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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212:祝김범일,당선(附예천방문620)
작성자장병창 @ 2010.06.03 07:08:04
  예천의 자랑(2212) : 하리면 은산리 출신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 축하합니다(附 예천방문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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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일(김범일 大邱市長 當選者-30年 官家生活 몸익은 ''''官吏形 리더'''') [記事] : 대구시장에 한나라당의 김범일 당선자가 재선에 성공했다. 김 당선자는 1950년에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중·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역학과, 미국 남가주대를 졸업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했다.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올림픽 휘장사업과장(1984), 총무처 후생기획과장과 공보관(1992),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1993), 총무처 의정국장(1994) , 청와대 비서실 행정비서관(1996), 총무처 조직국장(1997),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1998),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1998), 산림청장을 지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대구 민심이 흉흉하던 때 정무 부시장으로 제의받고 대구로 귀향했다. 김 당선자는 30년 관가 생활을 통해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조직 적응력이 뛰어난 관리형 리더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영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와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을 해결하고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강소희 記者 아시아투데이 2010-06-02 23:27)

  김범일(金範鎰) : 1950- , 하리면 은산리 출신, 통대위원(統代議員) 상기의 장남, 예천초등, 경북중, 69년 경북고, 72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84년 미국 South California대 대학원 행정학 석사, 72년 행정고시(行政高試) 12회 합격하여 총무처에서 공직 시작, 73년 총무처 연금국(年金局) 연금기획과(行政事務官), 76년 동 기획관리실행정관리 담당관실(行政事務官), 77년 동 인사기획과 교육훈련과, 80년 동 인사국 교육훈련과장, 82년 미국 남가주대, 84년 총무처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 파견, 서울 올림픽조직위 휘장사업과장(徽章事業課長), 89년 행정개혁위원회 파견, 총무처 후생기획과장, 91년 동 공보관, 93년 동 이사관(國防大學院 派遣), 93년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94년 총무처 의전국장(儀典局長), 96년 청와대 행정수석실 일반행정 비서관(1級), 97년 총무처 조직국장, 9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管理官 昇進), 98년 행정자치부(行政自治部) 기획관리실장(1級 管理官)으로 3년 7개월 간 재직해 오면서 부처 통폐합 등 구조 조정 작업에 관여해왔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총무처와 내무부가 합쳐져 행정자치부가 된 후에는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으면서 총무처 출신 공무원들의 맏형 역할을 해왔다. 또한 30년 간 총무처와 행정자치부를 지켜온 공무원 조직, 인사 분야의 터줏대감이다. 총무처 조직국장 시절엔 공무원 대표로 유일하게 정부 조직개편심의위원회에 참가했다. 뛰어난 유머 감각과 풍부한 이야기 거리로 아랫사람이 정신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적극적인 스타일이다. 좌중을 웃고 울려 친화력이 뛰어나서 관계, 언론계, 경영계 등 다방면에 발이 넓다. 일 처리가 깔끔하고 영어 실력도 뛰어나지만 술은 기피한다. 2002년 2월 5일 차관급인 산림청장에 임명되었고, 2003년 5월 24일 대구광역시 정무부시장이다. 경영진단 조정위원(1998), 민족정기선양 자문위원(2000)이었다. 근정포장(勤政褒章), 체육훈장 백마장(體育勳章白馬章)을 받았다.(醴泉新聞 1996.1.25 1996.6.13 1998.4.3, 每日名鑑 1996 1997 200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醴泉鄕土新聞 1998.7.3, 每日新聞 2002.2.5, 韓國經濟 2002.2.5, 每日經濟 2002.2.4, 머니투데이 2002.2.4, 國民日報 2003.5.8, 東亞日報 2003.5.9 2003.5.28, 서울經濟 2003.5.23)

  김범일(金範鎰 行政自治部 企劃管理室長 : 行政府內 마당발, 行政의 達人) [記事] : 국회, 당(黨) 등 대외(對外) 기관과의 행자부 창구 역할을 맡고 있고, 옛 총무처 업무를 총괄 관장하는 등 행자부 정책 결정과 집행의 실무 최고 책임자이다. 김 실장은 유머 감각과 친화력이 뛰어나 관계, 언론계, 재계 등 다방면에 지인(知人)이 많아 행정부 내 마당발로 통하며 정부 조직 개편 같은 난제도 쉽게 풀어가는 행정의 달인(達人)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총무처 조직국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52세 ▲경북 예천 ▲경북高 ▲서울大 경영학․美 남가주大 행정학(석사)(月刊朝鮮 2002年 1月號)

  김범일(김범일 行資部 室長 山林廳長으로 拔擢) [記事] :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2월 4일 15개 부처․외청에 대한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 번 인사에서 하리면 은산리 태생의 김범일(52) 행자부 기획관리실장(1급)이 산림청장으로 발탁됐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원옥(52)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약력 : △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12회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총무처 조직국장 △국민고충처리위 상임위원 △행자부 기획관리실장(醴泉新聞 2002-02-07 13:55:37)

  김범일([프로필]김범일 山林廳長) [記事] : 행정고시(12회) 합격 후 총무처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행정 관료. 3년 6개월 동안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내 정부 부처 최장수 기획관리실장을 기록했다. 몇 번의 차관 승진 기회를 놓쳐 관운이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술은 못해도 잡기에 두루 능한 마당발. 부인 김원옥 씨와 1남 1녀. ▲경북 예천(52) ▲서울대 경영학과 ▲총무처 조직국장(京鄕新聞 2002년 02월 04일 18:33:44)

  김범일(ꡒ어디든 좋으니ꡐ내 나무ꡑ한 그루씩 가꾸면 어떨까요ꡓꡐ山의 해ꡑ 準備 奔走한 김범일 山林廳長) [記事] : 2002년 2월 5일 제23대 산림청장에 취임한 김범일(52) 청장에게 산림분야 경영은 새로운 도전이다. 1973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김 청장은 30년 동안 총무처와 행정자치부의 조직․인사․기획분야에서 주로 일해 왔다. 그가 산림 분야의 자리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2월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잠사(蠶紗)회관 6층에 있는 산림청 서울사무소(본청은 정부대전청사에 있다)에서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났을 때 기자가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산이나 숲 얘기가 아니라 그같은 인사에 관한 것이었다.

■공직 생활 30년을 해오면서 한 번이라도 산림청장이 될 것이라고 예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ꡒ아니, 그런 생각은 못해 봤어요. 그런데 산림청에 대해서는ꡐ야, 다시 봐야겠는데ꡑ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ꡐ숲가꾸기 사업ꡑ입니다. 그 것이 1997년 IMF 사태가 나고 그 이후에 시작됐잖아요? 공공근로사업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아보니 그 사업이 사람들한테 대단히 호응을 얻고, 또 산은 산대로 나무들이 잘 자라고 말이죠. 크게 성공한 사업이라 이 거죠. 나중에 알아보니 그 동안 돈이 한 5,000억 원 들어갔고, 거기서 일한 사람도 몇 년 동안 전부 합쳐 1,000만 명이 넘더라 이 거예요. 그런데 정말 놀란 일은 산림청에서 그 일을 IMF가 나기 훨씬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이죠. 그 때 산림청에 관심을 가져보기는 했습니다.ꡓ■높든 낮든 크든 작든 사람이 새 일을 하게 되면 겁부터 나게 마련인데, 인사 나고 걱정되지는 않았습니까? =ꡒ왜 걱정이 안됐겠어요? 솔직히 걱정이 됐죠. 그 동안 우리 산림공무원들이 참 일을 잘 해왔는데 그 것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하는 일을 맡아 계속 잘해 나갈 수 있을까 이래저래 걱정되더군요. 산림청에 이미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진 많은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열심히 뛰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고요.ꡓ■전문분야(행정자치)로 인사가 안돼서 섭섭한 점도 있었겠습니다? =ꡒ그렇지 않습니다. 공무원이 인사가 나면 그대로 명령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점에서 우선 그래요. 사실 올해(2002년)도 차관급 인사가 안나면 앞으로 참 어렵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인사가 났으니 감사하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제가 집사람한테도 노상 하는 얘기고, 복무원칙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는 점이 하나 있어요.ꡐ공무원은 1급 이상은 신분 보장이 안된다ꡑ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자리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죠. 소신껏 주어진 일에 매진하는 것이 도리이고, 그 때 인사가 어떻게 되든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해 왔어요. 자리가 주어지고 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죠.ꡓ
  차관급 인사가 나고 언론에 프로필이 나가고 나서 김 청장은 금방 다시 언론을 타며 화제가 됐다. 산불 예방에 산림청장이 모범이 돼야겠다며 금연을 선언(?)한 것이었다.

  [산불예방 솔선수범 위해 禁煙 결심] : ■취임하자마자 산불예방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금연(禁煙) 선언을 하셨다는 기사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리가 무섭기는 무섭네요? =ꡒ아이고, 그 거요? 취임하고 나서 산림청 출입기자들하고 상견례 겸 점심을 먹었거든요. 그런데 맞은편에 있던 어떤 기자가 금연한 지 20일이 됐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ꡐ그러면 산림청장도 산불예방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지금부터 금연해야겠다ꡑ고 했어요. 그러니까 기자들이 그 자리에 있던 정광수 임업정책국장한테도ꡐ정 국장은 어떻게 하실 거냐ꡑ고 물어요. 임업정책국장이 산불담당이니까요. 그 양반이 담배를 즐기는 양반인데 어떡합니까.ꡐ청장이 끊으시면 나도 응당 끊어야죠ꡑ그렇게 동반 다짐했어요. 그 바람에 저도 그렇고 간부들도 그렇고, 대학시절부터 한 30년 넘게 피워오던 담배를, 이 건 뭐 전국민 감시하에 끊게 된 것이죠. 잘 된 일입니다.ꡓ■산림청장이라는 자리를 떠나 청장님께서는 평소 산이다, 숲이다 하면 어떤 생각이 탁 드십니까? =ꡒ그 것 참 고마운 질문이네요. 제가 산이다 숲이다 하면 곧 떠오르는 단어들이 애정, 친숙함, 고향 같은 것들이에요. 우선 제가 첩첩산중에 있는 산골 출신(경북 예천군 하리면 은산동) 아닙니까. 또 평소에도 등산을 좋아하고 산이나 숲, 계곡,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사찰, 제 종교가 불교는 아닙니다만, 그런 것들을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틈만 나면 그 곳을 찾아가고 싶고 말이죠.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직접 조림(造林)하고 나무를 가꾸고 하는ꡐ프로ꡑ수준까지는 아니라도ꡐ아마추어ꡑ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산 애호가, 숲 애호가라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전에 행정자치부 일이라는 것이 전국의 종합상황실 같은 것이라서 참 영일(寧日)이 없이 바쁜데, 그런 중에도 전국의 휴양림은 가급적 다 다녀 보려고 했습니다. 이 번에 취임하고 지방산림청을 순회할 때도 꼭 휴양림에 예약해서 묵었고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럴 때마다 산과 숲에 대한 애정이랄까 열정 같은 것이 더 커지고 말이죠.ꡓ■그러니까 이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전향하신 셈이네요? =ꡒ그렇죠. 산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넘어 직접 가꾸고 보존하고 잘 경영해 나가야 하는 최전선에 섰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저는 그래요. 제가 행정자치부 과장․국장 때 아랫사람들한테 노상 얘기한 것이 뭐냐 하면 종이 좀 아끼자는 말이었죠. 종이를 낭비하면 그 것이 곧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는 것과 같다, 그랬거든요. 산림청장이 되고 난 다음에는 저한테 가져오는 복사용지는 모두 이면지로 하라고 했어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산과 나무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그런 생각이죠.ꡓ

  [김범일 산림청장 약력] : 1950년 경북 예천 출생, 1969년 경북고 졸업, 1972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제12회 행시(行試) 합격, 1973년 총무처 행정사무관, 1980년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1984년 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 1991년 총무처 공보관, 1994년 총무처 의정국장, 1995년 대통령비서실 행정비서관, 1997년 총무처 조직국장, 1998년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권태동 記者 月刊中央 2002年 4月號 2002.03.29)

  김범일(김범일 氏 大邱市 政務副市長 內定) [記事] : 대통령 직속 정부 혁신․지방분권위원회 민간위원인 하리면 은산리 태생의 김범일(53․전 산림청장) 씨가 대구광역시 정무부시장에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하리면 은산리 태생으로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간 뒤 서울올림픽 조직위 사업과장, 총무처 의정국장, 청와대 일반행정비서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지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원옥(52)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醴泉新聞 2003-05-15 16:42:57)

  김범일(김범일 副市長 特講) [記事] : 김범일(하리면 출생)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2004년 1월 5일 오전 대구 동부여성문화회관 강당에서 수강생과 강사 등 100여 명을 대상으로 `2004년도 대구시정 역점 추진 방향 및 여성의 사회 참여''''란 주제로 특강을 실시하고 시정 발전을 위한 여성들의 협조를 요청했다.(醴泉新聞 2004-01-09 14:31:51)

  김범일(傳統主力産業 高附加價値化 積極 推進 : 김범일 大邱廣域市 政務副市長) [記事] :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2003년 6월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 민간위원에서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취임한 이래, 하루하루가 아쉬울 만큼 바쁘게 보내고 있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경기가 침체돼 있다는 대구에서 바쁘게 지내는 만큼 한 번씩 지칠 만도 한데, 상대방까지 전달되는 기분 좋은 웃음과 활기는 상대방마저 즐겁게 한다. 이런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기도 한다. 김범일 정무부시장은 대구를ꡐ기업하기 좋은 도시ꡑ로 만들고,ꡐ전통 주력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ꡑ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무엇보다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쓴다고 말한다. 가끔씩 화 나고 속상한 일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며 노력한다는 김 정무부시장은 항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열린 행정을 위해 가급적이면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토론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범일 정무부시장으로부터 대구시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ꡐ공직사회 개조론ꡑ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구체적인 행정서비스 실천 사항은? =대구의 외자 유치 실적이 저조한 것은 대구 공직 사회가 지나치게 형평성을 의식하여 적극적으로 유치 활동을 하지 않은 탓이 컸다. 공직 사회가 대구 발전을 위해 기업 유치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을 적극 도와주는 마인드와 자세가 필요하다. 자질 향상을 위해 외국 연수 기회를 대폭 늘리고 있으며, 외부의 전문가를 영입하여 투자유치단을 구성하였다. 실․국․과장 이상 간부들이 사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기업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직접 해결해 주는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은? =대구는 비수도권 내륙 도시이고 국가산업단지가 전무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수한 인력이 많아 고품격의 환경친화적인 정주 여건이 조성되어 있고, 근로 의욕이 양호하다. 또한 국내외로 열린 교통의 요충지로서 연구 개발과 물류의 집적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추진 중인데 이를 위한 방법은? =기업과 기업인의 사회 공헌에 대해 평가하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 기업의 경영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시가 보증하는 우수기업특별신용보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시설 자금 금리도 전국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였다. 시 민원실에ꡐ기업민원지원창구ꡑ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실․국․과장을 ꡐ기업지원담당관ꡑ으로 지정하여 지정 산업단지 분양․입주․가동 때까지 책임 지원하고 있다. ▲고향 발전을 위한 의견은? =자금, 정보, 인재의 수도권 편중으로 비수도권인 영호남 모두가 전반적으로 어렵다. 특히 경북북부권역인 예천군의 경우는 산업인프라가 충분하지 않고 인구의 고령화가 심화되어 더욱 발전이 어려워질 것 같다. 먼저 예천 발전을 위한 군민들의 합심된 의지가 필요하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혁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출향 인사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 예산, 기업 유치에 활용해야 한다.

  ▲고향 사랑은?=예천서부국민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하리 은산에 가서 개울에서 고기잡고 뛰놀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서울과 대구에 있는 초등학교 모임에 2~3회는 꼭 참석한다. 재경예천군민회와 재구예천군민회에도 자주 참석하여 다른 분야 종사자와 친교를 다지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주요 약력? =하리면 은산리 태생으로 예천초등(5년)․대구초등․경북중․경북고․서울대(학사)․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석사)를 졸업했다.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간 뒤 서울올림픽조직위 사업과장, 총무처 의정국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지냈다. ▲가족은? =아내(김은옥․54)와 1남(진구․25) 1녀(은지․28)를 두었다. 예천읍에 어머니(장순자․74)와 숙부님, 친척이 살고 계신다. <함재봉 기자>(醴泉新聞 2004-12-24 10:54:57)

  김범일(김범일 政務副市長 公共機關 誘致推進委 委員으로 選定) [記事] : 김범일(하리면 은산리 출생) 대구광역시 정무부시장이 2005년 1월 20일 대구경북 공공기관 유치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됐다. 대구경북 공공기관 유치추진 위원회는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 출신 정관계 8명, 정부위원회 6명, 혁신관련기관단체 6명, 경제계 7명, 대학 4명, 언론계 7명, 시민단체 3명 등 모두 41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醴泉新聞 2005-01-28 13:39:56)

  김범일(김범일 氏 ''''大邱市長 選擧'''' 出馬 披瀝) [記事] : 김범일(55ㆍ하리면 출생) 씨가 2006년 5ㆍ31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2006년 1월 대구시 정무부시장에서 사퇴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일신문 보도(22일자)에 따르면 ꡒ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 준비를 위해 부시장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이같은 의사를 대구시장에게도 전했다고 했다ꡓ는 것. 또,ꡒ대구의 어려움을 타개하려면 차기 대구시장은 화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강한 카리스마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추고 유연한 실용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ꡓ고 신문은 전했다. 김범일 대구시 정무부시장은 하리면 은산리 태생으로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간 뒤 서울올림픽 조직위 사업과장, 총무처 의정국장, 청와대 일반행정비서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지냈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원옥(54)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醴泉新聞 2005년 12월 24일 12:42:08)

  김범일(김범일 副市長ꡒ大邱市長 出馬ꡓ) [記事] : 김범일(56) 대구시 정무 부시장이 2006년 1월 23일 사표를 내고 공직을 떠났다. 김 정무부시장은 5월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대구시장에 출마한다. 김 부시장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197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총무처 공보관, 조직국장 등을 지내면서 총무처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산림청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임해왔다.(한겨레新聞 2006년 1월 23일 (월) 22:21)

  김범일(ꡒ力動的 國際都市 만들 것ꡓ김범일 前 副市長 大邱市長 出師表) [記事] : 김범일(55)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이 2006년 5․31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2006년 1월 24일 공식 선언했다. 김 전 부시장은 이날 오후 한나라당 대구시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비전과 역동적 리더십으로 침체에 빠진 대구를 구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김 전 부시장은 이 자리에서 ''''대구 재도약''''의 방안으로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 ▷인재․기술․정보를 결집하는 도시 ▷서민생활 향상 ▷청년실업 해소 등을 제시한 뒤, "현재 구상 중인 각종 발전 방안을 향후 정책 발표를 통해 상세히 밝히겠다"고 했다. 김 전 부시장은, "중앙부처에서 30년 간 역량을 쌓았고, 국제적 경험을 갖춘 사업가 기질의 공직자란 평을 듣고 있다"며, "풍부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2년 8개월 간 연구해 온 대구 발전 방안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또, "시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공직 사회가 헌신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며, "대구가 ''''보수''''의 이미지를 탈피해 국제화된 역동적인 도시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전 부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 희망을 전제한 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반드시 정권을 되찾아야 대구 발전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며, "한나라당이 정권을 되찾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겠다"고 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 김 전 부시장은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 남가주대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청와대 일반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역임했다.(김병구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1월 24일)

  김범일(5․31 地方選擧 ''''出鄕人 누가 出馬하나'''' ① : 김범일(下里面 出生) 大邱市長 한나라黨 豫備候補, 市民과 힘 合쳐 大邱 일으켜 세울 터) [記事] : ▲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퇴임하면서 따로 퇴임식을 갖지 않아 시청 안팎에서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퇴임식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정식으로 퇴임 행사를 갖고 대구시민과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발전을 위해 동고동락한 시청 간부와 직원, 각 기관 단체장들에게 정중히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여러 가지를 생각한 끝에 생략했습니다. 대구가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인데 저 개인의 퇴임식을 열어 바쁘신 여러분들을 찾아오시게 하는 것은 폐를 끼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청 홈페이지에 퇴임사를 올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뒤 조용히 물러 나왔습니다. ▲ 차관급인 산림청장을 했으면서도 아랫자리인 1급의 정무부시장직을 선뜻 맡은 이유는? = 저는 대구에서 공부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대구는 고향 예천과 함께 오늘의 저를 있게 해 준 곳입니다. 저는 대구를 앞장서서 발전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대구시민으로부터 역량을 인정받아 대구시장이 되어 어려움에 처한 대구경제를 살리고, 절망감에 빠진 대구시민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자리의 높낮이에 연연치 않고 대구에 내려 왔습니다. ▲ 대구시장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대구는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외적 환경은 모든 것이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첨단산업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중공업은 서해안으로 급격하게 치우치는 추세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이며 내륙도시인 대구는 상대적 차별을 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내부의 문제도 많고 큽니다. 대구의 산업은 섬유산업 등 전통산업과 중소기업 위주의 구조입니다. 이로 인해 산업 양극화에 따른 어려움과 손해를 엄청나게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대구가 좌절감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는 중앙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 국제업무 경험, 그동안 연구한 대구의 문제점과 대안 등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시민과 힘을 합쳐 대구를 일으켜 세우고자 합니다. 대구를 재도약시키는데 솔선수범하기 위해 출마했습니다. ▲ 한나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공천에 대한 전망과 요즘 활동은? =저는 실현하지 못할 허황한 공약을 내 세우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환심을 사지 않겠습니다. 오랜동안 다져온 저의 대구사랑, 행동하면서 성과를 일궈내는 실용적인 리더십으로 대구 발전을 이뤄낼 각오입니다. 그리고 대구를 반드시 재도약시킬 수 있는 정책 대안들을 열심히 제시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저를 서슴없이 선택하시리라 믿습니다. 선거운동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의 충심을 헤아려 주신다면 제가 요란하지 않아도 우리 한나라당 당원과 대구시민의 마음은 움직일 것으로 확신합니다. ▲ 대구 재도약 방안은? =대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합니다. 저는 대구를 구미단지와 연계한 IT(디스플레이, 모바일, 소프트웨어)와 메카트로닉스(자동차부품, 기계, 금속) 등으로 산업구조를 획기적으로 고도화 하겠습니다. 또 도시형 서비스산업(교육, 의료, 전시컨벤션 등)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전통산업과 전통문화는 경쟁력있게 발전시켜 나가고, 도심은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구가 사람과 기술과 정보와 돈이 몰려드는 역동적인 도시가 되도록 확 바꾸겠습니다. ▲ 예천에 살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는? =제 고향은 하리면 은산리이며, 고향에는 노모님이 살고 계시고 4촌 형제와 일가, 외가 등 많은 친척이 계십니다. ▲ 고향은 어떤 의미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나? =이 세상에서ꡐ고향ꡑ과ꡐ어머님ꡑ이라는 말만큼 사람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말이 있겠습니까? 제가 공부를 위해 내 고향을 떠나온지 수 십 년이 되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지만 고향을 한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중앙부처에서 일 할 때는 각 부처에 근무하는 예천 출신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고향을 찾았고, 고향을 돕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저의 고향에 대한 이같은 마음은 변함 없을 겁니다. ▲ 예천군민과 출향인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우리 예천은 전통의 고장이며 예의를 중시하는 선비의 고장입니다. 그리고 산자수명한 우리 나라 대표적 청정지역이고, 단결력이 뛰어납니다. 모쪼록 이러한 자긍심을 굳건하게 가지시고, 경쟁력을 갖추어 잘 사는 예천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고향을 지키시는 분들에게는 고향을 더욱 잘 가꿔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나와 계시는 분들 역시 예천 발전을 위해 한 마음으로 동참하고 협력했으면 합니다. 저도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끝으로 저에게 많은 성원을 보내주시는 예천군민과 고향 선후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권오근 記者 醴泉新聞 2006년 02월 09일 17:02:55)

  김범일(5.31地方選擧 大邱市長 候補, 김범일 氏 決定) [記事] : 5.31 대구시장 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김범일(56)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이 결정됐다. 김 후보는 2006년 4월 13일 오후 2시부터 대구EXCO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대회에서 서상기 국회의원과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을 누르고 대구시장 선거 후보로 낙점됐다. 이에 따라 차기 대구시장 선거는 김 후보와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전 환경부장관), 민주노동당 이연재 후보(전 대구시당 위원장), 국민중심당 박승국 후보(대구시당 위원장), 무소속 백승홍 후보(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화익 후보(새누리농장 대표) 등 6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김 후보는 당원과 시민 등 1,288명이 선거인단으로 참가한 이날 경선투표에서 761표를 얻어 324표를 얻은 서 의원과 202표를 얻은 신 전 부사장을 크게 앞질렀다. 또 대구시민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김 후보가 51.9%의 지지를 얻어 27.7%와 20.4%에 그친 서 의원과 신 전 부사장을 따돌렸다.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는 당원 3,736명과 시민 2,292명 등 모두 6,028명을 선거인단으로 선정됐으나 21.3%인 1,288명만 참가, 투표했다. 김 후보는 ''''시민, 당원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산업 구조를 IT와 첨단 기계부품, 로봇산업 등으로 바꾸고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건립해 ''''글로벌 대구''''로 만들겠다"고 밝힌 뒤, "문화도시, 복지대구를 구현할 수 있는 후보와 함께 대구의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을 졸업한 김 후보는 197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총무처 공보관, 대통령 일반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3년 간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이재춘 記者 뉴시스 2006년 4월 13일 (목) 17:54)

  김범일(김범일 한나라黨 大邱市長 候補 인터뷰) [記事] :ꡒ죽기를 각오로 대구 경제를 살리는 데 이 한 몸 던지겠습니다.ꡓ2006년 4월 13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된 김범일 후보는,ꡒ5ㆍ31 지방선거에서 필승해 대구 경제를 살리라는 임무를 엄숙하게 수행하겠다ꡓ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김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ꡒ이번 지방선거는 대구 도약의 전환점이며, 노무현 정권의 푸대접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재도약시키기 위해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창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ꡓ고 다짐했다. 이어 김 후보는, ꡒ한나라당 운명을 같이 하는 당원으로 거듭나겠으며, 대구시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으로 거듭나겠다ꡓ고 거듭 강조했다. 김 후보는 상대 후보의ꡐ약하다ꡑ는 비판에 대해,ꡒ일부가 했을 뿐 여론조사에서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역량있는 후보에서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앞섰다ꡓ며 일축했다. 1946년 경북 예천 출신인 김 전 부시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88서울올림픽 조직위 사업과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부인 김원옥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문정화 記者 大邱日報 2006-04-13 20: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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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620

  예천군 관광(<慶北의 맛.멋 風景> 醴泉郡, 飮食과 絶景의 만남...입도 눈도 豪强) [記事] :

  예천은 1천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배산임수의 명당지역이며 경북 신도청이전지로 선정된 살기 좋은 고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청정한 환경 속에서 재배한 사과와 쌀, 참기름, 예천참우, 뽕잎차 등 많은 농·특산물과 낙동강 유일의 삼강주막, 육지속의 섬 회룡포, 세금내는 나무 석송령, 물 좋기로 소문난 예천온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천진호국제양궁장, 곤충생태체험관 등 관광과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지다.

  순대는 시장통이나 분식점 등에서 흔히 맛 볼 수 있고 남·여 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즐기는 보편화된 전통음식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지금의 인조 순대 맛에 익숙해져 있지만 중년층 이상은 마치 순대껍질을 비닐로 감싼 듯한 느낌, 그리고 거의 당면으로만 속을 채우다시피 한 지금의 순대에 비해 과거 시절에 맛보던 전통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

  전통 순대는 돼지내장을 껍질로 사용하는데 내장을 깨끗이 씻고 뒤집어서 다시 씻기를 반복한 다음 내장 한쪽 끝에 깔때기를 씌워 돼지 피에 버무린 당면과 찹쌀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드는 고유의 음식이다.

  언제부터인지 전통 순대는 자취를 감추고 변형된 순대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20여년 전부터 용궁면 용궁시장을 중심으로 순대집이 들어서면서 용궁순대의 명성이 퍼지기 시작했다.

  용궁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잔치나 상례 등 큰일을 치를 경우 빠짐없이 손님상에 올랐던 음식이 순대였다. 보통순대는 소창이나 대창을 사용하지만 용궁순대는 ‘돼지 막창’을 사용, 도툼하고 쫄깃해 순대의 씹히는 식감을 위해 막창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용궁순대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10여곳이 있다. 최근들어 회룡포마을과 삼각주막등이 새로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미식가와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용궁순대식당들이 붐비고 있다.

  용궁순대는 도툼한 돼지 막창으로 만들어 다른 순대보다 더욱 쫄깃하다 보통 손으로 빚어 만드는데 야채와 찹쌀가루, 한약재등 영양많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맛이 깔끔하다. 전통순대 1접시에 6천원 순대국밥 1인분 4천원이다.

  용궁순대의 맛을 소문 듣고 인근 안동, 문경, 상주 등은 물론 휴일이면 도시민들이 찾아와 순대의 맛에 놀라고 저렴한 가격에 놀라며,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로 휴일은 자리 잡기가 쉽지 않고 평일에도 꾸준히 손님들이 찾고 있다.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 : 지금은 거의 하는 곳이 없는 청포묵, 그러나 예천 읍내에 가면 그 청포묵을 맛 볼 수 있는 식당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이 있다. TV 프로였던 ‘전국의 아침’에 출연하면서 힌트를 얻어 이름을 새로 붙였다.

  청포묵은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에 비해 일단 색깔이 푸르다. 녹두를 갈아 만들기 때문이다. 청포묵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15시간 정도로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다른 지방에는 청포묵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청포정식은 채를 썰어 나오는 청포묵 위에 계란흰자 노란자, 당근 숙주 나물 등을 얹어 나오며, 밥을 같이 비벼 먹으면 새로운 추억에 젖을 수 있다. 청포묵을 담은 대접위에 밥 그리고, 무와 다시마를 넣어서 끓인 탕국이 있다.고기류는 없어 채식을 주로하는 건강식, 웰빙식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청포묵 정식은 1인분에 8천원. 청포묵을 따로 구입할 수 있는데 12모 한판에 15만4천원 정도 한다. 특히 청포묵을 끓이고 나오는 누룽지가 일품인데, 누룽지를 먹고 싶으면 미리 전화를 해서 부탁해 두는 것이 좋다. 예천읍 노하리

  ◆그 맛 못잊는 육회 비빔밥 : 예천과 문경, 안동으로 갈라지는 남본리 삼거리에 위치한 백수식당은 금방 잡은 싱싱한 쇠고기 각 부위 특징을 살려 맛있게 요리하는 집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예천군이 한우가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수식당의 고기 맛은 단연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천을 찾는 손님이 오면 꼭 한번 데려가는 곳이 백수식당이다.

  이 곳에 손님을 모시고 가면 손님들은 대부분 “예천고기 정말 맛있네요”라며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고마워들 한다. 백수식당에 가면 모듬육회, 뭉태기 육회, 육회 비빔밥, 로스구이, 쇠주물럭, 목살 등의 다양한 소고기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육회를 맛있게 양념해서 감칠 맛을 느낄 수 있는 모듬육회, 고기의 씹히는 맛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뭉태기로 자른 뭉태기 육회, 처음 먹어 보는 사람들도 한 입만 먹어 보면 그 맛에 반해 한 그릇을 바로 비워버리는 육회 비빔밥, 고기를 살짝 익혀 야들야들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로스구이 등 백수식당의 소고기 요리는 3박4일 시간을 내어 음미를 해야 할 정도로 다양하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언제나 내 집 식구들이 먹는 음식을 차리듯 정성을 다하고 육회를 접하지 못해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고기를 살짝 익혀서 비빔밥에 넣어 주는 주인아주머니의 넉넉함과 후덕함이 백수식당만의 노하우라고 한다.

  매일 한결같이 주인이 직접 고기를 부위별로 손질을 하고 양념을 다르게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 백수식당의 음식 맛은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예천사람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 사람들이 일부러 맛있는 집이라고 찾아 올 정도의 유명세로 발디딜 틈이 없다.

  육회비빕밥은 1인분 1만원, 뭉티기는 2인분 기준 2만5천원, 모듬육회 2인분 기준 2만5천원. 예천읍 남본삼거리

  ◆소백산 초원이 빚은 예천참우 : 소백산 기슭의 맑은 물과 깨끗한 자연 풍부한 자원이 잘 형성된 최적지에서 사육되는 예천참우는 3천767농가에 4만여 두를 사육하고 있다. 순수 혈통의 한우로서 송아지 때부터 거세하고 상장 기간내 친환경 미생물인 유산균,효모,바실러스등 고급 생균제를 먹여 한우 질병예방과 불포화 지방산인 올레인산이 강화되어 살코기내에 마블링 형성이 잘 이루어져 맛이 담백하다.

  육단백질 함량과 밀도가 높아 쫄깃쫄깃하면서도 지방에 의한 느끼한 맛이 없으며 감칠맛이 최고의 고급육으로서 특허청에 예천참우로 상표등록제351512호로 등록되어 있다. 예천축산업협동조합 기준 거세1등급 등심. 안심 1.8kg 9천원, 갈비3.0kg 11만4천원에 판매된다.

  예천참우 생산자전문매장은 지보 참우마을, 금당한우 예천생균참우,예천축협한우프라자와 용궁면, 풍양면등에 있으며 전국소비자들로부터 예천참우 고급육 브랜드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다.

  ◆임금님의 간식 은풍준시 : ‘황제 곶감’으로 통하는 예천군 하리면의 은풍준시는 다른 지역의 곶감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특별하다. 동사리 뒷골에 자란 감나무의 감을 따서 준시를 만들었는데 다른 감과는 색다른 맛을 지녀 이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은풍준시는 수분과 당분이 많이 포함돼 껍질이 매우 얇은게 특징이다. 한로(10월8-9일경)가 되면 홍시가 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감을 깎아서 곶감을 만들고 있다. 제대로 건조한 곶감은 햇빛에 비추어 보면 속이 발갛게 드러나 보이는 것도 ‘은풍준시’만의 특징이다.

  은풍준시를 만드는 감나무 원종은 아주 별난 특성을 가졌다. 일반 감나무를 베어내고 새싹이 나면 고염나무가 되지만 이 감나무은 고염나무가 되지 않고 감나무가 된다. 또 이 나무를 접목을 하려해도 다른 감나무와 같이 접목이 잘 되지가 않아 수백년 세월이 흘러도 타 동리에는 이 감나무가 없다.

  또 바로 옆동네에다 옮겨 심어도 나무는 살지만 감이 열리지 않는다. 이런 신비스러움과 좋은 맛 때문에 은풍준시는 조선시대 때 임금님께 진상을 했다고 구전된다. 일제 때에는 일본상인들이 유별나게 이 준시를 좋아해 사갔고 지금도 그 내력을 알고 있는 일본인들은 은풍준시를 찾고 있다.

  십년일득(十年一得)이라고 하여 십년에 한번 정도로 풍년을 맞기 때문에 항상 수량이 귀하다. 이 같은 특징과 희소성이 은풍준시를 명품농산물 반열에 올려놓았다. 가격은 1상자(3.75kg)에 18만원선, 일반 곶감에 비해 3배이상 비싼 값이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이내 품절된다.  설 즈음 성수기에 쓰기 위해서는 요즘 생산농가에 예약을 해 두어야 살 수 있을 정도다.

  (김상만 記者 권중신 記者 大邱新聞 2010-05-31 09: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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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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