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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261:권한공政丞3(祝장석명.이혁/예천방문643)
작성자장병창 @ 2010.07.22 06:35:13
  예천의 자랑(2261) : 유천면 성평리 사람 권한공 도첨의정승(3)(附 예천 출신 장석명과 이혁, 20일 청와대비서관으로... 축하합니다/예천방문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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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공(權漢功) : 예천군(醴泉君)(예천군(醴泉君)은 목은의 처조부(妻祖父)인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의 명기(明忌)에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2권/ 시(詩)/ 예천군(醴泉君)의 명기(明忌)에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다.// 수정사는 맑고 깨끗해 티끌 하나 없어라 / 水精精舍淨無塵/ 중수한 공사가 집을 새로 지은 것 같구려 / 起廢功夫似創新/ 푸른 절벽 붉은 등나무는 오솔길을 타오르고 / 翠壁紫藤緣細逕/ 푸른 소나무 흰 돌은 꽃다운 풀밭을 끼었네 / 蒼松白石擁芳茵/ 외손들은 연이어 양부에 들어갔는데 / 聯翩宅相入兩府/ 적막해라 문생은 한 사람도 없네그려 / 寂寞門生無一人/ 동궁의 찬선이 중국 역사에 드러났으니 / 贊善東宮中國史/ 예천군의 풍채가 푸른 봄을 비추었으리 / 醴泉風采照靑春// [주C-001]예천군(醴泉君) : 목은의 처조부(妻祖父)인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주D-001]동궁(東宮)의 …… 비추었으리 : 푸른 봄이란 역시 동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찍이 예천부원군 권한공이 원(元)나라 원제(元帝)의 소명(召命)을 받아 태자 좌찬선(太子左贊善)에 임명되었으므로 한 말이다.//

  권한공(權漢功) : 염 시중(廉侍中)이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부인 채씨(蔡氏)의 기재(忌齋)를 수정사(水精寺)에서 설행하였다. 이날 나는 염상(廉相) 형제 등 여러 처남들과 함께 직접 남쪽 봉우리에 올라가 산세를 두루 보았는데, 다만 안개 때문에 성중(城中)의 수많은 가옥들을 분변할 수 없더니 안개가 조금 걷히자 참으로 절경이었다. 산을 따라서 신효사(神孝寺)로 내려갔는데, 여기에 영전(影殿)이 있으므로 말에서 내려 수십 보를 걸어가다가 홍문(紅門)을 지나서는 다시 말을 타고 다리 가에 이르러 제공(諸公)과 작별하였다. 그러고는 동정(東亭)과 특별히 성균관(成均館)에 들러 알성(謁聖)을 하고 명륜당(明倫堂) 동쪽 협실(夾室)에 앉아 있노라니, 학관(學官) 3원(員)과 제생(諸生) 2원이 와서 알현하였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나와서 박 첨원(朴簽院)의 문밖에 이르러 서로 헤어져 각기 돌아갔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9권/ 시(詩)/ 평강 채씨의 기재 올리는 수정사에는 / 平康忌旦水精廬/ 깨끗한 자리에 하늘이 으리비치는데 / 淸淨僧筵照碧虛/ 돌은 봉마다 우뚝 솟아 병장을 친 듯하고 / 石矗聯峯似屛障/ 연기는 평지 덮어 여염집이 간데없었지 / 煙沈平地失閻閭/ 영릉의 영전엔 소나무가 문을 가리고 / 永陵影殿松侵戶/ 문묘라 대성전엔 풀이 뜨락에 비치었네 / 文廟儒宮草映除/ 병든 가슴에 술 마시기가 몹시 꺼림해 / 病肺苦嫌謀飮酒/ 조용히 돌아와서 고인의 글을 읽노라 / 寂寥歸讀古人書/ [주D-001]영릉(永陵) : 고려 충혜왕(忠惠王)의 능호(陵號)이다.//

  권한공(權漢功) : 원명사(圓明寺)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재(忌齋)가 이르렀으므로 이 시를 짓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9권/ 시(詩)/ 원명사(圓明寺)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재(忌齋)가 이르렀으므로 이 시를 짓다.// 남문은 형세가 우뚝 솟아 있고 / 南門勢突兀/ 진봉산은 높다랗게 깎아질렀는데 / 進奉山?巖/ 가랑비는 뜨락에 자욱이 내리고 / 微雨滿庭宇/ 아침 해는 솔과 삼목을 비추나니 / 初日照松杉/ 먼지 자욱한 속세를 멀리 벗어나 / 逈然出塵垢/ 신선과 범인을 초탈할 만하고말고 / 可以超仙凡/ 황조 원나라의 두 승상은 / 皇元兩丞相/ 호복으로 우리 조복과 나란히 했네 / 胡服聯朝衫/ 고흥군 유 영밀에 대해서는 / 高興柳英密/ 자앙의 붓이 칼날 같았거니와 / 子?筆如?/ 초상화에도 참담한 기색 있거니 / 丹靑有慘色/ 형세 궁해라 방금 참소가 두렵구려 / 勢極方畏讒/ 다행히 나는 영욕을 벗어나서 / 幸我脫榮辱/ 오래도록 기심을 잊었었다오 / 久矣忘機緘// 배주 승상(拜住丞相)과 탈탈 승상(脫脫丞相)의 진영(眞影)이 있는 곳이다./ [주D-001]고흥군(高興君) 유 영밀(柳英密) : 고려 후기에 벼슬이 첨의 정승(僉議政丞)에 이르고 고흥군에 봉해졌으며 시호가 영밀인 유청신(柳淸臣)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몽고어(蒙古語)를 배워 여러 차례 원(元)나라에 다녀왔고, 특히 외교에 능하여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받아서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했는데, 충숙왕(忠肅王) 때에 미쳐서는 원나라에 가서 조적(曺?) 등과 함께 충숙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는 귀국도 하지 못한 채 원나라에서 죽었다. 이때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 또한 충숙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 고를 옹립하려던 유청신 등의 음모에 가담했었다./ [주D-002]자앙(子?)의 …… 같았거니와 : 자앙은 원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 조맹부(趙孟?)의 자인데, 그가 유청신에 대해서 어떤 비판적인 글을 혹 쓴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3]배주 승상(拜住丞相)과 탈탈 승상(脫脫丞相) : 배주는 원 영종(元英宗) 때에 중서 좌승상(中書左丞相)이 되었고, 탈탈은 순제(順帝) 때에 중서 우승상(中書右丞相)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현상(賢相)으로 일컬어졌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군(醴泉君)의 부인 채씨(蔡氏)의 기단(忌旦)에 유 승제(柳承制)의 부인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도 가서 참여하였다. 재를 마치고 나서는 성균관에 들어가 알성(謁聖)을 했는데, 그곳에 한 흑립(黑笠) 쓴 사람이 있었으나 그의 성명은 묻지 않았다. 비석을 보니 귀부(龜趺)가 없었다. 김경지(金敬之)를 방문하여 밀탕(蜜湯)을 마셨는데, 그의 아들 명선(明善)이 탕 그릇을 받들고 왔다. 이어서 권용부(權庸夫) 상의(商議)를 알현했는데, 판서(判書) 박원상(朴元祥)이 뒤따라왔고, 염정수(廉廷秀)는 나를 수행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간단히 술 한 잔 마시고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취포(醉飽)하여 돌아왔다. 박공(朴公)은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5권/ 시(詩)// 동방의 상례 제례는 불교를 숭상하기에 / 東方喪祭尙浮屠/ 채씨의 재연에 이 늙은이도 참여케 했네 / 蔡氏齋筵著老夫/ 돌아올 때는 돌다리에서 서로 헤어졌고 / 歸向石橋分馬首/ 나는 성균관에 들러 귀부도 물어보았지 / 入趨槐市訊龜趺/ 꿀물 공손히 올려라 천금 같은 아들이요 / 蜜湯?進千金子/ 진수성찬 대접받아 종에게도 밥 먹였네 / 珍饍仍霑白飯奴/ 우연히 만난 박군은 도의 맛을 즐기어서 / 邂逅朴君耽道味/ 산택을 좇아 파리한 신선 배우려 한다지 / 欲從山澤學仙?// [주D-001]천금(千金) 같은 아들이요 : 부귀한 집의 자제들은 매우 삼가서 몸을 보호한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진수성찬 …… 먹였네 : 두보(杜甫)의 〈입주행(入奏行)〉에 “그대 위해 술 사서 자리 가득 준비하고, 종에겐 흰밥 주고 말에겐 푸른 꼴 먹이리.[爲君?酒滿眼? 與奴白飯馬靑芻]” 하였다./ [주D-003]산택(山澤)을 …… 한다지 :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천자(天子)에게 아뢰기를 “여러 신선들이 서로 전하여 산택 사이에 거주한 이들은 형용이 매우 파리하나니, 이것은 제왕이 하고자 하는 신선이 아닙니다.[列仙之傳居山澤間 形容甚? 此非帝王之仙意也]” 한 데서 온 말이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단(忌旦)에 사위인 염 시중(廉侍中)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는 바로 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은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의 장자로서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가 바로 목은의 장인이기도 하다.)의 사위인지라, 당상(堂上)에서 염 시중을 모시고 앉았더니, 공(公)이 관음상(觀音像)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이것은 나의 장모 채 부인(蔡夫人)께서 막내아들이 죽은 것을 인하여 재물을 희사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막내아들이란 바로 내 장인의 아우인데, 연도(燕都)에서 죽었고 자식도 없다. [ 상세서지보기/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6권/ 시(詩)// 수월관음이 장엄하기도 하여라 / 水月粧嚴□□□/ 소리 듣고 고통 구함을 순순히 하듯 하네 / 聞聲救苦似諄諄/ 막내아들을 유독 사랑함은 자친의 뜻이요 / 尤憐季子慈親意/ 중생을 널리 구제한 이는 대사의 몸이로다 / 普應?生大士身/ 전각은 거듭 새로워져 땅을 환히 비추고 / 殿宇重新明照地/ 산봉우리는 사방에서 모아들어 옹위하네 / 峯巒四合□□□/ 곡성 총재는 늙어갈수록 더욱 강건하니 / 曲城?宰逾?健/ 응당 빙옹을 닮아 구십 연세를 향수하리 / 應似氷翁九十春// [주C-001]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 :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의 장자로서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가 바로 목은의 장인이기도 하다./ [주D-001]수월관음(水月觀音)이 …… 하네 : 수월관음은 달이 비친 바다 위의 한 잎의 연꽃 위에 선 모양을 한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가리키는데, 모든 고통 받는 중생(衆生)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암송(暗誦)하거나 일컫기만 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音聲)을 관(觀)하여 바로 달려가서 그 모든 고통을 면하게 해 준다고 한다. 이 밖에 별칭으로는 구세보살(救世菩薩), 연화수보살(蓮華手菩薩), 원통대사(圓通大士) 등의 여러 가지 명호가 있다./ [주D-002]곡성 총재(曲城?宰)는 …… 향수하리 : 곡성 총재는 당시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키고, 빙옹(氷翁)은 처부(妻父)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곧 염제신의 처부인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군(醴泉君)의 내외손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름을 사촌회(四寸會)라고 하였는데, 해마다 두 사람씩 번갈아 가며 술과 음식을 마련하곤 하였다. 그런데 내가 근심과 병으로 지낸 십여 년 동안 이 모임도 거의 열리지를 않았는데, 이 오성(李鼇城)이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울 목적으로 삼월 초하룻날에 빈객을 많이 초청하고 크게 풍악을 연주하면서 예전보다 열 배나 더 성대하게 잔치를 마련하였다. 이에 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추록(追錄)하여 오성 좌하(座下)에 증정하면서 한번 웃어 보도록 하였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8권/ 시(詩)// 비단옷 무더기 속에 울려 퍼지는 관현악 / 羅綺叢中絃管聲/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오성이시라네 / 主人云是李鼇城/ 난리 끝에 이 모임을 누가 또다시 마련했노 / 亂餘此會誰重辦/ 병든 뒤에 상봉하니 이 몸도 살아날 것 같네 / 病後相逢我再生/ 광달하다고 일컬어지는 왕사의 풍류라면 / 王謝風流稱曠達/ 태평 시대 구가하는 최로의 벌열이라 할까 / 崔盧閥閱値升平/ 백발로 누차 춤 춘 것을 비웃질랑 말아 주오 / 白頭屢舞莫嘲笑/ 야반에 취해서 돌아가니 닭이 벌써 울었습디다 / 夜半醉歸?已鳴// [주D-001]비단옷 무더기 : 수많은 기녀(妓女)들을 가리킨다. 기녀를 표현한 소식(蘇軾)의 시에 “소도가 봉우리 터뜨리니 봄을 못 이기는 듯, 비단옷 무더기 속에 단연코 으뜸일세.[小桃破?未勝春 羅綺叢中第一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3 答陳述古》/ [주D-002]광달하다고 …… 풍류라면 : 왕사(王謝)는 세상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함께 어울려 노닐었던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의 합칭으로, 목은 자신을 가리킨다./ [주D-003]태평 시대 …… 할까 : 최로(崔盧)는 위진(魏晉) 시대 때부터 당대(唐代)까지 장기간 조정에서 현달한 산동(山東)의 최씨(崔氏)와 노씨(盧氏) 집안의 합칭으로,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의 가문을 가리킨다. 목은은 권한공의 아들인 권중달(權仲達)의 사위이다.//

  권한공(權漢功) : 졸고천백(拙藁千百)/ 저자: 崔瀣/ 발행자: 한국고전번역원/ 날짜: 2006/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권일재(權一齋)(권일재(權一齋)의 일재는 권한공(權漢功 : ? ? 1349)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충렬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충선왕이 즉위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역임하였다.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일로 인해 이사온(李思溫), 김심(金深)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양위한 후에는 원나라에 가서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만권당(萬卷堂)에서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된 후 충숙왕에 의해 구금되어 장류(杖流)되었으나,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풀려나온 뒤 그에 대한 복수로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고 충숙왕을 폐위시키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마지막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올랐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고려사≫에서는 그의 열전을 간신전(姦臣傳)에 수록하고 있다.)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 서명: 拙藁千百/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졸고천백 제2권/ 권일재(權一齋)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 모월 모일에 고자(孤子) 아무개는 돌아가신 어머니 고(故) 영가군대부인(永嘉郡大夫人)의 영령께 감히 고하나이다. 아, 사람이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니 이치상으로 볼 때 어찌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이가 있겠습니까. 요절하는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행히 오래 사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는 간혹 질병에 걸려 병상에서 신음하면서 목숨을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께서는 아흔다섯 해를 사셨는데, 일평생을 논해보면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10여 세에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와서 22년 동안 나를 키웠고 50년 동안 부친과 함께 사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건대 선친께서는 공정(公正)하고 근검(勤儉)하신 분으로 하늘의 도움을 받아 75세까지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이때 어머니의 연세가 또한 72세였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셔왔으니, 그 아들이 74세가 되고 또 요행히 상상(上相)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권한을 손에 쥐어 더없는 부귀를 누릴 때까지 어머니께서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사시다가 이번에 생을 마치게 되실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아, 슬프도다. 이는 실로 어머니께서 일찍이 음덕(陰德)을 모았기 때문에 큰 복을 받아 오늘에 이른 것으로, 이른바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듯이 여긴다.〔視死如歸〕’는 말에 해당될 터이니, 어찌 마음속에 유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는 형제자매가 없는 홀몸으로 젊어서는 처가살이와 벼슬살이에 매달리고 만년에는 공명심에 빠져 집과 나라를 떠나 30여 년 동안 부질없이 높은 관직에만 의지해 살아왔으니, 이것은 부모의 뜻을 받드는 양지(養志)에는 해당되겠지만 철에 맞추어 어머님의 거처를 살피고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일에 있어서는 실로 마음을 저버리고 만 것이니, 돌아가신 지금에 와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삶과 죽음의 이치는 마치 조석(朝夕)의 변화와 같고, 백발의 나이에 부모상을 당하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는 일이며, 죽음 때문에 삶을 해치지 말라고 하신 성현의 분명한 가르침도 있다.”는 말로 위로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모자(母子)간의 정이 늙어갈수록 돈독해져서 노쇠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일임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에 돌아가신 지 백일째 되는 날을 맞아 용천사(龍泉寺)에서 재(齋)를 올려 복을 빌고 삼가 다과(茶果)와 시수(時羞)를 마련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영연(靈筵)에 고합니다. 아, 슬프도다. 흠향하소서.//

  영혼사(迎魂辭)/ 물결은 휘감으며 동쪽으로 흘러가고 / 波??而東注/ 햇빛은 어둑어둑 서쪽으로 저무는데 / 景??以西沈/ 혼령이시여 어디에서 오셨나이까 / 魂歸來兮何所/ 눈물이 속눈썹을 타고 옷깃을 적십니다 / 淚承睫以霑襟// 송혼사(送魂辭)/ 마치 만난 듯한데도 보지를 못하여 / 若有遇而不睹/ 서글피 혼령의 소리나마 듣고 싶습니다 / 慨欲聞其無音/ 홀연히 문을 나서 망연자실 바라보지만 / 忽出門而自失/ 마침내 어디에서 찾아뵌단 말입니까 / 竟安究而安尋// [주C-001]권일재(權一齋) : 일재는 권한공(權漢功 : ? ? 1349)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충렬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충선왕이 즉위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역임하였다.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일로 인해 이사온(李思溫), 김심(金深)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양위한 후에는 원나라에 가서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만권당(萬卷堂)에서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된 후 충숙왕에 의해 구금되어 장류(杖流)되었으나,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풀려나온 뒤 그에 대한 복수로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고 충숙왕을 폐위시키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마지막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올랐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고려사》에서는 그의 열전을 간신전(姦臣傳)에 수록하고 있다./ [주D-001]고자(孤子) : 부모상을 당한 사람이 자신을 지칭한 때 부르는 이름이다. 후대에 와서는 부친상을 당한 경우에는 그대로 고자(孤子)라 하고, 모친상을 당한 경우에는 애자(哀子)라고 하였다./ [주D-002]22년 …… 키웠고 : 국역 대본의 원문은 ‘至其?勞二十有二載’인데 문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외아들인 권한공이 22세에 결혼할 때까지 키워주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전처 소생인 자신을 22년 동안 키워주었다는 말인지 불확실하다./ [주D-003]한편으로는 …… 모셔왔으니 :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부모의 나이를 몰라서는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朱子)가 주석을 붙이기를, “늘 부모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으면 부모가 장수한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노쇠한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효성을 다하려고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노력하게 된다.” 하였다./ [주D-004]상상(上相) : 재상(宰相) 가운데 가장 높은 재상으로, 권한공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을 지낸 것을 가리킨다./ [주D-005]처가살이와 벼슬살이 : 국역 대본에는 ‘婚官’으로 되어 있는데 《동문선(東文選)》에는 ‘官’ 자가 ‘宦’ 자로 되어 있다. 판각상의 오자로 판단되어 ‘宦’ 자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당시에 결혼을 하면 처가에서 생활하는 풍속이 있었으므로 결혼과 관직 생활로 집을 떠났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6]죽음 …… 가르침 :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의하면, 아버지나 임금이 돌아가실 경우 사흘이 지나면 밥을 먹고 석 달이 지나면 목욕을 하고 1년이 지나면 연복(練服)을 입는데, 애훼(哀毁)하면서도 목숨을 잃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은 죽음 때문에 삶을 해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주D-007]시수(時羞) : 해당 계절에 나는 음식을 이른다.//

  권한공(權漢功) : 일재(一齋),문탄(文坦)/ 구분: 한국역대인물자료/ 분류: 인물 > 한국역대인물자료/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권한공(權漢功)/ [요약정보]/ 시대 고려 후기/ 본관 안동(安東)/ 성 권(權)/ 호 일재(一齋)/ 시호 문탄(文坦)/ 성별 남/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고려 / 문신/ [상세내용]/ 권한공(權漢功)에 대하여/ ?∼1349(충정왕 1).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일재(一齋)/ 첨의평리(僉議評理) 책(?)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294년(충렬왕 20)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고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뒤에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있으면서 총애를 받았다. 충선왕이 집권하게 되자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충선왕이 귀국하자 측근에서 수시로 인견하고, 1309년(충선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 1310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311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밀직사(密直使), 1312년 첨의평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부정을 행하여 이사온(李思溫)·김심(金深) 등의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왕의 비호로 곧 석방되고 오히려 이사온 등이 유배당했다. 충선왕이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남으로 강절(江浙)에 유행(遊行)해서 보타산(寶陀山)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수행하였다. 충숙왕 초에 삼사사를 거쳐 찬성사에 전임, 1314년(충숙왕 1) 권보(權溥)·이진(李?) 등과 함께 성균관에 모여 강남에서 새로 구입한 서적들을 고열(考閱)하였다. 당시 퇴위하여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충선왕이 국내정치에 간섭하였는데, 이광봉(李光逢) 등과 연경(燕京)에 호종(扈從)하면서 권세를 부렸기 때문에 충숙왕과 틈이 생겼다. 충선왕이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귀양가자,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1321년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다시 풀려나와 그 보복으로 1322년에 충숙왕을 폐하고 심왕(瀋王) 고(暠)를 세우려고 획책했으나 원나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1324년 예천군(醴泉君)으로 봉해졌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 재상·국로들이 모여 왕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청할 것을 의론하였는데 이를 반대하였다.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나라의 명을 받아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이 되었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저서로 《일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一齋集//

  권한공(權漢功) : 고려 시대의 권신(權臣)(?~1349). 호는 일재(一齋). 성절사(聖節使)로 중국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만권당에서 이제현과 함께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저서에 《일재집》이 있다.(daum 2010)

권한공(權漢功) : 호 일재(一齋), 시호 문탄(文坦), 생졸년 ? (?) - 1349 (충정왕 1), 시대 고려 후기, 본관 안동(安東),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고려 / 문신/ 과거 및 취재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10년 (1284) 갑신(甲申) 충렬왕 10년 갑신방(忠烈王 十年 甲申榜)/ [상세내용] 권한공(權漢功)에 대하여 : 미상∼1349년(충정왕 1).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일재(一齋). 첨의평리(僉議評理) 책(?)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294년(충렬왕 20)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고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뒤에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있으면서 총애를 받았다. 충선왕이 집권하게 되자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충선왕이 귀국하자 측근에서 수시로 인견하고, 1309년(충선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 1310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311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밀직사(密直使), 1312년 첨의평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부정을 행하여 이사온(李思溫)·김심(金深) 등의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왕의 비호로 곧 석방되고 오히려 이사온 등이 유배당했다. 충선왕이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남으로 강절(江浙)에 유행(遊行)해서 보타산(寶陀山)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수행하였다. 충숙왕 초에 삼사사를 거쳐 찬성사에 전임, 1314년(충숙왕 1) 권부(權溥)·이진(李?) 등과 함께 성균관에 모여 강남에서 새로 구입한 서적들을 고열(考閱)하였다. 당시 퇴위하여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충선왕이 국내정치에 간섭하였는데, 이광봉(李光逢) 등과 연경(燕京)에 호종(扈從)하면서 권세를 부렸기 때문에 충숙왕과 틈이 생겼다. 충선왕이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귀양가자,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1321년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다시 풀려나와 그 보복으로 1322년에 충숙왕을 폐하고 심왕(瀋王) 고(暠)를 세우려고 획책했으나 원나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1324년 예천군(醴泉君)으로 봉해졌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 재상·국로들이 모여 왕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청할 것을 의론하였는데 이를 반대하였다.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나라의 명을 받아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이 되었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저서로 《일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一齋集(daum 2010)


  권한공(權漢功) : 봉호 예천군(醴泉君) ,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자 개숙호(愷叔號), 호 문탄(文坦) , 일재(一齋)/ 명 : "한공(漢?)"에 대한 용례/ 전거 용례/ 紀年便攷v4 ?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泉府院君忠定己丑死謚文坦子仲和見下/ 紀年便攷v4 與蔡洪哲得罪於忠肅而?之附瀋王謀傾忠肅無所不至與宰相閔漬?上書於元請立瀋王?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 紀年便攷v4 忠肅而?之附瀋王謀傾忠肅無所不至與宰相閔漬?上書於元請立瀋王?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泉府院君忠定己/ 紀年便攷v9 權景裕漢?六世孫判官?子景祐弟字君饒一于?號痴軒金宗直門人成宗乙巳以生?登?試?翰林選湖堂性剛毅不喜作爲知時事(daum 2010)

  권한공 : 서대동강선창(書大同江船窓) / 권한공(權漢功)/ 서대동강선창(書大同江船窓) 권한공(權漢功) 자갈언덕 나무숲 봄소식이 멀었는데 청산이 강에 잠겨 저믄빛 짙으구나 좋은풍물 물에 비쳐 또렷하온데 노래소리 어데로서 들려 오는가 磯邊綠樹春陰薄 (기변녹수춘음박) 江上靑山暮色多 .../ http://kr.rd.yahoo.com(daum 2010)

  권한공 : 권극립(權克立)/ ; 30.5x20.6cm. 四周雙邊. 半匡 ; 19x15.6cm.有界.10行19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고려 말의 권한공(權漢功)과 그 아들 중화(仲和), 조선시대 한공(漢功)의 7세손인 극립(克立)과 그 아들 봉(封) 등 안동 권씨 4인의.../ http://www.shinjongwoo.co.kr(daum 2010)

  권한공 : 배 안에서 재상(宰相) 일재(一齋) 권한공(權漢功)에게 화답하다/ 2008.08.07/ 배 안에서 재상(宰相) 일재(一齋) 권한공(權漢功)에게 화답하다 이때 일재가 강절(江浙)로 가게 되었다.해뜰 무렵 백운루 밑에서 배를 타고/蘭舟晩發白雲樓강남의 첫째 고을로 향해 간다./遙指江南第一州좋은 술 취하도록 마시고.../ http://cafe.daum.net/kyoungjulee/ 경주이씨익재공후판윤공파(daum 2010)

  권한공 : 동문선에 나온 칠언 절구/ 2009.07.08/ 落月半庭推戶? 살구꽃 성긴 그림자 가득히 옷에 차네 / 杏花疏影滿衣裳 영국공제분매(瀛國公第盆梅) 권한공(權漢功) 옥이 여위고 구슬이 파리하여 기상이 쓸쓸할수록 / 玉瘦瓊憔意未平 티끌을 벗어난 신선의 뼈가 더욱 가냘프구나 .../ http://cafe.daum.net/bg0115/ 명품벽강철학연구소(daum 2010)

  권한공 : 함평 이씨 발상지 표석탑/. 2010.03.11/ ...전지(傳旨)를 보내 나라의 모든 일을 간여하였는데, 이때 그는 상왕인 충선왕을 보좌한다는 권세를 빌려 권한공(權漢功). 채홍철(蔡洪哲). 최성지(崔誠之) 등과 함께 뇌물을 받고 친척에게 관직을 팔았다. 이 때문에 충숙왕의 미움을.../ http://cafe.daum.net/jinin22/ 향기로운 세상(daum 2010)

  권한공 :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기록된 함풍부원군 휘 광봉 약사/ 2009.10.06/ ...)로 고친 것을 하례드림 o. 충숙왕 5년 무오 1318년 5월 上王(忠宣王)在元 凡國家事 遙傳旨施行 故 扈從 宰相權漢功 崔誠之 李光逢等 以親戚故舊濫授朱 紫 王 頗懷不平 (상왕 충선이 원나라에 있으면서 모든 국가 대 소사를 멀리서.../ http://cafe.daum.net/gunhwan21/ 함평이씨 기성군파 사람들(daum 2010)

  권한공 :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 1/ e-Book/ 제성욱 지음 | 일송북 | 2006.05.22/ 책본문 : ...떨었지만 어필 수 없이 그의 비위를 맞추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정승(政료) 권한공(權漢功)과 찬성사懼成事) 민상정 (聞祥正), 그리고 조위(趙漆) 등이 왕이 병환이 있다고 말하고는.../ 88페이지(daum 2010)

  권한공 : 한국의 성씨와 족보(한국의 탐구25)/ e-Book/ 이수건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3.06.10/ 책본문 : ...특히 후대의 權近系는 훈구세력으로 계속 내려왔다. 권수평의 아우수홍계 가운데 權漢功계는 위의 수평계와 비슷하게 주로 기호지방에 분포되었고 다른 파계는 각 도에 분포되었는데.../ 296페이지(daum 2010)

  권한공 :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 2/ e-Book/ 제성욱 지음 | 일송북 | 2006.05.22/ 책본문 : ...그것도 모자라 신하들의 부인을 차례로 능욕하기도 했다. 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의 둘째 처인 강씨를 궁중에 데려와 강간했으며, 내시 전자유의 집에 값다가 그의 처를.../ 39페이지(daum 2010)

  권한공 : 한시어사전/ e-Book/ 전관수 지음 | 국학자료원 | 2002.07.09/ 책본문 : ...그 동안 세월은 변할 것이라, 먼 공중을 한껏 바라보니 새만 빨리 나네.)<권한공權漢功 기정사공寄鄭司空> 極目三韓飛鳥外 春江不鮮洗離愁(극목삼한비조외 춘강불선세이수.../ 95페이지(daum 2010)

  권한공 : 충숙공 심 본전(忠肅公 深 本傳 = 見麗史列傳)/ 2009.06.29/ ...(運搬)하는 폐단(弊端)이 더 심(甚)하고 모든 신하(臣下)들도 다 객지(客地)라서 돌아가기를 생각하나 권한공(權漢功)과 최성지(崔誠之)는 같이 법(法)을 맡아 그 뇌물(賂物)로 이익(利益)을 삼고 박경량(朴景亮)은 왕(王)에 심복.../ http://blog.daum.net/kjs6565/ 사진이 있는 "양촌재의 행복갤러리"(daum 2010)

  권한공 : [논픽션] 순흥안가는 없다 (79) 탐진안씨 안우安祐의.../ 2009.12.13/ ...(車原碩)·생서녀일녀(生庶女一女)의 부랑(夫郞)안동인(安東人) 권중화(權仲和)며 부(父)는 정승(政丞) 권한공(權漢功)이며 아들은 권방위(權邦緯)이다. 공(公)의 묘역(墓域)은 양주(楊州) 봉황산(鳳凰山) 곤좌(坤坐)인데 1972년 임자.../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12120/ 오원의 산 이야기(daum 2010)

  권한공 : 最近 南冥學 硏究成果 整理 및 그 動向과 反省/ 2009.11.12/ .... 다시 말해 元나라 수도인 大都(지금의 北京)에 고려의 학문저술 및 연구기관으로 忠肅王 1년(1314년:元 延祐 1년)15) 당시 先王으로 大都에 머물렀던 忠宣王에 의해 萬卷堂에서 새로이 세워지고 왕의 부름을 받고 權漢功(?~1349,/ http://blog.daum.net/ansk2000/ 碧山안승기 블로그(daum 2010)

  권한공 : 윤선좌(尹宣佐 : 評理公)/ 2009.10.19/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진강하였다. 그뒤 일시 파직되었다가 다시 집의에 임명되었다. 1322년(충숙왕 9) 권한공(權漢功), 채홍철(蔡洪哲) 등이 왕을 폐하고 심왕(瀋王) 고(暠)를 대신 세우려는 책동을 부리자 이를 극력 반대하고 대간.../ http://blog.daum.net/tembeng/ 昭靖公 九房派 長房 忠景公派(坡平)(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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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장석명과 이혁, 20일 청와대비서관으로... 축하합니다.

  장석명과 이혁(秘書官 人事 斷行…靑 "改閣, 再·補選 以後 斷行할 것") [記事] :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7월 20일 권한이 강화된 홍보기획비서관으로 포항 출신인 이상휘 춘추관장을 내정하는 등 비서관 15명에 대한 내정 인사를 단행했다. 정무 1비서관에는 상주 출신인 김연광 특임장관실 특임실장이 내정됐고, 정무 2비서관에는 대구 출신인 이재환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승진 기용됐다.

  또 공직기강비서관에 예천 출신인 장석명 공직기강팀장이 승진 기용됐고, 외교비서관에는 역시 예천 출신 이혁 주일 대사관 공사가 내정됐다.

  시민사회비서관에는 17대 의원을 지낸 이성권 코트라 감사, 고용노사비서관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서울지방노동위원장, 관광진흥비서관에는 안경모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이 각각 내정됐다. 신설된 국민소통비서관에는 박명환 인사비서관실 인사운영팀장, 춘추관장으로는 박정하 춘추관장실 선임행정관이 승진 기용됐다. 아울러 박흥신 언론비서관은 정책홍보비서관으로 이동했고, 김상협 녹색성장환경비서관, 이상목 국민권익비서관, 김철균 뉴미디어비서관, 함영준 문화체육비서관 내정자는 사실상 유임됐다.

  이상휘 홍보기획비서관 내정자는 1963년생으로 성균관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를 취득했으며, 청와대 춘추관 관장,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 선임 행정관, 서울특별시장 비서실 민원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김연광 정무 1비서관 내정자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월간조선 편집장,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을 지냈다. 또 이재환 정무2비서관 내정자는 1957년생으로 경북대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한나라당 중앙당 조직국장,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 내정자는 1964년생으로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국정기획수석실 선임행정관, 서울시 정책기획관 등을 지냈다.

  이혁 외교비서관 내정자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공직에 입문해 외교통상부 아시아태평양국장, 주 중국대사관 참사관 등을 역임했다.

  이날 비서관급 인사를 단행한 청와대는 조만간 행정관 등 후속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개각은 7·28 재·보선 이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개각은 재·보선이 있는 28일을 넘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각은 이르면 7월말, 늦어도 8월초에는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초 이명박 대통령이 7·28 재·보선 이전에 개각을 단행, 당·정·청을 쇄신한 뒤 선거를 치르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집권 하반기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후보자 검증 등 내각 개편에 신중을 기한다는 차원에서 선거 이후로 늦춘 것으로 전해졌다.

  (嶺南日報 201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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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643

  예천연꽃마을(龜尾 도개면 團合大會·奉仕活動) [記事] :

  구미시 도개면(면장 남동수)은 2010년 7월 20일 도개면바르게살기위원회(최용주) 주관으로 회원 및 면직원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청남대를 둘러보고 예천군 사회복지법인 노인요양시설인 `연꽃마을’에 들러 생필품 전달과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는 등 회원 단합대회 겸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慶北道民日報 2010-07-21 (수)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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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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