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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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954) : 황정기(사장)-황정연(서울대)-황정환(사장)-황정희(회장)-황조하(생원)-황종열(사장)-황준량(목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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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기("信賴받는 企業, 尊敬받는 企業으로" : 황정기 나드리化粧品 代表理事) [記事] : 2005년으로 27번째 생일을 맞는 야쿠르트 그룹의 나드리화장품은 2005년 3월 28일 서울 본사 강당에서 임직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정기(56․상리면 도촌리 출생) 대표이사 사장의 취임식을 가졌다. 취임사를 통해 ꡒ나드리 화장품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급변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지켜내고 희망찬 조직, 미래의 비전을 찾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겠다ꡒ고 포부를 밝혔다. 미인에 대한 가장 심한 욕은 `빨리 세월이 흘러라'이라고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세월은 어찌 못한다. 고왔던 피부도 까칠해지고, 그리도 만지고 싶을 만치 뽀얗던 얼굴에도 여기저기 세월의 굴곡이 깊게 파여 간다. 그래도 우리는 아름다움으로 남고 싶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간다. 그 세월을 어찌 살았는지 노년일수록 점점 더 중후한 멋과 아름다움이 풍겨나는 것은 화장품의 발달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나드리화장품은 지난 90년대 연매출 1천억 원을 돌파, 중견 화장품으로 우뚝 올라섰으나,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매출이 급감되어 `나드리의 부활'의 해결사로 황정기 대표이사를 선택했다.ꡒ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특화된 상품과 마케팅, 적극적인 변화와 행동 그리고 정도 경영입니다. 또한 경영 철학으로 미래를 스스로 도전하고 창조하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화장품 업계에서 기업 가치가 가장 앞서는 신뢰받는 기업, 구성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업.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ꡓ고 한다. 2005년 3월 나드리 화장품의 사령탑에 오른 황정기 사장 취임 후 선보인 한방화장품 `상황'이 브랜드 숍, 면세점 등에서 고급 브랜드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취미는 등산과 골프. 부인 이동현(53) 씨와 2남(용주․28․한의대 재학, 용진․25․한양공대 재학)을 두고 있다. △상리면 도촌리 출생(1948년) △상리초등․예천중(13회)․대구상고(39회)․영남대 경영학과․동아대 경영대학원(석사) △75년 (주)한국야쿠르트 공채 입사, (주)비락 이사, 나드리화장품 영업총괄상무, 재부산향우회 재무간사 4년 역임(醴泉新聞 2005-09-09 10:18:29)
황정기 : <출향인인터뷰> 황정기 나드리화장품 대표이사(예천신문)/ 6년전, 2005년 9월 9일/ 신뢰받는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출향인인터뷰> 황정기 나드리화장품 대표이사/ 올해로 27번째 생일을 맞는 야쿠르트 그룹의 나드리화장품은 지난 3월 28일 서울 본사 강당에서 임직원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황정기.../ cafe.daum.net/ 예천군민회(daum 2011)
황정기 : 인터뷰 : 나드리 황정기 대표이사/ ...신유통, 신사업에 비중 둔 영업정책 펼친다 ▲나드리화장품 황정기 대표이사/ 2005년 3월 25일/ 나드리화장품 제4대 대표이사에 취임한 황정기 사장. 취임 한 달을 맞은 황정기 대표이사는 요즘 분(粉)의 명가 재건 전략 짜기로.../ www.bosa.co.kr(daum 2011)
황정기 : 재경예천군민회cafe/ 황정기 사장 축하해요/ 6년전, 2005년 3월 28일/ 2005.03.28/11:14 오전/ 나드리화장품회사에서 잔뼈가 굵어온 황정기 동문이 사장으로 승진했음을 축하합니다. 바쁜 시간 내서 축하해 드립시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황정기 : 화장품 시장 동향 및 전망. 2007/ e-Book/ 데이코 D&S 지음 | 진한엠엔비 | 2007.08.20/ 책본문 : ...(1997년10월2일~2004년 1월4일 - 1,920일) 2005.03 대표이사 변경 (박경수 사장 → 황정기 사장) 2006.08 대상그룹 나드리화장품 주식회사 인수 대표이사 변경( 황정기 사장 - 한태수 사장.../ 376페이지(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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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연 [記事] : 예천여자고등학교 3학년 황정연 양이 2006년 12월 15일 서울대학교 수시2학기 전형에서 최종 합격하였다. 황양은 황의현(대창중고 졸업, 경도대 교수)과 박경숙(유천중 교사)의 딸이다.
황정연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수석 합격! = 예천여고 황정연 양/ 5년전, 2006년 12월 25일/ 예천여고 황정연 양 지역균형선발 전형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수석 합격! 예천여자고등학교(교장 황순팔) 3학년 황정연 양이 2007학년도 서울대학교 지역균형선발 전형에서 생활과학대학 소비.../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황정연 : 재경예천군민의 날 행사/ 4년전, 2007년 5월 29일/ 군시장개척단 안상훈, 예천읍사무소 장광현 씨에게 각각 모범공무원패를 수여했으며, 정재표, 황정연 학생에게 각각 1백만 원의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김동대 회장은 “군민회는 각박한 서울생활에서.../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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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黃定煥) : 1945- , 예천읍 출신, 본관은 창원, 64년 서울사대부고, 70년 서강대 무역학과 졸업, 69년 벵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서울지점 입행, 73년 동 수출입부 과장, 75년 동 심사부 과장, 77년 동 심사부 차장, 79년 동 심사부장, 82년 동 심사부 지배인, 83년 한미은행 창립 멤버 심사1부장, 87년 동 심사2부장, 89년 동 심사관리부장, 89년 동 여의도지점장, 91년 동 연지동지점장, 93년 동 전산정보팀장, 96년 동 이사대우, 97년 동 상임이사, 98년 동 상무이사, 99년 축협중앙회 신용사업담당 부회장, 2002년 인천 제일상호신용금고 대표이사, 에이스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 사장이다.(醴泉新聞 1996.3.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經濟新聞 2002.1.21, 인터넷 每日名鑑 2001,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황정환 : 한미은행 사례/ 2007.10.10 | 네이버 블로그/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엔터프라이즈 차원의 전략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황정환 상무:한미은행 만이 아니고 이제는 많은 은행들이 리테일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몸집이 큰 시중은행이 빨리.../ blog.naver.com/gilbert/ Gilbert (理由充足律)(daum 2012)
황정환 : 경영-CIO의 역할 변화(동료,부하,상관과의 협상,기업경영,인터뷰)/ 지식월드/ 알아야 할 사항 2. CIO 고민 10선 1) 신훈 아시아나 부사장 금호그룹 CIO 2) 이기식 대우증권 부사장 CIO 3) 황정환 한미은행 이사CIO 4) 조이남 금융결재원 상무 5) 금화그룹 김대환 상무 3. 동료·부하·상관과의 협상.../ www.jisikworld.com(daum 2012)
황정환 : 축협중앙회 부회장에 황정환 씨/ 1999.09.17 | 연합뉴스/ 신용사업담당 부회장에 황정환(黃定煥, 54) 씨를 선임했다. 임기 4년의 신임 황 부회장은 서강대 무역학과 출신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 서울지점 부지점장과 한미은행 상무이사를 역임했다. .../ newslink.media.daum.net(daum 2012)
황정환 : 서강바른금융인포럼 창립, 회장 이상돈(73경제)/ 웹문서/ 부회장 4명, 총무 5명을 선임했습니다. 고문단에는 △양호(62 경제) 전 NY Mellon은행 한일대표 △황정환(66 무역) 전 한미은행 상무, 전 축협 신용부문 대표 △이덕훈(67 수학) 전 우리은행장,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 sg-alumni.org(daum 2012)
황정환 : 저축銀도 외부 출신 경영자 전성시대/ 2004.10.25 | 연합뉴스/ 신용사업 담당 부회장 등을 역임한 황정환 씨가 이끌고 있다. 황 사장은 지난 1969년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서울지점에 입사한 뒤 1983년에는 한미은행의 창립멤버로 참여했으며 .../ newslink.media.daum.net(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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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희 : 1965- , 풍양면 출신, 풍양초등, 풍양중, 대구 계성고(71회),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대한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녹색문화추진협의회 초대 회장, 김영삼 정부 중앙청 및 중앙박물관 건물 철거 반대운동으로 연행,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저서로 수필집 <청담(淸淡)>(글밭출판사 1989), <자본가의 임금론>(태을출판사 1998), <죽을 각오로 성사시킨 신의 사망 선고>(청조사 1999),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등감>(청조사 2000)이 있고, 연구 논문으로, '상대성 이론의 재해석'(1986), "경기 변동과 스태그플레이센'(1986), '수학의 새로운 정리'(1988), '북방 정책와 통일 문제'(1989)가 있다.(醴泉新聞 1998.8.13, 인터넷 netian 2001, kirst4993.hihomi.com 2002, 야후 2002)
황정희 : 자본가의 임금론/ 冊/ 황정희 지음 | 태을출판사 | 1998.07.30/ 책소개 : 임금은 노동력의 대가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숨겨진 의미, 스태그플레이션, 이윤, 용어정리와 임금의 재론, 소유권과 가치이념 등 8장으로 나누어 경제 전반에 걸쳐 자본과 노동에 대한...(daum 2011)
황정희 : 죽을 각오로 성사시킨 신의 사망선고/ 冊/ 황정희 지음| 청조사 펴냄 | 1999-11-30/ 책소개 : 세계 최고의 지성을 자임하는 한 젊은이의 충격 메세지. 종교에 관한 문제를 다룬 책으로 모든 것을 가능 하게 한다는 창조주의 존재는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큰 전체집합을 가장 어리석게 표현한 방법임을...(daum 2011)
황정희 :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등감/ 황정희 지음| 청조사 펴냄 | 2000-03-20/ 책소개 : 진정한 실력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 덕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연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의 평론과 서갑숙 씨의 성고백서 파문을 시작으로 스타를 꿈꾸는 대다수 사람들의 잘못된...(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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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하(黃肇夏) : 1834(순조 34)-?, 예천 창원 황씨(昌原黃氏) 입향조, 식암 섬(息菴暹)의 후손, 자는 염우(念禹), 생원 중형(中炯)의 아들, 수하(壽夏)의 동생, 민하(民夏)의 형이다. 편부 슬하(嚴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865년(고종 2) 식년 생원시에 2등 15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醴泉郡邑誌 1895)
황조하 : 90여명의 문하생을 양성한 朴周大 문인인 창녕 黃在鎭 선생 간찰/ 창녕(昌寧) 거주지 풍기(豊基)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과목 일의(一義) [가족사항] [부] 성명 : 황조하(黃肇夏) 타과 : 생원(生員) [제] 황재수(黃在壽).../ kumyo.co.kr(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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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열(黃種烈) : 1950- , 예천 출신, 세림제지 대표이사 전무 환경기술사업본부 담당을 지냈다.(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paran 人物 2004)
황종열 : 해외경마 경마싸이트 ┠ 제지사업 권의광 하는 단행했다 승진 전무 이한생 해외영업 구매업무 국내영업 황종하 생산본부 권익목 황종열 세림제지는 30일 자산운용 65만1428주 32.57% 취득 계 편입한다고 공시했다 세림제지는 자산운용.../ mikyowon.hongik.ac.kr(daum 2012)
황종열 : 3.행사추진 기본방향 연락이 가능한 모든 동문을 총동원하여 역할 분담 4.반별 연락 책임자 반 성명 근무처 사무실 1반 황종열 세림제지/기회조정실 상무 최석훈 2반 함웅 계요병원 원장 이경순.../ www.kb44.or.kr(daum 2012)
황종열 : Yonhap Photo :: World Wide Image Archiving :: 홍승수 1944 [現]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원장 [前]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천문학과 교수 황종열 1950 [前] 세림제지 대표이사 전무 허승재 1952 [現] 성균관대학교 의대 방사선종양학교실 교수 [前] 삼성서울병원.../ sales.yonhapnews.co.kr(daum 2012)
황종열 : 인물검색 (秋文錫) 1954년 03월 21일 [現] 대림산업 전무(건설사업부 건축사업본부) 현창호 (玄昌鎬) 1954년 06월 20일 [前] 우리은행 e-비즈니스사업단 단장 황종열 (黃種烈) 1950년 06월 06일 [前] 세림제지 대표이사전무(환경기술.../ jpeople.unitel.co.kr(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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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량(黃俊良) : 1517(중종 12)-1563(명종 18), 하리면 우곡리 우곡서원(愚谷書院)에 제향(祭享)된 사람, 자는 중거(仲擧), 호는 금계(錦溪), 본관은 평해, 치의 아들, 이황(李滉)의 제자, 1540년(중종 35)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성주 목사(星州牧使, 1560) 등을 지냈다.(明宗實錄(1551.6.26 1551.6.28 1551.9.26 1551.9.28 1557.5.7 1557.5.17 1559.2.8 1560.7.18), 國朝人物考, 朝鮮圖書解題, 韓國人의 族譜, 退溪學 2輯 1990 83-84쪽)
황준량 [소셜웹] : blackmania(@music25c) | 지난주, 5월 3일 (화)/ 幽谷元無路 新芽只自香 興來唯所適 矯首望扶桑 깊은 골짜기엔 원래 길 없고 새싹만 저절로 향기롭네 흥이 나는 대로 떠돌다가 머리를 들고 섬을 바라본다 - 황준량(黃俊良)-(daum 2011)
황준량 : 고궁박물관, 농암집 교육 홍보해야/ 지난달, 4월 30일 (토) | WPS국제방송 | view/ 5·7언근체시(五·七言近體詩) 약 140수가 있으며 퇴계(退溪), 송재(松齋), 모재(慕齋), 사재(思齋), 황준량(黃俊良), 회재(晦齋) 등과의 화창(和唱)이 있고 3편의 부(賦)가 있다. 2권은 퇴계와의 여답서(與答書)의 주 내용이다....(daum 2011)
황준량 :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황준량(黃俊良:1517~1563)의 자는 중거(中擧)이며, 호는 금계(錦溪)로 평해인이다. 그의 원조(遠祖)는 고려 때 시중 벼슬을 지낸 유중(裕中)이며, 그의 아들 유정(有定)이 조선조에 벼슬을 해서 공조전서가 되었으며, 영천에 우거하게 된다. 그리고 전서공의 아들은 생원을 지낸 연(?)으로 금계의 고조에 해당된다. 이 무렵 연이 다시 거주지를 풍기로 옮김에 따라 그의 선대들이 여기서 세거하게 된 것이다. 증조부 말손(末孫)은 사온주부를 역임했다. 조부 효동(孝童)과 부 치(?)는 은거하면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부인은 창원 황씨로 교수 한필(漢弼)의 따님인데 중종 12년(1517)에 금계를 낳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질이 특이하여 일찍이 문자를 해득했는데 “말을 꺼내면 즉시 사람을 놀라게 하여 신동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18세(1534)때에 남성시(南星試)에 응거했는데 고관이 그의 책문을 보고 무릎을 치면서 칭찬하니, 이로부터 그의 문명은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시험을 치를 때 마다 늘 앞자리를 차지했다. 정유년(21세, 1537)에는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24세(1540년)에 을과에 제 2인 급제에 오르고부터 47세(1563년)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거의 반평생을 관직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수의마저 갖추지 못해서 베를 빌려서 염을 했으며, 관에 의복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청빈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퇴계는 너무 애석히 여긴 나머지 제문을 두 번이나 쓰고 특별히 「행장」도 썼다. 퇴계는 금계의 행장에서 그의 인물 됨됨이와 어진 목민관,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재 형상했다. 즉 그가 신령현에서 백성들을 진휼한 점과 백학서원을 창건하고 문묘를 증축하여 유학을 흥기시키고, 선비들의 사기를 높인 점도 동시에 평가하고 있다. 또 단양 고을의 적폐를 열 가지 조목으로 간곡히 상소하니, 조정으로부터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내가 몹시 가상하게 여긴다.”는 장유(?諭)와 함께 10년을 한정하여 공부(貢賦) 20여 조목을 감면 받게 했다. 특히 향교가 산간 가까이에 있어서 침수의 우려가 있기에 군치(郡治)의 동쪽으로 이전 건축해서 풍화의 근원을 세움에도 전력했다. 성주에서도 영봉서원의 수축과 단장, 문묘의 중수를 주관하는 등 목민관, 흥학 사문의 선구자적 자세를 지닌 그의 인간상을 그려보았다. 『금계집』의 편찬 경위는 이광정(李光庭)이 『금계집』발문에서 상세히 밝혔다. 『금계집』은 퇴계를 비롯한 한강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학문 경향과 의리지심이 당대 영남 사림에서 출중했음을 짐작케 한다. 「상퇴계서 上退溪書」,「여영봉제현서 與迎鳳諸賢書」,「상주신재논죽계지서 上周愼齋論竹溪志書」의 글을 통해 금계는 유학을 흥기시키고 유교 교육을 통한 덕치수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유교 교육의 활성화 방안으로 향교 교육의 강화와 향촌 사회에서 유교 이념의 구체적 실천대안도 제시했다. 퇴계는 금계가 영진(榮進)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무오년(42세, 1558)으로 잡고 있다. 즉 금계가 단양 군수로 부임하고 있을 당시 조정의 대신들이 금계의 치적과 학문을 들어 문한의 직임을 맡기자고 상소했으나 질시를 당해 중지된 이후, 금계는 위기지학으로 그의 학문 세계를 적극 전향했었다고 행장에서 밝히고 있다. 책문에서 선비들의 타락상을 열거하면서 이런 폐단을 구제할 방안과 그 본원을 밝히고 있다. 선비란 자들이 과거 시험에 얽매여서 유학의 본질을 내버려두고 성률만을 읊조리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난국을 수습할 대안으로 서원 교육을 통해 이를 실현 가능케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만고의 역사에 부침 되는 인물들의 사적을 들어서 그 교훈성을 획득한 뒤에 위기(爲己) 공부, 즉 성리학에 침잠하여 성인을 표준화하여 현인을 기약하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었다. 일련의 산문과 시를 통해서는 그의 사상 경향이 위기지학적인 것으로 귀결됨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의 사상이 단순히 소극적인 위기지학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구체적인 실천 유학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16~17세기 퇴계 학단의 처사들이 향약을 실시하여 향촌 질서를 유지하고 서원을 중심으로 활발한 언론 활등을 펴 향론을 형성·조정하였고, 국가적 위기에 처해서는 의병을 조직하여 향토를 수호하고 국난을 극복하는데 기여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단양향교중창기」에서는 그가 단양 고을 원으로서 교육과 어진 목민정치를 실현했음이 충분히 입증된다. 이런 점에서 위기지학을 실천 유학으로 체행한 인물로 지적할 수 있다. 「자양서당기」에서는 금계의 이러한 지방 교육 목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른바 선비 정신을 진작시키고 사회의 복리 안녕에 기여케 한다는 근대적 교육 지향점과도 일치한다. 「일문약의 一門約議」에서는 금계는 효제를 숭상하여 신구 세대가 상호 의리를 존중하여 우의를 돈독히 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신뢰의 폭은 급기야 향촌 전체의 것으로 파급되기를 희망하기에 이른다. ‘계’모임을 통한 향촌의 적극적인 교화책이다. 「서사마계후 書司馬契後」에서 사귐의 즐거움을 피력한다. 그는 향촌 사회의 대한 미풍양속의 진작과 교화를 통해 유교 덕목 구현화 가능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금계는 여러 산문을 통해서 역사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표명했는데 위기지학을 지향한 유자적 입장에서 역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금계가 지향한 역사관이 그만의 독특한 역사의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당대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범주 안에서 공유된 역사의식의 일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원변 桃園辯」에서 그는 종래 전설적인 도원, 곧 ‘무릉도원’의 허구적인 이야기를 근거가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여 부정하면서 역사란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집합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전개한다. 금계는 역사란 이러한 현실적이고 올바른 역사의 전수만이 진정한 역사의 가치를 획득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역사의 전승은 오직 천명에 의한 것이라야 바람직한 것이라는 논리를 「기자위무왕진홍범론 箕子爲武王陳洪範論」에서 개진했다. 「대책문사재득실순박 對策問史才得失純駁」이란 글은 실제로 역사를 기록할 사관의 인간 됨됨이가 자세를 꼼꼼하게 제시한 글인데 금계는 사관은 학문과 재질, 절조를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며 그 준거로 중국 역대 사관 중 ‘춘추’를 집필한 공자, ‘강목’을 찬술한 주자를 이상적 사가형이라고 손꼽았다. 「예조청찬동국통감강목전 禮曹請撰東國通鑑綱目箋」에서 역사 기술 원칙을 말하기를 역사란 엄연한 현실의 기록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신적이고 허탄한 요소는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며, 역사의 전승 관계는 오로지 천명에 의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역사를 집필하는 사관은 엄정한 책무를 지닌 존재로 보았다. 또 중국 역대 정통 사서로는 공자의 ‘춘추’와 주자의 ‘강목’을 들어 정통 유학에 입각한 역사관에 진정한 의미를 두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그는 당대 16세기 우리 문단의 주류를 형상한 사림파 문학의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도학 위주에서 경세적인 국면으로 경사되는 시각을 부분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의 문학에 관한 총체적 양상을 집약한 글로써, 이산해가 쓴 발문을 들 수 있다. 그가 초년에 사장학적적인 공부를 지향하다가, 만년에 도학 위주의 공부로 선회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초년의 외도적인 학문 추구에 대해 매우 애석한 심정을 토로했다. 심성 공부에 주력해서 지난날의 비루함을 일신하여 군자의 도로 나아갔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장학 곧, 문학에서 대우, 성률 등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 대해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도학 공부를 지향하였다는 것이다.
「증김생륵등제유 贈金生?等諸儒」에서는 문장을 여사로 보았으며, 선비로서 우선하여야 할 것은 존심양성(存心養性) 공부라는 그의 입지가 여실히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차청천현운육언 次晴川縣韻六言」에서는 맨 끝 부분에서 ‘조충전각’의 수식 위주나 연구(聯句)를 다투는 등의 사장 위주의 문예를 노년에 도학 위주로 전향했던 바 이는 그의 주된 학문이 방향이 심성 공부였음을 시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수양은 실제 시세계에서 산수 자락의 정서나 경세적인 시정(영사시 포함)으로 표출되는데, 그의 작품에서는 이대별(二大別)하여 그 주제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금계는 원란암 시에서 귀전 은둔의 삶을 희구해 왔다고 퇴계에게 고백했다. 그는 유자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선비다운 풍류미를 구비하고 있었다. 곧 선비적인 멋의 발현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실현되는 한거 청적미는 자연 객체와 어떤 조화미를 갖는가를 연결시켜 보았다. 금계는 유무득실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연명과 맹자의 전례를 들어서 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명예에 빠져 길이 아득할 뿐이었으나, 서책 속에서 참된 스승을 만난 기쁨을 획득했다고 했다. 금계 시의 한 특징인 산수자락(山水自樂)이 진락 추구로 전이되어 급기야 물아일체로 몰입되는 양상을 주시했다. 말하자면, 금계의 내적 심성 수양의 진전 양상이 겉으로 표출된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는 유가적 입장에서 역사를 주지하여, 전대의 역사는 후인들로 하여금 감계와 교훈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를 도출했다. 실제로 문집에 산견되는 영사 회고시에서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금계는 백제의 흥망성쇠에 대해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낙화암을 중심으로 해서 백제 멸망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애상도 하고 때로는 의자왕의 실정을 따끔하게 질책도 하면서 역사적 교훈성을 보고했다. 그러기에 금계에 있어서 백제의 역사는 사장된 역사가 아니라 재 반사되어 우리민족의 미래를 예고하여, 반성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논리를 제공한다. 바로 비난받을 역사의 회고를 통해 미래 역사의 버팀돌로 삼자는 것이다. 한편 그가 목민관의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 전심전력으로 흥학사문하며, 애민의 자세를 견지했음이 「단양진폐소」나 애민시 계열에서 극명히 드러남도 볼 수 있었다. 금계 시에서는 4언, 6언 등 장편시가 많이 산견되는데 이는 그만큼 시에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덕현기행」은 조선 후기에 대거 발생된 서사시 계열의 작품에 버금갈 만한 수작이었다. 금계는 실천적 의지가 강한 유자로서 경세적인 문학관을 구비했으며, 시에서는 풍류를 지닌 산수자락과 물아동체의 경지를 회구했다. 그리고 이는 영사의 회로를 거쳐 새로운 역사를 재창조하기 위한 감계교훈을 제시했다 또 어진 목민관으로서 애민 의식을 갖춘 퇴계의 문도였다. *남성(南星) : 당나라 사람들이 상서성이 대명궁(大明宮)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성이라고 하였 다. 여기서는 국자감(國子監)을 가리킨다. *본문에서 한문이 ?표로 나오는 것은 웹에서 기술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한자입니다. 이점 양해바랍니다.-편집자 주)
* 김성규 선생님은 <안동,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 흔적을 찾아서> 등 의 저자이며, 현재 안동공업고등학교에 한문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다.(김성규 객원기자 안동넷 2008-01-17 오전 10:27:46)
황준량 : 문화 장관 문화재청 농암집 전시 홍보해야/ 3달전, 2월 5일 (토) | WPS국제방송 | view/ 5·7언근체시(五·七言近體詩) 약 140수가 있으며 퇴계(退溪), 송재(松齋), 모재(慕齋), 사재(思齋), 황준량(黃俊良), 회재(晦齋) 등과의 화창(和唱)이 있다. 또한 3편의 부(賦)가 있다. 2권은 퇴계와의 여답서(與答書)의 주...(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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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