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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539:조규양生員(祝박근노)
예천의 자랑(2539) : 감천면 돈산리 출신 조규양 생원(附 예천군청 박근노, 전국 서각대전에서 대상...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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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양(趙葵陽) : 1706(숙종 32)-1776(영조 52), 감천면 돈산리 산곡(山谷) 출신,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巖), 본관은 한양, 유학(幼學) 원익(元益, 號 山谷)의 아들, 보양(普陽, 1709生, 字見卿, 生員, 進士, 文科)ㆍ득양(得陽)ㆍ의양(宜陽, 1719生, 字毅卿, 生員)ㆍ몽양(夢陽, 1722生, 字獻吉, 生員)의 형, 석범(錫範)ㆍ석회(錫晦, 文科, 左承旨)ㆍ석충(錫忠)ㆍ석상(錫商)ㆍ석경(錫景)의 아버지,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의 제자이다.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44년(영조 20) 식년 생원시 3등 93위로 합격하였다. 문장으로 저명하여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경구현(五經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다. <홍범부 (洪範賦)> <백속편(白속篇)> <상반책(商反策)> 등은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북경 호해지간(湖海之間)에도 전파되었다. <둔암집(鈍巖集)>이 있다. 석북 신광수(石北申光洙)가 배우고자 하였고, 좌규 이성원(左揆李性源)이 국사(國士)로 존경하였다. 감천면 돈산리 주마산(走馬山)에 있는 둔암정(鈍岩亭)은 그의 것이다. 묘는 감천면 마명동(馬鳴洞) 건좌(乾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진성 이만규(李晩煃)가 지었다.(醴鄕醴泉 1994, 朝鮮寰輿勝覽 1929,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醴泉의 金石文 2003)
조규양 : 둔암 조규양 선생/ 성명 : 조규양(趙葵陽) , 1707년 ~ 1776년, 본관 : 한양, 자 : 향경(向卿), 호 : 둔암(鈍巖), 출생지 : 예천군 감천면 둔산, 출신지 : 예천군 감천면 둔산, 분묘지 : 예천군 마명동 건좌, 입사경로 :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조규양(趙葵陽)의 자(字)는 향경(向卿)이며, 호는 둔암이다. 관은 한양(漢陽)이다. 아버지 원익(元益)은 수직(壽職)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의 자급(資級)에 올랐다.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이니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1706년(숙종 32) 병술년 12월 11일에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고 기개가 걸출하며 풍채가 당당하여 무엇에도 구속받지 아니하였다. 선친 공의 교육 방법이 대단히 엄하여 회초리를 썼으며, 어머니 정부인도 언사와 안색을 빌리지 않고 반드시 법도에 따라 행하도록 했다. 10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어버이를 곁에 모시고 있으면서 상식(上食)의 예법대로 곡읍(哭泣)하였으며, 이윽고 또 신당공(新塘公) 이성전(李成全)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니 이공(李公)은, 즉 고산 선생의 재주가 뛰어난 수제자였다. 이렇게 배우고부터 내외와 경중의 구별을 알게 되어 집에 들어가면 형제간 우애가 금옥 같았고, 서로 도와 학문을 넓히고 예법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여 그의 덕업을 이루게 되었다. 영달과 명리에는 초연하였으며 몸소 농사짓기를 권하고 비천한 일에도 능하였으며, 널리 세상을 구제함에 뜻을 두고 남의 과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작은 벌레도 밟지 않았다. 만년에 중풍이 들어 3년간이나 앉고 눕기를 사람에 의지하였지만, 한 번도 신음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어버이가 계신 탓이었다. 모년 월 일에 졸하니 향년 71세였으며, 처음엔 예천의 지과동(知過洞)에 장사를 지냈다 후에 같은 군 마명동(馬鳴洞) 건좌(乾坐: 서북을 등지고 동남을 향한 곳)의 둔덕에 개장(改葬)하였다. 문집으로는 『둔암집(鈍巖集)』이 있다./ 가족이야기 : 조 : 조봉징, 생부 : 조원익, 모 : 예안이씨(禮安李氏) 이기만(李基晩)의 따님, 형제 : 보양(普陽), 득양(得陽), 의양(宜陽), 몽양(夢陽)/『둔암집(鈍岩集)』:『둔암집(鈍岩集)』은 조규양(趙葵陽)의 시문집이다. 2권으로 된 목판집으로 1948년 간행하였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곽(半郭)이16×21cm이다. 한 쪽의 자수는10행 20자씩이며, 주(註)는 두 줄로 되어 있다. 판심은 상하향화문어미(上下向花紋魚尾)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1cm, 세로31츠이다.(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본관(本貫) 한양(漢陽), 시대(時代) (숙종32:1706~영조52:1776),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이력(履歷)/ 영남문집(嶺南文集)/ 둔암집(鈍巖集) 조규양(趙葵陽) (1706, 숙종 32-1776, 영조 52),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본(本) 한양(漢陽), 부(父) 원익(元益), 거(居) 예천(醴泉)/ 2권1책/ 묘갈명(墓碣銘); 이중곤(李中곤) 찬(撰). 공(公)은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연이어 중제(仲弟) 팔우공(八友公) 진양(普陽)과 아들 석회(錫晦)가 또 문과(文科)에서 동방(同榜) 급제(及第)하였다. 또 대인공(大人公)이 수작(壽爵)으로 정헌(正憲) 동추(同樞)에 올라 삼대(三代) 추증(追贈)을 받았다. 연첩(連疊) 영광(榮光)에 비(比)할 바 없건마는 오직 공(公)은 부화(浮華)에 들뜨지 않고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였을 뿐이다.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총구현(五總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는데 강좌(江左) 권만(權萬), 강박(姜樸)이 보고 평가(評?)하여 추허(推허)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경재지구(卿宰知舊)인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이복원(李福源), 이성원(李性源) 제공(諸公)과 교류하였다. 육의지고(六義之稿)는 이동운(李東運)이 일가사장(一家私藏)으로 인몰(湮沒)할 수 없다고 격찬(激讚) 하였고 홍범부(洪範賦) 백조편(白棗篇), 상반책(尙反策) 제편(諸篇)은 국내(國內)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 호해(湖海)지간(之間)에도 전파(傳播)되었다.(daum 2011)
조규양 :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 조규양(趙葵陽) (숙종32:1706~영조52:1776), 한양인(漢陽人). 자(字)는 향경(向卿) 호(號)는 둔암(鈍巖)으로 산곡(山谷) 원익(元益)의 자(子)이다. 사마시(司馬試)에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고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제공(諸公)과 교유(交遊)했다.(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본 한양(漢陽)/ 영주 문화유적 > 정각/ 정서정(亭西亭) :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 있고 이광익(李光翊)의 건립으로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의 기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daum 2011)
조규양 : 조보양(趙普陽, 1709~1788)/ Daum 블로그 | 3년전, 2008년 9월 16일/『통감』을 배우는데 범례에 해박하고, 정통과 정통이 아님을 능히 구분하였다. 형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과 더불어 문장이 뛰어나 주변 사람이 난형난제라 하였다. 소은 이경익(李景翼), 난졸재 이산두(李山斗), 청대.../ blog.daum.net/hanyangcho | 晛溪亭(daum 2011)
조규양 : 팔우헌 조보양 생애이야기/ 조인스 카페 | 2년전, 2009년 7월 3일(daum 2011)
조규양 [專門資料] : 輓詞[趙葵陽]/ 간행물/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1)
조규양 : 조보양(趙普陽)/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兩試) [가족사항] [부] 성명 : 조원익(趙元益) 관직 : 유학(幼學)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 [형] 조규양(趙葵陽) [제] 조득양(趙得陽) [제] 조의양(趙宜陽) [제] 조몽양(趙夢陽) [출전]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 people.aks.ac.kr(daum 2011)
조규양 : 한양조씨/ Daum 카페 | 작년, 2010년 10월 31일/ ...시를 좋아하여 많은 작품을 지음. 저서:『山谷集』. ▣참고:「墓碣銘」(李會春 撰) ?집필:이원걸 조규양(趙葵陽):1706(숙종 32, 병술)∼1776(영조 52, 병신). 본관 漢陽. 자는 向卿. 호는 鈍巖. 元益의 子. 1744년(영조 20).../ cafe.daum.net/poongryuhahoi/DZj2/| 풍류하회(daum 2011)
조규양 : 예천의 연혁 인물/ Daum 카페 | 2달전, 2010년 11월 27일 (토)/ ...(玉洞書院) 건립 1703년 - 기천정사(箕川正舍) 승격 1707년 - 한종규(韓宗揆) 부임 1707년 - 둔암 조규양(鈍岩 趙葵陽) 출생 1709년 - 팔우헌 조보양(八友軒 趙普陽) 출생 1710년 - 무이서당(武夷書堂) 건립 1711년 - 옥천서원.../ cafe.daum.net/yechosa57/| 예천초등57회동창회(daum 2011)
조규양 : 애일당(愛日堂)/ 웹문서/ ...의 기가 있다.: : 정서정(亭西亭)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 있고 이광익(李光翊)의 건립으로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의 기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 서계정(西溪亭) 영풍군 장수면 호문리.../ www.yjcc.or.kr(daum 2011)
조규양 : [해제]삼산집(三山集)(18C) 문집해설 4/ Daum 카페 | 작년, 2010년 6월 24일/ 서연(書筵)의 강론 기록이 자세하다. 만사(輓詞) (1) 유정원에 대한 만사. 모두 9수이며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1706~1776), 경담(鏡潭) 리수정(李守貞)(1709~1795), 만화헌(晩花軒) 리세사(李世師)(1694~1754), 김광헌.../ cafe.daum.net/hanryupower1/| 한류문예(daum 2011)
조규양 : 둔암집(鈍岩集)/ 국가지식포털 | 2년전, 2009년 1월 15일/ 『둔암집』은 조규양(趙葵陽 ; 1706∼1776)의 시문집이다. 조규양의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岩),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원익(元益)이다. 39세에 사마시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 합격하였다. 연이어 동생 진양(普陽)과.../ www.knowledge.go.kr(daum 2011)
조규양 : 조석회(趙錫晦)/ 네이트 한국학 | 2년전, 2009년 3월 15일/ ...漢陽)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이력 및 기타 사항]전력(前歷) : 유학(幼學) [가족사항]부(父) : 조규양(趙葵陽) 조부(祖父) : 조원익(趙元益) 증조부(曾祖父) : 조봉징(趙鳳徵) 외조부(外祖父) : 김달용(金達龍) 네이트 푸터.../ koreandb.nate.com(daum 2011)
조규양 : 오계서원과 그 배향인물 艮齋 李德弘 先生의 學問과 思想/李載坤/ Daum 카페 | 2년전, 2009년 4월 18일/ ...任寅(1782) 5월에 八友軒 趙普陽이 撰하고 慕圓庵 宋得龍이 글씨를 썼다(?書君子堂記後?는 漢陽 趙葵陽이 지었음). 堂號는 觀書軒이며 朱子의 ‘雲谷觀書理發揚’의 觀書詩에서 취하였다. 현판 글씨는 석봉 韓濩가.../ cafe.daum.net/yclee/YFSY/| 영천이씨대종여로(daum 2011)
조규양 [專門資料] : 慶尙道生員成泂·趙天經·金柱雲·金達胤/ 한국학자료/ 慶尙道|金烏書院|善山|金烏書院|金烏, 三綱行實, 成泂|趙天經|金柱雲|金達胤|崔萬柱|權莘|趙葵陽|權|蔡|權正通|金行源|權正運|金瑞吉|崔光玉|權謖|趙普陽|丁載老|柳長源|金聖翼|柳元源|李師靖|李祚範|權正欽.../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영남문집(嶺南文集)/ 둔암집(鈍巖集) 조규양(趙葵陽) (1706, 숙종 32-1776, 영조 52),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본(本) 한양(漢陽), 부(父) 원익(元益), 거(居) 예천(醴泉)/ 2권1책/ 묘갈명(墓碣銘); 이중곤(李中곤) 찬(撰). 공(公)은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연이어 중제(仲弟) 팔우공(八友公) 진양(普陽)과 아들 석회(錫晦)가 또 문과(文科)에서 동방(同榜) 급제(及第)하였다. 또 대인공(大人公)이 수작(壽爵)으로 정헌(正憲) 동추(同樞)에 올라 삼대(三代) 추증(追贈)을 받았다. 연첩(連疊) 영광(榮光)에 비(比)할 바 없건마는 오직 공(公)은 부화(浮華)에 들뜨지 않고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였을 뿐이다.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총구현(五總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는데 강좌(江左) 권만(權萬), 강박(姜樸)이 보고 평가(評?)하여 추허(推허)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경재지구(卿宰知舊)인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이복원(李福源), 이성원(李性源) 제공(諸公)과 교류하였다. 육의지고(六義之稿)는 이동운(李東運)이 일가사장(一家私藏)으로 인몰(湮沒)할 수 없다고 격찬(激讚) 하였고 홍범부(洪範賦) 백조편(白棗篇), 상반책(尙反策) 제편(諸篇)은 국내(國內)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 호해(湖海)지간(之間)에도 전파(傳播)되었다.
조규양 :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 조규양(趙葵陽) (숙종32:1706~영조52:1776) : 한양인(漢陽人). 자(字)는 향경(向卿) 호(號)는 둔암(鈍巖)으로 산곡(山谷) 원익(元益)의 자(子)이다. 사마시(司馬試)에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고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제공(諸公)과 교유(交遊)했다.(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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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청 박근노, 전국 서각대전에서 대상... 축하합니다.
박근노(醴泉郡廳 박근노 氏, 大韓民國書刻大展에서 ‘大賞’ 受賞 : 오는 6月 4日 서울 藝術의 殿堂에서 表彰과 施賞金 받을 豫定) [記事] : 한국서각협회가 주최한 제8회 대한민국서각대전에서 예천군청 박근노(원예특작담당, 47) 씨의 전통서각 작품이 최고상인 ‘대상’에 선정됐다. 서각(書刻)이란 글씨나 그림, 문향 등을 나무나 돌, 쇠 등의 재료에 새기는 것으로, 서예적인 맛·조각적인 맛ㆍ공예적인 맛을 두루 갖춘 예술 작품이다. 박씨는 이번 서각대전에 가로 50㎝, 세로 120㎝의 목판에 자필로 칠언절구 한시를 쓰고 전통기법으로 양각(陽刻, 판면 상에 문자의 자면이 위로 나오게 새겨진 모습)해 출품했다. 이 작품을 심사한 위원들은 “글씨를 쓰는 법이 30여 년의 서예 경력에서 우러나 완숙하고 서각기법은 전통방식의 순수성이 묻어 있다” 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박씨는 오는 6월 4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국회의장 표창과 함께 시상금 5백만 원을 받게 된다. 박씨는 서예대가 초정 권창륜 선생을 사사(師事)하고 있으며, 미목 이주강 선생에게 서각을 배우고 있다. 또 박씨는 현재 경상북도미술협회 초대작가와 한국미술협회 예천군 서예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각종 서예대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醴泉뉴스 2011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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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양(趙葵陽) : 1706(숙종 32)-1776(영조 52), 감천면 돈산리 산곡(山谷) 출신,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巖), 본관은 한양, 유학(幼學) 원익(元益, 號 山谷)의 아들, 보양(普陽, 1709生, 字見卿, 生員, 進士, 文科)ㆍ득양(得陽)ㆍ의양(宜陽, 1719生, 字毅卿, 生員)ㆍ몽양(夢陽, 1722生, 字獻吉, 生員)의 형, 석범(錫範)ㆍ석회(錫晦, 文科, 左承旨)ㆍ석충(錫忠)ㆍ석상(錫商)ㆍ석경(錫景)의 아버지,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의 제자이다.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44년(영조 20) 식년 생원시 3등 93위로 합격하였다. 문장으로 저명하여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경구현(五經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다. <홍범부 (洪範賦)> <백속편(白속篇)> <상반책(商反策)> 등은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북경 호해지간(湖海之間)에도 전파되었다. <둔암집(鈍巖集)>이 있다. 석북 신광수(石北申光洙)가 배우고자 하였고, 좌규 이성원(左揆李性源)이 국사(國士)로 존경하였다. 감천면 돈산리 주마산(走馬山)에 있는 둔암정(鈍岩亭)은 그의 것이다. 묘는 감천면 마명동(馬鳴洞) 건좌(乾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진성 이만규(李晩煃)가 지었다.(醴鄕醴泉 1994, 朝鮮寰輿勝覽 1929,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醴泉의 金石文 2003)
조규양 : 둔암 조규양 선생/ 성명 : 조규양(趙葵陽) , 1707년 ~ 1776년, 본관 : 한양, 자 : 향경(向卿), 호 : 둔암(鈍巖), 출생지 : 예천군 감천면 둔산, 출신지 : 예천군 감천면 둔산, 분묘지 : 예천군 마명동 건좌, 입사경로 :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조규양(趙葵陽)의 자(字)는 향경(向卿)이며, 호는 둔암이다. 관은 한양(漢陽)이다. 아버지 원익(元益)은 수직(壽職)으로 정헌대부(正憲大夫)의 자급(資級)에 올랐다. 어머니는 예안이씨(禮安李氏)이니 이기만(李基晩)의 딸이다. 1706년(숙종 32) 병술년 12월 11일에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고 기개가 걸출하며 풍채가 당당하여 무엇에도 구속받지 아니하였다. 선친 공의 교육 방법이 대단히 엄하여 회초리를 썼으며, 어머니 정부인도 언사와 안색을 빌리지 않고 반드시 법도에 따라 행하도록 했다. 10세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어버이를 곁에 모시고 있으면서 상식(上食)의 예법대로 곡읍(哭泣)하였으며, 이윽고 또 신당공(新塘公) 이성전(李成全)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니 이공(李公)은, 즉 고산 선생의 재주가 뛰어난 수제자였다. 이렇게 배우고부터 내외와 경중의 구별을 알게 되어 집에 들어가면 형제간 우애가 금옥 같았고, 서로 도와 학문을 넓히고 예법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여 그의 덕업을 이루게 되었다. 영달과 명리에는 초연하였으며 몸소 농사짓기를 권하고 비천한 일에도 능하였으며, 널리 세상을 구제함에 뜻을 두고 남의 과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작은 벌레도 밟지 않았다. 만년에 중풍이 들어 3년간이나 앉고 눕기를 사람에 의지하였지만, 한 번도 신음 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어버이가 계신 탓이었다. 모년 월 일에 졸하니 향년 71세였으며, 처음엔 예천의 지과동(知過洞)에 장사를 지냈다 후에 같은 군 마명동(馬鳴洞) 건좌(乾坐: 서북을 등지고 동남을 향한 곳)의 둔덕에 개장(改葬)하였다. 문집으로는 『둔암집(鈍巖集)』이 있다./ 가족이야기 : 조 : 조봉징, 생부 : 조원익, 모 : 예안이씨(禮安李氏) 이기만(李基晩)의 따님, 형제 : 보양(普陽), 득양(得陽), 의양(宜陽), 몽양(夢陽)/『둔암집(鈍岩集)』:『둔암집(鈍岩集)』은 조규양(趙葵陽)의 시문집이다. 2권으로 된 목판집으로 1948년 간행하였다.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곽(半郭)이16×21cm이다. 한 쪽의 자수는10행 20자씩이며, 주(註)는 두 줄로 되어 있다. 판심은 상하향화문어미(上下向花紋魚尾)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21cm, 세로31츠이다.(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본관(本貫) 한양(漢陽), 시대(時代) (숙종32:1706~영조52:1776),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이력(履歷)/ 영남문집(嶺南文集)/ 둔암집(鈍巖集) 조규양(趙葵陽) (1706, 숙종 32-1776, 영조 52),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본(本) 한양(漢陽), 부(父) 원익(元益), 거(居) 예천(醴泉)/ 2권1책/ 묘갈명(墓碣銘); 이중곤(李中곤) 찬(撰). 공(公)은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연이어 중제(仲弟) 팔우공(八友公) 진양(普陽)과 아들 석회(錫晦)가 또 문과(文科)에서 동방(同榜) 급제(及第)하였다. 또 대인공(大人公)이 수작(壽爵)으로 정헌(正憲) 동추(同樞)에 올라 삼대(三代) 추증(追贈)을 받았다. 연첩(連疊) 영광(榮光)에 비(比)할 바 없건마는 오직 공(公)은 부화(浮華)에 들뜨지 않고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였을 뿐이다.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총구현(五總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는데 강좌(江左) 권만(權萬), 강박(姜樸)이 보고 평가(評?)하여 추허(推허)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경재지구(卿宰知舊)인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이복원(李福源), 이성원(李性源) 제공(諸公)과 교류하였다. 육의지고(六義之稿)는 이동운(李東運)이 일가사장(一家私藏)으로 인몰(湮沒)할 수 없다고 격찬(激讚) 하였고 홍범부(洪範賦) 백조편(白棗篇), 상반책(尙反策) 제편(諸篇)은 국내(國內)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 호해(湖海)지간(之間)에도 전파(傳播)되었다.(daum 2011)
조규양 :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 조규양(趙葵陽) (숙종32:1706~영조52:1776), 한양인(漢陽人). 자(字)는 향경(向卿) 호(號)는 둔암(鈍巖)으로 산곡(山谷) 원익(元益)의 자(子)이다. 사마시(司馬試)에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고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제공(諸公)과 교유(交遊)했다.(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본 한양(漢陽)/ 영주 문화유적 > 정각/ 정서정(亭西亭) :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 있고 이광익(李光翊)의 건립으로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의 기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daum 2011)
조규양 : 조보양(趙普陽, 1709~1788)/ Daum 블로그 | 3년전, 2008년 9월 16일/『통감』을 배우는데 범례에 해박하고, 정통과 정통이 아님을 능히 구분하였다. 형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과 더불어 문장이 뛰어나 주변 사람이 난형난제라 하였다. 소은 이경익(李景翼), 난졸재 이산두(李山斗), 청대.../ blog.daum.net/hanyangcho | 晛溪亭(daum 2011)
조규양 : 팔우헌 조보양 생애이야기/ 조인스 카페 | 2년전, 2009년 7월 3일(daum 2011)
조규양 [專門資料] : 輓詞[趙葵陽]/ 간행물/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1)
조규양 : 조보양(趙普陽)/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兩試) [가족사항] [부] 성명 : 조원익(趙元益) 관직 : 유학(幼學)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 [형] 조규양(趙葵陽) [제] 조득양(趙得陽) [제] 조의양(趙宜陽) [제] 조몽양(趙夢陽) [출전]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 people.aks.ac.kr(daum 2011)
조규양 : 한양조씨/ Daum 카페 | 작년, 2010년 10월 31일/ ...시를 좋아하여 많은 작품을 지음. 저서:『山谷集』. ▣참고:「墓碣銘」(李會春 撰) ?집필:이원걸 조규양(趙葵陽):1706(숙종 32, 병술)∼1776(영조 52, 병신). 본관 漢陽. 자는 向卿. 호는 鈍巖. 元益의 子. 1744년(영조 20).../ cafe.daum.net/poongryuhahoi/DZj2/| 풍류하회(daum 2011)
조규양 : 예천의 연혁 인물/ Daum 카페 | 2달전, 2010년 11월 27일 (토)/ ...(玉洞書院) 건립 1703년 - 기천정사(箕川正舍) 승격 1707년 - 한종규(韓宗揆) 부임 1707년 - 둔암 조규양(鈍岩 趙葵陽) 출생 1709년 - 팔우헌 조보양(八友軒 趙普陽) 출생 1710년 - 무이서당(武夷書堂) 건립 1711년 - 옥천서원.../ cafe.daum.net/yechosa57/| 예천초등57회동창회(daum 2011)
조규양 : 애일당(愛日堂)/ 웹문서/ ...의 기가 있다.: : 정서정(亭西亭)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 있고 이광익(李光翊)의 건립으로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의 기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의 시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 서계정(西溪亭) 영풍군 장수면 호문리.../ www.yjcc.or.kr(daum 2011)
조규양 : [해제]삼산집(三山集)(18C) 문집해설 4/ Daum 카페 | 작년, 2010년 6월 24일/ 서연(書筵)의 강론 기록이 자세하다. 만사(輓詞) (1) 유정원에 대한 만사. 모두 9수이며 둔암(鈍巖) 조규양(趙葵陽)(1706~1776), 경담(鏡潭) 리수정(李守貞)(1709~1795), 만화헌(晩花軒) 리세사(李世師)(1694~1754), 김광헌.../ cafe.daum.net/hanryupower1/| 한류문예(daum 2011)
조규양 : 둔암집(鈍岩集)/ 국가지식포털 | 2년전, 2009년 1월 15일/ 『둔암집』은 조규양(趙葵陽 ; 1706∼1776)의 시문집이다. 조규양의 자는 향경(向卿), 호는 둔암(鈍岩), 본관은 한양(漢陽), 아버지는 원익(元益)이다. 39세에 사마시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 합격하였다. 연이어 동생 진양(普陽)과.../ www.knowledge.go.kr(daum 2011)
조규양 : 조석회(趙錫晦)/ 네이트 한국학 | 2년전, 2009년 3월 15일/ ...漢陽) 거주지(居住地) : 미상(未詳) [이력 및 기타 사항]전력(前歷) : 유학(幼學) [가족사항]부(父) : 조규양(趙葵陽) 조부(祖父) : 조원익(趙元益) 증조부(曾祖父) : 조봉징(趙鳳徵) 외조부(外祖父) : 김달용(金達龍) 네이트 푸터.../ koreandb.nate.com(daum 2011)
조규양 : 오계서원과 그 배향인물 艮齋 李德弘 先生의 學問과 思想/李載坤/ Daum 카페 | 2년전, 2009년 4월 18일/ ...任寅(1782) 5월에 八友軒 趙普陽이 撰하고 慕圓庵 宋得龍이 글씨를 썼다(?書君子堂記後?는 漢陽 趙葵陽이 지었음). 堂號는 觀書軒이며 朱子의 ‘雲谷觀書理發揚’의 觀書詩에서 취하였다. 현판 글씨는 석봉 韓濩가.../ cafe.daum.net/yclee/YFSY/| 영천이씨대종여로(daum 2011)
조규양 [專門資料] : 慶尙道生員成泂·趙天經·金柱雲·金達胤/ 한국학자료/ 慶尙道|金烏書院|善山|金烏書院|金烏, 三綱行實, 成泂|趙天經|金柱雲|金達胤|崔萬柱|權莘|趙葵陽|權|蔡|權正通|金行源|權正運|金瑞吉|崔光玉|權謖|趙普陽|丁載老|柳長源|金聖翼|柳元源|李師靖|李祚範|權正欽.../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1)
조규양(趙葵陽) : 영남문집(嶺南文集)/ 둔암집(鈍巖集) 조규양(趙葵陽) (1706, 숙종 32-1776, 영조 52), 자(字) 향경(向卿), 호(號) 둔암(鈍巖), 본(本) 한양(漢陽), 부(父) 원익(元益), 거(居) 예천(醴泉)/ 2권1책/ 묘갈명(墓碣銘); 이중곤(李中곤) 찬(撰). 공(公)은 39세에 사마시(司馬試)에서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연이어 중제(仲弟) 팔우공(八友公) 진양(普陽)과 아들 석회(錫晦)가 또 문과(文科)에서 동방(同榜) 급제(及第)하였다. 또 대인공(大人公)이 수작(壽爵)으로 정헌(正憲) 동추(同樞)에 올라 삼대(三代) 추증(追贈)을 받았다. 연첩(連疊) 영광(榮光)에 비(比)할 바 없건마는 오직 공(公)은 부화(浮華)에 들뜨지 않고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였을 뿐이다. 사자사전(四子史傳), 백가편(百家編),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어류(語類) 및 성리감인집(性理鑑人集), 오총구현(五總龜賢) 등을 수초(手抄)하였는데 강좌(江左) 권만(權萬), 강박(姜樸)이 보고 평가(評?)하여 추허(推허)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경재지구(卿宰知舊)인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이복원(李福源), 이성원(李性源) 제공(諸公)과 교류하였다. 육의지고(六義之稿)는 이동운(李東運)이 일가사장(一家私藏)으로 인몰(湮沒)할 수 없다고 격찬(激讚) 하였고 홍범부(洪範賦) 백조편(白棗篇), 상반책(尙反策) 제편(諸篇)은 국내(國內) 뿐만 아니라 북경(北京) 호해(湖海)지간(之間)에도 전파(傳播)되었다.
조규양 :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 조규양(趙葵陽) (숙종32:1706~영조52:1776) : 한양인(漢陽人). 자(字)는 향경(向卿) 호(號)는 둔암(鈍巖)으로 산곡(山谷) 원익(元益)의 자(子)이다. 사마시(司馬試)에 아우와 함께 동방(同榜) 합격(合格)하였다. 노부모(老父母) 봉양(奉養)과 학문(學問)에 진력(盡力)하고 성균관(成均館)에 근무할 때 홍성(洪晟). 이맹휴(李孟休). 신광수(申光洙) 제공(諸公)과 교유(交遊)했다.(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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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청 박근노, 전국 서각대전에서 대상... 축하합니다.
박근노(醴泉郡廳 박근노 氏, 大韓民國書刻大展에서 ‘大賞’ 受賞 : 오는 6月 4日 서울 藝術의 殿堂에서 表彰과 施賞金 받을 豫定) [記事] : 한국서각협회가 주최한 제8회 대한민국서각대전에서 예천군청 박근노(원예특작담당, 47) 씨의 전통서각 작품이 최고상인 ‘대상’에 선정됐다. 서각(書刻)이란 글씨나 그림, 문향 등을 나무나 돌, 쇠 등의 재료에 새기는 것으로, 서예적인 맛·조각적인 맛ㆍ공예적인 맛을 두루 갖춘 예술 작품이다. 박씨는 이번 서각대전에 가로 50㎝, 세로 120㎝의 목판에 자필로 칠언절구 한시를 쓰고 전통기법으로 양각(陽刻, 판면 상에 문자의 자면이 위로 나오게 새겨진 모습)해 출품했다. 이 작품을 심사한 위원들은 “글씨를 쓰는 법이 30여 년의 서예 경력에서 우러나 완숙하고 서각기법은 전통방식의 순수성이 묻어 있다” 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박씨는 오는 6월 4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국회의장 표창과 함께 시상금 5백만 원을 받게 된다. 박씨는 서예대가 초정 권창륜 선생을 사사(師事)하고 있으며, 미목 이주강 선생에게 서각을 배우고 있다. 또 박씨는 현재 경상북도미술협회 초대작가와 한국미술협회 예천군 서예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각종 서예대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醴泉뉴스 2011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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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