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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787:정윤목(2)(祝개인~기관 수상/예천방문818)
작성자장병창 @ 2012.01.06 06:12:31

   예천의 자랑(2787) : 정윤목(2)(附 예천군 개인과 기관, 30일 훈장 등 수 많은 수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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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윤목(鄭允穆) : 서원편 - 道正書院 -/ 위치 : 예천군 호명면 황지동/ 건축 : 1723년(경종 3) 창건, 1868년(고종 5) 훼철, 1970년 중수/ 배향인물 :  정탁(鄭琢), 정윤목(鄭允穆)/ 배향일: 3월 上丁日, 9월 上丁日/ 藥圃祠堂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1985.8.5)/ ▶ 해설 : 虎鳴面 黃池洞 447번지 道正山(乃城川邊)에 있다. 藥圃祠堂의 境內에 세워진 이 建造物은 正面 4間, 側面 2間 八作지붕으로 肅宗 甲午(1714) 11월에 세워졌는데 撤毁 당하여 건물만이 현존한다. 이곳에는 藥圃 鄭琢과 그의 3자인 淸風子 鄭允穆을 配享했었고 문화재자료 142호가 있다. ▶ 관련 글 : 道正書院奉安文// 盛朝楊熙 盛朝가 밝히 빛나/ 碩輔乘運 굳건한 시운을 타게 되었다/ 唯我貞簡 오직 우리 貞簡公은/ 實大抱蘊  진실로 갖춘 것이 많도다/ 立雪陶山 퇴계의 문하에 들어/ 夙溯淵源 근원을 깊이 궁구하여/ 謙?仁恕 겸손히 仁恕를 확충하며/ 踐履?堅 확고히 실천해 갔도다/ 彈劾權兇 권력 쥔 간악한 무리 탄핵하며/ 諫巨風烈 간쟁하는 기상 맵고 강렬하며/ 銓注公正 銓注의 역할 公正하여/ 門無私謁 문에는 사사로운 배알이 없었다/ 朝議乖長 조정의 의논이 어그러져가도/ 卓立不偏 우뚝히 서서 치우치지 않았으며/ 首論誣獄 誣獄을 앞서 변정하여/ 啓後昭前 후세대를 열고 전세대를 밝혔도다/ ?徐冠至 執徐의 우두머리가 되어/ 乘輿播越 수레 타고 국경 넘으며/ 公時西扈 공적인 일로 때로 서쪽으로 가/ 躬負羈? 몸소 말과 수레 타고서/ 協贊公朝 公朝 뜻을 조절하며/ 夷險周旋 오랑캐 땅 두루 돌아다녔도다/ 據義斥知 의에 따라 물리칠 줄 아시어/ 辭鋒凜然 말 소리 늠름하고/ 正笏台座 笏을 바로 하고 대에 앉으니/ 規模經遠 그 規模 멀리까지 퍼지도다/ 比肩?賢 여러 賢人과 나란히 하여/ 共濟大亂 함께 큰 난리 건너셨도다/ 兢?盛滿 가득 차 넘치는 것 매우 조심하니/ 雅志角巾 아름다운 뜻 우뚝 했도다/ 功成身退 功을 이룬 후 몸은 물러나/ 千載完人 천년의 인간됨 완성하시니/ 遙帶朝請 조정의 청을 멀리하시어/ 高臥林下 고고하게 숲 사이로 돌아오시니/ 文正江湖 文正이 계시던 江湖요/ 晉公綠野 晉公이 거닐던 들이로다/ 嗟我邦人 아아 우리 지방 사람들은/ 沐浴餘芬 남기신 아름다움에 젖어들어/ 有德有功 덕이 있고 功도 있어서/ 祀報有文 제향하여 갚으려고/ ??道正 이 道正을 돌아보니/ 桑梓之里 이곳은 선생의 고향 마을이라/ 藍輿舊游 그 수레 옛날에 노닐던 곳/ 湖亭某水 호수의 정자와 아무개 물가라/ 建院陞享 서원을 지어 제향을 올리니/ 萬口一辭 모든 사람이 한 목소리라/ 日吉辰良 길일을 가려 잡아/ 爰擧縟儀 이에 의례에 따른다/ 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기니/ 先生之德 선생의 덕과 같도다/ 啓迪?蒙 여러 어리석은 이들 열어주었으니/ 有聲千億 그 명성 영원히 이르리라// □ 이 글은 鄭琢의 『藥圃集』권7에 실려 있다./ 執徐는 十二支의 하나인 辰의 별칭이다.//

 

  道正書院藥圃鄭先生常享祝文// 大賢高弟 大賢의 뛰어난 제자요/ 中興蓋臣 나라를 일으킨 높은 신하로다/ 淵源之學 근원되는 학문 받아들여/ 社稷之勳 社稷에 큰 공 세우셨도다// 道正書院淸風子鄭公[允穆]配享文// 於惟先生 우리 선생께서는/ 天賦卓越 하늘로서 탁월함을 받아/ 萬里秋濤 온 세상에 추상같은 기상 펼치니/ 霜天雪月 서리 내린 하늘, 눈내리는 달이로다/ 目無全牛 눈에는 全牛가 없고/ 心遊太極 마음은 太極에서 노닐었네/ 貞簡巍巍      곧고 간결함 우뚝하며/ 德崇功赫 덕은 높고 공은 빛나도다/ 公趨于庭 공이 뜰에 달리니/ 已自?脫 그때 이미 빼어나게 드러났도다/ 弱冠陪京 弱冠의 나이에 중국 가는 사신 따라가니/ 華驚頭角 중국에서도 놀라 두각을 나타내었다/ 執徐西? 徐西 부근을 만나/ 侍立親側 모시고 서서 곁에 가까이 있었도다/ 氣豪才周 기운이 호방하고 재주가 두루 미치니/ 何處不適 어느 곳인들 걸 맞는 곳 있으리오/ 出藉師友 師友와 함께 하니/ 玉淵武屹 玉淵이요 武屹이로다/ 經史淹貫 經史에 침잠하여 이를 꿰뚫어/ 刀逆縷釋 거스르는 것들을 풀어내었네/ 陰陽師律 陰陽을 모범으로 삼아/ 靡不?達 현달함에 얽매임이 없었도다/ 斂藏于?  몸소 겸손히 거하며/ 物外超? 物外에서 초월한 삶 살았도다/ 雪夜子猷 눈오는 밤의 子猷요/ 丸弄康節 丸弄하는 소강절이었다/ 詩章筆? 시에 뛰어나고 필체가 좋아서/ 世南三絶 세상에서는 남쪽의 三絶이라 일컬어졌다/ 朝授以官 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면/ 視若?脫 신발을 벗는 듯이 보다가/ 暫屈督郵 잠시 낮은 벼슬을 하였으나/ 頭流萬瀑 두류산 만폭동에/ 鴨峯?雲 봉우리를 압도하고 구름이 가린 곳에/ 蕭然茅屋 맑은 띠집을 짓어서/ 淸風揭號 淸風子란 號를 내거니/ 名與實? 이름과 실제 걸맞도다/ 道正舊祠 道正 옛 院祠에/ ?湖新卜 호수를 끌어들여 새로 터를 잡았다/ 士議齊發 선비들 의견이 함께 나서/ 以公?? 공식적으로 제향 올리자 했네/ 山高而峙 산은 높이 우뚝하고/ 水流益潔 물은 흘러 더욱 깨끗하여/ 洋洋如在 도도히 여기에 있으니/ 儼然平日 계실 때 같이 엄숙하다/ 隅坐唯諾 한쪽에 넉넉하게 자리잡고/ 若鯉對獨 鯉처럼 홀로 직접 가르침 받는다/ 瞻慕益新 우러러 볼수록 더욱 새로우니/ 斯道重? 斯道도 더욱 밝아지도다/ 神其歆右 혼령께서는 흠향하셔서/ ?我千億 우리를 영원토록 가르쳐 주소서(daum 2010)

 

  정윤목 : 문헌(文獻)/ 남명학파(南冥學派) 관련(關聯) 인명록(人名錄)/ 이상필(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편찬, 제공(2005년 4월)/ 정윤목 1571-1629 목여 청풍자 서원 예천 약포자/ 鄭允穆 1571-1629 穆如 淸風子 西原 醴泉 藥圃子(daum 2010)

 

  정윤목 :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정윤목(鄭允穆)/ 경상도(慶尙道)  예천(醴泉)/ *도정서원(道正書院)/ 경종계묘건(景宗癸卯建). (1723) 호평면 황지리/ 제향. 정 탁(호약포 좌의정 서원부원군 시정간 본청주). 정윤목(호청풍자 찰방 본청주)/ 祭享. 鄭 琢(號藥圃 左議政 西原府院君 諡貞簡 本淸州). 鄭允穆(號淸風子 察訪 本淸州).(daum 2010)

 

  정윤목 : 경상도지(慶尙道誌) 권지(卷之) 이십사(二十四)/ ● 필원열전(筆苑列傳)/ 정윤목(鄭允穆) 청주(淸州) 자 목여(穆如) 호 청풍자(淸風子)(daum 2010)

 

  정윤목 : 정윤목(鄭允穆) 본 청주(淸州)/ 영주 문화유적 > 정각/ 피염정(避炎亭) :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에 있으며 이종락이 관리한다. 1632년(인조10)에 진사(進士) 이희음(李希音)의 건립으로 1729년(영조 5)에 소실(燒失)된 것을 1865년(고종 2)에 중건하였다. 단곡(丹谷) 곽진(郭진)의 기와 순흥(順興) 안연석(安鍊石)의 중건기 및 학사 김응조(金應祖)의 시와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의 시가 있다.(daum 2010)

 

  정윤목 : 청풍자 정윤목(鄭允穆) 묘갈명| 설월당 선조/ 낙민 2010.03.06. 19:59/ 청풍자 서원정공 묘갈명 : 淸風子 鄭公의 諱는 允穆이고, 字는 穆如요 淸風子는 그 自號이다. 貞簡公 藥圃先生의 第3子라 어려서부터 奇異한 氣像이 있고 15歲 전에 經史와 子集을 通達하고 文章과 辭藻가 크게 進就되어 前賢의 말을 蹈襲하지 않고 文體의 格式을 스스로 이루고 筆法이 또한 神妙하였다. 公이 己丑年(1589)에 貞簡公께서 勅命을 받들어 中國에 使臣으로 가실 때 公의 子弟로써 따라갔는데 華人이 公을 보고 크게 뛰어난 人物이라 하며 이르되 中國에 태어나 가슴에 품은 포부를 펴지 못함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壬辰年(1592) 여름에 倭寇가 侵入하여 임금님이 西쪽으로 避亂하실 때 貞簡公께서 扈從하셨다. 公은 鄕家에서 몸을 빠저나와 亂中에 다다르니 數千里 險難을 겪으며 李提督 如松軍이 鴨綠江을 건넘에 宋經略應昌이 貞簡公을 따라 이르러 맞이하니 公이 곁에서 모든 일에 뫼시고 護從함에 떠나지 아니 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忠誠과 孝道는 天性에서 얻었다 하도다. 公은 일찍이 家庭의 訓을 이었고 그리고 寒岡, 西厓 兩先生에 性理의 微奧함을 배우니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理解를 하였다. 性稟은 高潔하여 霜天雪月 같아 한 점의 塵俗이 없었다. 눈이 내린 후에는 나귀를 타고 大小白산에 올라 巖巒霽色을 구경하시고 곧 돌아오셨다. 當時 名公碩卿들이 다 벼슬과 위치를 꺾고 같이 交際하고자 하나 公의 素志가 名利에 굽히지 않는 것을 알고 마침내는 탁용하지 아니 하더라. 두 번이나 ?奉에 除授하나 나가지 아니 했다. 晩歲에 召村督郵에 赴臨하셨으나 곧 돌아왔다. 이 일로 인하여 飽賞頭流의 千峯萬壑을 마음껏 구경하였다. 일찍이 菊窓李公 堂壁에 草書로 詩 2句를 써서 부치니 字?이 살아서 날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壬亂에 倭寇들이 침입하여 그곳에 머무르다가 壁書를 보고 恭敬히 뜰 아래로 내려가 절을 하고 머물지 않고 갔다고 한다. 貞簡公이 벼슬을 버리고 醴泉 高子坪(現高坪)에 居하셨다. 公은 郡西 鴨峯 밑 蘆谷洞에 居하고 號를 蘆谷居士라 하다가 後에 龍宮縣北 長野坪에 草廬 數間을 짓고 里中子弟들을 가르침에 게을리 아니 했고 늘 外叔의 곳을 생각하여 돌아보고 縣南 ?雲峯밑인 夢味村에 늦게 집을 지어 扁額으로 夢村草廬라 했다. 崇禎己巳(1629)年 2월 27일에 病患으로 別世하니 태어난 辛未年부터 壽 59요 墓는 草廬 뒤 ?雲峯 中麓 面兌之原이다. ?는 巨濟潘氏로 士人 ?의 따님이요 孝子 察訪 濡의 현손이며 檢閱 贈直提學 李構의 外孫이다. 配는 淑人 驪州李氏로 騎牛子의 後요 贈漢城右尹 潤壽의 따님인데 公보다 24年 後 壬辰 12월 28일에 돌아가니 享年이 83이요 墓는 草廬西邊 乙坐의 언덕이다. 生 3男 4女하니 맏아드님은 時晦요 다음 時榮은 贈吏曹參議인데 出繼요, 다음이 時雄이다. 사위는 士人 金?과 士人 李裕後와 進士 金?과 士人 朴應恒이다. 時晦는 東萊鄭氏 ?奉 榮後의 따님에게 娶行했는데 生4男하니 이요 은 出繼요, 轅과 輪이요, 時榮은 安東權氏 尙忠의 따님에게 娶行해서 生2男하니 輯은 贈吏曹參判이요, 이다. 時雄은 昌寧成氏 宣敎郞 汝栢의 따님에게 娶行해서 生3男하니 軾과 輅와 ?이요, 의 繼子에 碩?오, 의 아드님은 碩?와 碩耆오, 轅이 2男을 두니 碩?는 出繼요, 碩?이다. 輪의 아드님은 碩昌과 碩弼과 碩寬이오 輯의 아드님은 碩濟인데 同知中樞府事요 碩範이다. ?의 아드님 碩佐는 護軍이오,碩佑이다. 軾의 아드님은 碩憲과 碩命과 碩棟과 碩泰요, 輅의 繼子는 碩泰요, ?의 아드님은 碩衡이다. 碩?의 男은 游蓮인데 生員이요, 游蓮의 長男은 模요, 模의 長男은 必復인데 嫡嗣가 된다. 碩濟의 長男은 諱에 玉으로 文科하여 左承旨였고 他子孫이 많으나 다 기록하지 못한다. 公이 지어 놓은 詩와 文이 兵?으로 燒失되고 若干만 남았다. 銘해 이르되// 맑고 시원한 洛東江물이요, 높고높은 ?雲峯이로다./ 滅하지 아니하고 끊어지지 아니 하니 아! 百世淸風이로다./ 戊寅(1638) 孟冬 資憲大夫 知中樞府事 安東 權相一 謹述//

 

  淸風子 西原鄭公 墓碣銘 : 淸風子鄭公諱允穆。字穆如。淸風子其自號也。貞簡公藥圃先生第三子。幼有奇氣。未成童。讀經史子集。文詞大進。不蹈襲前語。而自成體格。筆法又神妙。己丑。貞簡公奉使上國。公以子弟從往。華人見而大奇之。歎其未生於中國。展其?抱。壬辰夏。倭?至。大駕西幸。貞簡公扈從。公自鄕家。挺身赴亂。歷險數千里。李提督如松軍渡鴨江。宋經略應昌隨到。貞簡公迎護。公皆侍側不離。人稱其忠孝得於天性。公早承家庭之訓。且從寒岡西厓兩先生學。凡於性理微奧。多不勞而領解。性高?若霜天雪月。無一點塵俗。每雪後。乘驢入大小白山。看巖巒霽色。?然獨返。當時名公碩卿。皆欲折官位與之交。而知公素志不在名利。故竟不擢用。兩除齋郞而皆不就。晩歲赴召村督郵卽歸。蓋爲因此。飽賞頭流之千峯萬壑也。嘗於菊?李公堂壁。草寫詩二句。字?飛動若生。壬辰倭陣來留。見壁書。不覺敬歎。拜庭下而去。貞簡公謝事。退居于醴泉高子坪。公就郡西鴨峯下蘆谷洞。號蘆谷居士。後移卜于龍宮縣北長野坪。結草廬數間於家後。誨里中子弟不倦。以眷念於渭陽地也。晩築小庵於縣南?雲峯下夢味村。扁曰夢村草廬。崇禎己巳二月二十七日。以疾卒。距生年辛未。壽五十九。葬于草廬後?雲峯中麓面兌之原。?巨濟潘氏。士人?之女。孝子察訪濡之玄孫。檢閱贈直提學李構之外孫。配淑人驪州李氏。騎牛子之後。贈漢城右尹潤壽之女。後公二十四年壬辰十二月二十八日卒。享年八十三。葬于草廬西邊坐乙之原。生三男四女。男長時晦。次時榮。贈吏曹參議。出繼。次時雄。女長適士人金?。次適士人李裕後。次適進士金?。次適士人朴應恒。時晦娶東萊鄭氏。參奉榮後之女。生四男。,?出繼。轅,輪。時榮娶安東權氏。尙忠之女。生二男。輯贈吏曹參判。?。時雄娶昌寧成氏。宣敎郞汝栢之女。生三男。軾,輅,?。繼子碩胄。?二男。碩耉,碩耆。轅二男。碩胄出繼。碩?。輪三男。碩昌,碩弼,碩寬。輯二男。碩濟同知中樞府事。碩範。?二男。碩佐護軍。碩佑。軾四男。碩憲,碩命,碩棟,碩泰。輅繼子碩泰。?一男碩衡。碩胄長男游蓮。生員。游蓮長男模。模長男必復。是爲嫡嗣。碩濟長男玉。文科左承旨。他子孫多不能盡錄。所著詩文。失於兵?。有若干卷藏于家。銘曰。淸?乎洛江之水。崔?乎?雲之峯。不泯而不絶。?嗟乎。百世淸風。歲戊寅孟冬。資憲大夫知中樞府事安東權相一謹述。(daum 2010)

 

  정윤목(鄭允穆) : 자 목여(穆如), 호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居士), 생졸년 1571 (선조 4) - 1629 (인조 7), 시대 조선 중기, 본관 청주(淸州), 활동분야 학자 > 유학자/ [상세내용] 정윤목(鄭允穆)에 대하여 : 1571년(선조 4)∼1629년(인조 7).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居士). 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탁(琢)이며,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충(?)의 딸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정구(鄭逑)·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전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많은 서책을 읽었고, 시문에 뛰어나 일가의 체격을 이루었다. 필법이 신묘(神妙)하여 일찍이 이국창(李菊窓)의 당벽(堂壁)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붙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곳에 진(陣)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1589년(선조 22)에는 사은사(謝恩使)로 가는 사행(使行)길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벼슬에 뜻이 없어 두 차례 재랑(齋郞)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616년(광해군 8)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에 취임하였으며,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 산수를 벗삼아 시와 서(書)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는 용궁(龍宮)의 장야평(長野坪)에 초려(草廬)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1786년(정조 10)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청풍자문집》이 있다./ [참고문헌] 淸風子文集(daum 2010)

 

  정윤목 : 정탁(鄭琢) 선생님/ Daum 블로그 | 3일전, 2010년 12월 8일 오후 2:05 (수)/ ...鄭允著)인데 집의(執義)를 증직하고, 다음은 정윤위(鄭允偉)인데 주부(主簿)를 증직하였으며, 다음은 정윤목(鄭允穆)인데 찰방이다. 이 가운데 정윤목(1629~1671)은 매우 총명하며 경서와 역사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또.../ blog.daum.net/| 정호선의 Grand Corea 세계(daum 2010)

 

  정윤목 : 정윤목(鄭允穆) 선생이 쓰신 간찰/ <크기>43.0×31.0㎝/ <참고>정윤목(鄭允穆)선생 : 1571년(선조 4)∼1629년(인조 7).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居士).  정구(鄭逑)·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필법이 신묘(神妙)하여 일찍이 이국창(李菊窓)의 당벽(堂壁)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붙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곳에 진(陣)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1786년(정조 10)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청풍자문집》이 있다.(daum 2010)

 

  정윤목 : 피염정 이야기/ Daum 블로그 | 2달전, 2010년 10월 7일 (목)/ 세상에서 잊혀 질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당시 이곳의 덕망 있는 선비 청풍(淸風) 정윤목(鄭允穆)과 단곡 곽진 등과도 교류하고 지내, 이들과의 교류시가 전해 온다. 이 밖에도 피염정 주변 경관도 빼어났던 듯, 그.../ blog.daum.net/| 水 山(daum 2010)

 

  정윤목 : 예천삼강주막(醴泉 三江酒幕)/ Daum 블로그 | 9달전, 2010년 3월 30일 (화)/ (鄭寒岡)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사와 성리학에 정통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필법이 탁월하여 초서(草書)의 대가로 존경받은 학자 청풍자 정윤목(淸風子 鄭允穆)이 벼슬을 사양하고 후진을 양성키 위해 세운 사설 학원이다./ blog.daum.net/| 눌인정사로의 초대(daum 2010)

 

  정윤목 : 군자君子/ Daum 블로그 | 4달전, 2010년 8월 15일 (일)/ 안견安堅 (1419∼1450), 서귀자鋤歸子 정윤해鄭允諧(1553∼1618), 초서를 잘 쓴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1571-1620), 조선 후기의 학자 사무자四無子 정재로丁載老 (1731∼1802),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blog.daum.net/| 둔굴재(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雨中飮穆如 鄭允穆 家。贈李希龍。/ 간행물/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0)

 

  정윤목 : 도정서원/ Daum 블로그 | 2년전, 2008년 5월 16일/ 건축 : 1723년(경종 3) 창건, 1868년(고종 5) 훼철, 1970년 중수 배향인물 :  정탁(鄭琢), 정윤목(鄭允穆) 배향일: 3월 上丁日, 9월 上丁日 藥圃祠堂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1985.8.5)   ▶ 해설  .../ blog.daum.net/starfamily/ 쪼구랑별(daum 2010)

 

  정윤목 : 사림의 향촌생활과 시가문학/ e-Book/ 최재남 지음 |  국학자료원 |  1997.02.20/  책본문 : ...교유를 말하는데 여기에 참여한 인물로는 鋤歸子 鄭允諧(1553-1618), 淸風子 鄭允穆(1571-1620), 梅塢 鄭榮後(1569-1641),石門 鄭榮邦(1577-1650), .西 李光胤(1564-1637) .../ 392페이지(daum 2010)

 

  정윤목 : 역사를 빛낸 한국의 여성(사르비아총서 403)/ e-Book/ 안춘근 지음 |  범우사 |  2002.04.20/ 책본문 : ...총명을 보였다. 또한 서예에도 능한 솜씨를 나타냈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이 적벽부(赤壁賦)를 보고, “글씨가 너무 뛰어나 조선 사람이 쓴 것 같지 않다”고 놀제... 3장 근세편.../ 187페이지(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간행물] 雨中飮穆如 鄭允穆 家。贈李希龍。/ 이춘영(李春英)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輓詞 鄭允穆/ 李璣玉(이기옥)  | 경상대학교도서관문천각(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정윤목 교지 (이명칭 : 鄭允穆 敎旨)/ 본 교지는 충의위 창신교위 정윤목(鄭允穆)에게 창신교위의 지위를 주고, 충좌위 부사용·부사직 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로 행서체이고 배접표구 되어있다. (만력 43년, 45년)한국(韓國)+조선(朝鮮)++0++++++...(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정윤목 교지 (이명칭 : 鄭允穆 敎旨)/ 본 교지는 충의위 창신교위 정윤목(鄭允穆)에게 창신교위의 지위를 주고, 충좌위 부사용·부사직 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로 행서체이고 배접표구 되어있다. (만력 43년, 45년)한국(韓國)+조선(朝鮮)++0++++++...(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정윤목 교지 (이명칭 : 鄭允穆 敎旨)/ 본 교지는 충의위 적순부위 정윤목(鄭允穆)에게 적순부위의 지위를 주고 충좌위 부사용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로 행서체이며 배접표구 되어 있다.(만력 45년 1월)한국(韓國)+조선(朝鮮)++0++++++++++++++++++...(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정윤목 교지 (이명칭 : 鄭允穆 敎旨)/ 본 교지는 충의위 적순부위 정윤목(鄭允穆)에게 적순부위의 지위를 주고 충좌위 부사용에 임명한다는 내용의 교지로 행서체이며 배접표구 되어 있다.(만력 45년 1월)한국(韓國)+조선(朝鮮)++0++++++++++++++++++...(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간행물] 輓詞[鄭允穆]/ 정윤목(鄭允穆)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淸風子先生續集/ 鄭允穆(朝鮮) 著  | [刊者未詳](daum 2010)

  정윤목 [專門資料] : 淸風子先生續集/ 鄭允穆 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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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개인과 기관, 30일 훈장 등 수 많은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2011年 終務式 有功 公務員, 郡民 施賞) [記事] : 예천군은 2011년 12월 30일 오전 예천문화회관에서 공무원과 유공 군민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묘년을 마무리하는 종무식을 갖고, 2011년도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현준 군수는 “앞서가는 행정을 펼쳐 경북농정대상을 비롯해 경북환경상 등 28개 부문에서 기관 표창을 수상했으며, 특히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전국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된 점은 ‘인재의 고장 예천’, ‘청렴의 도시 예천’이라는 명성을 대내외적으로 확실히 각인시킨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이 군수는 이어 “임진년 새해, 2012곤충바이오엑스포 성공개최와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지역인재 육성 등 전국 제일의 자치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며 “‘제2의 예천 중흥을 위해 전 군민이 다시 한번 지혜와 역량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종무식에서는 국·도·군정 유공 민간인 및 공무원 표창과 기관, 군정 추진 우수부서에 대해 시상했다.

 

 〈■ 국도군정 유공 민간인 표창〉◇대통령 표창 : 지보면자율방범대/ ◇국무총리 표창 : 예천농업협동조합 유춘식/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 호명면 이상희, 예천읍 전종백, 해병전우회 정민섭, 호명면 정재문, 용문면 김선경/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표창 : 예천농업협동조합 유통사업소, 예천유천잡곡작목반, 호명면 장찬현, 출렁다리체험마을 김명화/ ◇소방방재청장 표창 : 아마추어 무선연맹 서규하,적십자봉사회 김귀순/ ◇경상북도지사 표창 : 예천군 녹색희망연합, 예천양수발전소 이증순, 사)전국한우협회 예천군지부 강만준, 예천읍 김만영, 개포면 박건상, 유천면 엄봉흠, 예천문화원 김상진, 여성예비군 엄연수, 용궁평생학습마을 문창배/

 

 〈■ 기관 표창〉: 농림수산식품산업발전 유공(농정과), 정기보안감사평가 우수상(총무과), 새올시스템 최우수상(총무과), 새마을운동 평가 우수(새마을경제과), 지적행정추진실적 평가(종합민원과), 경북농정업무평가 대상(농정과), 낙동강살리기 시군평가(재난관리과), 재난대응안전훈련 평가(재난관리과), 음식문화개선사업 우수(예천군보건소)/

 

 〈■ 국·도·군정 유공 공무원 표창〉◇녹조근정훈장 : 퇴직공무원 천호상/ ◇대통령 표창 :총무과 전상학, 산림축산과 조동윤/ ◇국무총리 표창 : 환경관리과 장무환, 기획감사실 이정희/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 총무과 최인숙, 종합민원과 황원희, 건설과 장사휘, 용궁면 신언석/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 주민생활지원과 최재동/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 : 농정과 박광호, 농업기술센터 윤주태/ ◇농촌진흥청장 표창 : 농업기술센터 손석원, 농업기술센터 하창근/ ◇경상북도지사 표창 : 보문면 박종서/

 

 〈■ 군정추진 우수부서〉: 기획감사실, 총무과, 새마을경제과, 농정과, 주민생활지원과, 재난관리과, 환경관리과, 용궁면, 상리면, 예천읍, 유천면, 하리면, 풍양면(醴泉新聞 2012년 01월 05일 (목) 09: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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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818

 

  예천공설운동장(醴泉公設運動場, 陸上轉地訓鍊場으로 脚光 : 내달 5日까지 國家代表 常備軍 等 11個 팀 210名 選手 冬季訓練…陸上메카 浮上) [記事] : 올 겨울 예천지역이 육상 전지훈련장으로 널리 각광받고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예천공설운동장이 최적의 육상훈련장으로 각광,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아 훈련하는 선수들의 함성이 새벽마다 메아리치고 있다. 2012년 1월 3일 경기도 의정부 경민여고 육상부 20명이 보름간의 전지훈련을 위해 예천 공설운동장을 찾았으며 9일에는 인천 남동구청 육상 선수단, 16일에는 충남체고 육상부 등 오는 2월 5일까지 11개 팀 210명의 육상선수 지도자들이 전지훈련을 위해 예천에 머문다. 이들 육상 전지훈련단들이 한꺼번에 예천으로 몰리면서 전지훈련 기간 동안의 숙식비 등 체제비 지출 등으로 인해 지역경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지역주민들도 크게 환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지훈련단 중에는 오는 16일 육상 국가대표 상비군 45명이 예천공설운동장과 육상 보조경기장 등에서 2월 5일까지 전지훈련을 할 것으로 예정돼 있어 예천군이 새로운 육상의 메카로 부상될 전망이다.  이에 군체육진흥계에서는 이들 선수단들의 훈련 편의를 위해 몽골텐트 8동을 설치해, 선수 대기실 및 탈의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예천군에서는 올해 20억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공설운동장 인근 보조경기장 자리에 전천후 실내 육상보조경기장은 물론 각종 운동기구를 비치한 웨이트 트레이닝장을 건립할 계획이다.(권용갑 記者 慶北道民日報 2012-01-05 (목)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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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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