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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932) : 홍현기(교수)(2)-홍호(대사간)(1)(附 예천여중 박유경, 29일 양궁 전국대회 금...축하합니다/예천읍 출신 이정삼 서기관, 25일 대통령 표창...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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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기 : 홍익대 미술학부,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15회(대구5, 서울2, 일본7, 미국1), 대구현대미술가협회 회장 역임, 인천가톨릭대 미술학부 교수, 현주소 용문면 원류리 120(韓國,韓國이미지 展 2006)
홍현기(藝術속 지팡이는 : 工藝家 홍현기氏 展示會 17~25日 두산아트센터) [記事] : 10년째 오직 나무 지팡이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온 향토 출신 공예가 홍현기 씨가 지금껏 모인 작품들로 전시회를 연다. 작품전은 ꡐ홍현기의 지팡이들ꡑ이란 타이틀로 2006년 11월 17~25일 두산아트센터 전시장 1, 2관에서 선보인다. 그의 지팡이 작품은 줄잡아 1,500여 개에 이른다. 10년을 한결같이 2~3일마다 한 작품 이상씩은 만들어 온 셈이다. 모든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작업으로 제작됐다. 단단한 잡목의 뒤틀린 부분을 펴고 손잡이를 만드는 공정 하나하나가 홍씨의 꼼꼼한 잔손질을 거쳤다. 나무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김이순 미술평론가는 ꡒ홍현기 작가의 지팡이는 예술성과 일상성,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표현력을 갖고 있다ꡓ며 ꡒ잡목을 투쟁적으로 다룬 그의 손동작에선 끈질긴 생명 연장의 의지를 지닌 인간상이 떠오른다ꡓ고 평했다. 한편 경북 예천 출신인 홍씨는 홍익대를 졸업하고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 15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 교수로 있다.(박민혜 記者 大邱日報 2006-11-15 20:03:26)
홍현기(지팡이, 生活 道具인가? 藝術 作品인가? : '홍현기의 지팡이展' 손作業한 1500個, 과일나무 1그루 선보여) [記事] : '홍현기의 지팡이전‘이 2008년 3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대구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과 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봉산문화회관이 '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마련한 전시로 문화예술이 도심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대구 도심을 창의적으로 재생하기 위해 '예술의 역할, 공공성을 말하다'라는 주제 아래 열린다. 자연의 에너지가 넘치는 예술작품 전시를 통해 도심을 생기 있고 활동적인 공간으로 재생할 수 있도록 예술의 공공성을 강조한 것. 이번에 전시될 지팡이는 삶의 일부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예술이 인간을 위해 기능해야 함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생활과 예술의 동화', '생에 대한 경외', '수작업으로의 복권' 등 작가의 예술적 신념까지 반영하고 있다. 홍익대를 졸업한 뒤 회화작품으로 여러차례 개인전을 가진 홍현기 작가는 왜 지팡이 작업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경북 예천 출신인 그는 10여년 전 예술가로서 노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산에서 주워온 나무로 지팡이를 다듬어드렸다고 한다. 노모에게 지팡이는 의지, 치유, 재생의 의미로 다가왔고, 작가는 생활과 예술이 동화되는 접점을 체험했다. 이후 지팡이는 작업의 중요한 소재가 됐다. 미술 형태에 대한 개념 규정이 필요 없는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 손작업을 통해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작가로서의 존재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평면작업에서 끈질기게 매달려온 '신화'에 대한 문제도 원초적인 생명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의탁하는 도구인 지팡이 작업은 40여 년간 해온 평면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홍현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 지팡이 1,500개와 직접 길러온 과일나무 1그루를 선보인다. 지팡이 자체를 감상하기보다 지팡이가 인간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투영하는 설치 형식이다. 조형적으로 근사할 뿐 아니라 사용하기에도 완벽해 예술성과 일상성을 넘나드는 그의 지팡이는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대구현대미술 역사에서 중요한 일면을 차지하고 있는 홍현기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이경달 記者 每日新聞 2008년 02월 26일)
홍현기(지팡이 숲, 都心에 演出된다 : 봉산文化會館, ꡐ홍현기의 지팡이ꡑ 展 개최… 돌 과일 나무도 선보여) [記事] :ꡐ홍현기의 지팡이ꡑ전(展)이 2008년 3월 1일부터 4월 6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ꡐ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ꡑ 프로젝트 일환으로 ꡐ예술의 역할, 공공성을 말하다ꡑ를 주제로 2011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고, 대구 도심을 창의적으로 재생하기 위해 개최된다. 아울러 문화예술의 근원적인 역할을 제고함으로써 인간을 위한 예술을 제안하고, 도심이 활동적인 공간으로 재생할 수 있도록 예술과 그 공공성을 탐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제3전시실과 아트스페이스에 전시될 작품들은 홍현기 작가가 1997년부터 제작해온 지팡이(길이 120cm) 1,300개 정도와 작가가 길러온 과일나무 1그루를 선보일 예정이다. 제3전시실에서 전시될 작품들은 바닥에 수직으로 지팡이를 고정해 장엄한 감동을 선사하고, ꡐ생명ꡑ으로 은유되는 1천여 신화 속 인간 군상이 전시장 관객을 감싸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신비로움을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지팡이들 사이 터놓은 길을 따라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면, 관객은 무수한 시간 동안 인간을 위한 역할로 존재했을 다양한 지팡이들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팡이와 관련된 인류의 역사와 신화 등 다양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작가의 메시지를 가슴에 담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전시공간에는 작가가 직접 길러온 과일나무 1그루를 심어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몇 개의 돌과 그 돌로 인해 오랜 시간에 걸쳐 휘어져 자란 가지에서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가늠해 볼 수 있으며, 과일나무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인간의 유익을 경작하는 농부의 태도에서 ꡐ예술의 역할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가 소개] : 홍현기(洪鉉旗, Hong Hyun-ki), 1947 경북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 生,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및 동 대학원 졸, 대창고.순심고 미술교사 역임.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미국, 일본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개최, 종교는 천주교(유시민 記者 大邱인터넷뉴스 2008-02-26 오후 1:46:08)
홍현기(治癒와 再生의 지팡이, 홍현기의 지팡이는 藝術이다? : 다음달 6日까지 봉산文化會館 第3展示室 및 아트스페이스서, 藝術의 公共性, 日常性에 對해 생각해 볼 수 있는 展示) [記事] : 봉산문화회관의 ꡐ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ꡑ 프로젝트의 하나인 ´홍현기의 지팡이전´ 이 ꡐ예술의 역할, 공공성을 말하다ꡑ 라는 주제로 2008년 4월 6일까지 제3전시실과 아트스페이스에서 마련된다. 이번 전시는 ꡐ지팡이ꡑ 라는 설치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작가의 예술적 신념인 ꡐ생활과 예술의 동화ꡑ, ꡐ생(생명력)의 경외ꡑ, ꡐ수작업의 복권ꡑ 등의 실천을 시각화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 삶의 일부를 지탱하기 위한 ꡐ지팡이ꡑ 의 존재처럼 예술이 인간을 위한 공공적 역할 도구로 기능함을 주장한다. 왜 하필 지팡이일까? 작가는 10여 년 전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와 예술가인 자신이 노모를 위해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산에서 주워온 나무로 지팡이를 다듬어줬다. 지팡이는 노모에게 ꡐ치유(依支)ꡑ 와 ꡐ재생ꡑ 의 의미로 해석됐으며 작가는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동과 함께 생활과 예술이 서로 동화되는 접점을 체험했다고 한다. 이후 지팡이는 작가의 생활과 예술작업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전시실에는 작가가 1997년부터 접목의 껍질을 다듬은 후, 굽은 부분을 바르게 펴거나 손잡이 부분을 새로 굽히고 손질하는 등 정성을 들여 제작해온 길이 120㎝의 지팡이 1300개 정도와 수년에 걸쳐 직접 길러온 과일나무 1그루를 선보인다. 봉산문화회관 관계자는 ꡒ이번 전시에서 ꡐ지팡이ꡑ 를 통해 ꡐ치유ꡑ 와 ꡐ재생ꡑ 의 의미를 생각하고 지팡이에 대입될 수 있는 예술을 떠올리며 인간이 중심이 돼 살아가는 문화예술도시를 상상할 수 있을 것ꡓ 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8년 3월 26일 저녁 7시부터는 작가와 초대패널(작곡가 김동준, 미술품컬렉터 이원기)과의 갤러리 토크가 마련된다.(김희정 記者 데일리안 2008-03-18 11:33:13)
홍현기 [記事] : 자랑스러운 예천인을 소개합니다/ 이름 권호근/ 날짜 2009-01-11 (14:45)/ 조회 24회 / 용문면 원류리 출신 홍현기 교수(62. 인천가톨릭대)의 그림이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컬랙션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전시회를 갖은 서양화 전공의 작가로, 이번에 앞의 미술관에 그림이 컬랙션된 것이다. 동 미술관에 컬랙션 되려면, 동 미술관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처 통과하면, 또 동 미술관의 구입 가격 심사위원회에서, 구입 가격을 산정 후 선정되게 되는 것으로, 그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고,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므로, 이번 작품도 천만 원대로 고가에 구입되었다고 한다. 작품명은 “신화_내재율(神話~內在律_ Myths)”, 규격은 193x96cm로, 재료는 한지(韓紙)에 Chinese ink carbon black(직역하면 : 인쇄잉크 원료 먹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있는데, 들르시는 길이 있으면 찾아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예천에 거주하며,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컬랙션된 작가는, 이분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 했습니다.(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홍현기(홍현기 敎授 作品 '神話-內在律' : 國立現代美術館 所藏) [記事] :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홍현기(62․용문면 원류리 출생․서양화가) 교수의 작품 ꡐ神話-內在律ꡑ(신화-내재율)이 200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으로 선정됐다. 홍 교수의 ꡐ신화-내재율ꡑ은 먹, 카본블랙, 한지 재료를 이용한 작품으로 1백93cm×96cm 크기에다 원초적 신화의 에너지 탐색을 표현하고 있다. 홍 교수는 대구․서울․일본․미국 등에서 개인전 17회를 가졌으며, 30여 회의 단체전을 가진 바 있다. 홍현기 교수는 대창중(12회), 대창고(10회),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을 역임했다.(醴泉新聞 2009년 02월 05일 14:50:37)
홍현기 : 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 Project「홍현기의 지팡이」展/ 267 다운로드 #2 나무.jpg ( 19 KB ), Down: 248 전시개요 ●전시명 : 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 Project「홍현기의 지팡이」展 ●주제 :예술의 역할, ‘공공성’을 말하다 ●일정 : 2008.3.1(토) ~ 2008.4.6(일), 37일간, 휴관.../ daeguart.com(daum 2011)
홍현기 : 대창80년사:부록(38) 강사및교사(5)/ 작성 장병창/ 2주전, 2011년 3월 12일 (토)/ 보좌신부 1973.3.1-1975.2.27 대창고등학교 영어 전임강사 1975.3.1- 대구 공군부대 고문관/ 홍현기(洪鉉旗, 1973.3.1-1974.8.30) 1948.6.21- 본적과 주소는 용문면 원류동 345, 본관은 남양, 진수.../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홍현기 : 대창80년사:중고병설시대(8) <송대2집> 간행-<버들피리> 간행/ 작성 장병창/ 2달전, 2011년 1월 6일 (목)/ ...추가 수록하겠다고 그 편집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총 204페이지에 달하는 2집의 표지는 홍현기 미술 교사가, 컷은 박효웅 전임(前任) 미술교사가 수고하였다. 김교용(金敎容) 교장 선생의 "10.../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홍현기 : 재경예천군민회cafe/ 인천가톨릭대학교 미술학부 교수-홍현기 교수(용문면)/ 2년전, 2009년 9월 9일/ 인천가톨릭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홍현기 교수(용문면)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수수께끼를.../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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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호(洪鎬) : 1586(선조 19)-1646(인조 24), 용문면에서 용궁현으로 옮겨 살았다. 자는 숙경(叔京), 호는 무주(無住)ㆍ무임(無任)ㆍ동락, 본관은 부림(缶溪), 문광공 귀달(貴達)의 현손자,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제자이다. 1606년(선조 39) 식년 문과에 병과 11위로 급제하였다. 박사를 거쳐 괴원(槐院)에 있으면서 1608년(광해군 1) 권신 이이첨(權臣李爾瞻)의 아들 이대엽(李大燁)이 승문원에 등용되는 것을 좌절시켰다. 1629년(인조 7)에 인의 현감에 재임 중이었고, 1638년(인조 16) 3월 20일 비변사에서 왕에게 아뢰기를, "육로에는 원래 적을 막을 수 있는 장벽이 없어서 지난해 흥해군수(興海郡守) 홍호가 상소하기를, '동래부터 서울까지 적을 막을 수 있는 한 개의 성(城)도 설치된 곳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진실로 깊은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 정언(1624)이 되고, 우부승지(1643), 대사간(1645)를 지냈다. 간원(諫員)으로 있을 때 박승종(朴承宗)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청렴결백하고 절개가 굳어 이름이 당시를 떨쳤다. 저서로 <조천록>, <무주집(無住集, 無住逸稿)>이 있다. 후손은 용문면, 풍양면, 문경시 영순면 등에 살고 있다.(文科榜目, 備邊司謄錄, 仁祖實錄, 竺山勝覽 1934, 醴泉郡誌 1939, 龍宮縣邑誌 1780, 인터넷 Alta Vista 2001, hamyang.org 2002)
[承政院日記] : 1625년(인조 3) 7월 2일 사복시(司僕寺)에서 아뢰기를, “영변판관(寧邊判官) 홍호를 포상하소서”하니, 반숙마(半熟馬) 1필을 하사하라고 하였다. 그 후 정언(正言, 除授 1625.7.12), 구성 판관(龜城判官, 除授 1625.10.20), 형조 정랑(刑曹正郞, 除授 1627.12.6), 예조 정랑(禮曹正郞, 除授 1628.1.19), 사예(司藝, 除授 1628.6.5), 예조 정랑(除授 1630.11.16), 사예(除授 1630.12.18), 종부시 정(宗簿寺正, 除授 1631.2.2, 1632.3.4)을 거쳐 1632년(인조 10) 4월 7일에는 장령(掌令)으로서 아뢰기를, “사직하옵니다.”하니, 임금이 사직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년 4월 21일에는 성균관 사예로서 입시(入侍, 1632.4.21)하였고, 주청사 서장관(奏請使書狀官)으로서 중국에 다녀왔는데(1633.5.11), 그 이튿날 왕이 비망기(備忘記)에서 이르기를, “서장관 홍호에게 가자(加資)하고 노비 4구(口)와 밭 10결(結)을 하사하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 날(5.13)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어 상의원 정(尙衣院正)을 제수받았다. 그 후 동부승지(同副承旨, 除授 1634.7.13) 때인 1634년(인조 12) 7월 13일 신계영(辛啓榮)이 아뢰기를, “새로 동부승지에 제수된 홍호가 현재 경상도에 있으니, 속히 상경토록 하유하소서”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 후 흥해 군수(興海郡守, 除授 1635.11.24), 부호군(副護軍, 除授 1638.5.11)을 거쳐 1640년(인조 18) 7월 18일에는 예조 참의(禮曹參議)로서 장릉(長陵) 봉심(奉審)의 일로 지방으로 나갔고, 동년 7월 21일에 봉심을 마치고 돌아왔다. 동부승지(除授 1640.8.5) 때인 1640년(인조 18) 8월 10일에 영중추부사 윤방(尹昉)의 예장(禮葬)에 대해 아뢰니, 알아서 하라고 하였고, 동년 8월 15일에는 경상좌도 경차관(慶尙左道敬差官)의 임명에 대해 아뢰었다. 좌부승지(左副承旨, 在任 1640.8.19), 동부승지(同副承旨, 在任 1640.9.16), 병조 참의(兵曹參議, 除授 1640.9.21, 1640.12.16)를 거쳐 1641년(인조 19) 1월 22일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우부승지 홍호가 현재 경상도에 있으니, 속히 상경하도록 하유하소서”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하였다. 동년 2월 9일 경상 감사의 서목(書目)에, “함창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승지 홍호가 병이 중하여 상경할 수 없다고 합니다.”하니 체차(遞差)하라고 하였다. 그 후 예조 참의(除授 1643.4.3, 離任 1643.4.26), 우부승지(除授 1643.5.16)를 거쳐 좌부승지(除授 1643.6.16) 때인 1643년(인조 21) 8월 3일에 조익(趙翼), 김집(金集) 등의 하유에 대하여 아뢰어 윤허를 받았고, 또 형조(刑曹)의 초기(草記)를 보고 유지만(柳之蔓) 등 3형제에 대하여 아뢰어 윤허를 받았다. 우승지(在任 1643.8.9), 좌부승지(辭任 1643.8.10, 除授 1643.8.15), 우승지(除授 1643.9.16, 入侍 1643.10.6, 離任 1643.10.23), 병조 참지(兵曹參知, 除授 1644.5.15), 대사간(大司諫, 除授 1644.5.22), 승지(除授 1644.11.16), 대사간(除授 1645.1.9), 영월 군수(寧越郡守, 除授 1645.2.30)를 지냈다.(承政院日記)
홍호 [專門資料] : [간행물] [輓詩] 洪鎬/ 홍호(洪鎬)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간행물] [輓詞] 洪鎬/ 홍호(洪鎬)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 등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諫院의 계/ 慶尙道咸昌|全羅道昌平, 洪鎬|林得悅(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命儒生 洪鎬 基解停其餘停擧儒生亦竝蕩滌/ 洪鎬|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洪鎬|李雲栽|姜瑜|崔濯|沈大孚|許中(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간행물]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祭文 洪鎬/ 柳袗(류진) | 경상대학교도서관문천각(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輓詩 洪鎬/ 柳袗(류진) | 경상대학교도서관문천각(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간행물] 祭文[洪鎬]/ 홍호(洪鎬)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간행물] [祭文] 門人洪鎬/ 홍호(洪鎬) | 한국고전번역원(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의 상소/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監察이 茶時를 한다는 洪鎬의 계/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궐원이 생긴 臺諫의 政事에 대해 묻는 洪鎬의 계/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下諭하기를 청하는 承政院의 계/ 慶尙道咸昌,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經筵을 열기를 바라는 所懷를 進達하는 洪鎬의 계/ 洪鎬|帝堯|帝舜|伊尹|傅說|周公旦|召公奭(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趙翼 등이 속히 올라올 수 있도록 給馬할 것을 청하는 洪鎬의 계/ 洪鎬|趙翼|金集(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의 상소/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洪鎬에게 속히 올라오라고 하유할 것을 청하는 辛啓榮의 계/ 慶尙道咸昌, 辛啓榮|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興海郡守에 洪鎬를 제수하라고 吏批의 望單子에 대해 내린 전교/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金榮祖 등이 물러나서 物論을 기다리고 있다는 洪鎬의 계/ 洪鎬|金榮祖|成台耉|洪茂績|李(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權濤에 대해 臺諫이 削去仕版으로 論啓하고 있으므로 推考承傳을 捧入할 수 없다는 洪鎬의 계/ 洪鎬|權濤(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오늘과 내일 朝市를 정지하므로 三省推鞫을 할 수 없고 다음 달 8일은 大祭이므로 이전 3일도 三省推鞫을 시행할 수 없다는 洪鎬의 계/ 洪鎬(daum 2011)
홍호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異姓四寸의 身死에 따른 服制가 4일 지났으니 洪鎬의 出仕를 청하는 承政院의 계/ 洪鎬|柳守全(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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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여중 박유경, 29일 양궁 전국대회 금...축하합니다.
박유경(全國少年體典 洋弓 女中部 個人綜合 金 : 醴泉女中 2學年 박유경 選手 … 勝負慾 强해 將來 囑望) [記事] : 양궁의 메카 예천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제41회 전국소년체전(경기도) 경북도대표로 참가한 예천여중 2학년 박유경 선수가 2012년 5월 29일 양궁 여중부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 선수의 이번 쾌거는 지난 2005년 제34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당시 예천여중 3학년이던 이다빈 선수가 30m 금메달, 개인종합과 5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데 이어 7년 만에 맞은 큰 경사다. 예천읍 남본리 대성식당 박인철ㆍ김현정 씨의 차녀인 박유경 선수는 예천동부초등 4학년 때 활을 잡았다. 그동안 각종 대회에 참가했지만 대회 때마다 긴장감을 떨치지 못해 평소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입상과는 인연이 멀었다. 박 선수는 지난 3월부터 전 양궁국가대표 김성남(43) 코치의 맞춤형 지도를 받으면서 실력과 담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이번 대회 준결승전에서 광주 동명중 1학년 형예진 선수와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는 뚝심을 보였으며, 결승전에서는 인천광역시 대표인 부일중 2학년 유수연 선수를 가볍게 따돌리고 여중부 최고 궁사의 자리에 올랐다. 박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이라는 성적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예천여중 김성남 코치는 “유경이는 양궁에 적합한 체격 조건과 긍정적인 성격, 승부욕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 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선수”라며 “이번 금메달 획득은 이현준 군수, 김예희 교육장, 박영재 예천여중교장, 김도영 경북양궁협회장과 문형철 감독을 비롯한 지역 양궁 관계자들의 뒷바라지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첫 입상을 전국소년체전 금메달로 장식한 박유경 선수는 예천의 자랑 윤옥희 선수처럼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게 꿈이다.(권오근 編輯局長 醴泉新聞 2012년 05월 30일 (수) 0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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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읍 출신 이정삼 서기관, 25일 대통령 표창...축하합니다.
이정삼(이정삼 書記官 大統領 表彰) [記事] : 예천읍 청복리가 고향인 농림수산식품부 유통정책과 이정삼(43·기술고시 37회) 서기관이 2012년 5월 25일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 표창을 전수받았다. 이정삼 서기관은 그동안 농산물유통개선 및 농협경제사업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이 서기관은 남부초(10회), 예천중(35회), 대창고(34회),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에서 석사(식물육종)·박사(농업생태학)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지난 2003년 방송대에서 경영학을 따로 전공할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학구파 공무원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업무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및 유통기획업무, 농협경제사업 활성화로 맡은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다함께 잘사는 행복한 농어촌’ 건설과 ‘국민과 농어업인의 뜻을 섬기는 농림수산정책’에 앞장서며, 농어업인과 국민의 안정되고 행복한 삶과 부자농촌건설을 위해 밤낮을 잊은 지 오래다. 이정삼 서기관은 “우수한 농산물을 제대로 된 유통구조 안에서 제값을 받고 팔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농업군인 고향 예천의 농업인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한 임무로 알고 열심히 노력해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상이지만 간혹 일에 지쳐 가슴이 허전할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마음의 안식처는 부모님(부: 이석용, 모: 안만자)이 살고 있는 고향 예천이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함께 한천에서 물장구치고 놀며, 손으로 메기도 잡고 산과 들로 뛰어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면 일상의 답답함이 봄눈 녹듯 사라지고 편안함이 자리잡는다. 현재 죽마고우들의 모임인 청복돌태친우회(회장 김기홍), 89동우회(회장 전문배) 친구들과는 지속적인 교류로 우정을 나누고 있으며, 고향 예천에 오면 잊지 않고 늘 친구들과 소주 한 잔에 일상의 얘기를 안주 삼아 삶의 활력을 찾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에 자주 찾아오지 못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늘 미안하다”며 “하지만 보다 더 노력하는 모습으로 고향발전과 복지농촌건설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앞장서 나가겠다”는 이정삼 서기관의 말속에 농업군 예천의 밝은 미래를 조심스럽게 엿본다. 가족으로는 부인 김소현(41) 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2003년 웅진출판사에 펴낸 「벼」와 2009년 사람과 자연에서 펴낸 「뉴질랜드 농업세상 둘러보기」가 있다.(백승학 記者 醴泉新聞 2012년 05월 30일 (수) 1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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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