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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903:홍귀달(판서)(1)(附예천방문848)
작성자장병창 @ 2012.05.01 06:10:55

   예천의 자랑 2903 : 홍귀달(판서)(1)(附 예천방문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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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귀달(洪貴達) : 1438(세종 20)-1504(연산군 10), 용궁현(龍宮縣) 출신, 자는 겸선(兼善), 호는 함허정(涵虛亭) 또는 허백당(虛白堂), 시호(諡號)는 문광(文匡), 본관은 부계(缶溪, 缶林), 언충(彦忠)ㆍ언방(彦邦)의 아버지이다. 1461년(세조 6) 강릉 별시 문과(江陵別試文科)에 을과 3위로 급제, 겸예문(兼藝文, 1464)을 거쳐 예문관 봉교가 되었다. 세자시강원 설서(1466)로서 문무를 겸했으므로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었고, 이시애의 난(1467) 때 공을 세워 이조 정랑에 승진되고, 이어 장령으로 춘추관 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국자 좨주(國子祭酒, 1491), 오랫동안 문형(文衡, 大提學)을 지냈고, 성종이 승하하자 호조 판서(戶曹 判書)로서 국장도감 제조(國葬都監提調, 1494.12.25)를 겸하였다. 무오사화(1498) 때는 좌참찬(左參贊)으로서 10여 조에 달하는 왕의 난정(亂政)을 들어 간하다가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으로 <속국조보감>, <역대명감>을 편찬하고,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1504년(연산군 10) 자기의 손녀(洪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어겨 경원(慶源)으로 귀양을 갔다가 다시 서울로 호송되던 중 단천에서 뒤따라온 승명관(承命官)에 의해 교살되었다. 문장이 뛰어나 아담하고도 꿋꿋하고 진실하고 옛스러웠다. 글씨도 잘 썼고,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에 끝까지 항거하였고, 성품이 원만하여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중종반정 후 복관되고 이조 판서에 추증되어 숙종 때 함창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내의원 제조(內醫院提調) 때 저술한 <구급이해방(救急易解方)> 1권이 있는데, 1498년(연산군 4) 가을에 찬집 언해(撰集諺解)하여 교서관(校書館)을 시켜 다음해 3월에 인출 광포(印出廣布)하였고, 1500년(연산군 6) 9월에는 <속국조보감(續國朝寶鑑)>을 찬진하였다. 그의 작품들이 <국역동문선(國譯東文選)> 10권(67 177-178 262-264 346-348 458-460 582- 583 689-691 718쪽) 11권(350- 352 397-404 481-485쪽)에 실려 있다. [海東雜錄 1卷] : 강원도 감사(監司)로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용궁을 지나던 차 객사(客舍)에서 지은 시(詩)에, "앞 마을 연기가 어두워 까마귀를 감췄는데, 객사는 침침하여 밤이 시끄럽지 않다. 깊은 숲 달 밝은데 두견새는 울고, 넓은 뜰엔 봄이 다하여 배꽃이 떨어지도다. 늙어가는 용모를 거울에 대하니 해마다 바꿔지고, 병든 눈으로 글자를 보니 글자마다 빗나간다. 꿈속에 그리던 산천을 내일은 밟으리니, 문 앞에 흐르는 물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로세."라고 하였다.(燕山君日記 1495.1.4 1495.1.14 1495.2.2 1495.3.9, 國史大事典 1932-1933쪽)

 

  홍귀달(洪貴達) : 출처: 브리태니커/ 1438(세종 20)~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아버지는 효손(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강릉 별시문과에 급제, 겸예문을 거쳐 예문관봉교가 되었다. 1466년 세자시강원설서로 선전관을 겸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이조정랑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장령으로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이후 직제학·동부승지를 역임했으며, 1479년(성종 10) 도승지로서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의 폐출에 반대하여 투옥되었다. 1481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3년 왕명으로 〈국조오례의주〉를 개정하고 충청도관찰사·형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그후 경주부윤·대사성·지중추부사 겸 대제학·호조판서 등을 지내고 좌참찬이 되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직전 왕의 난정(亂政)을 들어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으로 〈속국조보감〉·〈역대명감〉 등을 편찬하고 경기도관찰사로 나갔다. 1504년 손녀(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어겨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되던 중 단천에서 교살되었다. 중종반정 후 복관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daum 2011)

 

  홍귀달 : 홍귀달(洪貴達)의 廣津舟中曉起(광진주중효기)| 漢詩 / 古典/ 이보 2010.12.04. 11:37/ 홍귀달(洪貴達)의 廣津舟中曉起(광진주중효기)/ 舟中晨起坐(주중신기좌)/ 相對是靑燈(상대시청등)/ 鷄犬知村近(계견지촌근)/ 星河驗水澄(성하험수징)/ 隨身唯老病(수신유노병)/ 屈指少親朋(굴지소친붕)/ 世事又?我(세사우료아)/ 東方紅日昇(동방홍일승)// 배 안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앉으니/ 마주 바라보는 것이 푸른 등불이라네./ 닭소리 개소리에 마을이 가까움을 알겠고/ 은하수는 물이 맑은 것을 보았도다./ 몸에 따르는 것 오직 병과 늙음이요/ 손꼽아 보매 친척과 친구는 적도다./ 세상 일이 또 나를 붙잡으니/ 동방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daum 2011)

 

  홍귀달 : 洪貴達, <廣津舟中曉起>/ 2달전, 2010년 12월 3일 (금)/ 洪貴達, <廣津舟中曉起> 舟中晨起坐하니 相對是靑燈이라 배 안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앉으니 마주 바라보는 것이 푸른 등불이라네. 鷄犬知村近하고 星河驗水澄이라 닭소리 개소리에 마을이 가까움을 알겠고 은하수는 물이 맑은.../ cafe.daum.net/suiljae/ 수일재(daum 2011)

 

  홍귀달 : 용천 도중 육언 삼절(龍泉途中六言三絶)-홍귀달(洪貴達)| 육언(六言)/ 蒙泉 2010.10.07. 21:58/ 용천 도중 육언 삼절(龍泉途中六言三絶)/ 홍귀달(洪貴達)/ 객관에 밤 새며 비 소리를 들었었고(客館終宵聽雨)/ 푸른 등불 한 점 켜고 시를 쓰곤 하였노라(靑燈一點題詩)/ 길이 멀고 보니 가는 사람 일찍 깨고(路遠征人起早)/ 진흙이 깊어서 역마는 더디 가는구나(泥深驛馬行遲)/ 숲이 깊어 꾀꼬리 소리 들리나 뵈지는 않고(樹深聞鶯不見)/ 먼 길엔 말을 믿어 정만 머금어라(長途信馬含情)/ 인간의 고금 일을 굽었다 우러렀다 하매(人間俯仰今古)/ 천지는 몇 번이나 그늘졌다 개었던고(天地幾回陰晴)/ 후줄근히 두 소매에 이슬이 젖었고(淋?雙袖露?)/ 길 곁의 구름 낀 숲은 한이 없어라(夾路無盡雲林)/ 들물에는 거울 위에 고기 뛰놀고(野水魚跳鏡面)/ 봄메에는 새가 병풍 속을 지나치더라(春山鳥度屛心)(daum 2011)

 

  홍귀달 : 우음(偶吟)-홍귀달(洪貴達)/ 작년, 2010년 5월 22일/ 偶吟 (우음) 우연히 읊다....홍귀달(洪貴達) 閑窓日日臥題詩 (한창일일와제시) 날마다 한가한 창가에 누워 시를 지으니 門巷蕭條客散時 (문항소조객산시) 골목길 적막하고 손님도 거의 찾지 않는다 除却醉鄕無着處 (제각취향무.../ cafe.daum.net/sungsunesaramdul/ 성수네사람들(daum 2011)

 

  홍귀달 : 역사속의 경상도/ 2일전, 오후 10:18 (일)/ "...서로 죽이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나라에 법(法)이 있다고 하겠는가?”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대기 습속(習俗)이 강한(强悍)하여 도망한 노비(奴婢)의 연수(淵藪)가 되었으되, 그 주인이 능히.../ 미디어다음 스포츠 > 프로야구 토론방(daum 2011)

 

  홍귀달(洪貴達) : 본관(本貫) 부계(缶溪), 시대(時代) 1438(세종 20)∼1504(연산군 10), 자(字) 겸선(兼善), 호(號) 허백당(虛白堂)/ 이력(履歷)/ 홍귀달(洪貴達) : 1438(세종 20)∼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아버지는 증 판서 효손(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강릉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464년 겸예문에 등용, 예문관봉교로 승직하였다. 1466년 설서가 되고 선전관을 겸하였다.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조정랑에 승직하면서 예문관응교를 겸하였다. 1469년(예종 1) 교리가 되었다가 장령이 되니 조정의 글이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사예가 되었을 때 그를 외직인 영천군수로 내려 보내려고 하자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그는 글을 잘하여 조정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하니 외직전출이 취소되고 홍문관전한과 예문관전한이 되었다. 이어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직제학·동부승지를 거쳐 충청감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어 도승지로 복직하였으나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의 폐출(廢黜)에 반대하다가 한때 투옥되었다. 1481년(성종 12)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83년 《국조오례의주 國朝五禮儀註》를 개정하고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그 뒤 형조와 이조의 참판을 거쳐, 경주부윤·대사성·지중추부사·대제학·대사헌·우참찬·이조판서·호조판서 겸 동지경연춘추관사를 역임한 뒤 좌참찬이 되었다. 15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직전에 열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올려 왕에게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에 의하여 《속국조보감 續國朝寶鑑》·《역대명감 歷代名鑑》을 편찬하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504년 손녀(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하였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모두들 몸을 조심하라 하였으나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국은을 두터이 입고 이제 늙었으니 죽어도 원통할 것이 없다.” 하였다.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되었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허백정문집 虛白亭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海東名臣錄, 燃藜室記述, 淸選考./ 〈李在範〉(daum 2011)

 

  홍귀달 : <국조 문과 방목>/ 홍귀달(洪貴達) 세조(世祖)7년(1461년), 별시(別試) 3(3)/ > 인적사항 생년(生年)  1438년, 무오, 자(字) 겸선(兼善), 호(號) 허백,함허(虛白,涵虛), 본관(本貫) 부계(缶溪), 諡號, 封號 문광(文匡)/ > 가족사항 부(父) 홍효손(洪孝孫), 조부(祖父) 홍득우(洪得禹), 증조부(曾祖父) 홍순(洪淳), 외조부(外祖父) 노집(盧緝), 처부(妻父) 김숙정(金淑正)/ > 이력 및 기타 전력(前歷) 진사(進士), 관직(官職) 한림,호당,문형(翰林,湖堂,文衡), 이조/판서(吏曹/判書)(daum 2011)

 

  홍귀달 : 문헌(文獻)/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홍귀달(洪貴達)/ 경상도(慶尙道)  함창(咸昌)/ *임호서원(臨湖書院) : 숙종 계유건(肅宗癸酉建). 제향. 표연말(호람계 동성균 대사간 본신창). 홍귀달(호허백당 좌참찬 증이판 시문광 본부계). 채 수(호나재 대사헌 인천군 시양정 본인천). 권달수(호동계 교리 증도승지 본안동). 채무일(호일계 헌납 본인천). 祭享. 表沿沫(號藍溪 同成均 大司諫 本新昌). 洪貴達(號虛白堂 左參贊 贈吏判 諡文匡 本缶溪). 蔡 壽(號懶齋 大司憲 仁川君 諡襄靖 本仁川). 權達手(號桐溪 校理 贈都承旨 本安東). 蔡無逸(號逸溪 獻納 本仁川)(daum 2011)

 

  홍귀달(洪貴達) : 제목 : 우음(偶吟)-홍귀달(洪貴達)// 우연히 읊다-홍귀달(洪貴達)// 三杯卯酒?年稀(삼배묘주타년희) : 아침 술 석 잔 마시고 70이 된 것을 자랑삼아/ 手拓南窓一詠詩(수척남창일영시) : 손으로 남쪽 창문 열어젖히고 한 편 시를 읊는다./ 泉眼溢池魚潑剌(천안일지어발랄) : 샘 구멍에서 솟는 물이 못에 넘치니 고기 뛰놀고/ 樹林?屋鳥來歸(수림요옥조래귀) : 나무 숲이 집을 둘러 새가 모여드는구나./ 花生顔色雨晴後(화생안색우청후) : 꽃은 비갠 뒤에 안색이 생겨나고/ 柳弄腰肢風過時(류롱요지풍과시) : 바람이 지나갈 때에 버들은 허리를 흔드는구나./ 誰道適庵無箇事(수도적암무개사) : 누가 적암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던가/ 每因節物未忘機(매인절물미망기) : 매양 절물 때문에 삿된 마을을 잊지 못한다./ 2006.03.01 23:52:49(daum 2011)

 

  홍귀달 : 제목 : 우음(偶吟)-홍귀달(洪貴達)/ 우연히 읊다-홍귀달(洪貴達)// 閑窓日日臥題詩(한창일일와제시) : 날마다 한가한 창가에 누워 시를 지으니/ 門巷蕭條客散時(문항소조객산시) : 골목길 적막하고 손님도 거의 찾지 않는다/ 除却醉鄕無着處(제각취향무착처) : 취하지 않고서는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어/ 從今身不管安危(종금신불관안위) : 지금부터 내 몸의 안위는 상관하지 않으리라/ 2005.01.30 01:11:30(daum 2011)

 

  홍귀달 : 제목 : 박숙양근(泊宿楊根)-홍귀달(洪貴達)/ 양근에 숙박하며-홍귀달(洪貴達)// 遠燒夜如江錦爛(원소야여강금란) : 먼리 보이는 밤 불빛은 강에 비단이 번쩍이는 듯/ 長江春似綠羅鋪(장강춘사록라포) : 긴 강에 가득한 봄은 푸른 비단을 펼친 듯 하도다/ 扁舟獨宿蒼崖下(편주독숙창애하) : 조각배로 홀로 푸른 언덕 아래 자노니/ 夜靜無人月色孤(야정무인월색고) : 밤은 고요한데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달빛만 외로워라/ 2003.04.28 23:35:01(daum 2011)

 

  홍귀달 : 제목 : 경원봉화(慶源烽火)-홍귀달(洪貴達)/ 경원의 봉화불-홍귀달(洪貴達)// 邊日西斜已夕烽(변일서사이석봉) : 변방의 해가 기우니 저녁 봉화불 오르네/ 此時城闕動昏鐘(차시성궐동혼종) : 이 시간 성궐에서는 저녁 종소리가 울리리라/ 我身恨不如烽火(아신한불여봉화) : 이내 몸이 봉화불보다 못함을 한하노니/ 飛到南山屋上峯(비도남산옥상봉) : 날아서 남산 옥상의 봉우리로 날아가누나/ 2003.04.28 23:19:26(daum 2011)

 

  홍귀달 : 제목 : 琴(금)-洪貴達(홍귀달)/ 거문고-洪貴達(홍귀달)// 孤桐生矣于朝陽(고동생의우조양) : 오동나무 한그루 있네, 저기 산 남쪽에/ 枝上??鳴鳳鳳(지상옹옹명봉봉) : 가지 위에는 옹옹 봉황이 울고있네./ 異質豈?斤斧?(이질기토근부장) : 특이한 바탕이 어찌 도끼질을 면하리오/ ?下得材嗟非常(찬하득재차비상) : 불때다가 얻은 재목 비상하구나./ 巧匠?成琴一張(교장착성금일장) : 전문 기술자가 깎아서 거문고 만드니/ 佳人彈作聲峨洋(가인탄작성아양) : 미인이 거문고 타며 아양곡을 부르네./ 凉宵璧月射虛堂(양소벽월사허당) : 서늘한 밤 구슬같은 달이 빈 대청을 비치는데/ 羽客滿座飛瓊觴(우객만좌비경상) : 신선들 자리에 가득 술잔을 기울이네/ 主人倚醉吟短章(주인의취음단장) : 주인이 술 취하여 단장가를 읊으며/ 呼兒筆之金字光(호아필지금자광) : 아이들 불러 써게하니 금자가 번쩍이네./ 2002.11.20 12:57:27(daum 2011)

 

  홍귀달 : 제목 : 廣津舟中曉起(광진주중효기)-洪貴達(홍귀달)/ 광진 배안에서 새벽에 일어나-洪貴達(홍귀달)// 舟中晨起坐(주중신기좌) : 배 안에서 새벽녘에 일어나 앉으니/ 相對是靑燈(상대시청등) : 마주 바라보는 것이 푸른 등불이라네./ 鷄犬知村近(계견지촌근) : 닭소리 개소리에 마을이 가까움을 알겠고/ 星河驗水澄(성하험수징) : 은하수는 물이 맑은 것을 보았도다./ 隨身唯老病(수신유노병) : 몸에 따르는 것 오직 병과 늙음이요/ 屈指少親朋(굴지소친붕) : 손꼽아 보매 친척과 친구는 적도다./ 世事又?我(세사우료아) : 세상 일이 또 나를 붙잡으니/ 東方紅日昇(동방홍일승) : 동방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2002.08.20 23:51:28(daum 2011)

 

  홍귀달 : 제목 : 向日菴卽事(향일암즉사)-洪貴達(홍귀달)/ 향일암에서-洪貴達(홍귀달)// 明窓仍白日(명창잉백일) : 밝은 창문은 날 새었기 때문이고/ 溫?又重?(온돌우중면) : 방이 온돌방인데도 또 두터운 솜옷을 입었어라/ 斫桂炊香飯(작계취향반) : 계수나무 쪼개어 향기로운 밥 짓고/ 開雲汲冷泉(개운급냉천) : 구름 헤치고 찬 샘물 긷는다./ 軒高臨大壑(헌고림대학) : 헌함은 높아 큰 골짝에 임하고/ 僧老說諸天(승로설제천) : 중이 늙어 노숙하여 여러 하늘 일을 말하네./ 一磬中堂了(일경중당료) : 한 경쇠소리 방안에서 그치니/ 昏昏客欲眠(혼혼객욕면) : 정신 혼미한 나그네 졸음이 온다./ 2002.08.20 23:17:41(daum 2011)

 

  홍귀달 : 제목 : 次高城三日浦韻(차고성삼일포운)-洪貴達(홍귀달)/ 고성 삼일포-洪貴達(홍귀달)// 昔聞三日浦(석문삼일포) : 예부터 소문 듣던 고성 삼일포/ 今上四仙亭(금상사선정) : 오늘에야 삼일포의 사선정에 올라본다/ 水拍白銀盤(수박백은반) : 호수의 물은 옥쟁반을 치 듯/ 山圍蒼玉屛(산위창옥병) : 주위의 산은 푸른 옥 병풍을 두른 듯/ 天空彩雲立(천공채운입) : 빈 하늘엔 오색구름 서리고/ 石老秋光淸(석로추광청) : 오래 된 바위에는 가을빛이 맑도라/ 仙人去已遠(선인거이원) : 신라의 네 신선 가버린지 이미 오래/ 古亭今無楹(고정금무영) : 옛 정자 지금은 기둥도 없네/ 當時游戱處(당시유희처) : 당시에 신선들이 노니는 곳에선/ 雲外笙簫聲(운외생소성) : 구름 밖 저 넘어 피리소리 들려오는 듯/ 千載復吾人(천재부오인) : 천년 후에 찾아온 우리/ 六字看猶明(육자간유명) : 여섯 글자를 보니 더욱 선명네/ 風高永郞湖(풍고영랑호) : 영랑호에는 바람이 높이 불고/ 月上安祥汀(월상안상정) : 안상정에는 달이 떠오는구다/ 孤樽泊舟處(고준박주처) : 배 대는 곳에서 술을 마시니/ 此固云蓬瀛(차고운봉영) : 이곳이 정녕 신선 사는 선경 아니겠는가/ 2001.12.20 08:13:13(daum 2011)

 

  홍귀달 : 제목 : 谷口驛(곡구역)-洪貴達(홍귀달)/ 곡구역에서-洪貴達(홍귀달)// 長途緣海岸(장도연해안) : 긴 길은 바닷가 언덕을 따라 나있고/ 小驛傍山根(소역방산근) : 조그마한 역이 산기슭에 있구나/ 鳥道?雲逈(조도영운형) : 높고 조그만 산길이 구름 멀리 엉켜있고/ 鯨波?日?(경파탕일번) : 고래 같은 큰 파도 해를 씻어 뒤집히네/ 居人多厚意(거인다후의) : 이곳 사람들은 인정도 많은데/ 謫客自傷魂(적객자상혼) : 귀양 가는 나그네, 내 마음 아파라/ 大嶺明朝過(대령명조과) : 내일 아침 큰 고개 지나면/ 無因望故園(무인망고원) : 다시는 고향 바라보지 못 하리/ 2001.12.19 22:43:45(daum 2011)

 

  홍귀달(洪貴達) : 자 겸선(兼善), 호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시호 문광(文匡), 생졸년 1438 (세종 20) - 1504 (연산군 10), 시대 조선 전기, 본관 부계(缶溪), 활동분야 문신 > 문신/ [문과] 세조(世祖) 7년(1461) 신사(辛巳) 별시(別試) 3등(三等) 1위/ [상세내용] 홍귀달(洪貴達)에 대하여 : 1438년(세종 20)∼1504년(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부계(缶溪).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아버지는 증판서 효손(孝孫)이며, 어머니는 노집(盧緝)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강릉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1464년 겸예문에 등용, 예문관봉교로 승직하였다. 1466년 설서가 되고 선전관을 겸하였다.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공조정랑에 승직하면서 예문관응교를 겸하였다. 1469년(예종 1) 교리가 되었다가 장령이 되니 조정의 글이 모두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사예가 되었을 때 그를 외직인 영천군수로 내려 보내려고 하자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이 “그는 글을 잘하여 조정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하니 외직전출이 취소되고 홍문관전한과 예문관전한이 되었다. 이어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직제학·동부승지를 거쳐 충청감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이어 도승지로 복직하였으나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의 폐출(廢黜)에 반대하다가 한때 투옥되었다. 1481년(성종 12)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83년 《국조오례의주 國朝五禮儀註》를 개정하고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그 뒤 형조와 이조의 참판을 거쳐, 경주부윤·대사성·지중추부사·대제학·대사헌·우참찬·이조판서·호조판서 겸 동지경연춘추관사를 역임한 뒤 좌참찬이 되었다. 15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직전에 열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올려 왕에게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다. 1500년 왕명에 의하여 《속국조보감 續國朝寶鑑》·《역대명감 歷代名鑑》을 편찬하고,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504년 손녀(彦國의 딸)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 도중 교살(絞殺)되었다. 문장이 뛰어나고 글씨에도 능하였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모두들 몸을 조심하라 하였으나 태연히 말하기를 “내가 국은을 두터이 입고 이제 늙었으니 죽어도 원통할 것이 없다.” 하였다. 중종반정 후 신원(伸寃)되었다.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허백정문집 虛白亭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海東名臣錄, 燃藜室記述, 淸選考(daum 2011)

 

  홍귀달(洪貴達)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세조(世祖) 7년, 과거시험연도 : 1461 신사, 시험명 : 별시(別試), 등위 : 3(3)/ [인적 사항] 성명(姓名) : 홍귀달(洪貴達), 자 : 겸선(兼善), 호 : 허백,함허(虛白,涵虛), 본관(本貫) : 부계(缶溪)/ [이력 및 기타 사항] 시호 : 문광(文匡), 전력(前歷) : 진사(進士), 관직(官職) : 한림,호당,문형(翰林,湖堂,文衡)/ [가족사항] 부(父) : 홍효손(洪孝孫), 조부(祖父) : 홍득우(洪得禹), 증조부(曾祖父) : 홍순(洪淳), 외조부(外祖父) : 노집(盧緝), 처부(妻父) : 김숙정(金淑正)(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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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곤충연구소(5月 5~6日 어린이날 昆蟲이벤트 연다 : 醴泉昆蟲硏究所...體驗, 魔術公演 等 多樣한 프로그램 마련) [記事] : 어린이날을 맞아 예천곤충연구소(상리면 고항리)가 2012년 5월 5~6일 이틀 동안 ‘2012년 어린이날 곤충이벤트’를 연다. ‘곤충과 함께, 신나는 어린이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곤충을 직접 관찰하고 곤충의 소중함을 배우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공연과 체험 등으로 어린이날의 소중한 추억을 심어 주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이번 어린이날 행사에는 24만 조각의 비단벌레 날개로 꾸며진 국내 최대의 ‘비단벌레관’과 화려한 나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나비관’, ‘이야기하는 나무’ 등 새로운 전시시설과 아늑하고 편리한 휴게공간을 선보인다. 3D상영관에서는 3D입체애니메이션을 상시 상영하고, 지난 해 호평을 받았던 ‘마술쇼’를 하루 3차례 공연한다. 또 3층 체험실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기한 소리의 마술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복화술 공연이 하루 2차례 새롭게 선보인다. 다양한 체험 행사도 마련된다. 야외 곤충정원에 설치된 체험부스에서는 나무곤충 만들기와 초콜릿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 등 유료체험과 새둥지 꾸미기, 비눗방울 체험, 물판박이와 호박벌 체험 등 무료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이밖에도 곤충 OX퀴즈, 장기자랑 게임과 레크레이션, 경품추천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곤충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행사에도 5월 5일 어린이날에 한해 어린이는 무료입장이 가능하고, 새롭게 바뀐 전시시설과 재미난 공연은 다른 행사들과 차별성이 크므로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면서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곤충에 대한 이해와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기회가 되도록 많은 분들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12년 04월 30일 (월) 08: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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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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