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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718:전회근-전희룡-정경섭-정경우-정관훈(1)(祝공군16전비.구창모/예천방문789)
작성자장병창 @ 2011.10.29 06:17:14

   예천의 자랑(2718) : 전회근-전희룡-정경섭-정경우-정관훈(1)(附 공군 제16전투비행단, 27일 국방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예천 출신 구창모, 연기파 배우로...축하합니다/예천방문 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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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근(全懷瑾) : 1474(성종 5)-1547(명종 2), 용궁면 가야리 출신, 본관은 용궁, 원발(元發)의 현손, 영부(永孚)의 아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음사로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다. 묘는 문경군 영순면 달지리(聞慶郡永順面達池里)에 있다.(竺山勝覽 1934, 族譜)

 

  전회근(全懷瑾) : 본관(本貫) 용궁(龍宮)/ 이력(履歷)/ 전회근(全懷瑾) 본(本) 용궁(龍宮)/ 어모장군충무위열사직(禦侮將軍忠武衛列司直)/ 문경(聞慶) 금석문(金石文)/ 향토사료 제18집(2006년도 12월 발행. 문경문화원)/ 어모장군 충무위열사직 전회근의 묘표(禦侮將軍忠武衛列司直全懷瑾 墓表) : 영순면 오룡리(사현)/ 全氏之於龍宮由來遠矣高麗竺山府院君諱元發號菊坡先生之後而蔓延於東國者享院而尸祝之蓮桂相承文章而鳴世何其偉歟副司直諱懷瑾菊坡公五世孫也上系世籍乃菊坡公墓碑盡載不必疊焉高祖諱閒高麗判司僕寺事曾祖諱謹至李朝郡事祖諱仲權文科司憲府執義考諱永孚進士枇李氏生考諱永昌直長公成廟甲午六月二十五日生承蔭階而忠武衛副司直陞禦侮將軍丁未正月十四日卒配淑人丹城李氏逮女墓合封生三男二女長倫箕子殿參奉次仁宣陵參奉號箕溪主人自淸遠亭卜居佳野次信將仕郞女適白昇權審言安東人縣監倫二男二女夢麟繼金女適權暾李蒙正仁二男夢井通禮院引儀號暎蓮堂次夢奎槐山訓導號梅菊軒信男夢牛曾玄以下不盡錄嗚呼公淸儉之德謹愼之行素來自中規範而累經兵선杞宋無徵故恐不可濫加一辭者古人諛墓之譏也公之後孫在道炳夏謬尋弊廬請以顯刻之詩自顧不自堪任而愍益固而不獲辭謹撰次世系如右而銘曰竺山著籍爲世大閥聞儒碩學幷世羅列漑根食實不斬其澤惟公蔭階曷不爲赫敦本素行毓氣流祥來昆承承豈不熾昌銘于斯石庸示無疆/ 大韓 光復後一 壬申 仲秋節/ 仁同 張建德 謹撰/

 

  <譯文> : 全氏의 龍宮을 貫으로 한 來歷은 멀다. 高麗 竺山府院君 諱元發이오 號菊坡 先生의 後孫으로서 우리나라 안에 널리 퍼져서 書院을 세워 享祀하고 大小科를 서로 이었고 文章으로서 世上에 널리 알려졌으니 어찌 偉大하지 않겠는가? 副司直 諱懷瑾은 菊坡公의 五世孫이다. 上系의 世籍은 菊坡公의 墓碑에 다 적혔으니 거듭할 必要가 없을 것이다. 高祖의 諱는 閒이니 高麗判司僕寺事요 曾祖의 諱는 謹이니 李朝에 이르러 郡事이고 祖의 諱는 仲權이니 文科 司憲府執義요 考의 諱는 永孚니 進士요 枇는 李氏다. 生考의 諱는 永昌이니 直長이다. 公은 成宗 甲午(一四七四) 六月 二十五日에 出生하시니 先蔭을 이어받아 忠武衛 副司直 位階에 올랐고 禦侮將軍으로 陞級하였다. 丁未(明宗 三年 一五四七) 正月 十四日에 卒하시었다. 配는 淑人 丹城李氏 逮의 따님이고 墓는 合貶이다. 三男二女를 두시니 맏이에 倫은 箕子殿參奉이고 다음 仁은 宣陵參奉이고 號는 箕溪主人이니 淸遠亭으로부터 佳野에 터잡아 살았다. 다음은 信이니 將仕郞이고 女壻는 白昇이오 權審言은 安東人이니 縣監이다. 倫은 二男二女이니 夢麟繼金이고 女壻는 權暾李蒙正이다. 仁은 二男이니 夢井은 通禮院引儀요 號는 映蓮堂이고 다음 夢奎는 承議郞槐山訓導니 號는 梅菊軒이다. 信의 男은 夢牛이고 曾玄孫以下는 다 記錄하지 않는다. 아! 公의 淸廉하고 儉素한 德과 謹愼한 行誼는 본디 心中으로부터 規範이 나오는 것이니 여러 차례 兵火를 겪어서 징험할 수 없으므로 외람되게 한 말씀을 더하여 古人이 墓에다가 아첨하는 나무람을 듣는 不可함을 저지를까봐 두려워한다. 公의 後孫 在道 炳夏가 잘못 弊廬를 찾아서 碑銘을 請하거늘 스스로 돌아보건대 그 責任을 감당할 수 없는데도 懇請함이 더욱 眞實하므로 辭讓타 못하여 삼가 다음과 같이 撰하고 世系는 右와 같이하여 銘을 한다. 竺山全氏는 널리 알려져서 世上에서 큰 門閥이더라. 有名한 선비와 큰 學者들이 同時代에 줄짓듯이 늘어섰더라. 뿌리에 물 주어서 열매를 먹으니 그 德澤이 끊어지지 않았더라. 公의 蔭職은 어찌 빛나지 않겠는가? 根本을 敦篤히 하는 올바른 行誼는 기운을 길러서 福이 흐르더라. 後孫들이 代代로 이어받으니 어찌 창성하지 않겠는가? 돌에 銘을 새겨서 끝이 없음을 보이노라.(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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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룡(全熙龍) : 1765(영조 41)-1822(순조 22), 용궁현 출신, 자는 용아(龍兒), 호는 포암(匏菴), 본관은 용궁, 지평 이성(以性)의 6세손, 우표(宇杓)의 아들, 1801년(순조 1)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正字), 박사(博士), 전적(典籍),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지냈다. '염 용 고(廉勇高)' 3자를 신조로 당쟁에 초연하였다.(竺山勝覽 1934)

 

  전희룡 [專門資料] : 行 槐院 分館 承文博士 全熙龍 著作 朴長輿 柳春東 全熙龍|朴長輿|柳春東|金虎運|任存常|趙秀仁|尹景鎭|李禮延|李永祚|權|金周默|趙毅淳|鄭元紀|尹命圭|洪敬謨|金遇順|李龍秀|金相溫|權|朴熙顯|鄭郁東|沈湜|尹尙烈|姜泰重|沈啓錫|李甲|朴齊聞|韓相殷|金鎭|尹庠圭.../ 국가지식포털(daum 2010)

 

  전희룡 : 輓全佐郞龍兒熙龍/ 五友故左郞篤山全公 歿于寢惜哉 世復有斯人耶 天姿淸而溫 人品謹而愿 豈第端詳之儀 恬雅淳眞之狀 非復今之人 求之古人 亦不多得 自夫釋褐通籍 人皆以遠到期 銀臺烏府 直早晏間事 世道險於太行 要律危於?? 仕路??棲遲?散 蓋婁十年 于玆三歲 不徒官 此非漢之揚子雲乎 太學鹽?四門博士古之韓八斗其人也 偉人幽滯 從古已然 奚損於公記昔龍庵石川翁戱之曰 子是無口匏 蓋取公謹?也 公笑曰此甚善名 我自號匏庵云 不穀人器虜淺 學問空疎世皆棄之 而獨不見棄於古人 相逢?靑眼 較白髮憫余之坎? 勖余之保練 每擬春和日暖 秋高氣凉 相與聯?? ?移於東都山水間 歸數日 觴詠於潭上書巢者 一約 丁寧方翹企之際凶音勿至 夫何天奪之速 使我抱良辰孤往之歎也 一聯淸詞留在潭壁 有時瞻詠 不覺涕浪浪也 今其?也末由 致?以此寂寥語寓平日相愛之情詩曰/ 端雅淳眞不俗姿 故人心事故人知 淸朝恨之吹噓者 曰首潛郞還可悲/ 銀海龍庵琴酒處 蕭簫霜髮轎相憐 年來未踐潭溪約 留得淸詩壁上傳/ 蕙質蘭姿何處覩 前宵梁月照依微 花村十里西風路 愧古山陽白馬歸//

 

  전좌랑 용아 희룡을 추도함/ 내 벗인 돌아간 전 어른(전공, 그 호는 독산<篤山>)은 일찍이 좌랑 벼슬을 지냈는데 뜻밖으로 그만 침실에서 돌아갔다. 세상에 이런 인물이 다시 있을까? 그 타고난 바탕은 밝고도 온순했고 그 인품은 신중하고도 성실하였다. 그 느긋하고 즐기며 단정하고 자상한 성향과 욕심없고 고상하며 티없이 순진한 태도를 아울러 갖춘 어른이야 말로 지금 세상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다.107) 저 어른이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궁문을 출입할 수 있게 된 때부터 사람들은 모두 벼슬이 높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승정원(銀臺)이나 사헌부(烏府)로 진출하는 것은 바로 가까운 장래에 있을 일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세상 살아가는 도리는 저 태행산(太行山)보다 더 험하고 힘 있는 중요한 지위는 염예퇴(??堆)보다 더 위험하였다. 그동안 벼슬길에 오른 지 몇 십년이 지났다. 근래 삼년 동안 벼슬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저 한나라(漢) 양자운(楊子雲)의 처지와 같지 않은가? 아니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거친 음식으로 어렵게 지낸 저 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 저 남달리 시문에 뛰어난 당나라 한유(韓愈) 바로 그 사람 처지다.108) 뛰어난 인물이 민간에 묻혀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는 일은 예로부터 있어 왔다. 그러니 그런 것이 전 어른에게 어찌 손실이라 하리오. 지금 생각나는 일이지만 오래 전에 '용암 모임' <龍庵會>에서 석천 노인<石川翁>이 농담으로 그대는 '입이 없는 바가지'<無口匏>라고 말했다. 전 어른이 본래 삼가서 말이 없음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그러자 어른이 웃으면서 '이것이 정말 좋은 이름인 데요'라고 하면서 '나는 바로 이 저리에서 포암(匏庵)이라고 스스로 호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백성이 살아갈 길이 어려워 사람들의 재능이 천박하고 학문도 엉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모두 학문을 버렸는데 그 학문이 돌아간 전 어른에게만 홀로 버려지지 않았다.109)  우리는 서로 만나면 정이 어린 눈을 씨고 백발을 서로 견주어 보았다. 전 어른은 내 인생 길이 험한 것을 걱정스럽게 여겨서 내가 변함없이 덕성과 실력을 기르고 익혀 나아갈 것을 애써 권장했고 때에 따라 늘 '봄이 화창하면 날씨는 따뜻하게 마련이다'는 이치에 빗대어 말했다. 우리는 가을에 하늘이 높고 날씨가 서늘 하게 되면 서로 함께 지팡이와 신발을 나란히 하여 경주 산수 사이를 마음 비우고 돌아다닌 뒤 돌아와서 며칠 우리 용담 가 서재에서 술잔을 기울이면서 시가를 읊을 것을 간단히 언약했다. 틀림없을 것으로 믿고 바야흐로 발돋움해 기다리는데 그만 부고가 갑자기 왔다.110) 아, 어찌하여 하늘이 어른을 이렇게 빨리 빼앗아 가 내가 좋은 시절 혼자 돌아다니는 술픔을 품게 하십니까? 여러 시귀가 쭉 이어진 어른의 깔금한 시가 용담의 석벽에 남아 있어서 때로는 쳐다보고 읊으면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줄줄 흐른다. 지금 그 장례에 참례해 땅에 술붓고 신에게 제사지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 쓸쓸한 내용의 시로 평소 서로 사랑하던 정의를 전해 드립니다. 이 시는 다음과 같다.111)// 단정하고 고상하며 순진해 속된 구석 아예 없는 그 모습!/ 그러나 가진 어른 마음 속 생각이야 가신 어른만이 알지요!/ 우리 맑은 조정엔 위로 밀어 올려 추천하는 사람 그렇게도 적다니 정말 한스럽구나!/ 허옇게 센 머리로 좌랑(佐郞)에서 그만 잠겨 버린 어른의 센세 또한 그렇게 슬프고 슬프다네!112)/ 은빛 바다 멀리 보이는 용암(龍庵) '거문고와 술' 즐기는 자리!/ 마침내 쓸쓸히 서로 백발 비교하며 서로 가련하게 여겼지!/ 거의 일년 동안 기다리던 용담의 '시와 술자리' 끝내 이루지 못했구나!/ 그리고 어른의 그 깔끔한 시 우리 용담 암벽 위에 남아서 저해졌다네!113)/ 훈초같이 향기로운 타고난 바탕 난초같이 그 드러난 깔끔한 모습 다시 이 세상 어디서 볼 수 있으랴!/ 어젯밤 우리 집 들고 너머의 달 너무나 그렇게도 어렴풋이 비쳤다네!/ 꽃핀 마을 들 거치고 거치는 가을 바람 부는 길!/ 이제 이 길로 나만이 흰 말 타고 옛집 돌아오기 부끄럽게 되었구나!114)//

 

  註) : 107)좌랑<佐郞>; 조선 때 육조<六曹>의 정오품 벼슬.  전희룡<全熙龍, 1765-1822>은 예조 대감 벼슬을 지냈다. 독산<篤山>; 전희룡의 호. 근이원<謹而愿>; 신중하고 성실하다. 개제<豈第>; 개제<愷悌>와 같으며 그 뜻은 '화락한다'<和樂> 곧 느긋하고 즐긴다는 뜻이다. 의<儀>; 언행의 경향 곧 성향을 뜻한다. 염아<恬雅>; 욕심이 없고 고상하다.  비복금<非復今>; 지금 세상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108)석갈<釋褐>; 칡베로 만든 거친 옷<褐衣>을 벗는다는 말인데 문과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벼슬하는 것을 뜻한다.  통적<通籍> 대궐문을 드나들 수 있는 절차를 밟아 드나들 수 있게 됨. 은대<銀臺>; 승정원<承政院>, 조선 때 임금의 명령을 전달하고 또 임금께 이뢰는 일을 맡던 관청.  오부<烏府>; 사헌부<司憲府>, 조선때 풍속을 바로잡고 벼슬아치의 잘못을 바로잡던 관청. 조안간사<早晏間事>; 앞으로 멀지 않아 있게 될 일. '조안'은 조만<早晩>과 같은 말이다.  태행<太行>;태행험<太行險>인데 중국 산서성 진성현<山西省晉城縣>에 있는 태행산이 험해 넘기 어려움을 뜻한다.  요진<要津>; 매우 중요한 나루터. 큰 힘을 가진 중요한 지위를 뜻한다.  염예<??>; 중국 사천성 봉절현<四川省奉節縣>에 있는 큰 바위 이름. 양자강 한 계곡 입구에 서 있어서 그 가까이는 물 흐름이 매우 급하고 험해 뱃길이 어렵고 위험하다. 흔히 이 바위를 '??堆>라 한다.  사로층등<仕路??> 벼슬길이 잘못되어 비틀거리는 것.  서지용산<棲遲冗散>; 은퇴하여 살아서 하는 일이 없고 한가하다. 불사관<不徙官>;벼슬하려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다시 벼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양자운<揚子雲>; 한나라 촉군의 성도<蜀郡成都>의 사람으로 그 이름이 웅<雄, 기원전 53-기원후 18년>이고 자가 자운<子雲>이다.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며 많은 책을 널리 읽었다. 말드듬으로 시원스럽게 말하지 못해 즐겨 깊이 생각했다. 당나라 한유<韓愈>는 유교의 학자로서 양웅을 존경했고 문장에서도 그를 본 땄다. 양웅은 문장과 유학으로 뛰어났으나 끝내 벼슬은 높지 못했다.  태학염제<太學鹽?>;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거치른 음식으로 푸대접을 받는다. '염제'는 소금에 절인 채소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시원찮은 대우를 뜻한다.  사문박사<四門博士>;여기서는'국자사문박사'<國子四門博士>를 말한다.  한유<韓愈>는 802년 <貞元 18년>에'국자사문박사'가 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자학<國子學, 온 나라 최고의 대학>과 사문학<四門學, 국자학의 사방 문측에 세운 서민을 위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다. 고지한팔두<古之韓八斗>; 저 옛날 당나라 때 한<韓>이라는 성을 가진 '남두'는'팔두재'를 말하는데 보통 사람의 재주를 한 말이라고 하면 여덟 말이나 되는 재주라는 뜻이다./ 109)유체<幽滯>; 민간에 묻혀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기<記>; 기억한다. 기억 속에서 찾아낸다는 뜻이다. 무구포<無口匏>;'아가리가 없는 바가지'를 말하는데 신중하여 말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포<匏>는 본래 박<匏瓜>를 뜻하는데 박으로 만든 바가지<瓢>도 뜻한다. 근묵<謹默>; 신중하여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불곡<不穀>; 민막불곡<民莫不穀, 詩經 小雅 小弁>을 좀 바꾸어 나타낸 말이다. 이것은 '백성이 모두 잘 지내지 않음이 없다'는 뜻인데 '불곡'은 '민불곡'<民不穀>이므로 '백성은 모두 잘 지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근암이 당시의 정치적인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을 뜻한다.  공소<空疎>; 내용이 비고 엉성하다. 불현기<不見棄>; 버려지지 않는다. 여기서 현기<見棄>는 버려진다는 뜻이고 이 현<見>은 피동을 나타내는 품사다./ 110)개청안<?靑眼>; 친한 사람을 반기는 눈을 씻는다. 개<?>; 좀더 잘 보기 위해 눈을 닦는다. 씻는다는 뜻이다.  감람<坎?>; 길이 험해 헤쳐 가기 어렵다. 세상에 쓰이지 못해 불우함을 뜻한다.  욱<勖>;힘쓰도록 권장한다. 보련<保練>; 기르고<養> 잘 익힌다. 여기서는 덕성<德性>을 기르고 재능을 익힌다는 뜻이다. 의<擬>; 빗대어 말한다. 예를 들어 암시한다. 연공극<聯??>;지팡이와 신발을 나란히 한다. 함께 나란히 간다는 뜻이다. '연'<聯>은 잇닿는다는 뜻도 있는데 이럴 때는 앞뒤로 이어서 간다는 뜻이다.  의이<?移>; 마음을 비우고 돌아다닌다. 마음의 수양을 위해 여행하는 것을 뜻한다. 서소<書巢>; 책이 많이 쌓여 잇는 곳 곧 서재.  일약<一約>; 단단히 언약한다. 정녕<丁寧>; 틀림없다고 굳게 믿는다.  교기<翹企>;발돋음하고 바라본다. 몹시 기다린다는 뜻이다. 흉음<凶音>;돌아갔다는 나쁜 소식 곧 부고./

 

  111)양신고왕지탄<良辰孤往之嘆>; 좋은 시절<하늘이 높은 가을>에 홀로 외롭게 경주의 산수 사이로 사는 슬픔. 체낭랑<涕浪浪>; 눈물이 줄줄 흐른다. 붕<?>; 관을 묘 구덩이 속에 내리는 것, 곧 장례식 마지막 단계. 말유<末由>; 어찌할 수가 없다. 말<末>은 없다는 뜻으로 무<無>와 같다.  치뢰<致?>; 땅에 술을 붓고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낸다. 이 제사는 장례의 마지막 단계인 하관 때 지낸다.  차적료어<此寂廖語>; 이 쓸쓸하고 고요한 말. 이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시를 말한다./ 112)청조<淸朝>; 우리나라의 맑고 깨끗한 조정<政府>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근암이 그 무렵의 우리 조정을 빗댄 말이다. 핍취허자<乏吹噓者>; 남을 위로 밀어 추천해 주는 사람이 매우 적다. 잠랑<潛郞>; 잠겨 버린 좌랑<佐郞>이라는 말인데 여기서는 어른<全熙龍을 가리킴>의 벼슬이 좌랑<전희룡은 예조《禮曹》의 좌랑을 지냈다>으로 그만 끝나 버린 것을 뜻한다./ 113)용암<龍庵>;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암자의 이름. 소소<蕭蕭>; 너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쓸쓸히. 담계약<潭溪約>; 경주의 산수를 돌아보고 용담정으로 돌아와 술잔 기울이며 시가를 읊기로 한 언약./ 114)양월<梁月>; 들보 너머로 보이는 달. 의미<依微>; 희미하다. 어렴풋하다. 어른의 죽음으로 달도 빛을 잃은 듯하다는 뜻이다. 서풍로<西風路>; 가을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길.  이 길은 근암이 전 어른과 즐겨 함께 다닌 길인 듯하다. 고산양<古山陽>; 고향의 옛 집을 뜻한다. 중국 진나라<晉>의 향수<向秀>가 고향인 산양<山陽>의 옛 집을 지나다가 피리 부는 소리를 듣고 옛날 놀던 생각이 떠올라 시<思舊賦>를 지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여기서 '고'<古>는 고향을 뜻하는 고<故>와 서로 총한다./ ijinwon.kr/cndokyo(daum 2010)

 

  전희룡 : 11./ 영공 令公, 정삼품의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인데 흔히 영감《令監》이라 함은 예조좌랑禮曹佐郞을 지낸 전희용全熙龍, 1765-1822을 말한다. 이 전 영감이 지난해에 돌아갔다고 하는 말로 이 추도문은 1823년에 지었다는 것을 알 수.../ ijinwon.cafe24.com(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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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섭 : 대창고등학교 제11회동창회(大昌高等學校 11回 各級學校 校長先生님 紹介) | ◈--- 학교게시판/ 大昌 總 同門會/ 조회 197 | 2007.09.29. 08:07/ 대창고등학교 11회 출신 각급학교 교장선생님 소개/ 투철한 국가관과 호연지기를 키워주신 모교 은사님께 감사를 드리오며, 모교 대창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대창고등학교 11회 졸업생 가운데 각급학교 교장선생님을 소개드리겠습니다./  1. 권인섭 서울시 금옥여자고등학교 교감(교장자격연수 후 발령대기 중)/ 2. 권중태 서울시 금천고등학교장/ 3. 김수일 안산시 한국선진학교장/ 4. 김국빈 대구시 도원초등학교장/ 5. 김진호 예천군 용궁초등학교장/ 6. 심찬용 구미시 구미초등학교장/ 7. 우병구 문경시 산북중학교장/ 8. 임휘명 영천시 금호초등학교장/ 9. 정경섭 구미시 경북생활과학고등학교장/ 10. 정해준 상주시 상주남부초등학교장/ 11. 최명환 문경시 문경교육청학무과장/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정경섭 : 대창80년사:부록(10) 부장교사-대입자(1)/ 지난달, 2011년 2월 11일 (금)/ 백명옥(경북), 박영환(경북), 김광호(안동), 김휘경(안동), 조세재(안동), 남창진(안동), 정경섭(안동), 최명환(안동), 윤광희(안동), 이상현(안동), 최익항(안동), 남효천(안동), 박영식(대구),.../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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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우(鄭景祐) : 이조 중종 때, 예천군 다인현 천동 하리(醴泉郡多仁縣泉洞下里) 사람, 자는 대유(大有), 호는 복암(幞岩), 본관은 연일,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 휘(輝)의 아들이다. 유학(幼學)으로서 1528년(중종 23) 식년 진사시에 3등 76위로 합격, 1540년(중종 35)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 17위로 급제하여 정자(正字), 사헌부 감찰(監察), 병조 좌랑,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80 1895, 醴泉郡誌 1939, 司馬榜目, 文科榜目, 多仁面誌 1992)

 

  정경우(鄭景祐)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중종(中宗) 35년, 과거시험연도 : 1540 경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17(丙科17)/ [인적 사항] 성명(姓名) : 정경우(鄭景祐), 자 : 대유(大有), 본관(本貫) : 연일(延日)/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528(무자) 진사시,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감찰(監察)/ [가족사항] 부(父) : 정휘(鄭輝), 조부(祖父) : 정안손(鄭安孫)(daum 2010)

 

  정경우(鄭景祐) : [문과] 중종(中宗) 35년 (154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7위/ [인적사항] 자 대유(大有), 본관 연일(延日)/ [이력사항] 전력 진사(進士), 관직 감찰(監察), 타과 중종(中宗) 23년(1528) 무자(戊子) 진사시(進士試)/ [가족사항] [부] 성명 : 정휘(鄭輝), [조부] 성명 : 정안손(鄭安孫)/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정경우 : 인물향토 -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 문화관광의 의성의 유래/ 현대 의약품에 밀려나 서 그대로 방치되어 있음. - 봉산정(鳳山亭) : 연일(連日) 정(鄭)씨의 입향조 정경우(鄭景祐)를 위한 정자다. -장선제(長善齊) : 장두수(張斗壽)의 제사(齊舍)다 공은 인조 때의 향토(鄕土)인데 제사.../ tour.usc.go.kr(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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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훈 : 1965- , 개포면 경진리 출신, 범수의 장남, 영주남부초등, 영주중, 영주고, 영남대 미대, 계명대 대학원 졸업, 서울과 대구에서 9차례 개인전을 비롯 국내 화랑 등을 누비며 인정을 받았다. 2001년 1월 미국 유학을 택했다. 2002년에는 '코너티켓주'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2월 15일부터 25일까지 대구 동원화랑에서 도미 이후 처음으로 초대전을 가졌다.(醴泉新聞 2003.2.27)

 

  정관훈 : 갤러리바이올렛의 예술탐방 2 “그들은 여전히 혼불로 살고있다. - 故정관훈의 감성읽기” | 좋은사람 | 2010.03.11/ http://cafe.daum.net/artfocus/ <글:박정수(갤러리바이올렛 관장. 미술평론>/ 정관훈(1965-2005) : 경북 예천 출생,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계명대학교 미술 대학원 졸업, 서울과 대구에서 9차례 개인전을 비롯 국내외 많은 화랑에서 인정받은 화가였다. 미국으로 가기 일주일 전쯤 만났습니다. 그와 저는 동갑임에도 그가 고등학교를 늦게 졸업해 ‘‘형’이 되는 사이였습니다.  “형요! 힘들지만 미국 갈라니더. 미국 가서 공부 좀 더해보고 내 스타일 그림을 찾아볼라니더~”  2001년 1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코너티켓주'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고, 2003년 2월에는 대구 동원화랑에서 도미 이후 처음으로 초대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11월 19일 미국 뉴욕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예술의 혼을 불사르다 간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꿈에 나타나더군요. 대학 때부터 타계하기 전까지 천 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예술의 정념으로, 예술가의 꿈으로 살다간 그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찾아봅니다. 그들의 육신은 없지만 그들의 영혼은 예술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 현재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였지만 부자였습니다. 경제와 마음은 너무나 풍부한 가난뱅이였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모든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인생은 살아지느냐와 살아가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인생에 있어서 편리하고 안전한 길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살아지는 사람들도 고난의 연속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고난의 연속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든지 서로의 가슴을 보듬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벽녘 어둠을 찢으면서 찾아드는 고달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밝은 하루를 보내기 너무 힘겨워 밤을 새다가 빛이 조금 스며들 즈음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에게 더 나은 이들에게 더 좋은 희망의 길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경제도 가난합니다. 경제가 가난한 사람 역시 마음 또한 가난합니다. 그의 지인중의 한분은 그의 추모전시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사나이가 뭐 있습니꺼/  -한창현-// 원시림의 화가를 처음 만났을 때/ 산골에서 도시로 가출한 촌닭으로/ 성기고 헝클어진 머리카락하며/ 큰 눈알로 순한 눈치를 훔치며/ 울퉁불퉁한 화술로 칼날을 세우고/ 원색물감을 수려한 붓대로 자른다// 석사학위 부여 받고 비행기 타고 떠난 화가/ 미친 듯이 그림 그리고 보상심리로 마신 소주잔/ 고독의 성을 스스로 높게 길게 쌓으며/ 허기진 세상을 똥구멍 찢어지게 살았다지만/ 말로 그림을 그린 내게는 그것도 부럽기만 했었다// 좁은 땅에서 살기 싫어/ 넓은 세상 찾아 떠난 그대는/ 찬바람뿐인 빈 지갑을 열고도 호탕한 이 사람이/ 투명한 유영으로 원 없이 인연을 나눈 내게는/ 낚시꾼으로 어 복이 많은 이상형의 화가이었다// 이국 땅 낯선 아스팔트 위에서도/ 노란 머리카락 백색 피부 파란 눈동자 속에서/ 황소고집에 버럭버럭 소리까지 지른다/ 새벽에도 화가들과 현관문 걷어차며/ 간 큰 남자가 불규칙한 언어로 말을 한다/ 사나이가 뭐 있습니꺼.../ 주흘산 촌놈이 들어도 촌스러운 말씨의 그대/ 사나이가 뭐 있습니꺼.../ 쓸쓸한 추억의 빈 지갑 속에서도 호탕하다.(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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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제16전투비행단, 27일 국방부장관 표창...축하합니다.

 

  공군 제16전투비행단(空軍 第16戰鬪飛行團 國防部 主管 希望나눔祝祭에서 國防部長官 表彰 받아) [記事] : 공군 제16전투비행단은 지난 2009년부터 '다문화 가정 사랑 나눔회'를 결성하여 지속적인 지원활동을 해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최근 16비는 다문화가정 지원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부에서 주관하는 '희망나눔축제-국군이 있어 그리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에서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2011년 10월 27일 국방부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공군회관에서 실시된 희망나눔축제는 국민과 함께 소통하는 '강하지만 따뜻한 군대' 구축을 위해 대민지원 우수사례를 선정하여 사례자와 수혜자가 한자리에 참석하여 함께 소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대민지원에 도움을 준 부대 또는 군인에게 국방부장관 표창(2건)을, 국군의 사기진작에 도움을 준 일반인에게 감사패(2건)가 주어졌다. 16비는 2009년 3월 부대원들과 베트남 대사, 베트남 새댁들과의 만남으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었으며, 1인 1구좌 모금을 시작으로 '다문화 가정사랑 나눔회'를 결성되어 장학기금 마련, 공부방 운영, 부대초청행사를 통한 의료지원, 농촌 일손돕기, 지붕보수 및 도배 등의 주거환경 개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표창을 대리 수상한 변철구 대령(기지지원전대장, 공사 35기)은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이렇게 표창까지 받게 되어 너무 기쁘다. 부대원들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부대 건설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2009년부터 현재까지 1인 1구좌 모금을 통해 현재 8천만 원 가량의 장학금이 모였으며, 1억원 모금 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다문화가정 자녀의 학업을 지원할 예정이며, 16비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다문화가정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예정이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1-10-28 오전 10: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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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구창모, 연기파 배우로...축하합니다.

 

  구창모(오리農場 主人, 演技派 俳優로 第2의 人生 : 醴泉 구창모 氏, 映畵 '특수본' 助演級 캐스팅…撮影으로 바쁜 나날) [記事] : 예천지역에 어릴 적부터 영화배우의 꿈을 갖고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야 늦깎이 단역배우로 출연해 당당히 연기파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한 농장 주인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예천읍에서 다름 아닌 오리농장과 오리유통업을 경영하는 축산인 덕원코리아 사장 구창모(44) 씨다. 학창시절 많은 끼와 재능을 가진 그는 현재 오리농장과 오리유통업을 하면서 영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2006년도에 오픈라인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구씨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든 것은 '나의 결혼원정기', '무사', 11월 24일 개봉될 특수본(특별수사본부)의 감독을 맡았던 예천 남부초등학교 동창인 황병국 감독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때부터 그의 꿈이 현실화됐다. 구씨는 첫작품 오픈라인에 중국집사장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관계자들로부터 배역 역할에 주어진 연기, 코믹, 액션 등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 11월 24일 개봉될 특수본에 캐스팅돼 조연급인 3팀장 오 형사로 출연하게 됐다. '특수본'은 동료 경찰이 살해된 뒤 구성된 특별수사본부 멤버들이 숨겨진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펼치는 숨 막히는 수사 과정을 그린 영화로 엄태웅, 주원, 정진영, 성동일, 이태임, 김정태, 구창모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그의 연기를 지켜본 영화관계자들은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 못지않은 내면 연기를 보여주는 조연이라며 주어진 역할의 카리스마 있는 배역을 잘 보여 주는 드문 배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구씨는 "늘 배역에 맞는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어 주연보다 빛나는 윤제문, 성동일, 유해진 씨와 같은 연기파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고 말했다. 한편 구씨는 요즘 드라마를 비롯한 영화촬영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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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789

 

  삼강주막(醴泉 三江酒幕서 洛東江 '비룡교' 起工式 열려) [記事] :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인 경북 예천군 소재 삼강주막에서 '작은 하회마을'로 불리는 회룡포까지 관람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경북도는 "오는 31일 오후 예천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에서 낙동강 비룡교 기공식을 개최한다"고 2011년 10월 28일 밝혔다. 비룡교는 예천 삼강주막에서 회룡포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이 280m, 넓이 5m의 다리로 5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다음달 본격 착공해 2012년 8월 준공할 계획이다. 도는 "비룡교가 완공되면 관광객이 삼강주막에서 회룡포까지 편리하게 이동하며 예천온천과 곤충생테체험관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관광을 할 수 있어 주민소득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공식에서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이한성 의원, 주민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물놀이, 인기가수 공연 등 경축행사가 열릴 예정이다.(홍창진 記者 聯合뉴스 2011/10/28 16:27 送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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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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