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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288:김돈判書4(祝김국종/예천방문661)
예천의 자랑(2288) : 예천 출신 김돈 이조판서(4)(祝 예천 출신 김국종, 16일 W저축은행장에 선임... 축하합니다/예천방문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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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 [記事] : 세종실록 88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2월 7일(경진) 1번째 기사/ 윤번․민의생․김돈 등이 양녕, 왜인, 호패법에 관한 일을 아뢰다/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大司憲) 윤번(尹?)과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황수신(黃守身)이 아뢰기를, ꡒ신 등이 각기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가 서울에 집을 짓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함을 두세 번 진청(陳請)하였사오나, 윤허하심을 얻지 못하와 감분(憾憤)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ꡓ하니, 임금이 잠잠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ꡒ경 등이 이를 말한 지가 오래다. 양녕이 이미 서울에 왕래하는데, 서울에다 집을 짓는 것이 무엇이 불가한가. 몸[身]이 근본이고 집[家]은 끝이다. 어찌하여 끝에다 마음을 써서 굳이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은가.ꡓ하매, 번(?) 등이 아뢰기를, ꡒ이제 집을 크게 지으면 양녕이 항상 서울에 있게 될 것이오니, 비단 신 등만이 실망할 뿐 아니오라, 그 태종(太宗)의 유교(遺敎)에 어찌하겠나이까. 또 살 집이 없사오면 비록 혹시 서울에 들어올 때라도 감히 오랫동안 유(留)하지 못한다는 뜻이 그래도 있지마는, 이제 만약 그러하오면 다른 종친(宗親)과 분별이 없사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양녕이 가거나 올 때에는 모두 나에게 승낙을 받으니, 다른 종친과 같지 못한 것이 많다. 예로부터 성인(聖人)의 말씀도 혹 까닭이 있어서 한 것도 있으니, 태종 의 유교도 역시 한때의 까닭으로 하신 말씀이다. 양녕 은 큰 죄악이 없고 다만 광패(狂悖)함으로써 득죄(得罪)하였을 뿐이므로, 내가 집을 짓게 하여 서울에 살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ꡓ하여, 번 등이 다시 그 불가함을 진술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 등의 말이 비록 이와 같으나, 나의 생각도 풀기 어려운 것이다.ꡓ하였다. 예조 판서 민의생(閔義生)이 아뢰기를, ꡒ경상도 부산포(富山浦)에 항거(恒居)하는 왜인(倭人)이 60여 호(戶)인데, 지금 와서 장사하는 왜인 이 또한 무려 6천여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영(營)에 소속된 선군(船軍)인즉 본래가 8백여 명이오나, 그 정군(正軍)은 불과 4, 5백 명이오니, 만일 사변(事變)이 있사오면 그 수백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이까. 청하옵건대, 진(鎭)의 군사를 더하여 군세(軍勢)를 장(壯)하게 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예전에 도왜(島倭)들이 경상도에서 번상(番上)한 군사를 점고(點考)한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올라가서 은피(隱避)한 것이 두어 달이나 되었었다. 이제 갑자기 군(軍)의 수효를 더한다면 또 놀라지 아니하겠는가.ꡓ하매, 의생이 대답하기를, ꡒ비록 한 포(浦)에 군수(軍數)를 증설하는데 어찌 놀라기에 이르겠습니까.ꡓ하였다. 좌참찬(左參贊) 하연(河演)이 아뢰기를, ꡒ우리 국가의 동서(東西) 양계(兩界)는 장수(將帥)와 수령(守令)을 모두 무예(武藝)가 있는 사람으로써 선택하지만, 남방(南方)은 그렇지 아니하오니 실로 옳지 못하옵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의 말이 옳다. 대체로 북방 군졸은 병진(兵陣)을 연습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무용(武勇)하지만, 남방은 오랫동안 변경(邊警)이 없으므로 병비(兵備)를 익히지 않았으니, 만일 사변이 있으면 진실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물(人物)이 본디 사납고 억세니, 진실로 무예를 익히면 가히 대적할 자 없을 것이다. 편안하여도 위태한 것을 잊지 않는 것은 예전의 명훈(明訓)이 있으니, 나도 역시 남방의 일에 유의하겠다. 또 성을 쌓고 순찰하라는 명령이 겨우 내렸는데, 헌의(獻議)하여 이를 막는 자가 말하기를, ꡐ민력(民力)을 수고롭게 한다. ꡑ고 한다. 그러나 백성의 이(利)를 일으키는 자가 어찌 목전(目前)의 폐해를 계산하고 만세(萬世)의 이익을 폐(廢)하겠는가. 경 등이 이제 만약 남방의 일을 조치(措置)하려면 민폐(民弊)를 구애하지 말고 마땅히 심사 원려(深思遠慮)하여, 한번의 수고로써 영원히 편케 하는 것이 역시 가하지 않겠는가.ꡓ하였다. 도승지 김돈(金墩)이 아뢰기를, ꡒ지금 백성이 날로 번성하는데도 군액(軍額)이 증가되지 아니하오니, 청하옵건대, 호패법(號牌法)을 시행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국가가 태평한 지 오래 되어 백성의 늘어남이 옛날의 배나 되는 것은, 그 노비(奴婢)의 번식된 것과 나누어주는 전지(田地)의 부족됨을 보아도 가히 알 수 있다. 이 법이 태종조(太宗朝) 때에 거의 실행되었는데, 한 대신(大臣)이 헌의(獻議)하여 이를 막았고, 백성들도 역시 모두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 정지하였다. 이제 만약 다시 이 법을 시행하면 반드시 숨어 빠지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범법(犯法)하는 자가 많을까 염려된다. 정치하는 데는 마땅히 그 대체(大體)만을 거행할 것이요, 그같이 샅샅이 살필 것은 아니다. 시험하여 조신(朝臣)과 의논하라.ꡓ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ꡒ우리 조종(祖宗)께서 초창(草創)한 처음에 모든 예제(禮制)에 있어서 많이 고려(高麗)를 따랐기 때문에, 고제(古制)에 어긋남이 많았었다. 내가 왕위를 계승하기에 미쳐 허조(許稠)와 정초(鄭招)로 하여금 다시 그 따르고 개혁할 것을 정하여 다 개원례(開元禮)를 모방하게 하였는데, 조(稠)는 학문이 이미 박흡(博洽)하지도 못하고 성질이 또한 고집이 있어 잘못된 일이 꽤 많았다. 왕비나 세자를 책봉하는 것 같은 유(類)는 예서(禮書)의 문의(文義)를 알지도 못하고 대개 억측으로 찬정(撰定)하였으므로, 그 뒤에 그 잘못된 것을 알게 되어 한때의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이제 문신(文臣) 한두 사람을 택하여 종묘(宗廟)․조회(朝會)의 예악(禮樂)과 왕비․세자의 의장(儀仗)을 정하게 하라.ꡓ하니, 돈(墩)이 소윤(少尹) 이효지(李孝之)를 천거하매,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8권 13장 B면/ 【영인본】 4책 267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군사-지방군(地方軍) / *인사(人事) / *외교-왜(倭) / *호구(戶口)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6월 22일(임진) 2번째 기사/ 도승지 김돈이 사직을 청하다/ 도승지(都承旨) 김돈(金墩)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ꡒ신이 병세가 날로 깊어져서 음식 생각이 없고 머리와 눈이 어둡고 어찔어찔하여 사지에 힘이 없어, 여러 달 사진(仕進)을 못하여 자리를 비우고 일을 폐하였으니 신의 직사를 파하시기를 비옵니다.ꡓ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34장 B면/ 【영인본】 4책 29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6월 23일(계사) 1번째 기사/ 이숙치․이사검․김돈․성염조․이승손․강석득․이익박․황수신․이세형을 제수하다/ 이숙치(李叔?)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이사검(李思儉)으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김돈(金墩)으로 인수부 윤(仁壽府尹)을, 성염조(成念祖)로 도승지(都承旨)를, 이승손(李承孫)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강석덕(姜碩德)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이익박(李益朴)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겸 지병조사(兼知兵曹事)를, 황수신(黃守身)으로 겸 지형조사(兼知刑曹事)를, 이세형(李世衡)으로 함길도(咸吉道) 도관찰사(都觀察使)를 삼았다. 임금이 세형(世衡)에게 이르기를, ꡒ평안(平安)․함길(咸吉) 두 도는 그 책임이 중하므로, 지금 경으로 관찰사를 삼는 것이다. 내가 경이 늙은 어버이가 있는 줄을 아나 부득이하여 보내는 것이다. 경의 모친이 나이 심히 늙지 않았으니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알라.ꡓ하였다. 세형이 말하기를, ꡒ신이 책임은 무겁고 재주는 용렬하니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35장 A면/ 【영인본】 4책 29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9월 16일(을묘) 1번째 기사/ 인순부 윤 김돈의 졸기/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진술하여 아뢴 것이 자세하고 밝았다. 그가 졸(卒)하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부의(賻儀)와 증여(贈與)함이 보통보다 더하였다. 아들은 김계로(金季老)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90권 39장 A면/ 【영인본】 4책 317면/ 【분류】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91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11월 11일(경술) 2번째 기사/ 인수부 윤 김돈의 제문/ 인수부 윤(仁壽府尹) 김돈(金墩)에게 사제(賜祭)하였다. 그 제문(祭文)에 이르기를, ꡒ생각하건대, 경은 자품이 수이(粹異)하고 학문이 정심(精深)하여, 일찍이 빛나는 명예를 펴서 사림(詞林)을 표박(表?)3198) 하였도다. 경연[經?]에 뽑아 두고 계옥(啓沃)3199) 의 바탕을 삼으니, 고금을 변정함과 성리(性理)의 학설에 있어서 좌우로 근원을 만나 자세하게 분석하였으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여겨 사랑함이 깊고 두터웠도다. 경의 노모(老母)가 멀리 강진(康津) 에 있음에 경을 외직에 보(補)하기를 아깝게 여겼고, 경이 모친(母親)을 생각할까 가엾게 여겨 특별히 어미를 수레에 모시게 명하여 조석을 같이 하도록 하였도다. 간의(簡儀)를 감독하여 만들게 하니 제작(制作)이 새로왔고, 은대(銀臺)3200) 의 장(長)으로 뽑아서 기밀을 관장하게 하였더니, 출납(出納)이 밝고 진실하였으며, 우모(?謨)3201) 에 힘써 부지런하였도다. 더욱 큰그릇으로 중히 여겨 좋은 보필이 되기를 기약하였더니, 그 약하고 병들음을 민망히 여겨 한직(閑職)으로 승진 제배(除拜) 하였노라. 좋은 약제를 내려주어 날마다 회복하기를 바랐었는데, 어찌하여 수명이 길지 못하여 갑자기 영결(永訣)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자질은 풍부하게 주었으나 생명은 인색하게 주었는지, 영령을 추상(追想)하니 진실로 슬프기 한이 없노라. 이에 휼전(恤典)을 내려 사인으로 하여금 한 잔의 술을 드리게 하노니, 영혼(英魂)이 앎이 있거든 이를 흠향하기 바라노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91권 10장 A면/ 【영인본】 4책 324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註 3198]표박(表?) : 뛰어나게 나타냄. ☞ / [註 3199]계옥(啓沃) : 좋은 건의. ☞ / [註 3200]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 ☞ / [註 3201]우모(?謨) : 대모(大謀).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한국사연구휘보/ 한국사연구휘보 제102호 / 제목 金墩의「報漏閣記」에 대하여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 저자/편자 南文鉉 역자 시대 조선 / 게재지 韓國史硏究 101 페이지 75~114쪽 구분 논문 / 발행처 韓國史硏究會 발행지역 서울 발행일 1998 / [목차] : Ⅰ. 머리말/ Ⅱ. 報漏閣記 ?銘幷序 解義/ Ⅲ.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Ⅳ. 自擊漏에 대한 몆 가지 고찰/ Ⅴ. 맺음말(www.history.go.kr 2009)
김돈(金墩) [國語辭典] : 조선 시대의 문신·천문학자(1385~1440). 태종 17년(1417)에 문과에 급제하고 직제학, 이조 판서를 지냈다. 세종의 명을 받아 간의대(簡儀臺), 보루각(報漏閣) 따위를 만들었다.(daum 2010)
김돈(金墩) : 생졸년 1385 (우왕 11) - 1440 (세종 22)/ 시대 조선 전기/ 본관 안동(安東)/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학자/ 과거 및 취재 [문과] 태종(太宗) 17년 (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위/ [상세내용] 김돈(金墩)에 대하여 : 1385년(우왕 11)∼1440년(세종 22). 조선 초기의 문신·과학자. 본관은 안동. 첨의중찬 방경(方慶)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의 후(厚)이며, 아버지는 칠양(七陽)이다. 1417년(태종 17)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직제학과 승지를 거쳐 벼슬이 참판·좌승지·인순부윤(仁順府尹)에까지 이르렀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급제하자 임금이 “내가 경을 보고자 하였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는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라고 기뻐하였다 한다. 1428년(세종 10) 왕명으로 《서한이하역대보계도 西漢以下歷代譜系圖》를 찬진하고, 종학박사와 사성을 역임하였다. 1434년 집현전직제학으로 동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하였으며, 이듬해는 집현전부제학으로 불교의 폐단에 대하여 왕에게 상소하고, 그뒤 부승지가 되었다. 1438년 도승지가 되었으며,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외직을 원하였으며, 특히 역마를 보내어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와서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한편,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간의대(簡儀臺)와 보루각(報漏閣)을 만들 때도 참여하였다. 한때 귀양가는 이숙번(李叔蕃)이 순금띠를 주면서 자신의 구출을 의뢰하자, 여러 방법으로 구출을 모색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세종의 명으로 김조(金兆)와 함께 천추전(千秋殿) 서편 뜰에다 흠경각(欽敬閣)을 창설하고, 종이를 뭉쳐서 산을 만들되 높이가 일곱 자 되게 하고, 또 그 안에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여 바퀴물로써 돌게 하였는데, 해의 도수와 그림자 누수(漏水)의 시각이 하늘의 운행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고 한다. 산의 사방에는 사시(四時)의 경물(景物)과 사람·새·짐승·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에 맞추어놓아 백성이 농경의 어려움을 알도록 하였다. 또, 누기(漏器)를 설치하고 이름을 ‘보루각’이라 하고 이층으로 만들어 삼신(三神)을 그 위에 설치하였는데, 시간을 알릴 때는 종을, 경(更)을 알릴 때는 북을, 점(點)을 알릴 때는 징을 울리게 만들었다. 승지로 7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논변이 상세하고 분명하였으며, 집현전출신으로 박학다식하고, 특히 과학기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이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海東雜錄(daum 2010)
김돈(金墩) : [문과] 태종(太宗) 17년 (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위/ [인적사항] 본관 안동(安東)/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승지(承旨)/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칠양(金七陽), [조부] 성명 : 김후(金厚), [증조부] 성명 : 김승용(金承用), [외조부] 성명 : 김용진(金用珍), [처부] 성명 : 노상의(盧尙義), [형] 김전(金塡)/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돈(金墩) : 1385(우왕11)∼1440(세종22)./ . 13. 발용(군)제공) 1) 졸기 《 세종 090 22/09/16(을묘) / 인순부윤 김돈의 졸기 》 인순부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http://andongkim.net(daum 2010)
김돈(金墩)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태종(太宗) 17년, 과거시험연도 : 1417 정유,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4(丙科4)/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돈(金墩), 본관(本貫) : 안동(安東)/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승지(承旨)/ [가족사항] 형(兄) : 김전(金塡), 부(父) : 김칠양(金七陽), 조부(祖父) : 김후(金厚), 증조부(曾祖父) : 김승용(金承用), 외조부(外祖父) : 김용진(金用珍), 처부(妻父) : 노상의(盧尙義)(daum 2010)
김돈 : 조선시대 초기의 천문학자 <김돈 金墩)/ 2008.08.26/ 김돈 金墩(1385~1440) 조선 초기의 문신 과학자. 1434년 집현전 직제학으로 동활자인 갑인자의주조에 참여했으며,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간의대와 보루각을 만들 떄도 참여했다. 세종의 명으로 김조와 함꼐 천추전 서편 뜰에다.../ http://cafe.daum.net/astronomical/ 우주,별....사랑하는 사람들(daum 2010)
김돈 : 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세종과 금속활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2010.04.15/ ...만들 것을 지시한다. 지금 있는 활자를 녹여 큰 활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을 맡은 사람은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직전(直殿) 김빈(金 ), 호군 장영실(蔣英實), 첨지사역원사 이세형(李世衡), 사인(舍人) 정척(鄭陟), 주부.../ http://cafe.daum.net/jeantravelbag/ jean''''s여행가방(daum 2010)
김돈 :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함원전 일대 행각]/ 2010.04.12/ ...을 공경히 주게 하셨다.”<원전 13> 제작 정보 : 세종 당시 흠경각을 창설하는 데 참여한 관료이자 과학자인 김돈(金墩, 1385~1440년)이 기문(記文) 3)을 지은 바 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동강 조수호(趙守鎬)가.../ http://cafe.daum.net/mhtbd1/ 문화탐방단(구미문화지킴이. 옛.생활문화연구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金墩/ 권별(權鼈)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世宗朝)金墩/ 安鐘和 | 2007.02.1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金墩의「報漏閣記」에 대하여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Ⅰ. 머리말 Ⅱ. 報漏閣記 ?銘幷序 解義 Ⅲ.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Ⅳ. 自擊漏에 대한 ?p 가지 고찰 Ⅴ. 맺음말/ 南文鉉 | 韓國史硏究會 | 2007.01.17(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儀象) 金墩日星定時儀銘/ 編者未詳 | 2006.12.3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儀象) 金墩仰釜日晷銘/ 編者未詳 | 2006.12.3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景福宮之欽敬閣在康寧殿西金墩記曰/ 編者未詳 | 2006.12.30(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앙부일구 명(仰釜日晷銘)/ 김돈(金墩)/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일성정시의 명 병서(日星定時儀銘 幷序)/ 김돈(金墩)|요순(堯舜), 경사(經史), 자격루(自擊漏), 의상(儀象)|성신(聖神)|천문(天文)|법상(法象)|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일구(日晷)|일구(日晷).../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소일성정시의후서(小日星定時儀後序)/ 김돈(金墩),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소정시의(小定時儀)|정극환(定極環), 군용(軍用)|누수(漏水)|초도(初度)|초도(初度)|일구(日晷)/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흠경각 기(欽敬閣記)/ 김돈(金墩)|당우(唐虞)|성탕(成湯)|주무왕(周武王), 간의(簡儀)|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仰釜)|규표(圭表)|금루(禁漏)|옥루기륜(玉漏機輪)|주작(朱雀)|황도(黃道)|수운(水運)|혼천(渾天)|간의(簡儀), 제왕.../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表紙一/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表紙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記/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目錄/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目錄(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書/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序/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序(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序/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跋/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詩/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卷之二/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묵재문집(?齋文集)/ 김돈(金墩) | 미상 | 2009.09.0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卷之一/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祭文/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간의대 기(簡儀臺記)/ 정인지(鄭麟趾)|정초(鄭招)|이천(李?)|안순(安純)|희화(羲和)|곽수경(郭守敬)|곽수경(郭守敬), 제조(提調)|대제학(大提學), 원사(元史), 서운관(書雲觀)|서운관(書雲觀)|서운관(書雲觀), 간의(簡儀)|간의(簡儀).../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보루각 기(報漏閣記)/ 장영실(蔣英實), 호군(護軍), 사신목인(司辰木人), 누기(漏器)|간의(簡儀), 원경(圓徑)|수시력(授時曆)|이기(二氣)|삼신(三神)|중영(中楹)|경점(更點)|원경(圓徑)|누수(漏水)|경점(更點)|오경(五更)|횡목(橫木).../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整理鑄字成 監董閣臣 以下施賞有差/ 太宗|李稷|世宗|李?|金墩|寅命|李晩秀|尹行恁|柳明杓|黃仁爀|趙穎|劉相祐|吉光福|姜再乭|鄭甲成|韓昌得|劉澤龍|金仁璟|朴亨蕃|金世萬|金致鑑|李震福|李得希|李壽贊|李聖燁/ 2007.02.1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芸館 進活印經書 監董 諸臣以下施賞有差/ 徐榮輔|李祉永|吳鼎源|柳得恭|柳英喆|金洪運|李果|太宗|李稷|世宗|李藏|金墩|英宗/ 2007.02.1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간의(簡儀)를 중건한 것에 대한 서(序)/ )|김돈(金墩)|공인(工人)|성조(聖祖), 서운관(書雲觀), 재정(裁定)|장단(長短)|일대(一代)|계청(啓請)|계지술사(繼志述事), 의상(儀象)|사각(史閣)|영사(領事)|간의(簡儀)|누기(漏器)|혼상(渾象)|규표(圭表)|혼의.../ 이항복(李恒福)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유명조선국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영집현전경연춘추관사 세자부 증시 문경 허공 묘지명 병서 (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領集賢殿經筵春秋館事 世子傅贈諡文敬許公墓誌銘 幷序 )/ 孝宗)|조상치(曹尙治)|안숭선(安崇善)|이만주(李滿住)|신숙주(申叔舟)|하위지(河緯地)|고조(高祖)|김돈(金墩)|경암(敬菴)|박씨(朴氏)|양정공(良靖公)|최유종(崔有悰)|이극배(李克培), 하양현(河陽縣)|춘주(春州).../ 남수문(南秀文)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태종조의 명신(名臣)/ 권근|황희(黃喜)|이지강(李之剛)|이무(李茂)|청평군(淸平君)|이숙번(李叔蕃)|이숙번|안성군(安城君)|김돈(金墩)|김돈|이징옥(李澄玉)|조비형(曹備衡)|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자당(尹子當)|이백온(李伯溫).../ 이긍익(李肯翊)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갑인자 인쇄본 2/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 이천(李狀)·직제학 김돈(金墩)·직전(直殿) 김호(金鎬)·호군(護軍) 장영실(蔣英實)·사역원첨지사(司譯院僉知事) 이세형(李世衡)·사인(舍人) 정척(鄭陟)·주부(主簿) 이순지(李純之).../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7.01.09(daum 2010)
김돈 : 저기 장영실에 관해서,,,/ 2010.02.03/ 1424년 중국의 체재를 참고하여 물시계를 만들어 그 공으로 행사직(行司直)이 되었다. 1432년 김돈(金墩)·이천(李) 등을 도와 간의대(簡儀臺)의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기기의 제작을 감독했다. 1433년 호군...(daum 2010)
김돈 : 과학이 들어간 옛날 물건/ 2009.12.10/ ...)이 공역(工役)을 감독하여 1438년(세종 20)에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천문의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김돈(金墩)의 앙부일구명(仰釜日晷銘)에는 "무릇 시설 중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밤에는 경루가...(daum 2010)
김돈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상들의 생활도구, 과학문화재/ 2009.01.23/ 그것은 1438년 1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설치했다. 그 구조는 김돈(金墩)의 흠경각기(欽敬閣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옥루는 명종초 경복궁에 불이나 없어진 것을 1554년(명종 9...(daum 2010)
김돈 : 문화재 향기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함원전 일대.../ 2010.04.12/ ...을 공경히 주게 하셨다.”<원전 13> 제작 정보 : 세종 당시 흠경각을 창설하는 데 참여한 관료이자 과학자인 김돈(金墩, 1385~1440년)이 기문(記文) 3)을 지은 바 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동강 조수호(趙守鎬)가.../ http://blog.daum.net/donglakjae/ 김아저씨공방/동락재통신同樂齋通信(daum 2010)
김돈 : 필원잡기 사육신 유성원 기록/ 2009.08.26/ 영상 정창손(鄭昌孫),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ㆍ안지(安止), 판서 김조(金?), 참판 김돈(金墩), 판중추부사 김균(金鈞)ㆍ김말(金末), 영상 신숙주(申叔舟), 좌상 권람(權擥), 참찬 박중손(朴仲孫), 영상 최항.../ http://blog.daum.net/son13601/ 우리문화사랑방(daum 2010)
김돈 : 세종 시대의 천문학/ 2008.09.17/ ...신하가 모두 이르기를, “신들의 소원도 김조의 것에 넘지 않습니다.” 하여 세종이 웃었다. 《필원잡기》김돈(金墩)김돈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참의 김후(金厚)의 손자이다. 태종 정유년(1417)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http://samtay.egloos.com/ Astronomia(daum 2010)
김돈 : 안동김씨2(安東金氏)/ 2010.02.28/ ...金達淳) 김대래(金大來) 김대섭(金大涉) 김덕근(金德根) 김덕룡(金德龍) 김덕진(金德鎭){2} 김덕한(金德漢) 김돈(金墩) 김득신(金得臣){1} 김매순(金邁淳) 김면행(金勉行) 김면호(金勉浩) 김명진(金明鎭) 김문근(金汶根) 김문순.../ http://blog.daum.net/ilkobstar/ 별중별(daum 2010)
김돈 : 궁녀/ e-Book/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04.20/ 책본문 : ...가능한 일이었다. 『실록』의 다음 기록은 이를 잘보여 준다.임금이 도승지 김돈(金墩)에게 이르기를“소의(昭儀)는 본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무술년(1418년, 세종 즉위년).../ 30페이지(daum 2010)
김돈 : 조선의 승부사들/ e-Book/ 서신혜 지음 | 역사의아침 | 2008.09.30/ 책본문 :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여기에 두었다.흠경각이 완성되자 세종은 기뻐하며 우승지 김돈金墩(1385~1440년)에게 기문記文을 짓게 했는데, 이를 통해 옥루의 모양을 알수 있다. 다소 .../ 33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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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출신 김국종, 16일 W저축은행장에 선임... 축하합니다.
김국종(W貯蓄銀行長에 김국종 氏 選任) [記事] :
W저축은행의 신임 행장에 김국종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이 선임됐다. W저축은행은 2010년 8월 1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김국종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신임 W저축은행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행장은 1952년 경북 예천 태생으로 덕수상고와 건국대학교 법경대학을 졸업했고, 구 한미은행으로 입행해 한국씨티은행 기업금융본부장, 개인영업본부 부행장 등을 지냈다.
(정재철 記者 來日新聞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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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61
용궁정보화마을(龍宮 情報化마을 葡萄따기 體驗行事 가져) [記事] :
용궁정보화 마을에서는 농촌생활을 접하기 힘든 원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우리 고장 특산물을 알려주는 농촌체험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용궁 포도 따기 체험 행사는 2010년 8월 13일 용궁면 향석리 유주희(정보화마을 위원장) 씨 농가에서 열렸다.
예천회룡포 정보화마을은 지난 13일 대구 아시아재활교육센터의 학생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포도따기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체험에 참석한 학생들은 포도밭에서 포도 따기, 포도 먹기 등 농촌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농촌체험학습은 농장에 가서 포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직접 따보는 체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유주희 용궁 정보화마을 위원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 특산물 포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실시하게 되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용궁정보화 마을에서는 향후 전국 대도시 소비자를 초청해 포도따기 체험, 고구마캐기 체험 등 다양한 친환경농산물 체험행사와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농업 체험을 통해 참여한 도시소비자들에게 관내 친환경농산물 재배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생고객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소비기반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오수경 編輯委員 醴泉인터넷放送 2010-08-17 오전 11: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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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 [記事] : 세종실록 88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2월 7일(경진) 1번째 기사/ 윤번․민의생․김돈 등이 양녕, 왜인, 호패법에 관한 일을 아뢰다/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大司憲) 윤번(尹?)과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황수신(黃守身)이 아뢰기를, ꡒ신 등이 각기 양녕 대군(讓寧大君) 이제(李?)가 서울에 집을 짓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함을 두세 번 진청(陳請)하였사오나, 윤허하심을 얻지 못하와 감분(憾憤)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ꡓ하니, 임금이 잠잠히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ꡒ경 등이 이를 말한 지가 오래다. 양녕이 이미 서울에 왕래하는데, 서울에다 집을 짓는 것이 무엇이 불가한가. 몸[身]이 근본이고 집[家]은 끝이다. 어찌하여 끝에다 마음을 써서 굳이 말하는 것이 이와 같은가.ꡓ하매, 번(?) 등이 아뢰기를, ꡒ이제 집을 크게 지으면 양녕이 항상 서울에 있게 될 것이오니, 비단 신 등만이 실망할 뿐 아니오라, 그 태종(太宗)의 유교(遺敎)에 어찌하겠나이까. 또 살 집이 없사오면 비록 혹시 서울에 들어올 때라도 감히 오랫동안 유(留)하지 못한다는 뜻이 그래도 있지마는, 이제 만약 그러하오면 다른 종친(宗親)과 분별이 없사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양녕이 가거나 올 때에는 모두 나에게 승낙을 받으니, 다른 종친과 같지 못한 것이 많다. 예로부터 성인(聖人)의 말씀도 혹 까닭이 있어서 한 것도 있으니, 태종 의 유교도 역시 한때의 까닭으로 하신 말씀이다. 양녕 은 큰 죄악이 없고 다만 광패(狂悖)함으로써 득죄(得罪)하였을 뿐이므로, 내가 집을 짓게 하여 서울에 살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ꡓ하여, 번 등이 다시 그 불가함을 진술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 등의 말이 비록 이와 같으나, 나의 생각도 풀기 어려운 것이다.ꡓ하였다. 예조 판서 민의생(閔義生)이 아뢰기를, ꡒ경상도 부산포(富山浦)에 항거(恒居)하는 왜인(倭人)이 60여 호(戶)인데, 지금 와서 장사하는 왜인 이 또한 무려 6천여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영(營)에 소속된 선군(船軍)인즉 본래가 8백여 명이오나, 그 정군(正軍)은 불과 4, 5백 명이오니, 만일 사변(事變)이 있사오면 그 수백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나이까. 청하옵건대, 진(鎭)의 군사를 더하여 군세(軍勢)를 장(壯)하게 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예전에 도왜(島倭)들이 경상도에서 번상(番上)한 군사를 점고(點考)한다는 말을 듣고 산으로 올라가서 은피(隱避)한 것이 두어 달이나 되었었다. 이제 갑자기 군(軍)의 수효를 더한다면 또 놀라지 아니하겠는가.ꡓ하매, 의생이 대답하기를, ꡒ비록 한 포(浦)에 군수(軍數)를 증설하는데 어찌 놀라기에 이르겠습니까.ꡓ하였다. 좌참찬(左參贊) 하연(河演)이 아뢰기를, ꡒ우리 국가의 동서(東西) 양계(兩界)는 장수(將帥)와 수령(守令)을 모두 무예(武藝)가 있는 사람으로써 선택하지만, 남방(南方)은 그렇지 아니하오니 실로 옳지 못하옵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의 말이 옳다. 대체로 북방 군졸은 병진(兵陣)을 연습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무용(武勇)하지만, 남방은 오랫동안 변경(邊警)이 없으므로 병비(兵備)를 익히지 않았으니, 만일 사변이 있으면 진실로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물(人物)이 본디 사납고 억세니, 진실로 무예를 익히면 가히 대적할 자 없을 것이다. 편안하여도 위태한 것을 잊지 않는 것은 예전의 명훈(明訓)이 있으니, 나도 역시 남방의 일에 유의하겠다. 또 성을 쌓고 순찰하라는 명령이 겨우 내렸는데, 헌의(獻議)하여 이를 막는 자가 말하기를, ꡐ민력(民力)을 수고롭게 한다. ꡑ고 한다. 그러나 백성의 이(利)를 일으키는 자가 어찌 목전(目前)의 폐해를 계산하고 만세(萬世)의 이익을 폐(廢)하겠는가. 경 등이 이제 만약 남방의 일을 조치(措置)하려면 민폐(民弊)를 구애하지 말고 마땅히 심사 원려(深思遠慮)하여, 한번의 수고로써 영원히 편케 하는 것이 역시 가하지 않겠는가.ꡓ하였다. 도승지 김돈(金墩)이 아뢰기를, ꡒ지금 백성이 날로 번성하는데도 군액(軍額)이 증가되지 아니하오니, 청하옵건대, 호패법(號牌法)을 시행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국가가 태평한 지 오래 되어 백성의 늘어남이 옛날의 배나 되는 것은, 그 노비(奴婢)의 번식된 것과 나누어주는 전지(田地)의 부족됨을 보아도 가히 알 수 있다. 이 법이 태종조(太宗朝) 때에 거의 실행되었는데, 한 대신(大臣)이 헌의(獻議)하여 이를 막았고, 백성들도 역시 모두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 정지하였다. 이제 만약 다시 이 법을 시행하면 반드시 숨어 빠지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범법(犯法)하는 자가 많을까 염려된다. 정치하는 데는 마땅히 그 대체(大體)만을 거행할 것이요, 그같이 샅샅이 살필 것은 아니다. 시험하여 조신(朝臣)과 의논하라.ꡓ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ꡒ우리 조종(祖宗)께서 초창(草創)한 처음에 모든 예제(禮制)에 있어서 많이 고려(高麗)를 따랐기 때문에, 고제(古制)에 어긋남이 많았었다. 내가 왕위를 계승하기에 미쳐 허조(許稠)와 정초(鄭招)로 하여금 다시 그 따르고 개혁할 것을 정하여 다 개원례(開元禮)를 모방하게 하였는데, 조(稠)는 학문이 이미 박흡(博洽)하지도 못하고 성질이 또한 고집이 있어 잘못된 일이 꽤 많았다. 왕비나 세자를 책봉하는 것 같은 유(類)는 예서(禮書)의 문의(文義)를 알지도 못하고 대개 억측으로 찬정(撰定)하였으므로, 그 뒤에 그 잘못된 것을 알게 되어 한때의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이제 문신(文臣) 한두 사람을 택하여 종묘(宗廟)․조회(朝會)의 예악(禮樂)과 왕비․세자의 의장(儀仗)을 정하게 하라.ꡓ하니, 돈(墩)이 소윤(少尹) 이효지(李孝之)를 천거하매,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8권 13장 B면/ 【영인본】 4책 267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군사-지방군(地方軍) / *인사(人事) / *외교-왜(倭) / *호구(戶口) / *정론-정론(政論)(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6월 22일(임진) 2번째 기사/ 도승지 김돈이 사직을 청하다/ 도승지(都承旨) 김돈(金墩)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ꡒ신이 병세가 날로 깊어져서 음식 생각이 없고 머리와 눈이 어둡고 어찔어찔하여 사지에 힘이 없어, 여러 달 사진(仕進)을 못하여 자리를 비우고 일을 폐하였으니 신의 직사를 파하시기를 비옵니다.ꡓ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34장 B면/ 【영인본】 4책 29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6월 23일(계사) 1번째 기사/ 이숙치․이사검․김돈․성염조․이승손․강석득․이익박․황수신․이세형을 제수하다/ 이숙치(李叔?)로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이사검(李思儉)으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를, 김돈(金墩)으로 인수부 윤(仁壽府尹)을, 성염조(成念祖)로 도승지(都承旨)를, 이승손(李承孫)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강석덕(姜碩德)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이익박(李益朴)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겸 지병조사(兼知兵曹事)를, 황수신(黃守身)으로 겸 지형조사(兼知刑曹事)를, 이세형(李世衡)으로 함길도(咸吉道) 도관찰사(都觀察使)를 삼았다. 임금이 세형(世衡)에게 이르기를, ꡒ평안(平安)․함길(咸吉) 두 도는 그 책임이 중하므로, 지금 경으로 관찰사를 삼는 것이다. 내가 경이 늙은 어버이가 있는 줄을 아나 부득이하여 보내는 것이다. 경의 모친이 나이 심히 늙지 않았으니 경은 나의 지극한 뜻을 알라.ꡓ하였다. 세형이 말하기를, ꡒ신이 책임은 무겁고 재주는 용렬하니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35장 A면/ 【영인본】 4책 29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9월 16일(을묘) 1번째 기사/ 인순부 윤 김돈의 졸기/ 인순부 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진술하여 아뢴 것이 자세하고 밝았다. 그가 졸(卒)하매, 임금이 애도(哀悼)하여 부의(賻儀)와 증여(贈與)함이 보통보다 더하였다. 아들은 김계로(金季老)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90권 39장 A면/ 【영인본】 4책 317면/ 【분류】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91권/ 세종 22년(1440 경신 / 명 정통(正統) 5년) 11월 11일(경술) 2번째 기사/ 인수부 윤 김돈의 제문/ 인수부 윤(仁壽府尹) 김돈(金墩)에게 사제(賜祭)하였다. 그 제문(祭文)에 이르기를, ꡒ생각하건대, 경은 자품이 수이(粹異)하고 학문이 정심(精深)하여, 일찍이 빛나는 명예를 펴서 사림(詞林)을 표박(表?)3198) 하였도다. 경연[經?]에 뽑아 두고 계옥(啓沃)3199) 의 바탕을 삼으니, 고금을 변정함과 성리(性理)의 학설에 있어서 좌우로 근원을 만나 자세하게 분석하였으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여겨 사랑함이 깊고 두터웠도다. 경의 노모(老母)가 멀리 강진(康津) 에 있음에 경을 외직에 보(補)하기를 아깝게 여겼고, 경이 모친(母親)을 생각할까 가엾게 여겨 특별히 어미를 수레에 모시게 명하여 조석을 같이 하도록 하였도다. 간의(簡儀)를 감독하여 만들게 하니 제작(制作)이 새로왔고, 은대(銀臺)3200) 의 장(長)으로 뽑아서 기밀을 관장하게 하였더니, 출납(出納)이 밝고 진실하였으며, 우모(?謨)3201) 에 힘써 부지런하였도다. 더욱 큰그릇으로 중히 여겨 좋은 보필이 되기를 기약하였더니, 그 약하고 병들음을 민망히 여겨 한직(閑職)으로 승진 제배(除拜) 하였노라. 좋은 약제를 내려주어 날마다 회복하기를 바랐었는데, 어찌하여 수명이 길지 못하여 갑자기 영결(永訣)하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자질은 풍부하게 주었으나 생명은 인색하게 주었는지, 영령을 추상(追想)하니 진실로 슬프기 한이 없노라. 이에 휼전(恤典)을 내려 사인으로 하여금 한 잔의 술을 드리게 하노니, 영혼(英魂)이 앎이 있거든 이를 흠향하기 바라노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9책 91권 10장 A면/ 【영인본】 4책 324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어문학-문학(文學)/ [註 3198]표박(表?) : 뛰어나게 나타냄. ☞ / [註 3199]계옥(啓沃) : 좋은 건의. ☞ / [註 3200]은대(銀臺) : 승정원(承政院). ☞ / [註 3201]우모(?謨) : 대모(大謀).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한국사연구휘보/ 한국사연구휘보 제102호 / 제목 金墩의「報漏閣記」에 대하여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 저자/편자 南文鉉 역자 시대 조선 / 게재지 韓國史硏究 101 페이지 75~114쪽 구분 논문 / 발행처 韓國史硏究會 발행지역 서울 발행일 1998 / [목차] : Ⅰ. 머리말/ Ⅱ. 報漏閣記 ?銘幷序 解義/ Ⅲ.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Ⅳ. 自擊漏에 대한 몆 가지 고찰/ Ⅴ. 맺음말(www.history.go.kr 2009)
김돈(金墩) [國語辭典] : 조선 시대의 문신·천문학자(1385~1440). 태종 17년(1417)에 문과에 급제하고 직제학, 이조 판서를 지냈다. 세종의 명을 받아 간의대(簡儀臺), 보루각(報漏閣) 따위를 만들었다.(daum 2010)
김돈(金墩) : 생졸년 1385 (우왕 11) - 1440 (세종 22)/ 시대 조선 전기/ 본관 안동(安東)/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과학자/ 과거 및 취재 [문과] 태종(太宗) 17년 (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위/ [상세내용] 김돈(金墩)에 대하여 : 1385년(우왕 11)∼1440년(세종 22). 조선 초기의 문신·과학자. 본관은 안동. 첨의중찬 방경(方慶)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의 후(厚)이며, 아버지는 칠양(七陽)이다. 1417년(태종 17)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직제학과 승지를 거쳐 벼슬이 참판·좌승지·인순부윤(仁順府尹)에까지 이르렀다. 세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사양하였다. 급제하자 임금이 “내가 경을 보고자 하였으나 경이 나를 피하더니 이제는 나의 신하가 되었구나!”라고 기뻐하였다 한다. 1428년(세종 10) 왕명으로 《서한이하역대보계도 西漢以下歷代譜系圖》를 찬진하고, 종학박사와 사성을 역임하였다. 1434년 집현전직제학으로 동활자인 갑인자의 주조에 참여하였으며, 이듬해는 집현전부제학으로 불교의 폐단에 대하여 왕에게 상소하고, 그뒤 부승지가 되었다. 1438년 도승지가 되었으며,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여러 차례 외직을 원하였으며, 특히 역마를 보내어 탐라에 있는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와서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한편,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간의대(簡儀臺)와 보루각(報漏閣)을 만들 때도 참여하였다. 한때 귀양가는 이숙번(李叔蕃)이 순금띠를 주면서 자신의 구출을 의뢰하자, 여러 방법으로 구출을 모색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세종의 명으로 김조(金兆)와 함께 천추전(千秋殿) 서편 뜰에다 흠경각(欽敬閣)을 창설하고, 종이를 뭉쳐서 산을 만들되 높이가 일곱 자 되게 하고, 또 그 안에 옥루기(玉漏器)를 설치하여 바퀴물로써 돌게 하였는데, 해의 도수와 그림자 누수(漏水)의 시각이 하늘의 운행과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고 한다. 산의 사방에는 사시(四時)의 경물(景物)과 사람·새·짐승·초목의 형상을 만들어 그 절후에 맞추어놓아 백성이 농경의 어려움을 알도록 하였다. 또, 누기(漏器)를 설치하고 이름을 ‘보루각’이라 하고 이층으로 만들어 삼신(三神)을 그 위에 설치하였는데, 시간을 알릴 때는 종을, 경(更)을 알릴 때는 북을, 점(點)을 알릴 때는 징을 울리게 만들었다. 승지로 7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논변이 상세하고 분명하였으며, 집현전출신으로 박학다식하고, 특히 과학기기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이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海東雜錄(daum 2010)
김돈(金墩) : [문과] 태종(太宗) 17년 (1417) 정유(丁酉)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4위/ [인적사항] 본관 안동(安東)/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승지(承旨)/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칠양(金七陽), [조부] 성명 : 김후(金厚), [증조부] 성명 : 김승용(金承用), [외조부] 성명 : 김용진(金用珍), [처부] 성명 : 노상의(盧尙義), [형] 김전(金塡)/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돈(金墩) : 1385(우왕11)∼1440(세종22)./ . 13. 발용(군)제공) 1) 졸기 《 세종 090 22/09/16(을묘) / 인순부윤 김돈의 졸기 》 인순부윤(仁順府尹) 김돈(金墩)이 졸(卒)하였다. 돈(墩)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으로서 경학(經學)에 밝았고, 오래도록 근시(近侍)로 있으면서 의견을.../ http://andongkim.net(daum 2010)
김돈(金墩)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태종(太宗) 17년, 과거시험연도 : 1417 정유,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4(丙科4)/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돈(金墩), 본관(本貫) : 안동(安東)/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승지(承旨)/ [가족사항] 형(兄) : 김전(金塡), 부(父) : 김칠양(金七陽), 조부(祖父) : 김후(金厚), 증조부(曾祖父) : 김승용(金承用), 외조부(外祖父) : 김용진(金用珍), 처부(妻父) : 노상의(盧尙義)(daum 2010)
김돈 : 조선시대 초기의 천문학자 <김돈 金墩)/ 2008.08.26/ 김돈 金墩(1385~1440) 조선 초기의 문신 과학자. 1434년 집현전 직제학으로 동활자인 갑인자의주조에 참여했으며, 천문관측에 정통하여 간의대와 보루각을 만들 떄도 참여했다. 세종의 명으로 김조와 함꼐 천추전 서편 뜰에다.../ http://cafe.daum.net/astronomical/ 우주,별....사랑하는 사람들(daum 2010)
김돈 : 조선의 인물, 조선의 책|세종과 금속활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2010.04.15/ ...만들 것을 지시한다. 지금 있는 활자를 녹여 큰 활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을 맡은 사람은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직전(直殿) 김빈(金 ), 호군 장영실(蔣英實), 첨지사역원사 이세형(李世衡), 사인(舍人) 정척(鄭陟), 주부.../ http://cafe.daum.net/jeantravelbag/ jean''''s여행가방(daum 2010)
김돈 :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함원전 일대 행각]/ 2010.04.12/ ...을 공경히 주게 하셨다.”<원전 13> 제작 정보 : 세종 당시 흠경각을 창설하는 데 참여한 관료이자 과학자인 김돈(金墩, 1385~1440년)이 기문(記文) 3)을 지은 바 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동강 조수호(趙守鎬)가.../ http://cafe.daum.net/mhtbd1/ 문화탐방단(구미문화지킴이. 옛.생활문화연구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金墩/ 권별(權鼈)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世宗朝)金墩/ 安鐘和 | 2007.02.1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金墩의「報漏閣記」에 대하여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Ⅰ. 머리말 Ⅱ. 報漏閣記 ?銘幷序 解義 Ⅲ. 自擊漏의 原理와 構造 Ⅳ. 自擊漏에 대한 ?p 가지 고찰 Ⅴ. 맺음말/ 南文鉉 | 韓國史硏究會 | 2007.01.17(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儀象) 金墩日星定時儀銘/ 編者未詳 | 2006.12.3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儀象) 金墩仰釜日晷銘/ 編者未詳 | 2006.12.31(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景福宮之欽敬閣在康寧殿西金墩記曰/ 編者未詳 | 2006.12.30(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앙부일구 명(仰釜日晷銘)/ 김돈(金墩)/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일성정시의 명 병서(日星定時儀銘 幷序)/ 김돈(金墩)|요순(堯舜), 경사(經史), 자격루(自擊漏), 의상(儀象)|성신(聖神)|천문(天文)|법상(法象)|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일구(日晷)|일구(日晷).../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소일성정시의후서(小日星定時儀後序)/ 김돈(金墩),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소정시의(小定時儀)|정극환(定極環), 군용(軍用)|누수(漏水)|초도(初度)|초도(初度)|일구(日晷)/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흠경각 기(欽敬閣記)/ 김돈(金墩)|당우(唐虞)|성탕(成湯)|주무왕(周武王), 간의(簡儀)|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仰釜)|규표(圭表)|금루(禁漏)|옥루기륜(玉漏機輪)|주작(朱雀)|황도(黃道)|수운(水運)|혼천(渾天)|간의(簡儀), 제왕.../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表紙一/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表紙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記/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目錄/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目錄(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書/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序/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序(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序/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跋/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詩/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卷之二/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묵재문집(?齋文集)/ 김돈(金墩) | 미상 | 2009.09.0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齋文集卷之一/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一(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祭文/ 金墩 | 미상 | 2009.09.03/ 태그: 묵재문집(?齋文集)|?齋文集卷之二(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간의대 기(簡儀臺記)/ 정인지(鄭麟趾)|정초(鄭招)|이천(李?)|안순(安純)|희화(羲和)|곽수경(郭守敬)|곽수경(郭守敬), 제조(提調)|대제학(大提學), 원사(元史), 서운관(書雲觀)|서운관(書雲觀)|서운관(書雲觀), 간의(簡儀)|간의(簡儀).../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보루각 기(報漏閣記)/ 장영실(蔣英實), 호군(護軍), 사신목인(司辰木人), 누기(漏器)|간의(簡儀), 원경(圓徑)|수시력(授時曆)|이기(二氣)|삼신(三神)|중영(中楹)|경점(更點)|원경(圓徑)|누수(漏水)|경점(更點)|오경(五更)|횡목(橫木).../ 김돈(金墩)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整理鑄字成 監董閣臣 以下施賞有差/ 太宗|李稷|世宗|李?|金墩|寅命|李晩秀|尹行恁|柳明杓|黃仁爀|趙穎|劉相祐|吉光福|姜再乭|鄭甲成|韓昌得|劉澤龍|金仁璟|朴亨蕃|金世萬|金致鑑|李震福|李得希|李壽贊|李聖燁/ 2007.02.1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芸館 進活印經書 監董 諸臣以下施賞有差/ 徐榮輔|李祉永|吳鼎源|柳得恭|柳英喆|金洪運|李果|太宗|李稷|世宗|李藏|金墩|英宗/ 2007.02.13(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간의(簡儀)를 중건한 것에 대한 서(序)/ )|김돈(金墩)|공인(工人)|성조(聖祖), 서운관(書雲觀), 재정(裁定)|장단(長短)|일대(一代)|계청(啓請)|계지술사(繼志述事), 의상(儀象)|사각(史閣)|영사(領事)|간의(簡儀)|누기(漏器)|혼상(渾象)|규표(圭表)|혼의.../ 이항복(李恒福)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유명조선국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영집현전경연춘추관사 세자부 증시 문경 허공 묘지명 병서 (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領集賢殿經筵春秋館事 世子傅贈諡文敬許公墓誌銘 幷序 )/ 孝宗)|조상치(曹尙治)|안숭선(安崇善)|이만주(李滿住)|신숙주(申叔舟)|하위지(河緯地)|고조(高祖)|김돈(金墩)|경암(敬菴)|박씨(朴氏)|양정공(良靖公)|최유종(崔有悰)|이극배(李克培), 하양현(河陽縣)|춘주(春州).../ 남수문(南秀文)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태종조의 명신(名臣)/ 권근|황희(黃喜)|이지강(李之剛)|이무(李茂)|청평군(淸平君)|이숙번(李叔蕃)|이숙번|안성군(安城君)|김돈(金墩)|김돈|이징옥(李澄玉)|조비형(曹備衡)|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자당(尹子當)|이백온(李伯溫).../ 이긍익(李肯翊)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1.14(daum 2010)
김돈 [專門資料] : 갑인자 인쇄본 2/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 이천(李狀)·직제학 김돈(金墩)·직전(直殿) 김호(金鎬)·호군(護軍) 장영실(蔣英實)·사역원첨지사(司譯院僉知事) 이세형(李世衡)·사인(舍人) 정척(鄭陟)·주부(主簿) 이순지(李純之).../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7.01.09(daum 2010)
김돈 : 저기 장영실에 관해서,,,/ 2010.02.03/ 1424년 중국의 체재를 참고하여 물시계를 만들어 그 공으로 행사직(行司直)이 되었다. 1432년 김돈(金墩)·이천(李) 등을 도와 간의대(簡儀臺)의 제작에 착수하고, 각종 천문기기의 제작을 감독했다. 1433년 호군...(daum 2010)
김돈 : 과학이 들어간 옛날 물건/ 2009.12.10/ ...)이 공역(工役)을 감독하여 1438년(세종 20)에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천문의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김돈(金墩)의 앙부일구명(仰釜日晷銘)에는 "무릇 시설 중에서 시간에 관한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밤에는 경루가...(daum 2010)
김돈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조상들의 생활도구, 과학문화재/ 2009.01.23/ 그것은 1438년 1월에 완성되어 경복궁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설치했다. 그 구조는 김돈(金墩)의 흠경각기(欽敬閣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옥루는 명종초 경복궁에 불이나 없어진 것을 1554년(명종 9...(daum 2010)
김돈 : 문화재 향기 [궁궐의 현판과 주련-경복궁_함원전 일대.../ 2010.04.12/ ...을 공경히 주게 하셨다.”<원전 13> 제작 정보 : 세종 당시 흠경각을 창설하는 데 참여한 관료이자 과학자인 김돈(金墩, 1385~1440년)이 기문(記文) 3)을 지은 바 있다.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동강 조수호(趙守鎬)가.../ http://blog.daum.net/donglakjae/ 김아저씨공방/동락재통신同樂齋通信(daum 2010)
김돈 : 필원잡기 사육신 유성원 기록/ 2009.08.26/ 영상 정창손(鄭昌孫),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ㆍ안지(安止), 판서 김조(金?), 참판 김돈(金墩), 판중추부사 김균(金鈞)ㆍ김말(金末), 영상 신숙주(申叔舟), 좌상 권람(權擥), 참찬 박중손(朴仲孫), 영상 최항.../ http://blog.daum.net/son13601/ 우리문화사랑방(daum 2010)
김돈 : 세종 시대의 천문학/ 2008.09.17/ ...신하가 모두 이르기를, “신들의 소원도 김조의 것에 넘지 않습니다.” 하여 세종이 웃었다. 《필원잡기》김돈(金墩)김돈은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참의 김후(金厚)의 손자이다. 태종 정유년(1417)에 생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http://samtay.egloos.com/ Astronomia(daum 2010)
김돈 : 안동김씨2(安東金氏)/ 2010.02.28/ ...金達淳) 김대래(金大來) 김대섭(金大涉) 김덕근(金德根) 김덕룡(金德龍) 김덕진(金德鎭){2} 김덕한(金德漢) 김돈(金墩) 김득신(金得臣){1} 김매순(金邁淳) 김면행(金勉行) 김면호(金勉浩) 김명진(金明鎭) 김문근(金汶根) 김문순.../ http://blog.daum.net/ilkobstar/ 별중별(daum 2010)
김돈 : 궁녀/ e-Book/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04.04.20/ 책본문 : ...가능한 일이었다. 『실록』의 다음 기록은 이를 잘보여 준다.임금이 도승지 김돈(金墩)에게 이르기를“소의(昭儀)는 본래 내자시의 여종이었으나, 무술년(1418년, 세종 즉위년).../ 30페이지(daum 2010)
김돈 : 조선의 승부사들/ e-Book/ 서신혜 지음 | 역사의아침 | 2008.09.30/ 책본문 :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여기에 두었다.흠경각이 완성되자 세종은 기뻐하며 우승지 김돈金墩(1385~1440년)에게 기문記文을 짓게 했는데, 이를 통해 옥루의 모양을 알수 있다. 다소 .../ 33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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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출신 김국종, 16일 W저축은행장에 선임... 축하합니다.
김국종(W貯蓄銀行長에 김국종 氏 選任) [記事] :
W저축은행의 신임 행장에 김국종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이 선임됐다. W저축은행은 2010년 8월 1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김국종 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신임 W저축은행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행장은 1952년 경북 예천 태생으로 덕수상고와 건국대학교 법경대학을 졸업했고, 구 한미은행으로 입행해 한국씨티은행 기업금융본부장, 개인영업본부 부행장 등을 지냈다.
(정재철 記者 來日新聞 20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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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61
용궁정보화마을(龍宮 情報化마을 葡萄따기 體驗行事 가져) [記事] :
용궁정보화 마을에서는 농촌생활을 접하기 힘든 원생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우리 고장 특산물을 알려주는 농촌체험을 통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용궁 포도 따기 체험 행사는 2010년 8월 13일 용궁면 향석리 유주희(정보화마을 위원장) 씨 농가에서 열렸다.
예천회룡포 정보화마을은 지난 13일 대구 아시아재활교육센터의 학생들과 자원 봉사자들의 포도따기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체험에 참석한 학생들은 포도밭에서 포도 따기, 포도 먹기 등 농촌체험학습을 통해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농촌체험학습은 농장에 가서 포도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직접 따보는 체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유주희 용궁 정보화마을 위원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체험활동을 통해 특산물 포도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실시하게 되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용궁정보화 마을에서는 향후 전국 대도시 소비자를 초청해 포도따기 체험, 고구마캐기 체험 등 다양한 친환경농산물 체험행사와 지역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농업 체험을 통해 참여한 도시소비자들에게 관내 친환경농산물 재배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평생고객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소비기반을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오수경 編輯委員 醴泉인터넷放送 2010-08-17 오전 11: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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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