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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890:최원한(교육장)-최유(부원군)-최을원(시인)(祝거산체육관/예천방문843)
작성자장병창 @ 2012.04.18 06:18:06

   예천의 자랑(2890) : 최원한(교육장)-최유(부원군)-최을원(시인)(附 예천읍 용인대거산체육관, 1일 태권도 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축하합니다/예천방문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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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한(崔元漢) : 1913-1983, 예천읍 청복리 출신으로 노하리 38번지로 옮겨 살았다. 본관은 경주이다. 일본에서 동해상업학교(東海商業學校)를 거쳐 명치대(明治大) 법학부에 진학하여 국회의원 조일환(曺逸煥), 법 이론가인 배영환(裵瑛煥) 등과 동기로 졸업(1941)하였다. 이때 일본대(日本大) 법과생 시인 훈산 박유상(薰山 朴裕相)과도 깊이 사귀었다. 명치대를 졸업하자마자 귀국하여 고향에서 가사를 돌보다가 소망이었던 연극계로 진출하여 시나리오까지 창작한 실적이 있다. 해방(1945) 후에는 예천중, 예천농고에서 전후 7년 동안 교사를 하다가 예천중 교감을 3년 동안 지냈다. 그 후 지방의회(地方議會)로부터 선출된 교육위원들에 의해 제2대 예천교육감(醴泉敎育監)으로 선임되었다. 예천군내 28개 국민학교의 교직원들을 온정미(溫情美)로서 통솔하였다. 5.16혁명(1961)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자, 교육감 제도가 폐지되어 안동군 교육장(安東郡敎育長), 예천군 교육장(醴泉郡敎育長)을 하다가 예천중 교장으로 정년퇴임(1979.2)을 하였다. 소박한 성격의 주인공인 그는 공사(公私) 생활에 있어 매우 청렴결백하였고, 대인 관계에 있어 언제나 한결같이 겸손하여 서민적이었다. 그리고 교직원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의 온정미를 가지고 나긋나긋한 인간적 호흡으로써 원만하고도 실수없는 통솔을 하였다. 원래 "휴머니스트"로 일관하여서 일선 교육 행정 책임자로서 제일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다. 교직을 떠난 후로는 예천읍단위농업협동조합장, 공화당(共和黨) 예천군당 사무국장, 예천문화원장등을 지냈고, 경북교육회 연공상(1978), 국민훈장 동백장(1978) 등을 수상하였다. (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77 1980)

 

  최원한(崔元漢) : 본관(本貫) 경주(慶州), 시대(時代) (1913-1983)/ 이력(履歷)/ <예천 신문 고장의 인물> 최원한(1913-1983)은 예천읍 노하리 38번지 출신으로, 본관은 경주이다. 일본에서 동해(東海)상업학교를 거쳐 명치대 법학부에 진학하여 국회의원 조일환(曺逸煥), 법이론가인 배영환(裵瑛煥) 등과 동기로 졸업(1941)하였다. 명치대를 졸업하자마자 곧 귀국하여 고향에서 가사를 돌보다가 소망이었던 연극계로 진출하여 시나리오까지 창작한 실적이 있다. 특히 1950년 초봄에 '흑응악극단(黑鷹樂劇團)'을 조직하여 '승방에 지는 꽃' 등을 스스로 극본 연출하였는데, 이는 당시 매우 인가가 높았던 연극이었다. 연극을 통해 민족적 자각과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던 그는 극단 해체 후에는 예천중학교, 예천농업고등학교에서 전후 7년 간 교사를 하다가 예천중학교 교감을 3년 간 지냈다. 그 후 지방 의회로부터 선출된 교육의원들에 의해 제2대 예천교육감으로 선임되었다. 군내 28개 국민학교의 교직원들을 온정미로써 통솔했다. 5.16혁명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자, 교육감제도가 폐지되어 안동군교육장, 예천군교육장을 하다가 예천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1979.2)하였다. 소박한 성격의 주인공인 최원한은 공사 생활에 있어 매우 청렴결백하였고, 대인 관계에 있어 언제나 한결같이 겸손하여 서민적이었다. 그리고 교직원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의 온정미를 가지고 나긋나긋한 인간적 호흡으로써 원만하고도 실수 없는 통솔을 하였다. 원래 '휴머니스트'로 일관하여서 일선 교육 행정 책임자로서 제일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다. 교직을 떠난 후로는 예천읍단위농업협동조합장, 공화당 예천군당 사무국장, 예천문화원장 등을 지냈고, 경북교육회 연공상(1978), 국민훈장 동백장(1978) 등을 수상하였다. 최원한의 취미는 문학과 철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과 영화 감상이었다. <장병창 논설위원>/ www.shinjongwoo.co.kr(daum 2011)

 

  최원한 : 대창80년사:중고태동시대(2) 대창초급중학교 설립/ 작성 장병창/ 작년, 2010년 12월 27일/ 봉직 중이던 박상영 선생(예천 제헌국회의원)이었는데, 이 박 선생의 찬동을 뒤이어 장기환, 최원한, 엄대일, 이재녕, 장기오, 이약우, 장남구, 박철홍 선생 등 당시 예천 교육계의 중진들은 한 .../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최원한 : 재경예천군민회cafe/ 예천 청단놀음/ 3년전, 2008년 3월 2일/ 한량들에 의해 전승되어온 가면 무언극으로 지난 1934년 10월 중단된 것을 1981년 김위진, 최원한, 장원석씨를 비롯한 지역유지들과 성병희 교수(안동대), 권영철 교수(효성가톨릭대), 강원희 선생의.../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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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崔濡) : ?-1364(공민완 13), 용궁현(龍宮縣) 출신, 몽고명(蒙古名)은 티무르부카(沾木兒不花), 자는 원택(元澤), 본관은 용궁, 시조 현(玄)의 손자, 동지밀직 안도(同知密直安道)의 아들, 원(源)의 형이다. 충혜왕 때 군부사 판서(軍簿司判書)로 1339년(충숙왕 복위8) 조적(曹적)의 난에 충숙왕을 호종(扈從)하여 성근익재협찬보정 1등공신(誠勤翊載協贊保定一等功臣)에 책록(策錄)되고, 1349년(忠定王 1) 2월 원(元) 나라의 순제(順帝)가 충혜왕의 아들 왕저(王저, 忠定王)에게 입소(入所)하도록 하여 그가 왕저를 받들고 원 나라에 갔다. 이 공로로 충정왕이 즉위하자 취성군(鷲城君)에 봉해졌고, 뒤에 참리(參理, 1350.5)가 되었다. 공민왕 때 삼사사(三司使)로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졌으나, 관작에 불만을 품고 동생 최원(崔源)과 함께 원 나라로 망명(1350.6), 원 나라의 중상감승(中尙監丞)에 올랐다. 1364년(恭愍王 13) 1월 공민왕을 폐위시키기 위해 원병(元兵) 1만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왔다가 고려군(高麗軍)에 패퇴했다. 묘는 경기도 개성에 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의 분포 상황에 대하여는 상고(詳考)할 길이 없다.(高麗史, 高麗史節要 25卷(1343.4 1346.9) 26卷(1350.5 1350.6 1352.3) 28卷 (1362.3 1362.5 1364.1 1364.6), 韓國史 中世篇 660-661쪽, 國史大事典 1905쪽, 사랑의 王道 恭愍王(金哲埈), 韓國의 人間像 1卷 1965 134쪽, 韓國人의 姓譜)

 

  최유(崔濡) : 출처: 브리태니커/ ?~1364(공민왕 13). 본관은 해주(海州). 몽골 이름은 티무르부카(帖木兒不花). 용주(龍州) 출신이다. 아버지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안도(安道)로 입원숙위(入元宿衛)하여 원(元)나라에서 태부태감(太府太監)을 지낸 친원파(親元派)였다. 충혜왕 때 여러 관직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가 되었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앞서 조적(曺?)의 난 때 왕을 시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원나라에서 벼슬하여 어사(御史)가 되었다. 1348년(충목왕 4) 충목왕이 갑자기 죽자 왕기(王祺:뒤의 공민왕)를 추대하려는 세력과 대립하여 충혜왕의 서자(庶子)인 왕저(王:뒤의 충정왕)를 지지했다. 왕저가 왕위계승 후보자로 지목되어 원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따라간 공로로 1349년(충정왕 1) 성근익대협찬보정공신(誠勤翊戴協贊保定功臣)의 호를 받고 취성군(鷲城君)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충정왕 즉위에 큰 힘을 발휘한 자신에게 응분의 관직이 돌아오지 않은 데 불만을 품고 있던 중 배전(裵佺)·민사평(閔思平)을 때린 일로 감찰사와 도첨의사의 탄핵을 받게 되자 아우 원(源)과 함께 원나라로 도망했다. 1352년(공민왕 1) 공민왕이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호종하여 요동에 이르렀다가 도망하여 다시 원나라로 들어갔다. 이후 김원지첩목아(金元之帖木兒) 등과 함께 모의하여 원나라 황제에게 홍건적을 정벌할 병사 10만 명을 고려에서 징발할 것을 주청하기도 했으나, 원나라에 있던 고려인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1354년 원나라에서 장사성(張士誠)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 군사를 징집하게 했을 때 원나라의 중상감승(中尙監丞)으로 고려에 와서 군사를 독촉했다. 이에 공민왕은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제수하고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했다. 1363년 원나라에 있으면서 장작동지(將作同知)가 되고 다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었다. 이어 기황후를 달래어 공민왕을 폐하고 원나라에 있던 충숙왕의 아우 덕흥군(德興君)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게 했다. 이듬해 정월에 라요양[遼陽]에 있던 원나라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선주(宣州:선천)를 점령했다. 이에 공민왕이 최영(崔瑩)을 도순위사(都巡慰使)로 삼아 제군(諸軍)을 지휘하게 하니, 수주(隨州)의 달천(撻川)에서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그 뒤 다시 고려를 침략하기 위해 원제에게 군사를 청했으나, 원나라의 감찰사 유련(紐憐) 등이 그의 간사함을 폭로하여 원제에 의해 고려로 보내져 그해 11월 사형 당했다.(daum 2011)

 

  최유(崔濡) : 생졸년 ? (?) - 1364 (공민왕 13), 시대 고려 후기, 본관 해주(海州)/ [상세내용] 최유(崔濡)에 대하여 : 미상∼1364년(공민왕 13). 본관은 해주(海州). 몽고 이름은 티무르부카(帖木兒不花). 용주(龍州) 출신.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안도(安道)의 아들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군부판서(軍簿判書)로서 조적(曺?)의 난에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시종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었고, 원나라에서 벼슬하여 어사가 되었다. 1345년(충목왕 1)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간 공로로 성근익대협찬보정공신(誠勤翊戴?贊保定功臣)의 호를 받고 취성군(鷲城君)에 봉하여졌다. 1346년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에 임명되었는데 왕위옹립에 자기보다 공이 많은 사람이 없음을 자부하고 벼슬에 불평을 품자, 배전(裵佺)·민사평(閔思平)이 이를 꾸짖어 말리므로 화가 나서 이들을 때렸다가 감찰사와 도첨의사(都僉議司)에서 탄핵을 하자 아우 원(源)과 함께 원나라로 도망하였다. 그 뒤 1352년(공민왕 1) 왕이 원나라에 있다가 환국하게 되자 어가를 호종하여 요동(遼東)에 이르렀다가 도망하여 다시 원나라로 돌아갔다. 고려에서 군사 10만 명을 징발할 것을 원제에게 주청하였고, 1354년 원나라에서 고우(高郵)에 진을 치고 있던 장사성(張士誠)을 정벌하기 위하여 원제가 그를 중상감승(中尙監丞)에 임명하여 고려에 보내어 군사를 독촉하자, 공민왕은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제수하고,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하였다. 1363년 원나라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승상 삭사감(?思監)과 황후궁의 환자인 고려사람 박불화(朴不花)에게 아첨하여 장작동지(將作同知)·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가 되어 기황후(奇皇后)가 자기의 일족을 제거한 공민왕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고려에서는 김용(金鏞)이 안우(安祐) 등 여러 장수를 죽여 곤경에 처하여 있어 내응하리라 믿고 고려에 대하여 불평을 품고 있는 자들과 더불어 기황후를 달래어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다음해 정월에 원나라의 군사 1만 명으로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포위하니 고려군이 패하여 물러나와 안주를 지켰다. 그가 선주(宣州: 선천)에 들어가 웅거하자 왕은 최영(崔瑩)을 도순무사로 임명하고, 또 이성계(李成桂)에게 명하여 정기(精騎) 1,000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응원하게 하니 토벌군의 사기가 올라 수주(隨州)의 달천(獺川)에서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이때 압록강을 건너 도망간 자는 겨우 17기뿐이었다. 그 뒤 원제가 그를 잡아서 칼을 씌워 고려로 돌려보내니 마침내 사형에 처하여졌다./ [참고문헌] 高麗史(daum 2011)

 

  최유( 崔濡 ) : 최유는 몽고 이름으로 첨목아불화( 帖木兒不花 )이며 동지 밀직 최안도( 崔安道 )의 아들이다. 충혜왕 때 여러 관직을 거쳐 군부 판서( 軍簿判書 )로 승진되였으며 조적의 반란에 임금을 시종한 공로가 있어서 1 등 공신이 되였다. 최유는 원 나라에서도 어사( 御史 ) 벼슬을 했다. 지도첨의( 知都僉議 )로 전임되었다가 어떤 일로 파면되고 충정왕을 따라서 원 나라로 갔다. 충정왕이 즉위한 후 취성군( 鷲城君 )으로 봉하고 성근 익대 협찬 보정 공신( 誠勤翊戴協贊保定功臣 ) 칭호를 주었으며 이어 참리( 參理 )로 임명하였다. 왕이 원 나라 사신을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을 때 배전( 裴佺 )이 최유를 보고 말하기를 << 네가 참리가 된 것은 내가 천거한 것이다. >>라고 하니 최유가 발끈 화를 내여 말하기를 << 내가 네 힘으로 벼슬하겠느냐! >>고 하면서 주먹으로 배전을 구타했다. 그리고 최유가 또 임금에게 말하기를 << 임금을 도와서 즉위케 한 공에는 저의 우에 설 사람이 없는데 지 도첨의로부터 겨우 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윤시우( 尹時雨 )는 무슨 공이 있어서 밀직부사로부터 삼재( 三宰 )가 되였습니까? 그의 아버지 윤신계( 尹莘係 )와 그의 숙부 윤안숙( 尹安淑 )도 모두다 일찍이 삼재를 했으니 그래 삼재가 윤가네 집 세전 관직입니까? >>라고 하였으므로 민사평( 閔思平 )이 최유를 꾸짖어 말하기를 << 너는 원래 초인( 抄人 )의 후손으로 륙재( 六宰 )가 된 것도 너에게는 과분한 일인데 네 어찌 만족할 줄 모르느냐! >>라고 하였다. 최유가 노해서 민사평을 구타하였으므로 왕은 최유에 대하여 노했으나 그를 내쫓지 못했다. 그때 최유의 동생 판도판서 최원( 崔源 )은 왕을 원망하고 불손한 발언을 했으므로 왕이 최원을 투옥하고 우정승 손수경( 孫守卿 )에게 국문케 하였다. 최원이 옥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서 강제로 끌어넣고 꿇어앉으라 하니 최원은 복종하지 않고 말하기를 << 정승은 일찍이 황제도 숙위( 宿衛 )에게 모욕도 못 하고 국문도 못 한다는 것을 듣지 못 했는가? 꾸짖고 욕하는 것도 다 나라의 법이 있는 거야! >>라고 하고 소매를 뿌리치고 나갔다. 최유는 드디어 최원과 그의 아우 최유룡( 崔有龍 )을 데리고 원 나라로 달아났다.(고려사 열전 최유( 崔濡 )(daum 2011)

 

  최유 : 1408.05.24 조선의 제1대 왕 태조(太祖) 사망/ Daum 블로그 | 작년, 2010년 5월 24일/ ...데 전공을 세웠다. 그해 원나라 나하추[納哈出(납합출)]의 침입을 함흥평야에서 격퇴시켰고, 1364년 최유(崔濡)가 덕흥군(德興君)을 추대하여 원병(元兵) 1만 명으로 평안도에 침입하자 최영(崔瑩)과 함께 수주(隋州) 달천에서.../ blog.daum.net/gjkyemovie/| 추억속으로(daum 2011)

 

  최유 : 경주지씨 알고 싶어요/ Daum 지식 | 작년, 2010년 2월 16일/ 내사시 문하평장사(內史寺 門下平章事)겸 이부랑 판혜덕부사(吏部郞 判惠德府事)가 되었고, 1364년 최유(崔濡)가 요동으로부터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와 의주(義州)를 포위하니 아우 충무공(忠武公) 지용수(池龍壽)와 함께.../ k.daum.net(daum 2011)

 

  최유 : 충주 지씨의 유래/ 파란 블로그 | 작년, 2010년 4월 14일/ 광주지씨, 단양지씨, 충주지씨, 청주지씨(池氏)의 연원 대해서/ Daum 지식 | 2달전, 2010년 12월 27일 (월)// 지씨(池)의 연원/ Daum 지식 | 작년, 2010년 1월 29일(daum 2011)

 

  최유 : 앞에와 같이 경복흥(慶復興)이 최유(崔濡) 나영걸 유인우 황순 홍법화.../ 간행물/ 경복흥(慶復興)|최유(崔濡)|왕순(王珣), 왕씨(王氏)|부귀(富貴)|삼족(三族)/ http://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1)

 

  최유 :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사 인물 이야기/ 冊/ 윤희진 지음| 책과함께 펴냄 | 2006-09-27/ 책본문 : (崔瑩) 201, 212, 214~218, 242~243 최우(崔瑀) 171, 181, 185최원(崔源) 215 최유(崔濡) 200, 215, 243 최윤덕(崔潤德) 265 최의(崔˙) 171 최익현(崔益鉉) 415 최제우(崔濟愚) 427../. 626페이지(daum 2011)

 

  최유 : 천룡전기 7/ 冊/ 악필서생 지음| 로크미디어 펴냄 | 2007-02-27/ 책본문 : 고려의 새 왕으로 세웠음. 기사인티무르奇賽因帖木兒를 세자로 삼고 최유崔濡, 김첨수金添壽, 강지연康之衍, 황순黃順, 안복종安福從, 문익점文益漸, 기숙륜奇叔倫 등에게 관직을.../ 78페이지(daum 2011)

 

  최유 : 한국의 성씨와 족보(한국의 탐구25)/ 冊/ 이수건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3-06-10/ 책본문 : 上京官人을 적게 배출시켰지만, 후기에 들어와서는 吏族勢가 강하였다. 仁宗朝의 崔濡는 溟州吏에서 등제하여 平章事를 역임하였고, 고종조에 출사한 崔守璜系는 후기Ⅴ. 고려시대.../ 245페이지(daum 2011)

 

  최유 : 고려시대 향리연구/ 冊/ 박경자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1-03-20/ 책본문 : 京仁宗吏部尙書參知政事高麗史卷98 列傳11崔濡仁宗中書門下平章事高麗史卷98 列傳11朴義信仁宗工部尙書.曹龜鑑崔婁伯毅宗翰林學士.曹龜鑑제3장 향리제도의 운용 183.../ 187페이지(daum 2011)

 

  최유 : 한문고전의 실증적 탐색/ 冊/ 이종문 지음| 계명대학교출판부 펴냄 | 2005-11-20/ 책본문 : 기철의 누이인 기황후가 이를 원망하였는데, 당시 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에 가 있던 崔濡 등이 기황후에게 무고하니 원에서는 1362년에 공민왕을 폐하고 대신 덕흥군을 고려 국왕으로.../ 180페이지(daum 2011)

 

  최유 : 환관과 공녀:중세 시대의/ 冊/ 정구선 지음| 국학자료원 펴냄 | 2004-02-28/ 책본문 : ...불리하자 도망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고려에 있던 기씨 일족은 철저하게 몰락하였으나, .고려사. 최유(崔濡) 열전에 보면, 원나라에 있던 기황후는 “네 나이 이미 장성했는데.../ 198페이지(daum 2011)

 

  최유 : 조선왕조 500년/8. 고운 님 여의옵고 (신봉승 실록대하소설)/ 冊/ 신봉승 지음| 금성출판사 펴냄 | 2010-05-26/ 책본문 : 이휘李徽, 황효원黃孝源, 윤자운尹子雲,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권개權愷, 최유崔濡, 조효문曺孝門, 한계미韓繼美, 정수충鄭守忠, 조득림趙得琳. 그 명예와 재물, 그리고 자손들의.../ 307페이지(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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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을원 : 예천 출신, 2002년 <시현실>, <문학사상>으로 등단하였다.(www.poemcafe.com 2003)

 

  최을원 : 최을원 편/ * 최을원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2년 [시현실] 2002년 < 문학 사상 > 하반기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최을원-25시 체인점 앞에서 최을원-횡단 보도에 갇히다 최을원-부부 최을원-겨울 버드나무.../ blog.naver.com(daum 2011)

 

  최을원 : 육교 / 최을원/ 작년, 2010년 10월 14일/ 육교 / 최을원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 황금알 시인선 육교 자정의 눈 내리는 육교 위, 그녀는, 地上의 가장 먼 마을에서 달려온 따뜻한 불빛들이 자신의 다리 밑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흘러가는 것들 캐롤도.../ cafe.daum.net/seosiwriter/ 서시작가회의(daum 2011)

 

  최을원 : 소파, 부재에 관한 보고 / 최을원/ 작년, 2010년 2월 20일/ 소파, 부재에 관한 보고/ 최을원 사내의 집은 소파다. 소파에서 출근해서 소파로 퇴근한다. 휴일, 그는 낯선 도시의 발도장이다. 대문 앞에는 도장자국 투성이다. 동네를 몇 바퀴 더 소주병처럼 굴러 다녀야 출근부가 접힌다. 소파는.../ cafe.daum.net/ccpoet/ 수향시 낭송회(daum 2011)

 

  최을원 : 최을원 詩人의 詩 세 편 감상하세요/ 작년, 2010년 5월 24일/ 을숙도에서의 일박(一泊)/최을원- 새 떼 간다 섬 하나 지고 새 떼 간다 지쳐 날개 접으면 집이 되고 섬이 되는 곳 갈대 숲 서걱서걱 지나면 누구나 날개 돋아나는 곳 새처럼 말하기 위하여 새처럼 잠들기 위하여 찾아온.../ cafe.daum.net/yanggolovepoem/ 시와 글벗(daum 2011)

 

  최을원 : 식탁 위의 역사/최을원/ 2년전, 2009년 12월 24일/ ★식탁 위의 역사★ -최을원 길가 불고깃집에서 한 가족이 고기를 먹는다. 가장의 가위질엔 도그마가 있다. 아이들의 웃음은 콜라 거품처럼 보글거린다. 한껏 벌린 입만큼 행복하다. 햇살이 오물오물 씹힌다. 구석진 자리엔 한눈에도.../ cafe.daum.net/aengdumoja/ 뒤(daum 2011)

 

  최을원 :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 외 2편 / 최을원/ 작년, 2010년 1월 28일/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 외 2편 / 최을원 계단은 늘 허기진다. 겹겹이 접었던 각진 살의를 반쯤 펼친 채 누군가의 발목을 노리는 저 많은 이빨들 오르가즘을 달려 오르는 가속의 덩어리, 옥상을 지나 난간을 넘어 허공에.../ blog.daum.net/kbkjyoung/ 행복을 전하는 시향기(daum 2011)

 

  최을원 : 구름 산책 외 1편 / 최을원/ 작년, 2010년 2월 7일/ 구름 산책 외 1편 / 최을원 은행나무 아래 벤치는 낡은 이젤이다. 거기, 구름 캔버스가 있었고, 중풍의 손가락 붓이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새들이 날아오르면, 시장통은 후들거리고, 느린 붓터치를 따라서 목련은 녹슬고.../ blog.daum.net/kbkjyoung/ 행복을 전하는 시향기(daum 2011)

 

  최을원 : 최을원 시집『계단은 잠들지 않는다』/ 작년, 2010년 2월 3일/ 최을원 시집『계단은 잠들지 않는다』/황금알, 2009. 11. 30/ 문밖을 나서기만 하면 어디에서고 마주치게 되는 계단. 일상에서 수없이 맞닥뜨리는 그 층층대가 지닌 속성은 우리네 삶의 기복과 너무도 닮았다. 오르막길이.../ blog.daum.net/zenwslee62/ 이원식의 문학 블로그(daum 2011)

 

  최을원 : 백현국 평론가의 詩단평--최을원/ 공중 저수지 -- 최을원 나를 떠나간 것들이 내가 떠나보낸 것들이 빠짐없이 흘러 들어와 고여 있는 그 저수지 슬픔도, 기쁨도 같은 색으로 출렁이는 그곳 빌딩 사이를 지나온 태양이 먼지 많은 몸을 담그면, 검은 새들이 지친.../ madangga.pe.kr(daum 2011)

 

  최을원 : 육교 - 최을원/ 육교/ 최을원/ 《시인정신》 2004년 봄호 육교 자정의 눈 내리는 육교 위, 그녀는, 地上의 가장 먼 마을에서 달려온 따뜻한 불빛들이 자신의 다리 밑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흘러가는 것들 캐롤도 흘러가고, 온 몸에.../ poemfire.com(daum 2011)

 

  최을원 : ▷ 용설란 - 최을원/ 등록 : 2003-03-15 12:18:10 (220.♡.59.149) 조회 : 266 수록시집 시현실 2002년 가을호 발표년도 2002 최을원 ▷ 용설란 - 최을원 최종수정 : 용설란 최 을 원용설란에서 사내 하나 걸어 나온다 작은 체구에.../ poemlove.co.kr(daum 2011)

 

  최을원 :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 冊/ 최을원 지음 | 황금알 | 2009.11.30/ 책소개 :『계단은 잠들지 않는다』는 최을원 시인의 첫 번째 시집으로 <황금알 시인선>의 서른두 번째 시집이다. 총 4부로 나누어 <을숙도에서의 일박>, <빙어>, <크눌프, 18세가 오는 방식에 관하여>...(daum 2011)

 

  최을원 : [다층]2010년 봄호/ 작년, 2010년 5월 20일 | 한국문학방송 1편 / (축하평) 권갑하_핏빛 아픔이 꽃잎으로 [국제신문] 박진규_10시의 풍경 / (축하평) 최을원_세상의 모든 시작은 [농민신문] 김봉집_제주백단 외 1편 / (축하평) 박성민_평생에 제일...(daum 2011)

 

  최을원 : [詩의 뜨락] 초승달/ 2년전, 2009년 12월 11일 | 세계일보 | 미디어다음/ 초승달 -최을원- 광활한 식탁보가 쳐지고 빵부스러기들이 자꾸만 떨어져 내렸네. 성가신 듯 머리를 터는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어린 나무들, 허기져 잠 못 드는 절벽이 끙끙거리고 있었네. 누군가 모닥불을...(daum 2011)

 

  최을원 : [다시올문학]2009년 여름호/ 2년전, 2009년 6월 3일 | 한국문학방송 외 1편/ 주로진_들꽃에 녹이슬다 외 1편 천수호_묵언정진 외 1편 최금진_독재자귀하 외 1편 최을원_구름산책 외 1편 함기석_소녀와 해바라기 외 1편 황구하_기다리다 외 1편 신작시조...(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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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용인대거산체육관, 1일 태권도 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축하합니다.

 

  용인대 거산체육관(용인대 거산 體育館 優秀한 成績) [記事] : 예천읍 `용인대 거산 체육관’(관장 이동욱) 소속 고등부 선수들이 2012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이틀 동안 김천스포츠타운에서 열린 2012년 경북태권도 신인선수권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고등부에 출전한 대창고 3학년 이정민 선수가 웰터급 1위, 대창고 1학년 안성재 선수가 헤비급 1위를 차지했으며, 라이트미들급에서 대창고 1학년 박민욱 선수가 3위에 올라 지역의 명예를 크게 높였다. 한편 ‘용인대 거산 체육관’은 태권도 명문인 용인대학교 태권도학과를 졸업한 관장과 국가대표 시범단 출신 사범이 직접 지도를 하고 있다. 오는 4월 21일 오전 6시 30분 본사 주최 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 D-100일 한마음 걷기대회(예천청소년수련관 광장) 식전 행사 시간에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醴泉新聞 2012년 04월 17일 (화) 10: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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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843

 

  예천군 방문(慶尙北道 어린이집聯合會 理事會 醴泉 開催) [記事] : 예천군에서는 예천군어린이집연합회(회장 김혜숙)와 경상북도어린이집연합회(회장 정운화) 이사회를 유치 풍양 참우마을본가에서 개최했다. 경북어린이집연합회 이사, 도 여성정책관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효봉 주민생화지원과장은 엑스포를 홍보하고 예천군은 엑스포 행사에 손님 맞이를 위하여 휴일도 반납하고 전 공직자 군민 합심하여 준비하고 있다며 기간 중 우리지역을 경북 어린이들이 많이 찾아 줄 수 있도록 연합회에서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어린이집연합회에서는 어린이들이 곤충을 만지고 체험하는 기회를 가져 곤충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예천곤충엑스포에 아이들과 체험을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사회를 마치고 연합회는 우리지역 관광지인 삼강주막에서 해설을 곁들인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상리 곤충연구소로 이동 상리곤충연구소(소장 정해영) 브리핑과 전경을 둘러보고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되겠다며 전국의 많은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엑스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천군은 도어린이집연합회와 손잡고 대구어린이집연합회도 방문 엑스포행사에 경북 인근인 대구의 많은 어린이 참가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밝혔다.(醴泉인터넷放送 2012-04-17 오후 2: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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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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