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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328:반우형大司憲1(附예천방문679)
예천의 자랑(2328) : 예천 출신 반우형 대사헌(1)(附 예천방문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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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형(潘佑亨) : 시호는 문효(文孝), 본관은 거제, 조(慥)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 5위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지평(持平), 장령(掌令), 사성(司成), 사간(司諫),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으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일시 파직되었다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좌윤(左尹)을 지냈고,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가 기묘사화 때 유배되었으나 명종 때에 신원(伸寃)되었다.(醴泉郡誌 2005)
반우형 : Surname.info :+: 반우형(潘佑亨)/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지평을 거쳐 1493년 수장령, 다음해 사성에 오르고 각지 명산 대천에서 사직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에 파견되었다. 1495년 사간, 대사성, 1504년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대사헌.../ http://www.ulsankim.org(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성종(成宗) 5년, 과거시험연도 : 1474 갑오,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5(丙科5)/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반우형(潘佑亨), 본관(本貫) : 거제(巨濟)/ [이력 및 기타 사항] 시호 : 정국공신/기성군(靖國功臣/岐城君),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대사헌(大司憲)/ [가족사항] 부(父) : 반조(潘?)(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반우형(潘佑亨)에 대하여/ 시대 : 조선/ 분야 :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반우형(潘佑亨)에 대하여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거제. 조(?)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486년 사헌부지평, 1490년 이래 성균관 관원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각지의 명산대천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사간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해 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한성부우윤 등에 올랐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되며 대사헌에 발탁되고,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유배되었으며, 명종 때에 신원되었다./ 문헌 :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daum 2010)
반우형(潘佑衡) : 본관(本貫) 거제(巨濟), 자(字) 문보(文甫), 호(號) 옥계(玉溪)/ 이력(履歷)/ 반우형 -1523 문보 옥계 기성 사가한훤당문인 옥계집/ 潘佑亨 -1523 文甫 玉溪 岐城 四佳寒暄堂門人 玉溪集 남명학파(南冥學派) 관련(關聯) 인명록(人名錄)/ 이상필(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편찬, 제공(2005년 4월)(daum 2010)
반우형 : 반우형(潘佑衡) 옥계 선생의 학덕 : 선생의 휘는 우형(佑衡)이요. 자는 문보(文甫)요. 호는 옥계(玉溪)이고 거제 부원군( 臣齋府院君) 반부(潘阜) 선생의 후예로 반조(潘조 ) 선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기성(岐械)이며 이조 때 문신이다. 선은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 宏弼) 선생의 문하에서 수하하며 1474년(이조 성종 5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이조 성종 17년)에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 성종 24년 )에 수장령 (守掌令) 에 오르고 이듬해 사성 (히成) 이 되어 각지 명산대천에서 사직 (杜稷) 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1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년)에 사간(司諫)에 오르고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 ( 연산군 10년)에 동지성균관사 (同刻成均관事)를 거쳐 대사헌 (大司憲) 등을 지내다가 갑자사화(甲子士窩)가 일어나 파직 당했으나 다시 한성부 우윤(韓城府 右尹) 을 거쳐 동 좌윤(左尹)을 지냈다. 1506년( 연산군 12년 :중종 원년) 에 박 원종(朴 元宗) 등과 중종반정 (中宗反正) 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靖!國功臣) 4등에 올라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발탁되어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 형조.판서 (刑曹判書 ) , 도총관 등을 역 임하여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되 있다. 1519년 (중종 14년 )에 기묘사화(已卯士禍)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유배당했다. 명종(明宗) 때 신원 (伸寃)되어 복작(複爵)되고 졸후 문효(文孝)라 시호하였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소학(小學)으로 수신하였고 성장함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으로 고 직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기에 효성을 다하여 사람들이 출천지효자라 하였으며 내외다난한 정세에도 전후 6년 동안의 시묘에 하늘이 감동하였음인지 호랑이가 선생을 보호하였다 한다. 또한 선생의 증손인 반효홍(潘 孝泓) 선생은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현손 반국해 (玄孫 潘 國海)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참전 전공을 세워 병조참의 (兵曹參議)에 오르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또한 현손인 오봉 반중경(五峰 潘 仲慶)선생은 임진왜란에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출전하였다가 전사했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오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족보, 인명대사전, 도주지, 청도문헌고)(daum 2010)
반우형(潘佑衡) : 조선의 문신. 조(●)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성종24) 수장령(守掌令), 이듬해 사성(司成)에 오르고 각지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사직(社稷)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간(司諫)·대사성, 1504년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거쳐 대사헌 등을 지내다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파직당했다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좌윤(左尹)을 지내고, 1506년 박원종(朴元宗) 등과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대사헌에 발탁되어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가 1519년(중종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유배당했다. 명종 때 신원(伸寃)되었다.(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본관은 거제, 생몰년 미상. 조선(朝鮮) 전기의 문신(文臣). 본관은 거제. 조(#조21)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식년(式年)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여 1486년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 1490년 이래 성균관(成均館) 관원(官員)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名聲)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全國)각지(各地)의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司憲府)사간(司諫)을 거쳐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成均館)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정국(靖國)공신(功臣) 4등으로 녹권(錄券)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冊封)되며 대사헌(大司憲)에 발탁(拔擢)되고,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成均館)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改稱)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流配)되었으며, 명종(明宗) 때에 신원되었다. 선생의 휘는 우형(佑衡)이요. 자(字)는 문보(文甫 )요. 호(號)는 옥계 (玉溪) 이고 거제 부원군( 臣齋府院君) 반부(潘準)선생의 후예(後裔)로 반조(潘조)선생의 아들로서 론관은 기성(岐械)이며 이조 때 문신(文臣)이다. 선생(先生)은 한훤당 김 굉필(寒暄堂 金 宏弼)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수학(受學)하며 1474년 이조 성종(成宗) 5년)에 식년(式年)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여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이조 성종 17년)에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성종 24년)에 수장령(守掌令)에 오르고 이듬해 사성(司成)이 되어 각지 명산대천에서 사직(杜稷)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1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년)에 사간(司諫)에 오르고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 (연산군 10년)에 동지성균관사 (同刻成均관事)를 거쳐 대사헌(大司憲)등을 지내다가 갑자사화(甲子士窩)가 일어나 파직 당했으나 다시 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을 거쳐 동 좌윤(左尹)을 지냈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원년) 에 박원종(朴元宗) 등과 중종반정 (中宗反正)에 참여(參與)하여 정국공신 (靖!國功臣) 4등에 올라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발탁되어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 형조.판서 (刑曹判書 ) , 도총관(都摠管) 등을 역임(歷任)하여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되 있다. 1519년 (중종 14년 )에 기묘사화(已卯士禍)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유배당했다. 명종(明宗) 때 신원(伸寃)되어 복작(複爵)되고 졸후 문효(文孝)라 시호(諡號)하 였다. 선생은 어릴 때 부터 소학(小學)으로 수신하였고 성장함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으로 고 직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기에 효성(孝誠)을 다하여 사람들이 출천지효자라 하였으며 내외다난한 정세에도 전후 6년 동안의 시묘(侍墓)에 하늘이 감동하였음인지 호랑이가 선생(先生)을 보호(保護)하였다 한다. 또한 선생의 증손(曾孫)인 반효홍(潘孝泓)선생은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참전(參戰)하여 공(功)을 세웠고 현손(玄孫) 반국해(玄孫 潘國海)선생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참전 전공(戰功)을 세워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오르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또한 현손(玄孫)인 오봉 반중경(五峰 潘 仲慶)선생은 임진왜란에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출전하였다가 전사(戰死)했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오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족보, 인명대사전, 도주지, 청도문헌고)(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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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79
회룡포(''''回龍浦 달빛을 내 가슴에...'''' 第2回 回龍浦 달빛사냥 모래沙場 걷기行事 開催!) [記事] :
회룡포사랑회(회장 이인호)가 주최하는 제2회 회룡포 달빛사냥 모래사장 걷기행사가 2010년 9월 25일 오후 6시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에서 개최됐다.
내성천이 비룡산을 부둥켜안고 용트림을 하며 350도 타원형의 큰 원을 그리며 빚어낸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마을 회룡포에서 펼쳐진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정상진 도의원, 김영규 군의장, 이상훈 군의원, 김장식 축협장, 김재기 풍양농협장, 윤동희 용궁농협장, 정석권 부군수를 비롯한 각 실과소장, 읍·면장, 지역 주민, 관광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는 1부 백사장 걷기, OX퀴즈대회, 용궁순대, 용궁막걸리 시음, 삼행시 백일장 행사에 이어 2부 행사로 참가자 노래자랑 및 시상 순으로 진행됐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위로 가을이 사뿐히 내려앉으며 은빛 백사장을 물들이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접수대에서 참가증을 수령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촛불 가로등을 따라 백사장을 걸어 이계바위 앞 백사장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진행에 따라 OX퀴즈대회를 열고 퀴즈 당첨자에게 고추장아찌를 지급했다.
최근 자주 내린 비로 한껏 불어난 강물로 회룡포 뿅뿅다리가 물에 잠긴 가운데 가족단위와 연인, 친구 등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촛불이 가로등처럼 비추는 백사장을 걸으며 회룡포의 아름다움과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 속으로 빠져들며 행사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참가자 이호숙(50, 하남시 신장동) 씨는 "회룡포 달빛사냥 모래사장 걷기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예천축제에 처음 참가했지만 이색적이고 테마가 있는 달빛행사가 다양하고 알찬 내용으로 이루어져 내년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며 회룡포 달빛행사가 더욱더 발전하길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백사장을 걸어 족구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용궁 오부자네 왕순대, 용궁막걸리, 손두부 등을 시식한 후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 솔숲공원에서 주먹밥 시식회를 갖은 후 회룡포 연못공원 팔각정에서 ''''회룡포(回龍浦)''''를 시제로 하는 삼행시 백일장에 참가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어둠이 회룡포를 완전히 삼키자 동쪽 산마루를 붉게 물들이며 한가위 보름달이 솟아올라 회룡포를 휘영청 밝히며 운치를 더해 주는 가운데 백사장 야외 캠프파이어장에서는 삼겹살을 참싸리 가지에 꿰어 참숯불에 구워 먹고 쥐불놀이 깡통, 폭죽 등을 준비해 참가자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잔디공원에 마련된 야외특설무대에서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예천분회(회장 황윤섭) 주관으로 진행된 노래자랑은 참가자들이 각기 준비한 노래 솜씨를 뽐내며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는 관중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흥겨운 축제 한마당이 됐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삼행시 백일장 장원은 이상호(문경시 신흥동) 씨가 차지 사과(10kg) 1박스, 된장 1통을 부상으로 받았으며 가작에 안옥희(유천면 화지2리) 씨가 향기찬표고 1세트, 입선 10명에게는 된장 1통씩 지급됐다.
삼행시 장원에 입선된 글은 다음과 같다. 회 : 회오리처럼 굽이치는 모습과 룡 : 용처럼 승천하는 기운이 감돌고 포 : 포근함이 살아 숨쉬는 예천의 회룡포/ 노래자랑 최우수(회룡포상)는 고추를 부른 장옥이(용궁면 읍부리 장미미장원) 씨로 사과 1박스, 참깨(1kg), 된장 1통, 대상 이대형(안산시)씨 사과 1박스, 참깨(1kg), 우수상 전무영 씨 포도(5kg), 참깨(1kg) 등 참가자들에게 우수 농·특산물을 골고루 나눠 주었으며, 달빛사냥 행사 참가자 모두에게 청양풋고추(250g)와 손전등이 지급됐다.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돌아나가는 용트림을 하는 듯한 회룡포는 영락없는 보름달 형상으로 뭍을 향한 그리움의 자맥질이 한반도 최고의 비경을 만들어 내면서 국가지정 명승지 제16호로 지정된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 서슴없이 찾는 회룡포는 풀무질로 달구어진 고달픈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는 인생의 간이역과 같다. 옛 오솔길과 은빛 백사장, 추억의 뿅뿅다리가 있는 회룡포는 멋스러움이 절로 묻어나는 곳으로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마을을 집어 삼킬 때면 안개마저 짖는 소리를 멈출 정도로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해발 240m 비룡산에 있는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만월(滿月)을 이룬 회룡포의 달빛은 훔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아름답다. 때문에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사계절 진을 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나고 그리운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회룡포는 자연과 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 온 회룡포사랑회(회장 이인호) 회원 40여명이 매월 한차례 회룡포 주변의 정화사업, 관광안내, 홍보 등을 하면서 다시 한번 더 찾고 싶은 회룡포를 만들고자 회룡포 달빛사냥 행사를 기획하게 됐으며, 1회 행사에 200여명이 머물렀던 것이 참가비 1만원을 내면서도 500여명이나 되는 행사로 크게 발전했다.
[글 : 읍사무소 장광현](醴泉인터넷뉴스 2010-09-26 오후 6: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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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형(潘佑亨) : 시호는 문효(文孝), 본관은 거제, 조(慥)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 5위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지평(持平), 장령(掌令), 사성(司成), 사간(司諫),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으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일시 파직되었다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좌윤(左尹)을 지냈고,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대사헌(大司憲)이 되어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가 기묘사화 때 유배되었으나 명종 때에 신원(伸寃)되었다.(醴泉郡誌 2005)
반우형 : Surname.info :+: 반우형(潘佑亨)/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지평을 거쳐 1493년 수장령, 다음해 사성에 오르고 각지 명산 대천에서 사직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에 파견되었다. 1495년 사간, 대사성, 1504년 동지성균관사를 거쳐 대사헌.../ http://www.ulsankim.org(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성종(成宗) 5년, 과거시험연도 : 1474 갑오,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5(丙科5)/ [인적 사항] 성명(姓名) : 반우형(潘佑亨), 본관(本貫) : 거제(巨濟)/ [이력 및 기타 사항] 시호 : 정국공신/기성군(靖國功臣/岐城君),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대사헌(大司憲)/ [가족사항] 부(父) : 반조(潘?)(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반우형(潘佑亨)에 대하여/ 시대 : 조선/ 분야 : 문신/관료 > 문신-조선전기 > 문신/ 반우형(潘佑亨)에 대하여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거제. 조(?)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486년 사헌부지평, 1490년 이래 성균관 관원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각지의 명산대천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사간을 거쳐 성균관대사성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해 동지중추부사·한성부좌윤·한성부우윤 등에 올랐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 4등으로 녹권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되며 대사헌에 발탁되고,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유배되었으며, 명종 때에 신원되었다./ 문헌 :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明宗實錄, 國朝榜目(daum 2010)
반우형(潘佑衡) : 본관(本貫) 거제(巨濟), 자(字) 문보(文甫), 호(號) 옥계(玉溪)/ 이력(履歷)/ 반우형 -1523 문보 옥계 기성 사가한훤당문인 옥계집/ 潘佑亨 -1523 文甫 玉溪 岐城 四佳寒暄堂門人 玉溪集 남명학파(南冥學派) 관련(關聯) 인명록(人名錄)/ 이상필(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편찬, 제공(2005년 4월)(daum 2010)
반우형 : 반우형(潘佑衡) 옥계 선생의 학덕 : 선생의 휘는 우형(佑衡)이요. 자는 문보(文甫)요. 호는 옥계(玉溪)이고 거제 부원군( 臣齋府院君) 반부(潘阜) 선생의 후예로 반조(潘조 ) 선생의 아들로서 본관은 기성(岐械)이며 이조 때 문신이다. 선은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 宏弼) 선생의 문하에서 수하하며 1474년(이조 성종 5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이조 성종 17년)에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 성종 24년 )에 수장령 (守掌令) 에 오르고 이듬해 사성 (히成) 이 되어 각지 명산대천에서 사직 (杜稷) 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1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년)에 사간(司諫)에 오르고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 ( 연산군 10년)에 동지성균관사 (同刻成均관事)를 거쳐 대사헌 (大司憲) 등을 지내다가 갑자사화(甲子士窩)가 일어나 파직 당했으나 다시 한성부 우윤(韓城府 右尹) 을 거쳐 동 좌윤(左尹)을 지냈다. 1506년( 연산군 12년 :중종 원년) 에 박 원종(朴 元宗) 등과 중종반정 (中宗反正) 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靖!國功臣) 4등에 올라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발탁되어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 형조.판서 (刑曹判書 ) , 도총관 등을 역 임하여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되 있다. 1519년 (중종 14년 )에 기묘사화(已卯士禍)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유배당했다. 명종(明宗) 때 신원 (伸寃)되어 복작(複爵)되고 졸후 문효(文孝)라 시호하였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소학(小學)으로 수신하였고 성장함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으로 고 직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기에 효성을 다하여 사람들이 출천지효자라 하였으며 내외다난한 정세에도 전후 6년 동안의 시묘에 하늘이 감동하였음인지 호랑이가 선생을 보호하였다 한다. 또한 선생의 증손인 반효홍(潘 孝泓) 선생은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현손 반국해 (玄孫 潘 國海) 선생은 임진왜란 때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참전 전공을 세워 병조참의 (兵曹參議)에 오르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또한 현손인 오봉 반중경(五峰 潘 仲慶)선생은 임진왜란에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출전하였다가 전사했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오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족보, 인명대사전, 도주지, 청도문헌고)(daum 2010)
반우형(潘佑衡) : 조선의 문신. 조(●)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성종24) 수장령(守掌令), 이듬해 사성(司成)에 오르고 각지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사직(社稷)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간(司諫)·대사성, 1504년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거쳐 대사헌 등을 지내다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파직당했다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좌윤(左尹)을 지내고, 1506년 박원종(朴元宗) 등과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대사헌에 발탁되어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가 1519년(중종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유배당했다. 명종 때 신원(伸寃)되었다.(daum 2010)
반우형(潘佑亨) : 본관은 거제, 생몰년 미상. 조선(朝鮮) 전기의 문신(文臣). 본관은 거제. 조(#조21)의 아들이다. 1474년(성종 5) 식년(式年)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여 1486년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 1490년 이래 성균관(成均館) 관원(官員)이 되어 가르치는 데 명성(名聲)이 있었다. 1493년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라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전국(全國)각지(各地)의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으로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헌부(司憲府)사간(司諫)을 거쳐 성균관(成均館)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연산군 10) 성균관(成均館)동지사를 겸하였다. 같은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정국(靖國)공신(功臣) 4등으로 녹권(錄券)되어 이성군(利城君)에 책봉(冊封)되며 대사헌(大司憲)에 발탁(拔擢)되고, 글의 뜻에 밝았으므로 오로지 성균관(成均館)에서의 가르침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기성군(岐城君)으로 개칭(改稱)되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流配)되었으며, 명종(明宗) 때에 신원되었다. 선생의 휘는 우형(佑衡)이요. 자(字)는 문보(文甫 )요. 호(號)는 옥계 (玉溪) 이고 거제 부원군( 臣齋府院君) 반부(潘準)선생의 후예(後裔)로 반조(潘조)선생의 아들로서 론관은 기성(岐械)이며 이조 때 문신(文臣)이다. 선생(先生)은 한훤당 김 굉필(寒暄堂 金 宏弼)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수학(受學)하며 1474년 이조 성종(成宗) 5년)에 식년(式年)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하여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이조 성종 17년)에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성종 24년)에 수장령(守掌令)에 오르고 이듬해 사성(司成)이 되어 각지 명산대천에서 사직(杜稷)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1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년)에 사간(司諫)에 오르고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1504년 (연산군 10년)에 동지성균관사 (同刻成均관事)를 거쳐 대사헌(大司憲)등을 지내다가 갑자사화(甲子士窩)가 일어나 파직 당했으나 다시 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을 거쳐 동 좌윤(左尹)을 지냈다. 1506년(연산군 12년 :중종 원년) 에 박원종(朴元宗) 등과 중종반정 (中宗反正)에 참여(參與)하여 정국공신 (靖!國功臣) 4등에 올라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지고 발탁되어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 형조.판서 (刑曹判書 ) , 도총관(都摠管) 등을 역임(歷任)하여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되 있다. 1519년 (중종 14년 )에 기묘사화(已卯士禍)가 일어나자 연좌되어 유배당했다. 명종(明宗) 때 신원(伸寃)되어 복작(複爵)되고 졸후 문효(文孝)라 시호(諡號)하 였다. 선생은 어릴 때 부터 소학(小學)으로 수신하였고 성장함에 따라 성리학(性理學)으로 고 직분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부모님을 모시기에 효성(孝誠)을 다하여 사람들이 출천지효자라 하였으며 내외다난한 정세에도 전후 6년 동안의 시묘(侍墓)에 하늘이 감동하였음인지 호랑이가 선생(先生)을 보호(保護)하였다 한다. 또한 선생의 증손(曾孫)인 반효홍(潘孝泓)선생은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참전(參戰)하여 공(功)을 세웠고 현손(玄孫) 반국해(玄孫 潘國海)선생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참전 전공(戰功)을 세워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오르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었다. 또한 현손(玄孫)인 오봉 반중경(五峰 潘 仲慶)선생은 임진왜란에 이 충무공(李 忠武公)을 따라 출전하였다가 전사(戰死)했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오르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족보, 인명대사전, 도주지, 청도문헌고)(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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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679
회룡포(''''回龍浦 달빛을 내 가슴에...'''' 第2回 回龍浦 달빛사냥 모래沙場 걷기行事 開催!) [記事] :
회룡포사랑회(회장 이인호)가 주최하는 제2회 회룡포 달빛사냥 모래사장 걷기행사가 2010년 9월 25일 오후 6시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에서 개최됐다.
내성천이 비룡산을 부둥켜안고 용트림을 하며 350도 타원형의 큰 원을 그리며 빚어낸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마을 회룡포에서 펼쳐진 이날 행사에는 이현준 군수, 정상진 도의원, 김영규 군의장, 이상훈 군의원, 김장식 축협장, 김재기 풍양농협장, 윤동희 용궁농협장, 정석권 부군수를 비롯한 각 실과소장, 읍·면장, 지역 주민, 관광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는 1부 백사장 걷기, OX퀴즈대회, 용궁순대, 용궁막걸리 시음, 삼행시 백일장 행사에 이어 2부 행사로 참가자 노래자랑 및 시상 순으로 진행됐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위로 가을이 사뿐히 내려앉으며 은빛 백사장을 물들이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접수대에서 참가증을 수령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촛불 가로등을 따라 백사장을 걸어 이계바위 앞 백사장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진행에 따라 OX퀴즈대회를 열고 퀴즈 당첨자에게 고추장아찌를 지급했다.
최근 자주 내린 비로 한껏 불어난 강물로 회룡포 뿅뿅다리가 물에 잠긴 가운데 가족단위와 연인, 친구 등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촛불이 가로등처럼 비추는 백사장을 걸으며 회룡포의 아름다움과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 속으로 빠져들며 행사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어 갔다.
참가자 이호숙(50, 하남시 신장동) 씨는 "회룡포 달빛사냥 모래사장 걷기행사에 참가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예천축제에 처음 참가했지만 이색적이고 테마가 있는 달빛행사가 다양하고 알찬 내용으로 이루어져 내년에도 꼭 참가하고 싶다며 회룡포 달빛행사가 더욱더 발전하길 기원드린다."고 말했다.
백사장을 걸어 족구장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용궁 오부자네 왕순대, 용궁막걸리, 손두부 등을 시식한 후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 솔숲공원에서 주먹밥 시식회를 갖은 후 회룡포 연못공원 팔각정에서 ''''회룡포(回龍浦)''''를 시제로 하는 삼행시 백일장에 참가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어둠이 회룡포를 완전히 삼키자 동쪽 산마루를 붉게 물들이며 한가위 보름달이 솟아올라 회룡포를 휘영청 밝히며 운치를 더해 주는 가운데 백사장 야외 캠프파이어장에서는 삼겹살을 참싸리 가지에 꿰어 참숯불에 구워 먹고 쥐불놀이 깡통, 폭죽 등을 준비해 참가자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잔디공원에 마련된 야외특설무대에서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예천분회(회장 황윤섭) 주관으로 진행된 노래자랑은 참가자들이 각기 준비한 노래 솜씨를 뽐내며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는 관중들과 함께 어우러지며 흥겨운 축제 한마당이 됐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삼행시 백일장 장원은 이상호(문경시 신흥동) 씨가 차지 사과(10kg) 1박스, 된장 1통을 부상으로 받았으며 가작에 안옥희(유천면 화지2리) 씨가 향기찬표고 1세트, 입선 10명에게는 된장 1통씩 지급됐다.
삼행시 장원에 입선된 글은 다음과 같다. 회 : 회오리처럼 굽이치는 모습과 룡 : 용처럼 승천하는 기운이 감돌고 포 : 포근함이 살아 숨쉬는 예천의 회룡포/ 노래자랑 최우수(회룡포상)는 고추를 부른 장옥이(용궁면 읍부리 장미미장원) 씨로 사과 1박스, 참깨(1kg), 된장 1통, 대상 이대형(안산시)씨 사과 1박스, 참깨(1kg), 우수상 전무영 씨 포도(5kg), 참깨(1kg) 등 참가자들에게 우수 농·특산물을 골고루 나눠 주었으며, 달빛사냥 행사 참가자 모두에게 청양풋고추(250g)와 손전등이 지급됐다.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돌아나가는 용트림을 하는 듯한 회룡포는 영락없는 보름달 형상으로 뭍을 향한 그리움의 자맥질이 한반도 최고의 비경을 만들어 내면서 국가지정 명승지 제16호로 지정된 육지속의 섬마을이다.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 서슴없이 찾는 회룡포는 풀무질로 달구어진 고달픈 삶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는 인생의 간이역과 같다. 옛 오솔길과 은빛 백사장, 추억의 뿅뿅다리가 있는 회룡포는 멋스러움이 절로 묻어나는 곳으로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마을을 집어 삼킬 때면 안개마저 짖는 소리를 멈출 정도로 적막 속으로 빠져든다.
해발 240m 비룡산에 있는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만월(滿月)을 이룬 회룡포의 달빛은 훔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아름답다. 때문에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사계절 진을 치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나고 그리운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회룡포는 자연과 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 온 회룡포사랑회(회장 이인호) 회원 40여명이 매월 한차례 회룡포 주변의 정화사업, 관광안내, 홍보 등을 하면서 다시 한번 더 찾고 싶은 회룡포를 만들고자 회룡포 달빛사냥 행사를 기획하게 됐으며, 1회 행사에 200여명이 머물렀던 것이 참가비 1만원을 내면서도 500여명이나 되는 행사로 크게 발전했다.
[글 : 읍사무소 장광현](醴泉인터넷뉴스 2010-09-26 오후 6: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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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