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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537:전백옥僉使(祝황영태)
작성자장병창 @ 2011.04.24 06:09:04
  예천의 자랑(2537) : 감천 출신 전백옥 동관첨사(附 호명면 황영태, 17일 탁구 도대회 남자개인전 우승...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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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백옥(全伯玉) : ?-1605(선조 38), 감천현(甘泉縣) 출신, 본관은 감천, 시조 언(彦, 甘泉君)의 후손, 1598년(선조 31) 7월 6일 전라병사(全羅兵使) 이광악(李光岳)이 왕에게 치계(馳啓)하기를, "보성군수(寶城郡守) 전백옥은 8일의 전투에서 적을 벤 공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1599년(선조 32) 윤 4월 6일 보성 군수를 이임하였고, 1605년(선조 38) 3월 22일에는 동관 첨사(潼關僉使)로서 비변사(備邊司)의 탄핵을 받았는데, 그 이튿날 지중추부사 노직(盧稷)이 왕에게 아뢰기를, "동관첨사 전백옥은 신(臣)이 일찍이 1603년(선조 36) 가을에 병조 판서로 있을 때 뽑아보낸 자입니다. 그 때에는 홀적(忽賊, 忽刺溫 女眞族)의 변고가 있었는데, 동관은 가장 먼저 적병의 침입을 받은 지역이었습니다. 첨사가 마침 체직되었으므로 선발하여 보내려고 하였으나,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전백옥이 활쏘고 말타는 솜씨가 뛰어나며 일찍이 회령 판관(會寧判官)이 되었을 때에 임무를 매우 신중히 처리했을 뿐 아니라 위명(偉名) 또한 오랑캐들이 두려워한다고 들었으며, 또 시재(試才)할 때에도 육냥전(六兩箭)을 40보(步)에 쏘았으므로 장건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이에 사람들과 의논하니, 모두들 이 직임에 제수할 만하다고 하였으므로 십분 신중히 하여 뽑았습니다. 이제 본인이 죽었으니 형벌을 베풀 곳이 없으나 국사를 망친 자는 신입니다."라고 하였다. 동년 3월 27일에는 비변사가 왕에게 아뢰기를, "전백옥의 시신이 성중에 있어 장사지내고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동년 4월 29일 함경 안문어사(咸鏡按問御史) 이정험이 왕에게 치계(馳啓)하기를, "동관이 함락 당하기 하루 전에 첨사 전백옥이 종성(鍾城)의 군관(軍官) 마응두(馬應斗)와 더불어 활쏘기 연습을 하고 술을 마시는데, 3경에 번호가 나와 홀적의 대군이 쳐들어온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첨사는 즉시 서문(西門)으로 나가 앉아서 성안 사람들로 하여금 성책에 죽 벌여 서있게 하던 차에 번호들이 온 가족을 데리고와 성안으로 들어와 피란하고 싶다고 말하니, 첨사가 바로 명을 내려 성문을 열어주면서 들어오게 하여 성안의 군사와 함께 죽 벌여 서서 변란에 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과연 적호가 무수히 강을 건너와 먼동이 틀 무렵부터 성을 포위하고 서로 한참 동안 싸운 뒤에 적의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져 성 위 사람들이 당해 내지 못하니, 적들이 가다란 사닥다리를 여기 저기 세우고 동서쪽으로부터 성을 넘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토병들이 모두 첨사가 있는 서문쪽으로 모여 한참동안 육박전을 벌이던 중에 첨사가 이마에 화살을 맞고 배에는 칼날을 맞아 서문 밑에서 죽으니, 적들이 활시위를 당겨 항전한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쓰러진 시체가 즐비하고 유혈이 땅바닥에 가득하였으며, 번호의 추장 홍이(洪耳)와 소대(所大) 및 잡호(雜胡)들도 머리를 맞대고 어지럽게 널린 시체 속에서 횡사했습니다. 첨사가 힘껏 싸웠던 상황과 향호의 향배에 대한 것을 이에 의거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향호가 홀적을 끌여들였다면 어찌 칼날에 죽을 리가 있겠습니까? 적이 물러간 뒤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점검해 보니, 거의 20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종성부사 고경민(高敬民)이 자기의 죄를 모면하고자 전적으로 전백옥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워 많은 말로 장황하게 거짓 보고하였으니, 지극히 통분합니다. 신이 동관의 성안을 두루 돌아보니 여염(閭閻)은 모조리 불타버리고 살아남은 토착민은 노약자만 통들어 겨우 10여 명이었습니다. 서문의 성벽 및 성 아래 근처에는 싸우면서 흘린 피가 낭자하여 악취가 나고 보기에 극히 참혹하니, 전백옥 등이 피를 흘리며 싸운 상황이 더욱 명백하여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전백옥에게는 본관(本官)으로 하여금 제물을 대략 준비하여 그 원혼을 위로해 주도록 하고, 성안에 널린 시체는 남녀를 구분하여 두 곳에 장사지낸 다음 여제(여祭)의 관례에 의하여 단(壇)을 두 곳에 설치해 제사를 지내주도록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1605년(선조 38) 5월 8일 북변에서 전사한 전백옥에게 적당한 포상과 증직을 내리고 또 상구(喪柩)를 호송하게 하였다. 1606년(선조 39) 2월 27일 왕이 이르기를, "전백옥의 아들에게도 관직을 주라."라고 하였다.(宣祖實錄, 인터넷 와카노 2000, www.rootsinfo.co.kr 2002)

  전백옥 [專門資料] : 宋子大全卷二/ 詩○五言絶句/ 寄金晦伯 昱 全伯玉 瑜 諸君/ 天末歲時新。遙思錦水春。草堂遲日處。相對讀書人。(daum 2010)

  전백옥 : 정선전씨 분적도/ 2달전, 2010년 8월 23일 (월)/ 조선시대의 전처정(全處貞)은 별좌(別坐), 전세적(全世積)은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를 지냈으며 전백옥(全伯玉)은 군수, 전련은 현감, 전순필(全舜弼)은 목사를 역임하였다. 전오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전신철(全愼喆.../ cafe.daum.net/hoaroinggor/ 화룡골(daum 2010)

  전백옥 : 조선시대 역대 보성 군수(寶城郡守)/ 5달전, 2010년 5월 28일 (금)/ ...武科 1583년 안골포海戰(1597)에서 戰死 1597년 반혼(潘混) 居濟 武科 丈人 崔廣淵(1521년생) 1598년 전백옥(全伯玉) 甘泉 武科 1599년 김극제(金克悌) 蔚山 武科 1601년 손경지(孫景祉) 平海 武科 권형(權?) 武科 把摠.../ cafe.daum.net/ahncham/ 죽산안씨(신) 종친회(daum 2010)

  전백옥 : 전(全)씨의 시조/ 5달전, 2010년 5월 24일 (월)/ ...은 개성소윤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전처정(全處貞)은 별좌, 전세적(全世積)은 동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전백옥(全伯玉)은 군수, 전련은 현감, 전순필(全舜弼)은 목사를 역임했다. 전오 는 의금부도사, 전신철(全愼喆)은.../ cafe.daum.net/srsp/ 소래산시인(daum 2010)

  전백옥 : 임진,정유 왜란시 全氏 공신/ 6달전, 2010년 4월 8일 (목)/ 全汝弘 13.司僕 全云 14.免役 全孫 15.守門將 全應男 16.部將 全彦 宮 17.免役 全戒德 18.司僕 全仁浩 19.郡守全伯玉 20.部將 全義生 21.引儀 全三樂 三等功臣 1.主簿 全暹 2. 洧林衛 全凡守 3.私奴 全作只 4.正 全夢禎 5.守門將.../ cafe.daum.net/cajcdjh/ 천안전씨 대종회(daum 2010)

  전백옥 : 보성을 지켜낸 선무공 전방삭 장군/ 1598년 4월에 쳐들어오는 왜적도 격퇴하였다. 1598년 7월 장군은 당시 보성군수로 재임 중인 같은 종친 전백옥(全伯玉 후일 종성 첨사 정4품)과 더불어 죽전벌에서 왜장 우게다를 맞아 용전분투하였는데, 이때 전투상황은 조총소리.../ blog.naver.com(daum 2010)

  전백옥 : 참고문헌/ 하였다. 선조 38년(乙巳:1605) 3월에 야인 홀자온(忽刺溫)이 쳐들어 와 동관보를 함락시키고 첨사 전백옥(全伯玉) 등을 살해하였다. 북우후 성우길(成祐吉)이 유방군 수천 명을 거느리고 밤에 도강하여 여진의 영채를 급습하여.../ koreanmonsters.culturecontent.com(daum 2010)

  전백옥 : 芝峯 李光의 交遊詩 考/ 李成吉, 李弘, 李壽俊, 李用淳, 李伯吉, 李尙信, 李尙毅, 李德餘, 李景嚴, 李光斗, 李慶全, 李德洞, 張廣文, 全伯玉, 趙善繼, 趙 應文, 趙深源, 趙東萊, 趙存性, 趙公謹, 趙翼, 鄭雲湖, 鄭耆老, 鄭琢, 鄭同知(?), 鄭晦爾, 鄭景任,../ mosan.or.kr(daum 2010)

  전백옥 : 박천서[朴天敍]의 자는 돈숙[惇叔]이며 [명종2년]] 1546년 3월 28일생 부[父.../ 지역이 하루아침에 빈터가 되어 북방의 사세가 장차 어떻게 수습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매우 통분합니다. 전백옥[全伯玉]의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조사를 하면 알게 되겠지만 부사[府使] 고경민[高敬民]은 앉아서 보기만 하고.../ chungheongong.com(daum 2010)

  전백옥 : 경기, 경북지역/ 8달전, 2010년 2월 23일 (화)/ ...지냈다. 조선시대의 전처정(全處貞)은 별좌, 전세적(全世積)은 동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전백옥(全伯玉)은 군수, 전련은 현감, 전순필(全舜弼)은 목사를 역임했다. 전오 는 의금부도사, 전신철(全愼喆)은 장례원판결.../ 태그: 가리이씨(加利李氏) , 가평이씨.../ blog.daum.net/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daum 2010)

  전백옥 : 본관과 파시조 유래/ 2년전, 2008년 12월 31일/ ...)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전처정(全處貞)은 별좌(別坐), 전세적(全世積)은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 ) 전백옥(全伯玉)은 군수, 전련은 현감, 전순필(全舜弼)은 목사 전오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전신철(全愼喆)은 장례원판결사.../ blog.daum.net/jeungseunjeun/ 旌善全氏 始祖 歡城君 諱 ?(daum 2010)

  전백옥 : 보성을 지켜낸 선무공 전방삭 장군/ 3년전, 2007년 5월 5일/ ...년 4월에 쳐들어오는 왜적도 격퇴하였다. 1598년 7월 장군은 당시 보성군수로 재임 중인 같은 종친 전백옥(全伯玉 후일 종성 첨사 정4품)과 더불어 죽전벌에서 왜장 우게다를 맞아 용전분투하였는데, 이때 전투상황은 조총소리.../ blog.naver.com/ 전광일보 기자의 블로그(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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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명면 황영태, 17일 탁구 도대회 남자개인전 우승...축하합니다

  황영태(醴泉郡卓球協會 황영태 氏 道知事旗 50代 男子 個人戰 優勝) [記事] : 예천군탁구협회(회장 권규호)가 2011년 4월 16, 17일 이틀 동안 청송군 청송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제16회 경상북도지사기 생활체육대회에 참가해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경상북도생활체육회가 주최하고, 청송군생활체육회·국민생활체육경북탁구협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에서 예천군탁구협회 황영태(호명) 씨가 군부 50대 남자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예천군탁구협회는 또 남여단체전에서 모두 8강에 진입하는 기량을 뽐내 다음 대회 전망을 밝게 했다. 한편 예천군탁구협회 관계자는 “탁구 동호인 저변 확대를 위해 상시 회원 가입을 받고있다”며 “매일 저녁 예천남부초등 체육관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만큼 탁구에 관심있는 지역민들의 많은 가입을 기다린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1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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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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