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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671:장석오-장석용(1)
작성자장병창 @ 2011.09.11 06:22:44

   예천의 자랑(2671) : 장석오-장석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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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오(張錫午) : 1843(헌종 9)-1904, 예천읍 노상리 출신, 자는 중회(仲會), 호는 다운(多雲), 본관은 단양, 판서 계증(繼曾)의 후손, 학생 종태(宗台)의 아들, 석하(錫夏)ㆍ석두(錫斗)ㆍ석희(錫禧)ㆍ석천(錫天)의 형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885년(고종 22) 식년 진사시에 3등 8위로 합격하였다. 세상이 그릇되매 두문(杜門)했다. 묘는 용문면 내지리 시목곡 해좌(柿木谷亥坐)에 있다.(族譜, 醴泉郡邑誌 1895, 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장석오(張錫午) : [생원진사시] 고종(高宗) 22년 (1885)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8위/ [인적사항] 자 중회(仲會), 생년 임인(壬寅) 1842년, 합격연령 44세, 본관 단양(丹陽)/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과목 일부(一賦)/ [가족사항] [부] 성명 : 장종태(張宗台), 관직 : 학생(學生)/ [부모구존] 영감하(永感下)/ [제] 장석하(張錫夏)/ [제] 장석두(張錫斗)/ [제] 장석희(張錫禧)/ [제] 장석천(張錫天)/ [출전]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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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용(장석용 映畵評論家 : 나의 아버지) [記事] : 몸에 밴 청빈… 항상 봉사하는 삶 일관/ 누구보다 농촌계몽 헌신 이제는 이해// 아버지 장낙일 씨는 모든 면에 있어서 적어도 나에게는 개척자이셨다. 안동 장씨 34대 종파의 자손으로 무사 계급의 피를 이어받은 그 분도 도시 속의 시골 분이다. 평생 주위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분이셨다. 타인을 위한 헌신은 우리 가족 대대로 유전처럼 내려오는 전통인가 보다. 동국대학 국문학과 시절엔 총장댁에 기거하면서 혜택받는 고학 생활을 하셨다. 할아버지와 나이 차이로 일찍 결혼하셨던 아버지는 언제나 밑에 있으시면서도 아직도 드높은 이상의 실천으로 집안의 존경을 받으시는 어른이다. 아버지의 작은 수첩에는 언제나 시구가 쓰여져 있었다. 외유내강한 탓에 자식들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가장 추억에 남는 일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에게서 영어 알파벳을 배울 때였다. 아버지께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직장을 포기하고 돈이 귀한 농촌으로 귀향하여 삭발한 이유를 나는 알지 못했다. 언제나 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로 자식들에게 경제적 윤택함의 기회를 주시지 못했지만 생존해 계시는 것만으로도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자신을 귀하게 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은 그 분에게는 사치였던 것 같다. 여느 집처럼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의 양잠단지 조성과 양계 이모작을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 저수지 확충 등 농촌 계몽운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세월이 지나고 불현듯 고향인 경북 예천이 생각날 때면 아버지의 귀향을 이해할 것 같다. 97년 1월 1일 할머니가 93세로 타계하시자 아버지가 가장 존경하셨던 경기도 장흥에 있는 조부의 산소를 고향으로 이장하시자던 모습에서 자신의 작은 효행을 생전에 마무리하시고자 하는 착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상주 농잠학교(현 상주산업대) 재학시 유명한 육상 선수였다. 친구들이 관직을 차고 승진할 때도 언제나 낮은 곳만을 생각해 내신 아버지.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형제들이 배워야 했던 덕목은 절제와 예절, 청빈과 자비, 의리와 자기 책임 완수였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생과는 삼겹살에 약주 한 잔으로 세대차를 좁히시던 아버지. 그런데도 나에게는 아직도 엄하시기만 한 아버지이지만 많이 자상해지심을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영화 조감독과 연극 연출로 아버지의 마음 고생을 시키던 나도 벌써 마흔을 훌쩍 넘어 버렸다. 애초부터 나의 길을 이해하시고 지원해 주시던 아버지는 지금도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시다. 손주 진원의 등장에 한없이 기쁜 마음을 감추실 수 없으셨던 아버지도 옛날의 청년 아버지를 넘어 할아버지로 서 계신 것이다. 요즈음도 새벽이면 달리기로 아침을 여시는 아버지는 IMF에도 끄떡이 없으시다. 67년을 살아오시면서 언제나 절약을 생활화해 오신 분이기에 그 이상 내핍 생활이란 별 의미가 없다. [약력] :­경북 예천 출생, ­한국영화학회 학술간사, ­한국예술평론가협 섭외이사(世界日報 1998-03-07)

 

  장석용 : 평론가/ 경력 2009년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daum 2010)

 

  장석용 :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장석용/ 2월 쿵푸덩크 개봉/ 2008/01/03 18:06/ http://blog.naver.com/sam721/ "영화평론의 제 역할 찾겠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임 회장 장석용/ 2007-03-12 19:30/ 지난 3월 3일 열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기총회에서 중견 영화평론가인 장석용 씨가 양윤모 영평협 회장의 뒤를 이은 신임 회장에 선출됐다. 장석용 신임 회장의 포부를 들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이하 '영평협')가 세대교체를 했다. 지난 3월 3일 열린 영평협 정기총회에서 중견 영화평론가인 장석용 씨가 양윤모 영평협 회장의 뒤를 이은 신임 회장에 선출된 것. 장석용 회장은 “영화평론의 역할 찾기에 주력하겠다”는 당선소감을 피력했다. 평론가들이 중심을 잡고 매체비평을 주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동안 평론가의 글이 없는 매체를 보며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는 장석용 회장은 “매체에 평론가들의 지면 할애를 부탁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협회 내에서 다양한 견해를 조율하고 주류의 의견을 취합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수의 의견도 중시하겠다고. 평론가들과의 친목 도모도 되도록 자주 가질 계획이다. 서로 의견을 교류하다보면 평론가의 책무가 무엇인지 더욱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며 누구보다 먼저 이 일에 솔선수범할 계획이다. "본연의 의무를 등한시한 채 사적인 일에 치우친다거나 협회를 개인의 도구로 악용할 생각은 없다"고도 잘라 말한다. 1970년대 후반 독일문화원 내 영화동아리 ‘동서영화 동우회’에서 전양준, 정성일, 강한섭 등과 함께했던 오랜 시네필 장석용 회장은 1990년 ‘뉴저먼 시네마의 형성과 그 작가들’로 영화평론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영화평론> <영화연구> <연극영화학연구> 등을 공동으로 저술했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내 영혼의 사막에서> <꽃은 나비를 원한다> 등의 희곡을 번역하기도 했다. 평론활동 이전에는 촬영현장에서 영화를 익혔다. 1970년 영화사 ‘마벨 코리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충무로 영화 시스템을 익힌 그는 유현목, 김호선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지낸, 평론가로선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현재는 ‘파이낸셜 뉴스’에 춤에 대한 평론을 기고하고 있다. 한 명의 평론가로서 장 회장은 좋은 평론을 위해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대중과의 교감을 우선시한다. "평론가도 예술가"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예술성 짙은 아름다운 글을 바탕으로 특정 이념이나 성향에 대한 노골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인간적인 체취를 우선적으로 살피라"는 것이 중견 평론가인 그의 권유다. 주류에서 외면당한 영화를 보호하고 격려하는 활동에 게으르지 않겠다는 그의 철학이 영평협의 새로운 살림살이에 어떻게 반영될지 궁금하다.(허남웅 記者/ [출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장석용 |작성자 예술배달부(daum 2010)

 

  장석용 : 장석용 "평론가는 '되어가는' 겁니다"/ [한국초대석] 장석용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신임회장/ 음악·건축 등 여러 분야 경험·감상하고 예술적 심미안 쌓아야/ 영화평론 근거로 연극·미술·문학 등 다른 분야 넘나들어/ 송준호 기자/ 한 가지 재주를 갈고 닦기에도 만만치 않은 세상, 여러 가지 재주를 능수능란하게 발휘하는 이들은 범인(凡人)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소위 이 팔방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예부터 어른들은 '재주 많은 놈이 밥 굶는다'는 말을 들어 '한 우물만 파라'고 채근하곤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우물을 파면서도 각각의 우물에서 양질의 물을 퍼올리는 '능력자'도 분명히 있다. 한국 영화평론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장석용 평론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태리 생 빙생에서 개최되는 프레미오 그롤레 드 오로(황금금배상) 영화제에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평론가. '영화평론'이라는 우물을 근거지로 하는 그는, 연극, 춤, 미술, 문학 등 다른 우물을 넘나들며 비평과 창작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보다 나은 영화평 위한 '우물 탐색'의 여정 : 물론 통섭과 다원예술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 경계를 넘나들며 현장과 이론에서 분주한 사람들은 이미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가의 여부. 그래서 그가 춤 공연의 뒷풀이 현장을 자주 찾거나 문신미술연구소 연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은 '다른 우물 파기' 작업이 그저 단순한 호기심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써서 감독으로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 조감독 생활을 하다 나중에 평론으로 넘어오게 됐어요. 그러다 춤 공연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추사 김정희나 솔거의 작품을 모티프로 했던 제 시나리오를 춤 대본으로 바꿔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죠." 하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역시 영화계다. 올해는 그가 영화계에 몸 담은 지 40년이 되는 해. 그래서 그는 얼마 전 지난 1998년부터 11년간의 평론을 담은 두 번째 평론집 '가슴으로 보는 영화이야기'를 내기도 했다. 예민하고 날이 선 영화평이 읽히고 주목받는 세상에 '가슴으로 보는'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이에 대해 '인생을 알아야 비평을 할 수 있다'며 설명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우리의 토착 이론이라는 게 드물잖아요? 외국의 이론을 번역한 것만으로는 비평을 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보다 나은 비평을 위해서는 역사나 문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심오한 공부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해요. 테크닉만으로 쓰는 글은 공허하거든요.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가슴으로 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슴으로 쓴다'는 말은 언뜻 전문성이 배제된 인상비평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영화를 갈가리 찢고 해부하며 자신의 존재를 맹렬히 드러내는 요즈음의 비평 양상과 대비되어 사용되는 말이다. 그의 평론은 우선 한국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기저에 깔려 있다. 범 예술계를 아우르는 넓은 인간관계와 밑바닥 생활부터 경험해온 한국영화계에 대한 애정이 모든 글마다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평은 영화에 '칼'을 대지 않는다. 손으로 가볍게 어루만지며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고 잘된 점을 칭찬한다. 영화평론계의 '맏형'이라는 별명이 비단 그의 경력이나 연배 때문만은 아닌 이유다.

 

  "최근 '워낭소리' 붐도 그래서 좀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독립영화라는 장르가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해버렸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 장르를 상업영화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의 새 평론집의 첫 번째 평에는 독립영화로서의 '워낭소리'에 대한 풍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대중에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좋은 영화'의 매력을 꼼꼼하게 살펴 그 장단점을 잔잔히 얘기하는 그의 글에선 여전히 평론가의 '머리'와 영화애호가로서의 '가슴'이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 대표 평론가의 책무 : 예술성과 상업성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평은 분명 현재의 (대중적) 비평 양상과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점점 더 가벼워지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글쓰기가 난무하는 지금, 그래서 그의 영화평은 예술비평에 가까워보인다. 때문에 종합예술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방면의 예술을 경험하고 섭렵할 때, 보다 심도있는 영화 읽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보면 열정적으로 다른 분야에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활동도 이해가 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화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관되게 예술비평으로서의 영화평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의 눈은 이미 많이 높아졌고 더 높아질 거에요. 많은 영화제나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대거든요. 그래서 평론가들이 글을 웬만큼 써도 시시하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이제 평론가들은 다른 스타일과 다른 방법론으로 글쓰기를 해야 할 때에요." 영화평론이 유독 빛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영화평론은 대중이 '좋은 영화'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혹은 유일한 척도를 제공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영화평론가는 많은 대학생들이 동경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영화기자들의 최종 목적지도 결국 평론가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름의 전문성과 필력을 가지고 인터넷에 리뷰를 쓰는 네티즌의 등장은 평론가의 입지를 점점 좁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영화'에 대한 평론가와 대중의 인식 차이가 큰 것도 영화평론의 위상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현장의 창작자들이 평론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덧 위기를 넘어 '사망'을 선고받은 영화평론을 어떻게 되살리느냐의 문제는 모든 평론가들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되어버렸다. 장석용 평론가는 현재 영화평론의 대안에 대해 무엇보다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평론에 정답이란 없어요. 그래서 정답을 강요하는 자세도 틀린 거죠. 외국의 유명한 평론가들은 좋은 에세이스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이즘(ism)'만 가득한 아카데믹한 글쓰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예비 평론가들에게 그는 '평론가가 되려고 하지 마라'는 충고를 한다. "평론가는 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되는 겁니다. 평론가 그 자체가 목표여선 경직된 글밖에 쓸 수 없을 거에요. 음악, 춤, 미술, 건축 등 여러 분야를 많이 경험하고 감상하면서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쌓고 그러면서 평론가가 '되어가는' 겁니다." 그동안 제19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해온 장석용 평론가는 얼마 전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FIPRESCI Korea)의 제6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장석용 평론가는 신임회장으로서 앞으로 매년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직접 참여하거나 다른 평론가들을 보내 한국영화와 세계영화인들과의 교류를 도모하게 된다. "어떤 평론가가 어떤 영화제에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나가든 가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문화를 알리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週刊韓國 2009/03/10 13:27:19)

 

  장석용 : 한국본부회장 피선 -장석용(풍양)씨| 축하/ 弘報室長 | 2009.04.09. 14:26/ http://cafe.daum.net/woruddPcjsrns/3Oe9/ 장석용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회장 피선/ 예천신문/ 풍양면 태생의 장석용(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씨가 제6대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한국본부 회장에 피선되었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단체는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심사위원을 파견하고 평가하는 50년이 넘은 단체이다. 90년대 중반 장 회장은 이태리 생 빙생에서 개최된 이 단체의 정기총회에 한국인 최초로 참석, 황금금배상 영화심사를 한 국제영화제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장 회장은 풍양초등, 풍양중, 한양공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석사과정· 영화전공), 동국대 대학원(박사과정·영화전공)을 졸업했다. 현재 신일고 외국어과 교사, 문화저널21 문화비평 주간, 한국연극협회 희곡분과 회원, 중등사진연구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재경예천군민회)(daum 2010)

 

  장석용 : 장석용 '가슴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 출판/ 작년, 2009년 2월 26일 | 문화저널21 박현수기자 영화평론가 장석용씨 두번째 영화 평론집 '가슴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가 출판되었다. 25일 서울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출판기념회에 나타난 한마리 백조/ 2009.2.26 | 문화저널21// 환상적인 플라멩코 선보인 이정화교수/ 2009.2.26 | 문화저널21// 플라멩코 이정화교수, 얼마나 빠르길래/ 2009.2.26 | 문화저널21// 관련기사 총 5건(daum 2010)

 

  장석용 :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회장에 장석용씨/ 작년, 2009년 2월 24일 | 연합뉴스 | 미디어다음 기자 =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FIPRESCI Korea)는 23일 총회에서 중견 영화평론가 장석용(54)씨를 제6대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24일 밝혔다. 장 신임 회장은 2007~2008년 한국영화평론가...// 국제영화비평가연 회장 장석용씨 선출/ 2009.2.24 | 경향신문 | 미디어다음//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에 장석용씨 선출/ 2009.2.24 | 문화저널21(daum 2010)

 

  장석용 : 행사내용 설명하는 장석용 본지 문화평론주간/ 2년전, 2008년 12월 27일 | 문화저널21 ↑ 장석용(본지 문화평론주간)이 최성숙개인전 및 문신예술의신화 출판기념회에 앞서 행사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최재원기자 '신의 요정, 카프리치오' 최성숙 개인전 및 문신예술의 신화...(daum 2010)

 

  장석용 : [포토] 장석용, "이제는 융합만이 살아날 길"/ 작년, 2009년 4월 16일 | 문화저널21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최성숙(숙명여대 문신미술관장), 최세진(문화저널21 발행인), 장석용(문화저널21 문화비평주간), 이건청(문화저널21 문학주간), 김종만(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포토] 이건청, "이제는 융합만이 살아날 길"/ 2009.4.16 | 문화저널21// [포토] 세미나 참석한 예평 김종만 회장/ 2009.4.16 | 문화저널21// [포토]세미나 참석한 이주영의원 부인 허영씨/ 2009.4.16 | 문화저널21// 관련기사 총 18건(daum 2010)

 

  장석용 : 2010.4.29~2010.5.7 제 11회 전주국제영화제/ 5달전, 2010년 4월 29일 (목)/  회장 정재형 한국영화기획협회 이사장 김영호 한국영상산업협회 회장 안철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회장 장석용 리얼라이즈픽쳐스 ㈜ 대표 원동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 최정운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이사장 공영윤.../ blog.naver.com/ 그리고 그 어딘가(daum 2010)

 

  장석용 : 가슴으로 보는 영화이야기/ 冊/ 장석용 지음 | 종문화사 | 2009.02.23/ 책소개 : 보리밭 서정으로 엮은 파래香 평론집. 저자는 영화를 온 몸으로 사랑해온 한국의 대표 영화평론가이다. 1970년부터 시작되는 영화사의 잔일에서 평론가협회 수장이 될 때까지의 삶과 애환을...(daum 2010) 

 

  장석용 : 코리언 뉴웨이브의 징후를 찾아서/ 冊/ 장석용 지음 | 현대미학사 | 2000.08.25/ 책소개 : 문화비평선 13번째권. 영화와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되어가는 평론가가 한국 영화의 다양한 모습을 마치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서술한 영화평론집. 1부 영화 현상과 현실에서는 <상업적...(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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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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