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562:안경희理事(祝오재흥.김태일/예천방문748)
작성자장병창 @ 2011.05.19 06:11:14
  예천의 자랑(2562) : 예천읍 통명리 출신 안경희 제이피 모간은행 이사(附 상리초 오재흥 교사, 16일 정행돈교육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 출신 김태일 감독, 영화 ‘五月愛’ 개봉 박두...축하합니다/예천방문 748)

---

  안경희 : 1951- , 예천읍 통명리 출신, 예천동부초등(17회), 예천여중, 서울여상, 명지대, 미국 메릴런드대학원 졸업, 미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망 대상이고, 동양인으로서는 바늘구멍만큼이나 들어가기 힘들다는 모간은행의 공채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당당히 합격하였다. 세계 10대 금융 기관인 제이피 모간은행 이사이다.(醴泉新聞 1994.12.29)

  안경희 : 재경예천군민회cafe/ 안경희 홀리네임 종합병원(미국)이사-매순간 최선/ 2년전, 2009년 6월 12일/ "매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출향인 인터뷰, 안경희 홀리네임 종합병원(미국) 이사. 권오근 편집국장 youin67@ycnews.co.kr/ △5년만에 고향 예천을 방문한 안경희 씨. 미국 뉴저지 주 티넥 소재 홀리네임 종합병원 이사인 안경희(56·예천읍 출생) 씨가 고향인 예천을 방문했다. 지보참우작목반장 안성모 씨의 누나인 안경희 씨는 세계적 금융회사인 JP모간의 중역을 지냈다. 안씨는 2009년 5월 30∼31일 고향 예천에서 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한 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보참우마을에서 한우 육회와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껏 먹어본 고기 중에 최고였어요. 과일도 너무 맛있었구요. 선진 시스템을 접목해 농사지으시는 고향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 만에 예천을 찾은 소감을 묻자 “고향이 많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업무차 방한한 안씨는 20여일 동안 체류한 뒤 지난 6일 출국했다. 안씨는 출국에 앞서 지난 1일 모교인 서울여상에서 특별 강연을 했다. 이날 7백50여명의 후배들에게 ‘큰 꿈을 가지고 긍정적 마음과 항상 배우겠다는 자세로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동부초등, 예천여중 출신인 안씨는 서울여상을 졸업할 무렵(1970년) 서울의 한 섬유회사 경리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 명지대 영문과(야간)에 입학했으며, 당시 영어회화를 가르치던 미국인 여교수의 권유로 용산 미8군 내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분교 경영학과(야간)에 입학했다. 대학졸업 후 1978년 안씨는 영자신문에서 JP모간이 한국 지점에서 근무할 직원을 찾는다는 광고를 발견하고 지원서를 냈다. ‘못해낼 일이 없다’는 안씨의 두둑한 배짱은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당시 안씨는 웬만한 한국 회사 사장보다 월급이 많은 과장으로 채용됐다. 그녀는 198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뉴욕 JP모간 본사로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 아이비리그 출신인 월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성실과 노력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남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 밤 12시 넘어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녀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입사 3년 만에 1만 5천여 명의 임직원 가운데 15개국 해외지점의 경리담당 총책임자로 임명됐다. 1989년엔 신설된 ‘기업 위험 관리’ 부문 북미지역 총책임자, 2년 뒤에는 회사를 통틀어 1백50명밖에 안 되는 전무(Managing Director)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한인이 이 직위에 오른 것은 이 회사 역사상 최초였다고. 2002년 은퇴 뒤 뉴저지 주 패스칵밸리 병원에서 무급 이사로 재직하던 안씨는 미국 거주 한인을 위한 의료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사장으로 발탁됐다. 한인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입원 기간 동안 한국 음식과 방송, 신문 등을 접할 수 있어 교민사회의 반응이 뜨겁다. 지난 2007년부터는 뉴저지 주 홀리네임 종합병원에서 관리이사로 재직 중이다. 안씨는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뉴저지 주 버켄카운티 노던밸리 지역 7개 고교를 관할하는 교육위원으로 선출돼(임기 3년·재선위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경희 씨는 한인 무료 진료 활동을 활성화 하고, 영어가 서툴거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한인들을 위한 전용 병동을 짓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

  *상리초 오재흥 교사, 16일 정행돈교육상 수상...축하합니다.

  오재흥(오재흥 敎師 ''''정행돈 敎育賞 受賞'''') [記事] : 상리초교 오재흥(55) 교사가 매일신문사와 시몬장학회가 공동 제정한 제1회 `정행돈 교육상'''' 초등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씨는 2011년 5월 16일 매일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정행돈 교육상은 지역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고 정행돈(鄭行敦) 선생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학생들의 전인교육에 공헌이 있거나 근면한 봉사정신과 투철한 교육관으로 존경받는 교사들에게 수여된다. 오재흥 교사는 가난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여행비를 주기도 했고, 조손가정 기초생활수급가정 제자들에게 용돈을 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또 학생들의 과학 교육을 도맡아 전국대회에 입상하도록 하는 등의 공로로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및 상장을 5차례나 수상했다.(醴泉新聞 2011년 05월 17일 (화) 23:38:22)

---

  *예천 출신 김태일 감독, 영화 ‘五月愛’ 개봉 박두...축하합니다.

  김태일(記憶되지 않는 歷史는 反復되더라…5月, 그리고 31年 그래서, 또 光州다 다큐 映畵 ‘五月愛’ 開封 앞둔 김태일 監督) [記事] :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五月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 김태일 감독과 아들 상구 군은 사진을 찍는 동안 친구처럼 티격태격했다. ‘오월愛’ 제작사는 아내·아들까지 참여한 가족기업 ‘상구네’다. 차기작 ‘민중의 세계사:인도차이나’를 찍을 때는 딸 송이(9) 양도 학교를 그만두고 동참할 계획이라고 한다.(정연호 記者 서울신문)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성폭행 뒤 살해된 여성…부검이 던진 반전 “엄마, 무한색기가 뭐예요?” 낯뜨거운 예…‘쌈장과 상추+밥’…어린이집 부실 급식 충…“너무 불쌍해”…美슈퍼모델 4번 ‘꽈당’…22명 목숨값이 3500만원? 탈북자의 분노개장수 나타나면 동네 개들 조용해지는 까닭…→‘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 記者 서울신문 2011-05-10)

---

  @예천방문 748

  경북도청(“道廳 移轉 豫定地는 明堂吉地”) [記事] : 경북도청 이전 예정지(안동시 풍천면, 예천군 호명면 일대)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길지(明堂吉地)에 해당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원장 서정숙)에 따르면 정백균ㆍ김명신ㆍ김종섭 서라벌대 풍수명리과 겸임교수, 박재락 국풍 환경설계연구소장 등 풍수지리 전문가 모임이 도청 이전예정지에 대한 풍수지리학적 검토용역을 벌여 이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이들은 풍수지리학의 분석틀인 간룡법·장풍법·득수법·정혈법·좌향론을 적용했다. 간룡(看龍)분석을 통해서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품은 대간룡으로 옥돌봉에서 분맥해 문수지맥의 생기를 머금은 검무산을 주산으로 생기맥이 응결된 주인격의 내룡임을 밝혀냈다. 장풍(藏風)분석을 통해서는 주산에서 펼쳐진 주변 산세(좌청룡·우백호·안산·현무)가 조밀하게 갖춰져 명당터의 생기맥이 흩어지지 않는 보국(保局)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득수(得水)분석으로는 내수(內水)의 명당수가 진혈처의 생기를 응집했고 외수인 낙동강은 명당터를 수류역세형국을 해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다는 것. 좌향(坐向)론으로는 주산이 남면(南面)하여 백호 안산과 주산의 생기맥을 머금은 청사의 진혈처를 서로 조응·반사해 밝고 상서러운 천기와 지기가 음양상보(陰陽相補)하는 보국으로 판단했다. 정혈(定穴)분석을 통해서는 주산에서 개장한 백호지맥이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으로 내룡하면서 안산국을 형성해 주산과 안산 사이의 명당터에 중심공간 배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즉 중심공간의 혈처에 중심건물인 도청사를 입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과 환경설계학과 풍수지리전공(학과장 박찬용)은 2011년 5월 21일 오후 3시부터 영남대 대명동 캠퍼스에서 ‘경북도청 이전 예정지의 도시계획 현황과 풍수지리 해석’이란 제목으로 춘계 심포지엄을 개최, 이 같은 분석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어 종합토론을 통해 △도청의 주요건물인 청사는 문수지맥의 생기를 받은 주산인 검무산의 혈처(穴處)인 명당에 입지해야 하고 △현대적인 조형물을 지향하고 전통적인 조형물(솟대·장승·솟을대문·소나무 숲)을 접근성이 용이한 지점에 설치해 역사·문화적인 도시로 상징될 수 있는 환경설계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이전지의 분묘에 대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가용지내의 자연장(自然葬) 공간을 조성해 이 땅을 지켜온 입향조를 비롯한 그들의 영혼이 편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하고 △호민지 주변의 수변공원 등 자연 생태적 공원을 이루는 녹지 공간을 조성해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자연 훼손을 막는 환경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주문할 예정이다.(배준수 記者 大邱日報 2011-05-17 20:56)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