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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414:정난무府使
작성자장병창 @ 2010.12.22 06:15:39
  예천의 자랑(2414) : 용문면 성현리 입향조 정난무 밀양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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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난무(鄭蘭茂) : 1438(세종 20)-1501(연산군 7), 용문면 성현리 복전(福田) 동래 정씨 입향조, 자는 의수(猗叟), 본관은 동래, 예문관직제학 사(賜)의 5자, 감찰 권유손(權幼孫, 本貫 醴泉)의 사위이다. 1465년(세조 10)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음사로 벼슬에 나아갔다가 1480년(성종 11) 1월 20일 장례원 사의(掌隷院司議)를 이임하였고, 그 후 벼슬이 밀양 부사에까지 이르렀다. 풍양면 청곡리 별실(別室)에서 성현리 복전리(福田里)로 옮겨 살았다. 묘는 예천읍 생천리 제동(堤洞)에 있는데, 묘비가 있다.(成宗實錄, 襄陽誌 1661, 醴泉郡誌 1939)

  정난무 : 성현리 유래/ Daum 카페 | 2년전, 2008년 6월 25일/ 고려 때 복천사가 이곳에 있었는데, 우물이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서 복천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 東萊人 鄭蘭茂(1438∼1501 密陽府使)가 이곳에 와서 세거하다가 떠가갈 무렵, 1601년(선조 36)에 羅州人 丁允祐(1539∼1605 監.../ cafe.daum.net/yongmun13/ | 용문중13회 동기모임(daum 2010)

  성현리 : 省峴里 유래| 용문면 역사탐험/ 최상원 | 2008.06.25. 14:42/ http://cafe.daum.net/ 성 현 리 : 고려 때 예천인 昕慶이 이곳 휴구곡으로 와서 세거하다가 고려 충목왕 때 그의 손자인 昕暹(禮賓省卿)의 성이 왕의 이름과 같다고 하여 예천 권씨로 賜姓되기도 하였다. 고려 때 복천사가 이곳에 있었는데, 우물이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서 복천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 東萊人 鄭蘭茂(1438∼1501 密陽府使)가 이곳에 와서 세거하다가 떠가갈 무렵, 1601년(선조 36)에 羅州人 丁允祐(1539∼1605 監司)가 이곳에 와서 후손이 世居하고 있다. 한편 1580년경 淸州人 韓漂가 성암을 개척하였다. 본래 예천군 휴구곡면의 면소재지 지역인데, 1913년에 제고면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페합에 따라 성암동, 와현동, 중리동, 복천동, 신리동(일부)을 병합하여 성암과 와현의 이름을 따서 용문면 성현동이라 하였다. 1988년에 성현리로 개칭되었다.

  ♦복천(福泉, 福田) : 성현리에서 두 번째 생긴 마늘이다. 왜고개 북쪽에 있다. 고려 때 복천사가 있었고 鄭蘭茂, 丁允祐가 차례로 개척한 마을이다.

  ♦중리(重里, 중마, 지우실, 제우실, 제고곡, 휴구곡) : 성현리에서 제일 먼저 생겼고 제일 큰 마을로, 휴구곡면(제고면)의 소재지여서 중리라고 한다. 휴구곡면(지우실)은 성현, 덕신, 방송, 노사, 구계, 죽림, 직리이었고, 제고면은 휴구곡면과 유리면(두천, 사부, 내지, 원류)을 합친 것이다.

  ♦성암(省岩, 생암, 川) : 왜고개 동쪽에 있는 마을로, 용문천 안쪽이 된다. 마을 앞길에 큰 바위가 있어 다니기에 불편하므로 살피고 다니라는 뜻에서 성암이라 했다고 한다. 1580년경 韓漂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상시 마을 가운데 냇물이 흘러서 천내라 하였다 한다.

  ♦와현(瓦峴, 왜고개, 애고개) : 중마 동쪽, 왜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어느 며느리가 시어미에게 쫓겨나 아이를 업고 떠나 가다가 이곳에서 죽었다 하여 애고개라 하고, 기와 공장이 있었다.

   ♦병암정(屛岩亭,玉墅亭) : 정자들 동쪽에 있는 정자로, 병풍처럼 생진 큰 바위 위에 있는데, 뒤에는 푸른 산이 솟아 있고, 앞에는 큰 들과 용문천이 있으며, 밑에는 연못이 있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처음에 李裕寅이 세우고 옥서정이라 하였는데, 예천권씨가 사서 병암정이라 고쳤다 한다.

   ♦柳葉盃家(유엽배집) : 복천에 있는 정씨의 집인데, 丁允祐가 明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明 神宗이 그 영특함을 칭찬하고 유엽배 6개를 하사하여, 가보로 전해 내려오는데, 일제 때에 일본인이 그 중 1개를 가져갔다 한다.

  ♦성현리 고분(省峴里 古墳) : 상금곡리 건너 덕신으로 가는 길옆에 마치 작은 산처럼 자리잡고 있는 이 고분은 도굴되지 않은 완형고분이다. 외형은 토적분으로 높이가 7m나 되고, 지름이 16×20m인데, 부족국가 시대의 상당한 호족의 무덤인 것 같다.

  ♦지석묘(支石墓) : 성현리 고분에서 북쪽 50m 논 가운데 2기가 있다. 청동기 시대의 것이다.

  ♦어사대(御史臺) : 복천 서남쪽에 있는 臺로서, 둥글게 생겼는데, 선조 때 監司 丁允祐와 그 조카 好讓, 好恕가 경차관이나 혹은 어사가 되어서 함께 이곳에 모여서 놀았다 한다.

  ♦삼괴정터(三塊亭址) : 복천 서북쪽 냇가에 있는 터이다. 더미가 셋이 있는데, 흙으로 된 둘은 들 가운데 있고, 돌로 된 하나는 냇가에 있어서 마치 삼태성처럼 되었다. 돌더미 위에 정자를 짓고 삼괴정이라 하였는데, 장마에 떠내려가서 그 터만 남아 있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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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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