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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496:장맹우校理
예천의 자랑(2496) : 호명면 원곡리 출신 장맹우 홍문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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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맹우(張孟羽) : 1470(성종 1)-1511(중종 6), 호명면 원곡리 안질 출신, 자는 익지(翼之), 본관은 인동, 연복군 말손(延福君末孫)의 장자,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1492년(성종 23)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음사(蔭仕)로 의금부 경력(義禁府經歷)을 하다가,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이르렀으나, 세도가 김안로(勢道家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형조 정랑(刑曹正郞),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로 좌천(左遷)되었으나, 다스림과 결단함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며, 간결하고 검소하여 관료들이 다 믿고 따랐다. 타고난 기품이 순박하고 커서 잡됨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로움도 또한 천성이라 부모의 병환에 대변 맛을 보고 병의 경중을 알았고, 형제들이 살림을 날 때는 아우들의 뜻에 따라 재산을 나누었고,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상기(喪期)가 지나도 상복(喪服)을 벗지 않았다. 벼슬길에서도 부지런하고 조심하더니 불행하게도 해주 공관(海州公館)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정암 조광조(靜菴趙光祖)와 매우 친해서 그가 죽자 조광조는 애도시(哀悼詩)를 지어 슬퍼했고, 부인(密陽人 孫蕃의 딸)은 남편이 객지에서 돌아갔음을 슬프게 여겨 밤낮으로 음식도 먹지 않고 애통하다가 시신(屍身)을 안치한 곳의 곁에서 죽었다. 1514년(중종 9) 7월에 세운 묘갈명(墓碣銘)에서 이르기를, "타고난 기품이 순박하고 커서 잡됨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로움도 또한 천성이라 부모의 병환에 대변 맛으로 병의 차도를 알았고, 형제들이 살림을 날 때 아우들의 뜻에 따라 재산을 나누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여 상기(喪期)가 지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벼슬길에서도 부지런하고 조심하더니, 불행하게도 해주 공관(海州公館)에서 병으로 죽으니, 이 때가 1511년(중종 6) 섣달 초열흘이다."하였다. 묘는 호명면 원곡리 호명산 임향(虎鳴山壬向) 언덕 병좌(丙坐)에 함께 장사(葬事)지냈다. 묘비(墓碑)는 1514년(중종 9)에 7월에 세웠다(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86).
[醴泉의 金石文] : 23세에 진사시에 합격, 음사로 경력, 1509년(중종 4)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형조 정랑을 거쳐, 다음해에 황해 도사에 올라 해주 공관에서 죽었다. 묘는 호명면 원곡리 아버지 묘 아래 북향(北向)에 있는데, 묘비문(墓碑文)은 1739년(영조 15) 11월에 7세손 현감 위항(緯恒)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장맹우 : 옛모습 그대로 지닌 인동장씨종택/지난달, 2010년 8월 13일 (금)/ 건축은 조선 초기 선비 장응신(張膺臣)의 옛 집이다. 연복군 장말손(張末孫, 1431~?)의 손자로, 아버지 장맹우(張孟羽, 1470~1511)가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황해 도사로 좌천된 후 갑자기 병사하자 동생 장응필과 함께 영주시.../ cafe.daum.net/cln-daegu/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daum 2010)
장맹우 : 문무(文武)를 겸비한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작년, 2009년 8월 10일/ ...의 증손녀이자 권영신(權永愼)의 딸이다. 자식으로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홍문관 교리를 지낸 장맹우(張孟羽)이며, 2남은 선략장군(宣?將軍) 장중우(張仲羽)이며, 두 딸은 호군(護軍) 박인량(朴寅亮) 및 진사 이정수.../ cafe.daum.net/mundann/ 구선재(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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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맹우(張孟羽) : 1470(성종 1)-1511(중종 6), 호명면 원곡리 안질 출신, 자는 익지(翼之), 본관은 인동, 연복군 말손(延福君末孫)의 장자, 어릴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1492년(성종 23)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음사(蔭仕)로 의금부 경력(義禁府經歷)을 하다가,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이르렀으나, 세도가 김안로(勢道家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형조 정랑(刑曹正郞),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로 좌천(左遷)되었으나, 다스림과 결단함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며, 간결하고 검소하여 관료들이 다 믿고 따랐다. 타고난 기품이 순박하고 커서 잡됨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로움도 또한 천성이라 부모의 병환에 대변 맛을 보고 병의 경중을 알았고, 형제들이 살림을 날 때는 아우들의 뜻에 따라 재산을 나누었고,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상기(喪期)가 지나도 상복(喪服)을 벗지 않았다. 벼슬길에서도 부지런하고 조심하더니 불행하게도 해주 공관(海州公館)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정암 조광조(靜菴趙光祖)와 매우 친해서 그가 죽자 조광조는 애도시(哀悼詩)를 지어 슬퍼했고, 부인(密陽人 孫蕃의 딸)은 남편이 객지에서 돌아갔음을 슬프게 여겨 밤낮으로 음식도 먹지 않고 애통하다가 시신(屍身)을 안치한 곳의 곁에서 죽었다. 1514년(중종 9) 7월에 세운 묘갈명(墓碣銘)에서 이르기를, "타고난 기품이 순박하고 커서 잡됨이 없었고, 효도하고 우애로움도 또한 천성이라 부모의 병환에 대변 맛으로 병의 차도를 알았고, 형제들이 살림을 날 때 아우들의 뜻에 따라 재산을 나누었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여 상기(喪期)가 지나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벼슬길에서도 부지런하고 조심하더니, 불행하게도 해주 공관(海州公館)에서 병으로 죽으니, 이 때가 1511년(중종 6) 섣달 초열흘이다."하였다. 묘는 호명면 원곡리 호명산 임향(虎鳴山壬向) 언덕 병좌(丙坐)에 함께 장사(葬事)지냈다. 묘비(墓碑)는 1514년(중종 9)에 7월에 세웠다(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86).
[醴泉의 金石文] : 23세에 진사시에 합격, 음사로 경력, 1509년(중종 4)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형조 정랑을 거쳐, 다음해에 황해 도사에 올라 해주 공관에서 죽었다. 묘는 호명면 원곡리 아버지 묘 아래 북향(北向)에 있는데, 묘비문(墓碑文)은 1739년(영조 15) 11월에 7세손 현감 위항(緯恒)이 지었다.(醴泉의 金石文 2003)
장맹우 : 옛모습 그대로 지닌 인동장씨종택/지난달, 2010년 8월 13일 (금)/ 건축은 조선 초기 선비 장응신(張膺臣)의 옛 집이다. 연복군 장말손(張末孫, 1431~?)의 손자로, 아버지 장맹우(張孟羽, 1470~1511)가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황해 도사로 좌천된 후 갑자기 병사하자 동생 장응필과 함께 영주시.../ cafe.daum.net/cln-daegu/ 대구문학신문 - 시야 시야(daum 2010)
장맹우 : 문무(文武)를 겸비한 송설헌(松雪軒) 장말손(張末孫)/ 작년, 2009년 8월 10일/ ...의 증손녀이자 권영신(權永愼)의 딸이다. 자식으로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홍문관 교리를 지낸 장맹우(張孟羽)이며, 2남은 선략장군(宣?將軍) 장중우(張仲羽)이며, 두 딸은 호군(護軍) 박인량(朴寅亮) 및 진사 이정수.../ cafe.daum.net/mundann/ 구선재(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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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