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389:정난손牧使(祝김완일)
예천의 자랑(2389) : 풍양면 청곡리 출신 정난손 원주목사(附 예천읍 고평리 출신 김완일, 19일 한국세무사고시회장 당선 취임...축하합니다)
---
정난손(鄭蘭孫) : 1424(세종 6)-1500(연산군 6),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室, 浦內) 삼수정(三樹亭) 곁 출신, 자는 백춘(伯春), 본관은 동래, 직제학 사(直提學賜)의 장자, 난종(蘭宗)의 형이다. 천품이 뛰어나고 심정(心情)이 보통 사람과 달라 일찍이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아 예(禮), 악(樂), 사(史), 어(語), 서(書), 수(數)에 익숙했다. 약관에 서울로 올라가 아버지를 모시고 이름난 선비들과 사귀니 글이 크게 진보되어 큰선비라 이르더니, 1450년(세종 32) 성균관 생원시(成均館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진취(進取)할 뜻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성리학을 전공하여 명망(名望)이 더욱 빛나는지라, 조정에서 서로 추천하여 세조의 특채로 뽑혀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 1457), 집현전 저작(集賢殿 著作), 박사(博士)와 수찬관(修撰官)을 겸하여 여러 해 있다가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로 옮기고 경주 판관(慶州判官)을 지나서 양산 군수(梁山郡守), 금산 현령(金山縣令)이 되어 백성들을 어진 풍속으로 교화(敎化)했다. 이어 내직(內職)으로 내자시 첨정(內資寺僉正), 사섬시 부정(司贍寺副正), 사복시 정(司僕寺正)으로 승진하고 그 청렴결백(淸廉潔白) 정직함이 알려져 성종 때에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을 제수했다.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승진하여 법대로 사사(私事)로움 없이 법망을 엄숙히 밝혔고, 파주 목사(坡州牧使),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로 지극히 다스려 백성들이 돌비(碑)를 세워 송덕했다. 이어 사도시 정(司도寺正), 사의원 정(司衣院 正)을 지냈다. 성종이 승하(1494)하여 능산 역사(陵山役事)를 감독한 공로로 다시 당상(堂上)에 승진되어 오위도총부 오위장(五衛都摠部五衛將), 동 부총관(副摠官), 원주 목사(原州牧使, 149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우림위장(羽林衛將, 正2品)을 겸하였다. 그러나 곧 사양하고 물러나왔다. 연산군이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1457년(세조 3) 신숙주(申叔舟)가 "정난손은 문학이 고명(高名)하고, 또 사람됨이 온량 단정(溫良端正)하여 유림(儒林)의 스승이니, 집현전(集賢殿)의 벼슬로 돕게 함이 옳다."라고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 또한 이름을 들었도다."라고 하더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서 강론을 들을 때 그가 <주역(周易)>의 이치를 강론함이 밝고 통달하여 <주역> 한 질과 궁내의 술을 내리고 칭찬하였다. 그의 문학이 유림의 으뜸이 되고 평생을 순실(純實)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착한 덕량(德量)이 세상에 드날리고 매양 사람을 대함에 충성으로 가르쳐 상하가 즐거이 복종하고 천문 지리와 음양 복서(卜筮)를 크게 통하여 많은 선비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조정이 무겁게 존대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었다. 겸손하고 단정하여 영달을 일삼지 않았고, 또 벼슬길에서 일을 처리함에 평탄하면서 언덕진 일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명성과 공적이 들레었고, 외직으로 여섯 고을을 맡아 다스리면서 형벌을 쓰지 않아도 일마다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곳곳마다 덕을 칭송하는 일이 많았다.(韓國人名辭典, 族譜, 浣潭誌 1992)
정난손(鄭蘭孫) : 본관(本貫) 동래(東萊), 자(字) 백춘(伯春)/ 이력(履歷)/ 정난손(鄭蘭孫) 14世./ 자(字)는 백춘(伯春) 진주 목사(晋州牧使) 사(賜)의 아들, 조선 때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정난손(鄭蘭孫), 관직 :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 관직 :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래(東萊) 정씨(鄭氏) 역대 주요 인물(人物)/ ▲조선조/ 정란손(鄭蘭孫) (집의(執義))// 자(子) 정광국(鄭光國) 15世. : 자(字)는 언충(彦忠) 목사(牧使) 난손(蘭孫)의 아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예조참판(禮曹參判)를 지냈다.(daum 2010)
정난손 :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역임한 김응남(金應南)이 전서를 썼다. 노익(1475~1546)의 자는 공염(公琰)으로 외조부인 목사(牧使) 정난손(鄭蘭孫)의 집에서 길러졌다. 천거를 받아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에 보임(補任)되었으며 참군으로 전보되었다가 감찰로.../ gsm.nricp.go.kr(daum 2010)
정난손 : 정광세(鄭光世)/ ...判書) [가족사항]자(子) : 정충량(鄭忠樑) 숙(叔) : 정난종(鄭蘭宗) 형(兄) : 정광국(鄭光國) 부(父) : 정난손(鄭蘭孫) 조부(祖父) : 정사(鄭賜) 증조부(曾祖父) : 정귀령(鄭龜齡) 외조부(外祖父) : 노섭(盧攝) 처부(妻父) : 배조.../ koreandb.nate.com(daum 2010)
정난손 : 東萊鄭氏家乘/ 知敦寧府事 鄭廣成, 禮曹參判 鄭萬和, 兵曹佐郞 鄭載海, 黃海道觀察使 鄭是先, 第2冊:禮部尙書 鄭沆, 兵曹判書 鄭蘭孫, 昌原府使 鄭光輔, 安山郡守 鄭光佐, 主簿 鄭勞謙, 吏曹參判 鄭廣敬, 領議政 鄭太和, 左議政 鄭致和, 左議政../ kjg.snu.ac.kr(daum 2010)
정난손 : 고대인물/ 작년, 2009년 12월 17일/ ...(鄭期遠) 정기일 (鄭基一) 정기직 (鄭基直.1) 정기직 (鄭基稷.2) 정기춘 (鄭基春) 정기회 (鄭基會) 정난손 (鄭蘭孫) 정난종 (鄭蘭宗) 정달서 (鄭達恕) 정대년 (鄭大年) 정대업 (鄭大業) 정대용 (鄭大容) 정동간 (鄭東幹) 정동관.../ cafe.daum.net/whisa/ 동래정씨 직제학공파 종중(daum 2010)
정난손 : 동래정씨의 파조/ 7달전, 2010년 3월 1일 (월)/ ...정 부(鄭 符), 참의공파(參議公派)의 파조는 정 절(鄭 節). 첨사공파는, 집의공파(執義公派)의 파조는 정난손(鄭蘭孫), 익헌공파(翼憲公派)의 파조는 정난종(鄭蘭宗),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는 정 섬(鄭 暹), 녹사공파.../ cafe.daum.net/saamgong/ 동래정씨사암공파(daum 2010)
---
*예천읍 고평리 출신 김완일, 19일 한국세무사고시회장 당선 취임...축하합니다.
김완일(김완일 氏 ‘韓國稅務士考試會長 當選 就任’) [記事] :
예천읍 고평리 태생의 김완일(경영학박사·김주일 예천군정책자문위원장 동생) 세무사가 2010년 11월 19일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에 당선되어 취임하였다. 한국세무사고시회는 세무사고시에 합격한 6,400여 명의 세무사로 구성된 단체로 세무사제도 발전과 납세자 권리보호를 위해 1972년 창설된 전통있는 단체이다.
김완일 세무사는 제20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세무사제도의 발전과 납세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열정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세무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세무법인 가나를 운영하고 있으며, 재경예천군민회 감사와 정심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예천 발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김완일 회장 : 예천초등(56회), 예천중(20회), 한양대 졸업,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세법학회 부회장, 부인은 안경희(예천여중, 예천여고 졸업)이다.(醴泉新聞 2010.11.25)
---
정난손(鄭蘭孫) : 1424(세종 6)-1500(연산군 6),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室, 浦內) 삼수정(三樹亭) 곁 출신, 자는 백춘(伯春), 본관은 동래, 직제학 사(直提學賜)의 장자, 난종(蘭宗)의 형이다. 천품이 뛰어나고 심정(心情)이 보통 사람과 달라 일찍이 가정에서 가르침을 받아 예(禮), 악(樂), 사(史), 어(語), 서(書), 수(數)에 익숙했다. 약관에 서울로 올라가 아버지를 모시고 이름난 선비들과 사귀니 글이 크게 진보되어 큰선비라 이르더니, 1450년(세종 32) 성균관 생원시(成均館生員試)에 합격하였으나 진취(進取)할 뜻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 성리학을 전공하여 명망(名望)이 더욱 빛나는지라, 조정에서 서로 추천하여 세조의 특채로 뽑혀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 1457), 집현전 저작(集賢殿 著作), 박사(博士)와 수찬관(修撰官)을 겸하여 여러 해 있다가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로 옮기고 경주 판관(慶州判官)을 지나서 양산 군수(梁山郡守), 금산 현령(金山縣令)이 되어 백성들을 어진 풍속으로 교화(敎化)했다. 이어 내직(內職)으로 내자시 첨정(內資寺僉正), 사섬시 부정(司贍寺副正), 사복시 정(司僕寺正)으로 승진하고 그 청렴결백(淸廉潔白) 정직함이 알려져 성종 때에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을 제수했다.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로 승진하여 법대로 사사(私事)로움 없이 법망을 엄숙히 밝혔고, 파주 목사(坡州牧使),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로 지극히 다스려 백성들이 돌비(碑)를 세워 송덕했다. 이어 사도시 정(司도寺正), 사의원 정(司衣院 正)을 지냈다. 성종이 승하(1494)하여 능산 역사(陵山役事)를 감독한 공로로 다시 당상(堂上)에 승진되어 오위도총부 오위장(五衛都摠部五衛將), 동 부총관(副摠官), 원주 목사(原州牧使, 149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우림위장(羽林衛將, 正2品)을 겸하였다. 그러나 곧 사양하고 물러나왔다. 연산군이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1457년(세조 3) 신숙주(申叔舟)가 "정난손은 문학이 고명(高名)하고, 또 사람됨이 온량 단정(溫良端正)하여 유림(儒林)의 스승이니, 집현전(集賢殿)의 벼슬로 돕게 함이 옳다."라고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 또한 이름을 들었도다."라고 하더니, 임금이 사정전(思政殿)에서 강론을 들을 때 그가 <주역(周易)>의 이치를 강론함이 밝고 통달하여 <주역> 한 질과 궁내의 술을 내리고 칭찬하였다. 그의 문학이 유림의 으뜸이 되고 평생을 순실(純實)로 근본을 돈독히 하고 착한 덕량(德量)이 세상에 드날리고 매양 사람을 대함에 충성으로 가르쳐 상하가 즐거이 복종하고 천문 지리와 음양 복서(卜筮)를 크게 통하여 많은 선비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조정이 무겁게 존대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증직되었다. 겸손하고 단정하여 영달을 일삼지 않았고, 또 벼슬길에서 일을 처리함에 평탄하면서 언덕진 일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명성과 공적이 들레었고, 외직으로 여섯 고을을 맡아 다스리면서 형벌을 쓰지 않아도 일마다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곳곳마다 덕을 칭송하는 일이 많았다.(韓國人名辭典, 族譜, 浣潭誌 1992)
정난손(鄭蘭孫) : 본관(本貫) 동래(東萊), 자(字) 백춘(伯春)/ 이력(履歷)/ 정난손(鄭蘭孫) 14世./ 자(字)는 백춘(伯春) 진주 목사(晋州牧使) 사(賜)의 아들, 조선 때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정난손(鄭蘭孫), 관직 :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 관직 :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래(東萊) 정씨(鄭氏) 역대 주요 인물(人物)/ ▲조선조/ 정란손(鄭蘭孫) (집의(執義))// 자(子) 정광국(鄭光國) 15世. : 자(字)는 언충(彦忠) 목사(牧使) 난손(蘭孫)의 아들. 1489년(성종 2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예조참판(禮曹參判)를 지냈다.(daum 2010)
정난손 :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역임한 김응남(金應南)이 전서를 썼다. 노익(1475~1546)의 자는 공염(公琰)으로 외조부인 목사(牧使) 정난손(鄭蘭孫)의 집에서 길러졌다. 천거를 받아 상의원별제(尙衣院別提)에 보임(補任)되었으며 참군으로 전보되었다가 감찰로.../ gsm.nricp.go.kr(daum 2010)
정난손 : 정광세(鄭光世)/ ...判書) [가족사항]자(子) : 정충량(鄭忠樑) 숙(叔) : 정난종(鄭蘭宗) 형(兄) : 정광국(鄭光國) 부(父) : 정난손(鄭蘭孫) 조부(祖父) : 정사(鄭賜) 증조부(曾祖父) : 정귀령(鄭龜齡) 외조부(外祖父) : 노섭(盧攝) 처부(妻父) : 배조.../ koreandb.nate.com(daum 2010)
정난손 : 東萊鄭氏家乘/ 知敦寧府事 鄭廣成, 禮曹參判 鄭萬和, 兵曹佐郞 鄭載海, 黃海道觀察使 鄭是先, 第2冊:禮部尙書 鄭沆, 兵曹判書 鄭蘭孫, 昌原府使 鄭光輔, 安山郡守 鄭光佐, 主簿 鄭勞謙, 吏曹參判 鄭廣敬, 領議政 鄭太和, 左議政 鄭致和, 左議政../ kjg.snu.ac.kr(daum 2010)
정난손 : 고대인물/ 작년, 2009년 12월 17일/ ...(鄭期遠) 정기일 (鄭基一) 정기직 (鄭基直.1) 정기직 (鄭基稷.2) 정기춘 (鄭基春) 정기회 (鄭基會) 정난손 (鄭蘭孫) 정난종 (鄭蘭宗) 정달서 (鄭達恕) 정대년 (鄭大年) 정대업 (鄭大業) 정대용 (鄭大容) 정동간 (鄭東幹) 정동관.../ cafe.daum.net/whisa/ 동래정씨 직제학공파 종중(daum 2010)
정난손 : 동래정씨의 파조/ 7달전, 2010년 3월 1일 (월)/ ...정 부(鄭 符), 참의공파(參議公派)의 파조는 정 절(鄭 節). 첨사공파는, 집의공파(執義公派)의 파조는 정난손(鄭蘭孫), 익헌공파(翼憲公派)의 파조는 정난종(鄭蘭宗),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는 정 섬(鄭 暹), 녹사공파.../ cafe.daum.net/saamgong/ 동래정씨사암공파(daum 2010)
---
*예천읍 고평리 출신 김완일, 19일 한국세무사고시회장 당선 취임...축하합니다.
김완일(김완일 氏 ‘韓國稅務士考試會長 當選 就任’) [記事] :
예천읍 고평리 태생의 김완일(경영학박사·김주일 예천군정책자문위원장 동생) 세무사가 2010년 11월 19일 한국세무사고시회 회장에 당선되어 취임하였다. 한국세무사고시회는 세무사고시에 합격한 6,400여 명의 세무사로 구성된 단체로 세무사제도 발전과 납세자 권리보호를 위해 1972년 창설된 전통있는 단체이다.
김완일 세무사는 제20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세무사제도의 발전과 납세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하여 열정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세무사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세무법인 가나를 운영하고 있으며, 재경예천군민회 감사와 정심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예천 발전을 위해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김완일 회장 : 예천초등(56회), 예천중(20회), 한양대 졸업, 한양대학교 행정자치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세법학회 부회장, 부인은 안경희(예천여중, 예천여고 졸업)이다.(醴泉新聞 2010.11.25)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