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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637) : 엄대일(2)-엄흥복-여현덕(1)(附 예천방문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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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대일 [記事] : 감천중학교 12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감천중학교 총동창회 창립총회 개최 -- (2003.11.09. 일)/ 글쓴이 : 박추동/ 2007.10.13 14:15/ 감천중학교 총동창회 창립총회가 2003년 11월 9일 모교 강당에서 개최됐다. 이날 모임에는 초대 교장을 역임한 엄대일 은사와 장병옥 선생을 비롯한 서울․대구․부산 등지에서 2백여 명의 졸업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오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ꡒ감천중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만큼 이에 걸맞게 동창회의 활성화와 동창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는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동창회가 되도록 모두가 노력하자ꡓ고 하며 ꡒ앞으로 더 많은 동문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ꡓ고 말했다. 은사로 초대된 엄대일 초대교장은 격려사를 통해 ꡒ지난 1954년 5월 21일 30대 중반의 한창나이에 감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올 당시 만해도 교원도, 교실도, 학생도, 감천중학교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ꡓ고 회고하고 ꡒ다만 감천고등공민학교를 언덕에 의지하고 모태로 삼아 지역인사들의 열렬한 교육애로 빚어낸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중학교를 6월 13일 개교식을 치렀던 일들이 주마등같은 추억으로 새로울 뿐ꡓ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에 앞서 회원들은 고문에 정병호(1회) 초대회장으로 권오호(1회) 실무부회장에 조경섭(17회) 사무국장에 조동윤(17회) 감사에 우대영(8회), 김종협(12회), 김대원(15회) 회원이 각각 선임했다. 이어 2부에서는 기별 노래자랑으로 화합의 장을 펼쳤으며 회원 상호간의 우의를 돈독히 나누기도 했다. 감천중학교는 1954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8천5백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감천중 총동창회 성금, 시상품 기탁] : 감천중학교 총동창회(회장 정병호)에서는 2003년 11월 9일 창립총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모교발전을 위해 5백만 원의 성금과 25인치 TV 1대, 쌀 40kg 등 총회시 모금한 성금과 시상품을 감천중학교에 기탁했다.(daum 2007)
엄대일 [記事] : 예천군민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감천면] 예천 감천 중,고등학교 졸업식 이모저모!/ 글쓴이 : 예천사랑/ 2007.02.24 22:11 2007-02-16 오후 12:28:41/ 김상국 기자가 취재한 감천 중,고등학교 졸업식 이모저모!/ 감천중․고등학교(교장 김상한) 졸업식이 2007년 2월 15일 오전 10시 김영규 군의원, 정석홍 감천면장, 장광섭 지구대장, 임원재 새마을금고이사장, 기관단체장 및 학부모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 강당에서 개최됐다. 지난 1954년 6월 13일 감천중학교(초대교장 엄대일-3학급)로 개교된 이후 76년 3월 1일 감천고등학교가 개교(6학급) 됐으며 중학교(53회-8,595명 졸업) 고등학교(29회-1970명 졸업)인가를 받았다. 감천중․고등학교는 2007년 졸업생 30명(중14명, 고16명)을 포함 총1만565명의 졸업생을 배출시켰으며 2007년도 신입생은 51명(중학교 30명, 고등학교 21명)으로 11개 면 중 최고의 명문 중․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상국 記者 출처 : 예천인터넷뉴스)
엄대일 [記事] : 예천군민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감천면] 감천중학교 제22회 졸업생, 졸업 30주년 기념 및 동창회 성황리 개최/ 글쓴이 : 예천사랑/ 조회수 : 393/ 2006.05.17 09:56 2006-05-14 오후 5:05:00/ 감천중학교 제22회 졸업생, 졸업 30주년 기념 및 동창회 성황리 개최/ 감천중학교(교장 김상한) 제22회 졸업생(졸업생 378명)들은 오전 11시 모교 강당에서 100여 명의 남,여 동창생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 30주년 기념 및 창립총회를 가졌다. 감천중학교는 지난 1954년 6월 13일 3학급으로 개교해(초대 엄대일 교장) 2005년 2월 18일 현재까지 51회 8,558명의 졸업생을 배출시켰으며 이번 22회 졸업생 총회에서는 30년 전 각반 담임(1반~김종우, 4반~이정자, 5반~박영자) 선생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품 전달 및 다과.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신임 장주덕 회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모교 발전과 후배와 고향을 위해 뜻을 모아 앞으로 2년동안 열심히 할 것을 결의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선생님들은 30년 전을 회상하며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에 교육의 보람을 느끼며 늘 잊지 않고 찿아준 제자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새로운 회장에는 장주덕, 부회장 권태주 외 각 지역 7명, 총무 권영복, 감사 이춘희, 이순영 씨가 각각 선출 되어 앞으로 2년간 22회 감천중학교 동창회를 이끌어 가게 된다.(김상국 記者 출처 예천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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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복 : 1958- , 감천면 천향리 출신, 대일(大鎰)의 아들, 예천초등 3년 수료, 대구사대부고, 86년 영남대 건축공학과 졸업, 92년 대구 수성구 중동 47-1 두래빌딩 4층에 있는 (株)당주(堂柱)종합건축사무소 대표이사이다.(醴泉新聞 1995.3.16, 醴泉文學 제29권 2004)
엄흥복('누구나 살고 싶은 집 設計' : (株)당주建築事務所 엄홍복 所長) [記事] : `훌륭한 건축가와 그렇지 않은 건축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평범한 건축가는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가지만 훌륭한 건축가는 어떤 유혹에도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ꡑ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ꡑ의 말이다. 건축가 엄홍복(46) 소장은 물론 후자에 속한다. 엄 소장은 건축가보다 예술가로 부르는 편이 맞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엄 소장은 어떤 건축에서 이미 주어진 룰이나 공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수평적 구성은 그에게는 단조롭고 지루하기만 하다. 반드시 네모 난 공간 속에 모든 것이 일정하게 담겨야 한다는 타성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벌집과도 같은 6각형의 연속, 또는 달팽이 같은 나선형의 외부를 내부까지 끌어들여 음악에서의 소용돌이 모양, 나선형 모양의 곡선미도 얼마든지 가능하며 다양한 모양의 시도를 한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을 얼마든지 누릴 권리가 있다는 논리다.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과학적인 해결 방법만으로 건축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뿐이다. 그래서 엄 소장은 빚어 만드는 건축, 살고싶은 집, 삶을 생각하게 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하며 건축의 새 방향을 제시한다. 엄 소장은 반드시 `나의 집ꡑ을 짓는다는 자세로 임한다. 그러나 그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온 착각은 걸핏하면 건축주나 집주인과 트러블을 만들기 십상이다. 건축주의 개성과 의도하는 바를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그 기능이 위배되지 않는 한 건축가로서의 시각과 의지를 최대한 반영시키려고 그의 고집과 열성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기보다는 창작의 의지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건축물 설계 때 물론 빠른 시일 내 일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맡은 작업에 대해서는 혼을 담아내려고 하는 엄 소장의 노력이 있기에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엄 소장은 건축 설계를 종합 예술이라고 말한다. ꡒ창조적인 것, 예술적인 부분이 작업상 매력을 주고 희열을 느끼게 하기에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 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등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면을 반영하여 건축물을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부분을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ꡓ며 건축의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엄홍복 소장은 감천면 천향리 태생으로 엄대일 대한노인회 예천군지회장의 자제다. 영남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종합건축사 `그룹․원ꡑ과 `도시ꡑ에서 근무하면서 건축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현재 (주)당주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일하고 있다. 건축에서 건물은, ꡒ사람이 사는 그릇이다ꡓ라고 말하는 엄 소장은, ꡒ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물론 건축물의 기능보다는 심미적인 느낌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하나의 공간 예술로서 승화시킨다ꡓ고 말한다.(醴泉新聞 2004-02-27 10: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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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덕(呂鉉德) : 1961- , 예천읍 통명리 출신, 택의 2남, 예천초등(60회), 대창중(25회),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정치학과 석사,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원(東西問題硏究院硏究員), 학술단체 한국정치연구회 창립 활동, 월간 '민족 지성' 기자, 동 편집위원, 도서출판 공동체 기획위원, 연세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등 강사(約 7年), 청와대(대통령비서실) 민정과장(民政課長),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연구원(政治分科),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동 연구교수,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이다. 재단법인 여의도연구소 정책연구위원, 98년 미국 칼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교환교수, 99년 중앙일보 뉴욕판 객원 편집위원 겸 논설위원, 신한국당 선대위 부대변인이었다. 저서로 <서울을 읽자(1996, 共著)>, <세계 체제론>, <해방 전후사의 인식(공)>, <민주주의 혁명론>, <현대자본주의와 정치 이론(공)>, <한국정치론(공)>,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공, 조선일보사, 1992)>, <한국 정치 사회의 새흐름(공)>이 있다. 논문으로, ‘장면 정권의 붕괴와 미국의 역할’ 등이 있다.(醴泉新聞 1995.6.8 1996.8.1 1998.9.3 1999.1.21, 醴泉文學 20號 1999, 松園金敎容先生傘壽紀念論文集 1997, 朝鮮日報 DB 2003)
여현덕 : 연세대 정치학 박사로, 연세대.서울시립대.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등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였으며, 대통령자문 21세기 위원회 연구원,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청와대 민정과장, Columbia대 및 U-Penn. Visiting Scholar, 뉴욕 중앙일보 객원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또한 미국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온라인 제작자 로저 생크(카네기멜론대 석좌교수)를 만나 지식-교육회사 에드퓨처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2002년 현재 서울외대 지식연구소장으로 지식산업과 글로벌 거버넌스를 공부하면서 다보스포럼 자문역 겸 한국대표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에 <민주주의혁명론>, 지은책에 <서울을 읽자> 등이 있다.(daum 2007)
여현덕('유엔 平和大學 서울事務所 誘致' : 呂鉉德(醴泉邑 出生) 敎授 '지난 2003年부터 努力') [記事] : 2007년 4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들어선 유엔 부설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인 ꡐ유엔 평화대학(유피스)ꡑ 서울사무소 유치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ꡒ이제 글로벌 인재양성과 우리나라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ꡓ고 말했다. 여현덕(예천읍 통명리 출생) 교수가 유피스 사무소를 한국에 끌어오자고 논의한 것은 지난 200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회의 때 시작됐다고 한다. 다보스포럼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여현덕 교수는 한국 정부 특사단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내자는 것과 함께 유피스 아시아․태평양 센터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냈다.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특사 자격으로 참여한 시절이었다. 여 교수가 유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연세대에서 국제기구, 글로벌 거버넌스(통치), 글로벌 리더십 분야를 강의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ꡒ유피스 이사, 유엔 간부들과도 접촉하면서 자연스레 저한테 ꡐ그 일ꡑ이 맡겨졌던 것ꡓ이라며 웃었다. 이토록 여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피스는 인권과 환경, 평화, 분쟁 해결 분야의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국제기구이자 대학원이다. 유피스 사무소 개설은 뉴욕, 제네바에 이어 세 번째다. 유피스의 석박사과정만 졸업해도, 유엔 등 국제기구 채용시험에서 서류전형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상당히 동경하는 학교이다. 여 교수는 ꡒ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틈만 나면 비행기 타고 미국, 유럽, 중남미 등 밤낮 뛰느라 고향에도 못갔다ꡓ며 ꡒ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고 평화, 인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게 목표ꡓ라고 말했다. 한편 유피스는 1차로 80억 원의 기금을 만들어줬고, 이제 2009년까지 5백억 원의 기금을 확대하여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글로벌 인재양성 재단이 출현한다.(醴泉新聞 2007년 09월 06일 11:44:50)
여현덕 [記事] : ...삼촌인 여현덕(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씨는 ꡒ성운이는 어릴 때부터 활발하고 항상 한국을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을 세계에 많이 알리도록 노력할 것ꡓ이라고 말했다.(醴泉新聞 2007년 08월 30일 14:28:52)
여현덕 [記事] : 예천초등학교60회동창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유엔 평화대학 -여현덕 교수 (예천초60회) / 글쓴이 : 權 垠 (권삿갓)/ 2007.09.07 01:52/ '유엔 평화대학 서울사무소 유치' / 여현덕 (예천초등60회) 교수/ '지난 2003년부터 노력' / 2007년 4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들어선 유엔 부설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인 ꡐ유엔 평화대학(유피스)ꡑ 서울사무소 유치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ꡒ이제 글로벌 인재양성과 우리나라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ꡓ고 말했다. 여현덕(예천초60회) 교수가 유피스 사무소를 한국에 끌어오자고 논의한 것은 지난 200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회의 때 시작됐다고 한다. 다보스포럼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여현덕 교수는 한국 정부 특사단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내자는 것과 함께 유피스 아시아․태평양 센터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냈다. 여 교수가 유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연세대에서 국제기구, 글로벌 거버넌스(통치), 글로벌 리더십 분야를 강의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ꡒ유피스 이사, 유엔 간부들과도 접촉하면서 자연스레 저한테 ꡐ그 일ꡑ이 맡겨졌던 것ꡓ이라며 웃었다. 이토록 여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피스는 인권과 환경, 평화, 분쟁 해결 분야의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국제기구이자 대학원이다. 유피스 사무소 개설은 뉴욕, 제네바에 이어 세 번째다. 유피스의 석박사과정만 졸업해도, 유엔 등 국제기구 채용 시험에서 서류전형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상당히 동경하는 학교이다. 여 교수는 ꡒ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틈만 나면 비행기 타고 미국, 유럽, 중남미 등 밤낮 뛰느라 60회동창회에도 못갔다ꡓ며 ꡒ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고 평화, 인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게 목표ꡓ라고 말했다. 한편 유피스는 1차로 80억 원의 기금을 만들어줬고, 이제 내 후년까지 5백억 원의 기금을 확대하여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글로벌 인재양성 재단이 출현한다.
여현덕 [記事] : 재경예천 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여현덕] 서울 유피스에서 평화와 인권을!/ 글쓴이 : 大昌 總 同門會/ 2007.09.08 11:00/ [여현덕] 서울 유피스에서 평화와 인권을!/ 2007년 4월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전파진흥원 빌딩 6층에 유엔 기구가 들어섰다. 유엔 부설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인 유엔평화대학(유피스) 서울사무소. 유피스는 인권과 환경, 평화, 분쟁 해결 분야의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국제기구이자 대학원이다. 유피스 사무소 개설은 뉴욕, 제네바에 이어 세 번째다. 유피스 사무소를 한국에 끌어오자는 논의는 200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회의 때 시작됐다고 한다. 다보스포럼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45)가 한국 정부 특사단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내자는 것과 함께 유피스 아시아․태평양센터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냈다. 여 교수가 유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연세대)에서 국제기구 글로벌 거버넌스(통치), 글로벌 리더십 분야를 강의한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ꡒ유피스 이사, 유엔 간부들과도 접촉하면서 자연스레 저한테 ꡐ그 일ꡑ이 맡겨졌던 것ꡓ이라며 웃었다. 유피스 사무소 개설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건 2006년 9월 유치위원회가 꾸려지면서부터였다. 이때 위원장으로 참여한 이가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이었으며,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여현덕 교수는 상임위원으로 유피스 쪽에 서울사무소 조기 설립을 건의하는 것을 비롯한 실무 작업과, 유피스에 대한 자문역을 맡았다. 유피스 서울사무소장은 여 위원의 추천을 거쳐 유피스 쪽에서 임명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여 교수는 ꡒ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고 평화, 인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게 목표ꡓ라고 말했다. 유피스 서울사무소는 유엔 교육기구(UNITAR)에서 파견한 교수진을 초빙해 유엔 시스템과 평화 활동에 관한 강의 프로그램을 5월 3일부터 6개월 동안 선보일 예정이다. 또 2008년 3월부터 연세대, 한국외국어대와 공동으로 30~50명 규모의 학위 과정을 열 예정이며, 2009년부터는 석․박사 과정 200여 명의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 아래 2008년 3월 캠퍼스 착공에 들어간다. 여 교수는 ꡒ유피스에 들어오려면 외국어 능력뿐 아니라 평화, 인권에 대한 소양과 헌신, 열정을 갖춰야 한다ꡓ고 말했다.
여현덕 [記事] : 재경예천 대창중고등학교 총동문회 카페에서 공개한 게시글입니다./ [동문소식] '유엔 평화대학-여현덕(대중25회) 교수/ 글쓴이 : 大昌 總 同門會/ 2007.09.07 01:49/ '유엔 평화대학 서울사무소 유치'/ 여현덕 ( 대창중25회/예천초60회) 교수/ '지난 2003년부터 노력' /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들어선 유엔 부설의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인 ꡐ유엔 평화대학(유피스)ꡑ 서울사무소 유치에 남다른 감회를 갖는 여현덕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ꡒ이제 글로벌 인재양성과 우리나라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ꡓ고 말했다. 여현덕 (대창중25회/예천초60회) 교수가 유피스 사무소를 한국에 끌어오자고 논의한 것은 지난 200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회의 때 시작됐다고 한다. 다보스포럼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여현덕 교수는 한국 정부 특사단에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내자는 것과 함께 유피스 아시아․태평양 센터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냈다. 여 교수가 유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연세대에서 국제기구, 글로벌 거버넌스(통치), 글로벌 리더십 분야를 강의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ꡒ유피스 이사, 유엔 간부들과도 접촉하면서 자연스레 저한테 ꡐ그 일ꡑ이 맡겨졌던 것ꡓ이라며 웃었다. 이토록 여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피스는 인권과 환경, 평화, 분쟁 해결 분야의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는 국제기구이자 대학원이다. 유피스 사무소 개설은 뉴욕, 제네바에 이어 세 번째다. 유피스의 석박사과정만 졸업해도, 유엔 등 국제기구 채용 시험에서 서류전형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상당히 동경하는 학교이다. 여 교수는 ꡒ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틈만 나면 비행기 타고 미국, 유럽, 중남미 등 밤낮 뛰느라 고향에도 못갔다ꡓ며 ꡒ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고 평화, 인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는 게 목표ꡓ라고 말했다. 한편 유피스는 1차로 80억 원의 기금을 만들어줬고, 이제 내 후년까지 5백억 원의 기금을 확대하여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글로벌 인재양성 재단이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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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776
예천진호국제양궁장(洋弓의 꿈나무들 醴泉珍浩國際洋弓場으로 : 第38回 韓國中高洋弓聯盟會長旗 中.高 洋弓大會 開催) [記事] : 제38회 한국중고양궁연맹회장기 중고 양궁대회가 2011년 8월 5일 1,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개회식을 시작으로 3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양궁 꿈나무들의 경연장인 이번 대회는 매년 우수한 선수들의 발굴은 물론 예천이 양궁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는 대회로써 출전선수들이 모교의 명예를 걸고 임하는 전국 최고의 대회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특히 금년에는 예년에 비해 대폭 늘어난 223팀 907명이 참가하여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겨루게 된다, 예천군은 참가 선수들에게 최적의 경기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양궁장 잔디깍기 및 주변 정비는 물론 위생접객업소를 점검하는 등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개회식에서 한국중고양궁연맹회장인 이현준 예천군수는 지난 세계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양궁이 26년 만에 처음으로 개인전 노메달에 그친 점을 참가 선수들에게 상기시키면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더 노력하고 실력을 키워야만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만큼 참가 선수 모두가 한국양궁의 미래를 위해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군 관계자는 양궁인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현재 추진 중에 있는 양궁체험을 야간체험으로까지 확대하여 실시할 계획으로 있다며, 향후 양궁을 테마로 한 체험관광을 더욱 확대시켜 지역발전의 한 축으로 양궁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醴泉인터넷放送 2011-08-05 오후 4:23:31)
삼강주막(三江酒幕 막걸리祝祭 觀光客 구름떼 : 連日 數千名씩 이어져, 醴泉 文化資産 浮上) [記事] :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에서 주막문화를 주제로 2011년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3일간 개최된 `2011 예천 삼강주막 막걸리축제`에 연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 예천지역의 새로운 트랜드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예천군과 세계유교문화축전 조직위원회가 주최하고 안동MBC, 삼강주막마을, 한샘뭇씀(주)가 후원하는 이번 축제는 최근 술 문화의 트랜드가 되고 있는 막걸리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지역 막걸리의 산업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2회째 개최됐다. 축제장에는 유교문화권에서 생산되는 20여종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막걸리 판매장, 도자기로 만든 막걸리 사발·안주접시·주병세트 등 막걸리 관련소품 전시, 판매장, 음식장터가 운영되고 우리 전통의 주막문화를 사진과 풍속화, 시 작품 등으로 설명한 전시코너가 삼강주막 돌담길을 따라 마련됐다. 올해는 전국 단위로 `막걸리 병, 잔 디자인 공모전`을 시행해 대상 한 작품은 100만원의 상금을 지원한다. 삼강주막은 1900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의 3강이 만나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나루터에 위치해 있다. 과거 소금과 쌀을 싣고 오던 상인들과 한양에 과거 보러가던 선비들, 시인 묵객 등 100여년 동안 삼강나루를 오가던 이들의 숱한 애환이 서린 곳으로 지난 2005년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연 할머니가 작고하면서 방치됐다가 주막의 희소성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도민속자료 134호(예천군)로 지정되어 복원됐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번 삼강주막 막걸리축제는 우리 고유의 전통 주막문화를 현대적으로 복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유교문화권의 전통주와 관련 분야의 산업화 기반을 마련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鄭安鎭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1-08-04 오후 9:23)
회룡포(乃城川 개구리는 왜 우는가) [記事] : 외국에 갈 때마다 우리나라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내성천 하류인 예천 의성포(회룡포)에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든다. 2011년 7월 23일에는 ‘4대강 1만체험 333추진본부’가 청소년 체험 행사를 열었고, 3월엔 전국의 환경 생태운동가 1천300여명이 4대강을 구하자는 뜻으로 ‘SOS’ 글자 퍼포먼스를 열었다. 지난 6월초 내성천 제방 둑을 걸으며 합창을 해대는 개구리들 울음소리에 취해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봉화ㆍ영주ㆍ예천을 적시는 내성천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한국의 대표적인 곡강(曲江)이다. 경사가 완만해 유속(流速)이 느리다. 뒷물에 밀려 내려가지도 않고 앞에서 당기는 물도 없이 스스로 가는 듯싶다. 남보다 앞서려고 앞사람의 뒷다리를 거는 무한경쟁의 인간성은 저 멀리 가라고 한다. 서양인들을 매혹시키는 느림의 미학(美學)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성천은 웬만한 큰 비가 온 뒤에도 그렇게 요란하지 않는다. 계곡과 폭포와 소로 이뤄진, 임진강, 한탄강처럼 현란한 풍경은 없지만 우리네 노랫가락 논메기 농요처럼 여유롭게 흐른다. 수줍음을 머금은 채 말없는 자태를 드러내는 숫처녀와 같다고나 할까. 그 비밀은 사주(모래톱)가 저절로 작동, 저수와 배수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예뻐 보이려고 별 성형을 다하고 별 화장품을 문질러대는 현대 여성들, 호들갑을 떠는 욕망의 인간들이 내성천을 찾으면 평정심이 절로 들 것이다. 내성천은 뱀처럼 구불구불한 사행천(蛇行川)이다. 물길이 산과 산 사이를 수없이 휘돌아가는 산지하천으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영주 평은에서 금강마을을 거쳐 무섬마을까지 아홉 굽이를 중국 무위구곡을 본떠 ‘운포구곡’이라 부른다. 예천 의성포 회룡포를 지나며 두 번이나 가장 크게 굽이침은 그 절정을 이룬다. 굽이친 물길은 ‘ㄷ’자 ‘ㄹ’자 모습을 반복하며 천태만상의 산과 옥토를 만들어낸다. 아리랑 고개처럼 아흔아홉 구비가 흐른다. 내성천은 세계적으로 드문 ‘모래강’이다. 오경섭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세계에서 7~10m정도 깊이 까지 모래질 입자함량이 높은 화강암 풍화층이 발달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 해도 빈말이 아니요 그중 내성천이 으뜸이다. 한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자연유산이다”라고 말했다. 어디가나 맑고 깨끗한 모래톱은 아름다운 강의 백미이다. 모래톱의 여과작용으로 내성천 강물은 그토록 맑고 깨끗하다. 물과 모래의 만남, 물과 바람의 상호작용은 여러 모양의 모래밭을 만들고, 물 문양을 그리고 지운다. 내성천 모래가 금빛 은빛으로 그토록 고운 것은 소백산이 화강암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모래톱엔 미생물이 살고 어패류가 서식 산란하고 인근 들판을 풍요롭게 한다. 강폭은 여름엔 두껍고 겨울엔 얇다. 물길은 가을엔 하나였다가 겨울에 둘로 나뉘었다 봄에 다시 만나 하나가 된다. 기복과 질곡이 있는 새옹지마의 인생, 너와 나와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와의 헤어짐인 인생의 회자정리(會者定離)와 닮았다. 새 물길은 과거의 원한과 미움도 기억하지 않는다. 흐르고,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예술가의 눈에는 내성천은 살아 있는 예술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푸른 강물과 모래밭이 어우러진 경관은 가는 곳마다 절경을 연출한다. 조물주가 만든 예술, 아니 자연이 만든 예술이다. 안도현 시인은 “ ‘낙동강’ 시를 쓰면서 머릿속에는 낙동강이 아니라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흐르고 있었다.”고 했다. 예천 안동 대구를 거쳐 전라도 익산의 만경강 가까이에서 살고 있었고, 부모님은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 쪽으로 이주해 있을 때였다. 내성천은 인문 지리적 수자원적 가치도 자연경관 못지않다. 내성천은 유교를 잉태한 안향(安珦)을 배출한 곳이다. 안향은 고려 말 주자학을 도입, 유학진흥에 크게 공헌해 ‘동방의 주자’라고 불린다. 내성천은 하늘이 지구촌에 내린 원초적 비경이다. 살아있는 수채화 천지 내성천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해야한다.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다. 자손에게서 빌린 것이다”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김정모 論說委員 大邱日報 2011-08-0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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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