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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2919:홍여하(2)(祝테니스)
작성자장병창 @ 2012.05.17 06:09:13

  예천의 자랑(2919) : 홍여하(사간)(2)(附 예천군테니스연합회, 14일 도대회 종합우승...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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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여하 :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 木齋先生文集/ 洪汝河 (1621∼1678) ; 字 百源, 號 木齋.山澤齋, 本貫 缶溪./ 木板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肅宗19(1693)序./ 12卷6冊 ; 30.9x19.7cm./ 四周雙邊. 半匡 ; 21.2x14.6cm.有界.10行20字.註雙行. 上下內向有紋黑魚尾./ 조선 중기의 문신인 홍여하의 시문집이다. 홍여하는 안동사람이다. 1654(효종 5)년 진사시 및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여, 예문관 검열, 성균관전적 등을 거쳐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보임을 받아 백성의 부담을 가볍게 하고 학교(學校)를 일으켰으며 선행을 포상(褒賞)하는 등 한결같이 근본에 힘쓰는 정치를 행하였다. 1659년 3월에 임금으로부터 「구언지교(求言之敎)」가 내리자 정치·경제·사회·인륜·국방 등에 관한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한때 유배되었다가 풀림을 받아 율리(栗里)에 돌아간 그는 산택재(山澤齋 - 일명 木齋)를 짓고 거기에서 경서(經書)에 심잠(沈潛)하고 날마다 학자들과 더불어 강론했다고 한다. 그가 그 지방에서 주자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게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이 때 대학을 비롯한 사서와 주역, 시(詩), 서(書)의 독서차기(讀書箚記)를 남겼던 것 같다. 1672(현종 13)년 율리(栗里)에서 《동국통감제강(東國通鑑提綱:一名 東史提綱)》을 쓰고 씨족지학(氏族之學)인 《해동성원원(海東姓苑源)》을 편찬했다. 관계를 떠나 초야에 있는 동안 그는 상언한 주자학과 역사학(歷史學)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용후생(利用厚生)에 관한 학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학문은 이미 경술(經術)로써 본(本)을 삼고, 다스림과 이용(利用)도 갖추게 되었다. 이 문집은 1693(숙종 19)년에 간행되었다. 소(疏)에는 「상번소(上番疏)」,「사직소(辭職疏)」,「청파채은소(請罷採銀疏)」는 함창유생(咸昌儒生)을 대표하여 쓴 것으로 그 지방의 향교주작지산(鄕校主作之山)에다 광야(壙冶)를 개착(開鑿)하고 점상(店傷)을 설립 유수(游手)를 소집, 민호(民戶)를 소요케 하여 장차 은화(銀貨)를 채취(採取), 국용(國用)을 보(補)하려는데 대한 상소이다. 「응구언교소(應求言敎疏)」,「의례소(議禮疏)」및 「의례경전상복고증(儀禮經傳喪服考證)」 등이 있다. 특히 「의례소」와 「의례경전상복고증」은 당시 서인(西人)의 송시열과 입장을 달리하던 그의 예론(禮論)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남인(南人)으로 송시열과 반대되는 예론(禮論) 때문에 황간(黃澗)에 유배까지 당하게 되지만, 그의 조목조목 따진 상복고증은 그의 반 송시열적 예론(禮論)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의 주자학적 사상은 상기(上記)한 「예론(禮論)」과 「독서차기(讀書箚記)」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관심은 역시 잡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전결(田結)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소위「결(結)」은 "장(長)이 육백척(六百尺), 광(廣)도 그와 같다"고 하여 그 넓이를 말한 바가 있다. 부세(賦稅), 조용조(租庸調), 호구지부(戶口之賦), 수전(授田) 등에 관한 그의 견해가 있으나 시론(時論)과 관련이 없으며 「파조용조(罷租庸調)」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논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보면, 본집은 사회경제적인 점에서보다는 그의 주자학적 학문과 예론(禮論)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序 ; 權愈. / 卷之 1. 詩 ; 偶吟(2首), 呈李菊窓(燦)(壬午), 贈崔放翁(倜)(壬午), 述懷(乙酉避痘在山幕), 奉呈李澤堂(植)(乙酉), (附和 澤堂), 漫吟絲呈李大方(?), 題水丹庵(乙酉), 輓李大方(甲午秋)(2首), 輓李龍宮(大圭)(甲午), 寄黃玉相(撑), 大明殿春日早朝(丙申), 次獨樂園韻 奉呈龍洲趙先生(絅), 求嘉謠二首爲尹純甫(鏶)作, 贈蔡大提學(裕後)李奉敎(溟翼)藏史之行(丁酉), 送徐監司載邇(必遠)赴湖西, 北遊, 望東海, 詠金剛山(丁酉九月), 表訓寺, 海山亭却望九井峯, 叢石, 長安寺, 天逸臺夕晴, 正陽寺, 到摩訶衍憶趙子羽(威鳳)却寄, 登水嶺用杜詩望嶽韻, 憶金剛山(戊戌), 次東坡韻, 記夢(在北關時), 印八分寄趙晦余(威明)黃毛副焉, 靈蓍歌, 元帥臺, 奉別許肅川西行(2首), 無題, 北關故事, 天君(8首)(己亥), 詠懷(辛丑), 輓李通禮(元圭)(辛丑), 眼疾廢書日事惺惺法, 次山谷古詩(7首), 偶書, 寄贈睦達夫(兼善), 送別睦尙州行之(行善)令公, 贈金善鳴日者, 自歎, 午睡, 箕子, 述仁, 初度日黃以坤(德承)鄭鳳輝(道應)全明未(翼耉)諸公不期而會各賦一詩仍及去年孤寂之意, 次喚仙樓韻, 急難圖引, 石角種竹生新葉爲賦一篇, 次金龍宮士一(萬元)韻, 評易詩史法寄睦來之(來善)李士徵(元禎)二學士, 題李進士(亨復)孤柏堂, 次山谷晝寢韻, 題陽明集後, 敬題外曾祖霽峯集後, 偶吟, 重陽日會話直指寺, 閑適, 待友人不至, 奉呈張大成(應一), 聲谷黃遠甫緬置酒邀之阻雪未赴, 從張聖源(?)郭興叔黃遠甫黃以坤諸公會話頭陀寺, 冷泉八詠(冷泉亭, 山羊壁, 月留峯, 靑鶴窟, 龍淵洞, 使君峯, 花獻嶽, 法遵菴), 次退陶先生和東坡韻, 卽事, 贈李勉余馥, 卽事效韋蘇州體, 海棠之東野棠花比盛, 六月九日醉賦所見, 輓全監役(克恬), 次權山立?翠堂韻, 白蓮, 無題, 送李濟州子方(?)令公, 家山北距四十里有仙巖窟其深不測産異石焉戊戌秋送人?取得十一枚來皆詭巧癡?其最大者宛若皆骨之穴望國望東坡蓄蓬萊石數百枚然其孔穴達背則以仇池石一顆爲甲動輒相隨今此十一石箇箇類仇池而高大或過之余所得富於坡翁者以近山而易致也坡翁與王晉卿錢穆父王仲至蔣穎叔賦詩詠仇池今次其韻求和於丁道元昌燾鄭鳳輝李勉余諸公以足東坡故事仇池石安於高麗盆此石盆不能容故知其差大也, 贈一?軒金終卿(時?), 造桂漿, 偶書, 梅始開憶趙子羽, 蓬山謠(2首), 擬古, 感興(5首), 偶吟(6首), 陶山院靑藜杖歌, 余自夏間停飮是年稻田被水鶯鵡杯又破感而有作, 賀龍洲壽辰, 去婦詞, 採蓮曲, 古別離, 輓全幼長(尙耉), 過桐溪鄭先生墓次金伯剛(千鎰)韻, 海印寺遇雪, 憶搜勝滌愁兩臺寄呈鄭兄, 暮煙, 蠶, 寄次安誠甫農亭韻, 贈人(2首), 結網, 觀史有感, 題西涯樂府後, 輓李學官(錫成), 水落臺, 到鳳巖懷寬師書贈守嚴上人, 寄閔聖與(點)太僕, 寄閔聖與太僕, 次閔方伯聖與韻, 贈金景謙(啓光), 無題, 海山亭, 輓李義城(堂揆)室內, 輓鄭參奉仲則(?), 愚伏堂, 拙齊八詠(春畦種蔬, 夏園灌花, 秋齋對月, 冬爐烘栗, 梅, 竹, 菊, 琴), 東坡集中感金平章事贈金甥元吉履祥, 福泉僑居, 題不換亭, 輓李正郞(光洽), 道原誦孟子七篇不錯一字叔父嘉歎仍誦朱氏贈文匡公詩魯論二十篇慣誦珠走盤之句余感而成一絶, 輓權都事(以說), 呈李瑞山(晉哲), 詠雨, 詠晴./ 卷之 2. 詩 ; 老溪寓居, 有感, 到安東洪鼎卿(柱三)己歸醴泉吟贈成子許(后卨), 遙和景濂亭韻, 幽居卽事, 題權君望(東老)雙淸堂韻, 近看退陶集倦則諷霽峯詩作旬朔程課, 擬古(8首), 竹坡軒八詠(平郊麥浪, 長沙雁陣, 龍浦歸雲, 鼇山落照, 遠志春藝, 矢灘秋漁, 九潭蒼松, 雙巖丹楓), 題李郞中壽翁爾松草堂, 睡起, 四月十六夜雨朝晴, 待趙聞遠(鳴漢)不來, 四月十七日夜記所見, 老溪書堂次退陶先生陶山南洞韻示諸生, 輓柳庭堅(稷), 公山歌壽徐參奉時立(幷序), 日出入行, 放蒼蠅行, 寄丹城?鄭鳳輝, 壬寅七月晦晴, 八月四日大雨(4首), 故里, 津頭行, 與諸友訪道南, 讀圃隱傳有感, 淸凉山(2首), 次張大成林隱窩韻, 除夕, 可庵八景(釋迦曉鍾, 卓峯落霞, 馬山晴煙, 箕谷暮雲, 遠川晩松, 舞峴翠嵐, 大外積雪, 圓通霽月), 贈子許, 秋日登余樂臺, 敬次王考贈琴師韻, (附元韻), 江上卽事, 虎丘堂哀詞(2首), 輓李湖憂(煥)(癸卯), 輓龍洲趙先生(3首),

 

  謝權仲說來訪, 呈張大成, 義牛圖歌(乙巳), 題權通禮南川公虎口日錄後(幷序), 輓趙汝相(丁未), 輓鄭判書(世規), 輓金鶴沙(應祖)(丁未), 次柳子愚(世哲)江亭韻, 輓鄭鳳輝(丁未八月), 田家卽事(戊申), 龍爺葬日感懷有作(己酉), 辛亥正月五日曉起有感, 簡聞喜?金賓如求崖蜜松花(辛亥), 顔子(辛亥), 雨中梅未開竹盡枯(辛亥), 輓李參奉仲季(翼文翼升)來訪, 輓李參奉翼文, 壬子九月眞寶道中作, 次山人應寬軸上老先生韻(癸丑), 輓柳拙齋(元之)(甲寅), 詠曉, 與黃遠甫柳子强(千之)鄭鳳輝李善鳴英甲全明老諸人約會于愚伏堂余病未赴黃丈寄詩謹次, 讀四書集註法示金景謙崔汝安(基重)十一絶, 奉贈張大成, 輓金天休(學培), 寓居?事, 舟中卽事, 謝朴汝弼(廷薛)來訪寓所(幷序), 周易本義, 經書句讀俚諺多破碎有感, 德行四子贊, 感興, 輓權竹所(鼈), 感懷三十一絶, 晨興, 上元詠月, 與金寧海長卿(廈?)約會興丘後寧海寄詩仍和, 秋日遣懷, 眼暗, 訓子篇, 贈宗姪復余(克己), 偶題, 有感, 七月晦夜雨(己亥), 讀朱子節要有感, 感事, 觀相民讀論語, 卽事, 偶題, 輓兪汝柄(2首), 偶題((論下學, 論上達), 和安泰和道徵三江韻, 自警, 過端川, 初春, 偶題, 晩晴, 贈李善鳴, 村中絶火見炊煙有感, 贈金士一, 遣興, 三江書院次權皆玉(?)韻, 成德四子贊(4首), 霖雨, 謹次權判閣題盈德客館詩韻(幷序), 謝李醴泉(光鎭)金?基(啓光)??來訪, 古井田歌送大同丞南載元(?)爲別, 自警, 西苽, 輓安德章(瑞徵), 送別李萬里(溟翼)高山, 詠太守盆梅, 幽谷驛樓送金天休因寄洛中諸公, 觀鶴峯先生墓道立碑, 輓李淮陽(崇彦), 遊淸凉歸次孤山贈雪心上人, 次權仲說記夢韻, 金景謙兒子哀詞, 無題, 題文得耉江亭, 淑人李氏輓詞, 輓李咸安(尙彦), 輓人, 輓趙正字(又新), 輓朴泰安(廷蓍), 輓李季則(世標), 訪權公運見雙梅集留贈, 秋霖, 無題, 贈沈晉卿(弘弼), 謝權澤如(濡)來訪, 和朴將軍(宗文)壙石歌, 詠孤山(在咸昌), 讀書作文法示兒曹, 輓申察訪(適道), 贈朴守默齋(成敏)./ 卷之 3. 疏 ; 上疏, 請罷採銀, 應求言 敎./ 卷之 4. 書 ; 答李大方(?)(2), 與李大方(4), 與金僉正(念祖), 與金台甫(尙鉉), 答金方伯(徵), 與權仲車(大載), 擬上許眉未(穆), 答朴定卿(鎭圭), 答李奉彦(瑄)(2), 答李九成(允諧), 答金佐郞(?), 答柳拙齋(元之)(4), 答鄭鳳輝(2), 與鄭鳳輝(4), 與鄭龍宮(岐壽)別紙, 答權進士(坵), 與李翼文(2), 答李翼文, 答金定未(宇泰)(2), 與全明老, 與金得與(昌文), 答南貳元(亭會), 答權子韜(鈗)(2), 與李執義(碩寬)./ 卷之 5. 說 ; 志願說, 諫說(上下), 貧婦說, 法制說, 城池說, 鄭是僑字說, 歷代君臣論說, 王安石論說, 記辛酉疏事說, 甲午和議辨說, 水落臺契帖文說, 咸寧書院立約文說, 記朴孝子異蹟說, 記乙巳禍蹟說, 屛山用一獻禮說, 山陽書堂立社呈文說, 白大鵬傳說, 金良傳說, 策題說./ 序 ; 送咸昌鄭太守, 送鄭諮議鳳輝, 送李士徵令公, 送嶺伯李國賓, 一善金通政公慶壽詩, ?齋權先生文集, 柏潭文集, 李孝子傳, 缶林洪氏族譜, 嶺南道會契帖圖./ 卷之 6. 記 ; 廳天窩, 木齋, 雙修堂, 龍宮明倫堂, 晦軒牧隱遺墟碑, 李家亭碑, 遊楓嶽, 遊三日浦, 遊國島, 喜懼堂, 敬信軒, 尊性齋./ 跋 ; 丙子同庚契帖, 李君集俗籬遊錄, 權公海東雜錄, 題麗人行後, 西厓樂府, 李司成贈行帖. / 箴 ; 視箴, 廳箴, 寢箴, 食箴, 坐箴, 立箴, 步箴, 臥箴, 寫字箴, 居室箴, 騎馬箴. / 銘 ; 沃漏銘, 點彖窩銘, 洪?古劒銘. / 頌 ; 渡江頌十章頌, 夢授金尺頌. / 贊 ; 圃隱先生贊, 退陶先生贊, 西厓先生贊, 黃翼成公遺像贊, 拙齋贊. / 上樑文 ; 寓庵先生立祠, 達川里社. / 卷之 7. 祭文 ; 祭聘君黃公(德柔), 祭姻兄金公(燮), 祭菊窓李公(燦), 祭湖憂李公(煥), 祭九世祖祖?, 祭文參判(瑾), 祭文掌令(瓘), 祭李內翰(構), 祈雨祭, 祭權高城(?), 屛山書院修巖奉安, 祭從祖叔父宣務郞(好約), 祭聘母全氏, 祭宋公(以鎭), 祭再從兄司果(汝量), 近椎書院漢陰李先生奉安, 祭鄭鳳輝, 祭勿溪書院?金鶴沙時告上洛公, 金鶴沙奉安, 祭龍洲趙先生. / 碣銘 ; 贈監察李君, 湖憂李公, 石門鄭公, 野庵金公, 敬堂張公, 長水察訪柳公, 存齋李公, ?齋李公, 李國正墓陰記, 忠義衛尹公. / 卷之 8. 行狀 ; 祖考府君, 祖?柳氏, 先考通訓大夫司諫院大司諫府君, 先?淑夫人高氏, 副護軍月峯高公, 休庵蔡公, 修巖先生柳公, 松巖先生權公, 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知 製敎黃公. / 卷之 9. 讀書答記. / 卷之 10. 東史提綱凡例. / 卷之 11. 附錄 ; 行狀 ; 贈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知製 敎兼 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行通訓大夫司諫院司諫府君. / 碣銘. / 卷之 12. 附錄 ; 祭文.(daum 2011)

 

  홍여하(洪汝河) :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5년 (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二等) 18위/ [인적사항] 자 도견(圖見), 생년 경신(庚申)1620, 합격연령 35, 본관   부계(缶溪)/ [이력사항] 전력 : 유학(幼學), 타과 :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가족사항] [부] 성명 : 홍호(洪鎬), 관직 : 사간원사간(司諫院司諫), 관직 : 통정대부(通政大夫), [부모구존] 자시하(慈侍下), [형]  홍여렴(洪汝濂), [서제]  홍여잠(洪汝潛)/ [출전]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daum 2011)

 

  홍여하 : <국조 문과 방목>/ 홍여하(洪汝河) 효종(孝宗)5년(1654년), 식년시(式年試) 을과3(乙科3)/ > 인적사항 생년(生年)  1620년, 경신, 자(字) 도견(圖見), 호(號) 목재(木齋), 본관(本貫) 부계(缶溪)/ > 가족사항 부(父) 홍호(洪鎬), 조부(祖父) 홍덕록(洪德祿), 증조부(曾祖父) 홍경삼(洪景參), 외조부(外祖父) 고종후(高從厚), 처부(妻父) 황덕유(黃德柔)/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54(갑오) 진사시, 전력(前歷) 통덕랑(通德郞), 관직(官職) 사간(司諫), 한림(翰林)(daum 2011)

 

  홍여하(洪汝河) : 號를 木齋·山澤齋/ 東國通鑑提綱(奎3118,奎3795,奎4357),洪如河(朝鮮)編./ 13卷 7冊 木板本 31×19.6cm./ 四周單邊 半郭:21,4×14cm./ 有界 10行 20字./ 版心:上下花紋魚尾./ 序:安鼎福./ 洪汝河(1621∼1678)가 編한 것으로 檀君朝鮮으로부터 統一新羅말까지의 古代  韓國史를 수록한 編年史이다. 表紙名은 「東國通鑑」, 書頭冊名은  「木齋家塾東國通鑑提綱」으로 되어 있다. 1786년(正祖 10)에 편찬되었다. 洪汝河는 號를  木齋·山澤齋라  하였으며 孝宗때부터 관계에 투신하여 肅宗때에는 兵曹佐郞·司諫에 이르렀다.  南人계열에 속했던 그는 주자학에 밝아 그 방면에 활약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韓國史에도 관심이 커서 이 책외에 《彙纂麗史》도 집필한 바 있다. 洪汝河는 經學에  뜻을  두면서 한편 역사가 褒貶勸懲之書라는 점에서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鄭麟趾등의 《高麗史》를 刪繁節要하여 《彙纂麗史》를 쓰고, 《東國通鑑》의  내용과 修史之例에 의거하여 이책을 썼던 것 같다. 이책 序頭에  있는  安鼎福의  序文에 의하면 金富軾의 《三國史記》는 단지 古記의 斷爛之傳에 의거하여 疎略訛謬하며  全無史法이나 《東國通鑑》은 가히 취할 바 다소 있고, 論議할 바가 많아서 나아가  은括을가하고 編年之例를 본받아 이책을 썼다고 하였다. 卷頭에 安鼎福의  序文,  東國通鑑提綱凡例 및 目次가 있고 {권1}:朝鮮紀(上) 殷太師, 朝鮮紀(下)  箕準王.  {권2}:三國紀(赫居世·南解君·儒理王上). {권3}:三國紀(儒理王下·脫解王·婆娑王 ·  祇摩王·逸聖王·阿達羅王).  {권4}:三國紀(伐休王·奈解王·助賁王·沾解王·味鄒王·儒禮王·基臨王·訖解王上).  {권5}:三國紀(訖解王下·奈勿王·實聖王·訥祇王·慈悲王·炤知王上). {권6}:三國紀(炤知王下·智證王·法興王·眞興王·眞智王 ·眞平王上).  {권7}:三國紀(眞平王下·善德女王上).  {권8}:三國紀(善德女王下·眞德女王·太宗武烈王上).  {권9}: 三國紀(太宗武烈王下·文武王上). {권10}:新羅紀(文武王下·神文王). {권11}:  新羅紀(孝昭王∼憲德王), {권12}:  新羅紀(興德王∼神德王).  {권13}:新羅紀(景明王∼敬順王). 이책이 高麗末까지 기재하지 않고 統一新羅에서 그친 것은 《彙纂麗史》에서  高麗部分을 취급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安鼎福이 지적했듯이, 次第와 節目에 모두  正統과 法度를 중시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에서 檀君을 다루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箕子에서 시작하여 正統의 머리로 삼고 馬韓이 이를 계승하며  衛滿의  僭僞를  黜斥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연하다. 저자는, 馬韓이 멸망하기 전에 三國이 설립되었고,  그  때에 三國의 君主들이 馬韓에 대하여 臣禮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稱王하지  않았을  것으로 파악하여 그의 歷史敍述에서 이점을 밝히려고 하였다. 이 또한 진실로  史家의  正例라고 安鼎福은 말하고 있다. 洪汝河의 正統論은 馬韓에서 新羅로  이어지고  있다.「凡例」에서 밝힌, 이에 대한 그의 소견은, "三國을 大小로서 論한다면 新羅初의 크기가  高句麗의 크기만큼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신라의 開國이  고구려·백제보다  앞서고  그 마지막이 新羅에 의하여 통일되었으므로 東史의 諸家들이 新羅를 고구려·백제의  위에다 놓았다. 지금 생각컨대 高句麗가 立國하여 遼界에서 2백여년을  지낸  후  平壤으로 옮겼으나 그 역사는 증거하기에 족하지 못하고, 溫祚는  馬韓을  멸망시켜  箕氏之祀를 끊어 不仁이 심하나, 朴赫居世의 盛德은 가히 箕子之統을 이을만하다"고  하여  新羅의 正統性을 주장하였으며, 따라서 역사기술 자체도 新羅를 주로 하고 高句麗·百濟는  이에 附記하는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正統論이 安鼎福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다른 朱子學者들과 같이, 역사에 있어서  誣妄한  것을 배격하여, 특히 三國始祖誕生之說은 略加刪節하여 쓰거나 그 荒在한 것이  심한  것은 삭제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그의  朱子學的  歷史意識은 踰年稱元이냐 踰月稱元이냐 하는 것도 문제로 삼았다.

 

  "國君의 嗣世는  踰年改元이  禮의바른 것이다. 金富軾의 《三國史記》는 모두 先君의 薨年에 改元하여 春秋之義를  크게 잃었다. 그러므로 權近의 《東國史略》에서는 踰年稱元하여 그 잃었던 것을  바르게 하였다. 徐居正은《東國通鑑》에서 權近의 金富軾排斥을 論하고  金富軾을  强從하였는대, 그 그릇됨이 심하므로 이제 모두 바르게 고친다"고 하여  踰年改元을  주장하였다. 이 책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것은 檀君朝鮮과 箕子朝鮮을 다루는  그의  歷史認識體系이다. 그가 《東國通鑑》을 토대로 하여 이 책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東國通鑑》을 극복하였다고 보여지는 것은 《東國通鑑》에서 外紀의 위치에 있었던  檀君·箕子朝鮮을 이 책은 本紀 제1권 朝鮮紀(上·下)에다 정착시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洪汝河의 史學은《三國史記》와 《東國通鑑》의 역사인식체계를 극복한 것  같으며, 그러므로 이 점은 우리나라 史學史의 일단의 진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本所藏本 중 <奎 No.3795>와 <奎 No.4357>은 「集玉齋」, <奎  No.5330>은「龍圖春官印」등의 印이 있어 正祖의 手澤本임을 알려주고 있다.(daum 2011)

 

  홍여하(洪汝河) : 字는 百源, 號는 山澤齋, 혹은 木齋/ 木齋先生文集(奎6281), 洪汝河(朝鮮)著./ 13卷 7冊 木板本 30.8×14.7cm./ 四周雙邊 半郭:21.2×14.8cm./ 有界 10行 20字 注雙行./ 版心:上下花紋魚尾./ 木齋 洪汝河(1620∼1674)의 詩文集이다. 1693년(肅宗  19)에  간행되었다.  洪汝河의 字는 百源, 號는 山澤齋, 혹은 木齋, 1654년(孝宗 5) 進士試  및  明經科에  合格하여, 藝文館 檢閱, 成均館典籍 등을 거쳐 鏡城判官으로 補任을 받아 백성의  부담을  가법게 하고, 學校를 일으켰으며, 善行을 褒賞하는 등  한결같이 根本에 힘쓰는  정치를  行하였다. 1659년 3월에 임금으로부터 「求言之敎」가 내리자  政治·經濟·社會·人倫·國防 등에 관한 長文의 上疏를 올렸다. 한때 流配되었다가 풀림을  받아  栗里에  돌아간 그는 山澤齋(一名 木齋)를 짓고 거기에서 「經書에 沈潛하고 날마다  學者들과  더불어 講論」했다고 한다. 그가 그 지방에서 朱子學의 大家로 이름을 떨치게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의해서이며, 이 때 大學을 비롯한 四書와 周易, 詩, 書의  讀書箚記를  남겼던 것 같다. 1672년(顯宗 13) 栗里에서 ≪東國通鑑提綱≫  (一名  東史提綱)을  쓰고 氏族之學인 ≪海東姓苑源≫을 편찬했다.  官界를 떠나 野에 있는 동안 그는 上言한  朱子學과 歷史學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利用厚生에 관한 學問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학문은 「이미 經術로써 本을 삼고, 다스림과 利用도  갖추게」  되었다. 卷頭에 權愈의 序文, {卷1∼2} 각체의 詩, {卷3∼4} 疏文, {卷5}  書,  {卷6}  說, 論, 辨, 序, {卷7} 記, 跋, 銘, {卷8} 祭文, 碣銘, {卷9} 行狀類, {卷10}  讀書箚記(周易 書傳 詩傳 春秋 大學), 雜著(田結, 賦稅, 租庸調, 戶口之賦, 罷租庸調, 授田,  田稅, 築城), {卷11} 「東國通鑑提綱凡例」, 「彙纂麗史凡例」 및 同書의 志,  論,  {卷12} 附錄으로 木齋의 行狀과碣銘, {卷13} 역시 附錄으로 祭文(주로 木齋門人들의 것)이  수록되어 있다.  疏에는 「上番疏」, 「辭職疏」(正言),  「請罷採銀疏」(咸昌儒生을  代表하여 쓴 것으로, 그 지방의 鄕校主作之山에다 壙冶를 開鑿하고 店傷을 設立,  游手를 召集, 民戶를 騷擾케 하여 장차 銀貨를 採取, 國用을 補하려는 데 대한 上疏이다),  「應求言敎疏」, 「議禮疏」 및 「儀禮經傳喪服考證」 등이 있다. 특히 「議禮疏」와  「儀禮經傳喪服考證」은 당시 西人의 宋時烈과 입장을 달리하던  그의  禮論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가 南人으로 宋時烈과 반대되는 禮論 때문에  黃澗에  유배까지 당하게 되지만, 그의 條目 條目 따진 喪服考證은 그의 反宋時烈的 禮論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의 朱子學的 思想은 上記한 「禮論」과  「讀書箚記」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社會經濟的 관심은 역시 雜著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田結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소위 「結」은 "長이 六百尺, 廣도 그와 같다"고 하여  그  넓이를 말한 바가 있다. 賦稅, 租庸調, 戶口之賦, 授田 등에 관한  그의  견해가  있으나 時論과 관련이 없으며, 「罷租庸調」도 우리 나라의 現實을 論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보면, 本集은 社會經濟的인 점에서보다는 그의 朱子學的 學問과 禮論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daum 2011)

 

  홍여하 : 문헌(文獻)/ 문경지역 근암서원(近암書院) : 산북면 서중리 * 암 ; 뫼山 밑에 물건 品자/ 소재지 : 산북면 서중리/ 연혁 : 중종 39년(1544)에 상주목사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이 근암서당을 설립했다. 현종 5년(1664)에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을 봉향한 향현사가 되었다. 헌종 10년(1669)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주벽으로 예조로부터 서원창건을 허가받았다. 숙종 28년(1702)에 사담(沙潭) 김홍민(金弘敏),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를 추향(追享)하고, 정종 10년(1786)에 활재(活齋) 이구(李구) * 구;곱자 矩 밑에 나무 木,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을 추향하였다./ 홍여하(洪汝河) : 광해 12년(1620)에 출생, 자는 백원(伯源) 호는 목재(木齋) 관은 부림(缶林)이니 문광공 귀달의 5대손이요, 대사간 호(鎬)의 아들이다.(daum 2011)

 

  홍여하(洪汝河) : 부계인/ 木齋先生文集/ 洪汝河(朝鮮) 著肅宗19(1693)序/ 12卷6冊. 木板本. 四周雙邊, 半郭: 21.2?5㎝, 有界, 10行20字(註雙行), 魚尾: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31?9.6㎝/ 표지서명: 木齋集/ 版心題: 木齋先生文集/ 序: 上之十九年癸酉(1693)十二月上澣安東權愈序(daum 2011)

 

  홍여하 : 木齋先生文集/ 木齋 洪汝河(1620~1674)의 詩文集으로 1693년(肅宗 19)에 간행되었다. 卷頭에 權愈의 序文, 卷1~2 각 체의 詩, 卷3~4 疏文, 卷5 書, 卷6 說, 論, 辨, 序, 卷7 記, 跋, 銘, 卷8 祭文, 碣銘, 卷9 行狀類, 卷10 讀書箚記(周易 書傳 詩傳 春秋 大學), 雜著(田結, 賦稅, 租庸調, 戶口之賦, 罷租庸調, 授田, 田稅, 築城), 卷11 ?東國通鑑提綱凡例?, ?彙纂麗史凡例? 및 同書의 志, 論, 卷12 附錄으로 木齋의 行狀과碣銘, 卷13 역시 附錄으로 祭文(주로 木齋門人들의 것)이 수록되어 있다. 本集은 저자의 朱子學的 學問과 禮論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daum 2011)

 

  홍여하(洪汝河) : 彙纂麗史(奎3108∼奎3113,奎 3376), 洪汝河(朝鮮)著./ 48卷 22冊 木板本 31.2×21.4cm./ 四周雙邊 半郭:20.6×16cm./ 有界 10行 20字./ 版心:上下花紋魚尾./ 序:鄭宗魯./ 洪汝河(1621∼1678)가 지은 紀傳體의 高麗時代史로 顯宗年間에  간행되었다.  表題는「木齋家塾彙纂麗史」로, 간혹 「麗史彙纂」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洪汝河는  호가 木齋이며 孝宗 때에 進士試·文科 등에 합격하였고 南人系列에 속하여 1674년(顯宗  15) 제2차 服制事件 이후에는 벼슬이 兵曹佐郞에 이르렀으며, 후일 副提學에  追贈되었다. 이책은 高麗時代史를 기존의 高麗史에다 저자의 구상을 가미하여  서술한  내용이다. 卷頭에 玄齋 鄭宗魯의 序文, 凡例 10條, 目錄이 있다. 대체로  紀傳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권1∼6}:世家. {권7}:天文志. {권8}:五行志.  {권9∼10}:地理志.  {권11}:禮志. {권12}:樂志. {권13}:與服志. {권14}:選擧志. {권15}:百官志. {권16}:食貨志.  {권17}: 兵志. {권18∼19}:刑法志. {권20}:王后·諸院妃傳·宗室傳. {권21}:辛庶人傳.  {권22∼37}:名臣列傳. {권38};義烈傳·儒學傳·卓行傳·行人傳·良吏傳. {권39}:文苑傳.  {권40}:方技傳·宦者傳·酷吏傳·嬖幸傳. {권41}:嬖幸傳. {권42}:姦臣傳.  {권43∼46}:叛逆傳. {권47}:外夷附錄(契丹傳·日本傳). 저자가 이책을 쓴 목적이나 修史方法은  凡例와 編次構成 및 역사기술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高麗時代의  역사를  宋·金·元의 大陸史와 총체적인 면에서 밝혀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종래의  高麗史에서 누락한 부분이나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보충하려고 시도한 것 같다. 아마도  {권47}의 外夷附錄을 삽입한 것이나, "邊境得失은 나라의 大事와 관계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抱州(현 義州)가 高麗에 還俗된 것은 宋朝에서는 이를 살펴  기록하였으나  《東國通鑑》 等書에서는 모두 闕하여 不錄하였으며 또 宋의 徽宗朝에 두 醫員이 왕래한 것은  분명하여 생략할 수 없음에도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제 모두 宋史에 의거하여  기록하였다"고 한 것은 그러한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凡例에서 밝히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忠肅·忠惠王 전후에 「元」이라 칭한 것은 종래의 高麗史에서 매우 착각한  것  같다고 하면서, 그는 이 책에서 이를 모두 바르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본서는  역사체제면에 있어서 새로운 구상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世家와  志·列傳을  갖추었으므로 종래의 紀傳體에 가까우나, 저자는 傳志之體와 編年體를 竝立하고 互相爲用하여  下可偏廢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체로《高麗史》의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듯하지만 이책이 志와 列傳 부분에 있어서《高麗史》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우선 「志」  부분을 비교해 보면 志의 구분이나 배열은 두 책이 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高麗史》에 보이는 「曆志」가 이책에는 보이지 않으며, 《高麗史》에서 「禮志」를  11권으로 다루고 있음에 비하여 이책에서는 1권으로 취급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  것  같다. 列傳을 보면 이책에서 취급하고 있는 人物이 555명인데 이를 분류한  내용을  보면 저자의 역사의식의 일부가 나타나고 있는듯하다. 저자는 17항목으로 列傳에 수록될  人物들을 분류하여 王后(20), 諸院妃(9), 宗室(15),  辛庶人(2),  名臣(328),  義烈(10), 儒學(2), 卓行(8), 行人(9), 良吏(5), 文苑(8), 方技(3), 宦者(12), 酷吏(2),  嬖幸(60), 姦臣 (20), 叛逆(43)으로 적고 있다.

 

  《高麗史》의  {권52∼120}까지의  「列傳」이 名臣列傳과 같은 인물을 취급하였고, 또  《高麗史》의  后妃·宗室·公主·良吏·孝友·烈女·方技·宦者·酷吏·嬖幸·姦臣·叛逆 등의 列傳 분류와 비교해 보면  《高麗史》에서 題名하지 않은 行人·卓行·儒學·文苑·義烈 등이 이 책에서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본서는《高麗史》에 보이지 않는 人名들이 나타나기도하고 한 인물에  대한  褒貶도 간혹 달리하고 있다. 즉, 《高麗史》에 보이지 않는 吉再가 이  책에서는  「儒學傳」에 보이는 것을 비롯하여 權近이「文苑傳」에, 禹卓이 「儒學傳」에 각각 보이며  이밖에도 外夷 附錄을 넣은 것은 마치 중국의 正史에서 外夷列傳을 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이것은 저자가 高麗의 歷史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이보다도 契丹·女眞·日本을 外夷로 취급함으로써 이들 국가들에 대한  高麗의 自尊意識을 高揚하려 했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책에서 그의 역사의식의 일단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책 중  司天考論(天文志)·地理志論·禮志論·義烈傳序·儒學傳序·卓行傳序·行人傳序·文苑傳序 등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이 있다. 분량면에 있어서 《高麗史》보다는 적으나, 저자의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고  보충한 것도 있기 때문에, 이 방면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리라고 본다.(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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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테니스연합회, 14일 도대회 종합우승...축하합니다.

 

  예천군테니스연합회(醴泉郡, 道民體典 테니스 綜合優勝 2連勝 成績 올려 : 大昌高 박성주, 박동우 및 김은정, 임실선 優勝) [記事] : 예천군테니스연합회(회장 변상무) 선수들이 2012년 5월 11일부터 14일까지 구미에서 열린 ‘제50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 남고, 여고, 남일반, 여일반 종목에 참가하여 남고(대창고 박성주, 박동우), 여일반(김은정, 임일선)이 우승하여 종합성적에서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종합 우승하였다. 또한 지난 4월 28부터 29일까지 영천시민테니스장에서 열린 ‘제16회 경상북도지사기 생활체육테니스대회’에 참가하여 군부 3위를 차지하여 예천군테니스 위상을 드높였다 1997년부터 개최한 대회 결과에 우리군은 종합우승 4회, 준우승 3회, 3위 5회의 성적을 올렸으며, 변상무 회장은 “앞으로 있을 각종대회에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테니스 동호인 저변확대와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 할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醴泉뉴스 2012년 0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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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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