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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603) : 김범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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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일(5.31地方選擧 大邱市長 候補, 김범일 氏 決定) [記事] : 5.31 대구시장 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김범일(56)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이 결정됐다. 김 후보는 2006년 4월 13일 오후 2시부터 대구EXCO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대회에서 서상기 국회의원과 신주식 전 CJ그룹 부사장을 누르고 대구시장 선거 후보로 낙점됐다. 이에 따라 차기 대구시장 선거는 김 후보와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전 환경부장관), 민주노동당 이연재 후보(전 대구시당 위원장), 국민중심당 박승국 후보(대구시당 위원장), 무소속 백승홍 후보(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화익 후보(새누리농장 대표) 등 6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김 후보는 당원과 시민 등 1,288명이 선거인단으로 참가한 이날 경선투표에서 761표를 얻어 324표를 얻은 서 의원과 202표를 얻은 신 전 부사장을 크게 앞질렀다. 또 대구시민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김 후보가 51.9%의 지지를 얻어 27.7%와 20.4%에 그친 서 의원과 신 전 부사장을 따돌렸다.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는 당원 3,736명과 시민 2,292명 등 모두 6,028명을 선거인단으로 선정됐으나 21.3%인 1,288명만 참가, 투표했다. 김 후보는 '시민, 당원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산업 구조를 IT와 첨단 기계부품, 로봇산업 등으로 바꾸고 세계적인 테마파크를 건립해 '글로벌 대구'로 만들겠다"고 밝힌 뒤, "문화도시, 복지대구를 구현할 수 있는 후보와 함께 대구의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을 졸업한 김 후보는 1972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총무처 공보관, 대통령 일반행정비서관,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3년 간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이재춘 記者 뉴시스 2006년 4월 13일 (목) 17:54)
김범일(김범일 한나라黨 大邱市長 候補 인터뷰) [記事] :ꡒ죽기를 각오로 대구 경제를 살리는 데 이 한 몸 던지겠습니다.ꡓ2006년 4월 13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된 김범일 후보는,ꡒ5ㆍ31 지방선거에서 필승해 대구 경제를 살리라는 임무를 엄숙하게 수행하겠다ꡓ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김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ꡒ이번 지방선거는 대구 도약의 전환점이며, 노무현 정권의 푸대접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를 재도약시키기 위해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창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ꡓ고 다짐했다. 이어 김 후보는, ꡒ한나라당 운명을 같이 하는 당원으로 거듭나겠으며, 대구시민을 위해 일하는 머슴으로 거듭나겠다ꡓ고 거듭 강조했다. 김 후보는 상대 후보의ꡐ약하다ꡑ는 비판에 대해,ꡒ일부가 했을 뿐 여론조사에서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역량있는 후보에서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앞섰다ꡓ며 일축했다. 1946년 경북 예천 출신인 김 전 부시장은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88서울올림픽 조직위 사업과장, 청와대 행정비서관,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부인 김원옥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문정화 記者 大邱日報 2006-04-13 20:11:38)
김범일(大邱市長 候補 인터뷰 : 한나라黨 김범일, 産業用地 100萬坪 追加 造成) [記事] : ◆ 주요 공약 : 과학기술 중심 도시로 도약, 30여년 '公僕' 행정 경험 풍부/ ◆ 살아온 길 :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 지내, R D기반 확충 대기업 유치 노력, 市政 최우선 목표 '경제살리기'/ 친(親) 한나라당 정서 때문에 대구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따는 것이 본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이 때문에 경선을 거쳐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가 된 김범일 후보는 주변으로부터 사실상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김 후보는 큰일 날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정치는 생물같은 것이고, 정치적인 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장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 정무부시장을 맡으면서 산업․민생현장 등 안가본 곳이 없다. 대구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도약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어떻게 하면 대구의 옛 명성을 되찾고 발전할 수 있는지 깨닫고 방법도 모색했다. 대구를 회생시킬 자신감도 생겼다. 30여 년의 행정 역량과 경영 마인드, 반드시 내 힘으로 해내겠다는 의지를 쏟아붓는다면 일류 대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지금 대구는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발로 뛰며 시민 삶 속으로 파고들어 아픔을 함께 나누며 문제를 풀어가고, 30년․50년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새롭고 튼튼한 경제기반을 만들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제가 이 같은 시민 여망에 가장 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장 선거에 나섰다. 잘 해낼 자신이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난 이후 만난 유권자들의 반응은? ="한나라당 후보가 되니 더 많은 시민이 성원을 보내주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힘이 난다. 이 때문에 책임감은 더 커졌다. 격려가 훨씬 많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도 함께 듣고 있다. 한나라당을 지지해 줬는데 한나라당이 한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달라지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대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으니까, 상대 후보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는 어려움도 있다." ■경선과정에서 차기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 승리의 견인차가 되겠다고 했는데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지 않는가.? ="자치단체장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투표율을 올리는 것은 시장이 해야할 일이다. 대구의 한나라당 지지도가 높은 만큼 투표율이 높을수록 한나라당에 유리하다. 대구의 투표율을 올려 한나라당 후보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 일을 잘해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승리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정무부시장은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다. 대구경제가 어려운 것에 대한 책임론이 있는데? ="2003년 5월 정무부시장을 맡았을 때 대구의 상황은 암담했다. 부채는 전국 1위이고, 전통산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첨단산업은 불모지였다. 국책연구소도 하나 없었다. 지하철화재참사로 대구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공무원들은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해 인기정책이나 전시행정을 펴지 않았다. 반짝경기를 위한 부양책은 쓰지 않고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설립을 위한 기틀도 마련했다. 산업용지도 10년 만에 100만평을 새로 공급했고 전통산업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첨단산업의 비중을 높여 갔다. 머지않아 대구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진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대구경제가 좋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시장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대구경제살리기를 시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 작년 대구지역 제조업에서 IT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인데 2010년에는 20%로 끌어올리고 서민생활을 안정화시키도록 노력하겠다. 대구에 진출한 대형 주택건설업체와 대형소매점이 지역기업을 협력업체로 활용하도록 유도하겠다. 또 대구에 세계적인 대형 테마파크를 만들어 외지인들이 찾아오는 대구로 만들겠다. 대구의 비즈니스 지원 기능도 강화하고 대구를 사랑과 인정이 있는 도시,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겠다. 시청내 조직으로 장애인팀을 만들어 장애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하고, 고령화사회와 여성의 육아문제 해결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대구경제가 잘 되려면 외지기업 유치가 중요한데 구체적인 복안은 있는가?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을 2~3년 내로 대구로 유치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장은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또 대구의 R& D기반을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한 다음에 대기업 유치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이다. 시청 내에 투자유치단이 가동된 게 1년반 전이다. 이제 투자유치의 노하우도 생긴 만큼 투자유치단의 규모도 키워나가겠다." ■대구 전역이 재개발․재건축붐으로 아파트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시장논리에 맡겨야 할 부분이지만 아파트공급 과잉은 자칫하면 대구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개발예정지역을 주거환경개선지구, 재개발지구 등으로 분류해 계획적으로 접근하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공급의 안정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김범일 후보의 공약은 '첨단 대구, 일류 대구'란 슬로건 아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첨단 대구 프로젝트'와 '아름다운 도시 건설을 위한 일류 대구 프로젝트'로 크게 구분된다. 이들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첨단 대구'프로젝트 : 1. 대구의 미래 성장동력 창출, 2. 세계적인 금호강 첨단산업 문화벨트 조성, 3. 과학기술 중심도시로 도약, 5. 산업용지 100만평 추가 조성 및 원천기술 보유 기업 유치, 6. 대규모 대구 경제살리기 펀드 조성, 7. 산․학․연․관의 직업교육 및 고용 네트워크 구축으로 일자리 창출, ◇'일류 대구'프로젝트 : 1. 사람과 기업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도시 건설, 2. 고품격 문화도시 창조, 3. 한국 제일의 교육도시 지향, 4. 더불어 함께하는 복지도시 조성, 5. 쾌적한 도시, 안전한 도시 건설, 6.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등 글로벌 대구 구현, 7. 시민이 감동하도록 행정서비스를 대기업 수준으로 혁신/
한나라당 김범일 예비후보는 2003년 5월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3월 차관급인 산림청장에서 물러난 지 두 달 만에 1급인 정무부시장으로 대구에 왔다. 함께 일하자는 조해녕 대구시장의 제안도 있었지만,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 직급 하향에 관계없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후 2년 8개월 간 정무부시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대구시장의 꿈을 키워갔다. 올해 1월 대구시장 출마를 위해 정무부시장에서 물러났고, 지난 13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구시장 후보 선출자대회에서 승리해 한나라당 후보가 됐다. 대구시장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를 얻은 것이다. 김 후보는 예천이 고향이다. 예천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초등학교로 전학와, 대구에서 경북중․고를 다녔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때 제1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73년 총무처 사무관을 시작으로 총무처 조직국장,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친 뒤 산림청장을 끝으로 30여년간의 중앙부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88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는 올림픽조직위에서 휘장사업과장으로 일했다. 외국 대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는 게 주요 업무로, 흑자 올림픽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목표했던 것보다 더 많은 스폰서를 유치해 흑자 올림픽이 되는 데 기여했다. 이 때문에 김 후보는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88올림픽의 폐회식으로 꼽았다. 그는 "폐회식을 보는 순간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4년간 열심히 일해 성공적인 흑자 올림픽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름 김범일(55․金範鎰)/ 출신지 예천/ 학력 대구초등, 경북중․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경력 12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총무처 의전국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비서관, 정부조직개편위원회 실행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대구시 정무부시장/ 좌우명 성실과 정도/ 취미 바둑, 등산/ 존경하는 인물 박정희 대통령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어린시절 꿈 맏이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 즐겨부르는 노래 만남(노사연)/ 기억에 남는 영화 닥터 지바고/ 좋아하는 음악 장르 구분없이 즐기나 팝송을 더 좋아함/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일 사업/ 주량 맥주 1병/ 하루가 생긴다면 등산한 뒤 푹 자겠다/ 한달 휴가가 생긴다면 여행을 가겠다/ 1년 휴가가 생긴다면 세계여행을 한 뒤 책을 쓰겠다/ 인상 깊게 읽은 책 '매력국가 만들기'-이유는 지식과 문화사업이 한 국가나 도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대구의 미래를 위해 시사하는 것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 아쉬운 일 젊을 때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충분한 시간과 애정을 쏟지 못한 점이 아쉽다/ 가족관계/ 아내, 1남 1녀/(김진욱 記者 嶺南日報 2006-04-26 23:51:37)
김범일(일 慾心 많고 要職거친 正統官僚)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후보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북중과 경북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12회)해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인지 30여 년 동안 내무부와 행자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 다.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휘장과장,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총무처 의전부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총무처 조직국장에 이어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 등 그의 공직 경력은 화려하다.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조직위원회 휘장사업과장으로 재직할 때는 코카콜라 등 다국적 기업의 후원을 받아내 올림픽을 흑자로 돌려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산림청장 재직 시 조해녕 현 대구시장이ꡐ지하철 참사ꡑ를 수습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내려와 2006년 3월까지 2년 8개월 동안 대구시의 살림을 챙긴 것이 김 후보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후보는 영어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한다. 중학 시절부터 영어회화클럽에서 활동했으며, 지난 1982년 총무처 교육훈련과장직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와 함께 일한 공무원들에 따르면 아랫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치는 등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평가한다. 김 후보는 이재용 열린우리당 후보의 경북고 4년 선배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가끔 만났을 뿐 별다른 인연은 없다고 말했다.(박천학 記者 文化日報 2006년 4월 28일 (금) 15:25)
김범일(山골少年에서 最高 公務員까지…김범일 豫備候補) [記事] : 김범일 한나라당 대구시장 예비후보는 강한 흡인력의 소유자이다.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논리로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같이 일해 본 공무원들은 합리적이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평한다. 상업을 했던 할아버지, 아버지 영향을 받은 덕분에 명분에 집착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면도 돋보인다. 그는 산골 소년에서 최고위 공무원까지 올랐다. 경북 예천 소백산 산자락 50여 가구만이 살던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왔다. 산골 학교에서 1등을 도맡은 학업 능력과 부모님의 교육열이 합쳐진 것이다. 어린 소년에게 객지 생활은 독립심과 적응력을 키워줬다. 김 후보 특유의 친화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객지 생활의 고생이 준 덤이었다. 객지 생활에서도 활달한 개구쟁이였지만 공부는 늘 상위권이었다. 특히 4남 1녀의 첫째였던 그는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항상 교육받았다. 당시 장래 희망이ꡐ장남으로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ꡑ이었을 정도.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그는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당시 최고 인기 직장이었던 한국은행과 대기업 입사를 두고 진로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ꡒ관으로 가서 출세해 집안을 일으켜라.ꡓ는 아버지 당부를 듣고 행정고시로 방향을 틀었고, 졸업을 앞두고 합격(12회 행정고시)했다. 그의 큰 무기는 영어 실력. 영어로 농담을 할 정도다. 중학생 시절 영어 테이프를 무조건 외웠고 고교 때에는 'PINETREE(소나무)'라는 영어 서클에서 활동했다. 총무처 서기관 시절에는 미국 남가주대 대학원에 2년 간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공무원으로 성공적인 길을 밟았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빠른 두뇌 회전, 선제적인 업무 처리 스타일 등이 인정을 받은 것. 첫 발령을 받은 총무처 사무관 시절부터ꡒ촉망받는 장관감ꡓ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부서 내 역대 최장기 행자부 기획관리실장(1998년 6월~2000년 2월)을 지냈다. 기획관리실장 자리는 국회의원을 상대하는 일이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정치권에도 많은 인맥을 만들게 됐다. DJ정부 들어 차관급인 산림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대구시 정무부시장으로 직급을 낮춰 왔다. "경상도 정부였다면 일찌감치 장관을 달았을 것"으로 보는 공무원들도 적잖다.(이창환 記者 每日新聞 2006년 05월 01일)
김범일(廣域團體長 候補 探究 (4) 大邱市長… 한나라당 김범일ꡒIT産業으로 構造 調整ꡓ[記事] :ꡐ장남으로 집안을 일으키는 큰 인물이 되자.ꡑ 한나라당 김범일 대구시장 후보가 초등학생 시절 품었던 특이한 장래 희망이다. 경북 예천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런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김 후보는 2006년 5월 7일, ꡒ가난한 농촌살림을 떠맡는 것은 장남의 당연한 책임ꡓ이라며,ꡒ경제적 부를 만들진 못했지만 장남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ꡓ고 자평했다. 이후 산골소년의 변신은 화려했다. 경북중․고를 거쳐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김 후보는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청와대 행정비서관, 행자부 기획관리실장, 산림청장까지 올랐다. 1970년대 월급이 적어 그만둘 생각을 했을 때 돈보다는 명예라며 부인이 만류하자,ꡒ평생 월급이 적다고 바가지를 긁지 않겠다ꡓ는 각서를 받고 공무원을 계속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관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는 2003년 5월 대구 정무부시장(1급)으로 부임했다. 차관급이던 산림청장을 그만둔 지 두 달 만에 강등을 자처한 것이다. 김 후보는,ꡒ지하철 참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고향을 외면할 수 없었고, 지위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ꡓ고 말했다. 김 후보의 공약은 한 마디로 대구경제 회생이다. 이를 위해 대구를 정보기술(IT) 산업으로 구조 조정하겠다고 했다. 대기업과 대학, 대구시가 공동으로 건립하는 IT 관련 테크노 빌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원천 기술 보유 선도 기업을 10개 이상 유치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그는 열린우리당 이재용 후보가 제기하고 있는 대구경제 파탄 책임론에 대해서는, ꡒ2년 8개월의 재직 기간에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ꡓ며, ꡒ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대구시 공무원들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대구 뉴타운 개발계획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김 후보는, ꡒ180만 평의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대구 인구와 경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서울의 10배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ꡓ이라고 반박했다. 발로 뛰는 시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는, ꡒ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것을 보고 비판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ꡓ이라고 지역 정서를 설명했다.(김영석 記者 國民日報 05/07 17:59, 뉴스쿠키 2006년 5월 7일 (일)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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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