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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608:김범일(8)(附대곡사)
작성자장병창 @ 2011.07.08 06:14:28

   예천의 자랑(2608) : 김범일(8)(附 옛날 예천군 소속 절인 <대곡사> 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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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일(김범일 市長 國際外交 `러시ꡑ: UCLG ASPAC 會議 參席․이스라엘 企業體 訪問, 地域 優秀 醫療技術 會員都市 相對로 弘報 效果도) [記事] : 김범일 대구시장이 제11회 UCLG ASPAC 회의 참석 및 이스라엘 기업체 방문를 방문하는 등 국제외교를 잇따라 펼친다. 2009년 4월 23일 대구시에 따르면, 김 시장이 이스라엘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절삭기계 공구업체인 ISCAR 기업과 신재생 에너지 선도기업인 SOLEL 기업 방문에 이어 네팔 카투만두시에서 개최되는 제11회 UCLG ASPAC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5~30일까지 4박 6일 일정으로 출국한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UCLG ASPAC 회장으로 선출된(임기 2년) 김 시장은 이번 회의에서 집행위원회, 이사회를 주재하고 `세계금융 위기가 지역 경제에 끼친 영향ꡑ에 관한 주제발표와 토론회를 갖는다. UCLG ASPAC 회의 참석에 앞서 김 시장은 지역 최대의 외국 투자 기업, 대구텍의 모기업인 IMC 그룹 회장단을 면담하고, IMC 그룹의 주력사인 이스라엘의 ISCAR 기업을 방문, 지속적인 협력과 투자를 요청한다. 또 신재생 에너지 선도기업인 이스라엘의 SOLEL 기업을 방문해 시설견학과 함께 첨단 태양열 기술협력분야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 특히 이번 네팔 방문에는 지역의 한국․네팔협회 윤성도 회장(동산의료원 교수)을 비롯한 의료봉사단 10명이 27일~5월 4일까지 현지 카투만두 동산 병원에서 소아과, 피부과, 산부인과 등 관련 분야의 환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의 사랑의 의술을 무료로 펼친다. 시 관계자는 ꡒ이번 방문으로 대구시가 UCLG ASPAC 회장 도시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지역의 우수한 의료기술을 회원도시를 상대로 널리 홍보하는 계기가 될 것ꡓ이라며 ꡒ신재생에너지분야에 있어 세계적 기술보유국인 이스라엘 기업체 방문을  통해 지역 업체와의 상호 교류증진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지역의  신성장동력산업 창출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ꡓ고 말했다.(김장욱 記者 慶北道民日報 2009-04-23 (목) 19:26)

 

  김범일(김범일 大邱廣域市長 故鄕 醴泉 사랑과 人材育成 爲해 醴泉郡民獎學會에 獎學金 快擲) [記事] :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이 2009년 6월 3일 지역발전과 인재육성을 위해 예천군민장학회에 장학금을 보내와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하리면이 고향인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은 ꡒ어렵고 힘들었던 어린 학창시절이 생각나며, 고향의 후배 학생들이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기를 바란다ꡓ면서 ꡒ예천군민장학회를 통해 예천이 교육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 줄 것ꡓ을 당부했다. 특히, 군민과 출향인, 기관단체, 고사리손의 어린 학생들까지 예천을 사랑하는 모든 군민이 성금의 크고 적음에 관계없이 줄을 이어 기탁 릴레이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며 출향인으로서 가슴 뿌듯하고 예천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했다. 장학회 관계자는 ꡒ이번에 대구ㆍ경북을 대표하는 김범일 대구시장이 장학금을 기탁해 와 예천군민들과 예천군민장학회는 더 없이 고맙게 생각하고 많은 출향인들이 동참하리라고 기대한다ꡓ고 말했다.  지역민들은 물론이고 경향 각지에서 자랑스런 예천인이란 긍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출향인들의 줄을 잇는 고향 사랑은 경기침체와 수입개방 등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 군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예천군민장학회가 어느 지역보다도 크게 발전하고, 미래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많은 사업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醴泉인터넷放送 2009-06-04 오전 11:14:00)

 

  김범일([第6回 地方自治經營大展 招待席] 김범일 大邱市長 : "도심 재생사업, 글로벌都市 기폭제로" '아름다운 大邱' 각인 온힘消防官大會․陸上選手權 等 잇단 國際行事 開催로 活力) [記事] :ꡒ국제행사가 끊이지 않는 대구를 도심재생사업을 통해 글로벌도시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ꡓ 김범일 대구시장은 ꡒ비수도권 내륙도시인 대구는 국제화하기 어려운 여건을 갖고 있다ꡓ며 ꡒ하지만 내년 8월에는 60여 개국에서 1만여 명의 소방관과 소방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세계소방관경기대회를 비롯, 수년 간 국제대회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어서 글로벌도시로 변모할 것ꡓ이라고 전망했다. 김 시장은 ꡒ213개국에서 7,000여 명의 선수와 임원 등이 참가하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끝나면 세계 어디를 가도 ꡐ대구ꡑ라는 이름은 잘 알려져 있을 것ꡓ이라며 ꡒ월드컵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 눈뜬 시민의식이 2011년을 계기로 세계표준에 맞춰질 것으로 자신한다ꡓ고 말했다. 2011년 육상대회의 컨셉은 ꡐ저탄소 녹색대회ꡑ다. 대회장소인 대구스타디움과 선수촌 주변에 태양광발전시설을 설치하고 도심의 먼지를 최소화하는 ꡐ클린로드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0년 솔라시티를 선언한 대구는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 줄이고 신재생 에너지 보급률을 수요의 10%까지 확대하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2013년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에너지총회는 국제사회에서 ꡐ저탄소 도시ꡑ 대구의 브랜드를 확립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ꡒ너절한 간판과 한전배전반, 노점상으로 어지러웠던 동성로와 중앙로, 동대구로 등 도심이 무대와 분수, 벤치, 가로수로 뒤덮힌 아름다운 거리로 바뀌고 있습니다.ꡓ 김 시장은 ꡒ도심 재생이 활력있는 글로벌도시의 기폭제가 될 것ꡓ이라며 ꡒ세계인들이 이 달라진 도심 풍경을 통해 대구를 국제적 도시로 각인하도록 온 힘을 쏟겠다ꡓ고 말했다. 그는 유치전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첨단의료복합단지와 관련, ꡒ모든 지자체들이 계약을 하려고 뛰어든 일본 고베첨단의료복합도시와 미국 화이자 제약회사가 대구와 업무협약을 한 것만 봐도 의료 인프라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ꡓ이라고 말했다. 김 시장은 이 달 중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는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고, 브란덴부르크문에서 ꡐDaegu/ Korea-Dayꡑ 행사를 여는 등 차기 대회 개최도시 시장으로서 대구와 한국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약력 ▲1950년 경북 예천 출생 ▲경북고·서울대 상대 졸업 ▲1973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1993년 대통령 행정비서관 ▲1998년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2002년 산림청장 ▲2003년 대구시 정무부시장 ▲2006년 대구시장(전준호 記者 韓國日報 200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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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예천군 소속 절인 <대곡사> 책 출간

 

  대곡사(大谷寺) [冊] : 김부일 기획, 강신엽 역주, 이주용 사진, 유정서 편집, 홍순규 디자인, 등목이 엮은 책으로, 168쪽, 사진, 24cm, 구광프린팅에서 인쇄하여 도서출판 동재(경기 용인)에서 2011년 6월 10일에 펴내었다. 대곡사라는 사찰은 의성군 다인면(1274년-1896년 예천군 소속)에 있는 사찰이다. 목차는 대곡사에서 자다(유세명) =4, 축시(현봉 근일) =7, 사료로서의 가치와 그윽한 운치 함께 담긴 아름다운 절 대곡사 이야기(등목) =8, 제1부 대곡사 신기, 1. 대곡사를 말하다 =16, 2 대곡사와 인물들(이규보, 정탁, 임상원, 유성룡, 정영방, 정경세, 유한준, 최석정, 권문해, 이안눌, 정범조, 서성구, 권두경, 이동표) =40, 제2부 대곡사 문향 1. 시문(정범조, 김태일, 유세명, 권두경, 김용한, 정훈, 이규보, 정탁, 권만, 권문해, 임상원, 이만부, 김용하, 이래, 전오륜, 이우, 김태일, 김창문, 권노경, 박응형, 이동표, 유한준, 장진, 정간, 권혜, 김남일, 서성구, 이복, 김돈, 김흥복, 김만휴, 금영택, 홍대구, 정영방) =58, 사적기·상량문(태허, 권노경, 등계벽담, 사순, 청담) =114, 3. 제문(최석정, 권문해, 김용한, 김용하) =142, 4. 산문(정태래) =152, <대곡사> 출간에 덧붙여(김부일) =160, 작품색인 =166이다.(作成 張炳昌)

 

대곡사(大谷寺), 대국사(大國寺), 절 [寺刹] : 예천군 현동면(醴泉郡縣東面, 多仁縣, 現 義城郡 多仁面 鳳井里 山 894) 비봉산(飛鳳山)에 있는 사찰로, 대곡절마을에서 비봉산(飛鳳山)을 향해 600m를 올라가면 우거진 숲 속에서 우연히 모습이 나타난다. 1368년(공민왕 17)에 왕사(王師)인 지공 선사(指空禪師)와 나옹 선사(懶翁禪師)가 창건,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壬辰倭亂),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전소(全燒)되어 1605년(선조 38)에 원유 대사(垣裕大師)가 중창(重創)하였고, 향적전(香寂殿, 1623), 범종루(泛鍾樓, 1650, 地方有形文化財 161號), 명부전(冥府殿, 1658)이 세워지고, 1687년(숙종 13)에 태전 대사(太顚大師)가 중건(重建)하고, 대곡사(大谷寺)라 개칭하였다. 1743년(영조 19)에 대웅전 삼존불상(大雄殿三尊佛像)을 개금(改金)하였고, 1751년(영조 27)에 대웅전(大雄殿, 地方有形文化財 第160號)을 번와(飜瓦)하였다. 1847년(헌종 13)에 구포루(九苞樓)를 세웠다. 1976년 신도회(信徒會)에서 28평의 요사채를 세웠다. 1988년에 신도 권회준(權會俊)의 성금으로 나한전(羅漢殿)을 복원(復元)하고, 같은 해 신도 엄희섭(嚴熙燮)의 성금으로 산신각(山神閣)이 복원되었다.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시(詩)로써 이르기를, "돌 길이 높고 낮아서, 평탄하기도 평탄하지 않기도 하니, 한가한 손이 조랑말을 타고 채찍을 늘어뜨리고 가네. 가벼운 바람은 고요히 연기 빛을 쓸어가고, 넘어가는 달 때로는 새벽빛을 겸하여 밝다. 짧은 산기슭 앞머리에는 절의 현판을 보고, 배를 옆 언덕에 가로 대고는 여울 이름을 묻는다. 외로운 마을 어디에서 차거운 피리를 부는가. 타향에서 병들어 있는 사람의 심정은 괴로워지기 쉬운데."라고 하였다.(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醴泉郡邑誌 1780 1841 1895, 醴泉郡誌 1939, 嶠南誌 1937, 多仁面誌 1992)

 

 [인터넷 야후] : 예천군 다인현(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비봉산에 있는 사찰로, 1368년(공민왕 17)에 왕사인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가 창건하였다. 산내에는 본원을 비롯 구암을 지어 불교를 숭상하게 하여 호국 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고려시대의 대찰이다. 경내에는 대곡사 대웅전(지방유형문화재 160호), 대곡사 법종각(지방유형문화재 161호)의 지정 문화재가 있다. [正門] : 이 절의 정문은 현재 없으나 지금 송덕비가 서있는 곳이 정문이 있는 위치라고 한다. 때문에 그 앞 들 이름을 정문들이라고 한다. 정문으로부터 약 300m 올라가서 수로가통(水路架通)이 있는 부근에 장승이 있었으니 정문의 위치를 더욱 확인해 준다. 장승은 이 곳에 묻혀있던 것을 한 개 찾아서 보존하고 있다. [創建] : 1687년(숙종 13)에 태전 대사(太顚大師)가 대국사(大國寺)를 중건할 때 태전 대사가 이 곳 태행봉(太行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본 즉 100리나 되는 긴 계곡이 절을 감싼 채 돌아가고 있어 대곡사(大谷寺)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향토사연구회 <향토사연구> 제1집(1989.11)에서는 창건 연대를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창건되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탑밭에서 출토한 금동불상과 13층 청석탑, 그리고 이규보의 '17일 대곡사 탐방시'를 들고 있다. [伽藍 配置] : 절 전방에 누각 형식의 범종루가 있고, 그 뒤 한 층 높은 대지 위에 탑신이 없는 다층석탑을 중심으로 좌측(南)에 요사채, 우측(北)에 명부전이 마주 보고 서 있으며, 탑의 뒷쪽 높은 석대의 기단 위에 대웅전이 세워져 있는 입 구(口) 자 형의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즉 대웅전, 석탑, 범종루 등이 동서 축상(軸上)에 놓이고 축이 좌우 대칭적 요사체와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어 13층 청석탑(靑石塔)을 중심으로 한 단탑식(單塔式) 가람에 속한다. 이것은 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가람 배치가 금당(金堂)과 탑이 남부 자오선상(子午線上)에 일직선으로 놓이는 데 비하여 남북이 협소한 지세의 조건에서 동서축 선상에 이루어진 산지 가람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木造建築物] : 1) 대웅전(大雄殿, 地方有形文化財 第160號) : 자연석을 막돌 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동향하고 있다. 기둥 위에 평방(平枋)을 돌리고, 기둥 위와 그 중간에 각각 공포(공包)를 배치한 다포계(多包系) 양식(內外 3出目)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8작 지붕을 하고 있다. 내부는 대들보 밑까지 초각(草刻)으로 연결하였고, 내부 상부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건물 양식의 세부를 종합해 보면, 조선 중기의 특색을 많이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대웅전 지붕의 암막새에 나타난 명문(銘文)인 "萬曆 三十二年"(1604, 宣祖 37)에서도 중창 때의 양식이 그대로 잘 보존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2) 범종각(梵鍾閣, 地方有形文化財 第161號) : 이는 다포계 양식의 8작 지붕으로 건축된 중층(重層)의 누각이며,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이다. 공포는 외2출목(外二出目)을 두었고, 외부 제공(諸工)은 앙설형(仰舌形)으로 되었으나 앙설 윗몸에 연꽃을 조각하였고, 내부 제공은 한몸으로 연결하여 조각하였다. 범종각은 외부에서 돌출된 쇠서의 형상으로 보아서는 대웅전보다 시대가 약간 떨어지는 건물로 대웅전의 조각 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포계 건물로서 좁은 측간에는 주간포작(柱間包作)이 1기(基) 놓여 있는데도 넓은 중앙 칸에는 포작이 놓여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귀포에서는 외부 2출목에 한 칸을 더 출목시켜 3출목으로 외목도리를 한 칸 더 돌출시켜 서까래를 받게 한 것 등은 특이한 기법으로 생각된다. 3) 요사(寮舍) :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한 주포(柱包) 건물로, 원래는 명부전과 대응되는 규모를 가진 건물이었던 것을 좌측 1칸이 부엌칸으로 개축된 것으로 생각된다. 첨차의 외단부(外短部)에 돌출된 쇠서의 형상이 다포계 건물의 앙설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어 조선 후기에 개조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지만 전체적인 가구(架構) 수법은 명부전보다도 격이 높은 조선 중기의 기법을 보이고 있다. 4) 명부전(冥府殿) :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하고있는 주심포(柱心包) 집이다. 요사채의 건축 양식과 비슷한 건물로 주심포계의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어 1687년(숙종 13)에 중건할 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遺物] : 1) 금동불상(金銅佛像) : 이는 1960년 여름에 절앞 탑밭에서 출토되었는데, 대좌 일부와 두광(頭光)이 결실되고, 두정(頭頂)이 손상된 보살입상이다. 높이가 9.4cm이다. 머리 뒷면에 두광의 흔적인 돌기가 남아있으나 두정은 손상되어 어떤 보살불상인지 알 수 없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이며 길게 드리워져 왼쪽 무릎을 덮었고, 가슴에는 영락(瓔珞)을 둘렀는데 가락을 무릎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구슬을 잡았고, 왼손 또한 아래로 내려 반장(反掌)하였다. 대좌는 원판형(圓板形)에 소문(素文)이고, 신대(身臺)는 불에 그을려 검은 빛을 띄고 있으나 얼굴 부분과 법의 사이로 도금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으며 장신(長身)이다. 이 불상의 조성 연대는 조각 기법이 섬세하고 법의의 주름, 소문한 원판형 대좌 양식 등에서 살펴볼 때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2) 13층 청석탑(靑石塔) : 이는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대웅전 앞에 있다. 이는 기단중석 옥신, 상륜부 등을 결실하였는데, 옥신석이 없는 방형의 옥개석 12개만이 중석을 잃고 서로 포개고 있는 위 아래의 연화대석 위에 중첩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은 점판암제의 탑신부와는 달리 화강석으로 3단을 놓았는데 현재 맨 아랫부분은 시멘트로 넓게 덮고 있어 원형을 잃고 있다. 단판(單辦)의 앙복(仰覆) 연화문을 각각 24판씩을 조각한 단층 기단의 상하 돌이 중석을 결한 체 중첩되어 있다. 이 탑과 유형이 같은 해인사 원당암(願堂庵) 다층석탑의 기단 형식으로 볼 때 복련석(覆蓮石)과 앙련석(仰蓮石) 사이에 우주(隅柱)를 대리석으로 하고 면석(面石)을 점판암으로 만들어 끼운 단층 기단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에는 12매의 옥개석만이 중첩되어 있고, 옥신석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옥개석의 추녀 밑에는 반전(反轉)이 있고 얕은 3단의 각형(角形) 밭침이 있는데 위의 몇 층은 옥개 받침이 파손되어 1단(9번째) 혹은 2단(10번째)만 남아있는 것도 있다. 이 탑은 현재 12층을 이루고 있지만 6번째와 7번째 옥개석의 크기가 다른 옥개석간의 체감 비율에 비해 급격한 차이를 이루고 있어 그 사이의 옥개석(본래의 7층)이 없어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 탑은 13층이라고 할 수 있다. 옥신석은 전부 망실되어 알 수 없으나 옥개석의 평면도와 단면도에서 살펴볼 것 같으면 기단의 면석과 같이 대리석 우주를 세우고 그 사이에 4매의 면석을 끼운 방형의 옥신을 한 것 같다.  금산사(金山寺) 6각다층석탑의 유례로 보아 면석에는 여래좌상 혹은 다른 화려한 조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4층 옥개석부터 12층 옥개석까지 중앙에 7.5cm의 찰주공(擦柱孔)이 관통하고 있다. 이 탑은 석질이 연한 점판암으로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기단부와 옥신의 면석에 여래상을 비롯한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적 파손과 도굴로 인해 현재 옥개석만 남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이 청석탑의 특징은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지대석은 두텁게 대리석으로 한 점, 그리고 기단부와 옥신부의 우주를 대리석으로 하고, 그 위의 기단과 옥신의 면석 및 옥개석 등을 점판암으로 축조한 점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석탑은 특수한 석재를 사용한 점에서 이색적인 감을 자아내고 있는 반면 각 층의 체감 비례가 일정하게 점차적이고 옥개석의 두께가 얇고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네 모서리의 전각이 심하게 반전하여 매우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이 탑을 한결 더 우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 탑의 조성 시기는 기단의 상하 대석의 연화무늬나 각 층 옥개석의 조각 수법 등에서 신라시대의 예를 찾아볼 수 있어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의 축조 시기와 같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인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의 사용된 석재가 크지 못하므로 소규모의 석판뿐인데 석질이 또한 연하여서 각 부재(部材)가 파손되거나 훼손되고 있어 완형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탑의 지대석과 기단부 및 옥신부의 우주석에만 화강석으로 조성되고 그 외는 모두 점판암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이것도 아마 석재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3) 석등(石燈) : 이는 대웅전 앞뜰 13층 청석탑 앞에 있다. 하대석, 간주석, 그리고 상대석 일부만 남아있을 뿐 화사석(火舍石) 이상은 결실되어 있다. 조선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4) 기타 : 범종각에서 대웅전에 오르는 돌계단의 좌측과 우측에 석재, 석등재, 부도재, 대석 등 여러 종류의 석물을 탑처럼 만들어 놓고 있다. 이들은 절 경내외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둔 것이다.(인터넷 야후 2001)

 

   [인터넷] : 대곡절 마을에서 비봉산(飛鳳山)을 향해 600m 올라가면 우거진 숲 속에 모습이 나타난다. 이 절의 정문은 없으나, 지금 송덕비(頌德碑)가 있는 곳이 정문이 있던 위치라 한다. 절에 비치한 연혁에 의하면, 1368년(공민왕 17) 왕사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가 창건한 가람으로, 처음에는 대국사(大國寺)라 불렀다.(my.netian.com 2002)

 

 [慶北道廳 홈페이지] : 관리 기관은 다인면사무소이고, 다인면은 의성군과 인접하고 있는 상주시, 예천군, 안동시 등 4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신도수가 1,200여 명이나 된다. 지공 선사와 나옹 선사가 원(元) 나라에서 수도를 할 때, ‘영남 예천 땅 자징산 남쪽 기슭에 절을 창건하여 불교를 포교하면 대성한다.’라는 계시를 받고 귀국하여 이 사실을 국왕에게 고하였다. 국왕은 이 두 국사의 도력이 높은 것을 알고 나라 군병들에게 명하여 두 선사로 하여금 이 곳에 사찰을 창건하게 하고 사찰의 이름을 대국사(大國寺)라 불렀다 한다. 이 때부터 이 곳에 불교를 공부하는 승려들이 모여들어 수도를 하였으며, 사내에는 봉원을 비롯 아홉 암자(九庵)를 지었다. 그 후 정유재란 와중인 1598년(선조 31)에 본원과 암자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원우(垣祐) 대사가 소실된 사찰을 새로이 세우고, 선객들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숙종 때 태전(太顚) 선사는 지방민들에게 불교를 숭상하게 하여 그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하였다. 당시의 명칭은 ‘예천군 대행산 대국사(醴泉郡 太行山 大國寺)’였으나 태전 선사가 이 곳 태행봉(太行峰)에 올라 사방의 지형을 살펴본 즉 백 리나 되는 긴 계곡이 있으므로 대곡사(大谷寺)라 개칭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飛鳳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온갖 풍상과 전란을 겪으면서 유지되어 왔으나 그 옛날의 영화롭던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되었다. 지금은 큰 사원과 암자들이 정치적 혼란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의 다 없어지고 1650년에 새운 대웅전과 1623년에 세운 향적전, 1650년에 세운 범종루, 1656년에 세운 명부전이 있고, 아홉 암자 중 1647년에 세운 적조암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뿐이다. 석축, 석화대, 13층석탑 등이 연구 자료로 그 가치가 인정되며, 현재의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범종루는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이며 중층으로 팔작지붕이다. 불전상에 닫집 같은 것이나 법종루 같은 것을 보면 연대가 오래된 것만은 사실이다. 범종루에 봉안되어 있던 홍규와 종은 예천 용문사로 가져갔다고 한다. 현재 대곡사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60호 대웅전과 161호인 범종각 등 2점의 지방 지정 문화재가 있다.(慶尙北道 홈페이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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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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