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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453:안병걸辯護士(祝16전비.최춘서)
작성자장병창 @ 2011.01.30 06:20:49
  예천의 자랑(2453) : 보문면 우래리 출신 안병걸 변호사(附 공군 제16전투비행단, 2년 연속 안전 최우수부대 선정...축하합니다/예천읍 갈구리 출신 최춘서, 건축학 박사학위 취득...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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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걸(安炳杰) : 1966-, 보문면 우래리 514번지 출신, 본관은 순흥, 세영(世榮)의 차남, 서울시립대 법학과 졸업, 2002년 사법고시에 43회로 합격하였다. 부인 남점순(南占順, 1969- )은 서울시립대 졸업으로 98년 행정고시 42회로 합격였는데, 중학교 영어교사, 여성부 근무이다. 맏형 병윤(1963- )은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으로 95년에 행정고시 39회로 합격하여 행정지치부에 근무하고 있고, 막내 매부 서정배(徐正培, 1969- )도 서울시립대 졸업으로 92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통일부에 근무하고 있다.(每日新聞 2002.1.9, 醴泉新聞 2002.1.10, 東亞日報 2002.1.10, 醴泉鄕校誌 2004)

  안병걸(안병걸 辯護士, 社會的 弱者의 便에 서서 薰薰한 感動 선사) [記事] : [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이다. 오는 4월 25일은 법의 존엄성을 진작하기 위해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법의 날’이다. 법의 생활화 운동에 헌신해 법조 사회를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법조인들의 노고로 이 땅에 이만큼의 질서가 유지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질서를 위해 음지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안병걸 변호사(법무법인 아시아 소속)가 있어 찾았다. 법조인에게 어떻게 이 길을 가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으레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혹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안병걸 변호사의 대답은 좀 이채롭다. 법대를 나왔지만 한 번도 심각하게 법조인의 길을 모색하지 않은 그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결혼을 하고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사법고시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안 변호사는 “운명이 자신이 이 길로 인도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경제적 재원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인도 함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등 무모하게만 보이는 인생행로였다. 그러나 그 무모함이 더욱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는지 두 사람 모두 고시에 합격했다. 안 변호사는 “일반인들이 보통 변호사를 좋은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생활은 강한 압박감과 스트레스 등으로 건강을 위협받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승소가 가져다는 주는 쾌감, 특히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어 의뢰인이 석방되는 일이나, 민사 사건에서 승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에서 승소 판결을 받을 때는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면서 이 직업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안 변호사는 “현재 변호사의 주된 업무가 분쟁이 발생한 후에 분쟁을 해결하는 일에 치중돼 있다”면서 “앞으로는 분쟁 예방을 위한 자문 영역으로 활동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분쟁 이전의 예방이 경제적, 심리적 부담감을 덜 수 있으며, 이 사회의 안정과 질서에 있어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안 변호사는 변호사가 갖춰야 할 인품으로 ‘마음의 따뜻함’을 들었다. “변호사란 항상 사회적 약자의 말을 따뜻한 가슴으로 경청하고 이들의 아픔을 씻어주어야 한다”면서 “이들의 아픈 현실에 공감하는 넉넉한 가슴과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 논리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가슴은 따뜻하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건에서 승소를 해 왔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은 2차 납세 의무자 지정과 이에 근거한 조세 부과 사건이었다. 안 변호사는 이 사건을 수임한 후 1년 반 동안 자기 일처럼 자료를 찾고 법리적으로 새롭게 논리를 전개해 조세 부과 처분을 취소한 바 있다. 정부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만 세금은 언제나 국민의 재산권 침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의뢰자가 당한 일이 나와 내 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직접 발로 뛴 덕분에 많은 의뢰자들의 걱정과 시름을 덜어주었다. 현재 정부에서는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쟁력 있는 변호사 양성을 통한 기업의 해외 진출에 이바지한다는 정책 목표를 가지고 사법 제도를 개혁 중에 있으며, 그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인 것 같다. 이에 대해 안 변호사는 “이 제도가 실제 국민의 이익과 복지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쟁점화 되고 있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안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 아시아는 일반 상사, 재건축(재개발 포함), 조세, 파산관재인, 공증 분야에서 강점과 경쟁력이 있다. 자신이 소속된 법무법인에 맞게 안 변호사는 앞으로도 조세소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할 생각이라고 한다. 또한, 이 분야를 자신의 특화된 전문 분야로 해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안 변호사를 통해 친근감 있으면서도 능력 있는 변호사의 참모습을 기대해 본다.(뉴스와이어 2007-04-20 16:56)

  안병걸 : 안병걸 변호사,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훈훈한 감동 선사 - 생활의 지혜, 문서.../ 안병걸 변호사,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훈훈한 감동 선사 [법무법인아시아 2007-04-20 16:56] (서울=뉴스와이어)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이다. 오는 4월.../ http://nizform.com(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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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제16전투비행단, 2년 연속 안전 최우수부대 선정...축하합니다.

  공군 제16전투비행단(空軍 16戰飛 2年 連續 安全 最優秀部隊) [記事] :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은 재작년에 이어 작년 한 해도 공군 안전 최우수부대로 선정됐다고 2011년 1월 29일 밝혔다. 공군은 최근 작년 한해 지상 비행 안전에 기여한 부대를 평가해 제16전투비행단을 최우수부대로 선정했고 3훈련비행단, 38전투비행전대, 8전투비행단 207전투비행대대, 5전투비행단 251전술공수비행대대 등을 우수부대로 뽑았다. 아울러 16전투비행단 216대대 안해원(36.공사45기) 소령 등 6명이 공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았다. 16전투비행단은 작년 10월에 6만 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세우는 등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 등 전후방 요원들의 체계적인 비행 안전관리로 크고 작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선호 제16전투비행단장은 "사고는 반드시 막을 수 있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현장중심의 예방활동을 통해 비행 안전 관리에 가일층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용민 記者 聯合뉴스 2011/01/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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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갈구리 출신 최춘서, 건축학 박사학위 취득...축하합니다.

  최춘서(최춘서 氏 建築學 博士學位(서울市立大 大學院) 取得) [記事]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주)서림에이엔씨 대표이사 최춘서(54·예천읍 갈구리 출생) 씨가 ‘예천 금당실 마을의 형성과 전통주거 연구’ 논문으로 서울시립대 대학원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됐다. 최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특히 용문면 금당실 마을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마을의 공간 구성 형식과 주거 건축에 나타나는 특성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최씨는 논문에서 금당실 마을의 형성 과정을 3단계로 파악했다. 1단계는 개척기로 감천 문씨들이 터를 잡고 마을을 형성한 15세기 동안으로 본격적인 마을 성장이 있기 이전단계, 2단계는 감천 문씨의 사위들인 함양박씨와 원주 변씨들이 정착하면서 동촌과 남촌이 활성화되었던 시기로 마을의 기본 골격이 갖추어진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 3단계는 일제강점기와 외부 인구들이 유입되면서 서촌이 새롭게 조성되어 마을의 범위가 확장된 시기로 파악했다. 최춘서 씨는 “예천은 정의를 위하여 불의에 항거하던 피 끓는 열사정신과 역경 속에서도 민족문화의 꽃을 피우려던 대쪽같은 선비정신이 숨쉬는 고장”이라며 “앞으로 예천지방의 문화적 특성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여 선비정신, 양반마을의 특성을 널리 알리고 연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최씨는 예천동부초등(21회), 예천중(21회), 예천농고(1975년)를 졸업했으며, 건국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재경예천군민회 사무차장을 맡고 있다.(醴泉新聞 2011년 01월 28일 (금) 09: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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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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