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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故 이상철 선생을 기리며...
작성자한재영 @ 2011.04.11 15:15:44


故 이상철 선생을 기리며...


오늘 故 이상철 선생의 49제가 문경 동로면 천주사에서 열렸습니다.
고인의 부음(訃音)을 늦게 접한 터라 상청(喪聽)을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죄송스러웠으나 49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나마 마음을 가다듬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천주사에서 49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고인의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매우 무거웠습니다. 고인께서는 평소 큰 일을 앞두거나 번잡한 마음을 추스를 때면 천주사를 홀로 찾곤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천주산은 높고 가파른데 아스라이 한 절이 둥지 틀듯 드높은 절벽에 들어앉아 사뭇 비장함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 경내를 거닐며 그 분이 필히 굽어 바라보았을 광대한 산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백두대간에서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능선들을 바라보며 고인께서 평소 이 절을 찾은 뜻을 구해 보았으나 오히려 처연(凄然)하고 망연(茫然)하여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글을 지어 남기는 것이 슬픔에 슬픔을 더하는 것이라 몇 번이고 망설인 끝에 고인을 위해 이 덧없는 글을 올리게 되었으니 그 분을 사랑하시던 많은 분들께 더없이 송구할 따름입니다.

예천 땅에서 고인을 처음 뵙기로는 10년이 모자라지만, 그간에 정이 두터워 저를 이곳 예천으로 귀농, 인도하심이 지극하였습니다. 귀농 후에도 선생의 공사(公事)가 분망(奔忙)하니 자주 뵙지는 못하였으나, 선생의 맑은 품성과 깊은 덕성으로 늘 흠모하는 바가 많아 대하는 마음이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선생의 부음을 뒤늦게 처음 들었을 때, 그 경악(驚愕)과 큰 슬픔이야 어찌 저만의 것이었겠습니까. 믿을 수 없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연유를 알아보는 중에 마음이 크게 놀라고 정신이 혼미하여 몇 날을 일손을 놓고 망연히 삭막한 들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제 안사람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날 몇일을 생각해도 마음이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습니까. 땅에 기대어 사는 미약한 우리에게 하늘의 뜻이 어찌 이리 가혹하며 모질 수가 있는 것인지 넋 놓고 앉은 마음이 늘 울적하고 때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므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고인의 사모님과 그 자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안쓰러워 한숨이 쌓이고 마음이 산란(散亂)하니 집착을 끊으라(無苦集滅道)는 반야(般若)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은 듯합니다.

가신지 수십 일이 지났으나 바쁜 봄밭에서 일에 몰두(沒頭)하는 요즘에도 문득 고인의 얼굴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언제나 빙긋하거나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어서 오히려 제가 위안을 받곤 합니다. 늘 선하게 미소짓는 모습만 보아온 터라 다른 얼굴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 미소가 그 분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소의 선업(善業)을 쌓았으니 그것이 유가(儒家)의 덕(德)이요, 기가(基家)의 사랑일 것인데 도가(道家)의 초연(超然)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올바로 기억하건대 선생은 공무(公務)에 헌신함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한 회식자리에서 선생은 “저는 늘 휴대폰을 24시간 켜놓고 있습니다. 농민이 부르면 새벽 2,3시라도 언제나 달려갑니다. 언제든지 위급한 일이 있으면 한밤중이라도 좋으니 꼭 연락을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농민에 대한 그 분의 지극한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감동하는 바가 많아 예천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작년 예천군민제전 농산물축제에서 선생은 ‘우리음식 및 생활문화 전시체험관’을 기획했었는데 기획 예산의 그 운용 상황을 알아보고는 매우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그만한 기획전 성과를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제 직업적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으로서 기획과 추진력이 탁월한 분이었습니다.

故 이상철 선생을 추모하며 회고함이 더욱 간절한 것은 그 적덕(積德)에 연유한 것이라 이 예천 땅 어느 곳인들 그 분의 따스한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터인데 그 돌봄이 어찌 사람에게만 이루었다 하겠습니까. 산천초목에 두루 베풀어 생명을 기르고 보살펴 농사짓는 이들은 물론이요 뭇생명이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었으니 예천의 만물이 그 풍요함을 덕으로 누려온 것이라 그 분을 잃은 슬픔이 사람에게만 있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나는 이마다 어두운 얼굴로 슬퍼하니 그 애석해함이 너무 커 예전 같지 않으므로 그 분의 적덕을 헤아리는 이유입니다. 49제를 맞아 주지스님의 설법에 인연으로 와서 인연으로 간다고 하니 천주산 등성이의 푸른 솔 끝이거나 그 아래 굽어보시던 산맥의 어느 한 자락 끝에 머무는 야매(野梅)로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뭇생명이 소생하여 온 들을 푸르게 뒤덮고 있는 요즘, 피어나는 꽃마다 그 분의 환한 미소가 가득하니 덧없음을 잠시 잊고 다시 그리워하게 됨은 우리 모두의 상정(常情)입니다.
오늘의 49제는 불가(佛家)에서 전하기를 이승의 마지막 날이라 하지만은 오늘 오히려 만해(卍海) 선사(禪師)의 ‘님의 침묵’의 마지막 시귀(詩句)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2011년 4월 10일

                                             예천군 하리면 금곡리   한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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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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