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213:예천대사전110오늘(祝김범일2)
예천의 자랑(2213) : 예천대사전 제110권 오늘 나와, 총 22,000쪽 돌파(附 하리면 은산리 출신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 축하합니다(2))
---
<예천대사전> 제110권이 출판되었다.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中等校長)의 편저로, 21,801-22,000쪽(200쪽 分量), 27cm, 장병창이 예천에서 2010년 6월 4일에 발행하였다. 수록 범위는 ‘추가 XIX : 예천군 의병~예천군 임업’이다.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천 관련 책 : 예천군의 전설(수행닷컴, 2002년),
예천 관련 내용 수록 : 예천군 의병(20801-21878쪽, 1910.5-1910.12), 예천군 이군색(21919-21926쪽, 1741-1764년), 예천군 이미용(1939년), 예천군 이민(1737-1738년), 예천군 이인좌의 난(21926-21966쪽, 1728년), 예천군 이족(글 홍대용)
, 예천군 이주(21968-21974쪽, 1778-2008년), 예천군 이중과세(1938년), 예천군 이현상미승배(1770년), 예천군 인구(21975-21980쪽, 2009-2010년), 예천군 인사(21980-21988쪽, 2008-2010년)
기관 등 : 예천군의회(21883-21919쪽)
단체 : 예천군 의용단(1922년), 예천군의용소방대연합회(21879-21882쪽), 예천군이장연합회,
산업 : 예천군 임업(21988-22000쪽, 1914-1937년)
---
수원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예천 관련 저술은 다음과 같다.
1 醴泉郡誌. 상~하권 / 예천군지편찬위원회(위원장 김수남, 부위원장 장병창) / 醴泉郡 / 2005/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
2 시굴조사보고서= The Excavation report of the Dongbon-dong,Yecheon / 안동대학교. 박물관 / 안동대학교: (주)이원종합건설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11.82 ㅇ153ㅅ ]/ 국내단행본//
3 예천 맛질 朴氏家 日記. 1-5 / 한국정신문화원연구원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816.5 ㅎ155ㅇ ]/ 국내단행본//
4 醴泉權氏宗家別堂: 實測調査報告書(本文) / 문화재청 / 文化財廳 / 2001/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17 ㅁ327ㅇ ]/ 국내단행본//
5 醴泉權氏宗家別堂: 實測調査報告書(圖版) / 문화재청 / 文化財廳 / 2001/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17 ㅁ327ㅇ ]/ 국내단행본//
6 예천통명농요= 醴泉通明農謠: 중요무형문화재 제84-나호 [비디오 녹화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 / 1999/ 소장위치 중앙도서관[VT 601.50911 ㄱ427ㅎ ]/ 국내시청각자료//
7 예천통명농요= 醴泉通明農謠 /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 / 1999/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01.50911 ㄱ427ㅇ ]/ 국내단행본//
8 醴泉大事典 / 장병창 / [발행자불명] / 199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03 ㅈ116ㅇ ]/ 국내단행본//
9 醴泉村落史 / 예천군(장병창 등 집필) / [醴泉郡] / 199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
10 醴泉 通明 農謠 / 강원희 / 醴泉 通明農謠 保存會 / 199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79.35 ㄱ263ㅇ ]/ 국내단행본//
11 醴泉郡誌 / 예천군(장병창 등 집필) / 醴泉郡 / 198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daum 2010)
12 醴泉 權氏 世譜 / 醴泉權氏大同譜所 / 198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99.11 ㄱ431ㅇ ]/ 국내단행본//
13 醴泉 林氏 世譜 / 醴泉林氏世譜編纂委員會 , 回想社 / 1986/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99.11 ㅇ985ㅇ ]/ 국내단행본//
14 대창 80년사: 慶北 最古의 私立 大昌中高等學校 歷史 / 장병창 / 大昌中高等學校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376.609 ㅈ116ㄷ ]//
*하리면 은산리 출신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 축하합니다(2)
김범일(大邱市長 候補 인터뷰 : 한나라黨 김범일, 産業用地 100萬坪 追加 造成) [記事] : ◆ 주요 공약 : 과학기술 중심 도시로 도약, 30여년 ''''公僕'''' 행정 경험 풍부/ ◆ 살아온 길 :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 지내, R D기반 확충 대기업 유치 노력, 市政 최우선 목표 ''''경제살리기''''/ 친(親) 한나라당 정서 때문에 대구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따는 것이 본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이 때문에 경선을 거쳐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가 된 김범일 후보는 주변으로부터 사실상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정치는 생물같은 것이고, 정치적인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장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맡으면서 산업․민생현장 등 안가본 곳이 없다. 대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도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어떻게 하면 대구의 옛 명성을 되찾고 발전할 수 있는지 깨닫고 방법도 모색했다. 대구를 회생시킬 자신감도 생겼다. 30여 년의 행정 역량과 경영 마인드, 반드시 내 힘으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쏟아붓는다면 일류 대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지금 대구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발로 뛰며 시민 삶 속으로 파고들어 아픔을 함께 나누며 문제를 풀어가고, 30년․50년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경제기반을 만들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제가 이같은 시민 여망에 가장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장 선거에 나섰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난 이후 만난 유권자들의 반응은? ="한나라당 후보가 되니 더 많은 시민이 성원을 보내주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힘이 난다. 이 때문에 책임감은 더 커졌다. 격려가 훨씬 많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도 함께 듣고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해 줬는데 한나라당이 한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달라지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대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으니까, 상대 후보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는 어려움도 있다." ■경선과정에서 차기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했는데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지 않는가.?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투표율을 올리는 것은 시장이 해야할 일이다. 대구의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만큼 투표율이 높을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대구의 투표율을 올려 한나라당 후보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 일을 잘해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정무부시장은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다. 대구경제가 어려운 것에 대한 책임론이 있는데? ="2003년 5월 정무부시장을 맡았을 때 대구의 상황은 암담했다. 부채는 전국 1위이고, 전통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첨단산업은 불모지였다. 국책연구소도 하나 없었다. 지하철화재참사로 대구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공무원들은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 인기정책이나 전시행정을 펴지 않았다. 반짝경기를 위한 부양책은 쓰지 않고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설립을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산업용지도 10년 만에 100만평을 새로 공급했고 전통산업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첨단산업의 비중을 높여 갔다. 머지않아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대구경제가 좋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시장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대구경제살리기를 시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 작년 대구지역 제조업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인데 2010년에는 20%로 끌어올리고 서민생활을 안정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 대구에 진출한 대형 주택건설업체와 대형소매점이 지역기업을 협력업체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겠다. 또 대구에 세계적인 대형 테마파크를 만들어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대구로 만들겠다. 대구의 비즈니스 지원 기능도 강화하고 대구를 사랑과 인정이 있는 도시,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겠다. 시청내 조직으로 장애인팀을 만들어 장애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하고, 고령화사회와 여성의 육아문제 해결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대구경제가 잘 되려면 외지기업 유치가 중요한데 구체적인 복안은 있는가?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을 2~3년내로 대구로 유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장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또 대구의 R& D기반을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한 다음에 대기업 유치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이다. 시청내에 투자유치단이 가동된 게 1년반 전이다. 이제 투자유치의 노하우도 생긴 만큼 투자유치단의 규모도 키워나가겠다." ■대구 전역이 재개발․재건축붐으로 아파트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부분이지만 아파트공급 과잉은 자칫하면 대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개발예정지역을 주거환경개선지구, 재개발지구 등으로 분류해 계획적으로 접근하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공급의 안정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김범일 후보의 공약은 ''''첨단 대구, 일류 대구''''란 슬로건 아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첨단 대구 프로젝트''''와 ''''아름다운 도시 건설을 위한 일류 대구 프로젝트''''로 크게 구분된다. 이들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첨단 대구''''프로젝트 : 1. 대구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 2. 세계적인 금호강 첨단산업 문화벨트 조성, 3. 과학기술 중심도시로 도약, 5. 산업용지 100만평 추가 조성 및 원천기술 보유 기업 유치, 6. 대규모 대구 경제살리기 펀드 조성, 7. 산․학․연․관의 직업교육 및 고용 네트워크 구축으로 일자리 창출, ◇''''일류 대구''''프로젝트 : 1. 사람과 기업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도시 건설, 2. 고품격 문화도시 창조, 3. 한국 제일의 교육도시 지향, 4. 더불어 함께하는 복지도시 조성, 5. 쾌적한 도시, 안전한 도시 건설, 6.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등 글로벌 대구 구현, 7. 시민이 감동하도록 행정서비스를 대기업 수준으로 혁신/
한나라당 김범일 예비후보는 2003년 5월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3월 차관급인 산림청장에서 물러난 지 두 달 만에 1급인 정무부시장으로 대구에 왔다. 함께 일하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의 제안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 직급 하향에 관계없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후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대구시장의 꿈을 키워갔다. 올해 1월 대구시장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에서 물러났고, 지난 13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선출자대회에서 승리해 한나라당 후보가 됐다. 대구시장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를 얻은 것이다. 김 후보는 예천이 고향이다. 예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초등학교로 전학와, 대구에서 경북중․고를 다녔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때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3년 총무처 사무관을 시작으로 총무처 조직국장,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친 뒤 산림청장을 끝으로 30여년간의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올림픽조직위에서 휘장사업과장으로 일했다. 외국 대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는 게 주요 업무로, 흑자 올림픽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스폰서를 유치해 흑자 올림픽이 되는 데 기여했다. 이 때문에 김 후보는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88올림픽의 폐회식으로 꼽았다. 그는 "폐회식을 보는 순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4년간 열심히 일해 성공적인 흑자 올림픽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름 김범일(55․金範鎰)/ 출신지 예천/ 학력 대구초등, 경북중․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경력 12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총무처 의전국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비서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실행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 좌우명 성실과 정도/ 취미 바둑, 등산/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대통령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어린시절 꿈 맏이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 즐겨부르는 노래 만남(노사연)/ 기억에 남는 영화 닥터 지바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 구분없이 즐기나 팝송을 더 좋아함/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 사업/ 주량 맥주 1병/ 하루가 생긴다면 등산한 뒤 푹 자겠다/ 한달 휴가가 생긴다면 여행을 가겠다/ 1년 휴가가 생긴다면 세계여행을 한 뒤 책을 쓰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 ''''매력국가 만들기''''-이유는 지식과 문화사업이 한 국가나 도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구의 미래를 위해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 아쉬운 일 젊을 때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충분한 시간과 애정을 쏟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가족관계/ 아내, 1남 1녀/(김진욱 記者 嶺南日報 2006-04-26 23:51:37)
김범일(일 慾心 많고 要職거친 正統官僚)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후보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중과 경북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12회)해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인지 30여 년 동안 내무부와 행자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 다.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휘장과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총무처 의전부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총무처 조직국장에 이어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 그의 공직 경력은 화려하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으로 재직할 때는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의 후원을 받아내 올림픽을 흑자로 돌려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산림청장 재직시 조해녕 현 대구시장이ꡐ지하철 참사ꡑ를 수습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내려와 2006년 3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의 살림을 챙긴 것이 김 후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후보는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중학 시절부터 영어회화클럽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1982년 총무처 교육훈련과장직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와 함께 일한 공무원들에 따르면 아랫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치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김 후보는 이재용 열린우리당 후보의 경북고 4년 선배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가끔 만났을 뿐 별다른 인연은 없다고 말했다.(박천학 記者 文化日報 2006년 4월 28일 (금) 15:25)
김범일(山골少年에서 最高 公務員까지…김범일 豫備候補)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강한 흡인력의 소유자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논리로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한다. 상업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영향을 받은 덕분에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면도 돋보인다. 그는 산골 소년에서 최고위 공무원까지 올랐다. 경북 예천 소백산 산자락 50여 가구만이 살던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다. 산골 학교에서 1등을 도맡은 학업 능력과 부모님의 교육열이 합쳐진 것이다. 어린 소년에게 객지 생활은 독립심과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후보 특유의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객지 생활의 고생이 준 덤이었다. 객지 생활에서도 활달한 개구쟁이였지만 공부는 늘 상위권이었다. 특히 4남 1녀의 첫째였던 그는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항상 교육받았다. 당시 장래 희망이ꡐ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ꡑ이었을 정도.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한국은행과 대기업 입사를 두고 진로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ꡒ관으로 가서 출세해 집안을 일으켜라.ꡓ는 아버지 당부를 듣고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고, 졸업을 앞두고 합격(12회 행정고시)했다. 그의 큰 무기는 영어 실력.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에는 ''''PINETREE(소나무)''''라는 영어 서클에서 활동했다. 총무처 서기관 시절에는 미국 남가주대 대학원에 2년 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공무원으로 성공적인 길을 밟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빠른 두뇌 회전, 선제적인 업무 처리 스타일 등이 인정을 받은 것. 첫 발령을 받은 총무처 사무관 시절부터ꡒ촉망받는 장관감ꡓ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부서 내 역대 최장기 행자부 기획관리실장(1998년 6월~2000년 2월)을 지냈다. 기획관리실장 자리는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일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정치권에도 많은 인맥을 만들게 됐다. DJ정부 들어 차관급인 산림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직급을 낮춰 왔다. "경상도 정부였다면 일찌감치 장관을 달았을 것"으로 보는 공무원들도 적잖다.(이창환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5월 01일)
김범일(廣域團體長 候補 探究 (4) 大邱市長… 한나라당 김범일ꡒIT産業으로 構造 調整ꡓ[記事] :ꡐ장남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이 되자.ꡑ 한나라당 김범일 대구시장 후보가 초등학생 시절 품었던 특이한 장래 희망이다. 경북 예천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런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김 후보는 2006년 5월 7일,ꡒ가난한 농촌살림을 떠맡는 것은 장남의 당연한 책임ꡓ이라며,ꡒ경제적 부를 만들진 못했지만 장남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ꡓ고 자평했다. 이후 산골소년의 변신은 화려했다. 경북중․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 후보는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까지 올랐다. 1970년대 월급이 적어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돈보다는 명예라며 부인이 만류하자,ꡒ평생 월급이 적다고 바가지를 긁지 않겠다ꡓ는 각서를 받고 공무원을 계속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관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는 2003년 5월 대구 정무부시장(1급)으로 부임했다. 차관급이던 산림청장을 그만둔 지 두 달만에 강등을 자처한 것이다. 김 후보는,ꡒ지하철 참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고향을 외면할 수 없었고, 지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ꡓ고 말했다. 김 후보의 공약은 한 마디로 대구경제 회생이다. 이를 위해 대구를 정보기술(IT) 산업으로 구조 조정하겠다고 했다. 대기업과 대학, 대구시가 공동으로 건립하는 IT 관련 테크노 빌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원천 기술 보유 선도 기업을 10개 이상 유치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그는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가 제기하고 있는 대구경제 파탄 책임론에 대해서는,ꡒ2년 8개월의 재직 기간에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ꡓ며,ꡒ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대구시 공무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대구 뉴타운 개발계획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김 후보는,ꡒ180만 평의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대구 인구와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서울의 10배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ꡓ이라고 반박했다. 발로 뛰는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는,ꡒ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비판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ꡓ이라고 지역 정서를 설명했다.(김영석 記者 國民日報 05/07 17:59, 뉴스쿠키 2006년 5월 7일 (일) 18:00)
김범일(選擇531-大邱市長 : 김범일 한나라黨,ꡒ熱情바쳐 一流都市 만든다ꡓ,市民 自尊心․大邱 名譽 回復) [記事] : ■시장 출마 이유는?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대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했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특히 경제 회복은 최우선 과제이며 그와 더불어 시민들의 자존심과 저력, 그리고 역사 속의 대구가 보여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대구 시민들의 힘을 믿는다. 대구의 미래와 희망을 믿고 일류도시를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열정을 바쳐 앞장서겠다. ■시장이 되면 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대구는 IT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여건이 잘 준비된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산업에 연연해 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산업 구조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미, 포항, 울산, 창원 등의 산업도시가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부한 IT 인력을 매년 배출하고 있다. 또한 미래 산업은 퓨전 산업을 요구한다. 대구는 IT, 기계, 금속, 섬유라는 균형적 발전의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아니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고 성공할 수 있다. ■시민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번 지방선거는 그 어느 지방선거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대구 경제 회생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다. 또 편가르기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 현 정부의 오만과 편견을 심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그야말로 대구시민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 언제나 대구시민의 힘을 믿는다. 대구시민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며 위기의 구원자였다. 첨단 도시 일류 대구를 만들기 위한 새 출발은 이미 시작됐다. ▶ 경력 및 학력 △경력-제12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대통령비서실 일반행정비서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실행위 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1급 상당),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 실장 (관리관), 제23대 산림청 청장 (차관급),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민간위원, 대구시 정무부시장 △학력-예천초등․대구초등학교, 경북중,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남가주대학교대학원 행정학 석사, ▶ 주요 공약 : △미래를 내다보고 신성장동력을 육성-첨단 IT, 메카트로닉스산업 등 지식기반제조업 비중을 7.4%(2004년, 종업원기준)에서 20%(2010년)로 확대 등, △ꡐINVEST DAEGUꡑ 펀드를 조성해 대구경제 살리기-총 1조5천억원 규모의 3개 펀드 조성, △ꡐGRAND DESIGNꡑ을 통해 도시이미지를 재 창조-침체된 도심기능의 활성화 회복, 도시경관과 이미지 업그레이드, ▶ 프로필 : △가족:부인 김원옥 씨와 1남 1녀, △혈액형: A, △신장/체중: 174cm, 72 kg,△좌우명: 성실과 정도, △즐겨 부르는 노래:만남, △기억에 남는 영화:닥터 지바고, △존경하는 인물:박정희 대통령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인물평: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발이 넓다. 아랫사람이 정신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스타일(양승복 記者 慶北日報 2006/05/10)
김범일(大邱市長 候補 公約 FINE指標 深層分析) [記事] : 대구시장 선거전은 한나라당 김범일 후보가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에 대해 여론조사 지지율 20~30%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김 후보는 대구시 정무부시장 출신이고, 이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관심의 포인트는 이곳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이 이들 두 후보의 지지율 차를 벌리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여부다. 민주노동당 이연재, 국민중심당 박승국, 무소속 백승홍 후보는 모두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으나 백 후보가 다소 앞서 있다. 동아일보와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이사장 오연천 서울대 교수)는 2006년 5월 22일 이재용, 김범일 후보의 3대 공약을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FINE 기법에 근거해 평가했다. 이 후보의 공약들은 지역 주민의ꡐ반응성ꡑ과 실천 방안의 현실성을 따지는ꡐ실현성ꡑ에서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나 우선 순위의 적절성 여부 등을 따지는ꡐ효율성ꡑ점수는 다소 떨어졌다. 김 후보의 공약은 반응성과 효율성 부분에서 비교적 고르게 후한 평가를 받았다. [■ 김범일 후보 일자리 6만개 창출] : 경북 예천의 산골에서 태어난 김범일 후보의 꿈은ꡐ집안을 일으키는 장남ꡑ이었다고 한다.ꡐ느티나무ꡑ라는 별명도 있었다. 고향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친구들과 장래 희망에 대해 얘기할 때면ꡒ시원한 그늘이 있어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느티나무가 되고 싶다ꡓ고 말했다는 것. 서울대 경영학과를 다니며 한때 대기업 입사를 저울질했으나ꡐ공직이 제일ꡑ이라는 부모의 권유로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차관급인 산림청장을 지내고 잠시 쉬다 2003년 지하철 화재 참사로 대구 민심이 흉흉하던 때 정무부시장(1급) 제의를 받고 대구에 왔다. 2006년 4월 치러진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그는 서상기 의원,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과 경쟁했다. 한나라당 강세인 이 지역의 특성상ꡐ본선ꡑ보다 어렵다는ꡐ예선ꡑ을 그는 57.7%의 지지율로 통과했다. 동료 공무원들은 그에 대해ꡒ두뇌 회전이 빠르며 친화력이 있다ꡓ고 평가한다. 고교 시절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공사석에서 자주 영어로 농담을 하기도 한다는 것. 일부에선 카리스마 부족을 지적하지만 그는ꡒ권위주의적 카리스마는 없지만 실용주의적 카리스마는 갖췄다ꡓ고 했다. 정무부시장으로서 지역경제 침체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공격도 받는다. 그는ꡒ경제회복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 등의 노력을 나름대로 했다ꡓ며 첨단 기계부품소재 산업(메카트로닉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매니페스토 평가에선 미래형 첨단산업 육성 공약이 전반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일자리 6만 개 창출 정책은 지역 주민의 반응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으나 구체적 실천 방안이 미흡해 실현성에서는 50점대 초반의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무소속 백승홍(예천 출신) 후보 ꡒ금호강 개발 관광지 육성ꡓ] : 무소속 백승홍 후보도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4번의 낙선 끝에 15,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팬클럽인ꡐ창사랑ꡑ 대표를 지냈다. 그는ꡒ안일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망쳐 놓은 대구를 되살리겠다ꡓ고 강조하고 있다. 또 대구지역 무소속 후보 80여 명과 연대를 추진하며ꡐ무소속 바람ꡑ을 시도하고 있다. 대구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금호강 개발 및 관광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후보 약력] : 김범일(한나라당) ▽출생지(나이)=경북 예천(56세) ▽학력=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석사 ▽경력=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 ▽재산=18억5834만 원 ▽병역=육군 상병, 백승홍(무소속) ▽출생지(나이)=경북 예천(63세) ▽학력=영남대 경제학과 중퇴, 영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경력=민주당 대구시지부장, 15․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무 ▽재산=8억7377만 원 ▽병역=육군 하사(정용관 이정은 記者 東亞日報 2006년 5월 23일 (화) 03:31)
김범일(5.31 國民의 審判 : 廣域團體長 김범일 프로필, 뛰어난 유머感覺…業務 調整力 卓越, 大邱市長 김범일) [記事] : 산골마을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형. 1972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차관급인 산림청장까지 올랐지만 지난 2003년 5월 자청해 대구 정무부시장(1급)으로 부임했다. 뛰어난 유머 감각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언론계, 경제계 등 다방면에 인간 관계를 쌓아 마당발로 통한다. 일처리가 깔끔하고 부처 간 업무 조정력이 탁월하다는 평. 1970년대 월급이 적어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부인이 `돈보다는 명예`라며 만류하자 "평생 월급이 적다고 바가지 긁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일이 지금도 관가에 회자된다. 부인 김원옥(56) 씨와 1남 1녀. △경북 예천ㆍ56 △경북고ㆍ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12회(헤럴드經濟 2006년 6월 1일 (목) 14:51)
김범일(''''文․曺․金''''…大邱 民選市長은 ''''닮은 꼴''''? : 慶北 出生․學校 同門․50代 後半․行試 出身, 문희갑․조해녕․김범일) [記事] : 1995년 이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으로 뽑힌 이들 세 명이 적젆은 공통점을 지녀 화제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행정고시 출신에 중앙부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서로 닮은 점이 여러 모로 많은 것. 250만 대구 수장으로 선출됐지만 세 명 모두 대구 출신이 아니라는 점부터 흥미롭다.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는 예천 출신, 조해녕 대구시장은 경산 출신이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달성 출신이지만 그가 태어났을 무렵엔 달성은 엄연히 경북이었다.ꡐ지천명ꡑ인 50대 후반의 나이에 대구시장으로 뽑힌 것도 매한 가지. 또 세 사람 모두 경북고를 졸업했고,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더불어 관료로 중앙부처에서 승승장구했으며,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점도 닮았다.ꡐ일벌레ꡑ란 점도 공통점으로 꼽히고 있다. 김 당선자는 서울올림픽조직위 사업과장을 맡아 코카콜라 등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 능력을 인정받았고 총무처 출신임에도 최장수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TK 출신이면서 DJ정권에서 차관급인 산림청장을 역임한 것도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 덕분이란 평가다.ꡐ행자부의 왕발ꡑ이란 별명은 그의 친화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조 시장은 총무처와 내무부 등 두 번의 장관에다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내무부 지방자치체 기획단장을 맡아 지방자치 출범의 산파역을 맡았으며 탁월한 능력으로ꡐ조조ꡑ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 전 시장 역시 장관급인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등을 거쳤다. 그의 별명은ꡐ문핏대ꡑ,ꡐ혈죽(血竹)ꡑ. 대구시장이 되기 전에 대구와 먼저ꡐ인연ꡑ을 맺은 것도 흡사하다. 김 당선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의 권유로 정무부시장을 2년 8개월 동안 맡았으며, 조 시장은 대구시 기획관리실장과 관선 대구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문 전 시장은 1993년 대구 서구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세 사람의 좌우명도 엇비슷하다. 김 당선자는 "성실과 정도.", 조 시장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문 전 시장은 "꺾일 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로 경상도 선비 특유의 꼿꼿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이 마찬가지다. 취임 후 경제시장을 표방한 문 전 시장은 이후 환경, 문화시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조 시장은 대구를 국토 동남권 수도로 만드는 데 노력을 해왔다.ꡐ첨단도시 일류 대구ꡑ를 모토로 내세운 김 당선자가 앞으로 4년 동안 닮은 점이 많은 두 전․현직 시장과 같은 길을 걸을 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취임 후에 펼쳐질 그의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대현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6월 05일)
김범일("[民選4期 새 團體長에게 듣는다] 김범일 大邱市長") [記事] :ꡒ시장 취임에 앞서 지역 공단과 재래시장, 건설현장 등을 틈틈이 찾아가 밑바닥 여론을 살피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ꡐ경제부터 챙겨 달라ꡑ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지, 묘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습니다.ꡓ7월 3일 취임하는 김범일(55) 대구시장 당선자는 대구도시개발공사 2층 시장직 인수자문위원회 사무실에서 시정을 구상하고 현안 업무를 파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역 경제를 살리라는 시민들의 여망에 화답하기 위해 취임식을 지역 기업인과 근로자 등을 초청한 가운데 대구 엑스코(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기로 했다. 김 당선자는 국회와 중앙정부 예산부처 등을 방문해 2007년 대구시에서 추진되는 48개 국비 지원사업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ꡒ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라는 한계를 안은 채 지역 현안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ꡓ면서,ꡒ최근 계층 및 집단 간 갈등과 분쟁이 빚어지고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시급한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 나갈 것ꡓ이라고 밝혔다. ■김 당선자의 경제 회생 방안에 대해 기대를 거는 시민들이 많은데? =ꡒ서민과 근로자, 기업인이 모두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체감 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시의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미래를 이끌 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해 주력 업종으로 키우려 합니다. 이를 위해 모바일, 바이오, 나노 등 첨단 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이끌 스타 기업 100개를 육성하며 국내․외 우수기업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ꡐ대구경제살리기ꡑ 기금(펀드)을 조성해 서민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ꡓ ■지역 현안으로 떠오른 대구경북 경제 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ꡒ대구와 경북이 함께 번영을 누리기 위해 경제통합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무리해선 안 됩니다.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바일 특구 유치와 투자 공동유치, 제2엑스코 건립 등 경북도와 힘을 모을 수 있는 사업부터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경제통합 기구를 7월 중 구성하기로 김관용 경북도지사 당선자와 뜻을 모았습니다.ꡓ■대구시의 조직 및 기구 개편설이 무성한데? =ꡒ투자 및 경제전문가를 정무 부시장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만큼 현재 적임자를 찾고 있습니다. 또 경제산업국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고 유관 업무를 통합하기 위해 경제통상실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취임 후 6개월 간 ꡐ대구경제살리기 비상대책반ꡑ을 가동할 방침입니다. 특히 시 공무원들이 경제 현장을 수시로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직원들을 기업 마인드로 무장시킬 계획입니다. 우수한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줄 것입니다. 조직 및 기구 개편 시기는 8, 9월경으로 잡고 있습니다.ꡓ■시가 추진해 온 도시계획과 교통정책 등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ꡒ대구 도시디자인위원회를 설치해 미래 대구의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특히 3공단과 서대구공단 등 개발에서 소외된 공단 지역을 리모델링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도시디자인위원회에는 도시계획 및 교통전문가, 예술인 등을 대거 참여시키려 합니다. 대구의 역사성과 전통을 살리면서 미래 지향적인 도시를 만들 계획입니다. 또 교통난 완화를 위해 지하철 3호선을 2013년까지 조기 완공하도록 준비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시내버스 준공영제 실시에 따른 부작용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중교통정책 시행으로 인한 문제점과 시민불편 사항 등을 면밀히 분석해 개선책을 내놓을 것입니다.ꡓ■중점을 두고 추진할 다른 사업은? =ꡒ환경친화적인 금호강 산업 및 문화벨트를 조성하기 위해 금호강 부근에 수변 위락 단지를 개발하고 신천~금호강~낙동강 연안 녹화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또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임기 중 6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입니다.ꡓ 김 당선자는,ꡒ지역 사회 속으로 들어가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방안을 찾고 싶다ꡓ면서 ꡒ4년 뒤 발로 뛴 시장으로, 시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ꡓ고 말했다. [부친 당부따라 공직 진출…영어 잘하는 협상 전문가] :ꡐ느티나무ꡑ가 되고 싶었던 산골 소년.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는 경북 예천군 하리면 소백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ꡒ난 이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ꡓ는 말을 하곤 했다. 그의 친구들은 판, 검사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이야기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ꡐ늘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ꡑ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5년 때 홀로 대구로 전학갔다. 타지 생활은 그에게 독립심과 사회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당선자는 경북 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공직에 진출해 뜻을 펼치라는 부친의 당부에 따라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88서울올림픽 휘장사업과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로 영어 회화 실력이 뛰어나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 영어회화 서클에서 활동한 덕분이다. 부인 김원옥(55) 씨도 이 때 만났다. 김 당선자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일처리가 꼼꼼하다. 그는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88서울올림픽 휘장사업과장으로 일할 때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과 후원 협상에 나서 당초 목표액인 520억 원의 2배 가까운 1000억 원을 확보하는 등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정용균 記者 東亞日報 2006년 6월 27일 (화) 06:40)
---
<예천대사전> 제110권이 출판되었다. 예천읍 백전리 109번지 출신인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 1942- , 中等校長)의 편저로, 21,801-22,000쪽(200쪽 分量), 27cm, 장병창이 예천에서 2010년 6월 4일에 발행하였다. 수록 범위는 ‘추가 XIX : 예천군 의병~예천군 임업’이다. 수록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천 관련 책 : 예천군의 전설(수행닷컴, 2002년),
예천 관련 내용 수록 : 예천군 의병(20801-21878쪽, 1910.5-1910.12), 예천군 이군색(21919-21926쪽, 1741-1764년), 예천군 이미용(1939년), 예천군 이민(1737-1738년), 예천군 이인좌의 난(21926-21966쪽, 1728년), 예천군 이족(글 홍대용)
, 예천군 이주(21968-21974쪽, 1778-2008년), 예천군 이중과세(1938년), 예천군 이현상미승배(1770년), 예천군 인구(21975-21980쪽, 2009-2010년), 예천군 인사(21980-21988쪽, 2008-2010년)
기관 등 : 예천군의회(21883-21919쪽)
단체 : 예천군 의용단(1922년), 예천군의용소방대연합회(21879-21882쪽), 예천군이장연합회,
산업 : 예천군 임업(21988-22000쪽, 1914-1937년)
---
수원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예천 관련 저술은 다음과 같다.
1 醴泉郡誌. 상~하권 / 예천군지편찬위원회(위원장 김수남, 부위원장 장병창) / 醴泉郡 / 2005/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
2 시굴조사보고서= The Excavation report of the Dongbon-dong,Yecheon / 안동대학교. 박물관 / 안동대학교: (주)이원종합건설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11.82 ㅇ153ㅅ ]/ 국내단행본//
3 예천 맛질 朴氏家 日記. 1-5 / 한국정신문화원연구원 / 韓國精神文化硏究院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816.5 ㅎ155ㅇ ]/ 국내단행본//
4 醴泉權氏宗家別堂: 實測調査報告書(本文) / 문화재청 / 文化財廳 / 2001/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17 ㅁ327ㅇ ]/ 국내단행본//
5 醴泉權氏宗家別堂: 實測調査報告書(圖版) / 문화재청 / 文化財廳 / 2001/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17 ㅁ327ㅇ ]/ 국내단행본//
6 예천통명농요= 醴泉通明農謠: 중요무형문화재 제84-나호 [비디오 녹화자료] /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 / 1999/ 소장위치 중앙도서관[VT 601.50911 ㄱ427ㅎ ]/ 국내시청각자료//
7 예천통명농요= 醴泉通明農謠 / 국립문화재연구소 / 국립문화재연구소 / 1999/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01.50911 ㄱ427ㅇ ]/ 국내단행본//
8 醴泉大事典 / 장병창 / [발행자불명] / 199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03 ㅈ116ㅇ ]/ 국내단행본//
9 醴泉村落史 / 예천군(장병창 등 집필) / [醴泉郡] / 199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
10 醴泉 通明 農謠 / 강원희 / 醴泉 通明農謠 保存會 / 199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679.35 ㄱ263ㅇ ]/ 국내단행본//
11 醴泉郡誌 / 예천군(장병창 등 집필) / 醴泉郡 / 198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참 911.82 ㅇ259ㅇ ]/ 국내단행본(daum 2010)
12 醴泉 權氏 世譜 / 醴泉權氏大同譜所 / 1988/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99.11 ㄱ431ㅇ ]/ 국내단행본//
13 醴泉 林氏 世譜 / 醴泉林氏世譜編纂委員會 , 回想社 / 1986/ 소장위치 중앙도서관[999.11 ㅇ985ㅇ ]/ 국내단행본//
14 대창 80년사: 慶北 最古의 私立 大昌中高等學校 歷史 / 장병창 / 大昌中高等學校 / 2002/ 소장위치 중앙도서관[376.609 ㅈ116ㄷ ]//
*하리면 은산리 출신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 축하합니다(2)
김범일(大邱市長 候補 인터뷰 : 한나라黨 김범일, 産業用地 100萬坪 追加 造成) [記事] : ◆ 주요 공약 : 과학기술 중심 도시로 도약, 30여년 ''''公僕'''' 행정 경험 풍부/ ◆ 살아온 길 :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 지내, R D기반 확충 대기업 유치 노력, 市政 최우선 목표 ''''경제살리기''''/ 친(親) 한나라당 정서 때문에 대구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따는 것이 본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이 때문에 경선을 거쳐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가 된 김범일 후보는 주변으로부터 사실상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정치는 생물같은 것이고, 정치적인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장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맡으면서 산업․민생현장 등 안가본 곳이 없다. 대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도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어떻게 하면 대구의 옛 명성을 되찾고 발전할 수 있는지 깨닫고 방법도 모색했다. 대구를 회생시킬 자신감도 생겼다. 30여 년의 행정 역량과 경영 마인드, 반드시 내 힘으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쏟아붓는다면 일류 대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지금 대구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발로 뛰며 시민 삶 속으로 파고들어 아픔을 함께 나누며 문제를 풀어가고, 30년․50년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경제기반을 만들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제가 이같은 시민 여망에 가장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장 선거에 나섰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난 이후 만난 유권자들의 반응은? ="한나라당 후보가 되니 더 많은 시민이 성원을 보내주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힘이 난다. 이 때문에 책임감은 더 커졌다. 격려가 훨씬 많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도 함께 듣고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해 줬는데 한나라당이 한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달라지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대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으니까, 상대 후보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는 어려움도 있다." ■경선과정에서 차기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했는데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지 않는가.?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투표율을 올리는 것은 시장이 해야할 일이다. 대구의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만큼 투표율이 높을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대구의 투표율을 올려 한나라당 후보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 일을 잘해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정무부시장은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다. 대구경제가 어려운 것에 대한 책임론이 있는데? ="2003년 5월 정무부시장을 맡았을 때 대구의 상황은 암담했다. 부채는 전국 1위이고, 전통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첨단산업은 불모지였다. 국책연구소도 하나 없었다. 지하철화재참사로 대구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공무원들은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 인기정책이나 전시행정을 펴지 않았다. 반짝경기를 위한 부양책은 쓰지 않고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설립을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산업용지도 10년 만에 100만평을 새로 공급했고 전통산업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첨단산업의 비중을 높여 갔다. 머지않아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대구경제가 좋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시장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대구경제살리기를 시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 작년 대구지역 제조업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인데 2010년에는 20%로 끌어올리고 서민생활을 안정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 대구에 진출한 대형 주택건설업체와 대형소매점이 지역기업을 협력업체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겠다. 또 대구에 세계적인 대형 테마파크를 만들어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대구로 만들겠다. 대구의 비즈니스 지원 기능도 강화하고 대구를 사랑과 인정이 있는 도시,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겠다. 시청내 조직으로 장애인팀을 만들어 장애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하고, 고령화사회와 여성의 육아문제 해결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대구경제가 잘 되려면 외지기업 유치가 중요한데 구체적인 복안은 있는가?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을 2~3년내로 대구로 유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장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또 대구의 R& D기반을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한 다음에 대기업 유치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이다. 시청내에 투자유치단이 가동된 게 1년반 전이다. 이제 투자유치의 노하우도 생긴 만큼 투자유치단의 규모도 키워나가겠다." ■대구 전역이 재개발․재건축붐으로 아파트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부분이지만 아파트공급 과잉은 자칫하면 대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개발예정지역을 주거환경개선지구, 재개발지구 등으로 분류해 계획적으로 접근하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공급의 안정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김범일 후보의 공약은 ''''첨단 대구, 일류 대구''''란 슬로건 아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첨단 대구 프로젝트''''와 ''''아름다운 도시 건설을 위한 일류 대구 프로젝트''''로 크게 구분된다. 이들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첨단 대구''''프로젝트 : 1. 대구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 2. 세계적인 금호강 첨단산업 문화벨트 조성, 3. 과학기술 중심도시로 도약, 5. 산업용지 100만평 추가 조성 및 원천기술 보유 기업 유치, 6. 대규모 대구 경제살리기 펀드 조성, 7. 산․학․연․관의 직업교육 및 고용 네트워크 구축으로 일자리 창출, ◇''''일류 대구''''프로젝트 : 1. 사람과 기업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도시 건설, 2. 고품격 문화도시 창조, 3. 한국 제일의 교육도시 지향, 4. 더불어 함께하는 복지도시 조성, 5. 쾌적한 도시, 안전한 도시 건설, 6.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등 글로벌 대구 구현, 7. 시민이 감동하도록 행정서비스를 대기업 수준으로 혁신/
한나라당 김범일 예비후보는 2003년 5월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3월 차관급인 산림청장에서 물러난 지 두 달 만에 1급인 정무부시장으로 대구에 왔다. 함께 일하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의 제안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 직급 하향에 관계없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후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대구시장의 꿈을 키워갔다. 올해 1월 대구시장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에서 물러났고, 지난 13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선출자대회에서 승리해 한나라당 후보가 됐다. 대구시장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를 얻은 것이다. 김 후보는 예천이 고향이다. 예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초등학교로 전학와, 대구에서 경북중․고를 다녔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때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3년 총무처 사무관을 시작으로 총무처 조직국장,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친 뒤 산림청장을 끝으로 30여년간의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올림픽조직위에서 휘장사업과장으로 일했다. 외국 대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는 게 주요 업무로, 흑자 올림픽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스폰서를 유치해 흑자 올림픽이 되는 데 기여했다. 이 때문에 김 후보는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88올림픽의 폐회식으로 꼽았다. 그는 "폐회식을 보는 순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4년간 열심히 일해 성공적인 흑자 올림픽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름 김범일(55․金範鎰)/ 출신지 예천/ 학력 대구초등, 경북중․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경력 12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총무처 의전국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비서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실행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 좌우명 성실과 정도/ 취미 바둑, 등산/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대통령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어린시절 꿈 맏이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 즐겨부르는 노래 만남(노사연)/ 기억에 남는 영화 닥터 지바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 구분없이 즐기나 팝송을 더 좋아함/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 사업/ 주량 맥주 1병/ 하루가 생긴다면 등산한 뒤 푹 자겠다/ 한달 휴가가 생긴다면 여행을 가겠다/ 1년 휴가가 생긴다면 세계여행을 한 뒤 책을 쓰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 ''''매력국가 만들기''''-이유는 지식과 문화사업이 한 국가나 도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구의 미래를 위해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 아쉬운 일 젊을 때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충분한 시간과 애정을 쏟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가족관계/ 아내, 1남 1녀/(김진욱 記者 嶺南日報 2006-04-26 23:51:37)
김범일(일 慾心 많고 要職거친 正統官僚)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후보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중과 경북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12회)해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인지 30여 년 동안 내무부와 행자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 다.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휘장과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총무처 의전부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총무처 조직국장에 이어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 그의 공직 경력은 화려하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으로 재직할 때는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의 후원을 받아내 올림픽을 흑자로 돌려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산림청장 재직시 조해녕 현 대구시장이ꡐ지하철 참사ꡑ를 수습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내려와 2006년 3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의 살림을 챙긴 것이 김 후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후보는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중학 시절부터 영어회화클럽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1982년 총무처 교육훈련과장직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와 함께 일한 공무원들에 따르면 아랫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치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김 후보는 이재용 열린우리당 후보의 경북고 4년 선배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가끔 만났을 뿐 별다른 인연은 없다고 말했다.(박천학 記者 文化日報 2006년 4월 28일 (금) 15:25)
김범일(山골少年에서 最高 公務員까지…김범일 豫備候補)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강한 흡인력의 소유자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논리로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한다. 상업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영향을 받은 덕분에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면도 돋보인다. 그는 산골 소년에서 최고위 공무원까지 올랐다. 경북 예천 소백산 산자락 50여 가구만이 살던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다. 산골 학교에서 1등을 도맡은 학업 능력과 부모님의 교육열이 합쳐진 것이다. 어린 소년에게 객지 생활은 독립심과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후보 특유의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객지 생활의 고생이 준 덤이었다. 객지 생활에서도 활달한 개구쟁이였지만 공부는 늘 상위권이었다. 특히 4남 1녀의 첫째였던 그는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항상 교육받았다. 당시 장래 희망이ꡐ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ꡑ이었을 정도.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한국은행과 대기업 입사를 두고 진로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ꡒ관으로 가서 출세해 집안을 일으켜라.ꡓ는 아버지 당부를 듣고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고, 졸업을 앞두고 합격(12회 행정고시)했다. 그의 큰 무기는 영어 실력.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에는 ''''PINETREE(소나무)''''라는 영어 서클에서 활동했다. 총무처 서기관 시절에는 미국 남가주대 대학원에 2년 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공무원으로 성공적인 길을 밟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빠른 두뇌 회전, 선제적인 업무 처리 스타일 등이 인정을 받은 것. 첫 발령을 받은 총무처 사무관 시절부터ꡒ촉망받는 장관감ꡓ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부서 내 역대 최장기 행자부 기획관리실장(1998년 6월~2000년 2월)을 지냈다. 기획관리실장 자리는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일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정치권에도 많은 인맥을 만들게 됐다. DJ정부 들어 차관급인 산림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직급을 낮춰 왔다. "경상도 정부였다면 일찌감치 장관을 달았을 것"으로 보는 공무원들도 적잖다.(이창환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5월 01일)
김범일(廣域團體長 候補 探究 (4) 大邱市長… 한나라당 김범일ꡒIT産業으로 構造 調整ꡓ[記事] :ꡐ장남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이 되자.ꡑ 한나라당 김범일 대구시장 후보가 초등학생 시절 품었던 특이한 장래 희망이다. 경북 예천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런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김 후보는 2006년 5월 7일,ꡒ가난한 농촌살림을 떠맡는 것은 장남의 당연한 책임ꡓ이라며,ꡒ경제적 부를 만들진 못했지만 장남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ꡓ고 자평했다. 이후 산골소년의 변신은 화려했다. 경북중․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 후보는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까지 올랐다. 1970년대 월급이 적어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돈보다는 명예라며 부인이 만류하자,ꡒ평생 월급이 적다고 바가지를 긁지 않겠다ꡓ는 각서를 받고 공무원을 계속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관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는 2003년 5월 대구 정무부시장(1급)으로 부임했다. 차관급이던 산림청장을 그만둔 지 두 달만에 강등을 자처한 것이다. 김 후보는,ꡒ지하철 참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고향을 외면할 수 없었고, 지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ꡓ고 말했다. 김 후보의 공약은 한 마디로 대구경제 회생이다. 이를 위해 대구를 정보기술(IT) 산업으로 구조 조정하겠다고 했다. 대기업과 대학, 대구시가 공동으로 건립하는 IT 관련 테크노 빌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원천 기술 보유 선도 기업을 10개 이상 유치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그는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가 제기하고 있는 대구경제 파탄 책임론에 대해서는,ꡒ2년 8개월의 재직 기간에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ꡓ며,ꡒ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대구시 공무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대구 뉴타운 개발계획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김 후보는,ꡒ180만 평의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대구 인구와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서울의 10배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ꡓ이라고 반박했다. 발로 뛰는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는,ꡒ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비판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ꡓ이라고 지역 정서를 설명했다.(김영석 記者 國民日報 05/07 17:59, 뉴스쿠키 2006년 5월 7일 (일) 18:00)
김범일(選擇531-大邱市長 : 김범일 한나라黨,ꡒ熱情바쳐 一流都市 만든다ꡓ,市民 自尊心․大邱 名譽 回復) [記事] : ■시장 출마 이유는?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부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대구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정말 깊이 고민했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특히 경제 회복은 최우선 과제이며 그와 더불어 시민들의 자존심과 저력, 그리고 역사 속의 대구가 보여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출마를 결심했다. 대구 시민들의 힘을 믿는다. 대구의 미래와 희망을 믿고 일류도시를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열정을 바쳐 앞장서겠다. ■시장이 되면 역점적으로 추진할 사업은? =대구는 IT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여건이 잘 준비된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산업에 연연해 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따라서 산업 구조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미, 포항, 울산, 창원 등의 산업도시가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부한 IT 인력을 매년 배출하고 있다. 또한 미래 산업은 퓨전 산업을 요구한다. 대구는 IT, 기계, 금속, 섬유라는 균형적 발전의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아니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고 성공할 수 있다. ■시민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번 지방선거는 그 어느 지방선거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대구 경제 회생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다. 또 편가르기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한 현 정부의 오만과 편견을 심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그야말로 대구시민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 언제나 대구시민의 힘을 믿는다. 대구시민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며 위기의 구원자였다. 첨단 도시 일류 대구를 만들기 위한 새 출발은 이미 시작됐다. ▶ 경력 및 학력 △경력-제12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대통령비서실 일반행정비서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실행위 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1급 상당),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 실장 (관리관), 제23대 산림청 청장 (차관급),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민간위원, 대구시 정무부시장 △학력-예천초등․대구초등학교, 경북중,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남가주대학교대학원 행정학 석사, ▶ 주요 공약 : △미래를 내다보고 신성장동력을 육성-첨단 IT, 메카트로닉스산업 등 지식기반제조업 비중을 7.4%(2004년, 종업원기준)에서 20%(2010년)로 확대 등, △ꡐINVEST DAEGUꡑ 펀드를 조성해 대구경제 살리기-총 1조5천억원 규모의 3개 펀드 조성, △ꡐGRAND DESIGNꡑ을 통해 도시이미지를 재 창조-침체된 도심기능의 활성화 회복, 도시경관과 이미지 업그레이드, ▶ 프로필 : △가족:부인 김원옥 씨와 1남 1녀, △혈액형: A, △신장/체중: 174cm, 72 kg,△좌우명: 성실과 정도, △즐겨 부르는 노래:만남, △기억에 남는 영화:닥터 지바고, △존경하는 인물:박정희 대통령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인물평: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발이 넓다. 아랫사람이 정신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스타일(양승복 記者 慶北日報 2006/05/10)
김범일(大邱市長 候補 公約 FINE指標 深層分析) [記事] : 대구시장 선거전은 한나라당 김범일 후보가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에 대해 여론조사 지지율 20~30%포인트 차로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김 후보는 대구시 정무부시장 출신이고, 이 후보는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관심의 포인트는 이곳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피습 사건이 이들 두 후보의 지지율 차를 벌리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여부다. 민주노동당 이연재, 국민중심당 박승국, 무소속 백승홍 후보는 모두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으나 백 후보가 다소 앞서 있다. 동아일보와 한국의회발전연구회(이사장 오연천 서울대 교수)는 2006년 5월 22일 이재용, 김범일 후보의 3대 공약을 매니페스토(참공약 선택하기) FINE 기법에 근거해 평가했다. 이 후보의 공약들은 지역 주민의ꡐ반응성ꡑ과 실천 방안의 현실성을 따지는ꡐ실현성ꡑ에서 무난한 평가를 받았으나 우선 순위의 적절성 여부 등을 따지는ꡐ효율성ꡑ점수는 다소 떨어졌다. 김 후보의 공약은 반응성과 효율성 부분에서 비교적 고르게 후한 평가를 받았다. [■ 김범일 후보 일자리 6만개 창출] : 경북 예천의 산골에서 태어난 김범일 후보의 꿈은ꡐ집안을 일으키는 장남ꡑ이었다고 한다.ꡐ느티나무ꡑ라는 별명도 있었다. 고향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친구들과 장래 희망에 대해 얘기할 때면ꡒ시원한 그늘이 있어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느티나무가 되고 싶다ꡓ고 말했다는 것. 서울대 경영학과를 다니며 한때 대기업 입사를 저울질했으나ꡐ공직이 제일ꡑ이라는 부모의 권유로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다.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쳐 차관급인 산림청장을 지내고 잠시 쉬다 2003년 지하철 화재 참사로 대구 민심이 흉흉하던 때 정무부시장(1급) 제의를 받고 대구에 왔다. 2006년 4월 치러진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그는 서상기 의원,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과 경쟁했다. 한나라당 강세인 이 지역의 특성상ꡐ본선ꡑ보다 어렵다는ꡐ예선ꡑ을 그는 57.7%의 지지율로 통과했다. 동료 공무원들은 그에 대해ꡒ두뇌 회전이 빠르며 친화력이 있다ꡓ고 평가한다. 고교 시절부터 영어에 관심이 많았고 공사석에서 자주 영어로 농담을 하기도 한다는 것. 일부에선 카리스마 부족을 지적하지만 그는ꡒ권위주의적 카리스마는 없지만 실용주의적 카리스마는 갖췄다ꡓ고 했다. 정무부시장으로서 지역경제 침체에 대한 책임도 있다는 공격도 받는다. 그는ꡒ경제회복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 등의 노력을 나름대로 했다ꡓ며 첨단 기계부품소재 산업(메카트로닉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매니페스토 평가에선 미래형 첨단산업 육성 공약이 전반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일자리 6만 개 창출 정책은 지역 주민의 반응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으나 구체적 실천 방안이 미흡해 실현성에서는 50점대 초반의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무소속 백승홍(예천 출신) 후보 ꡒ금호강 개발 관광지 육성ꡓ] : 무소속 백승홍 후보도 재․보궐선거를 포함해 4번의 낙선 끝에 15,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팬클럽인ꡐ창사랑ꡑ 대표를 지냈다. 그는ꡒ안일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망쳐 놓은 대구를 되살리겠다ꡓ고 강조하고 있다. 또 대구지역 무소속 후보 80여 명과 연대를 추진하며ꡐ무소속 바람ꡑ을 시도하고 있다. 대구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금호강 개발 및 관광산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후보 약력] : 김범일(한나라당) ▽출생지(나이)=경북 예천(56세) ▽학력=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주립대 대학원 석사 ▽경력=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 ▽재산=18억5834만 원 ▽병역=육군 상병, 백승홍(무소속) ▽출생지(나이)=경북 예천(63세) ▽학력=영남대 경제학과 중퇴, 영남대 경영대학원 수료 ▽경력=민주당 대구시지부장, 15․16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부총무 ▽재산=8억7377만 원 ▽병역=육군 하사(정용관 이정은 記者 東亞日報 2006년 5월 23일 (화) 03:31)
김범일(5.31 國民의 審判 : 廣域團體長 김범일 프로필, 뛰어난 유머感覺…業務 調整力 卓越, 大邱市長 김범일) [記事] : 산골마을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수재형. 1972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차관급인 산림청장까지 올랐지만 지난 2003년 5월 자청해 대구 정무부시장(1급)으로 부임했다. 뛰어난 유머 감각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언론계, 경제계 등 다방면에 인간 관계를 쌓아 마당발로 통한다. 일처리가 깔끔하고 부처 간 업무 조정력이 탁월하다는 평. 1970년대 월급이 적어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부인이 `돈보다는 명예`라며 만류하자 "평생 월급이 적다고 바가지 긁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일이 지금도 관가에 회자된다. 부인 김원옥(56) 씨와 1남 1녀. △경북 예천ㆍ56 △경북고ㆍ서울대 경영학과 △행시 12회(헤럴드經濟 2006년 6월 1일 (목) 14:51)
김범일(''''文․曺․金''''…大邱 民選市長은 ''''닮은 꼴''''? : 慶北 出生․學校 同門․50代 後半․行試 出身, 문희갑․조해녕․김범일) [記事] : 1995년 이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으로 뽑힌 이들 세 명이 적젆은 공통점을 지녀 화제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행정고시 출신에 중앙부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는 등 서로 닮은 점이 여러 모로 많은 것. 250만 대구 수장으로 선출됐지만 세 명 모두 대구 출신이 아니라는 점부터 흥미롭다.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는 예천 출신, 조해녕 대구시장은 경산 출신이다.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달성 출신이지만 그가 태어났을 무렵엔 달성은 엄연히 경북이었다.ꡐ지천명ꡑ인 50대 후반의 나이에 대구시장으로 뽑힌 것도 매한 가지. 또 세 사람 모두 경북고를 졸업했고,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더불어 관료로 중앙부처에서 승승장구했으며,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점도 닮았다.ꡐ일벌레ꡑ란 점도 공통점으로 꼽히고 있다. 김 당선자는 서울올림픽조직위 사업과장을 맡아 코카콜라 등 세계적 기업들을 유치, 능력을 인정받았고 총무처 출신임에도 최장수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냈다. TK 출신이면서 DJ정권에서 차관급인 산림청장을 역임한 것도 그의 탁월한 업무 능력 덕분이란 평가다.ꡐ행자부의 왕발ꡑ이란 별명은 그의 친화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조 시장은 총무처와 내무부 등 두 번의 장관에다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내무부 지방자치체 기획단장을 맡아 지방자치 출범의 산파역을 맡았으며 탁월한 능력으로ꡐ조조ꡑ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문 전 시장 역시 장관급인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등을 거쳤다. 그의 별명은ꡐ문핏대ꡑ,ꡐ혈죽(血竹)ꡑ. 대구시장이 되기 전에 대구와 먼저ꡐ인연ꡑ을 맺은 것도 흡사하다. 김 당선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의 권유로 정무부시장을 2년 8개월 동안 맡았으며, 조 시장은 대구시 기획관리실장과 관선 대구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 문 전 시장은 1993년 대구 서구갑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세 사람의 좌우명도 엇비슷하다. 김 당선자는 "성실과 정도.", 조 시장은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문 전 시장은 "꺾일 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로 경상도 선비 특유의 꼿꼿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이 마찬가지다. 취임 후 경제시장을 표방한 문 전 시장은 이후 환경, 문화시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조 시장은 대구를 국토 동남권 수도로 만드는 데 노력을 해왔다.ꡐ첨단도시 일류 대구ꡑ를 모토로 내세운 김 당선자가 앞으로 4년 동안 닮은 점이 많은 두 전․현직 시장과 같은 길을 걸을 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취임 후에 펼쳐질 그의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대현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6월 05일)
김범일("[民選4期 새 團體長에게 듣는다] 김범일 大邱市長") [記事] :ꡒ시장 취임에 앞서 지역 공단과 재래시장, 건설현장 등을 틈틈이 찾아가 밑바닥 여론을 살피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ꡐ경제부터 챙겨 달라ꡑ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지, 묘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습니다.ꡓ7월 3일 취임하는 김범일(55) 대구시장 당선자는 대구도시개발공사 2층 시장직 인수자문위원회 사무실에서 시정을 구상하고 현안 업무를 파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역 경제를 살리라는 시민들의 여망에 화답하기 위해 취임식을 지역 기업인과 근로자 등을 초청한 가운데 대구 엑스코(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기로 했다. 김 당선자는 국회와 중앙정부 예산부처 등을 방문해 2007년 대구시에서 추진되는 48개 국비 지원사업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ꡒ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라는 한계를 안은 채 지역 현안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ꡓ면서,ꡒ최근 계층 및 집단 간 갈등과 분쟁이 빚어지고 있어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시급한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 나갈 것ꡓ이라고 밝혔다. ■김 당선자의 경제 회생 방안에 대해 기대를 거는 시민들이 많은데? =ꡒ서민과 근로자, 기업인이 모두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체감 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시의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의 미래를 이끌 성장 동력산업을 육성해 주력 업종으로 키우려 합니다. 이를 위해 모바일, 바이오, 나노 등 첨단 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을 이끌 스타 기업 100개를 육성하며 국내․외 우수기업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ꡐ대구경제살리기ꡑ 기금(펀드)을 조성해 서민경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 나갈 계획입니다.ꡓ ■지역 현안으로 떠오른 대구경북 경제 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ꡒ대구와 경북이 함께 번영을 누리기 위해 경제통합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하지만 무리해선 안 됩니다.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바일 특구 유치와 투자 공동유치, 제2엑스코 건립 등 경북도와 힘을 모을 수 있는 사업부터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경제통합 기구를 7월 중 구성하기로 김관용 경북도지사 당선자와 뜻을 모았습니다.ꡓ■대구시의 조직 및 기구 개편설이 무성한데? =ꡒ투자 및 경제전문가를 정무 부시장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만큼 현재 적임자를 찾고 있습니다. 또 경제산업국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고 유관 업무를 통합하기 위해 경제통상실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취임 후 6개월 간 ꡐ대구경제살리기 비상대책반ꡑ을 가동할 방침입니다. 특히 시 공무원들이 경제 현장을 수시로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직원들을 기업 마인드로 무장시킬 계획입니다. 우수한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줄 것입니다. 조직 및 기구 개편 시기는 8, 9월경으로 잡고 있습니다.ꡓ■시가 추진해 온 도시계획과 교통정책 등에 대해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ꡒ대구 도시디자인위원회를 설치해 미래 대구의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특히 3공단과 서대구공단 등 개발에서 소외된 공단 지역을 리모델링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도시디자인위원회에는 도시계획 및 교통전문가, 예술인 등을 대거 참여시키려 합니다. 대구의 역사성과 전통을 살리면서 미래 지향적인 도시를 만들 계획입니다. 또 교통난 완화를 위해 지하철 3호선을 2013년까지 조기 완공하도록 준비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시내버스 준공영제 실시에 따른 부작용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대중교통정책 시행으로 인한 문제점과 시민불편 사항 등을 면밀히 분석해 개선책을 내놓을 것입니다.ꡓ■중점을 두고 추진할 다른 사업은? =ꡒ환경친화적인 금호강 산업 및 문화벨트를 조성하기 위해 금호강 부근에 수변 위락 단지를 개발하고 신천~금호강~낙동강 연안 녹화사업을 추진하겠습니다. 또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임기 중 6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입니다.ꡓ 김 당선자는,ꡒ지역 사회 속으로 들어가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 해결방안을 찾고 싶다ꡓ면서 ꡒ4년 뒤 발로 뛴 시장으로, 시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한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ꡓ고 말했다. [부친 당부따라 공직 진출…영어 잘하는 협상 전문가] :ꡐ느티나무ꡑ가 되고 싶었던 산골 소년.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는 경북 예천군 하리면 소백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 밑에서,ꡒ난 이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ꡓ는 말을 하곤 했다. 그의 친구들은 판, 검사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장래 희망을 이야기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쉼터를 만들어 주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동구 밖 느티나무처럼ꡐ늘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ꡑ는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5년 때 홀로 대구로 전학갔다. 타지 생활은 그에게 독립심과 사회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당선자는 경북 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공직에 진출해 뜻을 펼치라는 부친의 당부에 따라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88서울올림픽 휘장사업과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로 영어 회화 실력이 뛰어나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 영어회화 서클에서 활동한 덕분이다. 부인 김원옥(55) 씨도 이 때 만났다. 김 당선자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일처리가 꼼꼼하다. 그는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88서울올림픽 휘장사업과장으로 일할 때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과 후원 협상에 나서 당초 목표액인 520억 원의 2배 가까운 1000억 원을 확보하는 등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정용균 記者 東亞日報 2006년 6월 27일 (화) 06:40)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