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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742:정사룡(祝예천목요산악회/예천방문801)
작성자장병창 @ 2011.11.22 06:14:22

   예천의 자랑(2742) : 정사룡(附 예천목요산악회, 19일 등반 도대회 단체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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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룡(鄭士龍) : 1491(성종 22)-1570(선조 3), 풍양면 청곡리 포내(浦內) 출신,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본관은 동래, 직제학 사(直提學賜)의 증손, 첨지 광보(僉知光輔)의 아들, 영의정 광필(領議政光弼)의 조카, 1509년(중종 4)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 11위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 1514)하고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 1516)로서 문과 중시(文科重試)에 갑과(甲科)로 장원 급제(壯元及第)하였다. 젊어서 행검(行檢)이 없고 신진 사류(新進士類)에 밀려 외직(外職)으로 나갔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1519)가 일어나자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이 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기를, "저 사람이 분을 품은 지 오래여서 반드시 앙갚음을 하리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간(司諫)을 사퇴하고 시의(時義)에 참여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의 넓은 아량을 칭찬하였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1523)이 되고, 동지사(冬至使, 1534)로서 명(明) 나라에 다녀왔다. 예조 판서(禮曹判書, 1542)에 승진, 공조 판서(工曹判書, 1544)로 다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명(明) 나라에 다녀와서 1554년(명종 9)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 輔國典文衡)이 되었으나 과거 시험 문제를 응시자 신사헌(愼思獻)에게 누설하여 파직(1558)되었다. 이 해 판충추부사(判中樞府事)로 복직(復職), 이어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가 다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1562)로 전임(轉任), 이듬해 이량(李樑)이 제거될 때 그 일당이었다 하여 삭직(削職) 당했다. 대평 재상(大平宰相)이란 칭찬을 들은 그는 만년(晩年)에 동교(東郊)에 은퇴하여 임억령(林億齡), 신잠(申潛)과 함께 20여 년 동안이나 시(詩)짓고 술마시는 것으로 서로 사귀며 맑은 복을 누리니 풍류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아서 여염 사람들이 그의 자(字)로 자기의 자(字)를 삼는 자가 많았다. 하루는 명종(明宗)이 군신 앞에 한 폭의 그림을 내놓았는데, 무슨 그림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정사룡(鄭士龍)이 나아가서 말하기를, "이것은 서호도(西湖圖)이옵니다. 여기는 용금문(湧金門)이요, 여기는 영은사(靈隱寺)이옵고, 이것은 소동파(蘇東坡)가 쌓은 제방이오며, 여기가 임 처사(林處士)의 거처하던 곳이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명종이 뜰에 나가 말안장을 갖추어서 말을 매어 놓고, "시를 지어 장원(壯元)하는 사람에게 저 말을 하사(下賜)하겠노라"라고 하였더니, 정사룡이 일률(一律)을 지어 가로대, "영은사(靈隱寺) 안에서는 저녁종이 울리고/ 용금문(湧金門) 밖에서는 석양이 뉘엇뉘엇/ 지금도 개미뚝은 여전히 솟았는데/ 도신(濤神)의 노여움은 아직도 두렵구나/ 오방객(湖舫客) 돌아오는 꽃섬(花嶼)은 저무는데/ 소동파(蘇東坡)뚝 앵앵척사(鶯鶯擲柶) 유음(柳陰)이 짙었구나/ 전요(錢요)의 집터 조(趙)고의 옛집 흔적이 막연한데/ 도리혀 지나는 길손은 고산(孤山)의 임 처사(林處士) 가는 곳을 날더러 묻는구나/"라고 하였다. 명종이 크게 칭찬하였다. 이어서 3차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시문(詩文)과 음률(音律)이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했다. 저서로 시문집(詩文集)인 <호음집(湖陰集)>, <호음잡고(湖陰雜稿)> 8권 8책, <조천일록(朝天日錄)>이 있다. 글씨는 <이둔촌집비명(李遁村集碑銘)>(廣州)이 있고, 서울대 박물관에 그의 글씨가 남아 있다.(中宗實錄, 明宗實錄, 韓國人名辭典, 湖陰集, 竺山勝覽 1934, 知保面誌 1987, 肅宗實錄, 醴泉郡誌 1939)

 

  정사룡(鄭士龍) : 영어 음역  Jeong Saryong/ 집필자  정태용/ 성격 문신/ 성별 남/ 생년 1491(성종 22)/ 몰년 1570(선조 3)/ 본관 동래(東萊)/ 자 운경(雲卿)/ 호 호음(湖陰)/ 대표관직 판중추(判中樞)/ [가계] :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이다.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생애] : 1512년(중종 7)에 생원이 되고, 별시문과에 병과로 장원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至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42년 예조판서로 승진이 되고, 1544년 공조판서로 다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4년 대제학이 되었으나 1558년 과거의 시험문제를 응시자 신사헌(愼思獻)에게 누설하여 파직되었다. 이 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복직되고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1562년 다시 판중추부사에 전임되었다. 이듬해 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려던 이량(李樑)의 일당이라 하여 삭직당했다. 『진양지(晋陽誌)』 권3 「인물조(人物條)」에 의하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판중추(判中樞)에 이르렀고 문형(文衡)을 맡았다. 한양에서 의령(宜寧)에 흘러들었다가 뒤에 진주에 옮겨와 살았다./ [저술] : 중국에 다녀와서 『조천록(朝天錄)』을 남겼고, 이 외에 『호음잡고』가 있다./ [작품] : 관료적인 시인으로 시문·음률에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했다. 일찍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동안 중국인과 주고받은 시가 많았다. 말을 치밀하게 다듬어 웅걸차고 기이한 문구를 얻으려는 시풍을 장기로 삼았다. 특히, 칠언율시에 능하였으며, 당시 문단에서 그와 신광한(申光漢)을 쌍벽으로 꼽기도 하였다. 글씨로는 광주(廣州)에 이둔촌집비(李遁村集碑)가 있다./ [참고문헌] 『진양지(晋陽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진주시사』(진주시사편찬위원회, 1995)(daum 2010)

 

  정사룡 : 남양주서화열전(書畵列傳)8. 정사룡(鄭士龍)/  8달전, 2010년 2월 4일 (목) | 남양주타임즈/ (탁본, 개인소장) 및 남양주시 가운동 소재 묘역 남양주서화열전 (書畵列傳) 8. 정사룡 (鄭士龍) 공동집필 : 임병규(한국탁본자료박물관 관장) 윤종일(서일대학 민족문화과 교수, 다산문화연...(daum 2010)

 

  정사룡(鄭士龍) : 지난달, 2010년 9월 26일 (일)/ 정사룡(鄭士龍) *1491년(성종 22)∼1570년(선조 3). *[문과] 중종(中宗) 4년 (1509) 기사(己巳) 별시(別試) 병과(丙科) 4위 *[문과] 중종(中宗) 11년 (1516) 병자(丙子) 중시(重試) 일등(一等) 1[장원(壯元)]위 조선 중기의.../ blog.daum.net/ 야촌(이재훈)(daum 2010)

 

  정사룡 : 紀懷(기회)   -鄭士龍(정사룡)-// 四落階蓂魄又盈, ?無車馬閉柴荊./ 사락계명백우영, 초무거마한시형./ (階-섬돌 계, 蓂-명협 명, 달력풀 명, ?-근심할 초, 조용할 초)/ [명(蓂)]; 蓂萊, 중국 요임금 때에 뜰에 났다는 상서로운 풍,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는 한 잎씩 나고 16일부터 말일까지는 한 잎씩 진다고 한다,/ [우영(又盈)]; 다시 차오르다,/ [시형(柴荊)]; 시문(柴門), 사립문, 농가의 집,/ 뜰에 명혐 꽃이 네 번 떨어져서 흰 달이 또 차는데,/  수레와 말이 전원의 생활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도 없도다.// 詩書舊業抛難起, 場圃新功策未成./ 시서구업포난기, 장포신공책미성./ (抛-던질 포, 포기할 포, 떨쳐버릴 포)/ [장포(場圃)]; 곡류를 거두어들이는 뜰, 여기서는 농사일,/ [신공책(新功策)]; 새로운 계책, 농사짓는 기술을 익히는 것,/ 시나 서를 하던 옛날 공부도 한 번 놓으면 다시 하기 어렵고,/ 농사짓는 새로운 일도 생각대로 되지를 않네.// 雨氣壓霞山忽暝, 川華受月夜猶明./ 우기압하산홀명, 천화수월야유명./ (暝-어두울 명)/ [홀명(忽暝)]; 갑자기 어두워지다, 비오기 전에 갑자기 어두워지다,/ [천화(川華)]; 냇물의 빛, 달빛을 받아서 빛나는 시내,/ 우기가 노을을 눌러서 산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개울 빛이 달빛을 받아서 밤에 오히려 밝도다.// 思量不復勞心事, 身世端宜付釣耕./ 사량불부노심사, 신세단의부조경./ [조경(釣耕)]; 낚시와 농사짓는 일,/ 생각하는 일조차 다시는 내 마음을 수고롭게 하지 못하고,/ 이 몸은 오직 밭 갈고 낚시질이나 해야지.// 작자 소개 : ① 정사룡(鄭士龍)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字)는 운경(雲卿_이고, 호(號)는 호음(湖陰)이다. ② 정사룡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까지 올랐으나 李樑(이량)이 제거될 때 일당으로 몰려 관직에서 쫓겨났다. ③ 정사룡은 관료로서 대단히 성공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貪虐(탐학)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④ 시문(詩文)과 음율(音律)에 대단히 능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호음잡고(湖陰雜稿)」가 전한다.// 작품해제(作品解題) : ① 정사룡의 시는 말을 잘 다듬어서 쓰면서 천착력이 뛰어난 시상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솜씨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다. 이 시도 정사룡의 그러한 시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② 이 시는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겪고 초탈의 경지에서 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복을 떨쳐입고 하늘에 올라 李白의 소식을 물어보리라고 한 <후대야좌(後臺夜坐)>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③ 기련(起聯)은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히 앉아서 세상사를 생각하면서 지은 것이다. 뜰 앞에는 잎이 떨어지고 집 앞에는 거마(車馬)가 다니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할 수 있다. ④ 승련(承聯)에서는 학자로서의 구업(舊業)은 떨쳐버리기가 어렵고, 농사일은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뾰쪽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세상에 나가고 싶은 생각을 아주 조금 내보인 구절이다. ⑤ 전련(轉聯)은 신의 도움 없이는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을 들은 곳이다. 비 기운이 노을을 눌러서 산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 시냇가의 물빛은 달빛을 받아서 밤인데도 오히려 밝기만 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천착력과 섬세한 기교가 가장 돋보이는 구절이다. 갑자기 어두워 오는 하늘과 月光을 받아서 오히려 빛나는 시내의 대비는 어떤 사람도 흉내 내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⑥ 결련(結聯)에서는 다시는 마음 쓰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서 몸을 오로지 낚싯대에 맡기고자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떠난 이러한 생각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다.(daum 2010)

 

  정사룡 :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鄭士龍(정사룡)/ 작년, 2009년 8월 27일/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鄭士龍 영남루 시를 차운하다-정사룡 客到嶺梅初發天 객도영매초발천 嘉平之後上元前 가평지후상원전 나그네 언덕에 매화 처음 피는 날 이르니, 섣달이 지났으나 아직 상원은 되지 않았다. 春生畵鼓雷千.../ blog.daum.net/mooji/ 무지의 집(daum 2010)

 

  정사룡 : 姜節婦行(강절부행)-鄭士龍(정사룡)/ 3년전, 2007년 9월 12일/ 姜節婦行(강절부행)-鄭士龍 강 정절부의 노래-정사룡 宜春之縣無等村(의춘지현무등촌) : 의춘현 무등촌에, 有女姓姜稱淑美(유녀성강칭숙미) : 강씨 여인이 있어 정숙하고 아름다웠다. 門譜雖然無外家(문보수연무외가) : 문벌이.../ blog.daum.net/mooji/ 무지의 집(daum 2010)

 

  정사룡 : 동래정씨(東萊鄭氏)/ 2달전, 2010년 8월 25일 (수)/ ....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정광세(鄭光世) : 문과(文科) 성종10년(1479)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사룡(鄭士龍) : 문과(文科) 중종11년(1516) 중시 일등(一等) 장원급제, 정대년(鄭大秊, 1503 癸亥生) : 문과(文科) 중종.../ 태그: 동래정씨(東萊鄭氏)/ blog.daum.net/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daum 2010)

 

  정사룡 : 연신계사(筵臣啓辭)/ 3주전, 5일 (화)/ 연신계사(筵臣啓辭) 무오년(1558, 명종13)에 영의정 심연원(沈連源), 대제학 정사룡(鄭士龍)이 경연에서 함께 글을 올려 아뢰기를, “경술과 문장이 이황보다 나은 사람이 없으니, 바라옵건대 다시 불러 쓰옵소서. 그러하오나.../ blog.daum.net/ 양지(daum 2010)

 

  정사룡 : “名言 名詩” P-520./ 지난주, 2010년 10월 19일 (화)/ ...,(삼년일각남가몽,) 默默相看意更長,(묵묵상간의경장,) <尹斗壽:朝鮮:譯:古譯院> ※정호음(鄭湖陰) : 정사룡(鄭士龍 : 1491-1570)으로, 호음은 호이고, 자는 운경(雲卿)이다. ※남가(南柯)의 꿈 : 인생이 덧없는 한때의 꿈에.../ blog.daum.net/ yong's(daum 2010)

 

  정사룡 : 한시.18<後臺夜坐 - 鄭士龍>| 시문/ 덕산 | 2009.09.11. 15:08/ http://cafe.daum.net/hakunjai/ 1-18. 後臺夜坐二首(錄其二) - 鄭士龍/ 밤에 돈대 뒷편에 앉다./ 煙沙浩浩望無邊.千?臺臨不測淵.山木俱鳴風乍起.江城忽?月孤懸./ 平生牢落知誰藉.投老??只自憐.擬著宮袍放舟去.騎鯨人遠問高天./ 넓고 넓은 안개 낀 사막 바라보아도 끝없고,/ 천 길 돈대에 이르니 연못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네./ 산 나무 함께 우는 것이 바람이 갑자기 부니,/ 강성(江城)에 문득 괴로운데 달은 홀로 떴네./ 평생 우리에 갇힘을 뉘가 알리요,/ 늙어 머뭇거림을 단지 절로 가련한 것을.../ 도포를 두르고 배를 놓아 떠나게 한 듯,/ 멀리서 고래 타고 온 사람 묻노니, 높은 하늘이여!(daum 2010)

 

  정사룡 :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 영남루 시를 차운하다. - 정사룡(鄭士龍)/ 작년, 2009년 10월 14일/ 카페/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 영남루 시를 차운하다. - 정사룡(鄭士龍) 글쓴이 :섬바우/ 次嶺南樓韻(차영남루운) 영남루 시를 차운하다. 정사룡(鄭士龍) 客到嶺梅初發天(객도영매초발천) 나그네 언덕에 오니 매화 처음 피는.../ cafe.daum.net/ 정 암 서 예 연 구 원(daum 2010)

 

  정사룡 : 봄의 흥취 = 정사룡(鄭士龍)1491∼1570./ 지난달, 2010년 9월 7일 (화)/ 춘흥(春興) 봄의 흥취 花滿園林葉未齊(화만원림엽미제) : 뜰쭉날쭉 뜰에 가득 꽃은 피고 恰回殘夢有鶯啼(흡회잔몽유앵제) : 꾀꼬리 울음소리, 꿈 깬 것 같아라 蝦?不碍東風過(하빈부애동풍과) : 주렴이 봄바람 지나는 것.../ cafe.daum.net/ 초계정씨의 방(daum 2010)

 

  정사룡 : 남양주-정사룡 鄭士龍| 한풀 | 2003.10.20. 11:04/ http://cafe.daum.net/myojy/ 정사룡 鄭士龍 1491(성종 22)∼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으로 자는 운경(雲卿)이고, 호는 호음(湖陰)이다. 본관은 동래로 영의정 광필(光弼)의 조카이고 부사 광보(光輔)의 아들이다. 1509년(중종 4)에 생원이 되고 이어 별시문과에 병과로 장원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 재임 중에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사간원의 사간을 거쳐 1534년 동지사(冬至使)로 명에 다녀왔다. 1542년 예조판서로 승진되고 1544년 공조판서로 다시 동지사가 되어 명에 다녀왔다. 1558년(명종 13) 과거시험 문제를 응시자에게 누설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러나 곧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복직되고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1562년 다시 판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 이듬해 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려던 효령대군의 5대 손으로 명종의 신임이 두터움을 믿고 전횡을 일삼아온 이양(李樑)의 일당이라 하여 실직되었다. 일찍이 명에 사신으로 갔을 때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동안 중국 학자들과 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명에 다녀와서 『조천록(朝天錄)』을 남겼으며 특히 7언율시에 능하였으며 당시 문단에서 조광조와 함께 신진사류로 활약하던 신광한(申光漢)과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시풍은 말을 치밀하게 다듬어 웅걸차고 기이한 문구 구사를 장기로 삼았으나 탐학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호음잡고(湖陰雜稿)』, 『조천록』 등이 있고, 글씨는 광주(廣州)에 있는 「이둔촌집비(李遁村集碑)」가 있으며, 묘는 남양주 가운동에 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 『명종실록』; 『충재집』; 『호음잡고』; 『시화총림』; 『연려실기술』; 『한국인명대사전』, 신구문화사, 197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 1991; 양주군지편찬위원회, 『양주군지』 하, 1992.(daum 2010)

 

  정사룡 : 강절부행(姜節婦行)-정사룡(鄭士龍)/ 강정절부의 노래-정사룡(鄭士龍)/ 宜春之縣無等村(의춘지현무등촌) : 의춘현 무등촌에/ 有女姓姜稱淑美(유녀성강칭숙미) : 강씨 여인이 있어 미인이라 일컬었다./ 門譜雖然無外家(문보수연무외가) : 문벌이 비록 외가로는 보잘 것 없으나/ 郞罷夙世??仕(랑파숙세제무사) : 아비는 조상 때부터 좋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田園雄據鼎水北(전원웅거정수북) : 정수의 북쪽에 크자리 잡고 살면서/ 家人千指被羅綺(가인천지피라기) : 천 명 되는 식구들이 모두 비단옷을 입었다./ 姜娥天賦蕙蘭質(강아천부혜란질) : 강 아가씨 성품 난초처럼 아름답고/ 綠?丹?仍皓齒(록빈단검잉호치) : 검은 머리에 붉은 뺨과 하얀 이/ 蘇娘錦字工宛轉(소낭금자공완전) : 소랑의 수놓는 솜씨 모두 배웠도다./ 薛濤華?賦辭理(설도화전부사리) : 설도의 아름다운 편지엔 사연도 많고/ 阿?密奉阿母護(아환밀봉아모호) : 땋은 머리 가만히 받들어 그 어미 지켰도다./ ?外不曾聞繡履(역외불증문수리) : 문밖에 일찍이 신발 소리 들은 적 없고/ 媒?浪費靑鳥使(매구랑비청조사) : 중신 할미 헛되이 청조사 되어/ 幾年擇對深閨裏(기년택대심규리) : 깊은 규방에서 짝 가리기 몇 해이던가./ 岳牧爭調不點頭(악목쟁조불점두) : 악목이 다투어 접근해도 고개 끄덕이지 않았는데/ 自許竟歸河氏子(자허경귀하씨자) : 스스로 마음 주어 하씨 아들께로 갔었다./ 河生縱由武階進(하생종유무계진) : 하생이 비록 무계로써 나아갔으나/ 納交盡是知名士(납교진시지명사) : 사귀는 이 모두 명사들이었다./ 自謂高官若拾芥(자위고관약습개) : 고관대작을 겨자 줍듯 한다고 자랑하며/ 郡齋養客耽書史(군재양객탐서사) : 사랑방에 객을 치고 서사를 탐독했었다./ ?知竟坐主逋禍(?지경좌주포화) : 어찌 알았으랴. 주포화에 연좌되어/ 家破身戮爲世累(가파신륙위세루) : 패가하고 몸은 죽어 세루 되었다./ 姜娥泣血誓天地(강아읍혈서천지) : 강씨는 피눈물로 천지에 맹세하여/ 有如奪志期一死(유여탈지기일사) : 절개를 빼앗기면 죽기로 결심하였다./ 親携夫?妥山阿(친휴부격타산아) : 몸소 지아비의 뼈를 가져다가 산아에 모시니/ 孑然被經無所倚(혈연피경무소의) : 외로운 몸 의지할 곳마저 없이 되었다./ 玆母勸止親黨憫(자모권지친당민) : 어미가 재가를 권하고 친척들이 가엾다 하면은/ 語不及耳輒驚起(어불급이첩경기) : 듣기도 전에 소스라쳐 펄쩍 뛰었다./ 有甲利財挾勢誘(유갑리재협세유) : 어떤 갑부가 재물로써 꾀었으나/ 忍取銀刀落?指(인취은도락섬지) : 은장도로 가냘픈 손가락을 잘랐어라./ 羅衫殷血紛滴地(라삼은혈분적지) : 적삼에 피가 흥건하고 땅위에 낭자 하니/ 承以栗尾書滿紙(승이률미서만지) : 붓을 들어 피로 종이에 가득히 썼도다./ 陳詞墓前哭撤天(진사묘전곡철천) : 묘 앞에 하소연하는 곡소리 하늘에 사무치니/ 聞者怖愕來雲委(문자포악래운위) : 듣는 이 모두 다 놀라도다./ 氓庶咨嗟縣官嘉(맹서자차현관가) : 백성들은 감탄하고 현관은 칭찬하여/ 令女共姜擬可企(령녀공강의가기) : 여자들로 하여금 강씨같이 되라 하였다./ 有?亦寡欲再適(유제역과욕재적) : 젊은 홀어미 개가하려다가도/ 感起不作家聲?(감기불작가성치) : 감화되어 가문의 부끄러움 사지 않았도다./ 何知母性喜?女(하지모성희수녀) : 어찌 어미가 딸 팔기를 좋아겠으리오마는/ 陰結惡少逞奇詭(음결악소령기궤) : 몰래 불량배들과 짜고 속임수를 썼는데/ 黃昏屛息後閤子(황혼병식후합자) : 황혼에 뒷방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女就房令逼邇(동녀취방령핍이) : 강씨의 잠자리 엿보고 달려들게 하였다./ 揚言老?事幾人(양언로온사기인) : 늙은 할미 자랑하기를 “몇 사람을 섬기다가/ 乃遭汝翁來家此(내조여옹래가차) : 너의 아범 만나 이 집으로 왔도다./ 紛然眼前烈女曹(분연안전렬녀조) : 눈앞에 분분히 너희들 있으니/ 享有光榮莫我似(향유광영막아사) : 영광을 누리기 나 만한 이 없어라./

 

  人生一世塵寄草(인생일세진기초) : 사람의 한 세상 풀에 붙은 티끌같은데/ 汝縱立節誰復喜(여종립절수부희) : 너는 수절하여 누구를 기쁘게 하려는가. / 女聞斯言心忽回(녀문사언심홀회) : 강씨가 이 소리 듣고 홀연히 마음 돌아서/ 昨非方知悟今是(작비방지오금시) : 어제의 잘못을 지금에 깨달은 듯하였다./ 甘心似爲力所扼(감심사위력소액) : 끌어안는 힘에 못 이기는 척 하면서/ 通宵夢結鴛鴦被(통소몽결원앙피) : 밤새도록 꿈에 맺은 원앙 이불에 싸였다./ ?思舊主欲輸?(번사구주욕수침) : 생각 돌이켜 옛 님에게 정성을 보내려 하나/ 傾甁已作難收水(경병이작난수수) : 엎지러진 물이 되었으니 다시 담기 어렵구나./ 長遭?笑??間(장조질소축리간) : 동서들 사이에 오래 웃음거리가 되고/ 醜言播耳忽唾鄙(추언파이홀타비) : 추문은 퍼져 더럽다 침뱉았어라./ 新婚反供?臂盟(신혼반공교비맹) : 신혼이 도리어 죽자사자하는 사이가 되어/ 一日?異情難已(일일규이정난이) : 하루만 떨어져도 그리워짐을 어이하리./ 節行居然變淫行(절행거연변음행) : 절행이 온통 음행으로 변했으니/ 河間有靈羞與擬(하간유령수여의) : 죽은 하정의 넋이 있다면 부끄러워하리라/ 殘肢效死始何心(잔지효사시하심) : 남겨진 몸 따라 죽자던 첫 마음 어디 두고/ 片言毁節終奚事(편언훼절종해사) : 한 마디에 절개 꺾음은 무슨 일이었던가./ 會之挺身鬪?虜(회지정신투강로) : 회가 몸 바쳐 강포한 오랑캐와 싸워서/ 辨命碎腦存趙祀(변명쇄뇌존조사) : 목숨 바쳐 조 나라 제사를 보존했지만/ 終然折趙欲歸虜(종연절조욕귀로) : 마침내는 조 나라 꺾고 오랑캐에게로 가서/ 若得誅心同犬豕(약득주심동견시) : 만약 주심을 얻었다면 개 돼지 같았어라./ 聖人所以貴終功(성인소이귀종공) : 성인이 끝맺음을 귀히 여기는 까닭은/ 九?虛?宜審始(구인허궤의심시) : 아홉 길의 공도 마지막 한 삼태기에서 살펴야 하니/ 感歎聊爲節婦行(감탄료위절부행) : 느낀 바 있어 절부행을 지어/ 庶使觀者爲鑑砥(서사관자위감지) : 보는 사람으로 거울삼게 하련다./ 2006.02.28 13:40:37(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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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목요산악회, 19일 등반 도대회 단체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목요산악회(第8回 靑松洛東정맥登攀大會 盛了 : 同好人 500餘名 山行 浪漫 滿喫, 醴泉木曜山岳會 等 團體賞 受賞) [記事] : 제8회 청송낙동정맥등반대회가 2011년 11월 19일 청송군 부동면 피나무골 소공원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청송군산악연맹이 주관하고 경상북도산악연맹 후원으로 열린 이날 등반대회는 강석호 경상북도산악연맹회장을 비롯한 임원단, 김성광 청송산악연맹회장 및 관계자, 김영기 경북도의원, 장은재 부군수, 이성우 군의장, 군의원, 산악동호인 등 500여 명이 참가했다. 한반도 13정맥 중의 하나인 낙동정맥, 그 가운데 청송낙동정맥 구간은 최고의 산행코스로 알려져 있다. 청송낙동정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부동면 무포산 일원 정상(716m)에서는 왕거암을 비롯한 청송낙동정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피나무골 소공원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무포산 정상, 라리 뒷산(낙동정맥), 내룡재, 부남면 화장리 오토캠핑장까지 8km구간을 등반했다. 김성광 청송산악연맹회장은 인사말에서 “산은 삶의 활력소이며 가을의 정취를 힘껏 누리며 자연이 살아숨쉬는 청송에서 오늘만큼은 마음껏 산행의 즐거움을 누려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석호 경북산악연맹회장은 이날 격려사에서 “청송에서 세계빙벽대회 유치와 더불어 꾸준한 등반대회를 개최하게 되어 청송산악동호인들과 군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천혜의 자연을 가진 이곳 청송에서 이 모든 대회를 계기로 산악스포츠의 발전에 기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강 회장은 이어 “오늘 하루 동호인들이 늦가을 산행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즐거운 산행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목적지인 부남면 화장리 오토캠핑장에서는 산행을 마친 동호인들에게 국밥과 오뎅, 두부, 파전, 막걸리 등으로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달랬다. 포항에서 참가한 이철민 씨는 “청송의 자연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몰랐다”며 “가족과 함께 자연을 가로지르면서 모처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게 되어 대회를 마련해준 관계자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등반대회 단체상에는 예천목요산악회를 비롯한 16개 산악연맹이 차지했으며 부상으로는 청송꿀사과와 고추가 증정됐다. 특히 이날 최연소 완주 참가자는 안동 강남초등(1학년) 문기연 군이 아빠와 손을 잡고 완주해 참가자들로부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은 또 뒷풀이 행사로 산악동호회별 노래자랑 및 행운권 추첨을 통해 꿀사과를 비롯해 고추 등 푸짐한 청송의 특산물을 경품으로 전달했다.(김종철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1-11-20 오후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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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801

 

  한맥CC & 노블리아(英陽中 32期, 英陽골프大會 團體戰 優勝) [記事] : 제2회 영양군생활체육회장배 골프대회`가 2011년 11월 18일 예천 한맥CC에서 개최돼 영양군 출향인 및 동호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 대회는 지역 골프의 활성화와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도모하고 출향인들의 애향심 고취 및 결속을 다지기 위해 영양군생활체육회가 주최하고 영양군골프연합회가 주관했다. 이날 대회에는 총 40개 팀 160명의 골퍼들이 참가해 단체전, 개인전 및 신페리오 방식으로 나눠 진행됐다. 영양군생활체육회장 권영택 군수는 인사말에서 “오늘 골프대회를 위해 서울·대구·울산·구미등 멀리서 많은 출향인들이 애향심 하나만으로 이번 대회에 참여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오늘의 경기결과를 떠나 영양인의 결속을 다지고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하기 바라며 영양군 발전에 많은 조언과 더불어 영양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줄 것”을 당부했다. 대회 전날부터 당일 오전까지 내린 비로 수은주가 갑자기 내리며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 했지만 참가선수들의 열정은 프로선수 못지않았으며 어떤 대회보다도 뜨겁게 치뤄지며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이날 대회 결과 단체전 우승팀은 영양중학교 32기, 신페리오부분 1위는 김진욱(안동) 씨가 수상을 했으며, 메달리스트는 조춘호(대구) 선수가 73타(1오버)로 2대 챔피언에 올라 우승컵과 함께 농산물상품권(30만원) 및 영양군의 특산품인 영양초화주를 부상으로 받는 영광을 안았다.(장유수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1-11-20 오후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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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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