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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286:김돈判書2(附예천방문659)
예천의 자랑(2286) : 예천 출신 김돈 이조판서(2)(附 예천방문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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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6월 9일(기유) 2번째 기사/ 개․친에게 작호를 내리고․이맹균․이숙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개(李?)로 숭록 대부(崇祿大夫) 순성군(順城君)을, 이친(李?)으로 정헌 대부(正憲大夫) 서원군(瑞原君)을, 이맹균(李孟畇)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이숙묘(李叔畝)로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윤형(尹炯)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이견기(李堅基)로 우승지(右承旨)를, 유수강(柳守剛)으로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김돈(金墩)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7장 A면/ 【영인본】 3책 6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년) 4월 15일(갑술) 3번째 기사/ 주야 측후기인 일성정시의가 이룩되다/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이룩됨을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件]인데, 하나는 내정(內庭)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을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다만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누어주어서 군중의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또 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서(序)와 명(?)을 짓게 하니, 그 글에 이르기를, ꡒ의상(儀象)은 더 말할 것 없이 요․순 으로부터 한․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중히 여겨서 그 글이 경사(經史)에 갖추어 나타났으나, 예전과 시대가 멀어서 그 법이 자세하지 아니하였는데,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세상에 뛰어난 신성(神聖)한 자질로써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천문법상(天文法象)의 이치에 유념하시어, 무릇 예전에 이르는바, 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 등과 자격루(自擊漏)․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현주(縣珠)․일구(日晷) 등의 그릇을 빠짐 없이 제작하게 하셨으니, 그 물건을 만들어 생활에 이용하게 하시는 뜻이 지극하시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각이 1백 각이요, 그리고 밤과 낮이 반씩이로되 낮에는 햇볕을 헤아려서 시간을 아는 그릇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주례(周禮)》 에 별을 보고 밤 시각을 구분하는 글이 있고, 《원사(元史)》 에도 별로써 시각을 정하는 말이 있으나 그 측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에 밤낮 시각을 알리는 그릇을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그 제도는 구리[銅]를 써서 만들었는데, 먼저 바퀴를 만들어 세(勢)를 적도(赤道)에 준하여 자루[柄]가 있고, 바퀴의 지름[徑]은 2척, 두께는 4분, 넓이는 3촌이다. 가운데 십자거(十字距)가 있는데, 넓이는 1촌 5분, 두께는 바퀴와 같다. 십자 가운데는 축이 있는데, 길이는 5분 반이고 지름은 2척이다. 북쪽 면을 깎아 파되, 중심에 1리(釐)를 두어서 두께를 하고 가운데 둥근 구멍을 겨자[芥]씨 같이 만들었다. 축은 계형(界衡)을 꿰고, 구멍은 별을 살피는 것이다. 아래에는 서리고 있는 용의 모양을 만들어 바퀴 자루를 물고 있는데, 자루의 두께는 1촌 8분이며 용의 입에 1척 1촌이 들어가고 밖에 3촌 6분이 나왔다. 용의 밑에는 대가 있는데, 넓이는 2척이고 길이는 3척 2촌이며, 도랑과 못을 만들었는데, 수평(水平)을 취한 것이었다. 바퀴의 윗면에 세 고리[環]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라 한다. 그 ꡐ주천도분환ꡑ은 밖에 있으면서 움직이고 돌며, 밖에 두 귀[耳]가 있는데 지름은 두 자, 두께는 3분, 넓이는 8분이다. ꡐ일구백각환ꡑ은 가운데에 있어 돌지 아니하고, 지름은 1척 8촌 4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밖의 것과 같다. ꡐ성구백각환ꡑ은 안에 있어 움직이고 돌며, 안에 두 귀가 있는데, 지름은 1척 6촌 8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안팎 고리와 같다. 귀가 있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세 고리의 위에 계형(界衡)이 있으니, 길이는 2척 1촌, 넓이는 3촌, 두께는 5분인데, 양쪽에 머리가 있고 가운데는 비었으며, 길이는 2촌 2분이고, 넓이는 1촌 8분으로, 세 고리[環]의 그림을 덮지 못하게 한 것이다. 허리의 중간 좌우에 각각 용이 하나씩 있으니, 길이는 1척이고, 함께 ꡐ정극환(定極環)ꡑ을 받든다. ꡐ정극환ꡑ이 둘이 있는데, 바깥 고리와 안 고리의 사이에는 구진대성(句陳大星)이 나타나고, 안 고리의 안에는 천추성(天樞星)이 나타나니, 남북의 적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바깥 고리는 지름이 2촌 3분이고, 넓이가 3분이며, 안 고리는 지름이 1촌 4분 반, 넓이가 4리(釐)이고, 두께는 모두 2분인데 약간 서로 대여서 십자와 같다.
ꡐ계형ꡑ 두 끝에 빈곳의 안팎에 각각 작은 구멍이 있고, ꡐ정극환ꡑ 바깥 고리의 양쪽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 가는 노끈으로 여섯 구멍[六穴]을 통해 꿰어서 ꡐ계형ꡑ의 두 끝에 매었는데, 위로는 해와 별을 살피고 아래로는 시각을 알게 한 것이다. ꡐ주천환(周天丸)ꡑ에는 주천도(周天度)를 새기되, 매도(每度)를 4분으로 하고, ꡐ일구환(日晷環)ꡑ은 1백 각을 새기되, 매각(每刻)을 6분으로 하였다. 성구환도 일구환과 같이 새겼으나, 다만 자정이 신전자정(晨前子正)에 지나서 하늘이 일주(一週)하는데, 1도를 더 지나가는 것과 같이 다름이 있다. ꡐ주천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먼저 수루(水漏)를 내려서 동지 신전자정을 맞추고, ꡐ계형ꡑ으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서 바퀴 가에 표시하고, 인해 주천 첫 도의 초에 맞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면 천세에 반드시 차가 생기니, 《수시역(授時曆)》으로 상고하면, 16년이 약간 지나서 1분이 뒤로 물러나고, 66년이 약간 지나서는 1도가 뒤로 물러나므로, 이에 이르러 다시 살펴서 정한다. 북극 둘째 별은 북극에서 가깝고 가장 붉고 밝아서, 여러 사람이 보기 쉽기 때문에 이것으로 측후(測候)한다. ꡐ일구환ꡑ의 사용은 ꡐ간의(簡儀)ꡑ와 같고, ꡐ성구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 자정을 시초로 하여 ꡐ주천환ꡑ 초도의 초에 맞게 하여 하루에 1도, 이틀에 2도, 사흘에 3도로 하여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가 되고, 다음해 동지 첫날 자정에는 3백 65도가 되니, 하루에 공도(空度)가 3분이고, 이틀에 1도 3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3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3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2분이고, 이틀에 1도 2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2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2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1분이고, 이틀에 1도 1분으로 3백 65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 1분이 되니 이를 일진이라고 이른다. 일진(一盡)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무릇 인사의 동정(動靜)하는 기틀[機]은 실로 해와 별의 운행(運行)하는 법칙에 매였고, 해와 별의 운행은 의상 가운데 밝게 나타나므로, 옛 성인이 반드시 정치하는 도의 첫째 일로 삼았으니, 요의 역상(曆象)과 순의 선기(璇璣)가 이것이다. 우리 전하께서 제작하신 아름다운 뜻은 곧 요․순과 더불어 법을 같이 하였으니, 천고에 내려오면서 일찍이 없던 거룩한 일이다. 아아, 지극하도다. 이를 마땅히 새겨서 후세에 밝게 보여야 할 것이므로 신(臣) 돈이 감히 손으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지어 올리노라.ꡓ 하고, 그 글에 이르기를, ꡒ요임금은 역상을 공경하고, 순임금은 기형에 뜻을 두니 대대로 전하여서 제조가 정밀하다. ꡐ의(儀)ꡑ라 하고 ꡐ상(象)ꡑ이라 하여 그 이름이 같지 아니하나, 땅을 보고 하늘을 살펴서 백성의 일을 보여 주었다. 옛일이 이미 멀어서 제도가 퇴폐하여졌으니 책에 실려 있은들 그 뜻을 뉘가 알리오. 신성하신 임금이 시대에 응해 나시어, 요․순의 법을 받아 표(表)와 누(漏)와 의(儀)와 상(象)의 옛 제도를 회복했네. 백각(百刻)으로 때를 정해 밤낮을 나누었고, 햇볕으로 때를 아는 그릇은 있으나, 밤에도 살피고자 의상[儀]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리셨네. 그 이름 무엇인고. ꡐ일성정시의ꡑ라 일컬으며, 쓰는 법은 어떠한고. 별자리를 살펴보고 햇볕과 맞추었도다.
구리로 바탕하여 만든 솜씨가 뛰어나서 비할 수 없고, 둥근 바퀴[圓輪] 먼저 하고 거(距)가 있어 운용한다. 남북이 높고 낮아 적도를 모방하고, 대 위에 용이 서려[蟠], 바퀴 자루 물고 있다. 도랑과 못이 있어 물을 담아 바르고, 바퀴 위에 세 고리[環]가 서로 붙고 의지하여 바깥 것은 주천이니, 도와 분이 벌여 있고, 안의 두 고리는 일구․성구인데, 성구환의 각은 천도같이 지나도다. 안팎 것은 움직이나, 중간 것은 굳게 붙어 움직이지 아니한다. 계형이 전면에 가로[橫] 있어 굴대[軸]가 중심을 꿰었도다. 굴대에 구멍 뚫어 겨자[芥]같고 바늘 같아 계형의 빈[虛] 끝에는 도와 각이 새겨 있다. 쌍룡(雙龍)이 축을 끼고 정극환을 받들었다. 안팎에 환(環)2727) 이 있고, 그 사이에 별이 있다. 그 별은 무엇인고. 구진(句陳)과 천추(天樞)로다. 남북이 정하였고 동서가 바르도다. 측후법(測候法)은 어떠한고. 실[線]을 써서 살펴본다. 고리[環] 위에 곧게 걸고 계형 끝에 내려 꿰어, ꡐ일구ꡑ에는 둘을 쓰고 ꡐ성구ꡑ에는 하나 쓴다. 제좌(帝座)2728) 가 붉고 밝아 북극에 가까우니, 실을 써서 살펴보면 시각을 알 수 있다. 누수(漏水)를 먼저 내려 자정을 알아보고, 윤환(輪環)에 표지(標識)하여, 주천환의 도는 것을 여기에서 일으킨다. 밤마다 도는 것이 한 도를 지나가니 도와 분이 나뉘어서 비롯하고 끝맺는다. 그릇은 정밀하고 두루 쓰인다. 선철(先哲)이 많았으나 이 제도가 없었는데, 우리 임금 처음으로 이 의상을 만드시어 희(羲)․화(和)에게 내리시니 만세의 국보일세.ꡓ하였다. 그 글에, ꡒ구리를 써서 만들었다.ꡓ로부터, ꡒ다하면 처음으로 돌아온다.ꡓ까지는 임금이 친히 지은 것인데, 승지 김돈이 직제학 김빈(金?)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ꡒ내가 감히 글을 짓고자 함이 아니라, 다만 경들이 이를 가지고 깎고 보태어서 명과 서를 지어 오래 전하기를 도모하려고 한다.ꡓ고 하였는데, 임금이 시각을 정하는 제도를 서술한 글이 간이(簡易)하고 상세하여 손바닥을 가리킴과 같이 명백하기 때문에 돈 등이 능히 한 글자도 바꾸지 못하고 그 글의 머리와 끝만 보태어 그대로 명을 지었다고 한다. 그 소간의(小簡儀)는 예문관 대제학 정초(鄭招) 가 명과 서를 함께 짓기를, ꡒ당요(唐堯)가 세상을 다스리자 먼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햇볕을 살펴서 시각을 바르게 하였는데, 이로부터 내려오면서 시대마다 각각 그 그릇이 있었고, 원나라 에 이르러 갖추었다. 금상 16년 가을에 이천(李?)․정초(鄭招)․정인지(鄭麟趾) 등에게 작은 모양의 간의를 만들기를 명하니, 비록 옛 제도에 말미암았으나 실은 새 법에서 나왔다. 밑바탕[趺]은 정한 구리로 하고, 개울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수평을 정하고 남북의 위치를 바루었다.
적도환(赤道環)의 전면에는 하늘 둘레의 도․분을 나누어 동서로 운전(運轉)하여 칠정(七政)과 중외관(中外官)의 입숙(入宿)하는 도․분을 헤아린다. ꡐ백각환ꡑ은 ꡐ적도환ꡑ의 안에 있는데, 면에는 12시와 1백 각을 나누어 낮에는 햇볕으로 알고 밤에는 중성(中星)으로 정한다. 사유환(四游環)이 규형(窺衡)2729) 을 가지고 동서로 운전하여, 남북을 내렸다 올렸다[低昻]하고 규측(窺測)하기를 기다린다. 기둥을 세워 세 환을 꿰었는데, 비스듬히 기대면, 사유환은 북극에 준하고, 적도환은 천복(天腹)에 준한다. 곧게 세우면 사유(四維)가 입운(立運)이 되고 백각이 음위(陰緯)가 된다. 공작이 겨우 끝나자, 여러 신하들이 명(銘)을 새겨 뒷세상에 전하기를 청하므로, 임금이 신(臣) 초 에게 명하시니, 신이 절하고 명을 올리노라.ꡓ하고, 명하기를, ꡒ하늘의 도는 하는 일이 없고, 그릇 또한 간략함을 숭상하였다. 옛 간의는 기둥이 많았는데, 지금의 이 그릇은 들고 갈 수 있겠도다. 사용하는 방법은 간의와 같았으나, 간략한 것을 더욱 더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ꡓ하고, 또 그 작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에 이르기를, ꡒ전에 만든 일성정시의는 너무 무거워서 행군할 때에 불편하기 때문에, 다시 작은 정시의(定時儀)를 만들었으니, 그 제도는 전의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정극환을 없앤 것은 경편(輕便)하게 하려고 함이다. 먼저 누수로써 첫해의 새벽 전 밤중을 알아 맞추어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 바퀴 가[輪邊]에 표지(標誌)하되, 그 획을 가장 길게 긋고, 북쪽으로 향하여 다시 세 획을 긋되, 점점 짧게 하고 사이의 거리는 모두 4분지 1도로 하였다.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에 주천환(周天環)의 초도를 바퀴 가의 긴 획에 닿게 하고, 다음 해에는 다음 획에 닿게 하며, 또 다음 해에는 또 다음 획에 닿게 하고, 또 다음 해에는 가장 짧은 획에 닿게 하여 해마다 한 번씩 옮겨서 5년째에 이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지 첫날에 성구환의 신전자정이 주천환의 초도에 닿고, 1일 자정에는 1도, 2일에는 3도에 당하여, 매년 다 그렇게 되어 여분이 없고, 다른 것은 전의 정시의와 같다. 일구를 사용하는 법은 전의 것과 같다.ꡓ고 하였다. 그 간의대(簡儀臺)는 승지 김돈(金墩)이 기록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ꡒ선덕 7년 임자년 가을 7월 일에 성상께서 경연에 거둥하여 역상의 이치를 논하다가, 예문관 제학 신 정인지 에게 이르기를, ꡐ우리 동방이 멀리 바다 밖에 있어서 무릇 시설하는 바가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에 따랐으나, 홀로 하늘을 관찰하는 그릇에 빠짐이 있으니, 경이 이미 역산의 제조(提調) 가 되었으므로, 대제학 정초(鄭招) 와 더불어 고전을 강구하고 의표를 참작해 만들어서 측험(測驗)하는 일을 갖추게 하라. 그러나 그 요는 북극 이 땅 위에 나온 높낮이를 정하는 데 있다. 먼저 간의를 만들어 올림이 가하다. ꡑ고 하시므로, 이에 신 정초 와 신 정인지 는 옛 제도를 상고하는 일을 맡고, 중추원 사 신 이천 은 공역(工役)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먼저 나무로 모양을 만들어, 북극 이 땅에서 38도가 나온 것을 정하니, 《원사(元史)》에 측정한 것과 조금 합하므로, 드디어 구리로 간의를 만들어 장차 이룩되매, 호조 판서 안순(安純) 에게 명하여 후원(後苑)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높이는 31척이고, 길이는 47척, 넓이는 32척인데, 돌로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엎드려 놓았다.
정방안(正方案)을 그 남쪽에 펴고, 대의 서쪽에는 동표(銅表)를 세웠는데 높이는 5배(倍)고, 8척의 얼(?)이다. 청석(靑石)을 깎아 규(圭)를 만들고 규의 면에는 장․척․촌․분을 새겼다. 그림자[影]를 일중(日中)의 그림자와 맞추어서 음양의 차[盈]고 주[縮]는 이치를 미루어 알도록 되었다. 표 서쪽에 작은 집을 세우고 혼의와 혼상을 놓았는데, 혼의는 동쪽에 있고 혼상은 서쪽에 있다. 혼의의 제도는 역대에 같지 아니하나, 이제 《오씨서찬(吳氏書纂)》에 실린 글에 의해 나무에 칠을 하여 혼의를 만들고, 혼상의 제도는 베[布]에 칠을 하여 몸통을 만들되 둥글기는 탄환(彈丸) 같고 둘레는 10척 8촌 6분이다. 종횡으로 하늘 둘레의 도․분을 그렸는데, 적도는 중간에 있고 황도는 적도의 안팎에 나들되 각각 24도가 약하다. 중외관성(中外官星)이 두루 벌여 있어 하루에 한바퀴를 돌고 1도를 더 지나간다. 노끈으로 해를 얽어 황도에 매고, 매일 1도씩 물러나서 행하여 하늘의 행함과 합하였다. 물을 이용하여 기계가 움직이는 공교로움은 숨겨져서 보이지 아니한다. 이 다섯 가지는 옛 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경회루 남쪽에 집 3간[楹]을 세워서 누기(漏器)를 놓고 이름을 ꡐ 보루각(報漏閣) ꡑ이라 하였다. 동쪽 간[東楹] 사이에 자리를 두 층으로 마련하고 3신이 위에 있어, 시(時)를 맡은 자는 종을 치고, 경(更)을 맡은 자는 북을 치며, 점(點)을 맡은 자는 징[鉦]을 친다. 12신은 아래에 각각 신패(辰牌)를 잡고, 사람이 하지 아니하여도 때에 따라 시각을 보(報)한다.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ꡐ 흠경각(欽敬閣) ꡑ이라 하고, 종이를 붙여서 산 모양을 만들어 높이는 일곱 자 가량인데, 집 가운데 놓고 안에는 기륜(機輪)을 만들어서 옥루수(玉漏水)를 이용하여 치게 하였다. 오색 구름은 해를 둘러 나들고, 옥녀(玉女) 는 때를 따라 방울을 흔들며, 사신 무사(司辰武士)는 스스로 서로 돌아보고, 4신과 12신은 돌고 향하고 일어나고 엎드린다. 산 사면에는 빈풍(?風) 사시(四時)의 경(景)을 진열하여 백성의 생활이 어려움을 생각하게 하였다. 기기(?器)를 놓고 누수의 남은 물을 받아서 천도의 영허(盈虛)하는 이치를 살피게 하였다. 간의는 비록 혼의보다 간략하나, 옮겨서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은 간의 둘을 만들었으니, 대개 모양은 극히 간단하다. 사용하는 것은 간의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천추전 서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었다.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 낮에 측후하는 일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징험할 바가 없어서, 밤낮으로 시각을 아는 그릇을 만들어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4벌[件]을 만들어, 하나는 만춘전 동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고, 둘은 동서 양계의 원수영(元帥營)에 나누어주었다. 일성정시의는 무거워서 행군하는 데 불편하므로 작은 정시의를 만들었는데, 그 제도는 대개 같고 조금 달랐다. 이 여섯 가지는 각각 서․명이 있어 자세히 기록되었다. 또 현주일구(懸珠日晷)를 만들었으니, 밑바탕을 네모나게 하였는데 길이는 6촌 3분이다. 밑바탕 북쪽에는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을 팠으며,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기둥 머리에 추(錘)를 달아서, 십자와 서로 닿게 하였으니, 수준(水準)을 보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평하고 바르다. 1백 각을 작은 바퀴에 그렸는데, 바퀴의 지름은 3촌 2분이고 자루가 있어, 비스듬히 기둥을 꿰었다. 바퀴 중심에 구멍이 있어 한 가닥 가는 실을 꿰어서 위에는 기둥 끝에 매고 아래에는 밑바탕 남쪽에 매어 실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고 곧 시각을 안다. 흐린 날에는 시각을 알기 어려우므로 행루(行漏)를 만들었으니, 몸이 작고 제도가 간략하였다. 파수호(播水壺)와 수수호(受水壺)가 각각 하나씩인데, 갈오(渴烏)로 물을 바꾸어서 자․오․묘․유의 시각을 쓴다. 작은 정시의와 현주(懸珠)․행루 등을 각각 몇 개씩 만들어 양계에 나누어주고, 남은 것은 서운관에 두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시각을 알지 않을 수 없으므로 천평일구(天平日晷)를 만드니, 그 제도는 현주일구와 대개는 같으나, 오직 남쪽과 북쪽에 못을 파고 중심에 기둥을 세워 노끈을 기둥머리에 꿰고, 들어서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다르다. 하늘을 징험하여 시각을 알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정남침(定南針)을 쓰나, 사람이 만든 것을 면치 못하여 정남일구를 만드니, 대개 정남침을 쓰지 아니하여도 남북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밑바탕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고, 양쪽 머리의 넓이는 4촌, 길이는 2촌이며, 허리의 넓이는 1촌, 길이는 8촌 5분이다. 가운데 둥근 못[池]이 있는데 지름은 2촌 6분이고, 물 도랑이 있어 양쪽 머리로 통하여 기둥 가를 돌게 하였다. 북쪽 기둥의 길이는 1척 1촌이고, 남쪽 기둥의 길이는 5촌 9분인데, 북쪽 기둥의 1촌 1분 아래와, 남쪽 기둥의 3촌 8분 아래에는 각각 축이 있어서 사유환(四游環)을 받는다. 사유환이 동서로 운전하여 1각 반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도는 4분으로 만들고, 북쪽의 16도로부터 1백 67도에 이르기까지 중간이 비어서 쌍환의 모양과 같고, 나머지는 전환(全環)으로 되었다. 안에는 한 획을 중심에다 새기고 밑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직거(直距)를 가로 설치하고 거 가운데 6촌 7분을 비워서 규형(窺衡)을 가지게 하였다. 규형은 위로는 쌍환을 꿰고, 아래로는 전환에 다달았다. 남쪽과 북쪽을 낮추고 올려서 지평환(地平環)을 평평하게 설치하되, 남쪽 기둥의 머리와 같게 하고, 하지(夏至)날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준하여, 반환(半環)을 지평아래에 가로 설치한다. 안에는 낮 시각을 나누어서 네모난 구멍의 밑바탕에 닿게 하고,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북쪽 축 끝에 추를 달아 십자와 서로 닿게 하니, 또한 수평을 취하게 한 것이다. 규형(窺衡)을 쓰는 법은, 매일 태양이 극도분(極度分)에 갈 때를 당하여, 햇볕을 통해 넣어서 정원(正圓)이 되게 하고, 곧 네모난 구멍으로 반환의 각을 굽어보면, 자연히 남쪽의 위치가 정하고 시각을 알 것이다. 그릇이 무릇 열 다섯인데, 구리로 만든 것이 열이다. 두어 해를 지나서 만드는 일을 마치니 실로 무오년 봄이다. 유사가 그 시말(始末)을 기록하여 장래에 밝게 보이기를 청하니, 이에 신이 그 논의에 참예한 까닭으로 신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기를 명하셨다. 신은 간절히 생각하건대, 때를 알려 주는 요는 하늘을 관측하는 데 있고, 하늘을 관측하는 요는 의표에 있으므로, 요 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책력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형성하고, 순 은 선기옥형(璇璣玉衡)을 만들어 칠정(七政)을 바루었으니,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이 부지런함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 ․ 당 이후로 시대마다 각각 그릇이 있었으나, 그 법을 혹은 얻고, 혹은 잃어서 쉽게 셀 수 없었는데, 오직 원나라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간의․앙의․규표 등의 그릇은 정교(精巧)하다 이를 만하다. 오직 우리 동방에는 제작한 것을 아직 듣지 못하더니, 하늘이 좋은 운수를 열어 문교가 바야흐로 일어나니,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 성신의 자질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역상이 정밀하지 못함을 염려하고, 측험(測驗)하는 일이 갖추지 못함을 생각하여 그릇을 만들게 하시니, 비록 요 ․ 순 의 마음일지라도 어찌 이에 더하리오. 그 그릇을 만든 것이 한둘만이 아니나, 약간을 기록하여 참고에 갖추게 하고, 그 규모는 옛 것만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성상의 마음으로 재결하여 다 정묘(精妙)를 극진히 하였으니, 비록 원나라 곽수경 이라도 그 기교(技巧)를 베풀 수 없을 것이다. 아아, 이미 수시력(授時曆) 을 교정하고, 또 하늘을 관측하는 그릇을 만들어, 위로는 천시를 받들고 아래로는 민사에 부지런하시니 우리 전하께서 물건을 만들어 일에 힘쓰게 하는 지극한 어지심과, 농사에 힘쓰고 근본을 중히 여기는 지극한 뜻은 실로 우리 동방에 일찍이 없었던 거룩한 일이니, 장차 높은 대와 더불어 무궁토록 함께 전할 것이다.ꡓ하였다.
그 그릇을 만든 척식(尺式)은, 옛사람이 법도의 그릇에는 반드시 주척(周尺)을 썼는데, 척식을 바루어 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워하였다. 주자가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2730) 의 집 석각본(石刻本) 척식을 취하여 《가례》에 실어서 후세의 법을 삼았으나, 《가례》의 판본이 세상에 행하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어서 주척의 장단이 같지 아니하여 또한 의거하기 어려웠는데,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홍무 계유년간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진우량(陳友諒)의 아들 진이(陳理)의 가묘에 신주 만드는 척식을 구해 얻어서 가척본(假尺本)을 만들었고, 또 의랑(議郞) 강천주(姜天?) 의 집에서 지본주척(紙本周尺)을 얻으니, 그것은 바로 그 아버지 강석(姜碩) 의 아우 강유원(姜有元)이 원사(院使) 김강(金剛)의 간직한 상아척본(象牙尺本)을 전한 것인데, 전면에 쓰기를, ꡐ신주척 정식(神主尺定式)ꡑ이라 하였다. 지금의 관척을 2촌 5분을 없애고 7촌 5분을 쓰면, 바로 《가례부주(家禮附註)》에 반시거(潘時擧) 가 이른바, ꡐ주척은 지금 성척(省尺)의 7촌 5분 약(弱)이라. ꡑ고 한 말과 같다. 두 척본을 서로 비교해 보니 어긋나지 아니하므로, 비로소 신주 만드는 제도를 정하여 올리니, 이로부터 무릇 사대부집 사당의 신주와 도로의 이수(里數)와 사장(射場)의 보법(步法)을 모두 여기에 의거하여 정식을 삼았다. 근래에 또 판사역원사(判司驛院事) 조충좌(趙忠佐) 가 북경 에 가서 새로 만든 신주를 사 가지고 와서, 다시 이 자와 비교하니, 촌․분이 서로 합하니, 이 자는 지금 중국에서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만든 의․상․표․누(儀象表漏) 등의 그릇을 모두 이 자를 써서 제정하였다고 한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7장 A면/ 【영인본】 4책 66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역사-고사(故事) / *도량형(度量衡)/ [註 2727]환(環) : 정극환. ☞ / [註 2728]제좌(帝座) : 북극성. ☞ / [註 2729]규형(窺衡) : 저앙(低昻)․고저(高低)를 보는 기계. ☞ / [註 2730]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 사마 광(司馬光).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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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59
예천군 방문(여름休暇 淸淨地域 醴泉으로 오세요) [記事] :
예천은 1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배산임수지역으로 물 맑고 산수 좋은 청정지역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예천군에서 여름철 피서지로 소개할 곳은 물과 숲이 우거진 명봉사 계곡,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어울림 상을 수상한 선몽대, 계곡과 산림이 함께하는 학가산 휴양림, 금빛모래와 비경을 자랑하는 육지 속의 회룡포, 살아있는 곤충을 체험할 수 있는 곤충체험관과 생태공원 등이 있다.
명봉사는 예천읍에서 하리면 소재지를 거쳐 30여분 정도 가면 명봉사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계곡은 산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골짜기에 아련히 울려펴저 일상생활에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리고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옥수(玉水)와 폭염을 삼켜버릴 듯한 울창한 수림은 더위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명봉사는 서기 875년(신라경문왕1)에 두운선사가 창건했으며 경내에는 조선조 ‘문종대왕 태실비’와 고려 태조24년(9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어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웅전, 산신각, 부도, 5층석탑 등이 있다.
계곡은 모두 경내로 사찰유원지라 할 수 있는데 명봉사와 내원암에 이르는 양 옆으로 연륜을 헤아릴 수 없는 아름드리 고목이 천년의 풍상을 가지마다 간직한 채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 서 있고 그 밑을 흐르는 개울물은 백운봉 정상에서 발원해 세월의 풍상을 잊은 채 시원하게 흘러 사찰을 찾는 신도들과 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의 피서처로 여름 휴가철이면 일찍 찾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름다운 숲 선몽대는 예천읍에서 호명면 소재지를 거쳐 20여분 가면은 내성천의 평사십리와 1천여평의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강변유원지 ‘선몽대’가 있다. 내성천 우암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선몽대와 강변 유원지, 아침연꽃농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몽대라는 이름 만큼이나 주변경치가 빼어나다.
선몽대 안내판을 뒤로 입구에 들어설 때쯤 길 좌우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진입로를 거쳐 강변에 다다르는데 아직 편의시설이 다소 적으나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번잡함을 덜 수 있는 곳이다.
식수대와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장, 주차장도 있어 가족과 함께 선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옛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 유원지의 백미인 ‘선몽대’는 조선시대 문인이던 우암 이열도가 명종 18년 1593년에 창건한 정자로 경치가 좋은 이곳에 선몽대를 세우고 여생을 마쳤다 한다.
이 선몽대에는 건립 당시 63세이던 퇴계 선생이 써 준 선몽대 대호 3자와 시를 비롯해 우암 이열도, 약포 정탁,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등 문인들의 친필시를 새긴 목판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시가 목각 되어 현판으로 걸려 있다.
선몽대는 500~600년 수령의 아름드리 노송, 역사적 가치, 마을 숲 보전 등의 숲의 미래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받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선몽대가 장려상인 어울림상을 수상을 받았으며 내성천의 맑은 강물과 주변의 기암절벽을 통해 한여름 더위를 말끔히 잊게 하는 시원한 경관으로 일년내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빛모래와 비경을 자랑하는 육지 속의 회룡포는 예천읍에서 용궁면소재지를 거처 30여분 가면 육지속의 섬 회룡포를 만나게 된다. 회룡포는 소백산이 남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트림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으로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산에서 바라다보는 회룡포는 그 빼어난 절경으로 2000년 방영된 KBS드라마 가을동화와 2009년1박2일 방영되었으며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지 16호로 지정되었다.
회룡포를 찾는 이들의 대부분은 회룡포 여울마을, 회룡포마을 황토 민박, 회룡포 쉼터에서 민박을 하고 회룡대에서 천혜의 비경을 감상한 후 용궁시장에 들러 순대를 먹고 예천을 떠나게 된다.
곤충생태체험관과 수변생태공원은 예천읍에서 하리면소재지를 거쳐 풍기방면으로 40여분 가면은 곤충체험관과 생태공원을 만나게 된다. 지난 2007년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를 위하여 조성된 곤충생태체험관은 장수풍뎅이, 나비 등 각종 곤충을 직접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체험장 안에는 3D로 된 곤충생태 영상 관람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살아서 움직이는 곤충을 볼 수 있는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여름방학 때 어린이와 부모들이 곤충을 체험할 수 있으며 곤충체험을 하고 난 후 예천곤충생태체험관의 랜드마크인 출렁다리를 지나면 모시골 계곡을 만나게 된다.
모시골 계곡은 아직까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약 30분정도 올라가면 충복골 칠칠바위 폭포에 도착할 수 있다. 곤충생태체험관 주변에는 민박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여름철 피서지로 잘 알려지지 않아 청정한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학가산 자연휴양림은 예천읍에서 약30분을 달려가면 학가산 북쪽계곡에 위치한 학가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통나무집들이 주위 나무들과 계곡, 바위와 너무도 잘 어울리며, 통나무 집 안으로 드러서면 편백나무의 테르펜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무엇보다 학가산 휴양림은 다양한 평수의 숲속의 집으로 가족단위 여행에 편리하도록 조성되어있으며 학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있고 2시간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부대시설로 캠프파이어장, 야외무대,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물놀이장등을 갖추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권용갑 記者 大邱日報 2010-08-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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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문화회관(慶北道 `잠자는 地方稅 過誤納金 還付` 워크숍) [記事] :
경북도가 신뢰받는 세무행정을 구현하고자 도민들이 많이 낸 지방세를 찾아 주기로 했다. 따라서 경북도는 최근 예천문화회관에서 도, 시·군 과오납금 환부 담당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민들에게 신뢰받는 세무행정을 구현하고자 `잠자는 지방세 과오납금 환부`를 위한 워크숍을 가졌다.
이번 워크숍은 과오납금 최소화를 위해 미환부 과오납금에 대한 구체적 현황 분석과 대안제시, 과오납금 최소화대책 발표, 실무담당자들이 과오납 환부 업무를 보면서 느낀 문제점 등 좋은 방안들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소액 과오납금의 경우 납세자의 무관심 및 주소 불명으로 인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부분을 균등분 주민세 고지서 발송 시 과오납금 환부 충당동의서를 함께 동봉해 납세자가 스스로 충당동의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액 과오납금을 정리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서인교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0-08-15 오후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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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즐거운 만남, 아름다운 追憶..13番째 虎鳴初等 總同窓會 및 體育大會 消息!) [記事] :
즐거운 만남! 아름다운 추억! 제13회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체육행사/기별노래자랑/행원권 추첨 등이 2010년 8월 15일 오전 11시 우천관계로 장소를 예천중학교 실내체육관으로 옮겨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 정상진·도기욱 도의원, 황명섭 면장과 박정호 호명파출소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역대 회장단 및 회원 등 200여명이 참가했다.
행사에 앞서 이상연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본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동문들의 화합의 장을 마련해 온 이한정 직전회장, 박광호 총무, 장수진 감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이상연 회장은 대회사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해왔던 호명초등학교는 폐교가 되고 이제 역사속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만 모교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는 동문들의 결집으로 제13차 총동창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모든 동문들과 함께 축하하자"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94년 창립이후 16년간 지속되고 있기까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여 준 선·후배 동문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를 표하고 "우천으로 타교에서 행사를 갖지만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운동경기도 하고 노래 가락에 맞추어 춤도 추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이 회장은 "학교가 폐교되는 등 낙후된 호명에도 경북도청이 이전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 옛 호명의 명성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며 "이런 계획을 발판으로 호명초등학교가 다시 세워 질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밑거름이 되자"고 강조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를 통해 "호명초등학교 13차 정기총회 및 총동창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바쁜 가운데도 본 행사를 내실 있게 준비해 준 이상연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고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호명초등학교가 배출한 동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의 발전과 고향의 군정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협조를 보내주신 것을 기억하며 앞으로 신도청 시대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군정을 챙길 것"을 다짐했다.
정상진 도의원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늘의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이상연 총동창회장님과 임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이 회장님이 쾌척하신 기금으로 17회 선배님들의 고희 축하상을 차려드린 것에 모든 호명인들을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4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던 권태용 고문(전 군의원)은 "경북 새도읍지로 비상하는 호명면이 새로운 예천의 미래를 한층 더 밝게 해주고 있으며 폐교된 호명초등학교가 신도청 건설과 함께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호명인의 자긍심을 갖고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열린 예천중학교 실내체육관 한 켠에는 "선배님들이 있어 저희 후배들은 행복합니다, 고희연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9명의 17회 선배들의 고희연(칠순) 상을 차려 눈길을 끌었다.
이한성 국회의원 부인인 이은희 여사는 이상연 총동창회장과 함께 대중가요 ''''임과 함께'''' 를 열창, 행사장을 뜨겁게 달구는 등 오늘 하루 호명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요란한 소리가 예천중학교 운동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날 총동창회에는 학술원 회원이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노오현 박사가 참석 눈길을 끌었다. 호명초등학교 출신인 노오현 박사는 한국우주센터 나로호 팀장으로 재직 중인 명사이다.
지난 1934년 개교된 호명초등학교는 65년 동안 총 5천17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총동창회 제7대 임원은 이상연 회장(25회), 이동수 수석부회장(17회), 이변헌 회장(14회) 등 30명의 기별대표 부회장, 박상진 사무총장(31회), 이현숙 여성국장(44회) 등이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 사무국은 "상시 동문들의 주소와 근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동문들의 주소가 파악되면 동문주소록을 발간할 예정"이라며 "적극적인 협조로 동창회 활성화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동창회사무국 연락처. 사무총장 박상진, 총무국장 문창호.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5 오후 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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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축구동호회(豊壤 월드컵 開幕..''''第11回 豊壤面 期別 親善 蹴球大會'''' 開幕式 이어 2日間 熱戰) [記事] :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한 "제11회 풍양면 기별 친선 축구대회(주최:풍양축구 동호회, 카페주소: http://cafe.daum.net/pykbdhh)" 가 2010년 8월 14일 오전 11시 풍양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2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 정상진·도기욱 도의원, 이한성 국회의원 부인 이은희 여사, 윤수혁 풍양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남효봉 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축구 동호인 주민 등이 참석, 대회를 축하했다.
손정수 회장은 대회사에서 "고향과 축구를 사랑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교를 찾아준 각 기수별 선수 및 임원들과 도청 유치와 함께 예천군 발전을 위해 위대한 발걸음을 옮기도록 앞장선 이현준 군수님 그리고 내·외 귀빈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날씨가 무척이나 뜨겁고 경제가 어렵다지만 뜨거운 날씨와 어려운 경제보다 풍양인의 사랑과 열정은 더욱 뜨겁기에 선수들은 꿈에도 그리던 모교 경기장을 힘차게 달리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이번 대회가 더 나은 대회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현준 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제11회 기별 축구대회 개최를 매우 뜻 깊게 생각하고 본 대회를 준비해 준 손정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특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승부보다는 동호인들의 화합과 우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대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또, "풍양면 기별축구대회가 회를 거듭할수록 멀리 객지에서 많은 출향인들이 고향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 축구 발전 및 저변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풍양면 축구동호인들의 노고를 위로 격려했다.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은 "11회를 맞이한 축구대회를 축하하고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대회 준비를 위해 애써 온 손정수 회장과 관계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안 부의장은 "오늘 만큼은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건강한 정신력을 키움으로써 개인과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오늘 이 대회가 승부보다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는 한편, 면민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며 오랜 전통과 명성으로 축구 예천의 명성을 이어가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고장희 풍양면 체육회장은 환영사에서 "올해 11번째를 맞이한 이번 대회가 서로 하나되고 지역발전과 화합은 물론, 출향인들에게는 애향심을 그리고 고향분들에게는 자긍심을 가져다주는 아주 뜻깊은 행사가 되어 풍양면민들이 생활체육활동을 통해 건전한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대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수혁 총동문회장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 관계 중에서도 동문들의 인연은 특별히 소중하다"며 "같은 고장에서 같은 땅을 딛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유소년 시절을 보낸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 체육행사를 하는 만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로 뭉치는 대회로 승화시키자"고 말했다.
이번 대회 출전팀은 장년부(A조:23기. B조:24기), 중년부(A조:31기, 33기, 34기. B조:29기, 30기, 32기. C조:25기, 26기, 27기, 28기), 청년부(A조:41기, 45기, 48기. B조:37기, 46기, 47기. C조:39기, 40기, 51기. D조:35기, 36기, 38기) 등이다.
풍양면은 예천군 최남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3면이 낙동강으로 면경계의 3/2를 감돌아 흐름으로써 수자원이 풍부하고 미곡생산의 적합지이며, 축산업이 성행하여 대단위 한우사육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인심좋고 살기좋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손정수 회장을 비롯한 풍양면 축구동호회원들은 "역대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오늘 제11회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의 눈물과 땀이 걸어온 11년을 빛나게 하고 앞으로 무수한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겠지만 경향각지의 출향동문 그리고 고향의 산하를 품고사는 우리들 다같이 마음을 내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나갈 때 우리고향 그리고 풍양축구동호회는 영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청년부와 중년부 우승팀=우승기, 트로피 및 상금 30만원, 준우승=상장, 트로피 및 상금 20만원, 3위=상장, 트로피 및 상금 10만원, 입장상=상장과 상금 20만원, 최우수선수상=상장, 트로피, 장년부 우승=상장, 트로피 상금 20만원, 준우승=상장, 트로피 상금 10만 원 등이 시상된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4 오후 2: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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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중학교 총동창회(第5回 知保中學校 期別 家族體育大會(大會長 전병학 運營委員長) 盛況裏 開催) [記事] :
제5회 지보중학교 기별가족체육대회(지보중기별운영위원회)가 2010년 8월 14일 오전 9시 30분 지보중학교 운동장에서 이현준 군수, 정상진 도의원, 정영광 군의원, 김유한 면장을 비롯한 면내 기관단체장, 기별회장 및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애기.애타.애국 등 ''''삼애(三愛)''''가 교훈인 지보중학교 졸업 기수 가운데 총 16기수가 참가한 이날 가족체육대회 개회에 앞서 예천색소폰동호(회장 윤승희) 회원들의 식전 축하 색소폰 공연이 펼쳐져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전병락 운영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불원천리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동문 선.후배님들과 ''''군민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군민과 함께하겠다'''' 는 이현준 군수님, 정상진 도의원, 정영광 군의원님을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장님, 그리고 내·외귀빈을 모시고 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한 때 1천300여명을 자랑하던 전교생이 현재 44명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농어촌학교 통폐합이라는 소용돌이에 몰려 홀로서기가 어렵게 됐다"며 "오늘 참석자 모두가 힘을 모아 ''''공립기숙형 학교''''를 만들어 영원히 존속하는 지보중·고교가 되도록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를 통해 "성하의 계절 8월을 맞아 유서깊은 지보중학교 교정에서 5번째로 맞는 기별가족체육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민선5기 군수로 취임하여 낙후된 예천을 신도청 시대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 녹색청정 도시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또, "교육, 행정, 복지, 문화, 산업기능이 어우러진 복합명품 도시건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군수 한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여기 참석한 지보중·고등학교 동문들의 적극적인 군정 참여와 성원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정팔용 총동창회장은 "기별가족체육대회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전병락 운영위원장, 주관기수 윤두섭 25회 동창회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오늘 체육대회가 단결하고 화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지보중 동문들의 미래는 밝다"는 축사를 했다.
황의홍 지보중·고등학교 교장은 격려사에서 "본교는 54년 개교 이후 금년 2월까지 중학교 8천157명, 고등학교 2천229명을 배출한 명문교로 학교를 빛내주신 기라성 같은 선후배님들의 업적에 힘입어 그간 끊임없이 바런과 빛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장은 "여러분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지보중·고등학교는 동문 여러분이 다니던 시절 보다 학교 규모가 작아져서 아쉬움은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알차게 성장하고 있다"며 "세월이 영원하듯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지보중·고교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보중·고등학교는 "농산어촌 연중 돌봄학교를 통해 불 밝히는 도서관과 7,8교시 방과후학교로 그 어떤 학생들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44명의 소규모 학교로 변모, 학생수가 급감하며 폐교 위기에 처하자 3천여 명의 동문들은 폐교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각계에 폐교의 부당성"을 홍보하고 있다.
한편, 기별가족체육대회에 참가한 동문들은 배구, 승부차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노래자랑, 릴레이 등의 경기를 펼치며 온종일 그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4 오후 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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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6월 9일(기유) 2번째 기사/ 개․친에게 작호를 내리고․이맹균․이숙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개(李?)로 숭록 대부(崇祿大夫) 순성군(順城君)을, 이친(李?)으로 정헌 대부(正憲大夫) 서원군(瑞原君)을, 이맹균(李孟畇)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이숙묘(李叔畝)로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윤형(尹炯)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이견기(李堅基)로 우승지(右承旨)를, 유수강(柳守剛)으로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김돈(金墩)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7장 A면/ 【영인본】 3책 6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년) 4월 15일(갑술) 3번째 기사/ 주야 측후기인 일성정시의가 이룩되다/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이룩됨을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件]인데, 하나는 내정(內庭)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을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다만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누어주어서 군중의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또 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서(序)와 명(?)을 짓게 하니, 그 글에 이르기를, ꡒ의상(儀象)은 더 말할 것 없이 요․순 으로부터 한․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중히 여겨서 그 글이 경사(經史)에 갖추어 나타났으나, 예전과 시대가 멀어서 그 법이 자세하지 아니하였는데,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세상에 뛰어난 신성(神聖)한 자질로써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천문법상(天文法象)의 이치에 유념하시어, 무릇 예전에 이르는바, 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 등과 자격루(自擊漏)․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현주(縣珠)․일구(日晷) 등의 그릇을 빠짐 없이 제작하게 하셨으니, 그 물건을 만들어 생활에 이용하게 하시는 뜻이 지극하시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각이 1백 각이요, 그리고 밤과 낮이 반씩이로되 낮에는 햇볕을 헤아려서 시간을 아는 그릇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주례(周禮)》 에 별을 보고 밤 시각을 구분하는 글이 있고, 《원사(元史)》 에도 별로써 시각을 정하는 말이 있으나 그 측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에 밤낮 시각을 알리는 그릇을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그 제도는 구리[銅]를 써서 만들었는데, 먼저 바퀴를 만들어 세(勢)를 적도(赤道)에 준하여 자루[柄]가 있고, 바퀴의 지름[徑]은 2척, 두께는 4분, 넓이는 3촌이다. 가운데 십자거(十字距)가 있는데, 넓이는 1촌 5분, 두께는 바퀴와 같다. 십자 가운데는 축이 있는데, 길이는 5분 반이고 지름은 2척이다. 북쪽 면을 깎아 파되, 중심에 1리(釐)를 두어서 두께를 하고 가운데 둥근 구멍을 겨자[芥]씨 같이 만들었다. 축은 계형(界衡)을 꿰고, 구멍은 별을 살피는 것이다. 아래에는 서리고 있는 용의 모양을 만들어 바퀴 자루를 물고 있는데, 자루의 두께는 1촌 8분이며 용의 입에 1척 1촌이 들어가고 밖에 3촌 6분이 나왔다. 용의 밑에는 대가 있는데, 넓이는 2척이고 길이는 3척 2촌이며, 도랑과 못을 만들었는데, 수평(水平)을 취한 것이었다. 바퀴의 윗면에 세 고리[環]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라 한다. 그 ꡐ주천도분환ꡑ은 밖에 있으면서 움직이고 돌며, 밖에 두 귀[耳]가 있는데 지름은 두 자, 두께는 3분, 넓이는 8분이다. ꡐ일구백각환ꡑ은 가운데에 있어 돌지 아니하고, 지름은 1척 8촌 4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밖의 것과 같다. ꡐ성구백각환ꡑ은 안에 있어 움직이고 돌며, 안에 두 귀가 있는데, 지름은 1척 6촌 8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안팎 고리와 같다. 귀가 있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세 고리의 위에 계형(界衡)이 있으니, 길이는 2척 1촌, 넓이는 3촌, 두께는 5분인데, 양쪽에 머리가 있고 가운데는 비었으며, 길이는 2촌 2분이고, 넓이는 1촌 8분으로, 세 고리[環]의 그림을 덮지 못하게 한 것이다. 허리의 중간 좌우에 각각 용이 하나씩 있으니, 길이는 1척이고, 함께 ꡐ정극환(定極環)ꡑ을 받든다. ꡐ정극환ꡑ이 둘이 있는데, 바깥 고리와 안 고리의 사이에는 구진대성(句陳大星)이 나타나고, 안 고리의 안에는 천추성(天樞星)이 나타나니, 남북의 적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바깥 고리는 지름이 2촌 3분이고, 넓이가 3분이며, 안 고리는 지름이 1촌 4분 반, 넓이가 4리(釐)이고, 두께는 모두 2분인데 약간 서로 대여서 십자와 같다.
ꡐ계형ꡑ 두 끝에 빈곳의 안팎에 각각 작은 구멍이 있고, ꡐ정극환ꡑ 바깥 고리의 양쪽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 가는 노끈으로 여섯 구멍[六穴]을 통해 꿰어서 ꡐ계형ꡑ의 두 끝에 매었는데, 위로는 해와 별을 살피고 아래로는 시각을 알게 한 것이다. ꡐ주천환(周天丸)ꡑ에는 주천도(周天度)를 새기되, 매도(每度)를 4분으로 하고, ꡐ일구환(日晷環)ꡑ은 1백 각을 새기되, 매각(每刻)을 6분으로 하였다. 성구환도 일구환과 같이 새겼으나, 다만 자정이 신전자정(晨前子正)에 지나서 하늘이 일주(一週)하는데, 1도를 더 지나가는 것과 같이 다름이 있다. ꡐ주천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먼저 수루(水漏)를 내려서 동지 신전자정을 맞추고, ꡐ계형ꡑ으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서 바퀴 가에 표시하고, 인해 주천 첫 도의 초에 맞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면 천세에 반드시 차가 생기니, 《수시역(授時曆)》으로 상고하면, 16년이 약간 지나서 1분이 뒤로 물러나고, 66년이 약간 지나서는 1도가 뒤로 물러나므로, 이에 이르러 다시 살펴서 정한다. 북극 둘째 별은 북극에서 가깝고 가장 붉고 밝아서, 여러 사람이 보기 쉽기 때문에 이것으로 측후(測候)한다. ꡐ일구환ꡑ의 사용은 ꡐ간의(簡儀)ꡑ와 같고, ꡐ성구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 자정을 시초로 하여 ꡐ주천환ꡑ 초도의 초에 맞게 하여 하루에 1도, 이틀에 2도, 사흘에 3도로 하여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가 되고, 다음해 동지 첫날 자정에는 3백 65도가 되니, 하루에 공도(空度)가 3분이고, 이틀에 1도 3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3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3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2분이고, 이틀에 1도 2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2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2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1분이고, 이틀에 1도 1분으로 3백 65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 1분이 되니 이를 일진이라고 이른다. 일진(一盡)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무릇 인사의 동정(動靜)하는 기틀[機]은 실로 해와 별의 운행(運行)하는 법칙에 매였고, 해와 별의 운행은 의상 가운데 밝게 나타나므로, 옛 성인이 반드시 정치하는 도의 첫째 일로 삼았으니, 요의 역상(曆象)과 순의 선기(璇璣)가 이것이다. 우리 전하께서 제작하신 아름다운 뜻은 곧 요․순과 더불어 법을 같이 하였으니, 천고에 내려오면서 일찍이 없던 거룩한 일이다. 아아, 지극하도다. 이를 마땅히 새겨서 후세에 밝게 보여야 할 것이므로 신(臣) 돈이 감히 손으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지어 올리노라.ꡓ 하고, 그 글에 이르기를, ꡒ요임금은 역상을 공경하고, 순임금은 기형에 뜻을 두니 대대로 전하여서 제조가 정밀하다. ꡐ의(儀)ꡑ라 하고 ꡐ상(象)ꡑ이라 하여 그 이름이 같지 아니하나, 땅을 보고 하늘을 살펴서 백성의 일을 보여 주었다. 옛일이 이미 멀어서 제도가 퇴폐하여졌으니 책에 실려 있은들 그 뜻을 뉘가 알리오. 신성하신 임금이 시대에 응해 나시어, 요․순의 법을 받아 표(表)와 누(漏)와 의(儀)와 상(象)의 옛 제도를 회복했네. 백각(百刻)으로 때를 정해 밤낮을 나누었고, 햇볕으로 때를 아는 그릇은 있으나, 밤에도 살피고자 의상[儀]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리셨네. 그 이름 무엇인고. ꡐ일성정시의ꡑ라 일컬으며, 쓰는 법은 어떠한고. 별자리를 살펴보고 햇볕과 맞추었도다.
구리로 바탕하여 만든 솜씨가 뛰어나서 비할 수 없고, 둥근 바퀴[圓輪] 먼저 하고 거(距)가 있어 운용한다. 남북이 높고 낮아 적도를 모방하고, 대 위에 용이 서려[蟠], 바퀴 자루 물고 있다. 도랑과 못이 있어 물을 담아 바르고, 바퀴 위에 세 고리[環]가 서로 붙고 의지하여 바깥 것은 주천이니, 도와 분이 벌여 있고, 안의 두 고리는 일구․성구인데, 성구환의 각은 천도같이 지나도다. 안팎 것은 움직이나, 중간 것은 굳게 붙어 움직이지 아니한다. 계형이 전면에 가로[橫] 있어 굴대[軸]가 중심을 꿰었도다. 굴대에 구멍 뚫어 겨자[芥]같고 바늘 같아 계형의 빈[虛] 끝에는 도와 각이 새겨 있다. 쌍룡(雙龍)이 축을 끼고 정극환을 받들었다. 안팎에 환(環)2727) 이 있고, 그 사이에 별이 있다. 그 별은 무엇인고. 구진(句陳)과 천추(天樞)로다. 남북이 정하였고 동서가 바르도다. 측후법(測候法)은 어떠한고. 실[線]을 써서 살펴본다. 고리[環] 위에 곧게 걸고 계형 끝에 내려 꿰어, ꡐ일구ꡑ에는 둘을 쓰고 ꡐ성구ꡑ에는 하나 쓴다. 제좌(帝座)2728) 가 붉고 밝아 북극에 가까우니, 실을 써서 살펴보면 시각을 알 수 있다. 누수(漏水)를 먼저 내려 자정을 알아보고, 윤환(輪環)에 표지(標識)하여, 주천환의 도는 것을 여기에서 일으킨다. 밤마다 도는 것이 한 도를 지나가니 도와 분이 나뉘어서 비롯하고 끝맺는다. 그릇은 정밀하고 두루 쓰인다. 선철(先哲)이 많았으나 이 제도가 없었는데, 우리 임금 처음으로 이 의상을 만드시어 희(羲)․화(和)에게 내리시니 만세의 국보일세.ꡓ하였다. 그 글에, ꡒ구리를 써서 만들었다.ꡓ로부터, ꡒ다하면 처음으로 돌아온다.ꡓ까지는 임금이 친히 지은 것인데, 승지 김돈이 직제학 김빈(金?)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ꡒ내가 감히 글을 짓고자 함이 아니라, 다만 경들이 이를 가지고 깎고 보태어서 명과 서를 지어 오래 전하기를 도모하려고 한다.ꡓ고 하였는데, 임금이 시각을 정하는 제도를 서술한 글이 간이(簡易)하고 상세하여 손바닥을 가리킴과 같이 명백하기 때문에 돈 등이 능히 한 글자도 바꾸지 못하고 그 글의 머리와 끝만 보태어 그대로 명을 지었다고 한다. 그 소간의(小簡儀)는 예문관 대제학 정초(鄭招) 가 명과 서를 함께 짓기를, ꡒ당요(唐堯)가 세상을 다스리자 먼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햇볕을 살펴서 시각을 바르게 하였는데, 이로부터 내려오면서 시대마다 각각 그 그릇이 있었고, 원나라 에 이르러 갖추었다. 금상 16년 가을에 이천(李?)․정초(鄭招)․정인지(鄭麟趾) 등에게 작은 모양의 간의를 만들기를 명하니, 비록 옛 제도에 말미암았으나 실은 새 법에서 나왔다. 밑바탕[趺]은 정한 구리로 하고, 개울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수평을 정하고 남북의 위치를 바루었다.
적도환(赤道環)의 전면에는 하늘 둘레의 도․분을 나누어 동서로 운전(運轉)하여 칠정(七政)과 중외관(中外官)의 입숙(入宿)하는 도․분을 헤아린다. ꡐ백각환ꡑ은 ꡐ적도환ꡑ의 안에 있는데, 면에는 12시와 1백 각을 나누어 낮에는 햇볕으로 알고 밤에는 중성(中星)으로 정한다. 사유환(四游環)이 규형(窺衡)2729) 을 가지고 동서로 운전하여, 남북을 내렸다 올렸다[低昻]하고 규측(窺測)하기를 기다린다. 기둥을 세워 세 환을 꿰었는데, 비스듬히 기대면, 사유환은 북극에 준하고, 적도환은 천복(天腹)에 준한다. 곧게 세우면 사유(四維)가 입운(立運)이 되고 백각이 음위(陰緯)가 된다. 공작이 겨우 끝나자, 여러 신하들이 명(銘)을 새겨 뒷세상에 전하기를 청하므로, 임금이 신(臣) 초 에게 명하시니, 신이 절하고 명을 올리노라.ꡓ하고, 명하기를, ꡒ하늘의 도는 하는 일이 없고, 그릇 또한 간략함을 숭상하였다. 옛 간의는 기둥이 많았는데, 지금의 이 그릇은 들고 갈 수 있겠도다. 사용하는 방법은 간의와 같았으나, 간략한 것을 더욱 더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ꡓ하고, 또 그 작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에 이르기를, ꡒ전에 만든 일성정시의는 너무 무거워서 행군할 때에 불편하기 때문에, 다시 작은 정시의(定時儀)를 만들었으니, 그 제도는 전의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정극환을 없앤 것은 경편(輕便)하게 하려고 함이다. 먼저 누수로써 첫해의 새벽 전 밤중을 알아 맞추어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 바퀴 가[輪邊]에 표지(標誌)하되, 그 획을 가장 길게 긋고, 북쪽으로 향하여 다시 세 획을 긋되, 점점 짧게 하고 사이의 거리는 모두 4분지 1도로 하였다.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에 주천환(周天環)의 초도를 바퀴 가의 긴 획에 닿게 하고, 다음 해에는 다음 획에 닿게 하며, 또 다음 해에는 또 다음 획에 닿게 하고, 또 다음 해에는 가장 짧은 획에 닿게 하여 해마다 한 번씩 옮겨서 5년째에 이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지 첫날에 성구환의 신전자정이 주천환의 초도에 닿고, 1일 자정에는 1도, 2일에는 3도에 당하여, 매년 다 그렇게 되어 여분이 없고, 다른 것은 전의 정시의와 같다. 일구를 사용하는 법은 전의 것과 같다.ꡓ고 하였다. 그 간의대(簡儀臺)는 승지 김돈(金墩)이 기록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ꡒ선덕 7년 임자년 가을 7월 일에 성상께서 경연에 거둥하여 역상의 이치를 논하다가, 예문관 제학 신 정인지 에게 이르기를, ꡐ우리 동방이 멀리 바다 밖에 있어서 무릇 시설하는 바가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에 따랐으나, 홀로 하늘을 관찰하는 그릇에 빠짐이 있으니, 경이 이미 역산의 제조(提調) 가 되었으므로, 대제학 정초(鄭招) 와 더불어 고전을 강구하고 의표를 참작해 만들어서 측험(測驗)하는 일을 갖추게 하라. 그러나 그 요는 북극 이 땅 위에 나온 높낮이를 정하는 데 있다. 먼저 간의를 만들어 올림이 가하다. ꡑ고 하시므로, 이에 신 정초 와 신 정인지 는 옛 제도를 상고하는 일을 맡고, 중추원 사 신 이천 은 공역(工役)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먼저 나무로 모양을 만들어, 북극 이 땅에서 38도가 나온 것을 정하니, 《원사(元史)》에 측정한 것과 조금 합하므로, 드디어 구리로 간의를 만들어 장차 이룩되매, 호조 판서 안순(安純) 에게 명하여 후원(後苑)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높이는 31척이고, 길이는 47척, 넓이는 32척인데, 돌로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엎드려 놓았다.
정방안(正方案)을 그 남쪽에 펴고, 대의 서쪽에는 동표(銅表)를 세웠는데 높이는 5배(倍)고, 8척의 얼(?)이다. 청석(靑石)을 깎아 규(圭)를 만들고 규의 면에는 장․척․촌․분을 새겼다. 그림자[影]를 일중(日中)의 그림자와 맞추어서 음양의 차[盈]고 주[縮]는 이치를 미루어 알도록 되었다. 표 서쪽에 작은 집을 세우고 혼의와 혼상을 놓았는데, 혼의는 동쪽에 있고 혼상은 서쪽에 있다. 혼의의 제도는 역대에 같지 아니하나, 이제 《오씨서찬(吳氏書纂)》에 실린 글에 의해 나무에 칠을 하여 혼의를 만들고, 혼상의 제도는 베[布]에 칠을 하여 몸통을 만들되 둥글기는 탄환(彈丸) 같고 둘레는 10척 8촌 6분이다. 종횡으로 하늘 둘레의 도․분을 그렸는데, 적도는 중간에 있고 황도는 적도의 안팎에 나들되 각각 24도가 약하다. 중외관성(中外官星)이 두루 벌여 있어 하루에 한바퀴를 돌고 1도를 더 지나간다. 노끈으로 해를 얽어 황도에 매고, 매일 1도씩 물러나서 행하여 하늘의 행함과 합하였다. 물을 이용하여 기계가 움직이는 공교로움은 숨겨져서 보이지 아니한다. 이 다섯 가지는 옛 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경회루 남쪽에 집 3간[楹]을 세워서 누기(漏器)를 놓고 이름을 ꡐ 보루각(報漏閣) ꡑ이라 하였다. 동쪽 간[東楹] 사이에 자리를 두 층으로 마련하고 3신이 위에 있어, 시(時)를 맡은 자는 종을 치고, 경(更)을 맡은 자는 북을 치며, 점(點)을 맡은 자는 징[鉦]을 친다. 12신은 아래에 각각 신패(辰牌)를 잡고, 사람이 하지 아니하여도 때에 따라 시각을 보(報)한다.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ꡐ 흠경각(欽敬閣) ꡑ이라 하고, 종이를 붙여서 산 모양을 만들어 높이는 일곱 자 가량인데, 집 가운데 놓고 안에는 기륜(機輪)을 만들어서 옥루수(玉漏水)를 이용하여 치게 하였다. 오색 구름은 해를 둘러 나들고, 옥녀(玉女) 는 때를 따라 방울을 흔들며, 사신 무사(司辰武士)는 스스로 서로 돌아보고, 4신과 12신은 돌고 향하고 일어나고 엎드린다. 산 사면에는 빈풍(?風) 사시(四時)의 경(景)을 진열하여 백성의 생활이 어려움을 생각하게 하였다. 기기(?器)를 놓고 누수의 남은 물을 받아서 천도의 영허(盈虛)하는 이치를 살피게 하였다. 간의는 비록 혼의보다 간략하나, 옮겨서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은 간의 둘을 만들었으니, 대개 모양은 극히 간단하다. 사용하는 것은 간의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천추전 서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었다.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 낮에 측후하는 일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징험할 바가 없어서, 밤낮으로 시각을 아는 그릇을 만들어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4벌[件]을 만들어, 하나는 만춘전 동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고, 둘은 동서 양계의 원수영(元帥營)에 나누어주었다. 일성정시의는 무거워서 행군하는 데 불편하므로 작은 정시의를 만들었는데, 그 제도는 대개 같고 조금 달랐다. 이 여섯 가지는 각각 서․명이 있어 자세히 기록되었다. 또 현주일구(懸珠日晷)를 만들었으니, 밑바탕을 네모나게 하였는데 길이는 6촌 3분이다. 밑바탕 북쪽에는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을 팠으며,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기둥 머리에 추(錘)를 달아서, 십자와 서로 닿게 하였으니, 수준(水準)을 보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평하고 바르다. 1백 각을 작은 바퀴에 그렸는데, 바퀴의 지름은 3촌 2분이고 자루가 있어, 비스듬히 기둥을 꿰었다. 바퀴 중심에 구멍이 있어 한 가닥 가는 실을 꿰어서 위에는 기둥 끝에 매고 아래에는 밑바탕 남쪽에 매어 실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고 곧 시각을 안다. 흐린 날에는 시각을 알기 어려우므로 행루(行漏)를 만들었으니, 몸이 작고 제도가 간략하였다. 파수호(播水壺)와 수수호(受水壺)가 각각 하나씩인데, 갈오(渴烏)로 물을 바꾸어서 자․오․묘․유의 시각을 쓴다. 작은 정시의와 현주(懸珠)․행루 등을 각각 몇 개씩 만들어 양계에 나누어주고, 남은 것은 서운관에 두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시각을 알지 않을 수 없으므로 천평일구(天平日晷)를 만드니, 그 제도는 현주일구와 대개는 같으나, 오직 남쪽과 북쪽에 못을 파고 중심에 기둥을 세워 노끈을 기둥머리에 꿰고, 들어서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다르다. 하늘을 징험하여 시각을 알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정남침(定南針)을 쓰나, 사람이 만든 것을 면치 못하여 정남일구를 만드니, 대개 정남침을 쓰지 아니하여도 남북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밑바탕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고, 양쪽 머리의 넓이는 4촌, 길이는 2촌이며, 허리의 넓이는 1촌, 길이는 8촌 5분이다. 가운데 둥근 못[池]이 있는데 지름은 2촌 6분이고, 물 도랑이 있어 양쪽 머리로 통하여 기둥 가를 돌게 하였다. 북쪽 기둥의 길이는 1척 1촌이고, 남쪽 기둥의 길이는 5촌 9분인데, 북쪽 기둥의 1촌 1분 아래와, 남쪽 기둥의 3촌 8분 아래에는 각각 축이 있어서 사유환(四游環)을 받는다. 사유환이 동서로 운전하여 1각 반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도는 4분으로 만들고, 북쪽의 16도로부터 1백 67도에 이르기까지 중간이 비어서 쌍환의 모양과 같고, 나머지는 전환(全環)으로 되었다. 안에는 한 획을 중심에다 새기고 밑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직거(直距)를 가로 설치하고 거 가운데 6촌 7분을 비워서 규형(窺衡)을 가지게 하였다. 규형은 위로는 쌍환을 꿰고, 아래로는 전환에 다달았다. 남쪽과 북쪽을 낮추고 올려서 지평환(地平環)을 평평하게 설치하되, 남쪽 기둥의 머리와 같게 하고, 하지(夏至)날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준하여, 반환(半環)을 지평아래에 가로 설치한다. 안에는 낮 시각을 나누어서 네모난 구멍의 밑바탕에 닿게 하고,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북쪽 축 끝에 추를 달아 십자와 서로 닿게 하니, 또한 수평을 취하게 한 것이다. 규형(窺衡)을 쓰는 법은, 매일 태양이 극도분(極度分)에 갈 때를 당하여, 햇볕을 통해 넣어서 정원(正圓)이 되게 하고, 곧 네모난 구멍으로 반환의 각을 굽어보면, 자연히 남쪽의 위치가 정하고 시각을 알 것이다. 그릇이 무릇 열 다섯인데, 구리로 만든 것이 열이다. 두어 해를 지나서 만드는 일을 마치니 실로 무오년 봄이다. 유사가 그 시말(始末)을 기록하여 장래에 밝게 보이기를 청하니, 이에 신이 그 논의에 참예한 까닭으로 신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기를 명하셨다. 신은 간절히 생각하건대, 때를 알려 주는 요는 하늘을 관측하는 데 있고, 하늘을 관측하는 요는 의표에 있으므로, 요 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책력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형성하고, 순 은 선기옥형(璇璣玉衡)을 만들어 칠정(七政)을 바루었으니,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이 부지런함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 ․ 당 이후로 시대마다 각각 그릇이 있었으나, 그 법을 혹은 얻고, 혹은 잃어서 쉽게 셀 수 없었는데, 오직 원나라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간의․앙의․규표 등의 그릇은 정교(精巧)하다 이를 만하다. 오직 우리 동방에는 제작한 것을 아직 듣지 못하더니, 하늘이 좋은 운수를 열어 문교가 바야흐로 일어나니,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 성신의 자질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역상이 정밀하지 못함을 염려하고, 측험(測驗)하는 일이 갖추지 못함을 생각하여 그릇을 만들게 하시니, 비록 요 ․ 순 의 마음일지라도 어찌 이에 더하리오. 그 그릇을 만든 것이 한둘만이 아니나, 약간을 기록하여 참고에 갖추게 하고, 그 규모는 옛 것만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성상의 마음으로 재결하여 다 정묘(精妙)를 극진히 하였으니, 비록 원나라 곽수경 이라도 그 기교(技巧)를 베풀 수 없을 것이다. 아아, 이미 수시력(授時曆) 을 교정하고, 또 하늘을 관측하는 그릇을 만들어, 위로는 천시를 받들고 아래로는 민사에 부지런하시니 우리 전하께서 물건을 만들어 일에 힘쓰게 하는 지극한 어지심과, 농사에 힘쓰고 근본을 중히 여기는 지극한 뜻은 실로 우리 동방에 일찍이 없었던 거룩한 일이니, 장차 높은 대와 더불어 무궁토록 함께 전할 것이다.ꡓ하였다.
그 그릇을 만든 척식(尺式)은, 옛사람이 법도의 그릇에는 반드시 주척(周尺)을 썼는데, 척식을 바루어 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워하였다. 주자가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2730) 의 집 석각본(石刻本) 척식을 취하여 《가례》에 실어서 후세의 법을 삼았으나, 《가례》의 판본이 세상에 행하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어서 주척의 장단이 같지 아니하여 또한 의거하기 어려웠는데,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홍무 계유년간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진우량(陳友諒)의 아들 진이(陳理)의 가묘에 신주 만드는 척식을 구해 얻어서 가척본(假尺本)을 만들었고, 또 의랑(議郞) 강천주(姜天?) 의 집에서 지본주척(紙本周尺)을 얻으니, 그것은 바로 그 아버지 강석(姜碩) 의 아우 강유원(姜有元)이 원사(院使) 김강(金剛)의 간직한 상아척본(象牙尺本)을 전한 것인데, 전면에 쓰기를, ꡐ신주척 정식(神主尺定式)ꡑ이라 하였다. 지금의 관척을 2촌 5분을 없애고 7촌 5분을 쓰면, 바로 《가례부주(家禮附註)》에 반시거(潘時擧) 가 이른바, ꡐ주척은 지금 성척(省尺)의 7촌 5분 약(弱)이라. ꡑ고 한 말과 같다. 두 척본을 서로 비교해 보니 어긋나지 아니하므로, 비로소 신주 만드는 제도를 정하여 올리니, 이로부터 무릇 사대부집 사당의 신주와 도로의 이수(里數)와 사장(射場)의 보법(步法)을 모두 여기에 의거하여 정식을 삼았다. 근래에 또 판사역원사(判司驛院事) 조충좌(趙忠佐) 가 북경 에 가서 새로 만든 신주를 사 가지고 와서, 다시 이 자와 비교하니, 촌․분이 서로 합하니, 이 자는 지금 중국에서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만든 의․상․표․누(儀象表漏) 등의 그릇을 모두 이 자를 써서 제정하였다고 한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7장 A면/ 【영인본】 4책 66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역사-고사(故事) / *도량형(度量衡)/ [註 2727]환(環) : 정극환. ☞ / [註 2728]제좌(帝座) : 북극성. ☞ / [註 2729]규형(窺衡) : 저앙(低昻)․고저(高低)를 보는 기계. ☞ / [註 2730]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 사마 광(司馬光).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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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59
예천군 방문(여름休暇 淸淨地域 醴泉으로 오세요) [記事] :
예천은 1300여년의 오랜 전통과 문화가 어우러진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배산임수지역으로 물 맑고 산수 좋은 청정지역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예천군에서 여름철 피서지로 소개할 곳은 물과 숲이 우거진 명봉사 계곡,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어울림 상을 수상한 선몽대, 계곡과 산림이 함께하는 학가산 휴양림, 금빛모래와 비경을 자랑하는 육지 속의 회룡포, 살아있는 곤충을 체험할 수 있는 곤충체험관과 생태공원 등이 있다.
명봉사는 예천읍에서 하리면 소재지를 거쳐 30여분 정도 가면 명봉사 주차장을 만나게 된다. 계곡은 산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골짜기에 아련히 울려펴저 일상생활에서 지친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리고 심산유곡에서 흘러내리는 옥수(玉水)와 폭염을 삼켜버릴 듯한 울창한 수림은 더위를 식히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명봉사는 서기 875년(신라경문왕1)에 두운선사가 창건했으며 경내에는 조선조 ‘문종대왕 태실비’와 고려 태조24년(9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어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외에도 대웅전, 산신각, 부도, 5층석탑 등이 있다.
계곡은 모두 경내로 사찰유원지라 할 수 있는데 명봉사와 내원암에 이르는 양 옆으로 연륜을 헤아릴 수 없는 아름드리 고목이 천년의 풍상을 가지마다 간직한 채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 서 있고 그 밑을 흐르는 개울물은 백운봉 정상에서 발원해 세월의 풍상을 잊은 채 시원하게 흘러 사찰을 찾는 신도들과 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의 피서처로 여름 휴가철이면 일찍 찾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아름다운 숲 선몽대는 예천읍에서 호명면 소재지를 거쳐 20여분 가면은 내성천의 평사십리와 1천여평의 소나무 숲을 자랑하는 강변유원지 ‘선몽대’가 있다. 내성천 우암산 산자락에 자리 잡은 선몽대와 강변 유원지, 아침연꽃농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몽대라는 이름 만큼이나 주변경치가 빼어나다.
선몽대 안내판을 뒤로 입구에 들어설 때쯤 길 좌우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룬 진입로를 거쳐 강변에 다다르는데 아직 편의시설이 다소 적으나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번잡함을 덜 수 있는 곳이다.
식수대와 야영을 할 수 있는 야영장, 주차장도 있어 가족과 함께 선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옛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 유원지의 백미인 ‘선몽대’는 조선시대 문인이던 우암 이열도가 명종 18년 1593년에 창건한 정자로 경치가 좋은 이곳에 선몽대를 세우고 여생을 마쳤다 한다.
이 선몽대에는 건립 당시 63세이던 퇴계 선생이 써 준 선몽대 대호 3자와 시를 비롯해 우암 이열도, 약포 정탁,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등 문인들의 친필시를 새긴 목판을 비롯한 여러 문인의 시가 목각 되어 현판으로 걸려 있다.
선몽대는 500~600년 수령의 아름드리 노송, 역사적 가치, 마을 숲 보전 등의 숲의 미래에 대한 우수성을 인정받아 제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선몽대가 장려상인 어울림상을 수상을 받았으며 내성천의 맑은 강물과 주변의 기암절벽을 통해 한여름 더위를 말끔히 잊게 하는 시원한 경관으로 일년내내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빛모래와 비경을 자랑하는 육지 속의 회룡포는 예천읍에서 용궁면소재지를 거처 30여분 가면 육지속의 섬 회룡포를 만나게 된다. 회룡포는 소백산이 남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잠시 쉬어가는 길목에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트림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으로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산에서 바라다보는 회룡포는 그 빼어난 절경으로 2000년 방영된 KBS드라마 가을동화와 2009년1박2일 방영되었으며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지 16호로 지정되었다.
회룡포를 찾는 이들의 대부분은 회룡포 여울마을, 회룡포마을 황토 민박, 회룡포 쉼터에서 민박을 하고 회룡대에서 천혜의 비경을 감상한 후 용궁시장에 들러 순대를 먹고 예천을 떠나게 된다.
곤충생태체험관과 수변생태공원은 예천읍에서 하리면소재지를 거쳐 풍기방면으로 40여분 가면은 곤충체험관과 생태공원을 만나게 된다. 지난 2007년 곤충바이오엑스포 행사를 위하여 조성된 곤충생태체험관은 장수풍뎅이, 나비 등 각종 곤충을 직접보고 만질 수 있는 체험학습장이다.
체험장 안에는 3D로 된 곤충생태 영상 관람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살아서 움직이는 곤충을 볼 수 있는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여름방학 때 어린이와 부모들이 곤충을 체험할 수 있으며 곤충체험을 하고 난 후 예천곤충생태체험관의 랜드마크인 출렁다리를 지나면 모시골 계곡을 만나게 된다.
모시골 계곡은 아직까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약 30분정도 올라가면 충복골 칠칠바위 폭포에 도착할 수 있다. 곤충생태체험관 주변에는 민박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여름철 피서지로 잘 알려지지 않아 청정한 자연경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학가산 자연휴양림은 예천읍에서 약30분을 달려가면 학가산 북쪽계곡에 위치한 학가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통나무집들이 주위 나무들과 계곡, 바위와 너무도 잘 어울리며, 통나무 집 안으로 드러서면 편백나무의 테르펜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무엇보다 학가산 휴양림은 다양한 평수의 숲속의 집으로 가족단위 여행에 편리하도록 조성되어있으며 학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있고 2시간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부대시설로 캠프파이어장, 야외무대,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물놀이장등을 갖추고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권용갑 記者 大邱日報 2010-08-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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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문화회관(慶北道 `잠자는 地方稅 過誤納金 還付` 워크숍) [記事] :
경북도가 신뢰받는 세무행정을 구현하고자 도민들이 많이 낸 지방세를 찾아 주기로 했다. 따라서 경북도는 최근 예천문화회관에서 도, 시·군 과오납금 환부 담당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도민들에게 신뢰받는 세무행정을 구현하고자 `잠자는 지방세 과오납금 환부`를 위한 워크숍을 가졌다.
이번 워크숍은 과오납금 최소화를 위해 미환부 과오납금에 대한 구체적 현황 분석과 대안제시, 과오납금 최소화대책 발표, 실무담당자들이 과오납 환부 업무를 보면서 느낀 문제점 등 좋은 방안들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소액 과오납금의 경우 납세자의 무관심 및 주소 불명으로 인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부분을 균등분 주민세 고지서 발송 시 과오납금 환부 충당동의서를 함께 동봉해 납세자가 스스로 충당동의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액 과오납금을 정리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서인교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0-08-15 오후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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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즐거운 만남, 아름다운 追憶..13番째 虎鳴初等 總同窓會 및 體育大會 消息!) [記事] :
즐거운 만남! 아름다운 추억! 제13회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 정기총회 및 체육행사/기별노래자랑/행원권 추첨 등이 2010년 8월 15일 오전 11시 우천관계로 장소를 예천중학교 실내체육관으로 옮겨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 정상진·도기욱 도의원, 황명섭 면장과 박정호 호명파출소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역대 회장단 및 회원 등 200여명이 참가했다.
행사에 앞서 이상연 회장은 "지난 2년 동안 본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맡은 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동문들의 화합의 장을 마련해 온 이한정 직전회장, 박광호 총무, 장수진 감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이상연 회장은 대회사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해왔던 호명초등학교는 폐교가 되고 이제 역사속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만 모교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는 동문들의 결집으로 제13차 총동창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모든 동문들과 함께 축하하자"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94년 창립이후 16년간 지속되고 있기까지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여 준 선·후배 동문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를 표하고 "우천으로 타교에서 행사를 갖지만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운동경기도 하고 노래 가락에 맞추어 춤도 추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이 회장은 "학교가 폐교되는 등 낙후된 호명에도 경북도청이 이전되고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 옛 호명의 명성을 되찾을 날이 멀지 않았다"며 "이런 계획을 발판으로 호명초등학교가 다시 세워 질 수 있도록 총동창회가 밑거름이 되자"고 강조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를 통해 "호명초등학교 13차 정기총회 및 총동창회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바쁜 가운데도 본 행사를 내실 있게 준비해 준 이상연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고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호명초등학교가 배출한 동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의 발전과 고향의 군정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협조를 보내주신 것을 기억하며 앞으로 신도청 시대 중심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군정을 챙길 것"을 다짐했다.
정상진 도의원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늘의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이상연 총동창회장님과 임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이 회장님이 쾌척하신 기금으로 17회 선배님들의 고희 축하상을 차려드린 것에 모든 호명인들을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4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던 권태용 고문(전 군의원)은 "경북 새도읍지로 비상하는 호명면이 새로운 예천의 미래를 한층 더 밝게 해주고 있으며 폐교된 호명초등학교가 신도청 건설과 함께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호명인의 자긍심을 갖고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열린 예천중학교 실내체육관 한 켠에는 "선배님들이 있어 저희 후배들은 행복합니다, 고희연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문구와 함께 9명의 17회 선배들의 고희연(칠순) 상을 차려 눈길을 끌었다.
이한성 국회의원 부인인 이은희 여사는 이상연 총동창회장과 함께 대중가요 ''''임과 함께'''' 를 열창, 행사장을 뜨겁게 달구는 등 오늘 하루 호명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다지는 요란한 소리가 예천중학교 운동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날 총동창회에는 학술원 회원이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노오현 박사가 참석 눈길을 끌었다. 호명초등학교 출신인 노오현 박사는 한국우주센터 나로호 팀장으로 재직 중인 명사이다.
지난 1934년 개교된 호명초등학교는 65년 동안 총 5천17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총동창회 제7대 임원은 이상연 회장(25회), 이동수 수석부회장(17회), 이변헌 회장(14회) 등 30명의 기별대표 부회장, 박상진 사무총장(31회), 이현숙 여성국장(44회) 등이 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호명초등학교 총동창회 사무국은 "상시 동문들의 주소와 근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동문들의 주소가 파악되면 동문주소록을 발간할 예정"이라며 "적극적인 협조로 동창회 활성화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동창회사무국 연락처. 사무총장 박상진, 총무국장 문창호.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5 오후 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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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축구동호회(豊壤 월드컵 開幕..''''第11回 豊壤面 期別 親善 蹴球大會'''' 開幕式 이어 2日間 熱戰) [記事] :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한 "제11회 풍양면 기별 친선 축구대회(주최:풍양축구 동호회, 카페주소: http://cafe.daum.net/pykbdhh)" 가 2010년 8월 14일 오전 11시 풍양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2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 정상진·도기욱 도의원, 이한성 국회의원 부인 이은희 여사, 윤수혁 풍양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 남효봉 면장을 비롯한 기관단체장, 축구 동호인 주민 등이 참석, 대회를 축하했다.
손정수 회장은 대회사에서 "고향과 축구를 사랑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모교를 찾아준 각 기수별 선수 및 임원들과 도청 유치와 함께 예천군 발전을 위해 위대한 발걸음을 옮기도록 앞장선 이현준 군수님 그리고 내·외 귀빈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날씨가 무척이나 뜨겁고 경제가 어렵다지만 뜨거운 날씨와 어려운 경제보다 풍양인의 사랑과 열정은 더욱 뜨겁기에 선수들은 꿈에도 그리던 모교 경기장을 힘차게 달리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이번 대회가 더 나은 대회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현준 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제11회 기별 축구대회 개최를 매우 뜻 깊게 생각하고 본 대회를 준비해 준 손정수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특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승부보다는 동호인들의 화합과 우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대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또, "풍양면 기별축구대회가 회를 거듭할수록 멀리 객지에서 많은 출향인들이 고향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 축구 발전 및 저변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풍양면 축구동호인들의 노고를 위로 격려했다.
안희영 군의회 부의장은 "11회를 맞이한 축구대회를 축하하고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대회 준비를 위해 애써 온 손정수 회장과 관계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안 부의장은 "오늘 만큼은 스트레스를 떨쳐버리고 건강한 정신력을 키움으로써 개인과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고 오늘 이 대회가 승부보다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내는 한편, 면민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며 오랜 전통과 명성으로 축구 예천의 명성을 이어가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고장희 풍양면 체육회장은 환영사에서 "올해 11번째를 맞이한 이번 대회가 서로 하나되고 지역발전과 화합은 물론, 출향인들에게는 애향심을 그리고 고향분들에게는 자긍심을 가져다주는 아주 뜻깊은 행사가 되어 풍양면민들이 생활체육활동을 통해 건전한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대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수혁 총동문회장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세상을 사는 동안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 관계 중에서도 동문들의 인연은 특별히 소중하다"며 "같은 고장에서 같은 땅을 딛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유소년 시절을 보낸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 체육행사를 하는 만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하나로 뭉치는 대회로 승화시키자"고 말했다.
이번 대회 출전팀은 장년부(A조:23기. B조:24기), 중년부(A조:31기, 33기, 34기. B조:29기, 30기, 32기. C조:25기, 26기, 27기, 28기), 청년부(A조:41기, 45기, 48기. B조:37기, 46기, 47기. C조:39기, 40기, 51기. D조:35기, 36기, 38기) 등이다.
풍양면은 예천군 최남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3면이 낙동강으로 면경계의 3/2를 감돌아 흐름으로써 수자원이 풍부하고 미곡생산의 적합지이며, 축산업이 성행하여 대단위 한우사육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인심좋고 살기좋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손정수 회장을 비롯한 풍양면 축구동호회원들은 "역대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오늘 제11회 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기록되지 못한 많은 이들의 눈물과 땀이 걸어온 11년을 빛나게 하고 앞으로 무수한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겠지만 경향각지의 출향동문 그리고 고향의 산하를 품고사는 우리들 다같이 마음을 내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 나갈 때 우리고향 그리고 풍양축구동호회는 영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청년부와 중년부 우승팀=우승기, 트로피 및 상금 30만원, 준우승=상장, 트로피 및 상금 20만원, 3위=상장, 트로피 및 상금 10만원, 입장상=상장과 상금 20만원, 최우수선수상=상장, 트로피, 장년부 우승=상장, 트로피 상금 20만원, 준우승=상장, 트로피 상금 10만 원 등이 시상된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4 오후 2: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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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중학교 총동창회(第5回 知保中學校 期別 家族體育大會(大會長 전병학 運營委員長) 盛況裏 開催) [記事] :
제5회 지보중학교 기별가족체육대회(지보중기별운영위원회)가 2010년 8월 14일 오전 9시 30분 지보중학교 운동장에서 이현준 군수, 정상진 도의원, 정영광 군의원, 김유한 면장을 비롯한 면내 기관단체장, 기별회장 및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애기.애타.애국 등 ''''삼애(三愛)''''가 교훈인 지보중학교 졸업 기수 가운데 총 16기수가 참가한 이날 가족체육대회 개회에 앞서 예천색소폰동호(회장 윤승희) 회원들의 식전 축하 색소폰 공연이 펼쳐져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전병락 운영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불원천리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동문 선.후배님들과 ''''군민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군민과 함께하겠다'''' 는 이현준 군수님, 정상진 도의원, 정영광 군의원님을 비롯한 각급 기관단체장님, 그리고 내·외귀빈을 모시고 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한 때 1천300여명을 자랑하던 전교생이 현재 44명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농어촌학교 통폐합이라는 소용돌이에 몰려 홀로서기가 어렵게 됐다"며 "오늘 참석자 모두가 힘을 모아 ''''공립기숙형 학교''''를 만들어 영원히 존속하는 지보중·고교가 되도록 만들자"고 호소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를 통해 "성하의 계절 8월을 맞아 유서깊은 지보중학교 교정에서 5번째로 맞는 기별가족체육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민선5기 군수로 취임하여 낙후된 예천을 신도청 시대 중심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사통팔달 교통망 구축, 녹색청정 도시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또, "교육, 행정, 복지, 문화, 산업기능이 어우러진 복합명품 도시건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군수 한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여기 참석한 지보중·고등학교 동문들의 적극적인 군정 참여와 성원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협조를 당부했다.
정팔용 총동창회장은 "기별가족체육대회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전병락 운영위원장, 주관기수 윤두섭 25회 동창회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오늘 체육대회가 단결하고 화합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지보중 동문들의 미래는 밝다"는 축사를 했다.
황의홍 지보중·고등학교 교장은 격려사에서 "본교는 54년 개교 이후 금년 2월까지 중학교 8천157명, 고등학교 2천229명을 배출한 명문교로 학교를 빛내주신 기라성 같은 선후배님들의 업적에 힘입어 그간 끊임없이 바런과 빛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장은 "여러분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지보중·고등학교는 동문 여러분이 다니던 시절 보다 학교 규모가 작아져서 아쉬움은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알차게 성장하고 있다"며 "세월이 영원하듯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지보중·고교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보중·고등학교는 "농산어촌 연중 돌봄학교를 통해 불 밝히는 도서관과 7,8교시 방과후학교로 그 어떤 학생들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44명의 소규모 학교로 변모, 학생수가 급감하며 폐교 위기에 처하자 3천여 명의 동문들은 폐교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각계에 폐교의 부당성"을 홍보하고 있다.
한편, 기별가족체육대회에 참가한 동문들은 배구, 승부차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노래자랑, 릴레이 등의 경기를 펼치며 온종일 그 옛날 학창시절로 돌아가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8-14 오후 2: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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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