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355:임갑수傷痍勇士(附예천방문694)
작성자장병창 @ 2010.10.24 06:48:54
  예천의 자랑(2355) : 예천 출신 임갑수 상이용사(附 예천방문 694)

---

  임갑수(20年 間 자폐아 等 障碍人들 支援 : 自立成功 傷痍勇士 ''''임갑수 氏) [記事] :ꡒ상이용사를 다시 일어서게 한 힘은 이웃의 따뜻한 온기죠ꡓ 군복무 시절 입은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임갑수(50ㆍ대구 남구 대명동ㆍ국가유공자 2급) 씨는 30년 고통의 세월을 견디고 재기에 성공한 비결을ꡐ이웃 봉사를 하면서 얻은 힘ꡑ이라고 밝혔다.ꡒ빵 한 조각이라도 나누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부자가 되고 새로운 힘이 솟습니다ꡓ20년 남짓 봉사 활동으로 얻은 감동을 발판 삼아,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의 장애인에서 지금은 어엿한 식품업체 사장으로, 만학의 꿈을 이룬 대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ꡒ가난과 장애를 겪으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진심으로 알게됐다ꡓ며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30년 전 겨울, 대구에서 육군 통신병으로 복무하던 그는 전역 한 달을 앞두고 팔공산 기지까지 기밀문서를 운반하는 야간 임무를 홀로 수행하다 눈길에 미끌어져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됐다.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그는 전역 때까지 병원 한 번 가지 못하고 산 속 기지에서 절뚝거리며 군생활을 계속했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야 상한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을 겪었다.ꡒ전역 후 부모님을 도우며 가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보려 했는데... 아들이 불구가 된다는 소리는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ꡓ경북 예천이 고향인 그는 회복되자마자 장애인이 된 자신을 부모님께 보일 수 없어 대구에 사는 누이의 집으로 내달음쳤다. 그는,ꡒ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대구에서 3년 간 은둔생활을 했지만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어 장사라도 하기로 결심했다ꡓ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먼저 운수업을 해보기로 하고 군 입대 전 모은 돈을 털어 트럭을 샀다.ꡒ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가난을 피해 홀로 서울에 상경해 번 피땀어린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장애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ꡓ의족이 없던 시절, 사업차 만나는 이들조차 자신을 모습을 꺼려 피하기 일쑤였고, 고용한 운전수들도 장애인 사장의 눈을 속여 수금액을 횡령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의 생활비를 지원하며 봉사에 나섰고, 식당을 개업하고 성서공단에서 식품공장을 꾸리는 등 사업 영역도 꾸준히 확장시켜 나갔다. 또 지난 2003년에는 검정고시로 고교과정까지 마치고 경주대학교에 입학,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ꡒ어려운 이웃들을 모시고 마음껏 대접할 수 있으니 음식 사업을 하는 게 행복하다ꡓ며,ꡒ대학 졸업 후엔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사로써 보다 전문적인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ꡓ고 바램을 밝혔다. 지역 독거노인과 울릉도 어린이, 자폐아들의 후원자로 나선지 20여 년, 그는 장애로부터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이웃들의 온기와 고마움 때문에 아직도 봉사자로써 갈 길은 멀다고 말한다.(박민혜 記者 大邱日報 2005-06-01 20:40:29)

  임갑수(障碍人 晩學徒 임갑수 氏, 慶州大서 學士帽) [記事] : ꡒ남은 여생을 소외된 이웃과 어려운 세대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하는게 제 작은 소망이지요ꡓ 2급 장애인 만학도 임갑수(57․대구시 남구 대명5동) 씨는 ꡒ올해 꼭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동목욕차량을 구입해 몸이 불편한 중증장애인과 홀몸 노인을 찾아 목욕을 시켜 드리는 것ꡓ이라고 했다. 그가 2008년 2월 15일 경주대에서 38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학사모를 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임씨는 못배운 한을 풀기 위해 중학교을 다닌지 32년만인 2002년 8월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 03학번 새내기로 경주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어려울 때마다 곁에서 용기를 주던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아 1년간 휴학을 해야 했다. 복학한 임씨는 아들 딸같은 동기생들과 어울리며 주경야독을 했다. 젊은 학생들도 힘든 복수전공으로 그동안 몸담고 실천해온 외식경영 조리학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주차장에서 4,5층 강의실까지 68, 85계단을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려야 했다. 목발을 짚은 양겨드량이의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매일 새벽 대구에서 출발하는 4년간의 통학이란 역경을 이겨낸 배경에는 아내와 대학을 나온 아들(29)과 딸(26)의 격려가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경주대 대학원 석사과정에도 입학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가 이겨낸 시련은 너무도 많았다. 경북 예천의 가난한 집 5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난을 못이겨 1969년 중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그후 보세공장 공원과 중국집 배달원에다 시장 뒷골목 노숙생활을 하면서까지 돈을 모아 고향 부모님께 송아지를 사보내기도 했다. 가장 큰 시련은 군복무 중 만기 제대를 며칠 남겨두고 큰 사고를 당해 왼쪽다리를 절단하는 불행을 맞았던 것. 장애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2~3년동안 은둔생활을 하며 좌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상의용사 임갑수로 다시 일어섰다.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작은 식당을 하며 친절과 정성으로 손님들을 감동시켰다. 격주로 장애인 홀몸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매월 생신잔치 차려드리기, 봄 가을 경로잔치를 하며 마음이 더 부자가 됐다. 자신은 어렵게 살면서도 자폐아 어린이와 장애인 홀몸노인․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생활비를 보태주고 매년 울릉도 저소득층 초․중등학생을 초청, 육지 구경도 시켜주고 있다. 대구와 경주 등지에서 식당 경영을 하는 내실있는 식품업체 사장이기도 한 임씨는 졸업식날 경주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는다.(박준현 編輯委員 每日新聞 2008년 02월 11일)

  임갑수(障碍人, 홀몸老人 奉仕에 앞장 : 임갑수(虎鳴面 出生) 명동綜合食品 代表) [記事] :ꡒ이동 목욕 차량을 사 장애인, 홀몸노인을 방문해 목욕봉사와 장애인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소외된 이웃과 주민을 위해 봉사와 나눔으로 섬김을 다하고 싶습니다.ꡓ 2급 장애인 만학도 임갑수(57․호명면 금릉리 출생) 씨는 2008년 2월 15일 경주대에서 꿈에도 그리던 학사모를 썼다. 가난한 농부의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난 임갑수 씨는 가난과 배고픔 때문에 호명중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가 공원생활, 중국집 배달,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중부시장 안 골목에 빈 종이상자를 깔아놓고 숱한 밤을 새웠다. 임씨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몇 배의 소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업에 정진했다. 2002년 8월 고교 검정고시에 합격, 2003년 경주대에 입학하여 이번에 학사모를 썼다. 지난 2003년 경주대에 입학한 기쁨도 잠시뿐, 어려울 때마다 곁에서 용기를 준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아 1년간(2004년) 휴학을 해야 했다. 복학한 임씨는 아들과 같은 동기생과 어울리며 주경야독하였다. 젊은 학생들도 힘든 복수 전공으로 그동안 몸 담고 실천해온 외식경영, 조리학 졸업장과 사회 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호명에 계신 어머니(93)는 가난 때문에 못 입히고, 못 먹이고, 못 가르친 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더구나 다리 한 쪽 없는 아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가슴 한 켠에 한으로 남아 있었는데 학사모를 쓰고 대학원까지 등록한 아들을 보고 가슴에 쌓인 응어리도 많이 풀렸을 것이라고. 임씨는 주차장에서 4~5층 강의실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면서 오르내려야 했다. 목발을 짚은 양 겨드랑이의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으며, 4년 동안 매일 새벽 6시 전에 집을 나서는 통학생활을 이겨냈다. 임씨가 만학의 꿈을 이룬 것은 아내와 대학을 나온 아들(28) 딸(26)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경주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만기 제대를 며칠 앞두고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마지막 작전 훈련 임무 중(육군통신병) 팔공산 정상 기지까지 기밀문서를 운반하는 야간 임무를 홀로 수행하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다쳤다.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전역 때까지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산속 기지에서 절룩거리며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상한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을 겪었다. 장애인이 된 자신을 부모님께 보일 수 없다며 대구 누나집으로 와서 여기저기 직장을 찾아봤지만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좌절의 은둔생활을 2~3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상이용사 임갑수로 다시 일어섰다. 그는 식당일을 시작했다. 몸이 불편하여 어려움이 많았지만 정상인보다 몇 배 노력하고, 친절과 정성으로 싸고 맛있게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한 결과 식당은 나날이 번창했다. 이렇게 성공한 비결은 이웃봉사를 하면서 얻는 힘(?)이라고 임갑수 씨는 말한다. 임씨에게 왜 식당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어려운 이웃을 모시고 마음껏 대접할 수 있으니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임씨는 격주로 주말을 이용해 장애인, 홀몸노인들에게 무료식사 대접, 매월 한 차례 생일상 차려드리기, 1년에 두 번(봄, 가을) 경로잔치 등을 열어주고 있다. 재구예천군민회 부회장으로 `2005년 재구예천군민회 임원수첩''''과 많은 찬조를 하는 등 군민회에서도 큰 일을 하고 있다. ꡒ작지만 내실있는 복지관을 꼭 만들어 보다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소망입니다.ꡓ 대구와 경주 등지에서 식당 경영을 하는 내실있는 식당 사장이기도 한 임갑수 씨는 졸업식 날 경주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이태권 取材部長/出鄕人 擔當>(醴泉新聞 2008년 02월 22일 09:34:28)

---

  @예천방문 694

  예천군 방문(釜山YWCA와 떠나는 慶北醴泉 旅行) [記事] : 부산YWCA는 물 맑고 인심좋은 충효의 고장 "예천"으로 문화기행을 떠난다. 이번 기행은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洪水)가 났을 때 석관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주민들이 건져 지금의 자리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석송령,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으로 십승지지의 하나인 금당실 전통마을,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명승지로 흐르는 냇물과 바위 위에 떠 있는 듯한 자태가 아름다운 초간정,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백산 용문사에서 단풍을 구경하게 된다. 드넓게 펼쳐진 사과밭을 둘러보고, 사과 구입도 할 예정. 오는 28일(목) 오전 출발하면 35명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회룡포마을> : 또한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이며,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마을로서 KBS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 배경이자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육지 속의 섬마을』인 회룡포 마을이 예천에 있다.(김영희 리포터 來日新聞 2010-10-22)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