맥궁(貊弓)ꡑ이라고도 한다. 물소뿔이 들어갔다고 해서 각궁이라 하고 맥족, 즉 고구려 민족의 활이라고 해서 맥궁이다.ꡐ국궁ꡑ이란 말은 양궁(洋弓)이 들어오면서 생긴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기록상 각궁은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당서(唐書)에ꡐ각궁ꡑ이란 말이 나오고,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222년)부터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첨단 소재로 만든 양궁에 비해 사거리가 훨씬 길다. 양궁에서 사대(射臺)와 과녁 거리는 최대 90m인데, 국궁은 145m로 55m나 멀다. 게다가 화살이 날아간 뒤 잔여 충격을 활이 전부 흡수해, 손에 전달되는 충격이 거의 없는 활이다.ꡒ각궁 특징이 힘이 좋고 멀리 날아간다는 겁니다. 각도까지 조절해서 쏘면 300m까지도 날아갑니다.ꡓ사람이 손으로 잡아당겨 쏘는 화살이 300m까지 날아간다니, 정말 그럴까 싶었다. 박세리가 티샷한 골프공이 굴러가는 것까지 평균 260야드(234m)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거리다. 그런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씨가 표정을 읽었는지ꡒ옛날엔 1000m 가까이 쏠 수 있는 활도 있었다ꡓ면서ꡐ옛날 이야기ꡑ를 한 토막 들려줬다.ꡒ신라 문무왕 때 구진천(仇珍川)이란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만든 활이 천보대궁(千步大弓)입니다. 천보나 날아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당 고종이 구진천을 당 나라로 불러 천보대궁을 만들라 했는데,ꡐ재료가 다르다ꡑ면서 30보짜리를 만들었어요. 신라에서 재료를 갖다줬더니ꡐ바다 건너오면서 재료가 상했다ꡑ면서 60보짜리를 내놓았어요. 그래서 당 고종이 목을 쳐죽였답니다.ꡓ활 만드는 이는 함부로 손을 놀릴 수 없다는 뜻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는,ꡒ아무리 기록을 찾아봐도 활 잘 쏘는ꡐ명궁ꡑ은 많은데, 활 만드는 사람은ꡐ구진천ꡑ과 삼국시대ꡐ내마신득(奈麻身得)ꡑ이란 사람 밖에 없습니다.ꡓ내마신득은 포궁(砲弓)을 만들어 성곽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형문화재 김장환 씨가 스승] : 김씨는 1929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왕신동에서 태어났다.ꡒ당시 예천에서는 집집마다 활을 만들다시피 했다ꡓ는 게 김씨 설명이다. 선친도 활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자연스레 활과 친해졌다. 그러나 선친은 45년 해방과 함께 활 만드는 일을 접었고, 48년 작고해 활 만드는 일을 더 배울 기회가 없었다.ꡒ한 동안 셔츠 만든다고 옷감 짜는 기계 일을 했지요. 그 때 서울 서대문에 있는 공장에도 왔다갔다 했는데, 활이 항상 눈에 선합디다. 어려서 보고 자란 게 그 거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러다가 김장환이란 분을 알게 됐지요.ꡓ김장환 선생은 71년 국가에서 궁시장 첫 지정 때 무형문화재로 뽑힌 사람이다. 65년 여름, 김씨는,ꡒ부천에서 활 만드는 사람을 구한다더라ꡓ는 소리를 듣고 서울에 올라왔다.ꡒ밤차 타고 물어물어 부천까지 왔는데 아침 10시가 넘었어요. 그 땐 여기가 다 복숭아밭이었지. 내 얼굴 보자마자 대뜸ꡐ밥 먹었느냐ꡑ고 하기에ꡐ못 먹었다‘ 하니까 밥 한 그릇 주고는 그 때부터 일을 시키는 거야.ꡓ스승 김씨는 처음부터 줄톱으로 물소뿔 켜는 일부터 시키더란다.ꡒ활 만들어 본 적 있다고 했더니, 아마 시험해 본 모양이더라ꡓ고 했다. 한 달을 그 밑에서 일하는데 몇몇 이상한 일들도 벌어졌다. 스승 김씨는 김박영 씨 일하는 방에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일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ꡐ도청ꡑ을 했다. 집안에 일부러 돈을 흘려놓고 어떻게 하나 보기도 했단다.ꡒ뭐라고 푸념을 하니까 다들 마이크를 가리키면서 입술을 가려요. 그래서 내가ꡐ××하고 있네ꡑ하고 마이크에다 대고 욕을 했지요. 돈도 떨어져 있기에 다 주워서 갖다 줬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자 자질이 있나 없나 시험해 본 거 같애.ꡓ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니까,ꡐ마이크ꡑ도 없어지고 스승 김씨가,ꡒ뭐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ꡓ하면서 모든 걸 맡기더란다. 선생이 작고한 뒤로는 그 아들 기원 씨와 김박영 씨, 그리고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 셋이 각궁을 만들었는데, 묘하게도 김 선생 아들 기원 씨는 88년,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는 9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김박영 씨만 지난 96년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돼 우리 활 맥을 잇고 있다. 김씨는 궁시장이지만 화살은 못 만든다. 무형문화재 지정을ꡐ궁장ꡑ과ꡐ시장ꡑ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ꡐ궁시장ꡑ칭호를 얻었다. 대신 화살만 30년 넘게 만들어온 나기완(46) 씨와 함께 20여 년 일했다. 인하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막내아들 윤경(29) 씨가 최근 가업을 잇겠다고 아버지를 돕고 있다. 얼핏 대나무를 깎아 휘어놓은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각궁은 8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활의 가운데 부분은 대나무, 줌통(손잡이) 부분은 참나무, 양쪽 끝에는 뽕나무를 이어 붙인다. 활 안쪽에는 소 힘줄을, 활 바깥에는 물소뿔을 붙인다. 화피(樺皮․벚나무 껍질)는 모양을 다듬고 방수 역할을 하는 마감재이고, 시위가 닿는 부분에는 쇠가죽을 덧댄다. 이 모든 재료를 붙이는 풀은 민어부레를 세 시간 넘게 끓여 만든 천연 접착제다. 소 척추에서 빼내는 힘줄과 민어부레는 그리 많이 나오는 재료가 아니어서ꡒ활 하나에 소 세 마리, 민어 수 십 마리ꡓ라는 말도 있다. 1년에 70장(張)쯤 만드는데, 한 장 만드는데 3500번 정도 손길이 간다고 한다. 풀칠만 해도 같은 자리에 15번쯤 하는데, 워낙 풀칠하는 곳도 많고 깎고 다듬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한 장만 집중해서 만든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옛날 방법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시간은 줄이기 어렵다. 그는ꡒ붓으로 물 10되를 발라 마를 정도가 돼야 활 하나가 완성된다ꡓ고 했다.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것 없어] :ꡒFRP인지 그 강화플라스틱이란 거 있잖아요. 그거 못써요. 접착제도 그렇고. 더 나은 게 있으면 재료를 바꿀 텐데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게 없으니 옛날 방식대로 만드는 게지요.ꡓ깎고 다듬는 도구들도 전부 구식이다. 궁창(활을 대고 모양 만드는 도구), 디짐(활을 둥글게 하는 나무틀), 두루자(활 모양을 고정할 때 쓰는 나무토막) 같은 도구들이 모두 생소했다. 끌 비슷한 자구(활 깎는데 사용)와 줄칼 모양 환(활 다듬을 때 사용)도 모두 쇠막대를 사다가 직접 만든 도구다. 쇠뿔을 녹여 펼 때 쓰는 구형 전기화로가 제일 ꡐ신식ꡑ이었다.ꡒ힘든 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지요. 활 하나를 만들어도 깎고 풀칠하는 일을 수 십 수 백 번씩 반복하고 기다리고 해야 하니까요.ꡓ이렇게 만든 활은 펴놓은 길이가 122~123cm 밖에 안될 만큼 짧다. 폭은 2.5cm, 무게는 50g 정도로 아주 가볍다.ꡒ취미 삼아 국궁하려고ꡓ 많이 사간다는데,ꡐ보통ꡑ은 하나에 50만 원,ꡐ작품ꡑ은 최하 100만 원이다. 94년인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넘긴 활은 길이 165cm로 큰 활이었는데 300만 원 받았다. 1년 내내 재료 구입하고, 겨우내 만든 활은 3월부터 새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ꡒ돈은 못 벌어요.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이고.ꡓ그는,ꡒ막내아들이 대를 이어 궁시장이 됐으면 하느냐ꡓ는 물음에 아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ꡒ지가 안한다면 안시켜요. 하기 싫으면 절대 못해요. 누구라도 배울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하세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됩니다.ꡓꡐ射有似平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활쏘는 것은 군자의 도리와 같으니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라).ꡑ 중용(中庸)에서 이른 말이다. 활과 평생을 살아온 김씨의 마음가짐이 늘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한현우 週刊部 記者 週刊朝鮮 2000.01.27 62~64쪽)
김박영(無形文化財ꡐ弓矢匠ꡑ김박영 氏) [記事] : 중국 고문헌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옛부터ꡐ동이(東夷)ꡑ라 일컬어졌다 한다.ꡐ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ꡑ이란 뜻이다. 문명과 이기(利器)가 발달하면서 활의 쓸모는 자리를 잃고 말았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는 이가 있으니, 부천의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가 그 주인공이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ꡐ궁시장ꡑ은 전국에 3명 뿐인데, 그 중에서도 활 전문가(弓匠)로는 김씨가 유일한ꡐ적자(嫡子)ꡑ다. 본래 고향이 경북 예천인 김씨가 복사골에서 활의 맥을 잇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ꡒ선친도 궁장이었지만, 난 서른이 다 될 때까지도 다른 사업에 손을 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취미에 맞지 않는 거야. 결국 6.25 직후에 활 만드는 친척 형님 일을 돕다가 부천(당시 소사읍)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자원했지요. ꡓ당시 이 곳에서는 고(故) 김장환 궁장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 덕택에 71년 궁시장은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지만, 그는 84년 7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수자이던 아들도 88년 교통사고로 횡사해, 결국 김박영 씨가 대를 잇게 됐다. 김씨가 만드는 것은 우리 활 중에서도 유일하게 부천에서 제작․계승되고 있는 각궁(角弓). 쇠뿔을 써서 만드는 각궁은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197~220년)때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ꡒ곧게 펴진 양궁(洋弓)과는 달리 우리 활은 둥그렇게 말려들어간 모양의 반곡궁이예요. 활을 쏘지 않을 때는 시위를 풀어놓아 탄력이 죽지 않도록 하는 비결이지요.ꡓ김씨는 그래서 우리 활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대회 규정에 나와있는 사(射)거리만 보더라도 양궁이 90m인데 반해, 국궁은 145m에 이를 정도로ꡐ성능ꡑ이 월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ꡐ천하의 명물ꡑ답게 재료만도 동식물성 8가지가 절묘하게 섞여 들어간다. 뽕나무, 참나무, 대나무, 쇠뿔, 소의 힘줄이 한데 어울려 활의 몸체를 이루고, 접착제로는 민어 부레를 끓인 풀을 쓴다. 그리고 방수 효과와 미관을 위해 화피(벚나무 껍질)로 마무리한다.ꡒ활 한 장에 소 3마리가 들어가는 셈이죠. 활 양쪽에 쇠뿔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가고, 또 안쪽에는 소 등심줄 두 개를 덧대야 하니까 말이지요.ꡓ활을 만드는 데는 1년 4계절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봄에 갖은 재료들을 장만한 뒤, 여름 내내 이 것들을 자르고 불에 구부리고 삶는 과정을 거친다. 추석이 지난 후 찬바람이 일고서야 본격적인 공정에 들어가는 활 만들기는 이듬해 정월 말쯤 끝이 난다. 매일 아침 공방에 나와 활 재료를 매만지는 김씨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좌한 채로 일에 몰두한다. 한창 때는 숙식을 공방에서 해결하기 일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야 할 때도 있다.ꡒ눈으로 가늠하고 손으로만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심없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서는 그만한 인내력을 찾아보기 힘들지요.ꡓ
그래선지 김씨로서는 누구라도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줄 생각이지만 지원자가 드물다. 지금은 부산 출신의 전수 장학생 1명과 막내아들이 문하에서 활만들기의 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ꡒ천직이라 생각합니다. 활과 씨름하고부터 지금껏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니까.ꡓ40년 외길 인생을 회고하는 김씨의 목소리에서는 오랜 세월을 이기고 난 대가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전병근 記者 朝鮮日報 2001-05-18)
김박영(ꡐ弓矢匠ꡑ無形文化財 47號 김박영 氏) [記事] : 2005년 5월 5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성주산 기슭의 활터인 ꡐ성무정ꡑ(聖武亭). 일제시대부터 궁사(弓士)들이 활쏘기를 즐겨온 이 곳에는 마디 굵은 손으로 40년 동안 묵묵히 전통 활을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다. 국내 유일의 궁시장(弓矢匠)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 김박영(金博榮․76) 씨. 김 씨는 이 날도 11일부터 열릴 경기도 체전에 참가하는 부천시 국궁 대표선수 한광인(54) 씨의 활을 수리해주고 있었다. 한 씨의 활 몸체에 민어 부레(접착제)로 붙여놓은 소 힘줄(등심)의 이상 유무를 꼼꼼히 살펴본 뒤 활을 180도로 접었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ꡒ동물 및 식물성 재료로만 만드는 전통 활은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아요. 활 쏘는 사람 치고 허리 굽은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ꡓ성무정 1층에 자리 잡은 5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활 수리를 마친 김씨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전통 활 칭찬을 시작했다. 그는 ꡒ화학 물질로 만든 양궁은ꡐ죽은 활ꡑ이어서 전통 활보다 사(射) 거리가 짧다ꡓ며,ꡒ시위를 당겨보지 못한 사람은 연하고 부드러운 국궁의 맛을 도저히 알 수 없다ꡓ고 말했다. 전통 활의 사 거리가 140m인데 반해 일본의 대나무 활은 30m, 양궁은 70m에 불과하다는 것. 그가 만드는 각궁(角弓․뿔 재료가 들어가는 전통 활의 한 종류)의 재료는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벗나무 껍질(화피), 물소 뿔, 소 힘줄, 민어 부레, 쇠가죽 등 8가지다. 1개의 활이 탄생하려면 이들 재료를 깎고, 다듬고, 말리는 6개월 과정을 거쳐야 하며 3000번 이상의 손길이 간다고 한다. 그는 고구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같은 활 제작법을 사용하고 있다. 활의 품질을 위해 찬바람이 돌 때만 만드는데 보통 1년에 50여 개를 제작한다. 이렇게 만든 활은 60만 원~200만 원에 팔린다. 활 제작 철이 아닐 때는 외부 강연에 나선다. 7, 8일엔 활박물관(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서 제작 시연을 펼칠 예정이다. 2004년 12월 개관한 이 곳엔 그가 만든 예궁(궁중에서 사용되던 것), 정양궁(과거시험 용), 고궁(말 위에서 쏘는 활) 등 여러 형태의 활이 전시돼 있다. 그는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올라와 부천에 정착한 1965년부터 성무정을 떠나지 않고 있다. 궁시장으로서 첫 중요 무형문화재(1971년 지정)로 지정됐으며 그의 스승인 고(故) 김장환 선생도 일제시대부터 이 곳에서 활을 만들었다. 아버지 대에 이어 활을 만들고 있는 김씨는 막내아들을 전수 장학생으로 삼고 있어 3대째 가업을 이끌고 있다. 김씨는,ꡒ끈기 있는 사람이 활을 배우기 위해 공방에 찾아오면 언제든 제작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싶다ꡓ고 말했다.(박희제 記者 東亞日報 2005.5.6 (금)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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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全國 規模 國弓大會 열린다 : 활 故庄 이미지 살리고 觀光客 誘致․地域景氣 活性化 期待) [記事] : 예천군이 활의 고장 이미지를 살리고 전통 활의 문화적 보존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2008년도에 전국 최대 규모의 국궁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수남 군수는 2007년 12월 3일 제129회 예천군의회 1차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김 군수는 "예천읍 왕신리가 각궁 제작의 본거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고증 자료가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며 "그런 취지로 왕신리에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 각궁체험관을 건립했으나 활용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군수는 "현재 예천읍 왕신리 출신 사람들 중 전국 각지에서 각궁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천군이 양궁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전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와같은 역사적 전통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군수는 "내년에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활용해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국궁대회 개최를 적극 검토 중"이라며 "이 대회를 계기로 예천을 명실상부한 활의 고장으로 전국에 알릴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예천군은 2006년 9월 6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예천읍 왕신리에 각궁제작체험관을 완공, 이곳에 각궁 제작 명인을 입주시켜 관광객들과 군민들에게 전통 활의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국궁을 전시 판매해 지역의 상징인 활을 이용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醴泉인터넷放送 2007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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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金鍾國) : 1937- , 예천읍 서본리 65번지 출신, 화살 제작자, 오늘날 사용되는 화살은 유엽전(柳葉錢)인데, 화살의 길이가 85cm이고, 화살의 몸은 대나무이고, 오니(화살의 上部)는 싸리나무, 깃은 꿩깃으로 만드는데, 사정(射程) 거리는 150m(最長 거리 300m) 정도이다. 1961년 7월부터 화살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그는 경북을 위시하여 경기도 일대에 널리 화살 공예가로서의 실력이 알려졌는데, 그는 좋은 화살이란 중심(허리힘)이 좋아야 하고, 대나무의 절이 곱고 골라야 하고, 무게와 두께가 한결 같아야 하고, 촉의 무게가 같아야 하고, 염색 역시 같아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1시(矢)에 수공(手工)이 150회나 걸려야 하는데, 그는 1개월에 500개를 생산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보다 양질의 화살을 보다 널리 보급하여 예천의 화살이 바로 국궁(國弓)에 있어서 대표적인 역할을 하였다.(醴泉大觀 1982)
김종국(重要無形文化財 保有者 認定 豫告 : 重要無形文化財 第47號 ''''弓矢匠'''' 保有者 金鍾國, 朴浩濬) [記事] :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2008년 2월 15일 문화재위원회(무형문화재공예분과)의 심의를 거쳐 김종국(金鍾國, 남, 1940년생, 경북 예천군)ㆍ박호준(朴浩濬, 남, 1944년생, 인천 부평구)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키로 하였다. ''''궁시장(弓矢匠)''''은 전통 궁시(弓矢)를 만드는 장인이다. 궁시는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던 무기로, 우리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끊임없이 궁시 제작 기술을 발전시켜온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진화된 각궁(角弓)을 소유한 활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각궁과 죽시(竹矢)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궁시장(弓矢匠)''''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종국은 1960년 전보유자 故 조명제 선생의 제자로 제시업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죽시 제작에 종사해 왔다. 오랫동안 전통 죽시 제작에 힘써왔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있어 그 솜씨가 매우 치밀하며 숙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완성된 죽시의 예술성ㆍ조형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기량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아울러, 이들은 전통적인 화살 제작 기법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전통 죽시 제작 기법을 이론화하여 화살이 보여주는 여러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향후 보유자로서 궁시장의 전승ㆍ교육 활동을 수행하여, 오랫동안 우리 역사 속에 면면이 전승되어 오던 각궁과 죽시 제작 기술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聯合뉴스 2008년 2월 26일 (화)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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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현 등 15명, 22일 과기부총리 표창...축하합니다.
예천교육청(第43回 科學의 날 記念式, 빅뱅! 醴泉 科學 꿈 잔치 醴泉初等 體育館에서 開催) [記事] :
경상북도예천교육청(교육장 조찬영)은 "제43회 과학의 날"을 맞아 2010년 4월 22일 오전 9시 과학의 날 기념식과 함께 기념행사로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예천초등학교 체육관)'''' 를 개최했다.
이날 개최된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행사는 학생들의 생활 주변에서 흥미로운 과학 탐구 주제를 선정하여 스스로 해결함으로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과학적 태도를 길러 과학기술 교육 활성화의 기반을 조성할 목적으로 개최됐다.
이번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에는 초등학교 10, 중학교 6개교 예천곤충연구소, 상주기상대, 예천발명교실 등 관내 유관 기관이 동참하여 19개의 다양한 과학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관내 초·중학교 현장 체험 학습과 일반인들의 개별 관람이 이어졌다.
이날 체험 활동과는 별도로 청소년과학탐구대회가 동시에 개최되어 예천동부초등학교(로켓과학), 예천남부초등학교(기계과학), 영주 폴리텍대학(전자과학 탐구대회) 등이 열려 각 학교 예선 대회를 거쳐 선발된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한편, 과학기술부총리 표창 수상 우수 과학 어린이 11명(강아현.권순재.문경준.정인영.이다경.이현정.김근현.도연희.김정미.김용규.최하늘), 과학 교육 유공 교원 4명과 과학기술부총리 표창장 등을 조찬영 예천교육장이 전수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4-22 오전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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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03
공군 제16전투비행단(24日, 空軍參謀總長盃 模型航空機大會 慶北北部地域 豫選)| 예천신문 | 2010.04.23 10:06/ http://cafe.daum.net/ycnews365/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문화제 제32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10(모형항공기 대회)대회 경북 북부지역 예선이 2010년 4월 24일(토) 공군 제16전투비행단에서 해당지역 초*중*고교생 2백79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경북 북부지역 : 구미, 군위, 김천, 문경, 봉화, 상주, 안동, 예천, 영덕, 영주, 영양, 의성, 청송, 울진)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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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 : 예천은 신궁의 나라 <김영진 시인>| 예천신문 1010.03.31 17:26/ http://cafe.daum.net/ycnews365/9A53/3/ 예천은 신궁의 나라 -명무 권영학/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권우갑 옹의 궁방(弓房)에서 자란/ 소년 권영학을 아시나요./ 자신이 만든 활로 신궁(神弓)이 된/ 명무 권영학 선생을 아시나요.// 최고의 궁장은 최고의 궁사/ 아비의 활 만들기 이어받은 명궁장/ 궁장(弓匠)* 되고 명무(名武)* 되어/ 군자지도(君子之道)의 전설이 된 가문// 천년 세월 활과 살 만드는 동안/ 궁사의 시위를 떠난 화살은/ 날아가는 족족 표적에 명중했다지요//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百代)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 소백산맥 정기 받아/ 국궁(國弓)의 성지가 된 예천이랍니다.// *궁장:활을 만드는 장인/ *명무:활을 잘 쏘는 자에게 주는 칭호/ *제침문(祭針文) 1절/ 시작 노트 : 예천이 낳은 권영학 선생은 활을 만들고, 직접 활을 쏘았다. 대한민국 공인 6단 명궁(名弓)이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한 명무이시다. 그의 궁사로서의 내력은 부친 권우갑 씨로부터 시작되었다. 권옹은 활만들기에 평생을 바쳐 온 사람이다. 부친의 솜씨를 이어받은 권영학 선생은 활 만들기에서 활 쏘는 궁인으로 명성을 얻은 한국의 명궁이다. 이 고을에서는 김진호, 윤옥희 같은 신궁이 대를 잇고 있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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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權寧호) : 1924- , 예천읍 왕신2리 170번지 출신, 궁장(弓匠)이다. 1992년 11월 24일 MBC ''''우리 시대의 명인(名人)''''이라는 프로를 통해 방영(放映)되었다.(醴泉新聞 19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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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덕 : 14대 400년 동안 외고집으로 예천궁(醴泉弓)을 만들어온 사람이다.(國民日報 1998.4.8 임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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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수 : 예천 출신, 경남 마산 공설운동장 용마정의 국궁제작소(國弓製作所) 대표, 조상의 전통 문화를 살리기 위해 국궁 제작에 몸바쳐 왔다. 경남의 유일한 국궁 제작 기술 소지자로 국궁 제작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새嶺南 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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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정(韓國工藝 ‘내공’ 쌓아 새 길 찾는다) [記事] : 활공예 전수자 권오정(33) 씨는 2009년 10월부터 매달 넷째주 주말에 1박2일 동안 진행되는 한국벤처공예대학 강의를 듣고 있다. 경북 예천에서 1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전통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의 아버지 권무석(68) 씨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서 30년 동안 활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최고 기술을 지녔음에도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우리 전통활은 나무와 물소뿔 등 10가지 이상의 재료를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여서 만드는 ‘복합궁’으로, 습도가 높으면 풀이 붙지 않아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에 4개월만 작업할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장인 한 명이 만들 수 있는 활의 수는 1년에 50개밖에 안된다. 활 가격을 평균 60만원으로 잡을 때 전부 팔린다고 해도 1년 수입은 3000만원. 여기서 재료비와 경비를 빼면 남는 돈은 2000만원 남짓이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사태 이후 가공되지 않은 소의 부위를 들여올 수 없도록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물소뿔을 들여오려면 직접 중국에 가 어느 정도 가공해서 수입해야 한다. 권씨는 “우리는 동이족이라고 불릴 만큼 활 문화가 발달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업을 잇기 어렵다”면서 “활의 역사, 활 쏘는 법, 활쏘기 정신 등 활 문화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벤처공예대학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활 페스티벌을 열고 교육사업을 하는 것이다...(京鄕新聞 20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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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갑(權又甲) : 1918-1989, 예천읍 왕신리 171번지에서 태어나 예천읍 남본리 69번지로 옮겨 살았다. 본관은 안동, 한규(漢奎)의 아들이다. 조부 오련(祖父五蓮) 때부터 가업(家業)으로 내려온 활을 만드는 조궁술(造弓術)을 1935년부터 익혀 경상북도 지방 무형문화재 제6호인 궁시장(弓矢匠)에 등록(1980.12.30 指定)되었다. 권우갑이 만든 활은 일일이 시험적으로 직접 쏘아 그 성능을 점검한 다음에 상품으로 내어놓았기에 전국 활 보급률(普及率)의 80%가 넘었다고 한다. 활을 만드는 일은 여름과 겨울에는 피하고 봄과 가을에만 만드는데, 이에 따라 춘궁(春弓)과 추궁(秋弓)으로 나누어진다. 춘궁보다 추궁이 더 좋으며 더욱이 추석 뒤에 활을 만들기에 제일 좋은 시기이다. 물소의 뿔을 붙이는 것과 소의 심줄 처리는 새벽에만 하였다. 특히 장심(長心)입히는 일은 전국에서 권우갑(權又甲)만이 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만든 활과의 성능 차이는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권우갑이 만든 활은 다른 활보다 2-3배 높은 가격으로 팔렸다. 예천에서 생산되는 활은 복합 단궁(複合短弓)으로서 일본이나 서양의 활에 비해 그 모양에나 실용면에서 훨씬 앞섰는데, 궁도(弓道)의 용구로서 뿐 아니라 순수 수공예품으로서 탁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권우갑의 아들 영학(寧鶴, 1943-)도 활 만드는 기술을 1955년부터 이어받아 전형적인 기법을 지니고 있어 전국 조궁계(造弓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구에 있던 경상북도 궁도협회가 예천읍으로 유치(1981)되어 권영학(權寧鶴)은 그 전무 이사(專務理事)가 되어 도내 13개 시군 궁도협회(弓道協會)를 관리하였고, 제1회 전국 국궁대회 때 1위를 하는 등 수 많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여 궁도 예천(弓道醴泉)을 빛내고 있다. [工程 期間] : 활 1개 만드는데 100번 이상 손이 가야하고, 재료 구입부터 제품이 되어 나오는 기간은 1년이 넘게 걸린다. 좋은 활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붙임이 가장 중요하고 심을 잘 놓아야 하고, 해궁(解弓)도 잘 해야 된다. [材料] : 이는 대나무, 물소뿔, 소심줄, 민어풀, 뽕나무, 참나무, 화피, 가죽, 밀실 등이다. 대나무는 활의 몸통 부분에 사용되는데, 주로 진주(晋州), 밀양(密陽)의 산죽(山竹)을 이용한다. 뽕나무는 활의 목소와 고자부분의 재료로 야생 산뽕나무를 이용한다. 물소뿔과 소심줄은 활의 앞뒷면에 붙여져 탄력성과 신축성을 강하게 해주는 데 쓰인다. 물소뿔의 규격은 70cm, 두께 1cm 짜리 두 개를 사용한다. 색깔에 따라 흑각(黑角), 백각(白角), 홍각(紅角)으로 나눠지고, 흑각인 경우엔 사람 인자(人字) 무늬가 선명한 것을 상품으로 친다. 소심줄은 쇠망치로 쳐서 기름과 살점을 완전히 제거시켜 손으로 실날같이 째서 사용한다. 조궁(造弓) 때에 가장 중요한 재료인 민어풀은 민어를 삶아 만든 접착제(接着劑)로 활에 강도를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뽕나무 껍질로 만든 화피는 습기를 방지하고 활의 고장을 줄이면서 모양을 내주는 재료이다. [道具] : 활 한 개 만드는데 여러 가지 재료와 도구가 필요하지만 공정(工程) 자체가 복잡하고 정교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일히 설명하기가 어렵다. 활 한 장 만드는데 필요한 용구는 톱, 손칼, 줄, 화덕, 모탕 등 20여 가지가 필요하다. 활 모형을 잡는 디지미, 짜고, 뿔을 대나무에 조우는 두루자, 힘줄로 만든 밧줄, 뿔과 활이 돌아간 것을 바로 잡는 궁틀, 민어풀을 끓이는 도가니, 민어풀을 다려서 소힘줄과 반죽해서 빚어내는 심빗, 박달나무로 된 심판, 활 제작을 끝내고 해궁(解弓)할 때 쓰는 도지게, 쇠망치, 대칼, 페이퍼 등도 중요한 용구들이다. 그러나 재료와 용구가 좋다고 해서 좋은 활이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활이 제작될 수 없다. 활은 계절과 만드는 시간에 따라 성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름, 겨울을 피해 봄에는 재료 처리 공정(工程) 만을 하고 나머지 모든 공정은 가을에 한다. 특히 수우뿔 붙이는 작업 만은 새벽 1시에서 오전 6시 사이에 한다.(每日生活情報 1984.1.29, 醴泉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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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영 : 1929- , 예천읍 왕신리 356번지 태생, 호는 우연(又連), 본관은 경주, 홍경의 장남, 예천읍 대창학원 졸업, 궁시장 무형문화재 김장환(1985년 작고)의 제자, 각궁 궁시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1966.12.10 지정)로 지정되었다. 1년에 70장쯤 활을 만드는데, 한 장 만드는데 3,500번 정도 손길이 간다고 한다. 풀칠만 해도 같은 자리에 15번쯤 하는데, 워낙 풀칠하는 곳도 많고, 깎고 다듬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한 장만 집중해서 만든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옛날 방법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그는 "붓으로 물 10되를 발라 마를 정도가 되어야 활 하나가 완성된다."라고 했다(조선일보). 부천시 심곡본1동 579- 25번지에서 30여 년 간 활을 만들어왔다. 그는 어릴 적부터 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했던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아버지가 특별히 차고앉아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대창학원 졸업 무렵에는 왠만큼 기초적인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 1950년 아버지가 별세하자 메리야스공장 등 수공으로 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활 만드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 년 간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33세 때(1964) 고향 사람의 추천으로 경기궁의 명인 김장환 선생(1985년 작고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國民日報 1995.6.19, Yahoo 2001)
김박영(角弓 製作 33年 김박영 氏 : 우리 時代의 匠人 : 11) [記事] : ◎동이의 혼실어 활맥잇기 외길/ 궁장인 선친의 영향 듬뿍받아/ 명인 김장환 문하 혹독한 수련/ 한정 3500번 손질ꡒ혼신의 작업ꡓ// [전국 통틀어 4명 불과] : 활은 무기 가운데 가장 그 연원이 깊다. 인간의 무기 발달사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설이 있어 왔으나 고대 원시인들이 돌도끼 다음으로 일찍 만들어 썼던 것이 활과 화살이라는 사실만은 대체로 일치하는 것 같다. 궁시(활과 화살)는 시대에 따라, 혹은 부족 지방 나라에 따라 각각 그 형태가 다르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궁시는 좀 독특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것도 그렇지만 크기에 비해 탄력이나 사거리가 탁월하다는 점도 그러하다. 서울시에 인접한 경기도 부천에서 33년째 활을 만들어온 궁장 김박영 씨(66․부천시 심곡본1동 597의 25). 전국을 통틀어 4명에 불과한 궁장기능 보유자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자 가장 충실한 현업 장인으로 꼽히는 김씨는,『적어도 활에 관한 한 세계에서 우리 민족이 최고』라고 단언한다.『옛 중국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가리켜 동이족이라고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이란 옥편에 나오는 대로 그저 동쪽 오랑캐란 뜻이 아니라 큰 활(대궁)을 쏘는 무서운 사람들이란 뜻이지요』김씨가 궁장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집안의 영향이 컸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했던 부친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부친이 특별히 차고앉아 가르치지도 않았건만 고등학교 졸업 무렵엔 웬만큼 기초적인 소양을 익힐 수 있었다. 50년 부친이 별세하자 메리야스공장 등 수공을 하면서 생계를 잇기도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엔 늘 활 만드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수 년 간 방황과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서른세 살 나던 해 고향 사람의 추천으로 경기궁의 명인 김장환 선생(85년 작고․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기능보유자)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그로부터 33년, 지금 생각하면 아마 정해진 숙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났고 그 밑에서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쳤던 것이 오늘의 제가 있게 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같이 배웠던 김기원 씨(김장환선생의 아들)가 중도에 유명을 달리해 서운하기 짝이 없다는 김씨는 자신이 스승의 기예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음에도 불구,『나는 아직 완성이 덜 됐다』며 겸손해 한다. 김씨에 따르면, 본래 우리 나라 활에는 12가지 종류가 있었다. 정량궁, 예궁, 각궁, 목궁, 단궁, 죽궁 등이 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각궁만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맥궁 또는 국궁이라고 불리는 이 활은 쏘는 사람의 힘에 따라 강하고 약함을 자유 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매우 우수한 활이다. 활은 또 크기에 따라 장궁과 단궁이 있고, 구조상으로는 환목궁과 복합궁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활은 복합단궁으로 다른 나라 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미려하다. 역사 속의 영웅들, 예컨대 고구려 동명성왕이나 양만춘, 조선 태조 이성계나 이 충무공 등이 하나같이 신궁이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섯 평 남짓한 궁방의 한 편에는 김씨의 제자 두 사람(김기원,김동진)이 조궁작업에 여념이 없다. 활틀에 부레풀을 먹이고 쇠심줄을 감는 일이 보기에도 수월치 않은 일임을 짐작케 한다. 김씨는,『정교한 국궁 한 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적어도 3,500번 정도의 손질이 가야 한다』며,『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수공으로 만들어내는 활의 본질은 마찬가지』라고 귀띔한다. 활 제작에 필요한 재료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물소뿔, 쇠심줄, 민어 부레 등 줄잡아 10여 가지가 필요하다. 어렵사리 재료가 준비되고 나면 우선 대나무를 물에 푹 삶거나 불에 달궈서 휘기 알맞게 만든다. 다음 대나무를 적당히 말린 후 필요한 크기로 재단한다. 줄을 거는 부분(상고)에는 뽕나무를 끼우고 손잡이 부분(줌통)에는 참나무를 댄다. 궁체(활몸통) 바깥쪽에 물소뿔을 붙인 후 대나무 뒷면의 외피를 파내고 심을 놓는다. 민어 부레풀로 쇠심줄을 붙이는데 8~9번 정도는 덧칠을 해야 들뜨거나 떨어지지 않는다. 대략 모양을 갖춘 궁체를 잘 다듬어 바깥쪽에 벚나무로 합피를 만들어 씌우면 날렵한 모양의 궁체가 된다. 이 것이 제1단계인 조궁이다. 그러나 활 제작에 가장 어려운 작업은 2단계인 해궁. 말하자면「균형잡기」에 해당하는 해궁은 활의 균형과 쏠 때의 감을 판별해내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마지막 과정은 시위걸기로 기궁이라고도 한다. 김씨는 여름 한철 손을 놓아가며 1년에 줄잡아 300정 안팎의 활을 만들어내고 있다.『완성까지 수 천 번의 손길이 가야 하는 국궁 제작을 위해서는 정신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최근들어 지역 단위의「궁시전시회」를 비롯,「보유자 작품전」「공예협회 35인전」등 크고 작은 전시회가 잇달아 마련되고 있어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경제사회적 성장과 함께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인지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는 외국에서까지 찾아와 활을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는 흐뭇해했다. 두세 명의 제자 중에 스승의 손자인 김기흥 씨(44)에게 특히 기대를 걸고 있다는 그는 활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다가 제자에게 자신의 기술을 오롯이 전수하는 것이 남은 할 일이라고 말했다.(김종구 國民日報 1995-06-19)
김박영(韓國의 匠人들(2)/ 弓矢匠 김박영 氏 ; 활-先祖 숨결 깃든 3500番의 손질 ; 다듬고 붙이고 풀어주고…ꡒ野生馬 길들이 듯 精誠 들여야 名弓 誕生ꡓ) [記事] : 대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하지만, 어떤 물건은 진보가 필요없을 만큼 애초 완벽하다. 우리 활이 그렇다.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梁萬春)이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을 패퇴시킨 그 활, 맹렬히 날아가 적장(敵將) 왼쪽 눈을 관통한 화살을 잉태한 모체(母體)가 어찌 더 정확하고 빠를 수 있으랴. 그토록 완벽한 모양새와 쓰임새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는 그 활을 오늘날까지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이다. 그 스승 김장환(85년 작고) 선생, 증조부 때부터 5대째 내리 물려받은 기술이다. 동이(東夷)라는 말에서 보 듯 우리 민족은 활 잘 쏘는 민족이다. 올림픽 때마다ꡐ전 종목 석권ꡑ하는 양궁 금메달 소식은 괜한 게 아니다. 그러나 활은 이제 무기로서의 수명을 다했다. 서울 사직공원 뒤편 황학정에서ꡐ건강 레포츠ꡑ로 쏘는 활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일요일 낮마다ꡒ준비하시고… 쏘세요!ꡓ하는 되바라진 구령에 동원되는 것도 활이다. 옛날 불덩이를 달고 날던 화살이 이젠 일확천금을 달고 색색깔로 빙글빙글 도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궁시장 김씨에게 처음 연락한 건 화요일이었다. 그런데 그는,ꡒ토요일에야 만날 수 있다ꡓ고 했다.ꡒ어딜 다녀오실 계획이냐ꡓ했더니, ꡒ주중에는 너무 바빠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ꡓ고 했다.ꡒ찬바람 불 때 활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무척 바쁘다ꡓ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찾아간 게 토요일이었다.
[각궁은 사정거리 300m나] : 공방은 경기 부천 심곡동 산자락에 있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비탈길을 오르니ꡐ성무정(聖武亭)ꡑ이란 활터가 나왔다. 활터 한 켠에 세 평 남짓한 그의ꡐ부천 공방ꡑ이 있었다. 공방 안에 들어섰을 때 그는 다 만든 것 같은 활을 무릎으로 누른 채 두 손으로 구부렸다 폈다 씨름하고 있었다.ꡒ모양을 다 갖춘 활에다가 숨을 불어넣는 겁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같은 작업이지요. 균형도 맞춰야 하고, 모양도 잡아야 하고….ꡓ그는 이 작업을ꡐ해궁(解弓)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활(弓) 모양을 갖췄다고 다 된 게 아니라, 풀어줘야(解) 비로소 활이 된다는 설명이다.ꡐ활을 어른다ꡑ고도 한다.ꡒ왜 우리 활이 세계 최고인데 수출이 안되는 줄 아세요? 보관했다가 쏘려고 꺼낼 때마다 해궁을 해줘야 하는데, 외국 사람들은 그 걸 할 수 없는 기라. 대만 사람들도 사가더만은 얼러서 쓰질 못하더라구요.ꡓ김씨가 만드는 우리 활 이름은ꡐ각궁(角弓)ꡑ이다.ꡐ맥궁(貊弓)ꡑ이라고도 한다. 물소뿔이 들어갔다고 해서 각궁이라 하고 맥족, 즉 고구려 민족의 활이라고 해서 맥궁이다.ꡐ국궁ꡑ이란 말은 양궁(洋弓)이 들어오면서 생긴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기록상 각궁은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당서(唐書)에ꡐ각궁ꡑ이란 말이 나오고,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222년)부터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첨단 소재로 만든 양궁에 비해 사거리가 훨씬 길다. 양궁에서 사대(射臺)와 과녁 거리는 최대 90m인데, 국궁은 145m로 55m나 멀다. 게다가 화살이 날아간 뒤 잔여 충격을 활이 전부 흡수해, 손에 전달되는 충격이 거의 없는 활이다.ꡒ각궁 특징이 힘이 좋고 멀리 날아간다는 겁니다. 각도까지 조절해서 쏘면 300m까지도 날아갑니다.ꡓ사람이 손으로 잡아당겨 쏘는 화살이 300m까지 날아간다니, 정말 그럴까 싶었다. 박세리가 티샷한 골프공이 굴러가는 것까지 평균 260야드(234m)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거리다. 그런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김씨가 표정을 읽었는지ꡒ옛날엔 1000m 가까이 쏠 수 있는 활도 있었다ꡓ면서ꡐ옛날 이야기ꡑ를 한 토막 들려줬다.ꡒ신라 문무왕 때 구진천(仇珍川)이란 사람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만든 활이 천보대궁(千步大弓)입니다. 천보나 날아간다는 거지요. 그래서 당 고종이 구진천을 당 나라로 불러 천보대궁을 만들라 했는데,ꡐ재료가 다르다ꡑ면서 30보짜리를 만들었어요. 신라에서 재료를 갖다줬더니ꡐ바다 건너오면서 재료가 상했다ꡑ면서 60보짜리를 내놓았어요. 그래서 당 고종이 목을 쳐죽였답니다.ꡓ활 만드는 이는 함부로 손을 놀릴 수 없다는 뜻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는,ꡒ아무리 기록을 찾아봐도 활 잘 쏘는ꡐ명궁ꡑ은 많은데, 활 만드는 사람은ꡐ구진천ꡑ과 삼국시대ꡐ내마신득(奈麻身得)ꡑ이란 사람 밖에 없습니다.ꡓ내마신득은 포궁(砲弓)을 만들어 성곽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무형문화재 김장환 씨가 스승] : 김씨는 1929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왕신동에서 태어났다.ꡒ당시 예천에서는 집집마다 활을 만들다시피 했다ꡓ는 게 김씨 설명이다. 선친도 활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자연스레 활과 친해졌다. 그러나 선친은 45년 해방과 함께 활 만드는 일을 접었고, 48년 작고해 활 만드는 일을 더 배울 기회가 없었다.ꡒ한 동안 셔츠 만든다고 옷감 짜는 기계 일을 했지요. 그 때 서울 서대문에 있는 공장에도 왔다갔다 했는데, 활이 항상 눈에 선합디다. 어려서 보고 자란 게 그 거여서인지는 몰라도…. 그러다가 김장환이란 분을 알게 됐지요.ꡓ김장환 선생은 71년 국가에서 궁시장 첫 지정 때 무형문화재로 뽑힌 사람이다. 65년 여름, 김씨는,ꡒ부천에서 활 만드는 사람을 구한다더라ꡓ는 소리를 듣고 서울에 올라왔다.ꡒ밤차 타고 물어물어 부천까지 왔는데 아침 10시가 넘었어요. 그 땐 여기가 다 복숭아밭이었지. 내 얼굴 보자마자 대뜸ꡐ밥 먹었느냐ꡑ고 하기에ꡐ못 먹었다‘ 하니까 밥 한 그릇 주고는 그 때부터 일을 시키는 거야.ꡓ스승 김씨는 처음부터 줄톱으로 물소뿔 켜는 일부터 시키더란다.ꡒ활 만들어 본 적 있다고 했더니, 아마 시험해 본 모양이더라ꡓ고 했다. 한 달을 그 밑에서 일하는데 몇몇 이상한 일들도 벌어졌다. 스승 김씨는 김박영 씨 일하는 방에 마이크를 설치해 놓고, 일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ꡐ도청ꡑ을 했다. 집안에 일부러 돈을 흘려놓고 어떻게 하나 보기도 했단다.ꡒ뭐라고 푸념을 하니까 다들 마이크를 가리키면서 입술을 가려요. 그래서 내가ꡐ××하고 있네ꡑ하고 마이크에다 대고 욕을 했지요. 돈도 떨어져 있기에 다 주워서 갖다 줬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자 자질이 있나 없나 시험해 본 거 같애.ꡓ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니까,ꡐ마이크ꡑ도 없어지고 스승 김씨가,ꡒ뭐든 자네가 알아서 하게ꡓ하면서 모든 걸 맡기더란다. 선생이 작고한 뒤로는 그 아들 기원 씨와 김박영 씨, 그리고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 셋이 각궁을 만들었는데, 묘하게도 김 선생 아들 기원 씨는 88년, 김씨 수제자 김기원 씨는 98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김박영 씨만 지난 96년 중요무형문화재 47호로 지정돼 우리 활 맥을 잇고 있다. 김씨는 궁시장이지만 화살은 못 만든다. 무형문화재 지정을ꡐ궁장ꡑ과ꡐ시장ꡑ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ꡐ궁시장ꡑ칭호를 얻었다. 대신 화살만 30년 넘게 만들어온 나기완(46) 씨와 함께 20여 년 일했다. 인하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막내아들 윤경(29) 씨가 최근 가업을 잇겠다고 아버지를 돕고 있다. 얼핏 대나무를 깎아 휘어놓은 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각궁은 8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활의 가운데 부분은 대나무, 줌통(손잡이) 부분은 참나무, 양쪽 끝에는 뽕나무를 이어 붙인다. 활 안쪽에는 소 힘줄을, 활 바깥에는 물소뿔을 붙인다. 화피(樺皮․벚나무 껍질)는 모양을 다듬고 방수 역할을 하는 마감재이고, 시위가 닿는 부분에는 쇠가죽을 덧댄다. 이 모든 재료를 붙이는 풀은 민어부레를 세 시간 넘게 끓여 만든 천연 접착제다. 소 척추에서 빼내는 힘줄과 민어부레는 그리 많이 나오는 재료가 아니어서ꡒ활 하나에 소 세 마리, 민어 수 십 마리ꡓ라는 말도 있다. 1년에 70장(張)쯤 만드는데, 한 장 만드는데 3500번 정도 손길이 간다고 한다. 풀칠만 해도 같은 자리에 15번쯤 하는데, 워낙 풀칠하는 곳도 많고 깎고 다듬는 일도 잦기 때문이다. 한 장만 집중해서 만든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린다는 설명이다. 옛날 방법으로 하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장을 만들 수는 있어도 절대 시간은 줄이기 어렵다. 그는ꡒ붓으로 물 10되를 발라 마를 정도가 돼야 활 하나가 완성된다ꡓ고 했다.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것 없어] :ꡒFRP인지 그 강화플라스틱이란 거 있잖아요. 그거 못써요. 접착제도 그렇고. 더 나은 게 있으면 재료를 바꿀 텐데 전통 재료보다 나은 게 없으니 옛날 방식대로 만드는 게지요.ꡓ깎고 다듬는 도구들도 전부 구식이다. 궁창(활을 대고 모양 만드는 도구), 디짐(활을 둥글게 하는 나무틀), 두루자(활 모양을 고정할 때 쓰는 나무토막) 같은 도구들이 모두 생소했다. 끌 비슷한 자구(활 깎는데 사용)와 줄칼 모양 환(활 다듬을 때 사용)도 모두 쇠막대를 사다가 직접 만든 도구다. 쇠뿔을 녹여 펼 때 쓰는 구형 전기화로가 제일 ꡐ신식ꡑ이었다.ꡒ힘든 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고통을 많이 받지요. 활 하나를 만들어도 깎고 풀칠하는 일을 수 십 수 백 번씩 반복하고 기다리고 해야 하니까요.ꡓ이렇게 만든 활은 펴놓은 길이가 122~123cm 밖에 안될 만큼 짧다. 폭은 2.5cm, 무게는 50g 정도로 아주 가볍다.ꡒ취미 삼아 국궁하려고ꡓ 많이 사간다는데,ꡐ보통ꡑ은 하나에 50만 원,ꡐ작품ꡑ은 최하 100만 원이다. 94년인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넘긴 활은 길이 165cm로 큰 활이었는데 300만 원 받았다. 1년 내내 재료 구입하고, 겨우내 만든 활은 3월부터 새 주인을 찾기 시작한다.ꡒ돈은 못 벌어요. 돈 벌려고 하는 일도 아이고.ꡓ그는,ꡒ막내아들이 대를 이어 궁시장이 됐으면 하느냐ꡓ는 물음에 아들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ꡒ지가 안한다면 안시켜요. 하기 싫으면 절대 못해요. 누구라도 배울 사람 있으면 오라고 하세요.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됩니다.ꡓꡐ射有似平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활쏘는 것은 군자의 도리와 같으니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돌이켜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하라).ꡑ 중용(中庸)에서 이른 말이다. 활과 평생을 살아온 김씨의 마음가짐이 늘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한현우 週刊部 記者 週刊朝鮮 2000.01.27 62~64쪽)
김박영(無形文化財ꡐ弓矢匠ꡑ김박영 氏) [記事] : 중국 고문헌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옛부터ꡐ동이(東夷)ꡑ라 일컬어졌다 한다.ꡐ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ꡑ이란 뜻이다. 문명과 이기(利器)가 발달하면서 활의 쓸모는 자리를 잃고 말았지만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는 이가 있으니, 부천의 궁시장(弓矢匠) 김박영(71) 씨가 그 주인공이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ꡐ궁시장ꡑ은 전국에 3명 뿐인데, 그 중에서도 활 전문가(弓匠)로는 김씨가 유일한ꡐ적자(嫡子)ꡑ다. 본래 고향이 경북 예천인 김씨가 복사골에서 활의 맥을 잇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ꡒ선친도 궁장이었지만, 난 서른이 다 될 때까지도 다른 사업에 손을 댔어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해도 취미에 맞지 않는 거야. 결국 6.25 직후에 활 만드는 친척 형님 일을 돕다가 부천(당시 소사읍)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자원했지요. ꡓ당시 이 곳에서는 고(故) 김장환 궁장이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 덕택에 71년 궁시장은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지만, 그는 84년 75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수자이던 아들도 88년 교통사고로 횡사해, 결국 김박영 씨가 대를 잇게 됐다. 김씨가 만드는 것은 우리 활 중에서도 유일하게 부천에서 제작․계승되고 있는 각궁(角弓). 쇠뿔을 써서 만드는 각궁은 고구려 산상왕 26년(서기 197~220년)때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ꡒ곧게 펴진 양궁(洋弓)과는 달리 우리 활은 둥그렇게 말려들어간 모양의 반곡궁이예요. 활을 쏘지 않을 때는 시위를 풀어놓아 탄력이 죽지 않도록 하는 비결이지요.ꡓ김씨는 그래서 우리 활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다. 대회 규정에 나와있는 사(射)거리만 보더라도 양궁이 90m인데 반해, 국궁은 145m에 이를 정도로ꡐ성능ꡑ이 월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ꡐ천하의 명물ꡑ답게 재료만도 동식물성 8가지가 절묘하게 섞여 들어간다. 뽕나무, 참나무, 대나무, 쇠뿔, 소의 힘줄이 한데 어울려 활의 몸체를 이루고, 접착제로는 민어 부레를 끓인 풀을 쓴다. 그리고 방수 효과와 미관을 위해 화피(벚나무 껍질)로 마무리한다.ꡒ활 한 장에 소 3마리가 들어가는 셈이죠. 활 양쪽에 쇠뿔 두 개가 나란히 들어가고, 또 안쪽에는 소 등심줄 두 개를 덧대야 하니까 말이지요.ꡓ활을 만드는 데는 1년 4계절을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 봄에 갖은 재료들을 장만한 뒤, 여름 내내 이 것들을 자르고 불에 구부리고 삶는 과정을 거친다. 추석이 지난 후 찬바람이 일고서야 본격적인 공정에 들어가는 활 만들기는 이듬해 정월 말쯤 끝이 난다. 매일 아침 공방에 나와 활 재료를 매만지는 김씨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좌한 채로 일에 몰두한다. 한창 때는 숙식을 공방에서 해결하기 일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야 할 때도 있다.ꡒ눈으로 가늠하고 손으로만 다듬는 작업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심없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서는 그만한 인내력을 찾아보기 힘들지요.ꡓ
그래선지 김씨로서는 누구라도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줄 생각이지만 지원자가 드물다. 지금은 부산 출신의 전수 장학생 1명과 막내아들이 문하에서 활만들기의 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을 뿐.ꡒ천직이라 생각합니다. 활과 씨름하고부터 지금껏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니까.ꡓ40년 외길 인생을 회고하는 김씨의 목소리에서는 오랜 세월을 이기고 난 대가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전병근 記者 朝鮮日報 2001-05-18)
김박영(ꡐ弓矢匠ꡑ無形文化財 47號 김박영 氏) [記事] : 2005년 5월 5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성주산 기슭의 활터인 ꡐ성무정ꡑ(聖武亭). 일제시대부터 궁사(弓士)들이 활쏘기를 즐겨온 이 곳에는 마디 굵은 손으로 40년 동안 묵묵히 전통 활을 만들고 있는 장인이 있다. 국내 유일의 궁시장(弓矢匠)인 중요 무형문화재 제47호 김박영(金博榮․76) 씨. 김 씨는 이 날도 11일부터 열릴 경기도 체전에 참가하는 부천시 국궁 대표선수 한광인(54) 씨의 활을 수리해주고 있었다. 한 씨의 활 몸체에 민어 부레(접착제)로 붙여놓은 소 힘줄(등심)의 이상 유무를 꼼꼼히 살펴본 뒤 활을 180도로 접었다가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ꡒ동물 및 식물성 재료로만 만드는 전통 활은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 전혀 무리를 주지 않아요. 활 쏘는 사람 치고 허리 굽은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ꡓ성무정 1층에 자리 잡은 5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활 수리를 마친 김씨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전통 활 칭찬을 시작했다. 그는 ꡒ화학 물질로 만든 양궁은ꡐ죽은 활ꡑ이어서 전통 활보다 사(射) 거리가 짧다ꡓ며,ꡒ시위를 당겨보지 못한 사람은 연하고 부드러운 국궁의 맛을 도저히 알 수 없다ꡓ고 말했다. 전통 활의 사 거리가 140m인데 반해 일본의 대나무 활은 30m, 양궁은 70m에 불과하다는 것. 그가 만드는 각궁(角弓․뿔 재료가 들어가는 전통 활의 한 종류)의 재료는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벗나무 껍질(화피), 물소 뿔, 소 힘줄, 민어 부레, 쇠가죽 등 8가지다. 1개의 활이 탄생하려면 이들 재료를 깎고, 다듬고, 말리는 6개월 과정을 거쳐야 하며 3000번 이상의 손길이 간다고 한다. 그는 고구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같은 활 제작법을 사용하고 있다. 활의 품질을 위해 찬바람이 돌 때만 만드는데 보통 1년에 50여 개를 제작한다. 이렇게 만든 활은 60만 원~200만 원에 팔린다. 활 제작 철이 아닐 때는 외부 강연에 나선다. 7, 8일엔 활박물관(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에서 제작 시연을 펼칠 예정이다. 2004년 12월 개관한 이 곳엔 그가 만든 예궁(궁중에서 사용되던 것), 정양궁(과거시험 용), 고궁(말 위에서 쏘는 활) 등 여러 형태의 활이 전시돼 있다. 그는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올라와 부천에 정착한 1965년부터 성무정을 떠나지 않고 있다. 궁시장으로서 첫 중요 무형문화재(1971년 지정)로 지정됐으며 그의 스승인 고(故) 김장환 선생도 일제시대부터 이 곳에서 활을 만들었다. 아버지 대에 이어 활을 만들고 있는 김씨는 막내아들을 전수 장학생으로 삼고 있어 3대째 가업을 이끌고 있다. 김씨는,ꡒ끈기 있는 사람이 활을 배우기 위해 공방에 찾아오면 언제든 제작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주고 싶다ꡓ고 말했다.(박희제 記者 東亞日報 2005.5.6 (금)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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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全國 規模 國弓大會 열린다 : 활 故庄 이미지 살리고 觀光客 誘致․地域景氣 活性化 期待) [記事] : 예천군이 활의 고장 이미지를 살리고 전통 활의 문화적 보존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2008년도에 전국 최대 규모의 국궁 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김수남 군수는 2007년 12월 3일 제129회 예천군의회 1차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김 군수는 "예천읍 왕신리가 각궁 제작의 본거지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증명할 고증 자료가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며 "그런 취지로 왕신리에 적지않은 예산을 들여 각궁체험관을 건립했으나 활용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군수는 "현재 예천읍 왕신리 출신 사람들 중 전국 각지에서 각궁을 제작하고 있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천군이 양궁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전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와같은 역사적 전통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군수는 "내년에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을 활용해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국궁대회 개최를 적극 검토 중"이라며 "이 대회를 계기로 예천을 명실상부한 활의 고장으로 전국에 알릴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예천군은 2006년 9월 6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예천읍 왕신리에 각궁제작체험관을 완공, 이곳에 각궁 제작 명인을 입주시켜 관광객들과 군민들에게 전통 활의 제작 과정을 직접 보여주고 국궁을 전시 판매해 지역의 상징인 활을 이용한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醴泉인터넷放送 2007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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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金鍾國) : 1937- , 예천읍 서본리 65번지 출신, 화살 제작자, 오늘날 사용되는 화살은 유엽전(柳葉錢)인데, 화살의 길이가 85cm이고, 화살의 몸은 대나무이고, 오니(화살의 上部)는 싸리나무, 깃은 꿩깃으로 만드는데, 사정(射程) 거리는 150m(最長 거리 300m) 정도이다. 1961년 7월부터 화살을 전문으로 만들어 온 그는 경북을 위시하여 경기도 일대에 널리 화살 공예가로서의 실력이 알려졌는데, 그는 좋은 화살이란 중심(허리힘)이 좋아야 하고, 대나무의 절이 곱고 골라야 하고, 무게와 두께가 한결 같아야 하고, 촉의 무게가 같아야 하고, 염색 역시 같아야 한다고 역설했었다. 1시(矢)에 수공(手工)이 150회나 걸려야 하는데, 그는 1개월에 500개를 생산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보다 양질의 화살을 보다 널리 보급하여 예천의 화살이 바로 국궁(國弓)에 있어서 대표적인 역할을 하였다.(醴泉大觀 1982)
김종국(重要無形文化財 保有者 認定 豫告 : 重要無形文化財 第47號 ''''弓矢匠'''' 保有者 金鍾國, 朴浩濬) [記事] :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2008년 2월 15일 문화재위원회(무형문화재공예분과)의 심의를 거쳐 김종국(金鍾國, 남, 1940년생, 경북 예천군)ㆍ박호준(朴浩濬, 남, 1944년생, 인천 부평구)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키로 하였다. ''''궁시장(弓矢匠)''''은 전통 궁시(弓矢)를 만드는 장인이다. 궁시는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던 무기로, 우리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끊임없이 궁시 제작 기술을 발전시켜온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진화된 각궁(角弓)을 소유한 활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각궁과 죽시(竹矢)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궁시장(弓矢匠)''''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종국은 1960년 전보유자 故 조명제 선생의 제자로 제시업에 입문하여 현재까지 죽시 제작에 종사해 왔다. 오랫동안 전통 죽시 제작에 힘써왔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있어 그 솜씨가 매우 치밀하며 숙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완성된 죽시의 예술성ㆍ조형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기량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아울러, 이들은 전통적인 화살 제작 기법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전통 죽시 제작 기법을 이론화하여 화살이 보여주는 여러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향후 보유자로서 궁시장의 전승ㆍ교육 활동을 수행하여, 오랫동안 우리 역사 속에 면면이 전승되어 오던 각궁과 죽시 제작 기술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聯合뉴스 2008년 2월 26일 (화)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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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현 등 15명, 22일 과기부총리 표창...축하합니다.
예천교육청(第43回 科學의 날 記念式, 빅뱅! 醴泉 科學 꿈 잔치 醴泉初等 體育館에서 開催) [記事] :
경상북도예천교육청(교육장 조찬영)은 "제43회 과학의 날"을 맞아 2010년 4월 22일 오전 9시 과학의 날 기념식과 함께 기념행사로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예천초등학교 체육관)'''' 를 개최했다.
이날 개최된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행사는 학생들의 생활 주변에서 흥미로운 과학 탐구 주제를 선정하여 스스로 해결함으로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과학적 태도를 길러 과학기술 교육 활성화의 기반을 조성할 목적으로 개최됐다.
이번 ''''빅뱅! 2010 예천 과학 꿈 잔치''''에는 초등학교 10, 중학교 6개교 예천곤충연구소, 상주기상대, 예천발명교실 등 관내 유관 기관이 동참하여 19개의 다양한 과학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관내 초·중학교 현장 체험 학습과 일반인들의 개별 관람이 이어졌다.
이날 체험 활동과는 별도로 청소년과학탐구대회가 동시에 개최되어 예천동부초등학교(로켓과학), 예천남부초등학교(기계과학), 영주 폴리텍대학(전자과학 탐구대회) 등이 열려 각 학교 예선 대회를 거쳐 선발된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한편, 과학기술부총리 표창 수상 우수 과학 어린이 11명(강아현.권순재.문경준.정인영.이다경.이현정.김근현.도연희.김정미.김용규.최하늘), 과학 교육 유공 교원 4명과 과학기술부총리 표창장 등을 조찬영 예천교육장이 전수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4-22 오전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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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03
공군 제16전투비행단(24日, 空軍參謀總長盃 模型航空機大會 慶北北部地域 豫選)| 예천신문 | 2010.04.23 10:06/ http://cafe.daum.net/ycnews365/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의 날개를 달아줄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문화제 제32회 공군참모총장배 Space Challenge 2010(모형항공기 대회)대회 경북 북부지역 예선이 2010년 4월 24일(토) 공군 제16전투비행단에서 해당지역 초*중*고교생 2백79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경북 북부지역 : 구미, 군위, 김천, 문경, 봉화, 상주, 안동, 예천, 영덕, 영주, 영양, 의성, 청송, 울진)
(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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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