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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400:손병덕社長
작성자장병창 @ 2010.12.08 06:15:54
  예천의 자랑(2400) : 예천 출신 손병덕 독일 한국방송국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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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덕 : 1948- , 예천 출신, 영남대 체육학과 졸업, 강원도 영월군 상동탄광에서 탄광을 경영하던 중 77년 해외 진출을 위해 독일에 광부로 취업, 맨손으로 고국을 떠났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딘스라켄탄광에서 6개월을 일한 후 프랑크푸르트로 이주, 식당을 개업했으나 한국이라는 나라조차도 모르는 독일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는 역부족이어서 초창기에는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손씨의 식당이 예절바른 서비스, 정갈한 한국 고유 음식으로 서서히 유명해지면서 독일인 단골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김치의 매운 맛에 혼나 다시는 찾지 않을 듯이 식당에서 도망쳤던 사람들도 결국 독특한 맛에 끌려 다시 찾아왔다. 손씨는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84년 식당을 처분하고 의료 기기 무역에 손을 댔으나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개업한 식당도 화재로 한 순간에 잃고 빈 털털이가 된 손씨는 91년부터 청소 용역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20여 명의 직원과 함께 13개 빌딩의 청소를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1994년 3월 1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한국방송국(KDBS) 현판식을 갖는다. 그리고 동년 7월 1일 첫 전파를 쏘아올릴 KDBS는 프랑스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유럽 전역과 북부 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를 시청권으로 묶어 오후 5시 반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매일 8시간씩 한국어 프로그램을 방영할 계획이다. 손씨는 내년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8개국에 2만여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계속해서 폴란드, 체코 등 동구권을 포함해 유럽의 5만여 한국 교민 모두에게 찾아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서울방송(SBS) 등과 프로그램 사용 계약을 맺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다.(世界日報 1994.2.27)

  손병덕(異國 生活 17年… 自手成家한 派獨 鑛夫) [記事] : ◎유럽 첫「한국어TV방송」세운다/ 손병덕 씨 내달 프랑크푸르트서 현판식/ 7월 1일 첫 전파 발사/ 불 위성 통해 8개국 교민들에 8시간씩 방영/ 국내 TV 3사와 프로그램 계약 위해 분주/ꡒ2세들에 값진 선물… 흑자나면 전액 교민 복지 사용ꡓ// 파독 광부가 17년만에 실업가로 자수성가, 유럽 최초의 한국어 위성TV방송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77년 광부로 파독된 후 태권도도장, 식당, 커피숍, 청소용역회사 등을 운영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교포 손병덕 씨(46)가 3월 1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한국방송국(KDBS) 현판식을 갖는다. 프랑크푸르트 수미트가 12에 들어서게 될 420평 규모의 방송국 건물에는 현재 각종 첨단장비가 설치되고 있으며 1994년 7월까지 모두 6백만 마르크(한화 약30억 원)가 투자될 예정이다. 1994년 7월 1일 첫 전파를 쏘아올릴 KDBS는 프랑스의 인공위성을 이용해 유럽 전역과 북부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를 시청권으로 묶어 오후 5시 반부터 이튿날 새벽 1시 반까지 매일 8시간씩 한국어 프로그램을 방영할 계획이다. 손씨는 1995년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8개국에 2만여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계속해서 폴란드, 체코 등 동구권을 포함해 유럽의 5만여 한국 교민 모두에게 찾아간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 서울방송(SBS) 등과 프로그램 사용 계약을 맺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는 손씨는,『한국어 위성방송은 교포들이 30년 파독 기간 중 2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라고 뿌듯해 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신일청소용역회사를 운영하는 손씨가 한국어 방송국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것은 지난 84년. 생활 수준은 물론, 교민수도 비슷한 재독 일본교민들이 1984년 봄부터 자국어 방송을 시작하고 중국 교민들도 91년부터 BBC채널을 빌어 심야중국어방송을 내보냈다. 터키 교민들은 방송채널을 7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30년 전 광부와 간호사의 진출로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린 한국 교민들이 고국의 소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닫혀 있었다. 교포 2세들이 한국의 말과 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매주 토요일에 3시간씩 열리는 한글학교가 고작인데다 그나마 한국어 교재조차 넉넉하지 않은 실정. 일본어 방송을 지켜본 손씨는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모르는 2세들의 현실과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한국어 방송사업에 여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손씨는 영남대 체육학과를 졸업, 강원도 영월군 상동탄광에서 탄광을 경영하던 중 77년 해외 진출을 위해 독일에 광부로 취업, 맨손으로 고국을 떠났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딘스라켄 탄광에서 6개월을 일한 후 프랑크푸르트로 이주, 식당을 개업했으나 한국이라는 나라조차도 모르는 독일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는 역부족이어서 초창기에는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손씨의 식당이 △예절바른 서비스 △정갈한 한국 고유 음식으로 서서히 유명해지면서 독일인 단골 고객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김치의 매운맛에 혼나 다시는 찾지 않을 듯이 식당에서 도망쳤던 사람들도 결국 그 독특한 맛에 끌려 다시 찾아왔다. 손씨는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84년 식당을 처분하고 의료기기 무역에 손을 댔으나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개업한 식당도 화재로 한 순간에 잃고 빈털털이가 된 손씨는 91년부터 청소 용역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20여 명의 직원과 함께 13개 빌딩의 청소를 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현지 잡역부로 고용된 터키, 유고, 폴란드인들의 어려운 생활을 볼 때마다 교포 1세들의 과거가 떠오릅니다. 2세들에게는 우리의 재산과 함께 한국의 정신까지도 물려줘야 합니다』 80년 독일 유학생 이정은 씨(42)와 결혼, 두 딸을 두고 있는 손씨는,『방송국 운영이 흑자로 돌아서면 수익금 전액을 교민 복지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겠다』며,『고국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조진태 記者 世界日報 199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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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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